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트윗처럼, 없는 셈 쳐야 하는 박근혜를 국민의 분노로부터 구하기 위한 기레기들의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살아있는 권력의 노예를 자처하는 정치검찰이 성완종 리스트를 없던 일로 되돌렸고, 당청정의 비호 아래 황교안의 인사청문회가 끝났으며, 책무를 포기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으니, 이제는 여왕 구하기를 위해 기레기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때 완벽하게 가동됐던 ‘박근혜 여왕 구하기’의 노하우를 살려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메르스 대란을 만들었던 대통령과 청와대, 방역당국의 무능력과 무책임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삼성서울병원에게 돌리고, 국민의 불안과 공포는 박원순에게 돌리면 가장 완벽할 터였다.



새누리당2중대 소리를 듣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포문을 열었으나,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원장도 아닌 감염내과 과장이다!)가 국가의 책임이라고 맞받아쳤다. 삼성서울병원은 삼성공화국의 오명을 벗기 위한 상징적인 존재라, 삼성서울병원을 비판하려는 야당의원의 책임 추궁에 ‘예, 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삼성서울병원의 경영진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땅에 처박힌 위상으로도 계산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는데, 메르스 대란의 희생양까지 하라는 야당의원의 다그침에 오만불손하고 제멋대로인 삼성서울병원 관계자가 곱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목가지가 잘릴 그로서는 이판사판의 심정이었으니, 정부를 향해 ‘빅엿’을 먹인 것이리라(그렇다고 소송을 피할 수 없다).





국민의 질타에 대국민사과를 하고, 억울한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메르스 대란의 시비는 가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삼성공화국이란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경제적으로 수천억은 넘을 브랜드 가치의 폭락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리라. 병원관계자들이 반드시 감춰야 할 무엇이 있었던가, 아니면 정부로부터 어떤 압력을 받았던 것이 있었던가?



기레기들이야 광고와 협찬이면 오체복지할 놈들이니, 이미 레임덕에 빠진 식물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해 모든 죄를 뒤집어쓸 수 없다는 분명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오만의 극치일까, 정말로 억울한 것일까, 둘 다일까? 하여간에 뻔뻔하고 재수없다!!). 어쩌면 상당수 국민이 박원순 시장이 삼성서울병원을 폐쇄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는 상황까지 고려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의 반발은 즉시 효과가 드러났다. 여왕 구하기에 돌입한 기레기들의 희생양 찾기가 삼성서울병원에서 방향을 틀어 다시 박원순 시장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메르스 대란의 진원지도 평택 경찰의 감염(4차감염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미스터리한 음성판정)을 기점으로 평택성모병원으로 되돌아갔다(대체 이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 삼성서울병원을 폐쇄하지 못하는 책임은 박원순 시장에게 넘어갔다고 봐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을 폐쇄하면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 확진환자가 나온 모든 대형병원들도 폐쇄해야 하는 것(이럴 경우 의료대란을 피할 수 없다. 공공의료가 형편없는 상황에서 이것은 최악의 선택이다)은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의식불명(유병언의 시신처럼 참으로 미스터리하다)은 박원순의 책임으로 돌리기에 최상의 자원이다. TV조선과 채널A, MBN에서는 ‘스트레스’ 운운하기 시작했다. 박원순 때리기에 앞장섰다 한발 물러섰던 YTN도 다시 박원순 때리기에 합류했다. 연합뉴스는 두 종편과 YTN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메르스 대란을 메르스 광풍(김무성은 지역경제 살리기, 문재인은 광폭행보)이라며 새롭게 설정된 프레임을 충실히 따랐다.



기레기들은 메르스 전염의 대체적인 경로를 파악한 이후에나 이루어진 박근혜의 사진 정치와 방미도 연기한 눈물겨운 국민 사랑(헐!), 김무성 대표와 장관들의 현장 방문을 보도하기 바쁘다. 한국인의 메르스 공포를 비아냥거리는 미국 보수매체의 저질 보도(결혼식 사진이 연출됐다는 설도 있다)를 퍼 나르고 서울시공무원시험 강행을 비판하며 박원순을 맹폭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메르스 공포가 과대포장된 것이며, 치사율도 감기보다 못한 1.1%(jtbc가 거짓임을 밝혔다)에 불과한데, 대권을 노린 박원순 시장(과 이재명 시장 등)이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경제가 마비될 정도로 불안과 공포가 확산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해경과 유병언 일족에서 막아낸 것처럼.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의 강력한 반발에 화들짝 놀란 기레기들은 창백한 얼굴로 돌아서며 박근혜 여왕 구하기의 진짜 작전명인 ‘박원순 희생양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을 MSG로 만들어 음식 곳곳에 뿌려가면서. 이럴 때면 어디선가 반드시 나타나는 어버이 연합의 박원순 규탄 데모를 후식으로 제공하며.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대란의 책임소재를 끝까지 밝힐 생각이 아니라면, 집단적 단기기억상실증에 의해 지배되는 여론은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가 해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재정의되고, 세월호특위가 세금도둑이 되고, 세월호 유족이 자식을 팔아 한몫 챙기려는 파렴치한 부모가 되고, 종국에는 종북세력의 조정을 받는 체제전복세력으로 빨간색이 칠해진 것처럼. 



기레기들의 박원순 죽이기가 도를 넘었다. TV조선과 채널A, YTN이 주도하는 박원순 죽이기는 '썰전'에서 강용석의 상식 이하의 발언들과 맥을 같이 한다. 정부방송 KBS는 시청료 인상을 위해 박근혜 띄위기에 여념이 없고, 황교안의 인사청문회에서 보고서 채택이 이루어지자 야당의 분열상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6.12 07:40 신고

    종편을 볼 때마다 과연 저들 정신은 건강할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상대편에 대해 건강한 비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써는 단어들도 극단적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12 15:12 신고

      미국의 보수방송을 보면 이렇게 합니다.
      폭스 TV 등에서 배워오는 것으로, 보수주의자들은 당연시 여깁니다.
      보수의 의식구조는 진보와 다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6.12 08:28 신고

    그나마 요즘 그래도 JTBC가 나은것 같더군요
    5시 정치부 기자~~.가 그래도 핵심을 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12 15:12 신고

      그나마 jtbc가 있어 다행입니다.
      하나의 방송만 제자리를 찾으면 힘이 배가되는데 그게 안 되네요.

  3. 로키. 2015.06.12 12:18 신고

    우리나라 언론은 어디까지 썩어있을까요..

  4. 『방쌤』 2015.06.12 13:06 신고

    정말 어이가 없어서 이제는 헛웃음도 안나오더라구요
    기사에 올라와있는걸 보고는 들어가서 보지도 않았습니다
    안봐도 이제 뻐~~~~~언 하거든요

  5. 프리뷰 2015.06.12 16:38 신고

    빨리 공개했으면 이런 상황까지 안왔을것을....
    정말 실망입니다.

  6. 민주청년 2015.06.12 21:19 신고

    제목보고 팍 공감이 되네요.

  7. 평택사는 사람 2015.06.12 22:08

    더 무서운 것은 이걸 믿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정치와 사회현상에 관심없는 분들의 경우 대부분 동조하며 적어도 30퍼센트 내외로 투표에 반영되곤 하죠...

    • 늙은도령 2015.06.12 22:13 신고

      그래서 우리가 더 많이 투표장에 나가면 됩니다.
      지금은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이 큰데, 그것을 반드시 투표로 이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논쟁에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8. 울티 2015.06.12 22:49

    미쿡에서 입국허가 안 났나요 ㅎㅎ

    • 울티 2015.06.12 22:51

      짜고치는 고스톱을 왜치는지 알겠네요 ㅎㅎ

    • 늙은도령 2015.06.12 22:58 신고

      그럼요, 오바마가 바보가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를 만나겠습니까?
      미국의 언론들이 오바마를 어마어마하게 비판할 텐데...
      입국허가를 받지 못한 것이 맞습니다.
      연기를 허락받은 것이지요.

  9. 하늘이 2015.06.12 23:31

    하늘의 섭리하심이 있기를 ~이 나라에 드리워진 어두운 기운이 거두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ᆞ

  10. 하늘이 2015.06.12 23:34

    결국 사람들의 깨어 있지 못하는 의식이 모두가 혼란 스더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ᆞ
    이곳 부산도 자꾸 확산되어 가고 있고 전국구로 뚫렸습니다 ᆞ

    • 늙은도령 2015.06.13 00:15 신고

      답답한 것은 이 놈의 정부가 국민의 목숨을 우습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한 명이라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방역당국이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이처럼 혼란이 커진 것입니다.



미국인의 하위 75퍼센트와 전 세계 인구의 하위 95퍼센트가 민족적, 종교적 적개심, 성적인 관습에 관한 논쟁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것이다. 가끔 일어나는 짧은 유혈 전쟁을 포함하여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의사사건(pseudo-events)으로 노동자의 관심을 자신들의 절망에서 다른 곳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들은 별로 두려울 일이 없을 것이다. 


                                                                ㅡ 리처드 로티의 《미국 만들기》에서 인용




노엄 촘스키의 《환상을 만드는 언론》과 《여론조작》을 보면 선전모델(선전체제)이라는 것이 나온다. 이것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자행했던 각종 전쟁 범죄(민간인 학살과 환경파괴, 집단 강간 등)와 전세 등을 숨기거나 왜곡하고, 물타기 하기 위해 미 연방정부와 주류언론들이 결탁한 정언유착 모델을 말한다.





선전모델은 미국 국방부의 비밀문서 <펜타곤 보고서>가 폭로ㅡ정언유착의 선전모델 때문에 제대로 다루어지지도 못했다ㅡ되며 그 전모가 드러났다. 선전모델은 정부가 주류언론에 광고나 특종을 주는 조건으로 정부에 유리한 방향의 보도를 내보내게 함으로써 여론을 조작한다.

 

 

촘스키가 “(정부가 제시한 대로) 타임스가 규칙을 설정해버리자, 논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국가 선전 체계의 기본 전제를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다”고 말한 것에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선전모델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천안함 폭침(침몰의 의심을 거둘 수 없다)처럼 정부에 불리한 사건이 터졌을 때 어김없이 선전모델이 가동된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정조준한 성완종 리스트가 참여정부의 사면 의혹으로 변질되는 과정에도 선전모델이 작용한다. 약간의 논리적 비약은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주류 언론에 주는 광고내역을 보면 대한민국의 정언유착을 이끌고 있는 선전모델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위의 표는 정부(문화관광체육부)가 공무원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류언론에 제공한 광보 홍보비 지출내역(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제공)이다. 인사혁신처(3억)와 문화관공체육부가 발주한 광고 방송은 지난 2월17부터 4월19일까지 종편과 보도채널, 라디오, 지역방송 등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됐다.



두 정부부처는 광고비로 총 10억여 원을 지출(다른 부처와 정부 산화 기관까지 하면 액수는 더욱 커질 것이다)했는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JTBC가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와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 정윤회 문건에 이어 성완종 리스트 보도에서도 JTBC는 권력의 감시자 역할(정부에 비판적인 보도)에 충실했다.



다시 말하면 JTBC만이 대한민국의 선전모델에 따르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불이익을 당했다는 추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진실을 파고드는 JTBC가 눈에 가시일 터, 방송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정부광고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JTBC를 길들이려 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전문 조폭방송 TV조선과 양아치방송 채널A, 보도를 광고영업에 이용한 악덕방송 MBN, 정부 비판 기자의 해고에 탁월한 보도채널 YTN, 국기게양식에 직원을 참석시키겠다는 연합뉴스Y에 전체 광고비의 47%를 지출한 것에서 박근혜 정부가 여론조작에 이용하는 선전모델의 핵심이 드러난다.



JTBC 뉴스룸의 평균 시청률이 2%대(인터넷과 SNS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것까지 합쳐도 최대 10%를 넘지 못한다)임을 감안하면, 국민 대부분은 한국판 선전모델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다. 닐 포스트만이 《죽도록 즐기기》에서 파헤친 것처럼 미디어시대에는 보고 듣는 것이 곧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성완종 리스트도 세월호 참사처럼 선전모델(레이코프가 정립한 프레임과 비슷하다)에 갇혀버렸다.



진실은 종종 카메라의 각도나 주류의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기 마련이다. 에밀 졸라는 반유대주의 상징 같은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다룬 <나는 고발한다>에서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무엇도 그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했지만, 정부가 주는 광고와 협찬, 특종에 중독된 주류언론들은 탐욕의 선전모델을 동원해 진실을 가로막고 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때 가장 높았던 언론자유도가 이명박근혜 정부 7년4개월만에 언론탄압국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세월호 참사와 성완종 리스트가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혁명은 이럴 때 필요한데, 대다수 국민이 자발적 복종에 접어든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29일의 보궐선거에서 꼭 투표하거나 투표를 독려하는 것 말고 무엇이 또 있을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40년전 오늘, 동아일보가 죽었다.  


방송통제와 JTBC 죽이기에 나선 방통위



                                    


                                     



  1. 참교육 2015.04.27 08:08 신고

    참으로 치사한 정부입니다.
    돈 몇푼으로 길들여 권력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가만 있어아 깨어나지 말거라... 이것이 자본이나 권력이 바라는 희망사항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27 16:10 신고

      신자유주의 통치의 제1원칙이 시끄럽되 들고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초국적기업과 정부가 손을 잡고 최대의 이익을 챙기고 권력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耽讀 2015.04.27 08:11 신고

    이것 하나만 봐도. jtbc가 언론다운 언론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딸랑이만 좋아하는 박그네. 언젠가 부메랑을 맞을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27 16:12 신고

      언론과 교육을 바로 잡아야 나라가 삽니다.
      이 두 가지가 권력과 자본에 잡혀 있는 한 답이 없습니다.

  3. 뉴론♥ 2015.04.27 08:48 신고

    구글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시는 군요 잘보고 갑니다.

    • 늙은도령 2015.04.27 16:14 신고

      네, 그곳을 잘 검색하면 저의 글과 어울리는 사진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04.27 08:53 신고

    TV조선..참
    그런데 식당에서는 왜 TV조선을 많이 틀어 놓는지
    의아할 지경입니다...

    • 늙은도령 2015.04.27 16:15 신고

      아마 마케팅전략일 것입니다.
      조선일보 무려로 배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매우 무서운 마케팅입니다.

  5. 머무는바람 2015.04.27 09:32 신고

    티비조선
    주변 식당가나 술집은 티비조선을 시청하더라고요
    뭐지 그냥 아무 논점없이 물타기 또는 지들도 잘못하면서 뭐라고 하냐
    에휴

    • 늙은도령 2015.04.27 16:20 신고

      위의 답글로도 썼지만 TV조선을 틀어놓으면 그에 따른 무엇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선일보도 그런 식으로 영업하니까요.
      이것 때문에 여론이 왜곡되는 것이 매우 큽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선정적이고 목소리가 큰 앵커가 최고이니까요.

    • 머무는바람 2015.04.28 12:27 신고

      헉 설마 그럴 까요 ??

  6. 『방쌤』 2015.04.27 12:59 신고

    지금도 40년 전 그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정부네요

    • 늙은도령 2015.04.27 16:23 신고

      대통령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도 박근혜만 빠져나가네요.

  7. 일루와봐 2015.04.27 14:51 신고

    자발적 복종자가 되어가는 주위의 친구들을 자주 흔들어 깨우는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에휴

    • 늙은도령 2015.04.27 16:24 신고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노력이 모여서 세상이 바뀝니다.

  8. 세이렌. 2015.04.27 15:45 신고

    언론은 정부에 관리하에 넘어가면 절대 안됩니다.

  9. 진검승부 2015.04.28 00:41 신고

    특별사면 논란으로 배가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투표율이 이번 재보선의 결과를 말해줄 듯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4.28 00:46 신고

      이번 보궐선거는 미니총선보다 중요합니다.
      정말 투표율이 높게 나온 상태에서 야당이 승리해야 합니다.

  10. 푸디나 2015.05.01 18:57 신고

    jtbc는 중앙일보계열 종편방송 아닌가요?

    • 늙은도령 2015.05.01 20:19 신고

      네, 그런데 정부 비판이 가장 심하자 광고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종편이 비판하니 광고를 주지 않아 길들이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즉각적인 욕망과 쾌락을 쫓아가는 현대성을 이해하려면 아직도 살펴봐야 할 것이 두 개 더 남아 있다. 그것은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확대재상산하는 것에서부터, 기득권 위주의 상위정치에서 배제된 네티즌들의 정치의 장인 인터넷과, 그 폭발적 파급력이 빛의 속도를 연상시키는 SNS의 등장이다. 최근에 활성화된 개인 방송과 팟캐스트까지 더하면 현대성의 핵심으로 등장한 즉시성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와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근대》와 《유동하는 공포》를 통해 완전하지 않은 과학기술의 사용에 따른 각종 위험들의 증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된 무차별적인 개발의 부작용, 산업혁명 이후 닥치는 대로 이루어진 천연자원의 착취에 따른 환경 파괴, 견고하게 결합된 무거운 경제에서 액체처럼 유동하는 가벼운 경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확실성의 증가 등을 다루면서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매스미디어의 변천에 관해 다루었다. 



구글이미지에서 인용



현대사회의 위험성이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경고하고, 견고했던 체제들이 무너져내리면서 사회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었던 이들은, 닐 포스트만처럼 매스미디어의 테크놀로지에 천착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터넷에서 트위터까지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된 삶과 불확실성에서 도피하기 위한 즉시성이 만들어낸 비합리적 선택의 증가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비합리적 선택과 합리적 선택과의 차이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느냐, 지지 않느냐로 나뉜다). 



이들은 인류가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체제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경제에 집중하는 동안, 체제의 상부구조를 이루는 정치와 철학, 문화와 교육 등에서 벌어진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퇴행의 중심에는 텔레비전이 독점했던 메시지를 보다 세밀하게 분할해서 점령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앞에서 다루었듯 텔레비전을 이루는 테크놀로지는 폭력성과 선정성과 상업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와 정반대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 정보통신기술도 이런 방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텔레비전이 독점했던 메시지를 시공간적으로 분할한 것에서 기인한다. 



철저하게 '1대 다'의 소통방식을 취했던 텔레비전에 비해, '1대 1'의 소통을 내세웠던 인터넷과 SNS는 넘쳐나는 정보와 익명성으로 인해 민주적인 매체에서 무정부적이고 카오스적인 매체로 변질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율정화란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것이어서, 원래부터 존재하지도 작동할 수도 없는 것이었고, 정보의 양이 늘어나고 질적 차이가 구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필터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정보와 익명성의 바다에서 근대이성이 탄생시킨 현대성은 루소와 칸트와 홉스가 그렇게도 우려했던 아노미적 무한경쟁과 무정부적 자유방임의 투쟁과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인류가 끝없는 유목생활에서 벗어나 정착함에 따라 문명이라는 것이 시작됐고, 근대이성이 탄생하기까지 발전의 뱡향은 예측가능한 사회와 미래를 만들기 위한 합리성의 극대화였다. 그것이 신의 섭리에서 나왔건, 우주의 법칙에서 유래했건, 자연의 원리에서 끌어왔건,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에서 출발했건, 장기적인 계획과 질서 잡힌 확실성의 원천으로써의 합리성의 추구는 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에 일치한 불변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보편화에 이어, 즉시성과 유목성 및 선정성과 상업성을 특징으로 하는 정보통신기술과 모바일기기의 발전은 한 세기도 되기 전에 인류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욕망과 쾌락에 대한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폭력적인 현대성(한정된 자원과 일자리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투면서 발생한다)이 창출한 온갖 허상들을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낙관적이고 변증법적인 신화로 포장하는데 성공했다. 갈수록 첨담화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구원과 해방이 실현된 유토피아로 향해 간다면, 그때까지 자신의 죽음을 늦추는 방법이 최상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의 발전이 영생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래서 지금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무수히 작은 단위로 쪼개놓음으로써, 영원한 삶도 가능할 수 있다는 관념이 지배적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도 있다, 토끼가 먼저 출발한 거북이를 따라잡는 과정에서 토끼가 간격을 좁힐 때 거북이도 최소한이라도 앞으로 나갔기에 토끼가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의 흐름이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가정 하에 시간을 잘게 쪼개놓으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궤변은 소피스트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비해 과학과 기술은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발전했이지만, 소피스트의 궤변처럼 시간을 잘게 쪼개놓으면 영원한 삶도 가능하다는 관념은, 멈추지 않는 파동으로 영원히 날아갈 수 있는 빛으로 대변되는 전기전자기술의 과학적 원리와 일치한다. 이런 궤변과 과학의 이종교합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하지 못하는ㅡ구태여 구별하려 하지 않는ㅡ아노미적 현상을 일반화한다. 끊임없이 시공간을 옮겨다니는 새로운 유목인의 등장은 이런 이종교합에서 나온 자연스런 결과일 수도 있다.  



                                                                       


이처럼 '날아가는 화살은 멈춰있다'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를 연상시키는 2차원적 관념이 3차원의 현실을 뒤집어버린 것은 인류 문명의 발전에 내포돼 있는 정신적 퇴행을 드러내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물질만능주의가 만연된 세상이 거꾸로 된 세상이라고 말했는데, 작금의 세상은 즉각적인 만족을 통해 영속적인 삶을 추구하는 현대성에 의해 다시 한 번 뒤집혀버린 것이다. 이런 2중의 변증법에 의해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질서 잡힌 체제를 추구했던 근대이성은 현대성으로 넘어오자마자 끊임없이 유동하는 특성을 지니게 됐고, 그에 따라 삶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이제 장기적인 계획이 담긴 청사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단계로 접어들었고, 현실공간을 빠르게 넘나드는 가벼움을 유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전략으로 굳어졌다. 신자유주의로 발전한 자본주의는 인간의 삶만 파편화시킨 것이 아니라, 파편들의 충돌로 인해 높은 열(갈등)이 발생시켰으며, 이것으로 인해 각각의 파편들이 녹아내려 세상이 액체상태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체제와 제도는 물론 그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유동하는 상태로 접어들었고,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위험과 두려움이 공포를 생성하며, 개인의 삶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바우만이 말하는 '액체화된 근대'의 출현과 '유동하는 공포'의 만연이란 이런 상태를 말한다. 이는 분명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가 '초위험사회'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현대성의 모토는 이렇게 출현했고, 잘게 쫗개놓은 시간의 관념에 맞는 삶을 영위하려면, 미래를 위해 현재의 만족을 미루지 않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졌다. 



헌데 즉각적인 만족을 위해서는 '오늘의 사치품이 내일의 필수품'이 될 수 있도록 만들거나, '내일에는 내일의 신상품이 출시'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잘게 쫗개놓은 시간들을 만족시켜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해 오늘에는 사지 못한 사치품이 내일에는 가격이 내려 필수품이 돼거나, 오늘 채우지 못한 만족을 내일의 신제품으로 채울 수 있어야 싼 가격에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라도 구차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소비지상주의는 이렇게해서 일반화된다.  



결국 자본주의가 사회와 체제 속의 시민들을 개인들로 파편화시키는 과정에서 공동체와 가족이 해체됨에 따라, 이런 즉시성의 추구는 정신적 차원에서 충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매일같이 쏟아져나오는 신제품들을 쉴새없이 광고하는 텔레비전과, 매일같이 지우고 덮혀지고 새로 업그레이드 되는 인터넷과 SNS가 최상의 매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고, 개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적 지위로 격상했다. 



원래부터 다양한 나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시간을 잘게 쪼개듯, 자아를 여러 개로 쪼개 각종 사이트와 네트워크를 넘나들며 즉각적인 욕망과 쾌락을 탐닉하던 흔적들을 곳곳에 남겨놓게 됐고, 이것들은 쌓이고 축적돼 매체를 지배하고 있는 자들에게 개인의 취향을 꿰뚫어볼 수 있는 빅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광고주들의 꿈이었던 맞춤형 광고가 가능하게 됐고, 끝없는 매출 창출과 이익의 추구의 기반이 확고하게 다져졌다.  



이렇게 소비지상주의 시대가 우리의 눈앞에 도래했다. 끊임없이 대형마트와 쇼핑몰(홈쇼핑 포함)을 채워주는 신제품과 매순간마다 업그레이드 되는 정보와 지식들은 즉각적인 만족을 일상화시켰고, 먼저 쓰고 나중에 갚는 플라스틱 신용과 전자 신용의 발전은 파편화된 개인들을 빚의 굴레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충분히 예측가능한 결과를 회피하면서, 당장의 만족에 매달리는 이런 비합리적 선택들은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합리적인 선택으로 전도되고, 머리결마저 소중한 존재로 포장됨에 따라 미래를 위해 만족을 늦추는 것은 자신을 저버리는 배반의 행위가 됐다. 





문제는 이런 다양한 매체들을 운영하는 극소수의 전 지구적 지배 그룹으로 즉각적인 만족의 대가들이 흘러들어가는 데에 있다. 천문학적인 빚에 대한 이자는 그 자체만으로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렀고, 돈이 곧 권력인 세상에서 지배 그룹의 영향력은 텔레비전과 인터넷과 SNS를 중계도구로 활용해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표를 붙이고, 돈이 되는 모든 분야를 독식할 수 있었다. 결국 모든 미디어가 지배 세력의 이익에 협조하고 봉사하는 시대에 접어듬에 따라, 미디어가 전해주는 콘텐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의 도구인 미디어 자체가 중요해졌다.                 

      


전 지구적 지배 세력의 광고와 협찬(과 미디어에 길들여진 개인들의 시청료)로 돌아가는 이들의 힘은 국가의 주권을 구성하고 있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이은 제4부에서 이들 삼부를 좌지우지 하는 제1부의 역할을 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본질적으로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천상의 궁합을 가진 것이 미디어의 본질이어서 폭력적인 현대성의 폐해들은 몇 번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유동하는 공포’와 공간을 압축해 지배의 범위를 넓히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 과실들은 극소수의 수중에 떨어졌음은 이제 상식의 영역에 자리했다.  



이런 극단의 불평등으로 귀착되는 폐해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ㅡ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ㅡ는 정말로 여러 번 있었다. 1929년에 발발한 경제대공황이 그 중에 하나였고, 2008년의 금융 대붕괴와 2011년부터 구조화된 유럽의 경제위기가 최근의 것이었다. 이렇게 현대성의 폐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인류ㅡ정확히는 전 지구적 엘리트와 국민국가 단위의 지역적 엘리트와 국제기구를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들ㅡ는 근대이성의 질주가 초래한 현대성의 문제점을 교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살리기는커녕, 아예 방향을 돌려 사회경제적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관용의 정신을 실현한 복지국가의 잔재마저 일소시키는 퇴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중심에는 욕망과 쾌락에 대한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행태를 끊임없이 부추긴 텔레비전과 인터넷, SNS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오랜 전부터 특정 세력에 의해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회주의의 몰락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세를 불린 급진적 자유주의자와 좌파에서 전향한 신보수주의자들이 자본과 권력의 주변부에서 핵심으로 포섭되는 과정에서 더욱 심화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이 내놓은 새로운 통치이론(신자유주의)과 가치판단의 기준에 따라, 근대이성이 창출한 현대성은 사회적인 도덕규범에서 완전히 이탈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거대 금융자본과 초국적기업은 빛의 속도로 국경을 넘나들며, 천연자원을 바닥까지 착취하고, 무한대의 신용을 창출해 전 세계 부의 90%을 독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공존과 상생이 불가능한 이런 극도의 불평등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은 것이 아님에도, 전 지구적 지배 그룹은 부정적 세계화의 병폐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그날까지, 갈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가보자며 신자유주의의 엔진 출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다. 자기조정 시장에서 발전한 자유시장과 사회적 생산관계의 변화로 등장한 자본주의, 새로운 통치술의 형태로 등장한 자유주의가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형성된 탐욕의 기관차가 빛의 속도까지 출력을 높이는 동안 지구와 인류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고,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는 폭발 직전의 단계에 이르렀다. 



지난 30년의 신자유주의적 폭주는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지구의 반격에 직면했지만, 전 지구적 지배 세력은 폭주하는 기관차의 속도조절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어쩌면 그들도 제어할 수 없는 속도에 이른 기관차를 멈출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 속도를 감당해낼 브레이크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을 전후한 지난 250년 동안 인류는 지구 역사상 5번째의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고, 그 중심에는 인간의 성찰을 가로막아 즉각적인 만족의 포로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게네시스 2014.08.14 17:11

    기술은 발전하지만 우리가 중요해야할 인문학적인 분야나 윤리는 점점 사라져 가네요ㅠㅠ 그게좀 슬픕니다

    • 늙은도령 2014.08.14 19:55 신고

      네, 돈이 되는 사람들에게 과학과 기술 발전으로부터 얻는 이익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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