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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즐기기

문통의 리더십,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예약하다 그렇게 많았던 한반도 위기설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평창올림픽의 성공 가능성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과거의 역량을 회복하고 있는 MBC를 제외하면, 모든 방송이 북한팀의 일거수일투족만 따라감으로써 시청자의 반북정서(조중동과 자한당, 미래당의 평양올림픽 프레임)를 자극하고 고양시키는 왜곡된 보도의 홍수 속에서도 평화올림픽으로써의 평창올림픽의 성공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이런 극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소리없이 강한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와 아베가 조중동과 자유한국당의 입을 빌어 전쟁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바람에 출전조차 꺼리던 국가들의 참여율이 문통의 평화외교에 힘입어 사상 최고에 이르고, 평창올림픽 주관방송사인 NBC.. 더보기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에 대한 SBS의 거지 같은 보도 문재인 정부 들어 16.4%가 오른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다룬 SBS의 보도가 정말로 엿 같네요. SBS의 보도에 따르면, 1천6백여 세대의 모 아파트 단지에서 내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34명의 경비원에게 올려줘야 하는 가구당 경비용역비가 무려 5천 원에 이르기 때문에 9명의 경비원을 해고하겠다고 합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한 달에 5천 원의 추가지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빈곤에 허덕이는 모양이어서 SBS가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나 봅니다. SBS가 문재인 정부에 들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송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졌는지 알 수 없지만, SBS의 보도는 "(관리비가) 1천 원만 올라도 (주민들이) 와서 따지고 항의해요. 그럼 만약에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게 되면… 감당.. 더보기
왜 유시민은 썰전을 선택한 것일까? 이번 글은 완벽한 추측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필자의 희망사항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의당 당원이고 '노유진'이란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유시민 작가가 JTBC의 썰전을 선택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것에서 출발해 하나의 그럴싸한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 이번 글의 허구성과 필자의 희망사항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부담없이 읽으시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청자란 있을 수 없다. 텔레비전 없이 지내야 할 정도로 열악한 빈곤도 존재하지 않는다.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고 변질되지 않은 수준 높은 교육도 찾아볼 수 없다……우리 모두는 카메라가 잡은 제한된 각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브라운관에 비치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닐 포스트만의 《죽.. 더보기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먹여살리는 방송생태계 텔레비전은 문제의 본질보다 인물에, 장소의 공동체보다는 관심의 공동체에 더 높은 위치를 부여한다. ㅡ 로버트 퍼트남의 《나 홀로 볼링》에서 인용 텔레비전의 폭발적 증가는 어떤 매체보다 빨랐고 대규모로 이루어졌으며, 그래서 시청자의 삶의 형태와 인생주기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불러왔다. 대외활동 때문에 TV를 가능하면 적게 보는 고학력자나 일부 계층을 빼면 모든 계층, 인종,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TV에 종속된 삶과 인식이 급격하게 늘었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TV시청이 줄어들고 있지만, 핵심 콘텐츠의 대부분이 방송이거나 그것에서 파생된 것들이라, TV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TV를 습관처럼 켜놓는 사람들이 많고, 이웃과 단절된 아파트가 많은 한국의 경우에는 TV시청이 더.. 더보기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미디어를 갖는다 문제는 텔레비전이 오락물을 전달한다는 점이 아니라 모든 전달하는 내용이 오락적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ㅡ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에서 인용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된 지금에도, 거의 모든 정치학자들과 언론‧방송학자들은 텔레비전이 정치에 미친 영향이 측정불가능할 만큼 크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인터넷과 SNS에 익숙한 세대가 사회의 주축을 이루면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터넷과 SNS 상에서 다루어지는 컨텐츠의 원천이 거의 다 TV에서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해 다루었기에 이번 글에서 그에 대한 근거를 대는 것은 필요없으리라 봅니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일반화된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는 텔레비.. 더보기
우영워드 ㅡ 소셜테이너와 슈퍼스타4 사실 인간은 안경을 통해 육체적 한계를 물질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현미경의 발견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인 유전자나 세포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됨으로써 신체 자체를 변형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산업적 이해가 더해지자 인간은 성형수술을 통해서라도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반영하는 ‘몸에 갇힌 사람들’로 변형되어 갔다. 신자유주의적인 거래와 관계를 위해 유리한 몸을 전해주지 못한 부모들은 성형수술과 피부 관리, 치아교정, 다리 교정 수술에 들어가는 돈이라도 물려주지 못하면 무능력한 부모로 낙인찍히거나 죄인처럼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화장은 아무리 많이 해도 결국은 드러나기 마련이니, 부모가 제공해야 할 기본사양에도 들지 못한다. 요즘 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에 자신의.. 더보기
JTBC만 광고 주지 않는 박근혜 정부 미국인의 하위 75퍼센트와 전 세계 인구의 하위 95퍼센트가 민족적, 종교적 적개심, 성적인 관습에 관한 논쟁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것이다. 가끔 일어나는 짧은 유혈 전쟁을 포함하여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의사사건(pseudo-events)으로 노동자의 관심을 자신들의 절망에서 다른 곳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들은 별로 두려울 일이 없을 것이다. ㅡ 리처드 로티의 《미국 만들기》에서 인용 노엄 촘스키의 《환상을 만드는 언론》과 《여론조작》을 보면 선전모델(선전체제)이라는 것이 나온다. 이것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자행했던 각종 전쟁 범죄(민간인 학살과 환경파괴, 집단 강간 등)와 전세 등을 숨기거나 왜곡하고, 물타기 하기 위해 미 연방정부와 주류언론들이 결탁한 정언유착 모델을 말한다.. 더보기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 비판ㅡ현대성의 탄생4 다양한 첨단기술의 발전에 따라 의사와 환자 간의 문진과 진단, 시술과 수술 등의 일체의 의료행위를 철저히 경제 논리에 의거하는 미국의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현대성의 폭력적 행태가 사회의 모든 곳에 침투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박근혜 정부가 행정조치(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는 가이드라인)라는 편법을 동원해, 모법인 의료법을 무력화시키며 강행되고 있는 의료민영화와 영리화의 논리도 결국 자본과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의 정당화와 극대화에 있다. 국가권력기관들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의 민주적이고 정치적인 정당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60~70%와 야당, 의사협회와 보건노조, 시민단체들이 반대하.. 더보기
새누리당이 계속해서 승리하는 이유 많은 젊은 세대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던 간에 무조건 새누리당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도 그러하다며 이념적 편향성에 대해 진저리를 친다. 이 때문에 가족 간의 대화는 더욱 줄어들고, 그것도 아니면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는 정치 얘기를 꺼내려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만나도 좀처럼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 사회를 비판하고 정치인들을 욕해도 이념적 성향이 들어가는 것은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밝힌 것처럼 '핫'이란 개념과 '쿨'이란 개념이 뒤바뀌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이런 경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네 권의 책만 읽어도 세상.. 더보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구글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디지털 세대이거나, 과학자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를 이룬다. 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인공지능의 출현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만들 것이라는 두려움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또한 돈 때문에 사악하지 말자는 구글이 가장 사악하게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글의 두 창업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구글의 사악함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엔지니어적 상상에 미쳐 있는 두 사람이 인류가 가야 할 새로운 세상을 안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글의 창업부터 지금까지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구글의 역사라는 것도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