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의원 13명이 국정농단과 강간미수범의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습니다. 용으로의 승천을 말했으나 실제는 지렁이에 불과했음을 증명한 이들의 비루한 회귀에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역주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민주주의였던 아테네의 아고라는 모든 시민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주장을 겨룰 수 있었고, 공통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것은 아고라라는 광장에 모든 시민이 모일 수 있을 만큼 소규모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영토, 인구, 주권'으로 구성된 국민국가가 등장하면서 아테네식 민주주의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영토가 커진 만큼 인구가 늘어났고, 추구하는 이익과 이해관계가 복잡해졌기에 모든 시민이 참여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최초의 근대 민주주의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으로부터 시작해 거의 모든 국가들이 시민을 대표할 대의자(국회의원)를 뽑아 국가의 운영을 맡기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루소가 '인민의 주권은 누구에 의해서 대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프랑스 인권 선언 제3조는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그 국민에게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조직이나 어떠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위임받지 않은 권위를 행사할 수 없다'며 대의민주주의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미 헌법을 만든 매디슨의 주장처럼 '정치적 지혜를 가진 것으로 공인된 소수의 사람들에게 정부의 권력을 위임하는 것만이, 넓은 지역에 분포한 국민 전체를 위한 진정한 이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엘리트적 요소가 강한 대의민주주의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다만 프랑스 국민회의(1791년)에서 "어떤 지역의 대표자로서 지명된 사람은 그 특정 지역의 대표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전국의 대표자인 것이며, 따라서 특정 지역에서의 압력이나 주문을 강제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 것처럼, 전국의 지역구에서 뽑힌 국회의원들은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민에게 직접적인 의무를 지지 않으며, 그들의 특수이익을 반영하도록 강요되지도 않아야 합니다. '인민의 통치'를 기본으로 민주주의의 원형이 대의민주주의에서도 여전히 작동하려면 이것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지독히 이상적이어서 현실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민의 요구와 이익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역구 하나만으로도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한 상황ㅡ그 이유는 먹고 살기에도 바쁜 시민들이 매일같이 만들어지는 법령, 조례, 규칙, 시행령 등을 살펴보며 일일이 투표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ㅡ에서 재선을 목표로 하는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민의 요구와 이익에서 자유로울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성주구민을 욕보이는 자유한국당 양아치들은 예외지만!).    

 

 

 

 

이 때문에 현대의 지역구의원들은 지역구민의 요구와 이익을 국회에 반영해야 하는 반응성,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서의 국민을 대의해야 하는 대표성, 직업정치인으로서의 연임을 목표로 하는 연임성을 모두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역구의원들은 국민 전체를 대의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지역국민의 요구와 이익을 대의하지 못하면 자신의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지역구의원들은 재선에 성공하려면 지역구민과 연결돼 있는 지역의 조직과 당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촛불혁명에 화들짝 놀라 새누리당에서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한 의원들이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기어들어간 것은 이런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이 아무리 훌륭해도 지역구민과 조직, 당원들의 수준이 낮거나 각각의 요구와 이해가 다르면 재선은 불가능한 데, 철새 같은 바른정당 의원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지역, 세대, 계층, 직종, 성별, 학력, 선호 등등 온갖 이유로 나누어진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대의민주주의의 현실적 한계와 지역구 특성이 바른정당 의원들의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로 직접민주주의를 꿈꾸었던 루소가 '인민은 투표일만 주인이고, 다음날부터는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며, "만약 신들로 이루어진 인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들의 정부는 민주주의적일 수 있다. 그러니까 완벽한 정부는 인민에게는 가능한 것이지 않다"고 한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환장할 노릇은 미 건국의 아버지와 프랑스대혁명의 주도자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정치적 지혜를 가진 것으로 공인된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지역구민과 당원의 이익과 요구, 자신의 재선에만 매몰된' 양아치·조폭 같은 놈들이 국회의원을 한다는 것입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의 끝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엇비슷하게 평등한,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면서 자신의 영혼을 좀먹는 째째하고 진부한 쾌락들을 추구하는" 인민들로 해서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로 빠질 수 있다며,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명제를 정립했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재선만 생각하는 국회의원들로 넘쳐나는 대한민국이라면 헬조선으로의 몰락은 다영한 것 아니겠습니까? 

 

 

 

 

노무현을 부관참시는 것으로 표를 긁어모으고 있는 홍준표의 자유한국당으로 14명의 바른정당 의원들이 회귀한 것을 대놓고 욕할 생각은 없습니다. 안보와 국익마저도 자신의 재선을 위해 악용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마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유린하고 폄훼하는 자들을 계속해서 뽑아주는 유권자들이 있는 이상 그들을 욕해봤자 그 자리를 채울 놈들도 똑같은 자들일 수밖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칸트가 말한 개인, 즉 자유를 완벽히 향유할 수 있어 자치가 가능한 개인을 기준으로 하지만 그것은 이상일뿐 현실에서는 각종 제약들이 개인들을 권력의 떡고물에 얽매이게 만듭니다. 

 

 

5월 9일의 투표에서 압도적인 정권교체에 실패한다면 거기에 맞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박정희가 다시 살아나고 박근혜의 재기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가 당선되는 세상이니 한국이라고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촛불혁명은 그 자체로 의미있고 위대한 여정이었지만, 그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슬아슬한 정권교체라면 그것에 맞게 촛불시민의 꿈을 재조정하고, 되살아난 기득권과 다시 한 번 힘겨운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요.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 통합이란 없습니다. 각가의 개인들, 그들의 집합인 다양한 공동체와 집단, 정당 간의 갈등이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나 전체주의로 넘어가니까요. 갈등을 인정할 때, 민주주의는 그로부터 바람직한 성과물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오직 국민(유권자)의 수준이 깨어있어 행동하는 시민에 이르면 인민의 통치라는 본래적 의미로서의 민주주의를 최대한 실현할 수 있으며, 박근혜와 홍준표로 대표되는 지긋지긋한 70년 적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문재인-대통령

#압도적-정권교체

#홍준표가박근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7.05.03 00:02 신고

    저는 이 말밖에 할 수 없네요.

    "이게 뭡니까!!"

  2. 다온맘 2017.05.03 01:40

    안민석 의원말이 정답입니다. 위장이혼! !
    으이구. . 아무리 정치철새라지만 정말이지 이건 아니네요. 저도 유승민 후보를 찍지는 않아도 응원합니다. 최소한 남은 바른정당 의원들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보수로 남아주길 바랍니다. 그나마 제 지역구 의원인 주호영은 남았네요. 이걸 좋아해야 할 일 인지. . ㅎ ㅎ
    오늘도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늙은도령 2017.05.03 02:40 신고

      이번 사태로 촛불시민들이 다시 결집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스스로 자멸할 모양입니다.

      위장이혼이 정답이지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7.05.03 09:33 신고

    정치 철새들입니다
    황영철은 또 번복할듯..아마 원내교섭단체 정족수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ㅋ

    • 늙은도령 2017.05.03 15:08 신고

      정치라는 것이 타락하면 끝이 없습니다.
      정치철학이 없으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4. 참교육 2017.05.03 17:52 신고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아이들 장남도 아닌 그것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분들이 저능아 수준입니다.
    금방 한 입으로 한말을 도루 줏어 넣는 이 정신질환자같은 이 사람들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친박핵심인사들이 재입당을 반대하고 있다니 정치계의 미아신세도 몇 나올 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7.05.03 18:08 신고

      그럼에도 저들을 찍어주는 유권자들이 있으니 답이 없지요.
      저는 유권자들이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들이 저런 미친 짓거리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좋아라 하는 유권자들 때문입니다.

  5. 수원아재 2017.05.04 09:34 신고

    저들이 모여 당하나 만들면 될것 같습니다. 당명은 '낙동강 오리알당'


문장 하나하나를 시처럼 썼던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를 보면 '비평을 할 때는 작가의 책을 씹어먹을 듯'이 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재벌의 반칙으로 자살을 빼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시기를 힘겹게 극복한 필자가 권력과 자본, 지식에 대한 비판에 집중한 이래 벤야민의 성찰은 일종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안철수나 홍준표, 김진태, 조원진 같은 비열하고 저급한 자들을 비판할 때는 그럴 필요조차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재명과 안희정, 손석희 등을 비판하는 글을 쓸 때는 이런 자세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이재명과 안희정을 비판할 때는 그들이 민주당 후보로 뽑혔을 때 그들을 맹렬하고 집요하게 공격할 정반대에 위치하는 정당의 입장에서 비판했습니다. 박정희부터 전두환과 노태우를 거쳐 이명박근혜의 집권기간까지 37년 6개월에 걸쳐 쌓이고 축적돼 너무나 견고해진 반칙과 특권의 적폐들을 청산하려면,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미래세대에게 넘겨주려면

민주진보진영의 집권기간이 최소 20년은 이어져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은 그와 정반대에 위치한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자격 미달'이며 구좌파에 한정됐다고 혹평했습니다. 안희정은 그와 정반대에 위치한 정의당의 입장에서 비판했기 때문에 '수준 미달'이며 엘리트주의적이라고 혹평했습니다. 민주당의 최종후보가 이재명으로 결정됐다면, 자유한국당과 모든 언론들은 범죄경력부터 논문표절,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적인 언행까지 후보의 자격을 물고늘어지며 대선기간을 마타도어와 네거티브로 일관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민주당의 최종후보가 안희정으로 결정됐다면, 정의당과 모든 언론들은 촛불혁명의 시대정신과 정당정치에 반하는 대연정과 모호하고 현학적인 언어로 포장된 정체불명의 민주주의론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후보의 자질을 물고늘어졌을 것입니다. 아파트 구입과정에서의 구설수도 무한대로 부풀려졌을 것이고요. 이재명과 안희정이 차차기대선에서 보다 많은 시민들의 낙점을 받으려면 필자가 제기한 문제들을 돌파하지 못하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과 국정농단을 모조리 합쳐야 IMF 외환위기와 비슷해진다면, 그 직후에 치러진 대선에서도 김대중의 득표율이 39.7%(10,326,275표)에 그쳤다는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때에 비교하면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시민의 이해와 의식이 상당히 높아졌고, 수구보수 일색의 기성언론에 맞서 SNS와 팟캐스트의 등장으로 일방적인 여론조작이 불가능해졌지만, 안철수 지지율의 급상승에서 보듯 기성언론과 포탈의 영향력은 수구보수의 집결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일일이 대처할 수 없는 가짜뉴스와 여론조작의 홍수까지 더해지면 공약과 정책을 통해 시대정신 구현이라는 정상적인 경쟁은 불가능해집니다. 민주정부 10년을 빼면 언제나 선거에 개입해온 국정원과 검찰, 경찰, 선관위, 대형교회의 보수 편향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선기간이면 어김없이 등장해서 민주진보진영의 발목을 물고늘어지는 북한이란 상수와 보수진영에 유리한 미국의 측면지원이란 변수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필자는 이런 이유들로 해서 이재명과 안희정에게 혹평을 가했던 것이며, '늙은도령의 세종태종론, 진보의 장기집권을 꿈꾸다'라는 글을 썼던 것입니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성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최근의 여론조사들을 보면 노골적인 여론조작(안철수가 가상의 양자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나온 것은 모조리)에 해당하는 것들이어서 문재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지만, 그의 임기 내에 촛불시민의 기대와 요구만큼 적폐청산과 국가개조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박근혜의 구속으로 인해 심적 부담을 상당하게 털어낸 수구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무섭게 결집하고 있는 지금, 60% 이상의 득표율로 승리하는 압도적인 정권교체도 불가능해졌습니다. 견고한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는 문재인이라고 해도 50% 전후의 득표율로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온전히 달성하기에는 기득권의 힘이 너무나 강하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정권교체에 성공한다 해도 노무현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들은 문재인을 끊임없이 흔들고 탄핵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문재인의 재임 기간 동안 이재명과 안희정이 필자의 혹평 정도는 거뜬히 넘을 수 있는 여론환경 구축에 성공해야 합니다. 문재인의 승리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적폐청산과 국가개조를 통해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비판적 지지를 보내줘야 하며, 그 기간 동안 이재명과 안희정이 더욱 성장하고 성공해서 어떤 공격과 비판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고 단단해져야 합니다. 민주진보진영 전체가 문재인 정부 동안 최대한 성장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고요. 





알렉시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보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보려고 했을 따름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바로 내일을 향해서 부산하다면, 나는 양양한 미래를 향해서 생각을 돌렸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재명과 안희정도 이번의 패배와 가혹할 정도의 비판들을 극복함으로써 '달리 그리고 더 멀리 볼 수 있는' 지도자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필자의 혹평 정도는 가뿐히 넘길 수 있는 그런 수준까지 성장하고 성공해야 합니다.



필자의 가혹할 정도의 혹평에 상처받았을 이재명과 안희정 지지자들도 저를 욕하시되, 달리 보며 멀리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석희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분들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저의 끌쓰기는 저만의 관점에서 나온 산물이기에 생각이 다른 분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모든 분들에게 위대한 정치철학자였던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1》에 나온 다음과 같은 말로 저의 모자람을 대신할까 합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은 역사를 상투적인 틀로 해석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란 잔악무도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이해는 오히려 우리의 세기가 우리 어깨에 지운 짐을 검토하고 의식적으로 떠맡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짐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무게에 패기 없이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현실을 아무런 편견 없이 감연히 맞서 이겨내는 것이다.” 



#문재인_대통령
#정권교체
#적폐청산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그노시스 2017.04.09 05:10

    아마도 가볍지않은이들은
    님과같은 마음일것이라
    생각합니다.

    문재인의 당선만이
    우리의 목적이어서는
    절대로 안될일이지요.

    올바른 민주정권이 최소20년
    그이상을 유지해야
    사회곳곳에 물들어있는
    적폐의 땟국물을 어느정도
    희석 시키리라 봅니다.

    다음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뼈아픈 채찍은 분명 필요합니다.

    안지사ᆞ이시장 공히
    더욱 자신의 본모습을 들여다보며
    깊은 성찰이 필요한듯 합니다.

    아무리 좋은 재목이라 해도
    담그고 말리고 다듬지 않는다면
    어찌 귀하게 쓰이겠습니까.
    기본자체는 훌륭하나 아직은
    돌아보며 다듬어야할 부분이
    많을줄 압니다.
    부디 스스로를 꿰뚤어보는
    깊은안목과 사람을 구별하는
    혜안도 깊어지길 바랍니다.

    민주정권의 영속이
    국가와 민족의
    명운이 달렸읍니다.

    호프미팅 보고 느끼기에
    참으로 감동적일만큼 좋았습니다.
    역시 민주사내들이더군요
    4명의 경쟁자들 모두에게
    힘찬 응원과 애정을 드립니다.
    늘 수고해주시고

    명쾌한 글로 우리의 답답함을
    가시게 해주시는 도령님께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7.04.09 07:47 신고

      우리는 비판에 대해 너무 두려워합니다.
      비판은 잔혹할 정도로 해야 발전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서로 간에 믿음이 있다면 얼굴을 붉히는 논쟁에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런 정도의 그룻이 돼야 지도자가 될 수 있고 민주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재명과 안희정은 치명적인 약점들이 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문재인의 집권기간 동안 운동장을 최대한 평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두 사람의 약점이 치명적인 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재명과 안희정 지지자들이 이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이땅의 수구보수들은 투표를 하지 않을지언정 진보진영에 표를 주지 않습니다.
      안철수처럼, 자신들이 충분히 요리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오면 그에게 표를 주기도 하고요.
      이재명과 안희정은 더욱 공부하고 경험하고 성숙돼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신좌파의 등장에서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해야 하고요.
      그것이 노무현의 궤적이기도 했습니다.
      어설픈 이해와 경험으로는 절대 대선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수구보수의 후보들은 그럴 필요가 없지만 민주진보진영의 후보들은 그래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한계를 돌파해야 민주진보진영의 후보들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신좌파의 등장처럼 공부와 경험이 늘수록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는 것도 깨달아야 하고, 촛불집회가 그래서 가능했음도 이해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올리겠습니다.

  2. 둘리토비 2017.04.09 23:16 신고

    현실이 넘 애석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희망을 접지 않으렵니다.
    일부러 정치 뉴스를 안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때이기도 한데,
    돌아가는 상황들은 뭔가 굉장히 불편합니다~

  3. 耽讀 2017.04.10 06:36 신고

    주말 여론조사 결과는 문재인 지지자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유무선 비율로 반박하지만
    추세는 분명 안철수 상승세입니다.
    다행은 문재인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충성도가 강하지요.
    하지만 비호감도 높아 지지율이 10%대 상승은
    힘듭니다.
    캠프 대응이 필요한 때입니다.
    대세론에 너무 심취한 것은 아닌지.

  4. 네시오 2017.04.10 08:44 신고

    잘 보고 갑니다~

  5. 참교육 2017.04.10 09:14 신고

    모순 투성이 현실과 밎서려면 그만한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타협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지요.

  6. 공수래공수거 2017.04.10 09:16 신고

    네거티브 공세가 도를 넘었섰습니다
    선거기간이 다른때보다 짧지만 정책은 실종된 느낌입니다
    이재명이나 안희정은 말씀하신 부분 앞으로를 위해서 반드시
    해결하고 대응책을 만들어 놓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계속 집권이 가능합니다
    그나 저나 오리무중이네요
    어제 비슬산 정상에도 안개가 자욱햇던데 말입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사회적 약자를 짓밟아 버리는 악덕국가로 전락했다. YS의 말을 빌리자면, 칠푼이 한 명과 그 일당이 말아먹고 있는 비정상국가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 집회·시위를 여는데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집회·시위 주최자는 시민이 10만 명이 모이건 100만 명이 모이건 야만공권력(청와대의 사병으로 전락한 경찰과 법무부, 검찰 등)이 쳐놓은 함정에 단 한 명의 참가자가 빠져도 범죄자가 되는 나라다.

 

 

 

 

10만 명 이상이 모인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야만공권력의 자극에 넘어간 극소수의 저항적 폭력에 묻혀버렸고,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을 돕는 시민들을 폭력집회나 일삼는 체제전복세력으로 만들었던 노하우가 빛을 발해, 뇌사에 빠진 것으로 보이는 백남기 농민의 아우성은 (그가 낸 세금이 포함돼 있을) 살인적인 물대포에 수장돼 버렸다. 그의 죽음은 현 정부와 야만공권력에 불리하기 때문에 유족의 뜻과는 반대로 생명이 연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악마의 종편(MBC 포함)과 국민의 시청료로 돌아가지만 정권의 나팔수 역할에 충실한 KBS를 비롯해 모든 방송은 공권력의 야만성에는 침묵하고, 극소수 시위자의 격렬한 저항과 유도된 폭력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시위자를 체제전복을 노리는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군주의 말 한마디에 법무부 장관은 민주주의와 헌법을 무력화시키는 대국민 협박을 난사해댔다. 사회적 약자를 지렁이로 보는 듯한 그의 광기는 군주의 호위대장으로는 적격이었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와 헌법을 파괴한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되도 모자랄 판이다.

 

 

신분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탄 로스쿨 학생들과 교수들의 반발에는 단 하루만에 사시존치 입장을 번복한 법무부가 내일의 집회에서는 초법적 단속과 진압을 거두지 않겠다고 공갈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와 강자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박근혜 정부의 폭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헌법 제1조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했지만, 현실에서의 대한민국은 최소한의 민주주의도 위협받고 있는 3류국가로 전락했을 뿐이다.

 

 

더욱더 답답한 것은, 한중FTA가 초스피드로 인준된 이후에 열리는 내일 집회가 폭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체결된 FTA들은 세부내용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국민이 철저하게 배제됐으며, FTA 체결로 이익을 보는 쪽에서 세금을 더 걷어 손해를 보는 쪽을 지원하는 내용도 들어 있지 않다.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부의 불평등이 커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한중FTA는 사회적 약자(특히 농어민과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는 회복불가능한 재앙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내일의 집회가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냐, 아니면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느냐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터무니없는 현실왜곡이다. 내일 집회의 목적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집중조명을 받고 국민적 토론을 거쳐야 함에도 폭력성 여부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진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비정상적 행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아무리 많은 사회적 약자가 집회에 참여해도 신자유주의적 강자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강자를 위한, 신자유주의적 강자의 대한민국은 단 하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현 집권세력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신자유주의는 권위주의적 독재정부와 위계적 재벌과 한쌍을 이룬 채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는데, 모든 노조가 악인양 치부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고 정치적 힘을 구축해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집회·시위의 자유마저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실현되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바로 그러하다. 내일 집회에서 폭력이 나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말하고자 하는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박근혜와 그 일당들은 총선을 앞두고 10만 명 이상이 모인 집회가 두려운 것이며, 그들을 폭력집단이자 테러리스트이며 체제전복세력으로 몰아서 비슷한 집회를 원천봉쇄하지 않으면 총선 압승과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박근혜와 그 일당의 독재적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상황에서, 부와 권력의 자발적 노예와 추종자들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적 독재와 역사마저 되돌리는 무한퇴행에서 벗어나려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정치의 중심에 자리잡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헬조선인 이유가 60가지(겨우 60가지라니!!)나 댈 수 있는 것은 슬프고도 부끄러운 시대의 자화상이다. 60가지 이유를 댈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욱 슬프고 부끄러운 것이리라. 투표할 때만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선거만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교통혼잡처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집회·시위의 자유에 제한이 가해질 때 민주주의는 무조건 죽는다. 토크빌을 비롯해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민주공화국의 핵심'으로 주목한 미 수정헌법 제1조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롭게 집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불만 사항을 시정하기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건강이 좋지 않아 내일(아, 지금은 오늘)의 집회에 참여할 수 없지만 마음만은 함께 할 것입니다. 12월16일에 종합검사 결과가 나오면, 그래서 건강에 전환점이 생기면 블로그 활동을 점차 늘려가도록 하겠습니다.

 

        

 

 

                                                       

  1. 불루이글 2015.12.05 08:36 신고

    건강이 좋지 않으신대도 이렇게 시국에 대한 걱정을 하고 계시니 짠하네요
    지금 국민들이 시위를 통해 아우성을 치는 것은 외면하고 뜻을 왜곡해 폭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시위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이유에 귀를 기울이도록 방향을 유도 해야 하는 언론들은 모두 정부가 이끄는 대로만 포커스를 잡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언론이 죽어 버린 사회가 되버렸습니다.
    도렁님 건강 조심 하시고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12.07 09:49 신고

    토요일 집회가 폭력없이 평화적으로 끝나니
    온 매스컴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렇게 불법,폭력을 이슈화 시키더니...

    항상 건강 유의하세요




중대한 판결이었음에도 1973년 낙태(를 개인의 권리로 인정한 것)에 대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의 연합’에게는 연달아 일어나는 터무니없는 일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ㅡ 미클레스웨이트와 울드리지의 《더 라이트 네이션, 미국 보수주의의 파워》에서 인용




당신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의사를 표현하는 일은 오래 전에 그만두었다.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원칙 때문에 인종주의자나 고집불통, 동성애 혐오자로 불리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람들을 공평하고 또 정직하게 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옳은 일과 그른 일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다.



위의 인용문은 미국 우파의 풀뿌리 조직인 ‘티파티’의 지도자 중 한 명인 글렌 벡의 《글렌 벡의 상식》에 나오는 내용으로, 공화당의 주류로 떠오른 기독교-신보수주의의 배타적인 신념이 고스란히 묻어나옵니다. 그들은 ‘인종차별과 원리주의, 동성애 불허’가 하나님의 뜻이자, 악에 대한 성전이라고 주장합니다.





궁극적으로 연방정부를 폐쇄시키는 것이 목표인 기독교-신보수주의 교합의 특징 중 하나가 좌파의 전략과 전술을 차용해 기독교의 복음주의 문화운동으로 대체한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낙태와 동성애 반대 운동’입니다. 그들은, 매케인의 러닝메이트였던 사라 페일린이 주장한 것처럼, 강간(근친상간과 집단성폭행까지 포함)으로 인한 낙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종파인 청교도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은 동성애를 낙태와 함께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악한 일’이자 헌법에 반하는 ‘그른 일’이라고 주장하며, 폭력과 테러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은 미국에 상륙한 청교도들이 신의 이름으로 5,000만 명의 원주민(인디언)을 죽음으로 몰고 갔듯이, 낙태와 동성애도 멸종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이런 논리가 극단에 이르면 애를 낳지 않는 여성들도 멸종의 대상이 된다).



이들의 막가파식 성경 해석이 얼마나 궤변에 해당하는지는, 창조주가 모세에게 내린 십계명에 반하는 고의적인 총기사고를 옹호하는 논리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들은 '살인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반하는 고의적인 총기사고를 옹호하기 위해ㅡ살인을 계속하기 위해 총을 쏜 자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총기에 있다는 궤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통진당 해산과 아청법 합헌 판정을 내린 (정신 나간) 한국의 헌법재판소처럼, 보수 편향적인 미 연방대법원이 식민지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뿌리 깊고 극단적인 낙태와 동성애 혐오와 반대를 무릅쓰고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내린 것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에 준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1》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헌법과 종교의 나라인 미국에서, 그것도 두 개의 가치를 지탱해온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 합헌 판정’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보수 성향의 이중개념자 엔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선택이 결정적이었습니다(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에서 나왔다). 



올 4월에는 천년 이상 지속해온 이성 간의 결혼에 무게를 두는 듯했던 그는 ‘결혼이 사랑과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최고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동성커플이 이러한 결혼의 이상을 경시한다고 볼 수 없으며, 그들도 결혼의 최고 이상을 존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라며 동성결혼 합법화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예수의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의 과학적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의미에서의 사회주의)를 동일시하며, 진화론마저 ‘타락한 진보주의 과학자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기독교 우파는 ‘다름을 틀림’으로 보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신의 섭리마저 거부하는 타락한 진보주의 대법관들이 저지른 ‘그른 일’로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선악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는 진보의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이번 판결의 인류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란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이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었던 이중개념자 케네디 대법관을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도록 설득한 것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은, 어떤 사안에는 보수적이고 다른 사안에는 진보적인 이중개념자를 향해 우측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가치의 정당성으로 그들을 설득해 좌측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진보가 정치적이고 법적인 승리를 위해 우측으로 옮기면, 바로 그만큼 진보적 가치는 보수화되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은 그렇게 기울어지고, 경사는 심해지는 법입니다. '종교가 정치와 만나면 사회에서 피바람이 분다'는 인류의 경험적 성찰도 운동장이 기울질수록, 그래서 사랑과 관용, 자비와 포용이 자리할 수 없는 극단의 세상만 번성하게 됩니다. 종교의 최전선에서 신의 창조는 진화의 법칙을 만든 것이며, 미세조정만 자리하는 진화의 법칙에 따라 지금도 창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모조리 무시합니다.     



종교의 보수화가 정치의 보수화보다 더욱 무서운 이유는 세상의 모든 것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재단하는 아전인수격 마녀사냥에 있습니다. 이들의 외눈박이적 행태는 '사람의 아들'로 이땅에 와서, 차별받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공적생활 3년의 가르침마저 훼손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2015.06.29 08:13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19:17 신고

      사실 동성애는 인류의 시작부터 있었습니다.
      신이 창조한 인간에게는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이 다 있어서 동성애자도 나올 수 있습니다.
      진화론적으로 봐도, 분자생물학과 뇌과학을 보더라도, 기타 첨단 과학들에서 밝혀진 것은 동성애적 기질을 지닌 것이 천부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의 인권과 행복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누구에게 넌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선악이 구별될 수 있는 것에 한정됩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그 진화의 과정은 자유의지에 맡겨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그런 신의 넓은 선택을 믿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6.29 08:55 신고

    인간은 만인이 평등하다는걸 확인시켜 주는 법안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19:19 신고

      종교는 개별적 신앙의 세계입니다.
      다양한 종교가 있듯이 결혼도 다양한 선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천부적으로 동성에 끌리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인권이고 자유이고 권리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평등한 것이지요.

  3. 김성순주임 2015.06.29 11:13

    늙은도령님 화이팅!

  4. 2015.06.29 11:15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19:21 신고

      참고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점에서는 매우 게을러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도 벅차기 때문에 해야지 하면서 마냥 미룹니다.
      감사합니다.

  5. 참교육 2015.06.29 12:35 신고

    역사는 수구보수의 반동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살아 있다는 뜻은 역사가 반동이 아니라 진보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느리기는 하지만 천천히... 그게 역사 발전이지요. 동성애법도 만찬가지고요.

    • 늙은도령 2015.06.29 19:23 신고

      교육이 할 일이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평등하고, 자아를 속이지 않고 숨길 필요가 없는 인권과 자유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고, 다름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런 다름에서 창조적인 에너지가 나옴을 배울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사랑과 행복을 찾아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가치라고 믿고 있습니다.

  6. 개독인 2015.06.29 13:55

    저는 합법화에 반대합니다. 기독교인이 철저하게 못되먹었고 이기적인 것은 사실이고 그들이 선한 일을 악한 행동으로 막으려니 욕을 먹고..어떤 일이든 정당하지 못한 일이 되어버립니다.그러기에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지금의 한국 기독교는 권력에 편승하고 아부하고 돈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선한 일이라 해도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나 또한 개독인으로서 깊이 반성하고 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진국이 합법화를 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은 아직 어느 곳도 알리려 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한 번쯤 다른 방향도 봐야하지 않을까요? 어린 자녀에게 동성끼리의 성교육도 시켜야하며 그에따른 각종 질병도 감내하고 종교에서 그들을 죄라고 명하기 힘듭니다.. 종교는 말 할 권리가 없습니다. 종교는 그렇다치더라도 부작용이 무엇인지 알아보셨는지요? 해외 사이트에 정당하게 알리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을 간섭하려는게 아닙니다.. 제발 다른 부분도 있는지 먼저 살펴 주십시오..

    • 늙은도령 2015.06.29 19:34 신고

      동성애를 권장하는 합법화가 아닙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을 골고루 나눠줬습니다.
      그러다 보니 태어났을 때부터 생리학적 성과 다른 기호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신의 선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결혼하고자 하는 것인 인간으로서의 욕구이며 그것이 비록 소수라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부터 동성애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동성애는 그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것을 사회나 특정 종교적 계율만으로 이단시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신이 창조한 인간이고 스스로의 삶과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소유자입니다.
      그들은 사랑과 결혼의 가치를 정직하게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선택을 법이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박해받는 것을 막자는 것입니다.
      이성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동성애는 언제나 소수입니다.
      그런 소수도 동등한 권리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입니다.

  7. 앨리스 2015.06.29 20:58

    도령님 멋지세요^^
    사랑과 평등의 품격있는 정신세계의 향이 퍼져나옵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22:06 신고

      감사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했을 뿐인데요...

  8. 사랑맘 2015.06.29 23:29

    저는 늙은도령님의 글을통해 신지식(?)을 많이 접하며 존경하고 감사하고있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아래 댓글을 보고 짧은 제생각을 나누고 싶어서요.
    신의 넓은 선택이라고 하셨는데 그 보이지않는 신이 인간에게 지킬것을 명하신 율법에는 동성간의 사랑을 금하신 것을 아시지 않나요..?
    그 법에 따르지 않았을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유튜브에 소개되어 있는 동영상을 통해 본적이 있습니다..
    동성간 사랑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할 때 사회와 가정에 미치게될 수많은 파장과 소수인권보호를 이유로 또다른 이들이 받게되는 역차별..
    말로 다할수없는 이런 폐해를 신이 아시기에 미리 법으로 금하신것은 아닌가..이 또한 신의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늙은도령 2015.06.30 02:09 신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수많은 성경의 내용들은 천주교가 유럽을 지배하는 천 년 가까운 동안 많이 변했고 수정됐습니다.
      성경에 나온 수많은 주장들이 과학적으로 틀린 것으로 밝혀졌을 때마다 성경도 그 해석이 변해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과학을 연구하는 신학자의 연구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현대과학이 성경과 충돌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의 추세는 신의 창조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과학적 성과들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최소 개입론이라고도 하는데 신의 창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최전선에서는 이렇게 과학과 변하는 세계와의 접점을 찾아 종교의 존재와 가치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견해는 일반 신도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열려 있으며 과학적 발견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식 싸구려 기독교 복음주의는 대한민국에서만 기승을 부릴 뿐이지 다른 나라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또한 전 세계의 종교과학자들은 유튜브 영상에 나온 것 정도의 낮은 수준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기독교는 특정 국가의 특정 지역에서 번성하는 종교로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예수의 가르침을 상당히 바꾼 바울의 진실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유태인이었던 그가 예수가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 부활하기까지 공적 생활 3년 동안 설파한 내용을 유태적 색채로 많이 바꿔놓았으니까요.
      종교사와 종교과학을 깊이 공부하다 보면 한국의 기독교 우파는 기독교를 죽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가 역차별을 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네요.
      어떤 부분에서 역차별을 만드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이 이성결혼을 폄하합니까?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부추깁니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적 정체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어떤 사회적 사안을 보고 받아들이는 자세와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고, 그것이 타인에게 억압적이고 무력적인 공격이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종교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있는 것이지 신을 찬양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그 자체로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경험한다고 해도 제대로 이해조차 못할 것입니다.
      죽어서 갑자기 인간의 영혼이 신의 영역에 이른다면 인류의 역사가 이렇게까지 흘러오지는 않았겠지요.
      또한 지구라는 행성도 수명이 있습니다.
      수십억 년 이후에는 지구라는 행성이 사라집니다.
      모든 행성은 그렇게 수명이 있습니다.
      신의 창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그런 끝이 있는 세속적인 것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한 번 뿐인 삶에서 대체 어떤 것까지 간섭하고 제한해야 신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것일까요?
      어쩌면 인류는 21세기 내에 모든 생명체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 그리 대단한 것 아닙니다.
      서로 간에 평등한 존재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인간이 명백한 악이 아닌 이상 다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대체 무슨 권리로 지구 전체를 멸망의 길로 이끌어간답니까?

      종교나 신앙을 가장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맹신입니다.
      맹신은 절대자 신을 따른다는 점에서 단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렇게 맹신으로 만들 것이라면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유의지부터 수없이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이토록 집요하게 선택의 폭을 줄이는 것이라면 그런 신을 믿을 생각은 없습니다.
      최소한 제가 믿는 신은 그 이상입니다.
      제 생각이 잘못됐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그것 가지고 현실의 삶을 맹신의 자세로 살 생각은 없습니다.
      최소한 인간으로 사는 동안에는 절대적 존재에 대해 분명한 믿을 가지되, 그것 때문에 나와 다른 인간들의 선택과 행복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인간적이지 못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봅니다.
      영생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순간을 사는 것인데 왜 이렇게 가르고 나누고 죄인을 만들어야 합니까?
      예수는 하늘에 부를 쌓으라 했는데 오로지 외형 경쟁만 하는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에 질릴 만큼 질렸습니다.
      정말로 인간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살펴보십시오.
      그들을 비판하고 살기에도 힘겹습니다.
      신은 개개인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믿음이 제 신앙의 핵심입니다.

  9. 가난한여행자 2015.06.30 02:16 신고

    한사회 소수자에 배려가 한사회 민주화 수준을 말하는것같네요
    한국사회 동성은 10%정도라고ㅍ합니다

    나도 한부문에 있어서 소수자 있을수있습니다

    이들을 비난하기전 기득권 ,,특히 새누리당이 우리사회를 망치는 집단이 아닐까?

    새누리당 성사건 ..권력이용한 70세 박희태가 손녀같은 캐디에 성희롱 사건 눈감아주는 것이 더문제입니다

    나는 새누리당을 거대악으로 보고있습니다 ,거기에 몸을담고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주머니을 터는 도둑이지도 모르고 무조건 지지하는 국민들 ,,

    이집단은 모든 나쁜것에 관련안돼는게 없네요
    역사적으로볼때 이런 쓰레기 집단은 찿기 힘듭니다


    찰스다원을 이용한 사회진화론은 이제 폐기되어야합니다
    이것에 가장큰피해자는 우리입니다 ,,일본의 한국통치수단,,,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글이네요

    • 늙은도령 2015.06.30 02:15 신고

      베야민의 글을 읽어보면 사회진화론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 명쾌하게 밝힌 내용이 나옵니다.
      적자가 생존한다는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원시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못한 지옥으로 몰고 가는 폭력의 정수입니다.
      적자가 생존할 가치가 있다는 것은 신은 언제나 강자와 함께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만들어내고, 어떤 침략행위도 정당화합니다.
      적자란 모든 상황에서 살아남을 힘과 지혜를 가진 자로 치환될 수 있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해집니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최악의 수준까지 떨어뜨렸습니다.
      다윈보다 한 달 먼저 진화론을 완성한 윌리스가 귀족계급이이서 각광받을 수 있다면 진화론의 핵심이 공존의 협력과 적응에 있다는 것이 됐을 것입니다.
      윌리스의 진화론은 자연과 환경에 적응하고 그에 맞춰 갈 때 생존하고 대를 이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협력과 공존이 진화의 핵심이라는 것이고 이는 인간이 만들어지는 세포와 각종 장기들의 작용과 동일합니다.

  10. 머무는바람 2015.06.30 14:36 신고

    간만에 들어 왔어요 ^^

  11. 마르투스 2015.07.02 19:50

    동성애자 세계에서 나와 치료받은 사람이 들려주는 동성애의 실상을 제대로 아시면 생각이 많이 바뀌실텐데요.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것이 어떤것인지 한번 연구해보십시요 우리의 현실이 종말의 끝에 있다는걸 깨달으실 겁니다

    • 늙은도령 2015.07.02 20:29 신고

      몇 명의 예로 수백 만 명의 사랑을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성애를 하다가 삶이 추잡해 동성애를 한 사람도 있으니 그런 식으로 일부의 사례를 전체에 대입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세상을 종말로 이끌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이성애가 압도적으로 많고, 종말이 온다면 동성애자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배제, 독선과 아집 때문입니다.

  12. 멜카 2015.07.23 12:06

    흠... 주인장님은 성당 다니시는 것으로 알았는데요. 가톨릭은 동성애를 금지하지 않나요?

    그리고... 진정한 문제는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현행 유지가 가장 좋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상대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하든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죠. 한국은 동성애를 합법으로, 불법으로 규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행유지가 좋은 것이고요.

    지난번에 동성애자들이 서울시청을 점거하고 인권헌장 통과시켜달라고 했을 때 유시민씨가 한국은 동성애를 금지한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동성애 자체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동성결혼 합법화나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오히려 역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이 반대한다고 언급하는것만으로도 차별이 될 수 있으니까요. 미국이나 구라파에는 그런 사례가 많다지 않습니까.

    일례로 크리스트교 계열의 종교에서는 많은 교파들이 동성애를 죄라고 지적합니다. 근본주의적 해석이든 무엇이든 성서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을 수는 있어도 성서에 나온 문자가 후기에 맞게 수정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해놓고 신에 대한 죄라고 언급되는 부분을 뒤집기가 어려운 것이겠죠. 그렇다면 그들은 신앙과 양심에 따라 그것이 죄라고 믿는데 그런 자들이 자녀들이나 종교 내 지인들을 향해(혹은 그들을 위해) 그것이 문제가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불법이 된다면 그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시끄럽더라도 이 상태가 가장 좋은 것이지 뭔가를 매듭지어서 해결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6.02.29 07:39 신고

      카톨릭도 낙태를 금지하지만, 제2차 바티간공의회를 통해 예외조항이 생겼고,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르러서는 동성애에도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가 성전과 성서의 해석을 정치와 사회에까지 적용하면 피바람이 멈춘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2016년입니다.
      종교도 4000년 전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예수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왔지 서로를 갈라놓고 배척하고 차별하라고 오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텔레비전이 오락물을 전달한다는 점이 아니라 모든 전달하는 내용이 오락적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ㅡ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에서 인용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된 지금에도, 거의 모든 정치학자들과 언론‧방송학자들은 텔레비전이 정치에 미친 영향이 측정불가능할 만큼 크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인터넷과 SNS에 익숙한 세대가 사회의 주축을 이루면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터넷과 SNS 상에서 다루어지는 컨텐츠의 원천이 거의 다 TV에서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해 다루었기에 이번 글에서 그에 대한 근거를 대는 것은 필요없으리라 봅니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일반화된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는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정치행위의 상당 부분이 돌아갑니다. 《죽도록 즐기기》의 저자, 닐 포스트만의 주장처럼 텔레비전은 자본과 권력의 광고와 협찬, 지원 등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의 정수입니다. 권력과 자본을 위해 돌아가는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텔레비전이 한 몸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형편없이 떨어뜨린다고 해서 ‘바보상자’로 불리는 텔레비전이 처음 도입됐을 때, 정치인과 언론학자들은 전혀 다른 예상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텔레비전이 만들어낼 세상에 대해 온통 장밋빛 전망만 내놓았고, 정치의 수준과 민주주의가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방송생태계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칭찬들이 난무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대통령의 아들) : 텔레비전이 정치를 집안으로 가져옴으로써 ‘국가정책을 이끄는 사람들과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나라 전체에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유권자에게 더 지적이고 일치단결된 행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스스로 더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오린 던랩(최초의 뉴욕타임스 텔레비전 기자) : 카메라가 ‘정치의 빛과 그림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술책을 부리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 어느 때보다 말과 얼굴 표정의 진정성이 중요해졌고, 정치 지도자들 또한 우리는 투명하고 지적인 정치가 열리는 순간을 앞두고 있다. 정치 후보들이 ’과거 정치인들이 역사를 바꾸고 만들어낸 호텔밀실이 아니라 국민의 앞에서 지명될 것이다.


토마스 듀이(1944년 194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 텔레비전은 엑스레이다. 정부의 사업을 모르고 있다면 그 날카로운 광선과 극명한 사실성을 오래 버틸 수 없다. 정치 운동에서 건설적인 진보를 이뤄낼 것이다.


제조업체 : 최초의 텔레비전 출시를 알리는 신문광고 중에는, 텔레비전이 보통 사람들에게 정치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상품의 이점으로 강조한 광고가 많았다(리처드 생크먼의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에서 인용).





이런 잘못된 예측 때문에 정치와 텔레비전의 불륜은 모든 가정을 파탄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텔레비전 시청자가 정치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모든 정치인들은 텔레비전에 노출되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국민을 이분법의 노예로 만들려던 박정희가 흑백TV를 포기하고 컬러TV를 허용한 것도 시대적 변화를 더 이상 거역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통치수단으로써의 텔레비전의 위력에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이재명이 연상된다).  



시청자인 국민은 그렇게 정당(계급과 계층적 이익을 대변하는, 즉 나의 이익을 대변해주는)과 정치인과의 직접적인 대면으로부터 멀어져갔고, 현장에 있는 느낌 때문에 방과 거실에 고립된 유권자로 파편화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루스벨트, 케네디, 레이건, 부시, 오바마,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1930년대 이후의 미국 대통령들은 텔레비전과의 불륜을 포기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정당의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도, 심지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알려야 하는 무소속 후보도 정치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시청자를 향해 뜨거운 구애를 해야 했습니다. 정치는 그렇게 시민들을 능동적 참여의 현장이 아닌, 자신의 방과 거실로 물러난 채 카메라 앵글 속의 정치인의 언행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유권자로 변화시켰습니다.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에 텔레비전이 들어섬에 따라 정치는 오락화되고 개인화됐으며, 이미지 마사지에 속아 철저한 검증에서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이고 즉각적인 이미지 전달을 통해 생각하는 능력을 갉아먹는 ‘바보상자’라는 텔레비전의 본질에는 추호의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텔레비전은 맹자와 플라톤이 그렇게도 걱정했던 ‘무지하고 우둔하고 멍청한’ 국민들을 양산했습니다(TV를 많이 보지 않는 1020세대는 다르다). 아주 간단한 정치조작과 상징조작, 정보와 이미지 왜곡에 쉽게 넘어가는 그런 국민 말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텔레비전의 지각방식이 인쇄를 통한 지각방식에 철저하게 적대적이고, 텔레비전을 통한 의사소통은 모순과 하찮음을 조장하고, '진지한 텔레비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텔레비전은 오직 한 가지 소리(오락의 소리)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즉, 텔레비전은 시청자가 생각하지 않도록 만듬으로써 (의심하는 기능을 마비시키며) 방송의 지배력을 높입니다. 대한민국을 말아먹고 있는 종편의 성공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텔레비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청자란 있을 수 없고, 텔레비전 없이 지내야 할 정도로 열악한 빈곤도 존재하지 않으며,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고 변질되지 않은 수준 높은 교육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우리 모두는 카메라가 잡은 제한된 각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브라운관에 비치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이 없는 집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면, 정치의 하향평준화는 극단에 이르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텔레비전 시청자들에게는 보는 것이 곧 믿는 것과 동일시됐으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우리의 속담처럼 국민들은 스크린의 포로가 됐습니다.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정치인의 표정과 동작, 말과 호흡까지 지켜봤기 때문에 그가 본 정치인이 그 정치인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인간이란 동물이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도 텔레비전의 성공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시청률조사와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진 여론조사의 활용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대중이 대단히 무지하고 비합리적이며 우리 정치가 신화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다는 증거가 축적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기에, 정치 시스템은 과거 어느 때보다 대중에게 직접적인 지배권을 주는 방향으로 재편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조작되기 일쑤인 여론조사가 정치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위로 격상된 것입니다. 



“일단 여론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아무도 그것이 파악해야 하는 것인지 당위를 묻지 않았”고, “여론조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됐습니다. 최근에는 대중을 넘어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두려워하고 바라는지를” 알기 위해 매주 다양한 여론조사가 이루어지고, 어떤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채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의 안방과 거실을 점령해버렸습니다. 



과학적이라는 전제가 붙어있기에, 일단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정치인들은 그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정치적 자살행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특정 사안과 이슈에 대해 명확한 의견이 없는 국민들은 여론조사기관에서 작성된 질문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임에도, 이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도 없이 여론조사결과는 전파를 타고 시청자에게 전달됩니다.



조작되기 일쑤인 여론조사를 권위의 원천이자 시청자를 조정하는 핵심 수단으로 장착한 텔레비전은 정치의 수준을 갈수록 하향평준화시켰습니다. 광고와 협찬의 지원 하에 모든 것을 오락화하는 텔레비전은 출발의 시점부터 시청자들을 더 멍청하게 만들도록 설계됐지, 똑똑하거나 현명하게 만들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방송종사자들은 시청자에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이 최악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국민들이 권한을 책임 있게 행사할 가능성이 적어진 바로 그 시점에 (권력과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기 일쑤인 여론조사와 텔레비전이 일반화됨에 따라)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권한이 국민들'에게 넘어가면서 정치의 하향평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텔레비전의 보급을 막을 수 없는 일이고, 여론조사를 하지 않도록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은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토크빌의 성찰처럼 “국민이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지는 것처럼, 미디어 또한 수준에 맞는 미디어만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만약 대중이 정치인들이 유포하는 신화를 기꺼이 수용하는 미디어를 원한다면, 우리는 바로 그런 미디어를 가질 수 있”으며,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친일수구세력의 영구집권을 위한 종편들과 보도채널(연합뉴스TV), 지상파3사의 활약은 무소불위의 경지에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최상의 체제로 굳어진 현실에서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와 사실(진실)이 전달되면 최상의 선택을 할 것이라는 국민신화에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국민에게 왜곡된 정보와 사실(진실)을 전달하는 쓰레기 방송들의 일탈과 막장질을 막으려면 텔레비전 시청을 최소화하고, 가짜뉴스를 필터링하는 습관을 키우고, 정치 참여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텔레비전이 삶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 당분간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이런 비관적 전망은 마냥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것에 더해 인터넷과 SNS가 텔레비전의 콘텐츠를 확대재상산하는데 머물고, 정치적 영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고 집단적 결정을 이루는 하위정치의 공간이자 민주주의의 학습장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후퇴는 피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집단적 성찰에 들었고 촛불혁명으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인터넷과 SNS가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정치적 양극단에 위치한 사람들의 감정적 배설과 언어 폭력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작동불능의 상태에 이를 것입니다. 반대의 결과를 이룩할 경우에는 민주주의는 보다 넓어지고 단단해질 것이며, 수많은 정치철학자들과 석학들이 모델링한 진정한 민주주의로서의 참여·직접민주주의가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


안철수와 이재명처럼 결격사유와 하자가 많은 인간들이 지도자급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미디어의 위력을 말해줍니다. 안철수는 TV 예능프로그램이 만든 허상이었지만 '안철수 현상'이란 새정치의 주인공으로 포장되고 인식될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은 촛불집회와 각종 광고를 통해 자신의 업적을 뻥튀기하고,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 세탁에 성공할 정도로 선전과 선동의 도구로 미디어를 활용하는데 도를 튼 정치선동가(히틀러와 스탈린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확장은 그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도 그 빌어먹을 1%의 희망 때문에 촛불혁명으로 타올 수 있었습니다. 깨어난 시민의 행동하는 양심이 1%의 희망으로 99%의 절망을 대체하는데 성공한 것이지요. 이재명도 안철수처럼 미디어(텔레비전)가 만든 허상의 정치인임을 깨닫게 된다면 작금의 지지율도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문프가 주도하고 있는 평화협정 체결은 말할 것도 없고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5.28 08:38 신고

    TV 의 순기능이 많은데 역기능적인 부분이 순기능을
    압도해 버립니다
    그것을 보는 국민들이 걸러 볼줄을 알아야 하는데 곧이 곧대로 보고
    믿으니 종편을 비롯 모든 방송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사실을 호도하기 급급합니다

    수구 언론에 반하는 방송들이 나와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28 14:42 신고

      네, 텔레비전이 정치를 망치는 것은 미국, 한국, 일본 등입니다.
      유럽은 덜한 편인데 유독 한국은 미국만 쫓아갑니다.

  2. 耽讀 2015.05.28 08:43 신고

    진보는 종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나이든 사람과 보수만 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식당이나, 병원을 가면 하루 종일 종편에 틀어줍니다.
    진보는 종편이 만들어질 때, 허가 반대 외칠 것이 아니라 진보언론과 진보세력이 온힘을 다 해 채널 하나라도 개설해야 했습니다. 조중동 중 하나라도 탈락시켜고, 그 중 채널 하나를 확보했다면 언론지형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28 14:44 신고

      보수 반동이 너무 진행돼 진보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다시 살리고 재정립하지 않으면 이런 상태로 계속갈 것입니다.
      작은 소규모 공동체를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 최상인데,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에 치이다 보니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은 절망적입니다.

  3. 뉴론♥ 2015.05.28 09:31 신고

    요즘은 1인 미디어가 많긴 하지여 블로그 미디어가 제일 낳긴하네요 .

  4. HowlS 2015.05.29 03:18 신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5. 공유의 플랫폼 2015.05.29 11:51 신고

    이명박 대통령이 저렇게 가볍과 의미없게 보일줄이야..국민수준이 그랬던것 같아요.

    • 늙은도령 2015.05.29 14:37 신고

      그렇지요, 우리는 경영과 정치를 혼동하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6. evitamins 2015.05.30 06:08 신고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글 읽으러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7. CheekyNaru 2015.05.30 18:42 신고

    잘보고 갑니당~!!

  8. 아줌 2015.05.30 19:38

    정몽준 아들이 어느정도는 옳은 말을 한듯...요. 국민수준에 딱 맞는 통령... 미디어를 갖고있죠....

  9. 그렇지? 2015.05.31 03:34

    동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31 03:47 신고

      네, 걱정입니다.
      보수 반동은 미국에서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성공했습니다.

  10. Abricot 2015.05.31 11:39 신고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11. 썸띵 2015.06.17 14:42

    오타나셨어요. 마지막에서 세번째 문단에 가길을 가질로 바꾸셔야 해요. 정독했는데 사실이고 지금도 하향평준화되는 중이라 씁슬하네요. 오락물을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도 한목 한 것 같아요.(낮은 임금에 비해 값비싼 외부활동), 저조차도 이제는 이런 장문 읽기를 꺼려한다는게 정말 무섭고 부끄럽네요. 초등생부터 이런 내용의 교육을 받으면 정말 좋겠어요.독서도 많이 하고요..

    • 늙은도령 2015.06.17 00:57 신고

      네,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타는 저의 한계이니 이렇게 정독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독서는 이제 정말로 필요한 것이 됐습니다.
      인류는 퇴화하는 쪽으로 발전의 방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12. specialist 2015.07.20 22:42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한번쯤 왜 이럴까 하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그에 대한 현상을 분석하시고 글을 주시네요...
    답답한 사람들 훈계하고 상대하시느라 피곤하실텐데 대단하십니다. 이말밖에는...ㅎㅎ

    • 늙은도령 2015.07.20 23:00 신고

      아닙니다, 저도 꾸쥰하 공부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으니 노력하는 것이지요.



세월호 집회가 폭력으로 치달아 불법이라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야만공건력에 대한 시민의 저항권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부당한 공권력의 집행에 맞서는 시민의 저항권이 최근에 정립된 개념이라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정치적 자유와는 달리 시민의 저항권은 인류 문명과 거의 동시에 정립된 개념입니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남자시민으로 한정됐다는 점에서 현대의 민주주의와는 구별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자유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도 근대에 이르러서입니다. 노예라 해도 어느 정도의 자율성은 보장됐지만, 현대적 의미의 자유는 근대국가와 거의 동시에 정립된 정치사회적이고 법률적인 개념입니다. 그 바탕에 저항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침해불가능하고 양도불가능한 천부인권과 대부분의 국가가 헌법으로 보장하는 기본권은 거의 다 피통치자들의 혁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토크빌의 《프랑스혁명과 앙시엥레짐》과 《미국의 민주주의1, 2》,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을 비교분석한 아렌트의 《혁명론》 등에서도 자세히 나와 있지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기본권은 수많은 피통치자의 목숨과 희생, 피와 땀, 세금을 내고 전쟁에 참가하는 대가로 회득한 것입니다.



국가에 절대주권을 (최초로) 부여한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도 자신의 생명이 위협당할 경우에는 국가를 부정하거나 전복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동양에서는 맹자가 ‘백성이 제일 귀하고, 그 다음이 나라고, 가장 가벼운 것이 왕’이라며 ‘왕이 잘못에 대해 간언을 듣지 않으면 바꾸라’고 함으로써 혁명권과 저항권을 인정했습니다.



자유주의자인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1, 2》에서 당시까지의 역사가 승자와 강자에 의해 저질러진 대량학살과 국제전쟁범죄의 역사였다며, 향후의 세상이 절대다수의 약자들이 주인이 되는 열린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는 또한 피통치자가 통치자를 뽑는 것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실정할 때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을 놓고 미셀 푸코와 노엄 촘스키가 대담(《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을 하면서 푸코는 최소한의 폭력만, 촘스키는 그것이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면 상당 수준의 폭력도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정치철학자와 사회학자들 중 대다수가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통치자에 대한 피통치자의 폭력적(비폭력이 우선하지만) 혁명과 저항을 인정하는 체제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헌데 새누리당과 보수언론, 종편, 지상파3사, YTN과 연합뉴스TV 등이 세월호 집회가 폭력적으로 변질돼 광우병 집회(정확히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집회) 때와 비슷하다고 왜곡된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실상은 다릅니다. 경찰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차벽(명박산성보다 심했다)을 치는 불법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경찰과 사복경찰들(폭력행위를 유도했다는 보도도 있다)은 유족의 눈에 캡사이신을 뿌리고 문지르고, 물대포까지 쏘는 등 초법적 행위를 자행했습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에서 '현존하고 명백한 위협'이 아니면 어떤 표현과 집회의 자유도 막아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헌법상의 권리와 민주주의의 핵심인 기본권에 해당하는 권리행사를 아무런 권한도 없으면서도,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가상해 세월호집회를 불법으로 규정까기 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헌법과 실정법 위반이며 오로지 상대적 힘이 우위를 바탕으로 독재에 협조하는 것일 뿐입니다.  





집회를 제압하는 과정에서도 압도적인 공권력이 저지르는 인권침해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집회에 동행한 인권변호사까지 강제연행했을 뿐만 아니라, 속전속결로 구속영장까지 신청(대부분 기각되고 두 명만 발부됐다)하는 등 유신독재시대의 행태를 재현했습니다. 경찰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무시했기 때문에 폭력적인 저항을 하는 것은 피통치자의 권리이자 정치적 자유입니다.



현재 전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폭력경찰의 잔인한 무력진압을 서울발 뉴스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외신들도 세월호 1주기 집회와 성완종 리스트가 맞물리면 박근혜의 퇴진도 가능하다는 뉘앙스의 보도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외신만 봐도 경찰의 폭력성과 위법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월호 집회 참가자가 폭력으로 맞선 것은 시민의 저항권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세월호가 지겹다가나, 세월호집회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글들을 보면 이들의 인식이 얼마나 천박하고 빈민주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의와 양심, 진실과 상식, 자유와 민주주의보다 기득권에 유리한 질서만을 말합니다. 진정한 무임승차자들이 이들 같은 사람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질서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때(공권력도 마찬가지다!)만 가능한 것이며, 집회의 자유는 타인의 불편함을 전제로 한다는 것까지 무시합니다.





우리가 시민의 권리과 기본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세월호 집회처럼 불의한 권력에 맞서 피와 땀, 목숨을 바친 투쟁을 통해 이룩한 것들입니다. 그들이 세월호 집회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표현의 자유와 권리는 세월호 집회 참석자들 같은 분들의 목숨을 건 투쟁으로 쟁취한 것들인데, 세월호 집회를 욕하는 사람들은 무임승차를 넘어 공권력의 야만적 폭력까지 옹호합니다.



수천 년에 걸친 피통치자들의 저항과 투쟁, 희생을 통해 힘겹게 쟁취한 정치적 자유와 천부인권,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각종 복지제도들을 공짜로 누리는 무임승차가 부끄러워서인지, 세월호가 지겹다거나 집회가 저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모든 권력의 원천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 즉 평등한 자유의 실현이 근본인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불의한 정부에 대한 저들의 저항과 투쟁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시민의 혁명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이고, 당신들의 아이들이, 그 이후의 아이들이 누려야 할 민주주의와 기본권, 정치적 자유와 사회경제적 평등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부의 불평등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가 가능해진 것 때문에 발생했는데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니 분노가 치밀 정도입니다.





정부가 차벽을 설치하고 국제기준과 헌법 및 민주주의에 벗어나는 진압이 이루어질 경우 정당한 공권력이 아닌 폭력집단의 만행이 되기 때문에, 이에 맞싸우는 것은 민주주의와 헌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불법을 바로 잡는 데 정의의 폭력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실제로 현대의 민주주의는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전제 하의 법집행이 폭력적 수단을 허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이는 대통령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평등하고 공정한 정의의 폭력입니다. 경찰과 용역, 사복경찰의 불법적이고 압도적인 힘 앞에서 죽음을 각오한 저항만이 이 땅의 민주주의와 피통치자들의 권리와 자유를 지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오늘에는 법정에 끌려간 사람이 내일에는 위대한 혁명가가 될 수 있는 것이 현대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방향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유족들은 현 정부 하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자식사랑이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정부가 진상규명을 꺼려할수록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알리고 조속한 인양과 실질적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합니다. 독재에 맞서려면 제2의 4.19혁명이나 6.10항쟁 이상의 것들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집회 참석자보다 많은 경찰을 동원하고, 차벽을 설치해 인간의 생리현상까지 불허한 경찰의 폭력진압이 우리가 저항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현 정부는 출범부터 정치적이고 민주적인 정통성이 없었는데, 이제는 독재시대에나 가능한 일들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집회에서 발생한 폭력은 불법이 아니라 야만공권력에 대한 시민의 저항권에 근거한 것입니다. 



정당성을 상실한 정권은 유효기간이 지난 불량식품과 같습니다. 정부가 폭력으로 국민을 제압하려 한다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한 치의 물러섬도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 걸음 물러날 때마다 보낼 수 없는 아이들의 영혼은 그만큼 멀어지고, 자유와 천부인권 및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 희생으로 이룩한 헌법상의 기본권은 축소됩니다, 아직도 맹골수도에 갇혀 있는 아이들의 슬픈 영혼처럼. 



지금은 제2의 4.19혁명이나 6.10항쟁 이상의 것들이 필요한 시기이지, 독재권력의 부패한 폭정에 자발적 복종을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닙니다. 억압과 착취 속에서도 세상은 돌아간다 했는데 작금의 대한민국이 그러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4.24 07:38 신고

    세월호 유가족만 아니라 장애인도 잡았습니다. 박그네정권이 어떤 정권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박그네는 스스로 종말을 향해 내달리고 있습니다. 시민만 저항할 수 있습니다. 독재정권을 끝낼 수 있습니다.

  2. 뉴론♥ 2015.04.24 08:55 신고

    세월호는 시간이 지나도 생각보단 오래가는 사건이네여 이유는 왜 그런지 모르겠어여

    • 늙은도령 2015.04.24 10:12 신고

      언제나 기억되는 사건이 있기 마련입니다.
      9.11테러도 있지만 프랑스혁명도 있지요.
      예수의 탄생도 있고 부처의 득도도 있었지요.
      어떤 것들은 절대 잊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4.24 10:42 신고

    저렇게 하다가는 거꾸로 물대포를 맞을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24 10:45 신고

      이명박근혜 7년 4월 동안 정말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제는 이런 반민주적 행정은 사라져야 합니다.

  4. 바람 언덕 2015.04.24 11:05 신고

    이와 관련해서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는 젊은 세대들의 에너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인데
    민주주의를 글로 배운 세대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많이 아쉽습니다.
    90년 대 이후로 학생운동권이 거의 소멸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회변동의 동력이 많이 실종된 상태입니다.
    젊은 세대가 폭발해야 혁명이든 항쟁이든 일어날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24 18:14 신고

      지금 젊은이들이 많이 배우고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동안 많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일베로 활동하느니 저항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같고, 특히 고등학생들은 부글부글 끓고 잇습니다.

  5. 세이렌. 2015.04.24 15:39 신고

    윗 사람들이 언제나 문제네요..

  6. 참교육 2015.04.24 16:00 신고

    그렇습니다
    지금은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고는 얽히고 설킨 현실을 바꾸가는 어려울 듯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24 18:23 신고

      지금은 혁명적인 것들이 필요합니다.
      정말 절호의 기회입니다.

  7. Konn 2015.04.25 04:05 신고

    프랑스 혁명이 아무런 폭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 이후에 이루어진 무수한 혁명과 시위, 집회에서 나타나는 폭력성, 심지어 현재에서도 그 발전된 시민의식과 진보한 정치, 사회시스템을 가진 서구에서도 집회니 시위니 하면 흔하게 보이는 것이 쇠빠따와 마스크, 그리고 불타는 쓰레기통이나 자동차인데 한국에서만 유독 폭력성 가지고 문제삼고 있죠.

    동시에 국가에서 유일하게 공인된 폭력인 공권력이 반드시, 언제나 올바른 폭력인 것도 아니라는 점도 사실이고요. 이번 강화문에서 경찰이 벌인 '불법'행위는 이미 증거까지 남아있죠.

    • 늙은도령 2015.04.25 09:04 신고

      그럼요, 이번 세월호 집회는 폭력집회가 아닌 저항권을 행사한 정당한 방어였습니다.
      그것에 대한 근거를 찾아서 유족들에게 힘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8. Cong Cherry 2015.04.26 00:50 신고

    오늘 면허시험장에 가서 수업을 듣는데,
    강사의 첫 질문이 "당신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느냐?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느냐?" 였습니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둘이 "선진국 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는데,
    강사가 단호하게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라고 했습니다.
    미디어에서 항상 좋은것만 보여주니까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거라고요.
    세월호....
    침몰하는 배에 선장이 살겠다고 수많은 생명을 나몰라라 하는 나라라고...

    사고는 일어났는데 국가에서는 항상 제자리걸음...
    헛헛한 마음 높은자리에 있는 그들이 먼저 나서서 위로하고 밝혀야지 어제 그 자리를 또 걷고 있으니,
    누군들 가만히 앉아만 있겠나요...



    • 늙은도령 2015.04.26 02:17 신고

      선진국에서 살아보지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박에 없지요.
      유럽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정권이 물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정부도 폐쇄될 수 있습니다.
      몇 년에 걸친 조사와 토론을 거쳐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고 책임자 처벌을 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나라의 틀을 바꿉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의미를 잘 모릅니다.
      단순한 예로 소방차의 앞을 막으면 무조건 처벌됩니다.
      벌금도 엄청나게 많고요.
      스쿨버스의 경우에도 절대 추월이 불가능하고 스쿨버스가 정지하면 양쪽 차선에 있는 차도 멈춰야 합니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면 과징적 벌금이 부과되고 이것을 내지 않으면 출국도 하지 못합니다.
      운이 좋아 이민갔다고 해도 벌금회수가 이루어지고, 이것을 거부하면 추방당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면에서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자유와 방임도 구별 못해요.
      국민이 집회를 하는데 차벽을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준법정신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데 이는 경찰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는 압축성장에만 매몰돼 보수언론들과 정치인들, 지배엘리트들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놨습니다.
      국민들은 무엇이 자기의 권리를 지키고 정치사회적 자유를 높이는지도 모릅니다.

      경험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막장드라마 같은 것이 지상파를 장악하는 것에서 가치가 왜곡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유학파들로 이루어진 통치엘리트는 미국에서 나쁜 것만 들여오고, 소비지상주의에 빠진 청춘들은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판단조차 못합니다.

      답답하지만, 대한민국은 뿌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정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근대이성이 창출해낸 현대성이란 즉각적인 만족을 위한 소비지상주의와 무한투쟁을 장려하기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왜곡돼 전달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인간이란 이기적인 유전자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우리는 그저 복잡한 생존기계가 아닌 스스로 운명을 창조할 수 있는 위대한 종이자, 모든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지적 존재이다. 신이라는 존재와 무한이라는 개념을 추상할 수 있는 인간이란 종은 그래서 한 명 한 명이 작은 우주이며, 곧 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예언자로서 나서는 대신 우리의 운명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해 일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우리의 오류를 항상 눈여겨보도록 우리 자신을 길들여야 한다. 권력의 역사가 우리의 심판자라는 생각을 우리가 내던져 버릴 때, 역사가 우리를 정당화해 줄 것인가에 대해 염려하는 버릇을 끊어 버렸을 때 그 때에야 비로소 아마도 우리는 권력을 길들이는 데 성공하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역사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정당화를 너무나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다.”

 

 

거의 모든 면에서 진보좌파인 나는 합리적 자유주의자인 칼 포퍼와는 몇 가지 면(특히 경제적 관점과 변증법적 유물사관)에서 일치하지 않지만, 정치권력의 역사에 대한 그의 인식과 그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래서 역사는 단순한 사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나와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혼자만의 역사와 이미 결정된 역사란 아무런 의미도 없고, 승자와 강자의 역사란 폭력의 만연으로 짐승으로 되돌아간 인간이란 종의 비극을 보여줄 뿐이다. 민주주의란 그런 세상에선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만일 위정자가 국민의 뜻에 반하는 통치를 하면, 그를 끌어내릴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며, 열린사회가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라고 했다. 위정자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도 국민이고, 그의 탈선을 막기 위해 그를 끌어내리는 것도 국민이 권력을 회수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전 세계의 위정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며, 이럴 때만이 열린사회는 점진적인 발전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발전이 가능하다.

 




알렉시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인간은 권력의 행사나 복종의 습관으로 타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 부정하다고 믿는 권력을 행사하거나, 부정하게 탈취되고 억압적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통치에 복종하게 되면 타락하고 만다”고 한 것도 매우 중요한 성찰을 제공한다. 이는 승자와 강자의 공적독점을 대체한 사적독점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구나 사적독점이 공적영역마저 사유화하는 이 시대에는 더욱더 유효하다.



‘억압과 착취 속에서도 세상은 돌아간다’고 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진정한 자유는 불멸의 가치로서 영원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자유가 없다면 인류의 존엄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경제적 평등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역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이던 정신적이던 사회적이던 간에 평등이라는 것이 탄생과 함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불평등한 부조리에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생명의 침해불가능한 존엄성과 탄생의 불평등은 다른 얘기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자로써 살아가지 않는 한 나는 타인에게 비쳐진 나일 수밖에 없다. 타인이 지옥일 수는 있어도 존재 자체와 관계를 거절할 수는 없다. 죽음마저도 자신의 삶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선택하는 가장 극단적인 저항이라고 말한, 자본주의 사회가 철저하게 배격한 위대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과소평가된 철학자로 스피노자와 함께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자이자 진보주의자였다)의 말을 잠시 빌려보자.

 

 

“타방이 있어야만 일방이 있으며, 타방이 없으면 다른 일방도 소멸되어 버린다. 양자는 서로 직접 접경하여 객관이 시작되는 데서 주관은 끝난다. 양자의 경계가 공통된 것은 모든 객관의 일반 형식, 즉 시간·공간·인과율이 객관의 인식이 없이도 주관에 의해 안전히 인식”될 수 있다.

 

 

인간은 뉴런거울신경을 지니고 있어 사전 접촉이 없었던 상대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인식할 수 있다. 나와 타인의 경계가 공통된 것은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것이 오히려 인위적이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나는 상대가 있어야 존재하며, 상대 또한 내가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주관이 타인의 주관을 억압해서는 안 되고, 나에 대한 타인의 주관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사실이라는 객관적 팩트(시간과 공간, 인과율에 의해서 시계열 상으로 진열되는 역사의 단편들)는 의미라는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만, 내가 소중한 것만큼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과 믿음이, 역사에 적시될 팩트를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곡이 없는 절대 다수의 삶의 이야기들. 최초의 모든 이들과 그 후손들 모두가 주인공인 보편적 역사의 탄생. 

 

 

이번에는 인류의 위대한 현인이며 공화국의 부활을 꿈꾸었던 정치학자의 입을 빌려보자. 그녀는 인간은 늘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인간의 조건』, 누구나 상황에 따라 악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예루살렘의 아히이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와 인류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던 히틀러의 나치를 파헤친 『전체주의의 기원』 등을 쓴 한나 아렌트다. 좌파와 우파를 떠나 오직 인간에만 집중했던 그녀의 사상은 네그리의 비판을 떠나서도 인류의 자산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다음과 같은 통찰은 어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은 역사를 상투적인 틀로 해석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란 잔악무도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례에서 전례 없는 일을 추론하거나 현실의 영향과 경험의 충격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유추와 일반화를 통해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는 오히려 우리의 세기가 우리 어깨에 지운 짐을 검토하고 의식적으로 떠맡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짐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무게에 패기 없이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현실을 아무런 편견 없이 감연히 맞서 이겨내는 것이다. 

 


내가 나의 능력에 비해 너무나 과분한 일인 인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유치하고 깊이가 턱없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나는 가능한 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최대한 알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강자와 승자 위주의 현실에 대해 아무런 편견 없이 맞설 수 있을 것이며,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나 연대를 이룰 때 그들에 맞서 싸워 이길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욱 분명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권력의 결정체인 새로운 제국과의 싸움이 어찌 간단할 수 있겠는가? 제국의 체제 논리 때문에 전 세계가 상시적 전쟁 상태에 빠져든 상황까지 고려하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어찌 그에 대적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노력하고 연대한다 해도 무적의 제국을 무너뜨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나는 모든 제국과의 싸움에 임해, 그 투쟁의 지평선을 최대한 넓히고자 한다. 더하여 이런 투쟁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그 투쟁들이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삶의 현장에서 네트워크 식으로 연결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서로의 특이성을 인정하며 공통의 가치를 창출해가기를 희망한다. 

 

 

만일 내 터무니없는 희망이 현실이 된다면 그 파급력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내가 다시 쓰고자 하는 약자들의 역사이며,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세계사의 진정한 모습이다. 부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강자와 승자의 역사에서 사라진 수많은 약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재발견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지상에서 보고 싶은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성지의 일단이라도 보여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T.E.로렌스의 《지혜의 일곱기둥》에 나오는 인용문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내 마음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며, 세월호 유족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쓰면 똑같은 마음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ㅡ특히 지식인들은 반드시 세월호 유족의 입장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슬프고도 참혹하며, 좌절하지 않는 위대한 역사를 써야 한다, 그들의 성지로 가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나는 문득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바로 순례자들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대에 걸쳐 북쪽의 민족들은 성스러운 유물에 대한 신앙심을 가슴속에 품은 채, 성지를 방문하기 위해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아랍 혁명은 순례자들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이상을 대신하여 또 하나의 이상을, 계시에 대한 과거의 믿음을 대신하여 자유에 대한 믿음을 품고, 북쪽으로, 시리아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본의 강제합병 덕분에 근대화의 초석이 마련됐다고 하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음을 밝히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미 국내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에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밝히는 작업을 선구자들의 뒤만 따라가면 별로 의미가 없을 듯하다. 따라서 1970년대부터 유럽의 발전사와 제3세계의 종속이론을 다시 연구하면서 새롭게 정립된 '신 비교사 정치경제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1970~80년대까지 방대한 자료와 문헌들을 담아낸 샌드라 핼퍼린의 《유럽의 자본주의》와, 그보다 훨씬 앞선 학자인 토크빌의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과 일련의 저작들을 '신 비교 정치경제학'을 통해 접근하면 식민지사관을 신봉하는 자들의 논리가 얼마나 허구로 가득한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식민지론을 다룬 책으로는 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가 있지만 너무 현학적이지만, 프랑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기본적으로 프랑스에서 유학한 이병도를 통해 맹위를 떨쳤던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것도 사실은 '신 비교 정치경제학'이 발전되기 전의 유럽식 제국주의의 관점을 일본의 정한론 등과 연동시킨 것에 불과하다.



또한 필자와 친척관계인 신용하 교수의 《일제 식민지근대화론 비판》과 《일제강점기 한국민족사(상)과 (중)》을 보면, 조선을 경제적으로 착취할 목적을 드러낸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과, 기또 다카요시는 정치적 식민지를 만들기 위한 정한론, 사이꼬 다가모리는 일본에 넘쳐나는 하급의 사무라이들(겐요샤 소속)을 조선에 보내 그들의 먹거리를 마련해주겠다는 준군사적이며 패거리조폭 같은 개념의 정한론이 이와꾸라 도모니와 이토 히로부미 등이 정한론을 잠시 미룬 채 '선내치 후정한'을 우선시함에 따라, 정한론이 실시됐을 때를 대비해 일본육군 참보본부 하에 '조선국사편찬부'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이 정한론이 이루어졌을 당시 한국의 역사를 철저히 말살하고 왜고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했다.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다음 1919년의 3.1운동의 열기 때문에 지나칠 정도의 착취를 하지 않은 채 하나의 일본이라는 내선일체의 방법들에 대해 소리소문없이 준비해나갔다. 그리고 한일 강제합병이 이루어진 1910년을 기점으로 조선국사편찬부의 활약이 절대적 영향를 행세했다. 그렇게 5000년사의 찬란했던 우리 고유의 문화들이 파괴되고 단절되고 왜곡됐다. 



                                      일제의 식민지약탈은 주로 전쟁 준비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특히 대동아전쟁이 본격화되고 미국과의 무모한 전쟁에 들어갔을 때까지 무려 12~3년에 걸친 전 국민과 전 국토의 수탈은 극에 달했다. 조선총독부는 전쟁자금과 금속을 모으기 위해 은수저와 일반 수서까지 쇠라면 닥치는 대로 착취했고 돈이 될만한 것은 모조리 빼앗아 갔다. 당시의 친일파로 불렸던 필자 어미님의 큰오빠(중추원참의로 친일인명사전에 나와 있다)도 자신의 재산을 상당 부분 일제에게 빼앗겼다. 일본의 총독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한 전통의 양반들도 재산을 빼앗겼다.  



일제 강제합병시기에 대한 공부가 끝나면, 그 다음으로는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박명림 연세대교수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과 《한국 1950년 전쟁과 평화》 등과 비밀이 해제된 미국과 소련의 외교문서 등의 도움을 받으면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주장들이 일부의 사실로 전체로 확장시키는 논리적 오류가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냥 책과 문서들을 읽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명백하게 나온다. 



실제 악질적인 친일 부역자들은 일제의 강제합병 36년 동안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국과 이승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 군정의 수장이었던 하지 중장은 행정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정치적 기반이 없었지만 권력욕의 화신이었던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이 땅의 통치엘리트로 더 큰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뉴라이트와 족벌언론이 이것을 이어받았다 



샌드라 핼퍼린은 무려 500여 권이 넘는 책들과 수많은 논문들을 종합한 결과 "유럽의 경제정치사가 다른 세계와 확연히 달리지는 것은 1945년 이후의 일이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그녀는 "명시적으로나 잠재적으로...'유럽적 모델'은 실제이기보다는 허구이며, 현대 제3세계 나라들과 비슷한 길을 갔고, 번영과 민주주의로 향했던 과거의, 그리고 현재의 길은 근본적으로는 내부의 계급 구성과 연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통해 분명하게 밝혔다.   



다시 말해 일제 강제합병 36년 동안 대한민국이 근대화를 위한 초석을 다진 것이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라는 외부의 식민지 착취와 일제 부역자들이란 내부의 착취 때문에 대한제국의 시기보다 오히려 퇴행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럽은 양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에 모든 시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민주주의가 정착됐고, 부의 재분배를 통해 1975년까지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선진 유럽으로 진입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메모와 노트만으로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책들ㅡ우리의 근대화와 비교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 중, 대한민국의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토지 개혁도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밝혔듯이 유럽은 물론 식민지 치하의 한반도에서도 국내외의 신흥 자본과 그들에 부역한 구체제의 엘리트들의 부를 불려주기 위한 사전 조치였음은 이미 오래 전에 밝혀졌다. 식민지 정부와 신흥 자본들이 대도시 위주의 발전을 위해 돈이 없는 소작농에게 토지를 나누어준 뒤, 이를 유지할 수 없는 소작농에게서 헐값에 사들이는 과정이 공통적으로 발생했다. 



1945년 전까지의 유럽과 일본, 1910년대 말까지 유럽보다 부유했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이 각종 자료와 통계, 연구들에 의해 상세히 밝혀졌다. 2차세계대전이 종전되기 전까지 유럽도, 일본도, 1910년대 말까지 유럽보다 부유했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야간의 시기적 차이만 있을 뿐, 유럽이나 선진 신흥국이나 제3세계나 내부와 외부의 자본과 지배 엘리트에 의한 식민지 착취가 진행됐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니 일본의 식민지로 36년을 착취당한 한반도의 상황은 어떠했겠는가? 해방된 대한민국만 친일부역자의 후손들을 중심ㅡ특히 서울대 교수들이 많았고, 역사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이병도가 그 정점에 있었다ㅡ으로 식민지근대화론이 힘을 얻었고, 족벌언론들이 이를 확대재생산했고, 이승만처럼 미국 유학파들이 정치와 경제의 파워엘리트를 형성하는 바람에 이런 '신 비교사 정치경제학'의 결실들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허면 1945년 이후 선진국으로 올라선 유럽의 국가들과, 여전히 선진국 초입에서 극도의 불평등과 대기업 위주의 정부 운영 때문에 대한민국은 사회경제적 평등에 기반하는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노동 착취가 갈수록 심해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각종 사건과 사고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다음 편에서 이에 대해 다루어보겠지만, 그 선두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맥아더와 미국 연방정부 및 좌파 전체주의의 맹주였던 소비에트 연방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날카롭게 해부했던 마루마야 마사오의 《현대정치사상과 행동》에는 "독재자는 민주주의를 이른바 바깥으로부터 공공연하게 파괴하지만, 보수는 그것을 안에서부터 조용히 부식시"킨다는 구절이 나온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공밖에 내세울 것이 없었던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에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한 역할이 바로 그러했다. 이들은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친일의 대명사들의 비호 아래 한국역사학회와 국사편찬위원회 등을 독점하며 지금의 60대부터 80대의 노인들까지 정신을 부식시켰다.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일본의 정한론과 일제 강제합병 기간 동안에 벌어졌던 민족정신 말살과 역사 왜곡에 대해서 다루겠지만(건강이 악화돼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연재할 생각이다), 아무리 이런 작업을 한다고 한들 이 땅에서 악질적인 친일 부역자들의 후손들이 만들어놓은 각종 정치경제 및 교육과 종교적인 담론들을 거둬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은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져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재에 이른 역사의 요소들은 너무나 많아서, 승자와 강장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과 절대다수의 이름 모를 사람들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이 때문에 역사의 왜곡은 천천히 오랫동안에 포괄적인 목표 하에 세부적인 계획들로 치밀하게 이루어진다. 일본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 여기에 있는데, 우리는 단점마저 극복하지 못한 상태다. 당장의 이익에만 매몰되다 보니 장기적 비전을 세울 수도, 실천할 수도 없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Elisa 2014.08.22 10:55

    아,.. 감사합니다.
    사실 교육체계의 제일 꼭대기는
    "친일파"라는 말이 이해가 잘 안되었었거든요

    자세한 설명으로
    이 부족한 머리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4.08.22 18:25 신고

      우리나라 교육부는 정말 문제가 많은 집단입니다.
      그들은 이땅의 특권층 중에서 가장 빨리 없애야 할 자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욱요.
      많은 어른들이 교육부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2. 가난한여행자 2015.05.24 23:13 신고

    이완용 마지막 노론마지막 영수 였다는것에 친일파 알기위한 핵심인것같네요
    조선은 시대정신을 잃고 개인영달을 추구하는 가운데 나라를 팔아먹는 일을 하지않았나 싶네요

    이완용이 처음 독립협회중심인물 , 친러, 친미 를 옮겨다니면서 마지막 귀착점은 친일,,,

    마지막 제국주의 열차를탄 일본을 고종, 노론들은 일본을 새로운 명나라로 생각하고 나라를 넘긴것 같네요

    박정희가 친일, 민족사회주의. 친미 한것은 같은것이라는생각입니다

    청산되고 단죄될사람이 우리나라 역사 주인공이된것이 비극입니다

    2015년 오늘도 어둠의역사에서 나온 쓰레기들이 이나라를 좌지우지하는것이 한국의 비극이네요


    이명박, 박근혜는 나오지 말아야할 악성 변종 바이러스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25 00:55 신고

      고종은 일본과 저항했다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문제는 서구문명을 추종한 자들이 이완용을 포함한 5적이 조선을 일본에 팔 때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한제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어차피 무너질 나라라면 그들의 이익을 챙기는 쪽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미국(특히 멕아더)의 판단 미스로 남북한이 갈라지면서 친일부역자들의 80%가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들이 새누리당까지 이어져왔고, 이명박근혜 정부의 탄생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서운 것은 보수 반동을 이끌어낸 이들의 운동은 계속된다는 것이고 진보는 그에 대응할 만한 운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3. go to hell 2015.07.12 02:21

    친일파 개떼를 당연히 때려 잡아 모가지를 도려내야 하지요.

    그러나 이완용, 송병준 등등 그것들이 아무리 뛰고 날아 다니는 왜놈의 개떼라 해도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머슴들.

    주인은 바로 고종임금 이었어요. 그 냥반이 왜국에 통째로 넘겨준거...부끄럽고 치욕스럽지만 사실입니다.

    어떤식으로든 쥔의 싸인없이 성립되는 계약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읍니다.

    그래서 왜놈들이 이걸 빌미로 을사늑약이 합법이라고 강변하는 이유인걸 가르치지 않아서 이땅의 우린 모릅니다.

    왜놈들 역사를 가만 들여다보면 칼부림 전쟁만 하던 야먄인들이라서 자기가 약하면 바짝 엎드리고 자기가 강하면 기습합니다.

    걔들 의식속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원래부터 없어요. 기왕에 죽을거라면 수고를 안하도록 빨리 죽어달라고 하는것들이 걔들...

    따라서 잔대가리에 잔수작 부리면서 뒷통수 치는데는 천재.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직 후 아배란놈 하는 개소리 기억하시지요?

    한국에선 forced work에 대해 이의제기가 없었다라는...

    제 생각엔 다른거 없어요. 부끄러운것도 우리역사. 사실대로 정직하게 가르치고...

    기회를 봐서 왜국전체를 초토화 시켜서 우리가 당했던거를 그대로 만배로 되갚아서 영원히 주저앉게 하는것 뿐...

    소생은 그렇게 생각해요.

    • 늙은도령 2015.07.12 15:39 신고

      고종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서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시대의 고종은 어쩔 수 없는 것들도 많았구요.
      안타까운 시대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내각이 맺은 이전 유네스코 문제는 우리가 당한 것입니다.
      일본에게 또 뒤통수 맞은 것이지요.
      박 정부가 원래 무능하고, 무책임하니 이렇게 당하는 것이지요.
      일본의 반박에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니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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