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청자란 있을 수 없다. 텔레비전 없이 지내야 할 정도로 열악한 빈곤도 존재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고 변질되지 않은 수준 높은 교육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텔레비전은 지식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에 관한 방법론까지 지시하는, 초 매체적 지위에까지 올랐다.

 

우리는 더 이상 그 기계장치에 매료되거나 어쩔 줄 몰라하지 않는다. 또한 텔레비전의 경이로움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텔레비전 수상기를 특별한 공간에만 한정시키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는 카메라가 잡은 제한된 각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브라운관에 비치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ㅡ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에서 인용

 

 

이승윤의 팬층은 정말 다양하지만 몇 가지 포인트에서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음

 

 

이승윤을 어떤 가수로 보느냐에 따라

 

   기존의 펜덤이나 팬문화에 익숙한 사람들 ㅡ  성공에 공식이 있다고 생각. 성공한 팬덤이나 팬문화에서 모든 기준을       가지고 옴. 이것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것으로 가수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몰아감. 가수와 팬, 방송사, 기획사 등을       나눠 다른 접근 요구. 그들이 옳다고 확신하기에 상당히 폭력적. 기성세대를 꼰대라며 비판할 때 '내가 해봐서 아는       데'가 꼰대의 증거라고 하는데 그들이 똑같이 하고 있음.

 

   그런 것은 모르는 분들 ㅡ  여러가지 이유로 좋아서. 나이 들어 봤음에도 매력적. 인간적인 면모, 가사의 매력, 삶의         궤적, 길들여지지 않은 날것 같은 느낌,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것, 삶의 다양성, 조직의 다양성, 자본의 다양성, 시장의     다양성 등을 어떤 형태로든 경험해본 사람들 

 

이승윤의 어떤 매력에 빠져들었나 또는 이승윤에게 어떤 욕망을 투영하는가에 따라 

 

   젊은 사람들 ㅡ 성공한 아이돌의 공식처럼 이승윤도 그런 공식을 따라 성공하는 것. 기존의 팬덤이나 팬문화에 익숙.     팬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 팬클럽이나 팬카페의 운영진이 정한 규정을 그대로 따름.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한다고       하나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절대 민주적이지 않음.

 

   나이든 사람들 ㅡ 어떤 틀 안에서 누구의 팬이 되지 않음. 각자의 다양한 경험과 세계관에 따라 좋아함. 팬클럽이나       팬카페 운영하는데 사람이 필요하고 돈이 든다면 합당한 돈을 받도록 만든 후에 시작. 시스템을 구성한 후 진행. 

 

이승윤의 미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 ㅡ 지금은 무조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 때. 많이 노출될수록 좋다고 생각. 성공공식에 대     한 그들의 이해가 비슷하기 때문에 집단적 견해와 집단적 움직임. 장기적으로 보거나 단기적으로 보거나 팬들이 해야     할 일이란 정해져 있다는 것. 세상을 단편적인 눈으로 봄. 각자도생이 익숙해진 세대. 대단히 안타까움. TV화면에 보이

   는 것이 다 진실이 아니며, 우리는 절대 카메라의 각도를 알 수 없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음. 어떤 것도 자신들에게 유     리하게 해석. 방송시스템, 그 기술에 숨어있는 것들에 대한 몰이해.  

 

   삶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 ㅡ 조직이 커지거나 투자의 규모가 커지면 어디서나 통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씩은 이해.       그런 경험과 인식의 관점에서 가능하면 다양하게 보려고 함.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음.

 

 

1년 계약이 성공을 위한 디딤돌, 당연한 성장통 등으로 볼 수 있지만 이승윤이란 가수의 특성상 독이 될 수도 있음. 이런 것들에 대해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음. 그것이 안타까울 뿐. 

 

 

 

https://youtu.be/s6Hxl4E09DA

 

 

 

스포츠 채널로 리모콘을 돌리다 잠시 정지한 TV화면에는 한 청년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름이 아닌 번호 30번으로 불리던 그는 소리를 지르며 목을 풀었다. 공연을 하기 직전의 가수들이 이런 방식으로 목을 푸는 경우는 많지만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런 참가자는 처음 보는 듯했다. 왠지 모를 생경함과 연약해 보이는 그 청년이 부르겠다는 노래라는 것이 이런, 이효리의 치릿치릿뱅뱅이란다.

 

 

뭐지, 이건? 갑작스러운 호기심이 몸을 관통해갔다. 리모콘을 누르던 손가락이 멈춰졌다. 그리고 그 청년의 성대에서 튀어나온 노래라는 것이... 그랬다, 충격 그 자체였다. 호기심은 무한대로 솟구쳐 제멋대로 온몸을 휘졌더니 어마어마한 전율로 자라나 나를 압도했다. 아니, 집어삼켰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온전히 그 청년의 압도적인 열창에 빠져들었다. 

 

 

청년이 보여준 몰입도와 무대를 폭발시킬 듯한 그 퍼포먼스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완벽할 정도로 소화해낸 노래가 청년이었고, 자유로운 영혼이 이끄는 춤사위가 청년이었다. 이효리의 치릿치릿뱅뱅은 그렇게 청년의 것이 되었다. 어떤 단어들을 동원해야 청년의 무대에 걸맞은 표현이 될 수 있을까? 그랬다, 그 몇 분의 시간이란 초대형 가수를 넘어 하나의 전설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다. 

 

 

이승윤이란 가수의 무대를 처음 본 순간을 거칠게 표현하면 이러했습니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이승윤의 열창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어땠을까? 만일, 정말로 만일 리모콘을 돌리다 잠시 동안의 시간 지연이 없었다면, 그래서 이승윤의 치릿치릿뱅뱅을 듣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시사와 시대에 관한 치열한 영상들을 올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천 권에 이르는 독서량으로도 누구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유튜버에 불과했는데, 아고라의 논객으로 활동할 때와는 완벽히 다르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한없이 지쳐가고 있었는데, 30호로 불리던 무명의 이승윤을 천둥벼락처럼 만났습니다. 파당정치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고민과 주저함을 한방에 날려주었습니다. 사막을 헤맬 때난 느낄 수 있는 갈증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의 한 달이란 한여름밤의 꿈 같은, 달콤하고 즐겁고 행복한 기간이었습니다. 어머님을 하늘로 떠나보낸 후 단 하루도 형이상학적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정말 기적처럼 한 달이란 시간이 푸른 창공을 떠도는 구름처럼, 그들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바람같이 흘러갔습니다. 녹화를 마친 영상에서의 제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도 차분해졌고, 기적 같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통신사업에서 망한 후, 지난 20년 동안 책 없이는 단 하루도 보낼 수 없었는데, 어머님을 보내드린 후 단 한 시간도 편할 수 없었는데 제가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승윤이란 청년에 흠뻑 빠져 덕후의 세계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팬카페에도 가입했습니다. 그것은 선물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제게 보내준 한아름의 선물이었습니다. 티끌 하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아고라 논객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12년 이상 저를 지켜본 독자분들은 늙은도령이 미쳤구나, 마침내 맛이 갔구나. 죽을 듯 죽을 듯하다 겨우겨우 살아나더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갔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미쳤습니다. 네, 미쳤습니다. 그것도 확실하게, 이승윤이라는 청년에게 미쳤습니다.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전율에 빠져들었던 노래에 미친듯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엄마, 고마워. 정말 고마워. 조금만 쉬어갈게. 노래 가사처럼 '쉬지 않고 난 계속 달렸으니까. 잠시만 쉬어갈게, 물 한 모금 마시며. 엄마의 대한 그리움도 물로 적시며.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형이상학적 죄의식도 물로 달래가며.        

  1. 제니 2021.02.17 16:03

    제 마음을 멋지게 글로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승윤 가수님 꽃길만 걸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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