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혼란과 분열로 무정부적 상태에 이른 대한민국의 문제들은 보수우파의 경험과 단절의 삼중적인 모순에서 발생하고 있다. 첫 번째로 경험의 관점에서 보면, 극단적인 혼란과 분열은 해방 이후 권위주의와 군부독재 시절에 이룩한 압축성장과 자본주의의 전성시대ㅡ이것도 최근의 연구를 통해 빚의 확대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ㅡ에 대한 구보수의 일방적인 향수가 IMF 환란을 극복해낸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들을 부정하면서 발생한다.



또한 IMF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신보수와 구보수 간의 정치경제적 권력투쟁이 경험상의 차이를 드러내며 또 다른 형태의 혼란과 분열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 모두는 4.19운동과 광주민주화항쟁 및 6.10항쟁으로 이어져온 민주주의의 결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IMF 환란을 극복한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를 모두 다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구글이미지에서 인용



하지만 산업화 세력과 신자유주의자로 나뉘는 이들의 근본적인 경험의 차이는 바우만이 말한 중후장대한 ‘무거운 경제’와 경박단소한 ‘가벼운 경제’와의 차이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승만과 박정희로 대표되는 식민지근대화론과 권위주의적 독재에 대한 구보수의 긍정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민주화 세대의 신보수의 차이이기도 하다.



이들은 민주정부 10년 동안 무섭게 성장한 진보좌파의 세력화에는 공통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구보수는 참여정부의 4대개혁입법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반감을 가진 반면 신보수는 이에 대해 조금은 유연한 편이다. 구보수와 신보수의 차이 중에 나이나 세대를 들먹이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구글이미지 인용



이명박 정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 내에서도 이들의 경험적 차이는 다양한 정책과 지향점에서 갈등과 혼란을 야기시켰고, 주류와 비주류라는 위치 변동만 있었을 뿐, 이들의 갈등과 혼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족벌언론들도 이런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기도 하고, 그들에게 불리할 때는 맹수처럼 달려들기도 한다.



헌데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단절이다. 구보수나 신보수나 할 것 없이 2008년 미국의 금융 대붕괴에서 시작돼 전 세계적인 경제 대침체로 이어지며, 자본주의체제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자 공통의 경험이 뿌리 채 흔들리는 단절에 직면했다. 그들은 근대이성이 현대성을 이루며 확고해진 무한한 진보와 결과의 낙관론에 노예들이었다.



그들은 세계화의 긍정성을 찰떡같이 믿었지만, 신자유주의 40년의 현실이 극도의 불평등과 지구온난화라는 종말적 현상들로 귀결되자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부수적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주가 돼 자신들까지 종말의 위험에 처하게 할지는 몰랐다. 작금의 상황이란 그들이라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그들이 찰떡같이 믿어온 것들이 뿌리부터 무너지는 것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행태를 결정해온 기회주의자들이 단 하나의 탈출구도 주어지지 않을 때 경험하는 공황상태와 거의 동일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주장해온 것들을 밀고 나가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자니 어마어마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그들은 후자를 택했고,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며 갈 데까지 가보자는 자포자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처럼.



이 두 권의 책은 연달아 읽으면 현대 정치에 대한 이해를 늘릴 수 있다.



헤겔의 변증법과 뉴턴의 만류인력에 의해 기존 질서와 체제는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발전을 거듭해야 하고, 다윈의 진화론과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의해 적자생존의 법칙들이 유효해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이란 두 개의 축이 모두 다 무너지고 있다. 정치권력이란 보잘 것 없이 찌그러들었고, 초국적기업과 거대 언론의 도움 없이는 현재의 지위도 유지하기 힘들 정도다. 집권을 위해서라면 좌파 특유의 정책도 복사해서 사용해야 한다.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과 세월호 참사에 이어, 끊이지 않는 대형 사고들과 GOP 총기난사사건과 각종 폭력사건들이 속출하고, 건축물 붕괴와 초미세먼지의 습격 및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는 싱크홀과 동공처럼 난개발의 후유증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자, 이들은 현대성의 단절이 가하는 전방위적 압박과 습격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현재의 무정부 상태는 여기에 기인한다. 단순히 세월호 참사 때문만이 아니다. 



구보수건, 신보수건 경험과 단절의 이중적인 모순에서 발생하는 인지부조화에 단기적인 반응밖에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해도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일사분란한 질서의 효력이란 과거의 경험에서나 존재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한국의 우파들이 제왕적 대통령과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을 확보한 상태에서도 국정 동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들은 정치를 비즈니스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치가 비즈니스화 됨에 따라 정부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이 민영화됐기 때문에 정치 본연의 기능이 상실됨을 깨닫지 못했다. 이런 권력의 민영화는 자신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사적독점 집단과 거대 언론의 도움 없이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보수우파들이 느끼는 정치권력의 무력함은 자신이 자기 무덤 판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또한 이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진보좌파의 가치와 정책들을 피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끌어다 쓰는 바람에, 선거에서는 승리했을지언정 정작 자신의 정체성이 파괴되고, 갈수록 무력해지는 정치권력의 헤게모니 때문에 실패한 자들이 돼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보수우파는 더 이상 스스로의 논리나 가치로 서있을 수 없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변질됐고, 국가의 공권력을 빼면 사적독점의 집단들과 거대 언론의 도움없이는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힘들어졌다.



                                                                       구글이미지에서 인용



이들은 작금의 혼란과 분열을 일소하기 위해 권위주의 독재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초국적기업과 거대 자본 및 족벌언론도 이런 퇴행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방임 시장경제란 국가의 혼란이 크고, 사회적 불안이 클수록 최대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어느 나라나 공통적인 현상으로, 신자유주의에 내포된 필연적인 과정이며, 바로 여기서 세 번째 모순이 발생한다.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국가인 한국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혼란과 갈등으로 국민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유령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우파의 해석이 온갖 논리적 모순과 오류에 빠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TV토론에 나오는 보수우파의 패널들을 보면 시정잡배보다 못한 자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분명 우파의 위기이자 정체성의 붕괴가 분명한 시기이며, 개입주의와 자유방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한국판 시장경제의 위기이기도 하다. 더 이상은 기회주의적인 땜질식 처방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며, 장기적으로 집권세력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지금보다 더 큰 불법들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국민들에게 극도의 불만을 불러일으키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혁명의 기운으로 폭발할 때 보수우파가 설 수 있을 자리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은 승리했고 집권했지만 그것이 불안할 정도가 된 것이다. 승자의 역설, 그것이 한국의 보수우파가 처한 정신적 아노미현상이자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의 핵심이다. 문제는 한국의 진보좌파도 비슷한 위기와 모순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다음 글ㅡ언제 올릴지 알 수 없지만ㅡ에서는 거의 전멸의 수준에 이른 한국의 진보좌파의 위기와 해체를 다루면서, 그들의 무능력과 조급함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못지않게 참여민주주의의 위기와 퇴행 및 축소가 심각할 정도로 악화됐다는 사실을 다루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에서 무정부적 자유주의(미국식 신자유주의)로 퇴행한 미국에서의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완벽하게 제시했던 프랑스혁명이 전체주의의 한 형태인 공포정치로 변질된 과정과 이유에 대한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   

  1. 참교육 2014.08.22 07:40 신고

    새누리를 비롯한 우리나라 보수란느 사람들.... 그 사람들은 이해관계로 방황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친일 혹은 수구 기득권세력이 아니겠습니까?
    보수의 청체성을 찾는다는 것 부터가 웃기는 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22 17:54 신고

      새누리당에 있는 자들이 보수우파의 본 모습을 갖추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보수우파들은 합리적인 분들이 많아요.
      저와 이념적으로 많은 토론을 해도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새누리당에 합리적 보수우파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새누리당 내에 있는 악질 친일 부역자 후손들을 걸러내야 합니다.
      그러면 진보좌파도 새롭게 구축될 것입니다.
      지금의 진보좌파는 너무 공부도 부족하고 미래 비전도 제시 못하니 그들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2. 새 날 2014.08.22 10:58 신고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3. 태봉 2014.08.22 14:49

    공부 잘 하고 갑니다^^

  4. 영감 2014.08.27 13:48

    세상이 평평하다는 말이 있죠.
    세계 경제가 개방되어서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프리카에도 있고 남미, 아시아 어디든지 있어요.
    그래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불가능한 상상의 이념이 되었는데도 우리 민족은 순진한 모양입니다.
    국가가 적정한 통제를 통해 소수의 경제집중을 막아야 하는데
    다국적 거대기업을 제어할 수 없으니 신자유주의를 거부할 수 없고요.
    친일 부역자를 걸러내려고 하면 더욱 발광하게 되고 서민들만 힘들어질거예요.
    아쉽지만 면죄부를 주고 잊어버리는게 낫습니다.
    나쁜 기억을 계속 가지고 있다보면 정신병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피폐해집니다.
    늙은도령님께서 쓰신 것처럼 신자유주의 경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수 진보 모두의 과제일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27 14:37 신고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중요합니다.
      허나 완벽한 체제는 없는데 체제를 타락시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악질적인 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 0.01%밖에 안 됩니다.
      헌데 그들이 우리나라의 핵심부에 있어요.
      그들이 나쁜 짓을 못하게 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냥 조용히 살라고....



오로지 남의 대들보만 눈에 들어오는 박근혜 대통령은, 재보선의 압승에 고무되어 나라 전체를 신자유주의적 통치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거의 모든 규제들을 무력화시키려고 하면서도, 윤 일병 집단구타 살인사건과 충격적인 GOP총기난사사건 등의 비극적인 참사의 처방으로 조기교육의 필요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다. 군대가 갖는 태생적이고 제도적인 한계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한반도, 지정학적으로 열강들이 충돌하는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다섯 국가 중에서 한국만 36년이나 식민지 착취와 수탈을 당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식하고 바라보는 군대란 아버지 박정희의 쿠데타로 연결되는 것 때문인지, 군대를 오락거리로 포장해서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MBC의 '진짜사나이'에 나오는 군대인가 보다. 현실과 리얼리티쇼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텔레비전에 길들여진 성찰없는 미디어세대의 전형적이 모습이다. 군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기교육과 인문학적 소양을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일제 강제합병시대 이후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교육이고, 식민지사관을 추종하는 세력들에 의해 교학사 교과서 사태까지 이어진 것도 박 대통령의 인식이 그녀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추종한 식민지근대화론의 논리가 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 허구성이 여러 가지 연구와 자료, 통계들로 밝혀졌음에도 현 집권세력의 뿌리가 식민지 36년 동안 부를 축적한 친일 부역과 일제가 구축한 군대에 있으니 대통령이 인지부조화를 드러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최근에 들어서는 최상위 부자들이 막대한 비용이 드는 선행학습을 통해 계급적 차별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유체이탈 화법의 전형이자, 참으로 한가하기 그지없다. 부부의 대다수는 출산을 미루고, 출산 이후에는 맞벌이를 해야 아이를 교육할 수 있는데 조기교육과 인문학적 소양을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 삼포세대에 이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지고, 대학들은 인문학 강좌를 폐지하고 있는데 이런 뜬구름 잡기식 발언은 어떤 경험과 성찰에 근거한 것일까?



인류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본성에 사랑을 찾도록 만들었고, 후손을 이어가기 위해 사랑의 성행위에 절정의 쾌락을 안배했는데, 아예 사랑을 하는 것조차 힘에 겨운 청춘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설사 조부모의 재력이나 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연애를 할 수 있다 해도, 전반적인 섹스의 양은 늘었으되, 서로를 아끼고 보호하는 사랑보다는 하룻밤의 욕망과 쾌락을 위한 소비적 행위처럼 이성교제를 한다. 



그에 따라 피임과 낙태도 비약적으로 늘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에게 주어지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만남이 쉬웠기에 이별도 어렵지 않으며, 교제기간이라는 것도 극단적으로 짧아짐에 따라 상대를 알기도 전에 사랑의 전 과정이 끝나버리기 일쑤다. 연예와 사랑의 가벼움은 결혼을 할 때에 이르러서는 철저한 계산을 통해 손익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보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실존과 존재의 모든 형태가 소비하고 계산기를 튕기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현실 체험도 사이버공간에서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통제 하에 진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삶의 편리함은 끝을 모르고 늘어나고 있지만, 그런 편리함을 집요하게 팔아먹는 기업과 자본의 탐욕에 자연과 지구는 물론 모든 생명과 최종적으로는 먹이사슬의 맨꼭대기에 있는 인간마저 사회경제적 위계에 따라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았다.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다양한 미디어들



물론 지구와 자연의 어떤 반격에도 살아남을 자들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인 지구 멸망에 나오는 생존자들이 실제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방어막을 펼칠 수 있는 최상류층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거대한 부를 이용해 일체의 위험에서 살아남을 공간들을 구축하고 있다. 그런 자기보존의 능력마저 급격한 경사면을 이루며 각종 불평등을 양산하고 있지만, 최상류층이 잠시도 쉬지 않고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런 궤변에 저항할 여력도 없고,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길들어져 있는 99%의 인류는 하루, 한 시간, 일 분의 만족과 단기적인 생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삶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들이 매일같이 체험하는 것은 생존본능에 충실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라면 삶을 잘게 나누어 지속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그때그때를 넘기다 보면 오늘과 같은 내일이 초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부만이 지속적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신의 능력을 대출ㅡ천문학적인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ㅡ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라 해도 인간을 움직이는 철학은 단 세 개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것들 또한 최종적으로 하나로 합쳐진다. 돈과 성공과 권력.. 그리고 둘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돈으로 귀결된다. 천문학적인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타인의 지갑을 착취해야 하고, 그러려면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돼야 한다. 



오직 돈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축해야 하며, 무한대의 이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신용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지닌 자만이 돈이 창출한 권력과 질서에 복종하기 마련이다.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풍요와 행복을 위해 도입된 추상적인 존재들ㅡ화폐와 무한대의 신용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금융공학ㅡ이 이제는 인류의 노동과 목숨을 담보로 신의 권능을 대신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런 천박하고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바꾸려면ㅡ가능성이 조금은 있다ㅡ인간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수십 년 전부터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철학적 사고를 되살려야 한다. 애석하게도 철학적 사고란 지극히 쿨하지 못한, 개념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그래서 삶에서 배척되기 일쑤인 그런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신봉하는 자들처럼, 외국의 노예로 산다 해도 배 부르고 등 따시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주류가 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고의 형태를 말한다. 



때론 자아의 실체를 찾아가는 존재론적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순간순간의 삶에 집중하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실존론적인 사고에 빠져들기도 하며, 한없이 늘어나는 추상적 사고에 빠져들기도 하다가도 때로는 숱한 경험이 만들어준 번개 같은 직관에 따르기도 하는, 분열적이면서도 통합적이고 다층적이면서도 압축적인 주체의 인식론이 철학적 사고의 핵심을 이룬다.   





물질과 제품, 서비스가 주는 편리함과 욕망 및 쾌락의 충족보다는, 가난할지언정 정신적 영역에서의 치열함과 풍요로움에 빠져들고, 느릴지라도 다양한 가치와 지혜의 세계를 산책하며, 화려한 인공의 조명을 벗어나 자연이 주는 청명한 빛에 나를 맡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저녁 노을이나 황혼이 져야 비로소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같은.. 한 마디로 미친놈 소리 듣기 쉬운 지혜와 성찰의 세계에서 하염없이 배회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타인은 정말 지옥이라면, 타인이 없는 나란 존재할 수 있을까? 나를 정말로 배려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그렇게 타인을 대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내가 가는 길은 성지로 이어질까 아니면 지옥으로 이어질까? 내가 가면 길이 되는 것일까, 내 뒤에 누군가가 걸어가면 그때야 길이 되는 것일까? 이런 답이 없는 것들은 끊임없이 물어보고, 끝까지 밀고나가야 가능한 것이 철학적 사고의 본질이다. 이런 과정에서 승리의 배당이란 지극히 초라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리얼킴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헌데 현대의 천민자본주의와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소비에의 욕망과 쾌락은 이런 것들ㅡ당장의 만족을 뒤로 미루는 것ㅡ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욕망한다, 오늘에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것이 내일에는 저가의 필수품이 되기를. 신용을 통해 분할 구매하면서도, 내일이면 또다른 신제품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며칠 가지 않을 순간의 만족과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불만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이런 악순환은 언제 시작됐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존재하는 모든 분야가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돌아가고, 돈이 되지 않는 분야는 버려지고 퇴출되는 이명막근혜의 8년의 대한민국은 필연의 과정이었고,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조중동과 산업화 주역들이 그토록 주장하듯,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였고, 박정희는 압축성장의 지도자였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을까? 그래서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은 정말로 성공한 역사였을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덕산 2014.08.15 09:23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가지는 거라생각합니다.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래서 서로 늘 충동하는거 아닐까요? 여기서 충돌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사회의 순기능인데 이게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요즘처럼
    끔찍한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네요.

    • 늙은도령 2014.08.15 21:25 신고

      네, 부의 재분배를 통해 가면 기업도 성공하고 종업원도 성공하고 소비자인 국민들도 성공합니다.
      기업은 소비자가 없으면 돌아갈 수 없고, 다른 곳에서 일하는 기업들의 도움으로 받아야 합니다.
      기술과 지식은 얽혀있는 것이지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공생의 경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합니다.

  2. 참교육 2014.08.15 12:08 신고

    원인제공자는 자본주의 입니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는 인권도 자유돟 평등도 복지도 모두 꿈일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15 21:27 신고

      네, 자본주의에 인간의 심장과 영혼을 심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경제민주화입니다.
      박근혜는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여자입니다.
      나라를 아예 몇몇 친일 부역자와 기업 및 자본의 수중으로 넒겨주려고 합니다.
      하야나 탄핵이 불가능하다면 다음 정권을 탈환해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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