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의 인종갈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건의 경위는 이미 알고 있다시피 백인 경찰이 10대 흑인 청년을 검문하는 과정에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것입니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킹 목사가 암살당한 시기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누구나 하는 얘기와 달리, 검은 피부를 가진 대통령이면서도 하얀 가면을 쓴 것처럼 , 백인의 인종차별에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 나오는 ‘오바마 현상’과, 《No Logo》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이 주간지인 <가디언>에 기고한 ‘오바마의 심각한 침묵’에서 도움을 받을까 합니다.

 

 

바우만은 흑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자신은 여러 인종이 섞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미국 정치 시스템에서 시민인종집단 사이의 연결고리가 분명하게 깨졌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느냐는 저널리스트의 질문에, 오바마는 미국의 지배그룹에 동화된 사람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인종차별과는 상관

이 없다고 말합니다.

 

 

바우만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흑인들을 열등한 지위로부터 벗어나게 끌어올려서 그 범주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폭넓은 삶의 전망을 열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바우만은 그 근거로 오바마처럼 지배세력에 동화된 자의 대표적인 예로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여성 총리 마가렛 대처를 들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영국 총리에 오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유대인의 차별을 철폐하는데 노력하지 않고 영국 제국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데 전력했습니다. “거의 준-독재적인 통치를 행사했던”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도 (박근혜 대통령처럼) 여성의 사회적 평등과 권리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거의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바마를 따르는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오바마는 “오로지 스스로의 개인적인 재능과 끈기를 통해서 그 늪에서 빠져나왔고, 자신의 성공은 바로 자신이 소속된 집단 덕분이 아니라 그런 소속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일이라고 주장”하는 성공한 정치인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프란츠 파농이 프랑스에 동화된 흑인을 가리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고 말한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오바마와 흑인을 묶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바우만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을 미국의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정말로 기뻐하면서 축하한 것도, 그를 통해 미국이란 나라는 인종차별이 사라진 나라며, 자신들의 관용이 이만큼 넓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 세계에서 들끓던 반미감정은 크게 누그러졌고, 오히려 좋아진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흑인의 지위나 권리가 달라진 것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오바마는 흑인과 가난한 백인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2008년 금융 대붕괴 이후 월가를 지배하는 슈퍼리치들을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고, 흑인과 가난한 백인들ㅡ오바마를 지지했던ㅡ은 집을 차압당해 길거리로 쫓겨났습니다.

 

 

퍼거슨시의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봉기도 오바마가 대통령에 올라 재선까지 했지만 흑인과 가난한 백인, 소수 인종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권리 향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말해줍니다. ‘오바마 케어’는 누더기로 통과됐고, 오바마가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민법은 정치적 수사에 그칠 뿐 아무런 진전도 없습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그녀를 지지했던 여성들 사이에서 ‘앵그리맘’이 늘어나는 것과 동일하다고 보면 됩니다. 바우만이 우리나라의 ‘안철수 현상’을 연상시키는 ‘오바마 현상’의 허구성을 지적했듯이, 《No Logo》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가디언>에 실린 ‘오바마의 심각한 침묵’에서 다음과 같이 오바마를 비판했습니다.

 

 

엘리트가 아닌 흑인들과 라틴계 사람들은 점점 백인들보다도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자신들의 집과 일자리들에서 쫓겨나면서 자신들의 중요한 기반을 상실해가고 있다. 지금까지 오바마는 이처럼 점점 더 벌어져만 가는 간격을 메우기 위하여 특별하게 고안된 정책들을 채택하기를 꺼려한다. 그 결과 아마 소수자들은 더 나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매일매일의 곤란을 완화시켜주는 정책들의 혜택을 번혀 받지 못한 채,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인종주의라는 반발의 고통마저 떠안게 될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예언처럼,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흑인과 소수자들은 인종 차별에 대한 공적 항의와 투쟁을 예전보다 더 할 수 없었습니다. 흑인이지만 백인에 동화된 오바마 대통령 때문에 수 세대에 걸친 투쟁을 통해 획득한 그들의 정당한 권리마저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미국의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기뻐했던 것입니다. 미주리주 퍼거슨시의 흑인 폭동과 LA로 번져가는 반발 시위도 모두 이런 정치사회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보육 예산이 줄고,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 퇴행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성이 대통령이 된 것과 여성적 리더십을 가춘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 이 때문입니다. 가장 권위주의적인 조직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통과 관용과 배려의 리더십을 보여준 것과, 여성으로서 최초의 대통령에 오른 박근혜가 불통과 처벌과 차별의 리더십을 보여준 것을 비교하면 ‘오바마 현상’과 미주리주 퍼거슨시의 인종차별 반대투쟁에 얽혀 있는 정치사회적 이면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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