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LG전자의 계약 파기로 수십 억에 이르는 빚에 시달릴 때ㅡ재판을 하려면 공탁금 10억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그럴 돈도 없었고, 몇 년은커녕 몇 개월의 재판도 견디지 못할 건강 상태였다ㅡ대주주 중의 한 분이 이명박 서울시장과 막역한 사이(정치권은 물론 삼성, 현대, LG 등과도 혼맥으로 연결)였습니다. 자신과 친구들의 투자금 회수가 필요했던 그 분은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가져갈 수 있는 사업거리를 가져오라고 저를 다구쳤습니다.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던 저는, 이명박이 침을 흘릴 만큼 확실한 사업거리를 구하지 못했지만(정확히는 구하지 않았지만) 서울시장이란 자리를 이용해 사익을 챙기는 이명박의 일단을 본 것만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현대건설 회장에 오르기까지 이명박의 성공담(온갖 범죄와 탈법으로 얼룩졌다!)은 그에 못지 않은 뒷돈챙기기와 함께 널리 알려진 얘기니까요. 당대의 현대그룹(현재의 현기차그룹)은 회사에 이익이 되는 한에서는 임직원의 뒷돈챙기기를 묵인했었습니다. 



이명박이 현대건설 회장에서 물러날 때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현대그룹의 후진적 문화에 기인했었고요. 이명박이 국민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했던 정주영과 척을 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주영이 치매(공식적으로 진단받은 것은 아니다)에 걸렸을 때, 이익치(관련 사실을 부인했지만 신뢰할 수 없다)와 김재수 등의 전문경영인들이 정몽구와 정몽헌, 정몽준 등을 꼬득여 왕자의 난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현대그룹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막장드라마였습니다. 



아무튼 현대건설에서 배우고 닦은 이명박의 뒷돈챙기기는 서울시장을 하면서도 계속됐던 것이며, 제가 근사한 사업거리라도 찾아냈다면 파도파도 끝없이 나오는 이명박의 파렴치한 범죄들에 일조할 뻔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명박의 지인이 대주주로 참여하기 전에, 대기업 몇 개를 묶어서 서울시에 제안했던 주정차단속시스템(PDA 기반의 실시간 단속시스템)도 6개월의 시차를 두고 다른 회사가 사업권을 따냈는데 여기에도 일종의 뒷거래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이명박의 뒷돈챙기기 퍼레이드를 지켜보면서, 그때에는 약간의 의심이 들었던 대주주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고요. 평창 올림픽 기간 중에도 언론(김어준과 주진우 포함)과 검찰을 통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대통령과 서울시장 재직 시절의 범죄들로 봤을 때 이명박의 뒷돈챙기기는 그의 본질과도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이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던 선거법 위반도 돈문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에게 주어져야 할 단죄의 방식이 사법적인 것을 넘어 공개처형에 준하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서울시장과 대통령이란 자리를 이용해 자신의 사익만 챙긴 자라면 국민에 의한 공개처형도 관대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일본식 정경유착이 초래한 불평등·과대성장의 폐해를 상당 부분 바로잡았던 민주정부 10년을 완전히 들어낸 이명박의 역주행과 나라말아먹기는 미래세대에게도 수많은 희생을 전가한다는 점에서 어떤 형태의 단죄로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서울시장과 대통령으로써 이명박과 그 일당들이 했던 일들을 모조리 조사하고 불법이 의심되는 모든 것들을 수사해야 하며 이명박 일족의 재산을 환수해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천안함 침몰과 5.24조치(북한사업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으며, 현대건설 입찰에 참여했던 현정은의 현대(상선)그룹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했다)도 다시 들여다 봐야 합니다. 국가와 국민을 인질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자한당과 바미당, 조중동, 대형교회 등의 수구·반공 세력이 뭐라고 떠들어도 모조리 수사해야 합니다. 



이명박과 그 일당이 없는 죄를 만들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주변(합법적으로, 그것도 딱 한 번 최소액의 정치기부금을 낸 사람까지)을 먼지 하나까지 탈탈탈 털었다면(정치보복 중에서도 최악), 있는 죄를 하나라도 더 밝히기 위해 이명박과 그의 주위를 탈탈탈 털어야 합니다(적폐청산의 본질). 다시는 그와 같은 놈들이 정치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를 옹호하는 놈들이 정치판에 몸담고 있다면 그들의 퇴출을 위해서라도 모조리 털어야 합니다. 



나만 잘 잘고 잘 먹으면 사기꾼도 괜찮다는 천박한 의식과 반칙·특권·부패를 인정하는 부정의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면 이명박의 범죄행위들을 모아놓은 기록관을 만들어 대대손손 경계하고 경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사람이 먼저인 사람사는 세상은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이자,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단국의 건국이념이기도 합니다. 이명박에 대한 단죄는 아무리 가혹해도 턱없이 모자랄 뿐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그 때 그 나날 2018.02.17 22:37

    대중은 선동을 진짜 잘 당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 대통령, 기업 출신 대통령, 사대강 살리기, 경제 살리기
    이런 선동 문구에 속아서

    범죄, 사기꾼을 대통령으로 앉혀놓았으니까요.

    • 늙은도령 2018.02.17 23:31 신고

      네,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명박을 찍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었지요.
      사람들은 성공한 이명박만 봤지, 그 이면에 자리한 것을 보지 못했지요.
      그때 그를 찍었던 분들이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는데....

  2. 공수래공수거 2018.02.18 10:25 신고

    범죄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런 인간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3. chance von 2018.02.18 11:49 신고

    이명박이 대통령되면서 경제나 정신적으로나 손해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죠. 그 중에 특히 아이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어떤 교육정책, 비전들이 하나도 없었고 모두 다 옛날로 회귀했으니까요.ㅠㅠ

    • 늙은도령 2018.02.18 15:51 신고

      네, 우리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그는 돈벌이만 했지 나머지는 방치하거나 퇴행시켰습니다.


팬택과도 일을 해본 사람으로써 잠시 팬택의 문제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팬택에는 휴대폰 개발팀이 12~17개가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삼성전자나 LG전자에도 팬택보다 많은 개발팀이 있었습니다. 각 팀들은 자신만의 제품을 내놓았고 그 중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들이 선택돼 생산되곤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이건희 폰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의 선택을 받은 것이고,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밀여붙여 대한민국 휴대폰 사상 최고의 밀리언셀러로 등극했습니다(오너의 힘이란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어쨌든 다양한 루트로 경쟁력을 확인해 본 다음에 출시된 폰들이 모두 다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휴대폰의 경쟁력은 높아졌습니다.  



가장 많은 개발팀을 운영하던 삼성전자는 같은 방식으로 개발팀의 경쟁력을 높이면서도, 탈락된 팀들은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정리하곤 했습니다. 이들이 많은 중소 휴대폰 메이커로 옮겨가 개발을 계속했습니다. 팬택의 개발팀 전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삼성전자에서 밀려난 연구원(실력과는 상관없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팬택이 홈페이지에서 캡처


 

아무튼 기술력으로 무장한 팬택은 삼성전자가 독주하던 시절에 LG전자를 쫓아가며 다른 중소 휴대폰 메이커들과는 달리 대기업군으로 진입했습니다. 휴대폰 점유율이 10%대를 넘으면서 해외수출에도 나설 수 있었습니다. 회사의 규모도 점점 커졌고, 다양한 제품군을 원했던 이동통신사들도 팬택의 휴대폰들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팬택이 위기에 처한 것은 국내 휴대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과 제조사에서 부담해야 하는 휴대폰 보조금의 끝없는 상승, 중국 후발업체의 공세, 퀄컴이 독점하고 있던 CDMA와 MS의 운영체제에의 완벽한 종속 등이 겹치면서 자금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상당한 투자비를 쏟아부은 PDA도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자금 압박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이때 PDA를 대체할 것으로 판단된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했고, 팬택도 스마트폰 개발에 상당한 자금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에 최적화된 기존 이통사의 기지국(동시접속이 274명을 넘지 못한다, 필자도 이것 때문에 망했다)들로는 스마트폰의 테이터량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액정화면도, 터치스크린도 많은 문제점을 노정해 초기 스마트폰은 시장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자신문에서 인용



노키아가 석권하고 있던 유럽의 경우처럼, 한국도 휴대폰을 대체할 스마트폰이란 시기상조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의 스마트폰 기술들을 쓸어모은 애플에서 아이폰이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MP3의 원조국가였던 한국의 기술들을 차용해서 아이팟으로 대박을 터뜨린 것에 이어 애플의 두 번째 기습공격이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 등은 스마트폰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폰의 독주에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두 회사와는 달리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던 팬택으로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어진 것입니다. 휴대폰 국내시장에는 크게 중점을 두지 않았던 삼성전자(삼성전자의 휴대폰 중 7%만이 국내에서 판매됐다)가 애플을 쫓아가기 위해 국내시장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습니다.



비록 옴니아 시리즈가 참패를 거듭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애플의 아이폰을 따라잡기 시작한 삼성전자에 비해 자금력에서 한참 뒤떨어진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팬택의 창업자인 박병엽 부회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기술 개발에 몰두하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지만, 노키아와 모토로라, 소니에릭손의 몰락처럼 완전한 재기는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벤처신화의 대명사 중 하나였던 팬택의 회생은 자금의 문제입니다. 동시에 포화상태에 이른 스마트폰 시장의 정체입니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이 웨어러블 모바일기기(이것도 테블릿PC와 당뇨폰처럼, 필자가 사업을 할 때 숱하게 연구되던 것이었다)로 돌파구를 찾는 것도 스마트폰 시장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다음이미지 캡처



이런 상황에서 팬택을 살리기 위해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채권단이 아닌 이통사들의 수중에 달려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팬택 스마트폰의 점유율을 유지해줄 것이냐에 따라 팬택의 회생은 결정됩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팬택의 국유화는 스마트폰 혁신이 한계 이른 현재의 상황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고, 현실적인 방법도 아닙니다.



팬택의 기술(특히 광대역 LTE-A)이 중국으로 가는 것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지만 이것은 현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중국의 스마트폰 기술이 그렇게까지 형편없지 않습니다. 최근에 중국에서 아이폰의 신화가 깨지는 것도 중국 토종업체의 약진 때문입니다. 휴대폰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도 스마트폰을 내놓았고, 소니와 모토로라, 아마존 등도 스마트폰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팬택을 살리는 길이 정답인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팬택을 살려야 한다면 정부가 채권단에게 추가적인 자금 투입에 대해 보증을 서주고 이통사들이 팬택의 제품군을 밀어줘야 가능합니다. 이외의 방법은 없습니다. 기업들 간의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감상적 해결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해도 이를 국가 경제가 감수할 역량이 있다면, 정치적 해결책 이외에는 팬택을 살릴 방법이 없습니다.              

  1. 결국 자본 또한 경쟁력으로 간주되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저도 팬택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다시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지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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