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와 인지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바뤼흐 스피노자는 《에티가》에서 빛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와 어둠의 존재를 알리는 것처럼, 진리는 스스로 자신에 대한 그리고 거짓에 대한 기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재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이유로 운동에 참여했지만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했던 물음을 이재명과 민주당 지도부에게도 던지며 차선의 해법이라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1700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촛불집회에서 적폐 정치인 퇴출을 예기했던 것도 이념과 정당, 이익을 넘어 모든 정치인들을 향한 명령이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고 한 것도 세월호 참사에만 그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국민적 요구였습니다. 문프가 촛불집회의 리더나 선동가가 아닌 시민과 같은 하나의 촛불로 참여한 것도,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한 것도, 이념적 구분을 한 차례로 하지 않았던 것도 똑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촛불혁명 이후의 시민들은, ‘노벨상은 트럼프에게 평화는 우리 민족에게라고 말한 문프와 함께,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이재명 거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기준은 현대정치철학의 화두를 제시한 존 롤스가 『정의론』의 처음에 사상 체계의 제1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이라며 찾아낸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일치합니다.

 


이들은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다면 결과는 정의로울 수밖에 없다는 문프의 캐치프레이즈를 따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또한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억압과 착취 속에서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역사적 사실을 진저리 칠 정도로 깨달았다면, 문프의 5년과 그 이후의 30년은 상식과 원칙 속에서 세상이 가장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진리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소득 증대와 재분배는 하위계층에게 유리하게 하되 지속가능한 성장의 가능성을 찾고자 합니다.    

 

 

물론 (이재명의 본질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금까지는) 다수의 사람들처럼, 기본소득과 청년배당, 보편적 복지, 재벌 해체 등에 혹할 수도 있고, (실현가능성은 아예 무시한 채) 거기에 편승해 편안한 삶을 추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배 부르고 등 따시면 됐지, 누가 다스리든 내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지 하며 이재명의 패륜적인 권력욕을 모른 척 할 수도 있습니다. 노통의 죽음을 그렇게 퉁치며 이명박근혜 9년을 서둘러 지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은 역사를 상투적인 틀로 해석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란 잔악무도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례에서 전례 없는 일을 추론하거나 현실의 영향과 경험의 충격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유추와 일반화를 통해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에 동의합니다. 이재명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해는 오히려 우리의 세기가 우리 어깨에 지운 짐을 검토하고 의식적으로 떠맡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짐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무게에 패기 없이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현실을 아무런 편견 없이 감연히 맞서 이겨내는 것이라는 성찰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재명 퇴진운동을 통해 우리는 반동의 현실에 맞설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만큼의 현실의 몫을 짊어지고 승자가 곧 정의라는 통념에 굴하지 않은 채, 압도적으로 불리한 형세에 흔들리지 않고 도망가지 않으며 혜경궁 김씨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이재명과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아무런 편견 없이 감연히 맞서 이겨내려고 합니다. 지선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위해 우리의 표를 줄 것이지만 사표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재명에게는 주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명박산성보다 높은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시사라디오를 포함한 모든 언론과 거대 팟캐들이 긁어부스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고 그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낮은 곳에서 시작된 우리의 아우성이 멈추지 않는 한 진실의 문은 열리고 말 것입니다. 촛불혁명 이후 승리의 기록을 쌓아왔듯이 그렇게 승리를 향해 갈 것이며, 문프의 임기 내내, 그리고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그럴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merryjanet 2018.05.13 22:01

    오늘 밤 지나면 딱 30일 남은 지방선거. 너무 시간이 부족해요.
    그래도 지면광고 "혜경궁 김씨는 누구입니까?"를 내며 바로잡으려 애쓰시는 시민들에게
    민주당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합니다.
    전국민이 대통령의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청와대는 밤낮없이 열일하시는데,
    힘이 되어드리기는 커녕... 모든 걸 시민이 나서서 뛰고 촛불들고 청원넣고....민주당은 보이지도 않네요.
    이재명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선생님 말씀처럼 무소속으로라도 다른 후보 내세운다면
    표는 갈라져서 남 씨 좋은 일만 시키게 될 거 같은걸요.
    홍갱이가 그 더러운 녹취 계속 틀어댈거라는데, 이미 혜경궁 김씨가 누구냐 캐묻는 것도 의미가 없게 되었어요.
    김혜경과 이재명의 SNS질이 아닐거라 생각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손가혁도 김혜경인 걸 웃으며 인정할텐데.

    • 늙은도령 2018.05.13 22:16 신고

      이재명이 승리하더라도 최소 표차로 간신히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생각을 못합니다.
      경기도는 넓기 때문에 이재명 뜻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고요.
      김경수, 조국, 임종석 같은 대안들이 있으니 최악의 경우 경기도지사로 끝내게 만들어야 합니다.
      떨어뜨리면 최상이고요.
      우리는 지금 반대라는 기록들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2. 이제50대 2018.05.14 00:04

    경기도지사가 그렇게 쉬운 자리인 것 같지는 않네요. 또 그곳을 발판으로 대권에 도전했던 분들의 이력을 살펴봐도...
    혹 누가 경기지사가 되던 현추세로 보면 잘해나간다해도 전국구 대권주자로 진행해 가는데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 같아요. 누가 알겠습니까? 지금 글을 쓰시고 계신 늙으신 도령도 지방을 발판으로 경기지사에 대적하는 큰 인물이 되실지....

    • 늙은도령 2018.05.14 00:26 신고

      저는 건강상 불가능합니다.
      제가 공부한 것들을 나눠드리는 것에 만족합니다.
      팟캐스트는 고민하고 있지만 노모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집필은 천천히 하고 있지만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빨라 업데이트에도 급급하네요.

  3. 공수래공수거 2018.05.14 07:48 신고

    만일 사실이라면 너무늦었지 않나 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8.05.14 14:12 신고

      늦은 것 없습니다.
      그때 이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음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이재명이 더 큰 야욕을 갖지 못하게 하려면 마지막까지 반대의 기록들을 남겨야 합니다.

  4. 2018.05.14 12:01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8.05.14 14:15 신고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같.습니다.
      진영논리에 빠져 승리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같고요.
      시민들은 달라졌는데 정치인은 제자리입니다.
      이재명이 된다면 온갖 ♪♬♩이 다 됩니다.

  5. 여강여호 2018.05.14 12:52 신고

    열렬하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호감가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늙은 도령님의 최근 글을 보면서 무지 혼란스럽습니다.

    • 늙은도령 2018.05.14 14:18 신고

      저도 많이 속았지요.
      최근에 들어 흔적들을 확인해보니 인격이 개차반입니다.
      정말 무서운 자입니다.

  6. 캘리 2018.05.16 15:49

    이재명 가지고 싸우는 민주당 지지자들.... 이재명이 뭐 그리 대단한 인물이라고... GIGO 여기는 반대표 던지는 분들, 네이버 어떤 블로거는 그래도 이재명 어쩌고... 제가 보기에 한국 정치인들은 다 쓰레기입니다.


죠셉 콘래드의 소설 『로드 짐』에 나오는 명문장들을 일부만 모았습니다.

제국주의 시절의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룬 소설로 주인공이 여러 가지 면에서 저와 비슷한 아웃사이더입니다.

선원이었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제국주의 시대의 야만을 글로 옮겼는데, 최근에 와서는 당시의 유럽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죠셉 콘래드의 소설들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지만 요즘 소설과는 표현 방식이 다릅니다.

현대소설의 시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의 소설에는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표현들이 참 많습니다.

글을 쓰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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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외면적으로 내세우는 것들의 은밀한 진실...

 


위험도 직접 목격되지 않을 경우에는 인간의 생각 속에서 불완전하고 막연할 뿐이다.

 

 

죽음과 형제 관계에 있는 잠 앞에서는 모두들 평등했다.

 

 

잠을 자는 무리 위로 미약하지만 꾸준한 한숨 소리가 이따금 떠돌았다. 어지러운 꿈에서 발산되는 소리였다.

 

 

어쩌다 흘깃 보게 된 흐릿한 진리를 근거로 하나의 철학 체계를 펼치려는 사상가처럼 백치 같은 둔중함을 보이고 있었다.

 

 

짐은 그를 바라보다가 마치 마지막 이별을 한 뒤처럼 결연히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마치 그의 정령이 흘러간 시간 속으로 날갯짓하며 들어간 후 그의 입술을 빌려 과거로부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념이라니! 그것은 떠돌이요 방랑자로서 우리 마음의 뒷문을 찾아와 두드리고, 우리의 자질을 조금씩 앗아가며, 이 세상에서 점잖게 살다가 편안하게 죽게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고수해야 하는 몇 가지의 단순한 관념에 대한 믿음을 부스러기마저 얼마쯤 가져가 버리기도 하지.

 

 

그의 몸은 당겼다 놓은 하프의 현처럼 팽팽하게 떨리더군.

 


그 심한 떠벌림 속에 그런 논리의 실오라기가 들어 있다니.


 

삶의 가혹함이 그의 자기만족적인 영혼에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었던 것은 마치 바늘을 가지고서 바위의 반질반질한 표면에 아무런 흠집을 낼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

 

 

인간의 내면적 존재의 품위를 위해서는 육신의 단정함을 위해 옷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분별력이 필요하지 않겠나.

 

 

한 문장이 지니는 힘은 그것이 구성하는 의미와 논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법이야.


 

내가 볼 수 있도록 그가 허용해준 자신의 모습은 짙은 안개 속의 갈라진 틈으로 흘깃 보이는 풍경들 같았어. 그 생생하지만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마는 세부 광경의 조각들은 한 지역의 전체적인 경치에 대해서 조리 있게 알 수 있도록 해주진 않아.그 조각들은 호기심을 부추기기만 했을 뿐 충족시켜 주지는 않았어. 그 조각들은 그 지역에 대한 방위 잡기라는 목적을 위해서 아무 소용이 없었으니까. 대체로 말해서 그는 나를 오도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는 죽어도 좋다고 체념했을지 모르나, 더 이상 공포의 상황을 겪지 말고 일종의 평화로운 몽환 상태에서 조용히 죽고 싶었을 거야.죽으려고 모종의 준비를 하는 사례는 그리 드물지 않겠지만, 뚫을 수 없는 결심의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사람들이라도 질 것이 뻔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려고 하는 사례는 보기 어려운 법이야.


 

희망이 줄어들면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점점 더 강해져서 결국은 삶의 요구까지 정복해 버리게 되지...턱없이 큰 세력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이라면 그걸 잘 알고 있지. 이를테면 난파선에서 구명정으로 빠져 나온 사람들이나, 사막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들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자연의 힘이나 군중의 우둔한 포악함에 대항해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걸 알고 있을 거라는 말일세.


 

그는 나를 상대로 말하는 것이 그저 내 앞에서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어. 어떤 보이지 않는 인격체랄까, 자기와는 적대적이면서도 자기의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파트너랄까. 자기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또 하나의 존재랄까. 뭐 그런 상대와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거지.



즉 제 나름의 요구를 하고 있는 평판 좋은 사람들과 제 나름의 절박함을 겪고 있는 평판 나쁜 사람들에게 다 같이 공평해지려면, 그 논쟁에서 판정을 내린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인데도 말이야...나는 모든 진실 속에 도사리고 있는 관행이라든지 허위의 본질적 성실성을 바라보도록 요구 받고 있었던 거야. 그는 한꺼번에 모든 면을 향해 호소하고 있었지.

 

 

귀에는 익지만 일그러진 소리로 들리는 이름들이라 마치 여러 시대에 걸쳐 말없는 세월의 손길이 그 이름들 위에 작용한 것 같더군.

 

 

세월이 그를 따라잡고는 앞질러 버렸던 거지. 세월은 몇 가지 초라한 선물을 남긴 후 그를 절망적으로 뒤쳐지게 해버렸던 거야.

 

 

그의 무의식적인 얼굴은 언뜻 지나가는 경멸, 절망과 결의의 표정들을 차례로 반영하고 있었어. 마치 마법의 거울이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비현세적 형상들을 반영하는 것 같더군.

 

 

환자의 병상 곁에서 밤을 세워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영혼이 쥐어짜는 희미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거야.

 


그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대양의 기슭에 서 있는 외로운 사람처럼 거대한 어둠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던 거야.

 


말은 세월을 통해 멀리까지 옮겨가며, 허공을 나는 총알처럼 파괴를 가하기도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것치고 그런 종말감 말고 따로 무엇이 있겠는가? 끝장! 종결! 이런 강력한 말들이 생명의 집에 유령처럼 출몰하는 운명의 그림자를 쫓아낼 수 있는 거야...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정말이지 희망은 있어. 그러나 두려움 또한 있는 법이야...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죄뿐인데도 그가 자기의 불명예를 너무 심각히 여긴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르곤 해...그는 너무 섬세하고 섬세해서 아주 불행했던 거야.

 

 

그 사념이 어둠 속의 물웅덩이처럼 아른거리는 걸 나는 볼 수 있었지만, 그 깊이를 헤아리기 위해 접근하는 데 대해서는 절망하고 있었지.

 


그의 상처 입은 영혼이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깡총거리며 퍼덕이다가 어떤 구멍에 빠져 결국은 영양실조로 조용히 죽어가는 동안, 그가 늘 하던 대로 일상의 중요 용무를 보며 먹고 마시고 자는 데 필요한 생계비를 나는 그의 속에 억지로 쥐어주었지.

 

 

백분의 일이라는 가능성 말이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건 늘 그 백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가능성이거든.

 

 

그 여린 날개의 청동색 광채라든지 하얀 선이라든지 화려한 무늬에서 그는 마치 다른 무엇을 보고 있는 듯했는데, 그건 죽어서도 손상되지 않은 화려함을 보여주는 여리고 생명 없는 나비의 조직만큼이라 쉽게 손상될 수 있으면서도 파괴는 거역하는 어떤 무엇의 이미지였어.



인간도 놀랍긴 하지만 걸작은 못 돼...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인간이 나타난 것처럼 보일 때가 가끔 있어. 인간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데도 말이야.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인간이 모든 곳을 갖고 싶어 할까?


 

그는 등불이 밝게 비치는 곳을 벗어나서 불빛이 희미하게 테를 이루고 있던 가장자리를 거쳐 결국은 아무 형상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더군. 그 몇 발짝이 마치 이 구체적이고도 어지러운 세계로부터 그를 데리고 나간 것처럼 기이한 효과를 내고 있었어. 키가 큰 그의 형체는, 마치 그 실체를 박탈당한 것처럼, 허리를 굽힌 불명확한 동작으로, 보이지 않는 물체 위를 소리 없이 떠돌고 있었거든. 그가 실없는 관심을 쏟으며 영문 모르게 바쁜 모습을 엿보이고 있던 그 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먼 거리로 인해 부드러워진 채 굵고 엄숙하게 굴러오는 듯하더군.


 

그의 일생은 고귀한 이념을 위한 희생과 열정 속에 시작되었고 그 후에 여러 종류의 길이며 낯선 길을 따라 참으로 먼 여행을 해왔지만, 어떤 길을 걸을 때건 비틀거림이 없었고 따라서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할 일도 없었지. 그때까지 그는 늘 옳았어. 그게 유일한 길이었음을 의심할 수는 없지.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무덤과 함정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광대한 평원은 흐릿한 빛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시경 속에서 아주 황량하게 보였고, 마치 여러 갈래 불길로 가득한 심연으로 둘러싸인 듯이 가장자리는 동그랗게 밝았지만 그 중심은 그늘져 있었어. 드디어 내가 침을 깬 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 자신보다 더 로맨틱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서였어.

 

 

내게 보인 것은 그가 확고한 걸음걸이로 뒤쫓고 있던 그의 운명이라는 실체와, 미천한 환경에서 시작한 후 열정, 우정, 사랑, 전쟁 같은 그 모든 고양된 로맨스의 요소들을 넉넉히 누렸던 그의 일생뿐이었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마치 자기네를 불안정하게 삶에 묶어두는 밧줄이 다른 사람의 밧줄보다 더 길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방향으로든 더 멀리 나갈 수 있는 법이야.


 

욕망이라는 괴이한 고집이 그들로 하여금 온갖 형태의 죽음을 무릎 쓰고 했었지



불굴의 죽음이 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목숨을 세금 걷듯이 앗아가는데도 교역을 갈망하고 있던 그들의 모습은 처량해 보이기만 했어.


 

단지 탐욕 때문에 인간이 그처럼 집요한 목표에 매달릴 수 있고 그처럼 맹목적으로 끈질긴 노력과 희생을 할 수 있었다는 건 참으로 믿기 어려울 지경이야.

 

 

그 모든 정복, 신임, 명성, 우정, 사랑 같은 것들은 그를 지배자로 만든 동시에 사로잡힌 몸으로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야...그는 일종의 격렬한 이기심과 경멸적인 애정을 가지고 그 땅과 백성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더군.

 

 

승전의 도덕적 효과는 그를 갈등에서 평화로 인도했고 죽음을 거쳐 사람들의 가장 깊숙한 내면 생활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하지만 햇빛 아래 펼쳐진 대지의 어둠은 속을 헤아릴 수 없이 영속하는 안식의 외양을 지니고 있었어.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으나 자기네가 거둔 성공이나 소중히 지키고 있을 만큼 우둔하지 못하고, 결국은 불우한 일생의 역정을 마치고 마는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어.

 

 

이따금 그녀가 우리와 함께 앉아 있을 때면 작은 주먹으로 부드러운 뺨을 누르면서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 마치 우리 입에서 나오는 낱말 하나하나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을 가지고 있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우리의 생존이 다른 사람들 위해 필요하되,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거나 알게 될 경우 우리 각자는 여느 때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들은 마치 유령이 나올 듯한 폐허에서 사랑이 맹세를 교환하는 기사와 소녀처럼 삶의 재앙이 던지는 그림자 아래서 만나 함께 살게 되었던 거야. 그런 이야기를 위해서는 별빛이면 충분했어. 그 빛은 너무 희미하고 아득해서 그림자의 형상을 드러낸다든지 강 건너편 기슭을 보여줄 수도 없을 정도였어.

 

 

이처럼 한 망령의 마력에 이끌린 가엾은 인간이 또 다른 유령으로부터 엄청난 비밀을 짜내려 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것은 이 세상의 열정 사이를 헤매고 다니는 어떤 와해된 영혼에 대한 저 세상의 소유권과 관계되는 비밀이었어. 내가 디디고 섰던 바로 그 땅바닥이 발 밑에서 녹아버리는 듯하더라니까. 게다가 그건 아주 단순했어. 하지만 만약에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에 의해 환기된 유령들이 비참한 마술사인 우리들 앞에서 서로의 항구성을 보장해야 한다면, 나는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 중에서도 나만은  그 과업의 절망적인 냉혹함 속에서 몸서리를 치고 있었던 거야.

 

 

진리도 기회를 얻어야 이기는 법이라고. 법칙이 있음도 의심할 수 없지. 마찬가지로 주사위를 던질 때는 어떤 법칙이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는 법이야. 고르고 세심한 균형을 유지해 주는 것은 인간이 하인처럼 부리는 정의가 아니고 우연이나 운명이나 행운 같은 것들로서 모두 참을성 많은 시간과 연대 관계에 있지...우연은 시간과 연대하고 있지만 시간은 서두른다고 빨라지지 않는다고. 또 우연은 죽음과 적대 관계에 있지만 죽음은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야...운명은 우리를 희생시킬 뿐더러 도구로 삼기까지 하거니와 나는 마치 그 달랠 수 없는 운명의 작용을 눈으로 보게 된 듯했어. 


 

인간의 마음은 모든 세계를 포용할 만큼 넓고 모든 짐을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용감하지만, 그 짐을 벗어 던질 용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가 이 세상의 마지막 인간인 것처럼, 오직 내 기억 속에서만 잠시 동안 살이 있는 듯했어...참으로 그곳은 이 지구상에서 상실되어 잊힌 미지의 땅 중의 한 곳이었어. 나는 그 불분명한 표면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튿날 내가 그곳을 영영 떠나면 그곳은 존재하지 않게 되고, 내 자신이 망각의 세계로 들어가는 날까지 내 기억 속에서만 존속할 거라고만 느끼고 있었지.

 

 

잔인하고 끔직한 파국에 처해 보아야만 비로소 우리에게서 진실을 꺼낼 수 있는 법이니까.


 

마치 우리가 캔버스 위에 상상해서 그려놓은 그림을 오랫동안 곰곰이 들여다 본 후 마지막으로 등을 돌리는 기분이더군. 그런 그림은,그 속의 삶이 불변의 빛 속에 정지된 가운데, 퇴색하지 않고 미동도 없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지.

 

 

펜이 떨려 잉크가 튀겼고, 그는 그만두고 말았지. 더는 쓰지 않은 거야. 그는 자기의 시력이나 목소리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간격을 보았던 거지.

 

 

마치 압도적인 운명의 힘을 우리에게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상상력뿐인 것처럼 말일세. 우리 사념의 무모함은 결국 우리의 머리로 되돌아오기 마련이지.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니까.

 

 

우리 인간 자체가 지나친 잔인함과 지나친 헌신이라는 여러 갈래 어두운 오솔길에서 그만 스스로의 위대함과 스스로의 힘에 대한 꿈에 휩쓸린 나머지 맹목적으로 밀고 나가는 게 아닐까? 진실의 추구라는 게 도대체 무얼까?  

 

 

그가 이십 년간 사납게 공격적으로 멸시하며 협박해 오던 세계가 물질적 이득이라는 면에서 그에게 한 자루의 은화밖에 남기지 않았고, 그는 악마도 냄새 맡지 못하도록 그 자루를 자기 선실에 감춰두었다.

 

 

세상에는 영영 잊을 수 없는 광경이 있는 법이다.


 

허영심은 늘 우리의 기억을 상대로 음침한 속임수를 쓰는 법이며, 모든 열정의 진실은 그것을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게 할 약간의 거짓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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