아메리카 사회의 전경은 민주주의의 표피를 덮고 있으나 그 표피 아래에서 귀족주의의 옛 색깔들이 간간이 얼굴을 내민다......이 나라 사람들처럼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없으며, 재산이 항구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이론을 이 나라 사람들처럼 경멸해 마지않는 사람들도 없다.


                                                                           - A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중에서 인용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를 읽지 못했기에 내 평가는 프레시안과 한겨레 등에 나온 기사들에 한정된다. 강준만은 진보세력이 연이은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 “싸가지 없는 진보의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불일치’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진보가 논리와 이성에 집착하는 한 욕망의 시대인 21세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읽을 가치가 없어 보이는 책



그는 논리와 이성에 집착하는 진보가 유권자들에게 싸가지 없는 놈처럼 보이고, 그것 때문에 표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정책과 이념이라도 싸가지 없게 행한다면 유권자들을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강 교수는 진보세력의 ‘이성 중독증’이 ‘옳은 말이지만, 싸가지 없게 보여 부동층(20%)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개인적 욕망에 감정으로 접근해 싸가지 있게 구는 부동층의 지지를 받아 선거에서 이겼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따라서 ‘싸가지 없는 진보가 집권하고 성공하려면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이고, 그럴 때만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한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 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 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는 태도, 왜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느냐고 호통 치는 듯한 자세, 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에게도 상처를 주는 행위, 번드르르하게 말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꾸는 태도 등”을 비판하는 진보의 행태를 비판했다.



                                   보수의 시각에서 진보를 비판한 것에 불과한 강준만



필자는 진보의 고리타분함과 경직성에 대해 여러 번 비판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필자의 주장은 강 교수의 진보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프레시안 보도가 강 교수의 책을 제대로 압축한 것이라면, 필자의 답은 ‘아니올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먼저 강 교수가 진보의 기원을 거론하며 ‘이성 중독증’을 말한 것은 분명한 오류다. 강 교수가 말한 이성이 근대이성에서 나온 계몽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의 오류는 너무나 치명적ㅡ근대이성에서 나온 계몽은 보수와 진보 모두의 기원이다ㅡ이어서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듯이, 진보도 열심히 변하는 중이지만, 그렇다고 '이성 중독증'이라 하면 그것은 지나친 단자화다.    



반면에 그가 말한 진보가 추구하는 이성이 정의나 공정과 같은 ‘옳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오류다. 정의나 공정의 기원은 플라톤과 공자처럼 질서나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인권의 기원에서 보듯 ‘옳은 것을 말하는 것’도 보수에서 기원하는 것이지, 진보에서 기원하지 않는다.



또는 그가 말한 이성이 ‘자연의 법칙’이나 ‘우주의 법칙’ 같은 ‘역사의 법칙’이라면 이 또한 오류다. 마르크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말한 ‘역사의 법칙’이란 고전물리학과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오류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진보의 ‘이성 중독성’을 말했다면 오류에서 오류를 찾아내 비판했으니, 그것은 진리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 교수는 21세기를 ‘욕망의 시대’라고 하면서, ‘진보의 싸가지 없음’이 부동층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선거에서 진다고 했으니, 이는 부동층 전체를 ‘욕망의 노예’로 디스한 것이다. 그가 대중매체의 전문가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진보와 보수를 넘어 인간을 형편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의원의 글까지 더하면, 칼 폴라니와 니콜라스 카가 말했듯이, 그들에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부족하다.



읽다가 어이없어 덮어버린 책



강 교수의 이런 조짐은 ‘강남좌파’를 형용모순이라 비판한 시절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진보의 덕목을 가난으로 본 것인데, 이성도 그렇게 본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논리적 오류가 두 개에서 너무나 큰 간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가 미국적인 것들에 물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내놓는 그의 주장을 보면 곳곳에서 오류가 출몰한다.



대중매체의 본질처럼, 미국적 자유주의자로 변신한 것이 분명한 강준만 교수의 주장은 부분적 표상과 수치들로 전체를 재단하려 한 것에서 나온 속도의 폐해이다. ‘모든 창작은 인식의 조급함’이라는 말이 있는데 강 교수가 그러한 듯하다. 그는 현대 대중매체의 화면ㅡ관점 또는 시각ㅡ을 통해 진보와 보수를 보고, 화면에 비쳐진 것에 좌지우지 되는 존재로서 부동층을 재단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의 최종 진단도 지극히 미국적 대중매체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토록 망가진 것은 진보의 ‘이성 중독증’ 때문이 아니라, 정치판을 욕망의 장으로 만든 보수의 극단적인 타락 때문이다. 이성은 도덕과 다르며, 보수의 타락은 미국 유학파들(정치, 경제, 사회, 언론)에 의해 주도됐으며, 그 핵심에 겉과 속이 다른 대중매체적 테크놀로지가 있다.



강준만 교수는 이제 마키아벨리적 보수 인사가 다 된 것 같다. 진보 세력한테 논리와 이성을 버리고, 욕망을 추종하는 정치쇼를 벌이라고 충고하니. 부동층의 표를 얻기 위해 진보에게 욕망이란 가면을 쓰라고 하니,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강 교수에 대한 진중권의 반론 중 “강 교수가 싸가지 소지 의무를 강조하는 걸 보니, 이 사회가 그 사이에 많이 보수화되긴 한 듯”이라고 한 것은 그나마 정확하다.

  1. 중용투자자 2014.09.04 02:11

    틀리다가 아닌 내 생각과 다르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

    • 늙은도령 2014.09.04 05:24 신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책을 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프레시안과 한겨레의 기사를 기준으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책을 사서 읽다가 <강남좌파>와 똑같은 경험을 할 것 같아서 책을 구입할지 망설여집니다.
      강준만 교수의 주장은 좌파에서 전향한 신보수주의자의 주장과 너무 흡사합니다.

      일단 읽다가 처박아 놓은 <강남좌파>부터 마저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중반까지 읽다가 논리적 모순과 오류 때문에 접었던 책이라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2. 리야 2014.09.04 02:33

    다르다고 표현할려면 소위 신문칼럼이나 게재 해야겠죠..

    명백한 오류를 발견하고 틀린걸 다르다는 식으로 표현하면

    개인 블로그의 의미와 추구하는 이상이 글쎄요...퇴색되진 않을까요?^^

    • 늙은도령 2014.09.04 05:30 신고

      책의 내용을 보지 못했기에 <강남좌파>에서 보였던 것들이 프레시안과 한겨레의 기사에 똑같이 되풀이 됐기 때문에 틀렸다고 했습니다.

      만일 이번 책의 내용이 오류를 극복했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요.
      헌데 기사 내용과 인터뷰들을 살펴본 것으로는 틀렸다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의 책은 대중매체를 다룬 것들은 훌륭한데, 너무 다작이라 조급함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제가 근현대사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일종의 짜집기죠.
      제가 쓰는 근현대사는 처음부터 짜집기를 방법으로 정한 것이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강남좌파>처럼 강준만 교수의 책은 다르지요.

      저도 진보좌파와 보수우파를 재정의하는 것을 구상은 해두었습니다.
      문재인 의원을 만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확인할 것이 남아 있어 아직 집필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것이 확인되는대로 글로 옮길 것입니다.

      진보좌파는 분명 재구성돼야 합니다.

  3. 도래 2014.09.04 10:31


    사실 이 칼럼 좀 실망입니다.

    이성과 욕망에 국한해서 정치판을 얘기하자면 볼 것도 없이 욕망이 이깁니다.
    정치에서 이성이란 이념과 편향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욕망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 정치판을 논하는 거라면 좀 고리타분한 학자풍의 서술은 피하셨으면...
    특히 인용이랍씨고 외국 유명 학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한국에서는 너무나 상투적입니다.
    사실 그런 것이 없으면 한국에서는 잰척을 할 수도 없는 현실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거 일종의 노예 근성입니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자기 생각 자기 말을 하라 이렇게 주장하겠습니다.
    님은 그 능력이 있을 수 있고 그 능력을 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무협소설의 잠재력을 본다면.

    만일 이 칼럼이 도령님 재주의 한계라면 한번쯤은 죽었다 깨나는 성장적 위기를 거쳐야만 무언가 진짜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제 솔직함의 무례를 용서하시길...

    • 늙은도령 2014.09.04 15:24 신고

      내가 아닌 누가 한 말을 내말처럼 사용할 수 없는 것이지요.
      또한 강준만이 말한 이성이나 논리 등을 애기하려면 당연히 그 기원에서 찾아야겠지요.
      그렇게 한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전 그런 글 쓰는 것의 양심을 지켜야 했습니다.
      외국의 것이라도 그것이 옳다면, 우리나라에는 그 정도의 대가가 없다면 그들의 글을 인용할 밖에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정치철학자가 있는지요?
      제가 다른 나라의 정치철학자들을 인용하지 않을 만큼 그 정도의 석학이 있는지요?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용을 빌리는 것이고, 요즘 지식인들 너무 책을 안 읽어요.
      시대가 빠르게 변한다면서.
      하지만 달라진 것이 정말 있느냐?
      과학기술적인 것 말고는 없습니다.
      오히려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고 있지요.
      강준만은 그것을 말했을 텐데, 그것이 싸가지로 표현되는 것은 지극히 단순환 논리입니다.
      또한 요즘은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남을 것을 내것이라 할 수 없고, 그들의 것 이상을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하면 그것을 인용하는 것이 글쓰는 사람의 자세라 생각합니다.
      소설과 정치철학은 다릅니다.
      아직도 저는 배우는 중이고, 대가가 되려면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았습니다.
      강준만의 글쓰기가 언제나 이런 식이어서 저도 같은 방식으로 대한 것이고요.

      두 번째는 이 칼럼은 프레시안와 한겨레 기사, 동아일보, 라디오 인터뷰 등을 기준으로 썼기 때문에 그 한계 내에서 글을 써야 논리적 비약이 없지요.
      또한 기사나 인터뷰 이상의 것이 첵에 들어있다면 그때는 제대로 된 비평을 하겠지요.

      주어진 것에서 지나친 상상은 비약이 됩니다.
      저는 그 한계 내에서 글을 쓴 것이고, 책의 내용에 따라 제가 틀리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의 정의부터 새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현장에 대한 이해가 병행돼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강준만이나 진중권을 보면 학자적 냄새는 나나 거대 조직에 대해서는 너무 몰라요.
      또한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지식이 부족해요.
      그래 가지고는 절대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해와 변화, 우리나라의 상태에 대해 이해하기 힘듭니다.
      지금의 보수와 진보는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논리가 변형된 것에 불과하게 가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출발부터 변화까지 그 역사에 대해 철저한 이해없이 글을 써요.
      그래서 뒤죽박죽이 됩니다.
      강준만도 진중권도 그런 면에서 다 틀렸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다음 글들에서 밝힐 것입니다.

    • 도래 2014.09.04 21:21

      국내건 외국이건 석학이라는 부류들이 가르치는 것들, 도령님이나 나와 같은 고수라면 스스로 깨칠 수 없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많이 읽되 나의 사고로 그들의 통찰력을 체내에서 소화시켜 내 말로 내 표현으로 출수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공이 쌓이고 공력이 되는 것입니다.

      정계이건 학계이건 어디든 기득권이 있지요. 기득권이란 허물자고 있는 것입니다. 도령님이나 나나 변방에서 출도하는 사람들은 중앙을 쓸어버리겠다는 반골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개가 없다면 흔한 말로 시체지요. 변혁이고 혁명이고 다 포기해야지요.

      딴 말 필요없습니다. 땅과 하늘을 뒤엎겠다 하겠다, 이겁니다. 이 자신감을 볼 수 있다면 제 말의 의도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도령님의 '내 이야기'를 전부 읽어보았습니다. 큰 한을 키울 수 있는 사람, 그 해원을 위해 초극할 수 있는 사람, 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떤 미친 사람이 바람같이 왔다 스쳐사라진 셈 치십시오. 무협에 대한 미련으로 단순 독자로서는 계속 방문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분발하십시오.

      아 그리고 이 말 한마디는 추가하고 싶네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느껴지는 뜨거운 마음, 여기에서 강한 동지의식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4.09.05 17:31 신고

      석학의 것들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면 벌써 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내것이라고 내놓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제가 접한 사람들 중에 몇몇은 제가 넘을 수 없는 수준에 있어서 그들을 넘을 수준에 이르면 그때는 본격적으로 재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헌데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제 목표는 푸코와 벤야민인데 21세기의 제가 20세기의 그들만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를 높이 사준 점은 고맙습니다.
      지금의 제 수준으로도 누구와도 토론하건 내목소리를 내건, 어느 정도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목표는 그 이상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더 공부하고 더 쉽게 글을 쓰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들을 한 번은 털고 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통해 제 소리가 나오겠지요.
      저는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느긋하게 갈 생각입니다.
      어차피 지금은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구적 차원의 변화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TV를 끄고 책을 읽는다면 모를까 그것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금은 천천히 갈 것입니다.

      때가 있으리라 봅니다.
      때를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제 능력 밖입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지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건강상으로도 모두 그렀습니다.

      요 며칠 급성장염 때문에 너무 아프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지 않네요.
      일단 급성장염부터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이런 분이 다시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헌데, 최근에는 문재인 리더십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리더십이 아닌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4. 여강여호 2014.09.04 20:03 신고

    미디어 전문가로서 철저하게 대중문화적 관점에서 정치를 분석한 듯 하네요.
    과거에 쓴 책을 상기해 보면
    강준만 교수의 정치 성향의 변화가 엿보입니다.
    근데 우로 너무 많이 갔네요.

    • 늙은도령 2014.09.05 17:35 신고

      엄청 나갔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수준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조급함이 느껴집니다.
      꼴통 좌파만이 좌파의 모든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를 놓고 좌우를 봐야 하는데 그것을 깨닫을 수 없을 만큼 경직된 것 같습니다.
      다작의 폐해가 스스로 바닥을 드러내는 것인데, 강준만의 경우 바닥이 보입니다.
      그가 숲은 나두고 나무를 갖고 이렇다 저렇다 하니 숲을 논할 차원에 이르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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