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 출연해 '선한 의지'에 관해 손석희와 열띤 설전을 벌인 안희정을 보면 철학적으로 설익은 언어를 쓰는 정치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안희정은 나름대로 자신의 정치철학을 키워왔다고 하지만, 그것을 적절한 언어로 풀어내기에는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분해, 검증, 비판'이라는 20세기의 지성과 대비되는 21세기의 지성을 '통섭'으로 들었지만, '선한 의지'를 풀어내기에는 '통섭'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정반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안희정이 '선한 의지'를 말한 이유는, 반드시 상대가 있기 마련인 정치에서 대화와 협치를 통해 최적의 합의에 도달하려면 상대에 대해 열린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그럴 때만이 정치의 본질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상당히 일반론적 얘기입니다. 정치던 무엇이던 상대를 의심하는 상태에서 대화가 진행되면 거기에 어떤 진정성이 있으며,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이명박이 '4대강공사'를 제안했을 때도 그것을 통해 (광범위한) 사익을 챙기고, 자신과 같은 종족이라 할 수 있는 토건족에게 엄청난 이익을 챙겨주려고 했다 해도, '4대강공사'를 무력화시키려면 그의 제안이 '선한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4대강공사'에 대해 이명박과 대화를 할 수 있고, 그럴 때만이 어떤 방법으로 목표한 바를 이루려는지 알 수 있고, 그것의 적절성을 따져 '4대강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도 마찬가지고요. 안희정이 말한 '통섭'도 이런 것입니다. 어떤 정책과 주장도 다 '선한 의지'에서 시작됐다고 인정할 때 그것들을 '토론과 합의'라는 정치적 과정에 끌여들일 수 있으며, 그럴 때만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최상의 합의(민주적 협치)'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그것이 곧 '정치적 차원의 통섭'이라는 것입니다. 20세기적 지성으로 출발하면 딴죽만 걸지 아무런 대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안희정의 주장으로 보입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포함돼 있고요. 그가 말한 '통섭'이라는 것은 어떤 상대라도, 그가 제시한 어떤 정책과 주장이라도 일단은 '선한 의지'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토론과 합의의 테이블'로 올려놓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나 자신의 논리나 진영논리에 빠져 극단적 대결만 난무할 뿐 '대화와 합의'라는 민주적 협치를 이끌어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 도지사를 해본 그의 경험인 것 같습니다. 





이명박의 녹색성장, 박근혜의 창조경제도 이어가겠다는 것도 이런 선한 의지, 즉 통섭의 발로입니다. 민주주의를 성선설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희정의 통섭은 최상의 정치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선한 의지'로 접근한다면 대화하지 못할 것도 없고, 상호간에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보다 완벽한 민주적 정치란 없을 것일진데, 필자가 걱정하는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극도로 세분화된 전문가들의 시대에는 모든 것들이 편협한 관점에서만 다뤄지고 반론이 허용되지 않는 바람에, 그만큼 세분화할 수 없는 사회적 차원에서는 리스크(위험사회)가 일반화된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 통섭입니다. 유대인 학살이 히틀러의 편집증적 광기에서 시작됐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총동원된 국가적 차원의 집단학살(현대성)이었다는 것을 밝힌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봐도 통섭적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줍니다. 



헌데 유대인 학살도 안희정의 관점에서 보면 '선한 의지'로 읽히는 점이 있습니다. 게르만 민족의 영광과 천년제국이라는 독일의 꿈을 실현하려면 유대인이 없어야 한다는 히틀러의 광기도 당시 독일과 프랑스, 폴란드 등의 유럽국가들 사이에서는 '선한 의지'로 포장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부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유대인 때문에 각국의 불만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던 것이 당시의 유럽이며, 이는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서도 자세히 다루어졌습니다.  



심지어 유럽의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것도 히틀러의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지식인(플라톤에서 연원한다)이라 보편적 동의는 얻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유대인 학살에서도 나름의 '선한 의지'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안희정이 '4대강공사'와 '미르·K스포츠재단'에서도 '선한 의지'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정확히는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박근혜의 창조경제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안희정의 통섭이 오류에 빠져있는 것은 부분적 사실을 가지고 보편적 진실을 도출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통섭이란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시간이 지나 증폭돼 미국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를 이해하는 것이지, 텍사스의 토네이도에서 어떤 나라의 어떤 나비의 날갯짓이 대기에 영향을 줘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특정화(극단적 세분화)해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명박의 '4대강공사'에서 녹색성장의 '선한 의지'를 찾거나 박근혜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서 창조경제의 '선한 의지'를 찾아내는 것이 (정치적) 통섭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정치적 통섭의 일반론이지만, 온갖 궤변으로 포장한 이명박의 '4대강공사'가 '선한 의지'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그래서 '악한 의지'에서 출발했기에 모든 보들을 철거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적 통섭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4대강공사'는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토건족의 이익(악한 의지)을 지구온난화를 완화시키는 녹색성장(선한 의지)으로 포장해낸 나쁜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거기에서 '선한 의지'를 찾을 필요도 없고, 찾아서도 안 됩니다. 안희정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것에 최소한이라고 해도 일종의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이기에 책임정치의 실종으로 귀결될 수 있으며, 마키아벨리적 통치술의 일종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은 결과로 말한다는 것이 가장 마키아벨리적인 것이며, '악한 의지'로 출발해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결과만 놓고 모든 것을 평가하면 민주주의는 필요없습니다. 대화와 토론, 협상과 타협, 합의와 협치도 필요없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그만인데 무엇 때문에 피곤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까? 안희정의 주장은 무조건 여소야대로 출발해야 하는 다음 정부의 고충(대연정을 제안했던 노무현의 고충이기도 하지만, 노무현은 그런 상황에서도 성공했다)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논리적 오류에 빠졌거나, 설익은 정치철학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안희정의 '선한 의지론'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그 자체의 추론만 놓고보면 어떤 모순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추론을 위한 전제를 구축하는데 너무 많은 오류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제대로 된 비판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정책과 주장도 부분적으로 보면 '선한 의지'로 포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안희정은 주장도 같은 식으로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통섭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것임에도. 





문재인이 안희정의 '선한 의지론'에 분노가 없기 때문에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그래서 적절했습니다. 부분적 사실로 정당성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것에도 책임을 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대강공사'로 이익을 본 사람들도 있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으로 재미를 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선한 의지'는 최상의 면죄부입니다. 박정희에게 '공칠과삼'을 준 것도 '선한 의지'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럴 경우 '5.16군사쿠데카'가 박근혜와 수구꼴통들이 그렇게도 주장하는 '구국의 결단'으로 승화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결과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면 '선한 의지'로 출발한 '나쁜 결과'와 '악한 의지'로 출발한 '좋은 결과' 중 책임져야 할 것은 전자(마키아벨리가 군주의 자질이라고 한 것)입니다. 좋은 정치는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청산대상과의 대연정을 '선한 의지'와 (정치적) 통섭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정의와 과정을 중시하는 민주주의는 어디에 위치해야 합니까? 이것이 제가 안희정 지사에게 묻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악한 의지'와 '선한 의지'의 경계는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판정합니까? 이것이 제가 안희정 지사에게 묻는 두 번째 질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잉어 2017.02.21 02:42

    안희정도 알면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20분간을 자기 홍보도 아닌 장황하고 무의미한 철학적 논쟁을 가지고 설득력 없는 눌변으로 때우고 들어가는 대통령 후보가 있을까요?
    정작 대통령 되는 것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준비도 안한것 같고요

    어차피 한정된 진보표를 두고 선명성 경쟁으로 같은 당의 신뢰하고 사랑하는 동지와는 제로섬 게임은 하고 싶지 않았을 테고
    외부표라도 붙잡아서 인지도는 올려야겠고 그런 스탠스 같네요.
    야당 지지자들 혀차는 소리만 골라서 하는 의도가 노골적입니다.
    본인의 본심과는 다른 주장을 계속하다보니 앞뒤가 안맞고 두리뭉실해지고 그런 것 같아요.

    안철수나 바른당이 가져갔을지도 모르는 표를 안희정이 선점한 덕분에 민주당 중심의(문재인) 정권 교체는 보다 확실해졌는데
    안희정 개인으로서는 차차기에 이 실망한 지지자들을 어떻게 포섭하느냐가 관건이겠네요.

    뉴스룸 후 라이브 인터뷰에서 안희정의 관점을 선해하면 이런 것 같습니다.

    (꼴통과 악인도 똑같이 1표를 행사하는)민주주의에서 현실적으로 너무 큰것을 바라지 말자. 실망할 뿐이다.
    유권자의 수준만큼(전체 유권자)의 정치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맥시멈이다.
    (노무현처럼)뛰어난 지도자가 나와도 영혼없는 공무원, 타락한 언론과 정치인들을 데리고 더구나 과반에도 못 미치는 의석수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GH처럼 민주주의를 무시한다면 가능하겠지만)
    나는 기존과는 다르게 유권자의 수준이 정해주는 국회의석수에 따라 목표를 달리 정하고 조금씩 성과를 내보겠다.
    여러분이 연정에 치를 떨고 적폐청산을 원하고 새누리당을 박살내고 싶으면 3년뒤 총선에서 반드시 압도적으로 저들을 박살내 주셔야합니다
    그래야 문재인 대통령이 임무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21 03:00 신고

      그렇다면 안희정은 더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프레임전쟁>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다룬 인지심리학적 정치에 대한 공부가 특히 필요하고요.
      안희정은 자신이 담을 수 없는 부분까지 얘기하려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노무현 같은 정치인은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다시 나오기 힘든데 안희정은 노무현을 뛰어넘겠다고 했으니 초조했겠지요.
      노무현을 뛰어넘을 필요가 없습니다.
      노무현 만큼만 하겠다고 해도 충분합니다.
      제가 안희정의 측근이라면 <시민정치론>을 읽어보라고 할 것입니다.
      그는 이재명처럼 촛불집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재인은 촛불집회를 따라가려고 하는데 안희정과 이재명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이용을 목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의 워딩은 그런 식으로 결론납니다.
      정확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는데 피상적 이해에 머물러 있습니다.

      3년 후의 일을 지금 고민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의 변화를 3년이나 내다보는 것은 미친짓입니다.
      안희정은 차차기를 노리고 나왔다가 너무 지지율이 높아지자 길을 잃었습니다.
      빨리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지금은 대연정 같은 것으로 중도보수에 어필할 시기가 아닙니다.

    • mangrove 2017.02.21 09:37

      안희정이라 두둔하시는 건가요?

      팩트는 팩트 아닌가요?

      누구에는 선해로 바라보고 누구에게는 포퓰리즘으로 바라 보는 근거는 요?

  2. 푸른소나무 2017.02.21 07:34

    도령님 글 잘 읽었습니다
    어제 jtbc 뉴스룸 방송을 보면서 안지사도 (이재명 시장처럼) 상승하던 지지율에 고무되었다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의 발언 의도는 모르는건 아닙니다만, 현재의 상황을 만든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안지사의 생각을 선뜻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저는 어제의 방송에서 손석희 앵커가 안 지사의 발언에 말꼬리를 계속 잡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안지사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질문한 것일 수도 있지만) 흡사 문대표가 작년말(11월)에 뉴스룸에 나왔을 때 조기대선에 관해 반복적으로 질문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같은 질문의 반복으로 인해 안지사의 발언도 점점 꼬인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안지사의 답변을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다른 주제를 다뤄보지 못한 점이 아쉬웠네요

    • 늙은도령 2017.02.21 10:57 신고

      문재인에게 물었을 때의 손석희는 문재인의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재인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역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안희정에게 물었을 때의 손석희는 안희정의 발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희정이 벅벅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안희정은 준비한 것에 비해 너무나 많은 지지가 나오자 한껏 고무됐는데, 그렇다 보니 님의 지적처럼 이재명의 실수를 되풀이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검증을 받았고,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안다면 문재인의 지지율은 너무 낮은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무현 죽이기의 복사판인 문재인 죽이기의 위력은 그렇게 나타납니다.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 문재인의 지지율은 급격히 오를 가능성이 높지만, 그때까지 마음을 조금이라도 졸여함은 제 건강에 너무 해롭네요.

      에고... 제가 자초한 것이니....
      그리고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것의 대가이기도 하니.....



  3. 耽讀 2017.02.21 08:06 신고

    안희정. 참 아쉽습니다.
    너무 단정하는 것 같지만, 지웁니다.
    다시 마음을 열기는 너무 가버렸습니다.
    이 정도면 설득과 토론이 힘듭니다.
    때론 함께 가는 것보다 빨리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유익할 때도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21 11:03 신고

      안희정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 직전입니다.
      몇 발작만 더 나가면 끝입니다.

  4. mangrove 2017.02.21 09:35

    우리 사회가 개인적 관념적 개똥철학을 수용할 만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물어 뜯기고 죽임을 당하고 나라는 제구실을 못하는 이 시점에 해야할 개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상호가 발언했던 국회안의 언어라는 것의 존재에 대해서 점점 심증이 굳어 갑니다. 노통을 계승한다고 하면서 그런 망발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지, 얼마나 국민이 우습게 보이면, 말도 안되는 논리를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지 이미 또 한 놈 제껴져서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소통은 기본적으로 보편적 진리와 가치관에 의해서 출발합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독단과 독선에 빠져 있다면, 이미 소통은 불가합니다. 우리는 그 실체를 지난 10년간 보고 겪어 왔습니다. 자칭 민주주의 인사라는 작자가 하는 액션이 보편적 진리와 가치관을 무시한채 가르치려고 든다면 그건 충분히 위험한 발상 입니다. 독재의 싹수가 보이는 겁니다.

    안희정에게 묻고 싶습니다. 집안에 강도가 칼을 들고 들어와도 일단 선의로 봐야 하는지.....

    역겨운 변절자 어서 치워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21 11:05 신고

      문재인 죽이기의 반작용이 안희정에게 플러스로 작용했는데, 그것에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안희정은 부산팀이 아닌 금강팀으로 노무현이 정치적 동지였지만, 세월이 둘간의 거리를 너무 벌렸나 봅니다.
      아니면 안희정이 지지율 상승에 너무 취한 것일 수도 있고요.

  5. 필리버스터 2017.02.21 09:54

    우와....솔직히 다 이해하는건 아니지만, 이 주제에 대해 이보다 멋진 글이 있을까 생각이 들정도로 읽으면서 감탄했습니다.

    안희정은 21세기 철학으로 두리뭉실 넘어가려고 했지만, 어제 손석희에 이어 이 글에 담긴 논리로 뭔가 스스로 감추고싶었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낸 느낌이군요.

    • 늙은도령 2017.02.21 11:06 신고

      안희정은 선한 의지와 통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손석희의 질문에 횡성수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자신의 그릇보다 너무 나가면 반드시 실족하게 돼있습니다.
      지지율 상승이 대통령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한편으로는 독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7.02.21 10:47 신고

    저도 어제 이 부분을 잠깐 보았는데 논리가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득하는 지식도 부족해 보이더군요

    • 늙은도령 2017.02.21 11:11 신고

      자신의 그릇을 정확히 알 때 뛰어난 정치인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는데, 안희정은 그릇의 크기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합니다.
      준비도 많이 부족하고요.
      지지율 폭등이 불러온 부작용입니다.

  7. merryjanet 2017.02.21 12:11

    어제 뉴스 시간이 참 아깝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저 뿐이 아니었을거예요.
    '선의'니 '통섭'이니 하는 말로 안희정은 뭘 얻으려했을까요?
    안희정 지지자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결코 현명하지 못한 단점만을 드러낸 어제 인터뷰였고,
    대선후보 검증을 위한 것이라서 손석희 인터뷰어를 비난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안희정은 좌측을 더 확보할 능력은 안되니까 우로우로만 가다가 지지율이 오르니까 분별력을 잃었다 할까...
    아무튼 경선은 염두에 두지 못한 참으로 어리석은 후보란 점만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심하게 욕하자면, 안희정은 자신의 개똥철학으로 자신보다 어리석지 않은 국민들을, 특히나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국민들을 더 화나게 만들었어요.
    어대문!!! ABM!!! 이게 정답입니다 ^^

    • 늙은도령 2017.02.21 12:22 신고

      촛불시민을 가르치려 하지 말아야 하는데 안희정은 정반대로 나갔습니다.
      안희정의 즉문즉답은 안철수의 즉문즉답을 떠올립니다.

      글에서도 밝혔듯이 안희정은 대연정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는 생각에 선의와 통섭을 들고나온 것인데, 그것이 장고 끝에 악수였던 것이지요.
      김대중과 노무현을 뛰어넘겠다는 것을 대연정으로 풀어냈는데, 그 자체가 판단착오이고요.
      안희정이 촛불집회 초반에 일정 거리를 두었던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검증이란 회고적이어야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과정이 검증 수단 중 으뜸이며, 그런 면에서 인터넷은 최고의 보고이지요.

  8. 과유불급 2017.02.21 12:28

    어제 뉴스룸의 안지사는 준비된 대권 도전자의 자세가 아닌 그냥 철학자로서의 질의답변을 준비해온 분으로 보였습니다. 실망이 큽니다.
    좀 더 정치적 수양을 쌓은 후 다음을 봤으면 했는데 참으로 아쉽네요. 결국 내공이 쌓이지 않은 자기수양은 바로 밑천이 들어나 보이는 법입니다.
    안지사가 느낀 지지율 폭등? 별것 아닙니다. 그런 숫자놀음에 고무되었다면 진짜 자기수양이 더 필요하겠죠. 이번 부산강의도 단순히 자기 정치소견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멀리 갔습니다. 안지사 정치생명에 영향을 줄만큼 상당한 내상을 입은것은 말할것도 없구요.
    적폐대상과의 대연정도 모자라 선의를 가지고 나라를 같이 이끌어 가자?
    피의자와 피해자를 선악 구분하지 말고 서로 대화후 화해해서 합의보자?
    대화 이전 갑과 을을 따지게 되면 너무 소모적이니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된다?
    그러니 이명박그네의 4대강과 미르재단도 선의로 했을테니 순수하게 받아드리면 된다?
    촛불민심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건 저혼자만의 생각인가요. 안지사 개인적 가치관도 문제이지만 국민을 대하는 진솔함은 더더욱 멀게만 느껴졌던
    뉴스룸 시청소감입니다.

    • 늙은도령 2017.02.21 12:53 신고

      안희정이 말한 선한 의지는 악한 의지와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것을 빨리 이해해야 할 텐데,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너무 멀리 가버렸네요.

      분노가 없으면 정의도 없고, 정의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지도자의 분노가 시민의 분노와 달라야 한다면 그때부터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구별하는 선으로 작용합니다.
      촛불집회는 분노에서 시작됐지만 어떤 정치인도 보여주지 못한 성숙함으로 가득합니다.

      안희정의 가장 큰 문제는 촛불집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재명도 마찬가지였는데, 최근에 들어 이재명이 제자리를 찾아가나 싶더니 안희정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려 하네요.
      준비된 지도자라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인데, 안희정은 인권변호사 노무현이 준비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결정적 순간을 보지 못했고, 그에 반해 문재인은 곁에서 지켜봤다는 차이가 이렇게 커져버렸습니다.

  9. ㅅㅌㅂ 2017.02.21 13:13 신고

    정치학과 철학적인면을 제대로 공부한 뒤에 안지사 발언과 도령의 글을 다시봐야지 싶습니다. 하지만 안희정에 대한 실망감이 지금은 아픕니다.

    • 늙은도령 2017.02.21 14:14 신고

      그렇게 여물어지는 것이지요.
      안희정에게도 이런 혹독한 검증이 나쁠 것은 없습니다.
      안희정이 노무현에 버금가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면 이번 검증에서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부디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안희정이 사과를 했다는 것은 나쁜 징조는 아니고요.

  10. 선달후손 2017.02.21 15:26

    정치가가 철학을 얘기하는건 정치판에사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노력중 하나인것 같습니다. 일종의 행동에 기반한 철학이고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입장에허서 보면 설익은건 당연합니다. 가장 중여한건 이세상 모든사람들도 잠시 철학적 사유를 할때를 제외하곤 오류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철학자도 가정에서 와이프와 자식들에게 매순간 모순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지요?
    그렇다면 정치인으로서 안희정은 다른 정치인들 보다 한발 더 진일보한 것일까요, 아닐까요?
    행동의 진실성이 답을 보여주겠죠..
    진실한 지도자와 거대한 사기군은 서로 등지고 맏닿아 있네요..

    • 늙은도령 2017.02.21 21:12 신고

      정치철학이라는 것은 그가 말하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에 관한 철학적 사고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정치철학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말하는 신념과 가치 지향과 비슷한 것입니다.

      안희정의 문제는 선한 의지를 적용할 수 없는 것에 적용했다는 것이 문제로 작용했습니다.
      안희정 식으로 가면 누구와도, 모든 것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것은 임기 5년의 지도자로서 소화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다뤄야 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선한 의지가 아니라 직관이나 분석, 검증 등을 먼저 실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하고, 모든 것을 선의로 받아들이면 어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4대강공사 등에 면죄부를 발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완전히 개판이 됩니다.

  11. 참교육 2017.02.22 08:35 신고

    말장난이 심하네요. 언어란 의사의 소통입니다. ㅅ통되지 않은 언어는 말이 아니지요.
    먹물근성 아니랄까봐 말장난질이이나 하다니... 내 말 못알아듯는 무식한 놈은 그냥 날 존경스러워 하라는 뜻 아닌기요?
    사람됩됨이조차 틀려먹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22 09:14 신고

      그런 면이 강합니다.
      자꾸 가르치려 듭니다.
      그건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12. mangrove 2017.02.22 09:51

    안희정은 오직 권력에 대한 욕심 밖에 없습니다. 안철수, 반기문, 손학규, 정동영 이런 부류와 다르지 않습니다.

    http://news1.kr/articles/?2916998

    썩을 대로 썩어 있었군요.

  13. 글쓴이 2017.02.24 03:48

    글 잘 읽었습니다. 통섭이 생각보다복잡한 개념이군요.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안희정 지사가 뉴스룸에서도 해명했지만 '선한 의지'란 말 자체에 집중해서 보지 말아달라며 중요한 건 상대의 '생각' 자체에는 선악의 구분을 두지 말자고 제안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생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자유니까요. 그런데 미리 선을 그어서 너는 나쁜 놈 착한놈 편가르기 식 사고에 대한 경계를 제시한 것 아닐까요? 참고로 강연한 곳이 부산지역이였고 박근혜대통령에 한표를 행사한 사람들이 꽤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박근혜 대통령도 '생각'자체는 본인 기준에서 선의일지 모른다. 그래서 잘 해보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법을 지키지않은 점이 문제가 되어 법적처벌을 받는다는 요지로 말했습니다 . 이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혹여나 자신들이 박근혜 세력이 나쁜일을 하게 만든 원인제공의 동조자가 된 것은 아닐까하는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안지사가 주장하는 의사소통의 원리로는 박근혜대통령이 생각 자체는 선의라고 주장하니 일단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행동에 있어서 법적절차를 어기고 국가재산을 개인 사유화한 행태가 드러나기에 그건 국민을 선의로 포장하여 속인 것입니다. 결국 본인이 선의라는 말로 국민을 속인 것이니 박근혜를 뽑은 유권자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이 범죄 행위를 하지 않을 지도자, 정직하고 신뢰가는 지도자를 선출하면 되는 겁니다. 안지사는 기존에 편가르기식, 이븐법적 사고로 세력을 불리는 정치가를 고발하고 국민의 전체이익에 부합하도록 진실을 말하고 행동하는 인물로서 자신의 지지를 호소해왔습니다. 보수진영이 가득한 충청남도에서 사랑받는 도지사 1위를 다년 간 차지한 것은 그가 민주주의 지도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전 오히려 이 '선의'발언 사건이 미디어와 여론의 자극적인 짜집기식 생태에 기인한 하나의 형태로 보입니다. 마치 부분으로 전체를 다 안다고 믿게끔 국민에게 진실을 호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제대로된 후보검증은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알아봐야합니다. 대중미디어에 본 단편적인 모습을 전부로 믿는 태도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24 16:19 신고

      제가 좀더 냉정하게 썼다면 안희정의 발언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밝힐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선한 의지로 포장된 것에 의해 거대한 피해를 입어왔습니다.
      핵무기를 만들 때도 선한 의지가 작용했고, 핵발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도 선한 부분을 찾고자 하면 찾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철학적인 토론이라면 모를까, 정치는 국민 전체가 포함된 것입니다.
      모두가 선의라면 정치가 필요없지요.
      선거도 필요없고, 민주주의도 필요없지요.
      선의라는 것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말하는 것에는 선의란 없습니다.
      그것은 교언영색이지요.
      안희정은 정치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말하면서 어떻게든 합리화하려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바구지 못합니다.
      법과 제도에 문제가 되지 않게 한 것이 4대강공사입니다.
      법을 바꾸었고 제도를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했지요.
      안희정 식이면 이것에 대해 어떤 단죄가 가능하지요?
      선한 의지로 포장하면 모든 게 용납됩니다.
      그래서 철학에서나 가능한 얘기를 안희정은 하고 있는 것이고, 통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통합은 자연과학, 공학 등의 전문적 세분화가 인류를 멸종의 위기로 내모는 것을 막고자 인문학과 함께 묶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정치에서의 통섭이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것이겠지만ㅡ정치에서의 통섭이 가능한 것인지 따져야 하겠지만ㅡ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것은 적절한 타협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면 통섭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희정은 어설픈 것이고요.
      애당초 통섭이 안 되는 것을 통섭으로 접근하니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지요.

    • 오잉??? 2017.03.13 14:53

      오 역시 이번에도 마지막 덧글이 훨씬 더 좋군요. 도령님 ㅋㅋ
      선한의지문제는 문재인 한마디로 정의되죠. 분노가 없으므로, 정의를 실현할수 없다./ 부처님이면 몰라도 인간세계는 불가능 합니다...
      선한의지란 성선설과 같은 주관적인 환상과 같은것입니다. / 굳이 이상론을 펴고 싶으면 선한의지말고 다름이라고 해야 합니다...박정희가 선한게 아니라 우리와 다른관점이다로.../ 그리고 우린 선에도 다름에도 악이 분명히 있음을 압니다. / 우병우도 악한사람이 아닙니다... 학창시절 정직한 검사를 3년내내 꿈꾸던 사람이 마누라와 처가를 잘못만난 인연때문에 우리와 많이 달라졌을뿐이지요......


필자의 조카는 유엔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반기문을 최고로 존경했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의 유럽법인장 발령과 함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올해에는 영국에서 복지정책학을 전공하게 된 조카는 독일과 영국 및 유럽국가들이 반기문을 어떻게 보는지 알게 되고, 그 이유까지 이해하게 되면서 생각이 180도 달려졌습니다. 조카는 반기문이 대통령에 출마하면 귀국해 1인시위라도 하겠답니다. 





조카는 미국의 보수언론까지 포함해 전 세계 유수의 언론들과 학자들이 반기문을 '역사상 최악의 사무총장', '보이지 않는 사람' 등으로 비판하는 이유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이지요. 조카는 UN의 사무총장으로 반기문이 한 일들과 각종 연설문들을 살펴보면,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양성평등과 소수자 권리에 소극적이거나 전근대적인 행태를 드러낸 반기문(이 때문에 북한 출신이라는 오해까지 받았다)을 볼 수 있다며, 한때나마 그를 존경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자책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반기문의 정체를 파악해가면서 진보적 자유주의에 눈을 뜬 조카는 평생의 전공으로 복지정책학을 선택했습니다. 최근에는 필자의 권유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보다 더 많은 시대적 함의를 지닌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까지 독파했습니다. 필자는 조카에게 UN과 국제기구의 문제점들을 이해하려면 네그리와 하트 공저의 《제국》과 《다중》, 피터의 《불경한 삼위일체》, 맥마이클의 《거대한 역설》 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이 책들을 읽으면 거대자본과 투기금융, 신자유주의, 일방적 세계화, 기존의 열강 등에 봉사하고 그들의 이익을 챙겨주는 UN의 허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며, 역대 사무총장 중에서 반기문이 이런 역할에 가장 충실했음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UN의 산하기구 몇 개를 빼면 UN은 설립의 목적과 다른 일들을 주로 해왔으며, 이 때문에 UN의 민주적 개혁이 반기문에게 주어진 책무였음에도 결과가 형편없어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으로 평가됨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조카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가장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며 친자본적인 외교부 출신의 반기문이 '기름장어'라고 회자되는 이유는 '미국의 꼭두각시 역할'에 충실했으면서도(스노든 비판이 대표적), 이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교관료 출신의 공통점인 '이어령비어령'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처럼 책임지지 않는 지도자의 전형입니다. UN사무총장으로서 반기문은 각국의 이해를 반영하고 조정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했음에도, UN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미국과 (미국의 국방비를 대납해주는) 일본처럼 UN 대주주의 이익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리더십이 형편없는 그는 UN의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미국과 일본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지 않고, 상임이사국의 전횡을 견제해야 할 사무총장으로서 쓴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분담금이나 기부금을 많이 내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아동인권박해국에서 빼주는 등 UN의 정신을 망각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자신의 자리지키기에만 연연했던 인물입니다. 이것 때문에 반기문에게 요구됐던 시대적 과제였던 UN개혁에도 실패했습니다. 



반기문이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으로 비판받는 것도 이 때문인데, 그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이르러서도 이리재고 저리재는 간보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도 전문관료 출신의 한계를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계 유수의 언론과 학자들의 공통된 분석에 따르면 강자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입국들의 뜻을 모으기보다는 적정선에서 타협(냉정하게 말하면 굴종)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반기문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통적인 관료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이며 반인권적 성향이 강한 인물입니다. 이 때문에 UN 직원들은 반기문의 눈치를 봤으며, 밖으로는 열강들의 눈치까지 봐야 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어서 소통을 불편해 합니다. 자본과 시장에 친화적이고 위계서열을 중시하며, 권력지향적이면서도 책임지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대한민국이 박정희 것인양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딸인 박근혜가 나라를 말아먹어도 용서해야 한다는 콘크리트지지층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는 다 가지고 있는 최고로 성공한 외교관입니다. 



반기문은 외국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순방하며 적극적인 유세를 해주었기 때문에 UN사무총장에 올랐음에도, 멍청하고 한심했던 정동영과 조중동의 대국민사기질 때문에 이명박이 대통령에 오르고, 취임 이후에는 권력을 총동원해 노무현 죽이기에 나서는 바람에 봉하마을도 방문하지 않은 비겁하고 패륜적인 자입니다. 그가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오른다면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세력을 청산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부패한 기득권세력이 판을 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촛불의 꿈은 산산조작나는 것을 넘어 탄압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반기문은 UN사무총장으로서 공적 활동을 끝내는 것이 그에게도 좋고 국민에게도 좋고 대한민국에도 좋습니다. 내각제 개헌(기득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을 고리로 노역의 권력욕을 탐한다면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반기문은 대한민국이 낳은 UN사무총장으로 기록되면 최상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족함을 아는 자가 군자라고 했고요. 정치철학과 시대정신이 확고하며, 촛불의 명령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인이 아니라면 다음 대통령으로서는 자격미달이자, 이명박근혜 정부의 연장에 불과합니다. 불평등과 차별이 민주주의마저 고사시켜버린 현실을 감안할 때, 다음 대통령은 무조건 진보적이고 좌파적이되, 반권위주의적이어야 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전 세계의 반응은 독재자의 딸을 선택한 대한민국 유권자들을 비판했고, 조롱까지 했습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알려졌을 때,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을 때, 국정교과서로 회귀했을 때, 위안부협상에 합의했을 때 그리고 박근혜 게이트가 폭로됐을 때 전 세계의 반응은 똑같았습니다,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자업자득이라고. 박근혜에 못지않을 정도로 나쁜 평가를 받고 있는 반기문까지 대통령으로 뽑으면… 아,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최소한 기본이라도 합시다. 1020세대와 미래세대에 부끄러운 일, 그만 좀 합시다. 제발!!!  




P.S. 유시민은, 고마움도 모르는 자라고 욕을 먹고 있는 반기문이 이명박의 정치검찰에 박연차로부터 23만달러를 받은 사실이 포착되는 바람에 노무현의 봉하마을을 방문하지 못했다고 변호해주었는데, 이 글은 그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23만달러 받은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기에 반기문이 나쁜 놈은 아니라는 유시민의 변호는 그 부분에서만 유효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6.12.29 22:12 신고

    정말 그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히 우려되는 총장"입니다~

    자업자득이죠. 아마 검증단계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 굉장히 저평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6.12.29 22:20 신고

      검증단계가 짧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박근혜 탄핵의 최대수혜자가 반기문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기대선 때문에 냉혹한 검증을 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해찬과 안희정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12.30 08:58 신고

    욕망의 화신입니다
    그나마 그자리에서 물러난후 초야에 묻혀 살았다면 더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뭘 더 해 보겠다고..쯪쯔
    욕심이 많은 사람..절대로 정치를 하면 안됩니다
    이번에는 국민들이 정말 제대로 된 판단을 햇으면 좋겠네요

    • 늙은도령 2016.12.30 16:38 신고

      기성세대와 노인들이 좋아하는 타입입니다.
      보수를 대신해 결집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3. 참교육 2016.12.30 17:15 신고

    이런 사람을 모르고 있는 유권자들... 박근혜 탄핵 한번으로 끝나야지 또 탄핵을 하게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명박이나 박근혜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권자들이 깨어나지 못하는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담합니다.

    • 늙은도령 2016.12.30 22:42 신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지요.
      최대한 많이 투표해 정권을 교체하면 됩니다.
      올해 수고하셨습니다.

  4. mangrove 2017.01.02 09:34

    반기문 = 이승만 + 이명박 + 박근혜.
    이름 하여 트리플 반



기본소득제를 반대하는 박근혜와 새누리당, 조중동 등의 글을 읽어보면 기본소득제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1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로 불리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최신작 『불평등의 대가』에서도 잠깐 언급된 기본소득(심지어 신자유주의의 대부이자 시카고학파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도 《자본주의와 자유》에 기본소득제에 찬성하는 내용을 실었다)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1839~1897)가 『진보와 빈곤: 부의 증진에 따른 산업불황과 빈곤 증가의 원인에 대한 조사(1879』에서 정립한 개념이다.

 

 



경제학 서적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진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을 비롯해 경제학사와 대공황 같은 경제위기를 다룬 책들을 보면, 헨리 조지가 논리의 근거를 제공한 기본소득제에 대한 개념은 반드시 나온다. 모든 불평등의 기원이자, 불로소득의 원천인 토지소유의 문제를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고전파경제학의 오류들을 파헤힌 후에)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한 방안으로 내세운 것이 기본소득제의 기원이 됐다.

 

 

▲ 기본소득의 개념

 

신자유주의를 이끌었던 시카고학파의 시조격인 프랑크 나이트는 개인의 노력에 대한 결과라는 차원에서 죽을 때까지 세금을 유보하지만, 부의 대물림이 기회의 평등을 무력화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동안 미루었던 세금을 상속의 시기에 맞춰 일괄 과세하는 상속세를 가장 완벽한 세금이라 했다. 이렇게 몇 세대만 상속이 이루어지면 상속되는 액수는 제로에 이르게 되니 이보다 완벽한 세금이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국민에게 제공되는 기본소득은, 태생적인 이유로 토지를 상속받지 못하거나, 사막이나 폐허 같은 곳에서 태어나거나, 건강과 장애 등의 이유로 노동의 기회가 원천차단된 사람들을 위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토지의 가격상승에 세금을 부과해 충당된다. 지가상승은 소유자 인근의 토지가 개간되거나,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거나, 그에 따라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지가상승은 소유자에게는 완전한 불로소득이어서 무노동무임금에 의거해 100% 회수해도 경제정의의 실현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이처럼 기본소득제는 탄생의 조건을 정할 수 없는 개인이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불평등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가상승이란 불로소득을 거둬들여서 탄생의 불리함을 만회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토지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기에 비록 주인이 있다고 해도 똑같은 이익의 원천이 돼야 하는데, 기본소득제는 이것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로버트 오언(축구선수 오언이 아니랍니다)도 토지를 독점한 지주들이 노동도 하지 않은 채 불로소득을 얻는 것이 노동착취의 근본이며 이것이 쌓여 빈곤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단지 토지를 소유했다는 이유로 자손대대 불로소득을 챙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고 계급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토지의 공유화를 통해 이런 부정의를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들이 노동자의 잉여노동이 창출한 부를 독점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동일한 문제의식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의 독점이 불평등의 핵심원인이라면, 사회민주주의의 경제학에서는 토지의 독점이 불평등의 핵심원인이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원천인 사회경제적 평등은 부와 기회를 독점한 기득권에 저항하며 정립된 개념이자,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적극적 참여의 결과다.





▲ 개발과 성장의 역설

 

맥마이클이 『거대한 역설』에서 던진 질문,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는 개발과 성장의 이익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그 피해는 절대다수에게 전가되는 구조적 부정의, 사방이 막힌 벽으로서의 자유, 1달러1표가 아닌 1인1표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타자와의 공존과 상생이라는 사회경제적 평등, ‘무노동 무임금’이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불평등의 원천에 대한 고찰에서 나왔다. 

 

 

이는 헨리 조지에서 마르크스와 폴라니를 거쳐 스티글리츠와 피케티로 이어진 성찰로, 인류는 개발의 속도와 규모를 늘려갈수록,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지식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돼 진입 장벽이 높아질수록, 일방적인 세계화가 부국과 빈국의 차이를 벌릴수록, 약자의 평등보다 강자의 자유에 집중할수록,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불평등은 심화됐다. 정치는 이익집단과 엘리트의 전가보도로 전락했으며, 이런 불의와 부정의가 만연하면서 투표율이 낮아졌고, 이는 민주주의를 과두정치와 세습자본주의로 대체시키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잘 나가던 시절의 카지노자본주의(투기금융산업)에서만 작동했던 낙수효과와 신자유주의적 승자독식이 신앙처럼 받아들여짐에 따라 공정한 평등을 이루는 정의와 부의 재분배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마침내 상위 1%의 부가 하위 99%의 부를 모두 합친 것도 2배나 많은 사상 초유의 불평등으로 귀결됐다.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2개의 계급만 존재하는 최악의 세상이 도래했다. 부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는 교육은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차별과 세습의 방어막으로 작용했다.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대학등록금이 높아질수록 2계급 사이의 간격은 안드로메다 만큼 멀어졌으며, 능력사회의 도래라는 지구적 차원의 지적사기는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고, 이들을 구제하는 보편적 복지가 무임승차로 오인되게 만들었다. 불평등이 늘어날수록 각자도생의 노예들이 급증했고, 이에 따라 노동자의 권익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인 노조가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고용은 너무나 불안해졌으며, 근론자의 인권과 삶의 질은 무한경쟁과 기업논리 앞에 무력화됐다.

 

 

그 결과 인류 최초로 상위 1%에 속하는 부자들은 넘쳐나는 돈을 관리하는 것도 힘들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는 최고의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는 것에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먹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것으로 인간의 본능마저 역행하는 일들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 있기 때문에 하루 2달러 이하의 빈곤에서 허덕이는 30억 명은 기본적인 생존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 기본소득의 부활

 

소위 1대 99 사회의 등장은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됐다. 바로 철학이나 종교, 윤리와 도덕, 교육과 상식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결과의 불평등과 승자독식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타락시키고 불평등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 때문에 잡초가 무성한 헨리 조지의 무덤에서 완전히 폐기되었던 기본소득제가 극적으로 부활하는 기념비적인 기적이 일어났다.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위스, 독일 같은 보편적 복지를 실시하는 나라에서조차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때문에 각종 불평등이 갈수록 강화되고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자, 입도 뻥끗할 수 없었던 전설 속의 기본소득제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극도로 벌어진 불평등과 차별을 줄임과 동시에, 장기적인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소비를 늘리기 위해 기본소득제가 부활한 것이고, 핀란드는 모든 국민에게 매달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경제규모가 수만 수십만 배 늘었지만, 그 반대쪽에서는 빈곤에 허덕이는 30억 명이 죽음과 별로 다르지 않은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가고 있다. 이런 극도의 모순과 부정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려면 모든 이에게 매달 일정액을 주는 기본소득제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이 공존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기본소득의 개념을 정립한 것이 사탄의 맷돌로 불리는 신자유주의의 폭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재명과 박원순 시장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파시즘적 협박과 보복조치에도 불구하고 강행하고 있는 청년배당의 실험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개인이 상사와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지킬 수 있는 자유의 원천으로서의 부를 말하는 fuck your money도 기본소득제가 추구하는 부의 재분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청년배당으로 물꼬를 튼 기본소득제는 포퓰리즘도 아니고, 좌우 이념의 산물도 아니며, 경제정의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아영 2016.02.11 06:01

    맞는 말 입니다. 기본 소득제가 최소한의 노동력을 보존해주는 수준인데도 터무니 없는 수준의 최저생계비 기준을 초과한다며 찌라시들이 비판을 합니다. 자신들의 기사에는 짜장면집 간장종지 안주는 기사나 써대면서요. 최저생계비가 터무니 없이 낮다는 것을 저는 이번에서야 알았습니다. 간장종지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지면과 시선을 조금이라도 유아적 관점에서 나와 돌아볼 최소한의 철학이 있었다면 이런 큰 아이러니를 보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로봇이 기사를 써도 저런 수준은 안될 것 같아요. 젊은 기자들이 그런 데스크밑에서 매일 피눈물 흘릴것이 눈에 선합니다.

    • 늙은도령 2016.03.07 10:11 신고

      네, 기본소득제는 좌우가 모두 찬성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탈출하려면 기본소득 외에는 뚜렷한 답이 없습니다.
      또한 경제적 약자인 청년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져야 합니다.
      소수의 무임승차자 같은 것에 전체를 비판하는 논리는 최악입니다.
      거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
      어는 제도나 정책이나 무임승차자는 존재하니까요.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프레임전쟁》《폴리티칼 마인드》를 인용하지 않는다 해도 정치철학에는 중도라는 것이 없다. 공적영역과 공적이익을 다루는 정치에 중도라는 것이 있다면 모든 사회적 갈등과 이해 충돌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사적영역이 공적영역과 일치하고, 이에 따라 사적이익과 공적이익이 동일할 때만이 중도(중용이 아니다)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상정할 수 있는 세상이란 단 하나밖에 없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의 결론(제3권)에서 도출한 '자유의 왕국'이다. 자본주의가 마지막에 이르면 도달하게 된다는 '자유의 왕국'은 노동생산성이 극단에 이른 세상을 말하는데, 이럴 경우 투입 대비 산출이 동일하기 때문에 독점을 위한 모든 경쟁이 사라진다. 침해불가능한 사유재산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주장하는 자유방임 시장경제와 정반대에 위치하는 이런 세상에선 결과의 평등을 담당할 최소한의 행정조직만 필요할 뿐 갈등의 조정자인 정치의 역할이란 필요없다자유방임과 일맥상통하는 무위자연(노장사상의 핵심)의 세상에도 최소한의 행정조직이 필요할 뿐 정치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갈등을 유발하는 공사의 구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결과의 평등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한 ㅡ 인간의 탐욕과 자유시장의 결함 때문에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가 도래하지 않는 한 중도란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서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좌와 우가 존재하는 것이지, 좌우가 사라진 완전한 중간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기존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인정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안철수가 이분법적 사고를 배격하고,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중도를 실현하겠다는 것은 정치의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며, 평생을 기득권으로 살아온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숨김으로써 대통령에 오르기 위한 사탕발림에 다름 아니다. 그의 멘토인 한상진 전 교수가 야당체제를 깨뜨리기 위해 새누리당이 아닌 새정치민주연합을 해체해야 야권의 단일후보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동일선상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발언이다.



안철수가 '킹메이커'로 알려진 김한길과 손을 잡은 것도, 조중동의 프레임인 친노 패권주의를 들먹이며 자신의 최대 경쟁자인 문재인 대표를 끊임없이 흔든 것도, 이것이 불가능해지자 야당의 분열상을 극대화시킨 후 미련없이 떠난 것도, 호남을 볼모로 정치도박에 들어간 것도, 이명박의 사람들과 노욕에 물든 동교동계를 받아들인 것도 사전에 계획된 절차에 불과하다. 정치가 아닌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이익을 거두면 그만이다. 



1대 99사회, 세습자본주의, 헬조선은 정치의 역할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승자와 강자의 독점을 가능하게 만든 신자유주의 통치술(이명박근혜의 공통점)의 결과다. 얼핏 보면 '제3의 길'로 포장되기 일쑤인 중도란 신자유주의가 가장 좋아하는 사이비 정치철학이며,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줄여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진보좌파의 가치마저 무력화시킨 주범이다. 



그 결과가 작금의 대한민국이며, 용산참사이고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자살이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세월호참사이고 야만공권력에 쓰러진 백남기씨이다. 안철수 신당이 실패해야 하는 이유는 이명박근혜 8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회적 살인의 책임을 묻기 위함이며, 안철수가 외면한 사건들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안철수에게서 중도의 가면을 벗기면 정치철학이 부재한 경영자 출신의 대통령병이 보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12.28 08:10 신고

    안철수가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우리나라 정당 문제 중 제대로 된 이념 정당이 원내교섭단체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새누리다는 말할 것도 없이. 새정치연합도 사실 서구 정당처럼 이념에 기반한 정당은 아닙니다.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이죠. 또 특정 정당에서 탈당하면서 '중도' 기치를 들고 창당한 정당 중 성공한 정당이 없습니다. 안신당, 천신당,박주선당,박준영 당을 한 마디로 '문재인싫다당'일 뿐입니다. 누가 싫어서 만든 정당 결과는 뻔합니다.

    • 늙은도령 2015.12.28 16:15 신고

      기득권만 지키겠다는 것이에요.
      오로지 자신의 정치새명만 유지한 채...

  2. 참교육 2015.12.28 10:08 신고

    중도가 뭘까요?
    오른쪽과 왼쪽의 중간... 어떤 계층을 대변한다는 게 아니고 중도라..?
    괴상한 색깔의 정당도 다 있군요. 기회주의정당인가?

  3. 고시생1 2015.12.29 02:10 신고

    공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회주의자죠 중도, 혹은 무당층 합리주의자 라는 탈을 쓴..저 또한 그 중 한사람인듯.. 현재로선 문재인을 지지합니다만 동시에 당내 문재인 지탱하고 있는 세력에 대한 의문도 있어서

    • 늙은도령 2016.01.12 01:31 신고

      지켜보면 더불어민주당이 어떻게 변하는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친노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있지만 어떤 친노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변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봤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왜곡과 험단,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친노라는 사람들이 문제가 있었다면 이명박근혜 8년 동안 멀쩡하게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4. 제이슨 2015.12.29 15:45

    종편에서 새누리당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지나치게 이념지향마인드로 끌고가는데 낚이신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정치인들을 갈수록 조선시대 유학자마냥 동인서인으로 나누고 거기서 또 노론 소론으로 나누고
    새누리당이 언제부터 보수였는지 2000년대 이전에 새누리가 보수라고 생각한 분들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신문에 정치칼럼쓰는 권력에 아부하는 친구들이나 보수라고 칼럼에서나 싸질러되는 말이었는습니다

    • 늙은도령 2016.01.12 01:34 신고

      원래 전통보수는 부패와 비리에 엄격합니다.
      개인의 자유와 헌법상의 기본권을 하늘같이 떠받듭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보수가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안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정치철학에 대한 이해가 너무 일천해 현실정치에서 온갖 실족을 하는 것입니다.
      종편은 막장에 쓰레기여서 응징돼야 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전형적인 북한의 방송을 닮았습니다.



동등한 권리들 간에는 힘이 결정한다.


                                                                                      ㅡ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인용




답부터 얘기하면, 케인즈 경제학과 프리드먼 경제학이 나눠지는 경계가 (제로금리를 기준으로 할 때) 물가상승률 2%이기 때문이다. 케인즈 경제학의 목표는 주기적인 공황을 일으키는 시장실패를 정부 개입으로 막아 완전고용을 이루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2% 이상의 기대물가상승률이 필수적이다.





(제로금리를 기준으로 할 때) 물가상승률이 2%대 이하로 떨어지면 경제가 위축되거나 디플레이션으로 접어든다는 증거여서, 정부가 확대재정정책을 펼쳐 경제를 부양한다. 70~90%에 이르는 고율의 소득세와 상속세, 50%대의 법인세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당연시됐다. 1960년대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우리 모두는 케인즈주의자다’라고 말할 정도로, 완전고용과 정부 개입에 의한 2%대 이상의 기대물가상승률은 불변의 원칙으로 인정받았다.



신자유주의(신고전파 경제학과 신보수주의가 만난 우파적 버전을 말함) 40년은 이런 케인즈 경제학을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거둬내는 것이었고, 궁극적으로는 일체의 규제가 없었던, 그래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할 수 있었던 19세기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헌데 여기에 거대한 정치경제적 지적사기가 숨어있다. 레이건과 클린턴, 부시와 오바마로 이어진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부가 걷어낸 것은 고율의 과세, 각종 규제, 보호무역, 정부보조금, 복지와 사회안전망, 두 자리 수의 기준금리가 핵심이었는데, 이것들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은 채 2%대의 물가상승만 들먹인 것이다.



볼커와 그린스펀, 버냉키에 이어 미 연준의장에 임명된 옐런은 전 세계를 말아먹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면죄부를 발행하기 위해 2% 이상의 물가상승이 문제라고 호도한 것이 오늘 이루어진 지적사기의 실체다. 전 세계를 상대로 펼쳐진 미 연준의 지적사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옐런이 신자유주의의 금과옥조인 2% 이하의 물가상승만 강조한 것은 하위 99%의 부를 상위 1%로 이전하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다. 볼커(최악의 연준의장, 볼커쇼크는 신자유주의의 승리를 위한 자해극이었다)에서 그린스펀을 거쳐 버냉키로 이어진 신자유주의적 통화주의를 포기할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하위 90%의 지갑을 털어서 마련한 돈으로 천문학적인 구제금융과 무제한 양적완화를 펼칠 수 있었으면서도, 지갑을 탈탈 털린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2% 물가상승만 강조한 옐런의 발언에서 더욱 분명해졌다(전 세계의 반발 때문에 1~3개월 정도 금리 인상을 미룬 것으로 보이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개인과 사회, 국가를 막론하고 강자를 위한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철저하게 망가져야 세계가 살 수 있음을 오늘의 연준의장 옐런이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과 기축통화국이란 지위를 이용해 탐욕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하위 99%가 존엄한 인간답게 살 수 있으려면, 단기적으로는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개개인의 복리와 후생을 보장하는 파레토 최적을 실현하는 것과 장기적으로는 성장 없이도 풍요를 실현할 수 있는 공존과 상생의 정치경제학을 확립하는 것뿐이다. 이를 위한 각종 제안은 넘쳐날 정도로 많다(헨리 조지, 칼 폴라니, E.F. 슈마허, 이반 일리치,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등).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방쌤』 2015.09.18 19:40 신고

    항상 어렴풋이 뜬구름 잡듯 모호하게 알고있던 이야기들인데
    늘 많이 배워갑니다
    다른 복잡한 것들은 잘 모르지만,, 개개인의 복리후생 확충,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
    그것이 옳다,,라는것 정도는 확실하게 알고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8 20:00 신고

      경제학이 정치학과 떨어진 60년대를 기준으로 사기를 치는 학문이 됐습니다.
      전 세계를 망친 최악의 지식인들이 경제학자들입니다.
      이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해 현실을 왜곡했고, 이것이 정치에 이용되면서 현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2. 다노시무 2015.09.18 20:30 신고

    고맙습니다.매번 잘보고 많이 배워갑니다..주말 잘 보내세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9.19 11:17 신고

    중국에서의 바람도 그냥 보고만 있을 일은 아닌것 같군요

    • 늙은도령 2015.09.19 15:05 신고

      네, 강국들이 너무 커지면 힘듭니다.
      미국보다는 중국은 더욱 고통스러운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자체의 문제 때문에 힘들 것입니다.

  4. 2015.09.19 12:35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19 15:13 신고

      제가 음악 중에서 클래식은 잘 모릅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베토벤과 모짜르트, 슈베르트, 하이든, 바하 정도고요.
      저는 천재성으로는 모짜르트를 좋아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슈베르트를 좋아했고요.
      헌데 클래식은 그 이후로 접하지 못해 잘 모르고요.

      팝송을 좋아했지요.
      레드 제플린부터 돈 맥그린 등등... 90년대까지의 팝송은 거의 다 좋아했던 것 같아요.
      노래는 좋아했지만 아티스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존 레논의 삶은 예외적이었고요.
      사이먼 앤 가펑클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지식은 없습니다.
      음악 쪽은 제가 가장 약한 부분이에요.
      너무 평범한 귀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5. 박군.. 2015.09.19 15:12 신고

    경제란 정말 어려운 분야네요..잘보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5.09.19 15:14 신고

      기본적 지식이 쌓이면 경제가 가장 쉽습니다.
      기본적으로 경제에서 통계학과 수리학을 빼면 정치학과 비슷합니다.

  6. 덕산 2015.09.20 08:00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는 1인으로서 신자유주의 몰락은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 기다려집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이룬 것들로 인해 자신의 후손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지독한 모순에 갇혀 미래세대 못지않은 피해자로 뒤집혀지고 있다. 그들은 압축성장의 표상에 갇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변한 것도 모자라, 현실을 끝까지 부정하면서 과거만 움켜쥔 채 자신의 자손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영화 '국제시장'이 그분들에 대한 현실도피적 헌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ㅡ'국제시장'에 대한 자세한 사회학적 비평은 별도의 글로 다룰 생각이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정수이기 때문에 '국제시장'에 대한 사회학적 비평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탐욕의 삼위일체’가 극소수의 승자에게만 미래로 가는 지독하게 좁은 풍요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절대다수의 패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궁핍과 위험으로 가득한 어디에나 자리하고 있는 미래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한, 그들의 전 생애에 걸친 삶의 모순은 죽어서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부의 불평등이 기회와 교육의 불평등으로 고착되고, 성장의 각종 부작용들이 개인의 어깨를 짓누르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위험사회의 비대칭적 피해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패자부활전을 인정하지 않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견고한 고체로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우만의 성찰처럼 고체의 밀도를 지닌 채 액체처럼 유동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들이 펼쳐놓은 물샐틈없는 그물망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산업발전의 단계에 따라 중후장대하며 자본과 노동이 적대적 동거를 피할 수 없는 무거운 경제에서, 핵심인력만 정규직으로 둔 채 나머지 부문의 인력들은 노동유연화에 따라 비정규직이나 아웃소싱으로 대체한 채 가벼운 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반대로 민주주의에 익숙하나, 유례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자유의 종류 때문에 민주주의가 빠른 속도로 퇴행 중이라는 사실을 직감하지 못하는 1030세대는, 계몽된 시민이었으나 지배자와 타협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에 적극 협력한 사람들의 착취의 대상이었던 노동자와 구별되는 압축성장의 주역들과, 시민정신의 계승자였으나 마르크스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민주주의의 경험이 너무나 적었던 민주화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 모두는 노동 개념과 자연 지배라는 성장의 낙관론이 사회와 문화의 퇴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영원한 진보라는 계몽의 피해자라는 데는 동일하지만, 살아온 시대적 경험이 틀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할 여력도 없다. 



인류문화학적으로 1030세대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압축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할 생각이지만 지금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경제적 발전이 최종 단계에 이르면 자유의 주체로서의 자아와 평등의 주체로서의 타자가 서로 공존하고 갈등하는 관계라는 사실이다. 헌데 삶의 고단함에 짓눌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 때문에, 그들은 극소수의 승자에 대해 절대다수의 약자와 패자의 위치로 내몰리고 있는 기술-경제적 발전의 피해자임은 분명하다. 평화와 공존의 종교인 이슬람 사회의 속담처럼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닮기 마련이다.’ 민주화세대는 물론 그보다 앞선 세대인 압축성장의 주역들에 대한 이해를 1030세대에게 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세 세대가 살아온 시대의 조건과 지배의 방식, 산업화와 민주화의 단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특히 여러 가지 면에서 경험의 부족과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 삶의 방식과 각자가 처한 환경 등에서 채울 수 없는 거리를 짧은 글로써 풀어낼 수는 없다. 



보릿고개라는 생존의 고민을 걱정했던 세대이자 국가와 사회와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받칠 수 있었던 세대들을 기술-경제적 발전 때문에 이기적일 정도로 개인주의화된 1030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산업화의 주역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성장과 발전을 목격했기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의 마음이 아직까지도 유효한 상태다. 그들은 자유가 억압받는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고,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한 지적 사기이자 농촌 해체 과정인 '새마을운동'의 희생양이어서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군사부일체와 국민교육현장, 국기에 대한 경레가 이상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박정희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그의 딸인 박근혜에 대한 사랑을 1030세대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1030세대에게 권위주의적 독재에 저항해 감옥을 들락거리며, 미군이 아부라이브 교도소에서 자행했던 고문보다 더욱 심한 고문에 시달렸고, 때로는 사형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민주화세대의 치열한 투쟁을 이해시키기 힘든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은 국가의 전방위적 압박에 운동의 동력이 약해질 것을 두려워해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교조적일 만큼 밀어붙였으며, 운동의 길이 너무나 힘겨웠기에 민주주의나 정의와 평화에 대한 개념에서 거의 권위주의적인 엄격함(민주화 주역에 대한 1030세대의 피로감이 여기서 나왔고 그 극단에 일간베스트가 있다)을 유지해야만 했다. 지난 60년 동안의 경제성장은 무수히 많은 부작용들을 후세대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으며, 그 결과 1030세대들을 압축성장의 신화에 짓눌려 존엄한 삶과 진정한 자유도 누리기 힘들어졌다. 



이들 모두가 계몽적 진보(국민을 착취의 대상으로 만드는 유신(維新)도 이에 속한다)를 앞세운 기술-경제적 발전의 지배세력의 희생양이었지만, 절대 다수의 패자들 사이에서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 남아 있어 자신의 입장을 철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세 세대 간의 화해란 갈수록 벌어지며 서로를 향해 폭력적 적의와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들이 난무하며 교차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기술-경제적 진보의 방향이 바뀌어 세상을 다시 한 번 뒤집어야 하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수없이 많은 갈등을 유발하는 세대 간의 전쟁(별도로 다룰 것이다)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가족의 복원과 세대 간 화해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익 추구를 위한 위장된 행태여서 세대 간 갈등과 가족의 해체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압축성장의 혜택을 최소한만 받았던 세대들과 그 피해를 감당하고 있는 1030세대가 부의 불평등과 위험의 불평등이 교차하는 하는 최악의 지점에 위치한 사회적 계급(파편화된 개인이라 연대의 능력도 없고 운동으로 승화할 동력도 없는 넓게 산재해 있는 계급)부터 비대칭적 종말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현재의 세상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1%와 다음 번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만 그들의 배에 승선한 사람들이라고 비대칭적 종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기술-경제적 발전의 수혜자로서 초국적기업의 위치에 오른 삼성전자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구축된 ‘네트워크의 효과’를 누리면서, 이제는 1등을 유지하기 위한 ‘마하경영’을 화두로 들고 나왔다. 이런 삼성전자그룹의 끊임없는 변신은 정보통신 기술이 어느 산업에나 적용되는 지적 능력의 특징 때문에 전통의 제조업에서 무거운 부분을 떼어내는 작업에 들어서는 단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속도가 핵심인 가벼운 경제에 승선하려면 전통의 제조업도 제 살을 깎는 살벌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고, 이는 대규모 실업의 양산과 공장의 폐쇄나 해외이전을 의미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초국적기업에 오른 대기업집단은 기술-경제적 발전의 궤도에 적응해야지 그에 저항하면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최근에는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는 환율전쟁에 갇혀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이 땅의 기만적인 기득권들은 참여정부 시절이 삼성공화국이었다고 하면서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거짓을 확대재생산했지만 당시에는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가 망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을 만큼 부의 독점이 임계점을 넘은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실에 가깝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지금의 새누리당 출신들이 일으킨 IMF 외환위기 때문에 삼성전자그룹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2008년의 월가 발 경제위기는 MB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현대기아차그룹이 약진할 수 있었다(물론 기술-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도움을 별로 받지 않았지만). 국민의 지갑은 털렸지만, 이 두 초국적기업의 매출과 자산규모는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에 이르렀다. 



전 세계 차원의 청사진을 그려가며 현재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초국적기업들의 탄생과 독과범적 시장 지배는 ‘탐욕의 삼위일체’가 만들어낸 계몽적 진보의 필연이었다. 이런 변화는 부정적 세계화에 뛰어든 모든 나라에서 공히 보여주는 공통의 현상이며, 모두가 알면서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지배적 추세로 자리 잡았다. 모두에게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자유가 주어졌고, 손만 뻗치면 움켜질 수 있는 무한한 상품들이 주어졌지만, 그 자유를 만끽하고 상품들을 구매하려면 저임금 노동이라도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즐기고 지불은 뒤로 미루거나, 아예 뒤는 생각하지 않는 카드의 사용도 한계가 있으며, 대학을 졸업했을 때부터 이미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을 가지고 출발하는 20대들은 노동예비군을 뜻하는 잉여가 아니라 폐기처분되기 직전의 잉여라는 뜻에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의 위협에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졌다.





부정적 세계화의 핵심인 이런 기술-경제적 관점(계몽의 변증법)이 보편적 진리로 자리 잡게 되면서 ‘탐욕의 삼위일체’의 실재적 지배자들은 절대적 권력을 형성하면서 세계적 특권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그런 압도적 힘을 동원해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하기로 합의한 국가들의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와 언론을 기술-경제적 원리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재편하는데 성공했다. 동시에 이들은 힘겹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체제를 내부로부터 야금야금 침식해 들어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인식의 전환(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를 인정하는 것)을 이루어내는데 성공했다. 정치와 문화의 대부분이 그 하부구조인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만들어내는 빈약한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발견을 철저히 벤치마킹해, 견고한 체제의 적대적 동반자였던 노동은 물론 정치와 문화의 힘도 약화시키고 변화시켰던 과정이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에 자세히 나와 있다. 



세계화를 다룬 책들과 연구논문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공통되는 내용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이 그 앞에 ‘부정적’이라는 단어를 숨긴 기술-경제적 승자들의 일방통행이고 폭력적인 약탈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2008년의 신용붕괴로 모두의 눈앞에 펼쳐진 부정적 세계화는 세계경제의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그린스펀과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잭 웰치가 참회의 고백을 하게 만들었고, 막강한 시카고학파의 퇴장을 불러왔지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거기까지 만이었다. 그밖에 달라진 것이란 1%의 부가 더욱 늘었다는 사실과 지구온난화의 죄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무거운 경제를 털어낼 기회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에 몰린 거대한 부도 최종적으로는 1: 9로 재편되고 있다(미국은 미국혁명과 남북전쟁 전후에도 1대 9 사회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직면한 현재, ‘탐욕의 삼위일체’는 가벼운 경제에 맞는 체제로 세상을 다시 한 번 뒤집기 위해 거대한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의 몰락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한 현상임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와 사회의 변화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반영할 수 없는 개인들이 인터넷과 SNS로 몰려다니며 정치의 과잉을 초래함으로써 세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 세계적 시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정치와 비정치의 중간에 위치’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국가 체제를 기술-경제적 관점에 맞게 재편하면서, 생활정치의 영역으로 뛰어들은 그들은 일체의 권위를 해체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을 따르며 좀처럼 뚫고 들어가기 힘든 현실공간마저 하나씩 점령해나갔던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펼치고 있다. 거의 모든 공적 공간마저도 그들의 로고와 브랜드로 도배해 버렸다(특히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보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장자유주의 우파정부의 허상이 밝혀지면서 온갖 정책적 실족들이 속출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술-경제적 관점에 의해 새롭게 재편된 국가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도 계몽적 진보의 암묵적 지지자였음을 밝힌(마르크스가 고전경제학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진실이지만 그 반대로 여전히 진실이다) 울리히 벡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필적하는 《위험사회》에서 “심지어 외적으로는 국민국가의 사법권은 국제적으로 상호결합한 시장과 자본의 집중이라는 역사적 발전뿐만 아니라, 오염물질과 유독물질의 지구적 교환 및 그에 따른 보편적 건강위협과 자연파괴에 의해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이런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이런 국가행위의 결과가 지니는 불투명성 때문에 정치적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찬 유권자들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그네타기 유권자’로 변해가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한 채 비판하는 사람들로 인터넷과 현실공간을 떠돌아다녔다.



문제는 이런 투표 불참자가 늘어나면서 최소한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면서 그 민주적 대표성이 흔들리게 됐다는 점이다. 즉 각 정당과 후보들은 조직과 돈을 동원해 ‘투표에 참여하는 열성적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필사적인 전투를 벌어야 했고, 그 부작용은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침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중매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고, 의제 선정과 패널 선정에 따라 여론 조작과 왜곡의 가능성이 심각한 문제도 떠올랐다(앤서니 기든스가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언급한 정치학에서의 ‘의제 설정 이론’을 참조하라. 그 단계는 유권자들이 중요시 여기는 ‘대중적 의제’, 의회와 주변 기관들의 논쟁 단계인 ‘정부 의제’, 입법화 단계인 ‘경정 의제’의 3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보도하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정치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민적 정서’의 대부분을 대중매체가 선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대중매체는 고가의 광고와 협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하자). 



이는 모든 나라에서 공통된 현상이며, 정치 과잉과 투표 불참이라는 이중적 분화가 정형화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국가기관을 동원한 선거 개입이 가능한 세상이 됐고, 민주주의의 후퇴는 뚜렷한 추세로 자리 잡으며 과거의 망령인 권위주의 독재와 파시즘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정치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근대이성의 총아인 과학에서 출발해 지배적 교리로 자리매김한 기술-경제적 진보가 왜 민주주의의 퇴행과 맞물려 돌아가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성장이 정체돼 새로운 빈곤층이 늘어나고, 중산층의 두께가 얇아지고, 사회는 물론 가정 내부에서조차 혼란과 불화, 적대가 늘어나고, 사회의 분열이 회복가능한 상황에 이르면 과학과 기술-경제적 진보의 본질인 잠재된 폭력성이 현실공간은 물론 사이버 세상이라는 하위정치의 영역에서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일베 현상’이 대표적인데, 이런 추세에 대한 울리히 벡의 설명에 따르면



한편에서 하위정치 행동의 영역은 민주적 규칙의 적용에서 면제된다. 다른 한편에서 심지어 내적으로도 정치는 체계적으로 고무된 외적 요구들에 따라 군주적 특성을 여전히 보인다. ‘정치적 지도력’은 행정부와 이해집단에 맞서 강력하고 독재적인 실행력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시민과 관련하여 그것은 평등한 것들 중의 평등한 것이 되어야만 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처리해 주며 진지하게 고민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은 질문을 없애고 자문을 줄이기 위한 모든 행동에 가해지는 제약을 단지 반영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또한 민주적 정치체계의 구조에 내재해 있는 긴장과 모순을 표현한다. 즉 의회의 토론과 공동영역을 한편으로 하고, 의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신의 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권력을 통해 자신의 ‘성공’을 평가받는 행정기관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관계. 특히 선거운동체계는 준민주의의적인 ‘임기직 군주’의 실제적 허구를 항상적으로 조장하고 재생하는 의사결정 당국들이 서로에 대해 이바지하도록 강제한다. 이전의 정책들이 거둔 성공을 공언하건 비난하건 상관없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7.05 10:22 신고

    인간의 욕망이 만든 세상 막장까지 왔다는 느낌입니다.
    살기위해서 먹는 게 아닌 먹고 입고 즐기기 위해서 사는 동물적인 욕구가 결국의 파멸을 불러올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05 15:24 신고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공멸로 몰고 갑니다.
      지금까지의 성장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지 않는 한 공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업들의 폭주를 정치로 막아야 하는데 이놈의 정치인들이 정반대로만 달려가니....
      정치 실패가 패인이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민주주의의 나쁜 점만 부각되는 시대로 진입한 것 같습니다.

  2. 耽讀 2015.07.05 16:52 신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그리고 언론권력은 자신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진실을 왜곡합니다. 서민들이 수구기득권정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이유도 이들 권력삼위일체가 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죠. 그리스를 보도하는 국내언론들은 이 지경이 된 이유를 복지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부패때문입니다.
    갈수록 전세계는 이들 권력삼위일체가 만든 왜곡된 질서로 빠져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이겨낼 수 있느냐입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힘도 세고, 자신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잘 합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분열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6 14:58 신고

      국민들이 제대로 된 정치와 민주주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치와 민주주의가 최고에 이를 때 서민들이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워낙 책을 읽지 않으니 TV에서 해부어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지금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특권엘리트들의 독점물입니다.
      국민은 자포자기 상태이고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7.06 08:55 신고

    오늘 쓰신글이 다른때보다 약간 길어 한번 읽고 이해하기란
    제 수준에서 어렵습니다
    두세번 정독해야 할듯 싶어 댓글 이정도로 마무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6 14:59 신고

      좀 어렵지요?
      원래 퇴고를 해야 할 초본이라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4. 바람 언덕 2015.07.06 10:05 신고

    지난 주말 아고2 오프모임 잘 가졌습니다.
    도령님 이야기 많이 했어요.뵙지 못해 정말 아쉽네요.
    이런 저런 정치 이야기도 많이 하고 앞날도 모색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 늙은도령 2015.07.06 15:02 신고

      제가 후기를 읽어보겠습니다.
      약의 내성 때문에 조금 힘든 상황이라....
      좋은 시간됐다니 다행입니다.^^

  5. 『방쌤』 2015.07.06 11:54 신고

    모두들 제대로 투표를 해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지도자를 뽑아야지요,,,
    계속 이렇게 살수는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 늙은도령 2015.07.06 15:05 신고

      확실한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데, 그들이 국회나 청와대로 들어가면 또 로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지라...
      정말 어렵네요.
      민주주의가 너무 무너진 상태라 이것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고민이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6. base 2015.07.06 18:07

    세 세대간은 갈등은 그 어느 시대보다 심화된 것은 사실인거 같습니다. 지난 60여년동안 이 세대들이 경험한 삶이 너무도 다르니 그러지 않겠나 싶네요. 그리고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더욱 더 잠식해가는 현실에서 격게되는 수 많은 현실적 모순에 우리가 갇혀있는게 아닌가요. 그래도 이번 그리스의 국민투표 결과는 굉장한 의미를 시사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늙은도령 2015.07.06 18:22 신고

      네,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것을 하나로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어차피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역사에 맡겨질 일이니 그것 때문에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젊은이들이 제대로 역사를 알고 제대로 된 참여와 선거,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네요.
      요즘은 뭐든지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 힘겨운 세상이라....



언제부터인가 진보정당들이 중도를 표방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들은 토니 블레어와 빌 클린턴처럼 ‘제3의 길(온화한 보수주의)’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며 우축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도가 존재하는 양 사기를 쳤던 블레어와 클린턴이 한 일이란 진보좌파를 내부로부터 파괴한 것이었다.





그들은 부와 위험의 불평등이 커지는 것을 힘겹게 막아왔던 진보좌파의 마지막 역할마저 시궁창에 처박았다. 대처와 레이건이 보수우파의 영원한 목표인 정부의 민영화(작은 정부)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들었다면, 블레어와 클린턴은 민영화된 기업들을 감시하는 업무마저 시장에 넘겨버렸다.



수없이 많은 통계와 연구들이 부와 권력이 세습되고 있고, 신빈곤층이 양산되고, 시장논리에 따라 잉여들은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는 사실상의 과두정치로 접어들었고, 정치와 자본의 유착은 어디까지가 정부에 속하고, 어디서부터 민간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됐다.



2008년에 발생한 월가의 붕괴는 정치와 자본의 유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무력해진 진보좌파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보수화된 세상에서 진보정당들은 우측으로 움직였고, 좌파정당들은 존립조차 불가능했다. 진보좌파들은 다투어 ‘중도’를 내걸었고, 창씨개명에 열중했다.





이렇게 정부와 정치의 영역에서 진보좌파의 핵심가치(시장의 탐욕을 억제해 보다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만드는 것)들이 사라지자 세상은 ‘1대 99사회’로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중하위 99%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밖에 없다, 노예로의 삶과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



사람들은 거대담론(이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만, 잠시만 멈춰 서서 세상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보수우파의 논리에 의해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수우파는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돌아가는 자유 시장이 신의 섭리라는 것으로 집약됐다.



이 때문에 보수우파들은 자유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부는 신의 섭리를 가장 충실히 따른 결과이므로 정당하다 한다(미국의 주류인 WASP의 청교도정신). 부가 독점되고 빈곤이 늘어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이므로 불평등이 늘어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마태복음에 나오는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될 것이고, 가지지 못한 자는 더 가난해지리라'의 근본주의적 해석).





자유 시장이 신의 섭리이기에 이의 작동에 간섭하고 규제하는 것은 신의 섭리를 거역하는 행위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극단적 복음주의자가 자유 시장의 수호자며, 정부 업무의 민영화와  세금 감면, 노조 파괴 등을 옹호하고, 시장을 억압(개입)하는 진보좌파에 빨간색을 칠하는 보수우파와의 교집합이 형성된다.



뉴딜정책과 케인즈 경제학이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한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내내 보수 반동을 주도했던 뉴라이트(신보수주의자)들이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보수우파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자유 시장을 축으로 한 기독교와 보수우파의 교집합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다른 교집합도 있는데 이는 별도의 글로 다룰 것이다).



최고 97%(영국)와 91%(미국)에 이르는 세금을 내야했던 부자들이 이들의 교집합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음은 세삼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이처럼 미국과 영국에서 성공한 보수 반동의 모델을 도입한 한국의 보수우파가 정권을 탈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투표율과 상관없이 한 표라도 많은 정당이나 후보가 정치적 승리를 독점한다. 투표율이 낮을수록 조직을 동원할 능력(선거는 돈이다)에서 앞선 보수우파가 계속해서 승리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형교회와 새누리당의 교집합에 맞설 진보좌파의 표 집결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자꾸 우축으로 움직이려는 것이고, 이는 기독교와 보수우파의 교집합의 승리를 공고히 해줄 뿐이다. 비록 마르크스의 성찰이 상당 부분 유효하지 못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쓸 수밖에 없었을 때보다 작금의 현실이 더욱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래, 지금처럼 진보좌파의 가치가 중요해진 적이 없었다. 민주주의가 대체 불가능한 체제로 굳어진 이래, 지금처럼 진보좌파의 역할이 중요해진 적이 없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부정적 세계화가 신의 자리를 대체한 지금처럼 진보좌파의 부활이 절실했던 적도 없었다.



정체불명의 ‘중도’를 얘기할수록, 철저히 실패한 ‘제3의 길’을 얘기할수록 노예로의 삶과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빼면, 하위 99%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방임의 수준에 이른 넘쳐나는 자유란 불평등과 불공정의 대가로 주어진 값싼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P.S. 블레어 내각과 클린턴 정부에 대한 보수학자들의 연구는 완승을 위한 중간단계 정도로 보고, 진보학자들의 연구는 진보의 가치가 시장으로 넘어가는 참담한 결론으로 가득하다. 블레어는 대처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이었고, 클린턴은 부시에게 레이건의 유산을 확대해서 넘겨주었다는 것이 최근의 결론이다.



한국에서는 토인비의 <제3의 길>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지만, 실제적으로 <제3의 길>을 채택한 진보정부들은 모두 다 친재벌적 자유 시장을 도전불가능한 지위로 끌어올린 보수우파에게 승리의 팡라페를 울리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했다. <제3의 길>은 진보의 가치를 공동묘지로 보내는 결과로 귀결됐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엘리스 2015.06.14 17:39

    지금 탐욕의 정체를 말씀해주시고 계시는 거죠?
    탐욕의 고리들을 찾아서 근본 출발점을 깨우쳐 주시는 거죠?
    값싼 부스러기들로 눈 먼 저와 같은 대중들을 깨우고 계시는 거죠?

    누군가 자본주의의 폐해가 올해와 내년 정점에 다다를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의 의미를 도령님 글을 통해 깨우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14 18:14 신고

      자본주의와 보수우파의 자유 시장이 합쳐져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됐습니다.
      여기에 신의 섭리를 끌어들인 것은 기독교 우파이며, 이것이 하나의 교집합을 이루어 영미식 신자유주의가 탄생했습니다.
      악마와 탐욕의 탄생이었지요.
      그 이후의 인류는 무한대로 타락했고 이기적인 됐습니다.
      도덕과 윤리, 정의와 상식, 도덕과 철학 등이 모두 다 사라졌습니다.
      진실한 자유가 무엇인지도,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도, 평등의 중요성도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2. base 2015.06.14 18:46

    새로운 형태의 정교합작(일치)의 세상인가봐요. 그런데 그 누구는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니 아마 신당을 차려놓고 신께 두손 모아 기도하며 계시를 받아 또 다른 정교일치를 보요주는듯 하네요.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없게도 말이죠!!

    • 늙은도령 2015.06.14 19:24 신고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두 명의 대통령이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습니다.
      정치철학도 없는 탐욕의 결정체들이 나라를 통치했으니 메르스 대란까지 일어난 것이지요.

  3. 耽讀 2015.06.14 20:02 신고

    1%대 99%인데 왜 99%는 중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왜 99%는 1%는 뒤집어 엎지 못할까요?
    예수 가르침은 신자유주의와 부의 독점이 아닌데. 근본주의자들은 왜 부의 독점을 지지할까요?
    통탄할 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14 20:30 신고

      99% 중에도 보수가 있고 자신이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진실을 알려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늘 그곳에서 생깁니다.
      보수우파에 대한 연구가 더욱 깊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4. 가난한여행자 2015.06.15 02:40 신고

    잘읽고 느끼고 갑니다
    20살때 젊은시절 '''루소의 불평등 기원론''' 을알고 한사회에 불평등에 대한 생각 했는데

    2015년 대한민국에서 상식이전에 금전적이득을 위한 집단이 나라를 움직이는 한주역이라는데 신기하네요

    고도의 개인 문명 (인터넷) 발달한 나라에서 중세 암흑시대 일이 벌어지네요

    유령여왕 박근혜 ,그를 조정하는는 실질적 귀족권력들, 그이득 보려고 모여든 기사, 종종 문필가들
    그리고 그이론 취한 대중들

    박대통령 당선되고 친구들 모임때 '''' 우리나라는 중세 암흑시대 재현될거야'''
    그리고 그영향은 한시대가 고생해야 극복 될수있어'''


    내 예언이 들렸으면했는데,,,,

    대한민국은 현재 아마겟돈이네요 .....정신적 공황이네요

    슬프네요....

    • 늙은도령 2015.06.15 02:45 신고

      보수정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시장자유주의 우파와 기독교 근본주의자, 좌파에서 전향한 자들이 만들어낸 것이 이명박근혜 정부입니다.
      친일파의 후예라는 것보다 이것에 초점을 맞춰야 그나마 사람사는 세상의 일부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5. h2 2016.07.30 11:35

    기독교 근본주의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아십니까? 글을 읽어보면 근본주의가 아닌자들을 근본주의로 덧씌워 말하는 의도가 뭔지 궁금합니다 정확히 기독교 근본주의와 더불어 미국 근본주의 역사도 검색을 한 후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늙은도령 2016.07.30 14:31 신고

      <아메리칸 그레이스>는 100대 석학에 포함되는 로버트 퍼트남이 쓴 책으로 1000페이지가 넘습니다.
      미국의 기독교를 다룬 것이지요.
      기독교 근본주의는 지독히 많이 경험했고, 책으로도 많이 읽었으며, 무지하게 자세히 알고 있으니 새로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기독교 근본주의들이 쓴 책을 몇십 권이나 읽어 그들의 정치적 성향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으니까요.
      종교 관련해서, 특히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는 박사학위 받을 만큼 공부했습니다.
      님이나 제대로 공부하시지요.



"모든 철학이 죽었다"는 비트켄슈타인의 절망적인 선언이 나왔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철학과 사회학이 죽어버린 시대가, 신자유주의 통치와 거대 미디어의 세상인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생각 자체가 사라진 채 끊임없이 이동하고 접속하며,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자신의 과거를 삭제하고, 현재의 나를 끝없이 업그레이드하는 모바일기기의 특징으로 인해 지금-당장이라는 소비지상주의가 만연된 시대적 특징을 감안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비판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 지식인들이 현실비판에서 멀어지면 화석의 존재처럼 변해버린 존재의 근거마저 사라져버립니다. 포기는 쉽고, 타협은 탈콤하며, 전향은 부를 제공합니다. 지식인이 꼭 가난할 필요는 없지만, 비판정신을 잃을 만큼 많은 부를 쫓아가면 나태한 정신이 비판정신을 부패시키기 일쑤입니다. 타협과 타락의 시작은 늘 비슷한 것에서 비롯되기 마련입니다.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홀로코스트의 행정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그녀도 유대인이다)가, 인류사의 최대 악으로 지탄받고 있는 나치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이었던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ㅡ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를 출간한 뒤, 좌우로부터 융단포격을 받고 자신의 주장을 더 이상 펼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동시대의 주류에서 벗어난 사상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좌우의 융단포격을 받은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사상을 끝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인의 역할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지식인(모든 개인도 마찬가지이지만)에게 주어진 삶이 사막처럼 척박하고 황량해도 끝끝내 시작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철회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며, 휴머니즘을 가득한 정치철학의 부활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 지식인의 표상이었던 리영희 교수와 최근에 생을 달리한 신영복 교수가 그렇게 살았지만, 그들의 뒤를 이을 행동하는 지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지성사는 각자도생의 퇴로에서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에 필적하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것도 결국은 언론과 지식인의 권력과 자본에 대한 치열한 비판이 종적을 감췄기 때문입니다.  



비록 큰 돈을 벌 수도 없고, 권력과 자본과 결탁한 사이비 지식인들과 다른 관점을 지닌 올바른 지식인들에 의해 많은 공격에 시달리겠지만, 비판이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병 속의 편지' 같은 편법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부르디외가 《세계의 비참》의 추고에서 말한 것을 지식인(특히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는)이라면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사회적 세계를 연구하는 데 인생을 바칠 기회를 얻은 사람은, 세계의 미래가 걸려 있는 투쟁 앞에서 무관심하거나 중립적으로 있을 수 없다.         

 


부르디외의 성찰처럼, 이번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슴에 단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기리는 벳지를 달고 다니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여지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중립이란 없다"고 말한 것은 동일한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과 지상에서의 삶을 구원해야 하는 성직자와, 인류에게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 알려야 하는 지식인들은 인간에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헌데 교황이 '죽음의 문화'라고 말한 부정적 세계화가 지구의 곳곳을 가로지르며 전 지구적 시장으로 끌어들여 뼈속까지 빨아먹고 있는 지금/현재, 돈이 되는 것은 모두 다 전문화돼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힘들고,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전 지구적 지배계급과 거대 자본 및 초국적기업에 봉사하는 지식에는 국경이 없어졌고, 지식인들도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세계화의 주역들을 위해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며 계급화된 엘리트로 자리매김한 현대의 지식인들은 부정적 세계화를 위해 시민을 소비자로 변질시키는 상징제작자와 상징조작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부정적 세계화의 정도가 심화된 대한민국에서는 족벌신문과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방송들을 맴돌며 정치권만 기웃거리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영혼도 철학도 없는 그들은 오로지 돈과 권력만 쫓아 불나방 같은 행태를 서슴지 않습니다. 지식인의 업무가 현실비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과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이들은 사실과 진실은 물론 진리와 공리마저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 가치와 진실 여부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지식의 이름으로 홍수처럼 밀려오는 디지털 세상에서 지식인이 할 일이란 자신의 사상이 경고하는 미래상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부정적 세계화의 현실과 사회비판에 물러섬이 없어야 합니다. 성장과 개발이 불러온 현실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지만, 모름지기 철학과 사회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실낱같은 희망을 잉여에서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현 시대의 난민과 미래세대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비판이론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지식인이라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유동하는 공포》의 마지막에 했던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회경제적 평등과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진보좌파의 가치가 민주주의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는 지식인이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깨어 있고 행동하는 시민에서 소비하는 개인으로 파편화된 일반인들이 비판이론을 정립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진리와 정의 및 자유와 평등에 대한 부단없는 탐구와 기득권의 탐욕을 고발하고 경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식인들이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폭력적인 현실은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득권의 탐욕에 지식인이 침묵하면 언론도 침묵하고, 교육도 무너지고 권력은 오만방자해집니다. 그럴 경우 바우만의 마지막 희망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도 아무런 역할을 못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세기는 궁극적인 재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아니면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 새로운 협약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희망을 갖자. 이 두 개의 미래에 대해, 아직도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으리라고.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달빛천사7 2014.08.20 05:51 신고

    잘보고 감니다. 좋은하루되셔염

  2. 태봉 2014.08.20 08:41

    좋은 날이 올거라 희망해 봅니다
    잘 보고 가요 화이팅~~!!^^

  3. 유머조아 2014.08.20 15:58 신고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무척 철학적이십니다..

  4. 새벽을기다리며 2014.08.20 17:38

    좋은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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