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입장에서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평화 체제 구축, 공동 번영은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절대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중 평화협정 체결이 나머지를 결정하기에 트럼프와 시진핑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전쟁까지 치른 남북의 현대사를 고려할 때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을,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를 상대로 평화협정 체결에 동의하고 최대한의 보상을 받아내도록 만드는 것이 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유시민이 썰전에서 말한 남북의 짜고치기가 이것을 말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신용불량국가로 전락한 미국을 (백인 위주의 나라로) 되살려내겠다며 보호무역의 벽을 계속해서 높이고 인종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등을 유발하고 있는 트럼프의 일방통행은 최고의 난제라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재선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로 충분하다면 좋겠지만, 미국을 말아먹고도 여전히 주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지배엘리트들은 이를 용납할 생각이 없습니다.

 

 

미국을 WASP로 대표되는 지배엘리트와 그들에게 복종하는 체제의 간수들이 상위 1%의 천국이자 하위 99%의 신용불량국가로 전락시킨 과정을 이번 글에서 복기하지는 않겠지만, 트럼프도 이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트럼프가 오바마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려 하는 것도 정치적인 차원에서 보면 미국을 지배해온 아이비리그 출신의 파워엘리트와 특정 가문의 지배엘리트가 지배하고 있는 양대 정당 주류와의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JTBC의 오바마 빨아주기가 역겨운 이유).

 


흑인 피부 백인 정신의 오바마는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의 미국을 정상국가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그가 한 일이란, 제국으로써의 미국을 내세워 안팎으로 조국(미국)마저 붕괴시킨 지배엘리트와 주류 기득권의 수중으로 돌려준 것이었습니다. 전세계를 최악의 경제위기로 빠뜨린 채 미국을 신용불량국가로 만든 자들 중에서 처벌받거나 퇴출된 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바마가 주류 기득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역사상 최악의 공화당 후보라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WASP로 대표되는 미국의 주류 기득권에 대한 백인 유권자의 반발이 집결됐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정책과 행정명령 등이 미국 지배엘리트의 정책들과 충돌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미국의 특정 계층이나 인종, 세대, 지역 등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것도 지배엘리트에 대한 극단적인 반발심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트럼프의 일방통행이 미국의 지배엘리트가 구축해놓은 세상과 정면으로 충돌나는데 있습니다. 관세폭탄을 앞세운 보호무역과 백인 중심의 인종 차별, 불평등과 양극화를 확대하는 법인세 인하와 부자 감세 등은 세계경제를 미증유의 대공황으로 몰고 갈 수 있으며, 동시에 미국의 종말도 앞당길 수 있다는 이중의 위험을 키울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거대금융과 초국적기업의 네트워크로도 풀어내지 못할 임계점에 이르면 1929년의 경제대공황과 똑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트럼프가 강행하고 있는 중국과 EU와의 무역전쟁은 수출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경제를 수렁으로 빠뜨릴 수 있습니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일자리 창출이 부진한 것도 이런 외생적 요인이 기업의 투자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무서운 속도로 일자리를 잡아먹는 기술 발전(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의 진보라는 개념이 언제나 선이 아님을 깨달아아야 한다)에 있지만 트럼프 발 외부요인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국제유가가 요동치는 것도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중질유) 시추를 막고 있기 때문인데, 이런 요인들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무식해서 모를 수도 있지만)도 하지 않는 이 땅의 기레기들이 모든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게만 퍼붓고 있습니다. 문프 다음의 미래권력 향배를 가늠할 수도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모든 기레기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를 일제히 공격하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자한당과 바미당의 몰락(총선 때가지 지속될 것이다)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데, 미약하더라도 정의당의 상승세가 이어지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이 땅의 기레기들은 정부를 비판하며 먹고 살았는데 문프의 압도적인 리더십 때문에 뜯어먹을 건더기를 찾을 수 없어 불만이 이만저만 쌓인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혼란할 때 이들의 먹거리는 최고조에 이르는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란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이것은 거대 팟캐와 시사라디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나라다울 때는 대중의 증오와 분노를 팔아먹고 사는 이들의 먹거리도 줄어듭니다. 문프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감기몸살 때문에 강제휴식에 들어가야 할 만큼 강행군을 이어왔지만 헌신과 노력의 결과들이 무르익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시간이 짧았습니다. 문프에 대한 기대는 하늘을 찌르는데 트럼프의 일방통행까지 해결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에 몇몇 부처의 장관과 공무원들이 복지부동이 겹쳐졌습니다. 문프가 규제혁신회의를 연기하고 청와대 비서진 일부를 교체한 것도 이들의 무사안일이 위험수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문프의 성공에 묻어가려는 이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은 이명박근혜 9년의 잔재들이 관료사회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지만, 민주당의 지선 압승이 불러온 역작용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패러독스는 외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다음 글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99퍼센트 가운데 자기 자신을 똑같이 궁핍한 계층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체제의 간수들과 죄수들 가운데 그들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기존 체제는 점점 더 고립되고 무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ㅡ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에서 인용  




미 국방부의 내부문서인 《펜타곤 보고서》가 폭로되면서 미 연방정부와 미군이 베트남전쟁에서 자행한 잔악한 행위들이 밝혀지고, 압도적인 무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전쟁에 패배한 뒤, 민주당을 도청한 닉슨이 온갖 거짓말로 사건을 무마하려다 탄핵 직전에 이르러서야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반미정서가 분출했고, 미국 내부에서도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차별과 억압을 일삼았던 연방정부와 양당을 향한 반감이 극에 달했다. 심지어 상위 1%에 빌붙어 체제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사람들까지 미국체제의 일방성에 분노를 표출하고, 차별과 억압에 맞섰다.



일종의 반체제문화(저항운동)가 형성된 것이다. WASP(백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 중에서도 반체제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베트남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때 연방정부의 언론 통제를 받아들였던 제도권 언론의 빈자리를 파고드는 다양하고 작은 대안언론(특히 라디오)들이 우후죽순으로 탄생했다.



탐욕과 학살의 주인공 콜럼버스의 후예들에 맞섰던 원주민(인디언)부터 시작해 노예, 농노, 흑인, 하인, 노동자, 여성, 이민자, 소수자 등을 거쳐 미국 역사를 관통하는 저항의 역사는 이렇게 승리를 거두는 듯했다. 이때 미국과 일본, 유럽의 최상위 엘리트들이 1%의 지배를 영속하기 위한 다양한 모임과 기구들이 결성됐고, 그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 삼각위원회였다.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했던 록펠러와 미국정계를 주름잡았던 브레진스키가 주도한 삼각위원회를 필두로 해서 각국의 정치, 경제, 금융, 군부, 언론 등의 지배엘리트들이 참여해 1%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체제구축에 나섰다. 그 결과가 대처와 레이건의 당선이고, 자본주의 양당체제의 강화이고, 짝퉁 사회주의의 몰락이었고, 이때부터 민주주의는 부와 권력을 위한 체제로 자리잡았다.



시장자유주의 우파의 통치와 이익을 대표하는 신자유주의가 '불경한 삼위일체(IMF, IBRD, WTO)'를 앞세워 전 세계를 삼킬 수 있었던 것도 삼각위원회처럼 상위 1%의 지배엘리트가 일치단결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2008년까지 지속됐고, 월가 발 신용대붕괴로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표면상으로는 모든 권력의 원천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주의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1%를 위한, 1%의 의한, 1%의 부와 권력을 사수했던 독점체제가 심각하게 무너졌다. 이것을 지켜보면서 허울뿐인 민주주의의 실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자신이 99%에 속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비록 미국 주류 백인과 월가의 도움으로 대통령에 오른 오바마가 독점체제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에 충실하면서 ‘내가 99%라는 자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분노한 사람들의 점령하라 운동’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대안체제를 향한 열망을 퍼뜨렸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용한 시장자유주의 우파의 집권으로 독점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미국과 유럽, 일본과 한국 등에서 독점체제의 부활이 이루어지고,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후퇴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위 1%가 독점체제의 문을 일부에게 열어줌으로써 하위 99%가 전 세계 부의 10%를 가지고 피 터지는 싸움을 부추겼고, 반목으로 갈라지게 만들었다.



산업혁명, 자본주의, 자유시장이 등장한 이래 처음으로 형성된 ‘나는 99%에 속한다’라는 자각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채, 작은 조직이나 공동체로 분열됐고, 극단적인 소외나 배제에 처해졌고, 체제의 부를 좀먹는 잉여와 쓰레기로 취급되고 범주화됐다(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을 참조).





그렇게 기술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99%의 무한대의 분열은 좌로 이동하기도 하고, 중간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우로 치우치기도 했지만, 99%라는 연대의식이 형성되는 사회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자각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디지털 감시(디지털 파놉티콘)가 따라왔다는 점에서 절망적이다(감시사회에 대한 책은 수없이 많이 출판됐다).



디지털기록의 축적(빅데이터)과 가공(인공지능)을 통해 이루어지는 감시체제는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고, 언제 어디에서나 가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점체제의 힘을 무한대로 만들어줬다. 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나는 99%다’라는 자각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영속할 수 없다. 완벽한 기술과 감시체제도 존재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너와 나, 우리 모두가 99%라는 자각’은 척박한 현실이 생존의 가능성마저 위협하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좌측에 있던, 우측에 있던, 가운데에 있던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속해있느냐는 자각이다.



모든 인간은 침해불가능하고 양도불가능한 권리와 자유를 가진 존재로 평등하게 태어났다. 현재의 기술과 생산량이면 인류 모두에게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고 후대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에 충분하다. 우리 모두가 99%에 속한다는 것을 진실로 자각한다면 1%의 독점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7.15 08:16 신고

    1%를 갈망하는 5%도 문제가 많습니다
    95%를 가차없이 짓밟고 1%로 가기 위해 갖은 짓을
    다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15 14:53 신고

      이미 1%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2~3%는 체제의 간수 역할을 하면서 조금 더 특권을 누리는 것이지요.



찰스 비어드는 ㅡ 합중국 정부를 비롯한 ㅡ 모든 정부는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 정부는 지배집단의 경제적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 헌법은 이런 이해에 봉사하도록 의도된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경고했다. 


                                                                           ㅡ 하워드 진의 《미국의 민중사 1》에서 인용




이명박을 밀어내고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에 오른 박근혜와 청와대의 얼라들, 십방시, 문고리3인방 등의 다양한 별명을 갖고 있는 현대판 환관들에 의해 탈선을 거듭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퇴행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만의 리그는 하위 99%의 이익을 최상위 1%에 이전하는 반동적 계급혁명인 신자유주의를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려는 탐욕의 정치일 뿐이다.





모든 기득권 언론이 밀어주고 있는 안철수 신당과 유승민으로 대표되는 합리적 보수(대한민국에서 이것이 가능할지는 차치하더라도)가 손을 잡는다 해도 그들은 정체불명의 중도를 내세워 보수우파 기반의 시장자유주의 천국을 추구할 뿐이다. 시장자유주의 정당이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이 부정적으로 쓰인 이후에 새롭게 개명한 것에 불과하다.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들은 넘쳐흘러 세습하기도 힘든 극소수 기득권의 이익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의 정치와 경제, 교육과 복지를 할 뿐이다. 유럽과는 달리 미국의 민주주의체제를 강제 이식당한 한국의 경우, 조세정의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중시하는 좌파적 가치를 거부하는 한 지배엘리트들을 위한 기득권의 민주주의를 대표할 뿐이다. 안철수가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나 정당과 연대하지 않겠다는 것은 헬조선도 이해하지 못한 정치철학의 부재를 보여준다. 



미국 민주주의 역사를 건국의 아버지로 대표되는 백인 지배엘리트(WASPㅡ백인 앵글로색슨 청교도)의 시선이 아닌 원주민(인디언), 가난한 백인, 하인, 노예, 여성(여성 흑인노예는 삼중의 피해를 당했다), 이주민의 시선에서 보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철저히 지배엘리트를 위한 불평등의 역사였다. 미국은 이런 체제를 신흥국에 강제로 이식시켰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모토가 '우리가 한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한 대로 해'였다.





이것이 한국에 곧바로 이식되는 바람에 친일부역을 통해 부와 권력을 챙긴 자들과 미국 유학파, 군부 엘리트, 언론엘리트 등이 권위주의 보수와 반공, 경제성장을 공통분모로 견고한 지배계급을 형성하게 됐다. 그 다음의 과정은 좌파적 가치의 축소와 퇴출로 점철된 불평등의 역사였고, 기득권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안철수의 보수우파적 정체성도 여기에 근거한다. 



전통 좌파라기보다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까웠던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도 IMF 환란을 극복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구축하느라 좌파적 가치의 구현에는 상당 부분 한계를 보여줬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좌파 신자유주의(학술적으로 말하면 자유시장에 근거한 시장사회주의)에 가까웠고, 최악의 복지를 한두 단계 끌어올리는데도 기득권의 저항에 힘겨워했다.



노무현 정부 말에는 시장자유주의 우파의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종말을 목도하면서 복지와 사회안전망 확충에 힘썼지만, 골수 시장자유주의 우파인 이명박이 대통령에 올라 대기업과 토건족 일변도인 ‘비즈니스 프랜들리’라는 역주행을 선택했다.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며, 지구온난화와 슈퍼엘리뇨 때문에 뜻밖의 효용가치가 생긴 4대강공사와 묻지마 퍼주기의 전형인 자원외교가 대표적이다.  





박근혜는 한술 더 떠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줄푸세’를 극단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부터 이어져온 노조 파괴, 규제 완화, 노동유연화는 물론 복지 축소, 연금 삭감, 그린벨트 해제, 부자감세와 서민증세, 최악의 노동개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을 시장자유주의 우파(신자유주의)의 천국으로 만드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세습자본주의와 금권과두정치로 대체됐고, 불평등과 차별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심화됐다. 신자유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좌파적 가치가 필요할 때 이명박근혜 정부는 역주행을 선택했고, 민주정부 10년 동안 힘겹게 구축한 절차적 민주주의와 복지 및 사회안전망을 휴지조각처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란, 백남기씨에게 가해진 테러, 치욕적인 위안부협상, 노동개악의 강행 등은 이명박근혜 8년의 산물이다. 국민의 목숨과 존엄보다 기업의 이익(오너 일족과 최고경영진에 속하는 고위임원, 대주주의 이익 등을 말한다)이 중요한 시장자유주의 우파정부의 역주행의 결과다. 추락하는 한국이 다시 살아나려면 아래로부터의 혁신과 분배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좌파적 가치의 핵심이다.





자본주의는 태생부터 우파적이었고, 신자유주의는 극단적 시장자유주의 우파의 산물이다. 정치와 경제가 혼란에 빠졌을 때 가장 잘 돌아가는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폐단이 끝이 없음을 말해준다.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하게 만든 2008년 월가 발 금융대붕괴가 발생하기 전까지 전 세계가 우경화됐던 것도 시장자유주의 우파의 최대 걸림돌인 좌파적 가치를 말살했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탈당을 전후로 해서 비주류 탈당파들이 야권을 콩가루집단처럼 자중지란에 빠져들게 만든 것도 진보 진영에서조차 좌파적 가치가 범죄시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역사의 정의를 팔아먹고, 노동자를 국민으로 여기지 않고, 미국과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것도 좌파적 가치를 실현할 정당이 현실정치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나쁜 점만 부각되는 시대로 접어든 현재, 시장자유주의 우파의 폭주를 막고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려면, 완벽한 정치적 자유와 평등, 침해불가능한 천부인권, 조세정의와 부의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해소, 공존과 상생을 기본으로 하는 좌파적 가치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야성도, 정체성도 잃어버린 야당이 혁신을 한다니, 다른 무엇보다도 좌파적 가치의 복원부터 선언하라.





민주주의의 한 축인 평등을 지향하는 자유는 진보 이상의 것, 무력혁명을 제외한 전통 좌파의 인본주의적 자유와 평등의 실현에 매진해야 한다. 그것만이 부와 기회와 위험의 불평등에 시달리는 하위 90%의 삶을 시장자유주의 우파의 권위주의적 폭주로부터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니. 민주주의와 자유의 실현, 존엄한 삶과 공존의 세상은 모든 국민의 경제적 평등이 일정 수준에 이를 때만 가능하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7.04 06:36 신고

    콩가루 집안 싸움이 일어나는 좋은 기회에서 야당도
    이를 공격못하는 똑같은 상황이라 참 안타깝습니다

    공격에서 기회를 놓치면 오히려 공격을 당하고 곧이어
    실점하는법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04 21:03 신고

      문재인이 더 강력하게 나가야 하는데 자신이 대표로 있을 때 당이 분당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열린우리당의 경험이 뼈져리게 남아 있기 때문인데, 그때와 지금은 다르기 때문에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2. 참교육 2015.07.04 07:30 신고

    트위트와 페이스 북에 공유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이 악마들의 마취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란 그림의 떡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04 21:48 신고

      네, 제발 깨어났으면 합니다.
      속지 말고 무엇이 우리에게 인간다운 삶을 제공하는지 알았으면 합니다.

  3. 耽讀 2015.07.04 09:37 신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조각할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경제부총리를 김종인이 아니라 김진표를 임명한 것입니다. 그 때 김종인을 경제부총리에 임명하고 청와대에 들어간 이정우 경북대교수와 정태인과 함께 경제정책을 이끌었야 했습니다. 노무현정부 경제정책도 이명박근혜보다는 아니지면 큰 물줄기는 신자유주의였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04 21:51 신고

      네, 좌파 신자유주의였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좌파적 버전이 있는데 그것을 선택한 것이지요.
      임기 말에 신자유주의의 붕괴를 목격하며 비로소 눈을 떴는데 이명박이 이를 완전히 망가뜨렸습니다.

  4. 구름바다 2015.07.10 06:00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찬성하는 바입니다.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보다 선명하고 강력한 야당의 색깔이죠.
    어느 누가 말 했듯이 현재 새누리당의 권력욕의 화신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불리할 때만 약자처럼, 사람처럼 쇼를 할 뿐
    그들이 힘을 가졌을 때는 악마와도 같은 탐욕의 화신 그 자체의 짐승이란 걸 보여 주죠.
    그래서 사람들이 보다 더 확실히 깨닫고 깨어 나게 하기 위해서
    보다 강력한 메세지를 던지는 야당의 선명한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10 15:04 신고

      야당이 좌파적 가치를 강화해야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진보적 가치만으로 부족합니다.
      최악에 이른 신자유주의를 파괴하려면 좌파적 가치가 필요합니다.
      이 상태로는 안 됩니다.

  5. 어라라 2015.07.29 00:55

    뭔가 잘못 알고 계신거 같습니다. 한국이 자유주의 내지는 거기에서 파생된 신자유주의를 철학으로 가진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이명박때도 그렇지만 박근혜 정부는 계획경제 철학에 가까운 정책만 펴고 있습니다. 4대 개혁이라는것도 마거릿 대처가 했던것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개혁입니다. 제가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중도적 성향이었고. 박근혜정부는 중도 좌파 내지는 좌파 성향이 강합니다.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작은정부/개인의자유/자유로운경제활동/사유재산보호등의 기본 베이스는 똑같고. 신자유주의는 거기에 선별적 복지같은 정부의 역할을 조금더 추가한 수준입니다.

    마지막 kbs1 사진에 하이에크 나오는건 '커맨딩 하이츠'라는 미국 공영방송을 국내에 방송한겁니다.
    만약 커맨딩 하이츠를 1~6편 다 보셨다면 지금 한국이 우파가 아닌 좌파 정권이라는걸 아실수 있습니다. 전부 계획경제의 산물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우파가 없습니다. 새누리가 우파 정당이라 생각하면 잘못알고 있는겁니다. 저도 자유주의자로서 새누리를 보자면 좌파에 불과합니다. 신자유주의 철학을 가졌다면 절대로 단통법,도서정가제같은 정책은 절대 만들수 없는 규제정책이거든요.

    • 늙은도령 2015.07.29 02:05 신고

      신자유주의는 19세기의 정치경제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런 식으로 움직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특히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는 다릅니다.
      현실의 신자유주의는 상위 1%는 사회주의를 하지만 하위 99%는 무한경쟁의 자본주의로 내모는 것입니다.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되 정부의 개입을 경쟁 강화와 규제 완화처럼 친기업적이고 친자본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특정 사업에 대해 국가독점을 인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에게 편하기 때문이며, 세금으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좌파적 버전도 있고 우파적 버전도 있습니다.
      미제스와 하이에크나 프리드먼 등은 학술적 의미의 신자유주의에 불과하지 권력관계의 신자유주의에 들어오면 내용이 달라집니다.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점은 미셀 푸코만이 아니라 촘스키, 삭스, 크루그먼, 스티글리츠, 최근에는 피케티까지 수없이 많은 석학들이 분석했고요.
      무한경쟁을 강자에게는 적용하지 않으면서 약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현실의 신자유주의입니다.
      정부와의 관계는 필수이고요.
      정경유착, 회전문 인사 등 현실상의 신자유주의는 수없이 많은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영미식 신자유주의만이 아니라 독일식과 그 변형태인 한국과 일본의 신자유주의도 공부해야 합니다.
      공산주의처럼 이론 상의 신자유주의는 현실에서 절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필요한 것이고, 대신 친자본적이고 친기업적이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정치경제학적 이데올로기를 넘는 현실적 통치술에 대한 것입니다.
      단순히 학문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6. 어라라 2015.07.29 01:21

    지금 한국은 큰정부/정부치출증가/국가부채증가/공무원증가/관료주의/반자유주의정책/무상복지/케인즈주의 등등
    신자유주의의 이론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처럼 대놓고 정부가 사기업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유화 하지는 않았지만.
    규제와 더불어 국민연금의 막강한 자금으로 정부가 슬슬 기업들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도 어찌보면 다른형태의 국유화죠. 거기다 정부가 대놓고 기업들에게 혁신하라 일자리 만들어라 주문하고 명령하는 상황입니다. 은행은 왜 돈 안푸냐고 성내고 등등 이건 절대 우파적 가치가 아닙니다. 가짜우파입니다. 신자유주의 철학에는 절대 이런 방식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부의 이런 반시장 계획경제적 철학은 전체주의나 공산주의의 길로 들어선다고 반대하는 곳이 신자유주의 입니다. 지금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새누리조차 좌파라고 비난하고 있는상황입니다. 저역시도 그렇고요. 계속 이렇게가면 2030~40년사이에 한국은 국가가 파산할지 모른다고 아주 걱정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9 02:12 신고

      공무원 증가도 신자유주의와 항상 대척점에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 내 기업의 영역을 늘리면 공무원 증가는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대척점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지출증가도 신자유주의에 반한 것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가 원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프리드먼의 공급학파가 주장하기도 했고요.

      어떤 공무원 증가냐를 봐야 합니다.
      어떤 부처는 공무원을 줄이고, 그 부처에 반하는 인사를 임명하고, 그래서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그것을 살펴야 합니다.

      반자유주의정책도 이론상의 신자유주의에만 반하지 현실의 통치술로 신자유주의와는 반하지 않습니다.

      즉 신자유주의는 통치술로 봐야 합니다.
      줄푸세가 바로 신자유주의의 핵심입니다.
      국민은 일방적 법치주의로 억압하고, 규제를 풀고, 특정 복지 등을 줄이는 것이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핵심입니다.

      이명박은 신자유주의 통치술이 붕괴되는 시점에 있었기 때문에 세금과 온갖 방식의 채권을 발행해 신자유주의 세력들에게 돈을 갖다 바쳤기에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반하지 않습니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좌파버전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혼동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상위 0.1%를 위해 99.9%를 털어가는 것입니다.
      이론은 기본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7. 김종현 2016.01.04 15:49

    좌중지란--->자중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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