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조카는 유엔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반기문을 최고로 존경했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의 유럽법인장 발령과 함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올해에는 영국에서 복지정책학을 전공하게 된 조카는 독일과 영국 및 유럽국가들이 반기문을 어떻게 보는지 알게 되고, 그 이유까지 이해하게 되면서 생각이 180도 달려졌습니다. 조카는 반기문이 대통령에 출마하면 귀국해 1인시위라도 하겠답니다. 





조카는 미국의 보수언론까지 포함해 전 세계 유수의 언론들과 학자들이 반기문을 '역사상 최악의 사무총장', '보이지 않는 사람' 등으로 비판하는 이유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이지요. 조카는 UN의 사무총장으로 반기문이 한 일들과 각종 연설문들을 살펴보면,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양성평등과 소수자 권리에 소극적이거나 전근대적인 행태를 드러낸 반기문(이 때문에 북한 출신이라는 오해까지 받았다)을 볼 수 있다며, 한때나마 그를 존경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자책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반기문의 정체를 파악해가면서 진보적 자유주의에 눈을 뜬 조카는 평생의 전공으로 복지정책학을 선택했습니다. 최근에는 필자의 권유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보다 더 많은 시대적 함의를 지닌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까지 독파했습니다. 필자는 조카에게 UN과 국제기구의 문제점들을 이해하려면 네그리와 하트 공저의 《제국》과 《다중》, 피터의 《불경한 삼위일체》, 맥마이클의 《거대한 역설》 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이 책들을 읽으면 거대자본과 투기금융, 신자유주의, 일방적 세계화, 기존의 열강 등에 봉사하고 그들의 이익을 챙겨주는 UN의 허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며, 역대 사무총장 중에서 반기문이 이런 역할에 가장 충실했음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UN의 산하기구 몇 개를 빼면 UN은 설립의 목적과 다른 일들을 주로 해왔으며, 이 때문에 UN의 민주적 개혁이 반기문에게 주어진 책무였음에도 결과가 형편없어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으로 평가됨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조카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가장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며 친자본적인 외교부 출신의 반기문이 '기름장어'라고 회자되는 이유는 '미국의 꼭두각시 역할'에 충실했으면서도(스노든 비판이 대표적), 이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교관료 출신의 공통점인 '이어령비어령'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처럼 책임지지 않는 지도자의 전형입니다. UN사무총장으로서 반기문은 각국의 이해를 반영하고 조정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했음에도, UN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미국과 (미국의 국방비를 대납해주는) 일본처럼 UN 대주주의 이익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리더십이 형편없는 그는 UN의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미국과 일본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지 않고, 상임이사국의 전횡을 견제해야 할 사무총장으로서 쓴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분담금이나 기부금을 많이 내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아동인권박해국에서 빼주는 등 UN의 정신을 망각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자신의 자리지키기에만 연연했던 인물입니다. 이것 때문에 반기문에게 요구됐던 시대적 과제였던 UN개혁에도 실패했습니다. 



반기문이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으로 비판받는 것도 이 때문인데, 그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이르러서도 이리재고 저리재는 간보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도 전문관료 출신의 한계를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계 유수의 언론과 학자들의 공통된 분석에 따르면 강자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입국들의 뜻을 모으기보다는 적정선에서 타협(냉정하게 말하면 굴종)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반기문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통적인 관료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이며 반인권적 성향이 강한 인물입니다. 이 때문에 UN 직원들은 반기문의 눈치를 봤으며, 밖으로는 열강들의 눈치까지 봐야 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어서 소통을 불편해 합니다. 자본과 시장에 친화적이고 위계서열을 중시하며, 권력지향적이면서도 책임지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대한민국이 박정희 것인양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딸인 박근혜가 나라를 말아먹어도 용서해야 한다는 콘크리트지지층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는 다 가지고 있는 최고로 성공한 외교관입니다. 



반기문은 외국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순방하며 적극적인 유세를 해주었기 때문에 UN사무총장에 올랐음에도, 멍청하고 한심했던 정동영과 조중동의 대국민사기질 때문에 이명박이 대통령에 오르고, 취임 이후에는 권력을 총동원해 노무현 죽이기에 나서는 바람에 봉하마을도 방문하지 않은 비겁하고 패륜적인 자입니다. 그가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오른다면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세력을 청산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부패한 기득권세력이 판을 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촛불의 꿈은 산산조작나는 것을 넘어 탄압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반기문은 UN사무총장으로서 공적 활동을 끝내는 것이 그에게도 좋고 국민에게도 좋고 대한민국에도 좋습니다. 내각제 개헌(기득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을 고리로 노역의 권력욕을 탐한다면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반기문은 대한민국이 낳은 UN사무총장으로 기록되면 최상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족함을 아는 자가 군자라고 했고요. 정치철학과 시대정신이 확고하며, 촛불의 명령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인이 아니라면 다음 대통령으로서는 자격미달이자, 이명박근혜 정부의 연장에 불과합니다. 불평등과 차별이 민주주의마저 고사시켜버린 현실을 감안할 때, 다음 대통령은 무조건 진보적이고 좌파적이되, 반권위주의적이어야 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전 세계의 반응은 독재자의 딸을 선택한 대한민국 유권자들을 비판했고, 조롱까지 했습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알려졌을 때,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을 때, 국정교과서로 회귀했을 때, 위안부협상에 합의했을 때 그리고 박근혜 게이트가 폭로됐을 때 전 세계의 반응은 똑같았습니다,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자업자득이라고. 박근혜에 못지않을 정도로 나쁜 평가를 받고 있는 반기문까지 대통령으로 뽑으면… 아,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최소한 기본이라도 합시다. 1020세대와 미래세대에 부끄러운 일, 그만 좀 합시다. 제발!!!  




P.S. 유시민은, 고마움도 모르는 자라고 욕을 먹고 있는 반기문이 이명박의 정치검찰에 박연차로부터 23만달러를 받은 사실이 포착되는 바람에 노무현의 봉하마을을 방문하지 못했다고 변호해주었는데, 이 글은 그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23만달러 받은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기에 반기문이 나쁜 놈은 아니라는 유시민의 변호는 그 부분에서만 유효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6.12.29 22:12 신고

    정말 그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히 우려되는 총장"입니다~

    자업자득이죠. 아마 검증단계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 굉장히 저평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6.12.29 22:20 신고

      검증단계가 짧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박근혜 탄핵의 최대수혜자가 반기문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기대선 때문에 냉혹한 검증을 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해찬과 안희정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12.30 08:58 신고

    욕망의 화신입니다
    그나마 그자리에서 물러난후 초야에 묻혀 살았다면 더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뭘 더 해 보겠다고..쯪쯔
    욕심이 많은 사람..절대로 정치를 하면 안됩니다
    이번에는 국민들이 정말 제대로 된 판단을 햇으면 좋겠네요

    • 늙은도령 2016.12.30 16:38 신고

      기성세대와 노인들이 좋아하는 타입입니다.
      보수를 대신해 결집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3. 참교육 2016.12.30 17:15 신고

    이런 사람을 모르고 있는 유권자들... 박근혜 탄핵 한번으로 끝나야지 또 탄핵을 하게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명박이나 박근혜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권자들이 깨어나지 못하는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담합니다.

    • 늙은도령 2016.12.30 22:42 신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지요.
      최대한 많이 투표해 정권을 교체하면 됩니다.
      올해 수고하셨습니다.

  4. mangrove 2017.01.02 09:34

    반기문 = 이승만 + 이명박 + 박근혜.
    이름 하여 트리플 반


1%도 안 되는 희망의 새로운 이정표는, 칼 폴라니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던 저에게 다가온 세 사람의 위대한 석학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 미셀 푸코와의 시공간을 초월한 일방적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의 한계에 갇혀 있던 저에게 세계를 보여줬습니다. 그는 근대현사의 변곡점으로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등장을 지적했고, 일련의 저작들은 저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습니다.

 

 

게다가 그 책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필두로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에게서 찾을 수 없었던 것들을 푸코는 제공해주었습니다. 구조나 사건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단절들이 세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인간의 진화가 돌연변이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그와의 만남을 통해 1%도 안 되는 희망이 마침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저에게 찾아온 뜻밖의 행운을 어떻게 세상에 돌려줘야 하는지에 관해서 하나의 모범사례를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사회와 후세대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제 능력에 비해 너무나 건방질 정도로. 

 

 

저는 속도를 올리기로 마음먹었고, 좀 더 공격적인 독서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할 수 있는 지적 구축에 전력했습니다. 제가 가야할 길은 끝이 없는 여정이 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시 수많은 지적 안내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푸코의 저작들에서 깨달은 것들을 하나씩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부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지 않는 한 하나하나씩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분명 자신감의 일종이었지만, 환상을 쫓아 제가 딛고 있는 기반을 잊지 않는 안정된 형태의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의 실질적 후원자인 동생이 유럽 법인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동생에게서 평생 도움만 받았던 저는, 제 지적 여정의 방향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저는 동생과 조카들의 성공적인 독일 안착을 위해 독일에 대한 지적 탐구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이 제가 두 번째로 맞이한 '작은 전환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일단 인터넷 서점을 통해 하이데거와 하버마스를 중심으로 독일의 석학들에 관련된 책들을 주문해서 한 권씩 독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희한한 것은 둘의 명저들을 읽는 와중에 20대 초반에 읽었던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글들이 떠올랐고, 그것이 저에게 또 한 번의 지적 성찰을 위한 도약의 발판이 됐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 저라는 놈은 지적 탐구와 성찰에서조차 계획적인 것이 허용되지 않는지, 도발적으로 독일의 위대한 현자들에서 프랑스로 건너뛰는 과정에서 미셀 푸코를 알게 되었고, 라캉과 데리다, 딜뢰즈, 가타리, 네그리, 지젝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어렵지만 놀라운 통찰의 세계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위대한 석학, 발터 벤야민이 있었고 새로운 도전의 분야도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즉흥적인 발상이며 유아기에나 할 수 있는 정서적 반발(특히 권위주의적인 것에 대한)에 불과했는데도 저는 제 지적 탐구와 성찰을 향한 마지막 스승으로 삼아야 할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제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인 ‘운명’처럼 말입니다. 일체의 폭력에 반대하는 그들의 저항정신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는 대신, 권력의 목적인 통치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해체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시키는데 집중한 위대한 철학자였습니다.   

 


미셀 푸코와 발터 벤야민, 그리고 지그문트 바우만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980년대 우리나라 운동권과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통하던 미셀 푸코의 저작들과 1990년대 전 세계를 열광케 한 발터 벤야민의 저작들, 21세기의 석학으로 떠오른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작들은 저의 지적 여정을 완전히 탈바꿈시켰습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인간을 너무 사랑하는 비판정신을 잃지 않은 불멸의 지식인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2012~2014년에 걸쳐 접하게 된 것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저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당시의 어설픈 지적 수준에서 이들 3인의 저작들을 만났다면, 저는 그들의 필력에만 감탄했을 뿐, 좌우를 넘나드는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통치술, 그리고 근대이성과 현대성의 본질과 변화에 대해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이들 3인의 책들 중에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거의 전부 다 구입해서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지만 그들의 저작들은 단 한 권도 저를 감탄시키고 흥분시키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저의 지적 성찰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지적 여정에서 진실된 의미의 전장이 마련된 것이었고, 제가 다시 살게 된 이유의 그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들 3인을 제외한 다른 석학들의 저작들을 탐구하는 것은 일종의 보너스가 될 듯합니다. 최소한 1,000여 권의 책을 돌파한 지금까지 이들 3인은 저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시에 저는 지적 탐구와 성찰의 여정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독서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지금은 정치학과 정치철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형과 동생이 고액연봉자이니 책값 걱정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제 힘으로 책을 사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도움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광고를 유치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광고를 유치하니 블로그가 어지러운 것 같아 걱정이 많기는 합니다. 그래서 후원자들을 모집할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해봤지만, 그것은 책을 출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저는 정부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저 이외의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며, 보편적 복지가 시행될 때까지 저는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은 제 삶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분명한 투쟁의 원동력을 잃지 않기 위함입니다. 누군가의 돈의 노예가 되면 제대로 된 비평을 할 수 없으니까요.





아무튼 이제야 세상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됐으니, 그것을 통해 얻은 성찰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돌려드리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도움은 최후의 순간이 아니면 받지 않으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매일 자살만 떠올리다 ‘알고나 죽자’로 방향을 튼 이후, 썩은 동아줄 잡듯 움켜진 1%도 안 되는 희망이 구체화되는 여정의 거친 스케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아무런 물질적 힘도 갖고 있지 않지만 충만한 지적 무기로 세상의 모든 영역을 부패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와의 한 판 대결을 꿈꾸고 있습니다. 한국의 수구세력들과 악질적인 친일 부역의 후손들과도 한 판의 대결을 벌일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서 한국 근현대사 서적들을 구입해서 읽고 있으며, 여러 사이트를 방문해서 지식을 넓히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노력이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공산이 유력하지만, 뭐 손해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저는 ‘알고나 죽자’에서 한 발짝도 세상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저는 제 작은 몇 평의 방에서 책을 주문해 읽고, 매일같이 글을 쓰고 있을 뿐, 거리나 세상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글을 이용한 말들을 투척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고 넘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적 여정을 통해 얻은 성찰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기에. Little, Low, Lean, 작고 낮은 사람들이 서로 기대어 세상과 맞서는 연대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에. 세상의 주인은 그들이며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역사가 쓰여진 적이 없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도 계속될 수 없었을 것이기에 저는 그분들을 위해서만 글을 씁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얘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면 작은 지적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지적인 대가는 될 수 없겠지만, 사이비 지식인은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 속고 사는 사람들의 수를 한 명이라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으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내가 다시 살게 된 이유’를 마칠까 합니다. 이후의 것들은 블로그를 통해 알려드릴 것을 약속드리면서.. 

  1. 슬픈열대 2014.08.23 01:30

    늘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늙은도령 2014.08.23 02:32 신고

      레비-스트로스가 떠오르는 아이디네요.
      슬픈 열대... 구조주의에 엄청난 영향을 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2014.08.23 08:2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23 09:36 신고

      그렇습니까?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될지, 잘 몰라서.
      제가 목표로 하는 지적공동체를 이루려면 후원이 필요하긴 합니다.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볼게요.

      며칠 내로 답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태봉 2014.08.23 13:06

    저도 응원합니다 도울 시기가 되면 돕고도 싶습니다 화이팅~~!!

    • 늙은도령 2014.08.23 13:30 신고

      고맙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글로 보답해야 하는 이유가 늘어나네요.

  4. 젊은학생 2014.11.02 07:22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요즘 건강이 더 안 좋아지셨는지 며칠 동안 글이 안올라 와있네요..
    늙은도령님의 사생활이 담긴 글을 오늘 처음 읽었습니다.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는 시간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서, 병실에 있으면서 위대한 책을 썼던 것처럼 말이죠.
    고통 속에 계셨을 시간들에대해서 제가 아무런 말씀도 드릴 수 없지만..
    때로는 고통이 축복이 되기도 하잖아요.
    (항상 고통과 축복은 같이 있다고 생각해요. 고통 속에 축복을 발견 하는 사람이 드물 뿐이죠.)
    감사하네요.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4.12.26 13:07 신고

      네, 고맙습니다.
      공부 잘 하시고 계시지요?
      지식이 힘인 세상이니 멋진 지식인이 되시길 기원할게요.

      제 인생이란 고통의 연속이어서 이제는 달관의 경지입니다.
      고통과 축복은 연결돼 있다는 말, 평생을 거쳐 실감해온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5. 두렁 2014.12.26 11:43

    단숨에 읽었습니다.

    건강하시고요....

  6. 후학 2015.02.12 03:32

    존경스럽습니다 -- 이런 말 듣기 부담스러우실지 모르지만...

    다른 이들도 앎의 길에 들어갈 수 있게
    좋은 책들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떤 저자들을 어떤 순서로 읽는 것이 좋을까요?

    • 늙은도령 2015.02.12 04:08 신고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사실 닥치는 대로 읽어나가다 하나의 체계를 갖췄기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려드리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특히 님에게 가장 좋은 방식을 알려드리려면 님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것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그에 합당한 책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기본적 공부가 돼 있으면 조금은 어렵더라도 제가 연재 중인 '근현대사'를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그 연재에는 제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이 거의 다 망라돼 있습니다.물론 철학적인 것들은 많이 뺐습니다.
      매스미디어 사회에서 영상에 익숙한 분들에게 형이상학적 사유가 필요한 언어들의 체계를 권해드리면 힘들어 하시기 때문에....
      제가 너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다 보니 한 번 추천해드리다 보면 너무 많아집니다.
      님이 가장 알고 싶은 부분을 말해주십시오.

  7. 후학 2015.02.13 03:10

    도령님께 어려운 걸 여쭤봐서 죄송합니다.
    저는 수학/공학 전공이고 역사/과학은 조금은 아는 편입니다.
    경제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은데 철학과 경제가 만나게 된다는 말씀이
    특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어떤 순서로 읽어 나가는 것이 좋을까요?

    • 늙은도령 2015.02.13 04:14 신고

      현재의 주류경제학은 대부분 쓸모가 없습니다.
      철학이 사라져버린 경제학은 그들만의 먹거리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경제학은 스티글리츠와 맨큐의 경제학 원론에 관한 책이 최고이지만, 이것까지 갈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60년대까지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최고였고, 그 이후에는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경제학 서적이 신자유주의를 이끌었습니다.
      헌데 이 책들은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소화가 가능합니다.

      경제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다룬 책은 그리 많지 않지만 장하준 교수가 최근에 낸 책이 있습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로 기본적인 경제학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스티글리츠의 <스티글리츠 보고서>와 <불평등의 대가>는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속의 철학자>는 위대한 경제학자들에 대한 거친 스케치로는 최고입니다.
      <블랙스완>과 <롱테일경제학>도 정보통신 시대의 경제학과 다양한 지식을 쌓는데 좋습니다.
      <불경한 삼위일체>는 국제기구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거대한 역설>은 성장과 개발의 역설을 가장 잘 다룬 책입니다.
      <GDP는 틀렸다>는 향후 경제학이 나아갈 방향을 잡아준 책입니다.
      <국부론>과 <자본론>은 모든 경제학의 기본입니다.
      <프렉털이론과 금융시장>은 수학자가 공부하면 좋을 미래의 경제학 서적입니다.
      <광기, 패닉, 붕괴-금융위기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거대한 전환>은 제가 읽은 정치경제학 서적 중 최고입니다.
      역사로 보는 최고의 서적입니다.
      <폴트라인>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책 중에서 정치까지 들여다 본 좋은 책입니다.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의 덫>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잘 다루었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공존의 경제학을 다룬 책 중에 최고입니다.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됐으며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는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본 역사책이라고 할까요.

      일단 이것들만 읽어도 상당한 지식이 축적될 것입니다.
      물리학은 경제학의 아버지입니다.
      철학은 물리학의 아버지입니다.
      경제에 관한 책들을 읽은 후에는 좀더 철학적이며 물리학적인 책들을 소개시켜 드릴게요.

      그리고 위에 언급한 책들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인용한 책들이 나옵니다.
      그중에서 마음에 끌리는 것들을 읽으면 자신만의 세계가 구축됩니다.
      좋은 여행이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8. 후학 2015.02.13 04:47

    도령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배워나가겠습니다. ^^

  9. 백순주 2015.08.20 06:48 신고

    지적공동체를 만드신다는 최종목표...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이미 이루셨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공간에서 하고 계시잖아요.
    다만 에너지가 모아지는 공간이 사람사는 공간이길 희망합니다. 마주하며 웃고, 떠들고, 화내고, 위로하고, 살피고, 배려하고, 나누고, 공감하고... 그리고 부비며 하셨으면 합니다.

  10. 남한강 2016.11.09 11:44

    "블로그에 광고를 유치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딴지 댓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누구나 볼 수 있는 글인데......앞 뒤 글을 보다가.......광고도 좋지만......성인 웹툰광고는.....눈에 거슬리네요....


미국의 구인·구직 정보업체 ’커리어캐스트’가 선정한 ’10대 몰락 직종’ 발표했습니다. 커리어캐스트는 미국 노동통계국의 고용전망 자료를 토대로 2012∼2022년 사이 우체부의 고용하락률이 모든 직종 가운데 가장 높은 28%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메일, 소셜네트워크 등의 발달 때문에 미래의 고용상에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를 피해갈 수 없는 직종을 선정한 것입니다.


                                                                     닐 포스트만의 저서


우체부에 이어 농부(19%), 검침원(19%), 신문기자(13%), 여행사 직원(12%)이 선정됐습니다. 그 다음으로 고용전망이 나쁜 직업으로는 벌목공(9%), 항공기 승무원(7%), 천공기술자(6%), 인쇄공(5%), 세무업무원(4%)이 포함됐습니다. 특히 항공기 승무원은 항공사별 저가 경쟁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승무원 고용이 줄어드는 것이 요인으로 분석됐습니다. 세무업무원은 각 기업이 자동 세무프로그램을 통해 세무 업무를 처리하려는 추세가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커리어캐스트에 따르면 급격히 발달하는 과학기술 때문에 많은 직종의 고용전망이 바뀔 것이며, 선정된 10대 업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커리어캐스트는 수학·통계 관련 부문과 통신·항공기정비·전자 관련 기술자, 웹개발자 등이 새롭게 부상할 것이라고 했지만 사라지는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최근의 고용없는 성장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여겼던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어느 순간일 수도 있다.



미국의 사회·언론·교육학자인 닐 포스트만은 《테크노폴리》에서 과학기술이 인류와 사회에서 빼앗아간 것을 비관적으로 바라본 프로이트의 언급을 인용했습니다. 프로이트의 언급이 항상 진실은 아니지만 고삐 풀린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세상이 우리의 기대와 다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애초에 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철도가 없었다면 내 아이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사용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만일 대양을 횡단하는 선박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친구는 항해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며 자연히 마음 졸이며 그의 소식을 전보로 전해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유아 사망률의 감소가 그 비율만큼 출산을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더구나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고 기쁨이 없으며 비참하기 그지없어 오직 죽음만을 바라고 산다면 오래 산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가? 


                                        


이런 현상이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과정이라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지배계층의 이익이 지배적인 체제를 구축한다고 했지만, 폴라니는 인간이 원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지배적인 체제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극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독점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보다 내 자신의 편리함을 중시한다면 타인의 불행과는 상관없이 과학기술 발전의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유토피아ㅡ경향신문에서 인용



닐 포스트만은 《테크노폴리》에서 이런 선택이 가능해지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자신이 연구하는 것의 결과에 대해 가치 판단을 거부한 채 기업과 자본의 탐욕에 종속되면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과 사회가 어떻게 변질됐는지 말해줍니다.   



걷잡을 수 없는 기술의 발전은 우리 인간성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까지 파괴시킬지도 모른다. 기술은 도덕적 기반을 상실한 문화를 만들어낸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정신적 과정들과 사회적 관계들을 뿌리채 흔들어놓았다. 


                       

하지만 1940~1950년대부터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를 고수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인터넷으로 발급할 수 있는 각종 서류들과 카드 발급 같은 것들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이용자의 편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해당 일자리의 유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공존과 상생의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독일 국민들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삶의 편리함보다 근로자의 일자리, 즉 소득 보존을 더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 것입니다. 



                                                            언제까지 바다 속에 방치할 것인가?



신자유주의가 가장 발달했고, 정보통신 인프라가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른 대한민국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이용자와 소비자의 편리함만 최고의 가치인양 포장하지만, 그것은 내 편의를 위해 누군가의 직업을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 놈의 빨리빨리와 단기적인 이익 극대화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고용없는 성장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또한 보수 세력들이 절대적 체제인양 떠들어대는 자유민주주의의 의미도) 기술주의문화아 테크노폴리에서는 각기 큰 차이가 있다. 사실 테크노폴리에서의 자유민주주의란 발터 벤야민이 '상품자본주의'라고 불렀던 것과 유사하다...현재 존재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사상체계에 충분한 도덕적 실체를 제공하여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제가 평등이 답이다ㅡ경제성장과 행복지수에서 자세히 다루었던 것처럼 대한민국이 1인당 GDP가 늘어나 부유한 나라에 진입하더라도 소득불평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행복지수는 결코 높아지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초래하는 변화를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구온난화와 토지의 사막화, 대규모 토지 오염, 전방위적 생태계 파괴, 수질 오염에 따른 물부족 사태, 90% 이상의 종이 멸종된 생물다양성의 파괴, 만성질환과 정신질환의 폭발적 증가, 전체 인류의 반이 하루 2달러 이하의 절대빈곤층인 이유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사회적 합의 없이 모든 분야에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지구의 탄생 이래 6번째 종말을 걱정해야 할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회적 가치가 반영된 지배적 체제를 결정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가치편향적인 주장입니다.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인류의 공존과 상생을 위해, 정의와 평화, 박애와 관용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용없는 성장, 1%에게 부와 권력, 기회가 독점되는 것이 과학기술 발전이 보장하는 테크노폴리(과학기술지상주의)라면 우리는 과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을 도구화하고 서열화하며 노동은 물론 일상의 삶까지 착취하는 과학기술의 유토피아라면 우리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사회적 문제가 가장 적게 발생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매우 느리고 조금은 더 힘들지라도.     


  1. 여강여호 2014.07.16 16:38 신고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성장이 마치 복지의 선결조건인 것처럼 떠들지만
    이미 현실에서는 실패한 정책임이 판명된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짧은 기간의 고성장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와 언론을 이용한 전방위적인 왜곡에 판단이 흐려진 젊은 세대에게 성장이 복지라는 거짓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종국에는 그들의 통치 편리성만 추구하고 있는 형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사회적 문제가 적은 길로 가는 정책이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결국 현명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2. 참교육 2014.07.16 22:08

    근대화, 성장제일주의... 효율과 경쟁, 신자유주의... 소비가 미덕이라는 성장 이데올로기시대는 이제 마감해야 합니다.
    성장 뒤에는 양극화문제와 부존자원의 한계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시장지향적인 정부는 성장이 미덕이라는 논리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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