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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세월호 되돌아보기, 다이빙벨 논란에 대해



다이빙벨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가 최악으로 끝난 것은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입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직후 구조당국의 대응이 구조를 포기한 듯한 수수방관으로 일관하자 이에 분노한 유족들이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찾아보기 위해 이종인 사장에게 다이빙벨을 투입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종인 사장은 위대한 인간이 아니다. 그는 단지 다이빙벨이라는 구조장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투입되면 잠수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 판단이 순수한 휴머니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은 상식의 선에서도 알 수 있다. 기술공학적으로 봤을 때 다이빙벨은 강한 유속에서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뉴스타파와 고발뉴스 등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아이들을 구해야 할 유족들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고의적인 업무태만과 정경유착의 사슬에 얽혀있는 구조업체만 믿고 기다릴 수 없었다.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다이빙벨이 아니라 그보다 못한 것이라도 투입해야만 아이들의 시신이라고 수습하고,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이 잠수장비를 들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판에, 다이빙벨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투입해야 했다.

 

 

유가족들은 구조보조장비인 다이빙벨이 투입됐을 때는 물리적으로도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이빙벨이 투입된다고 해서 아이들이 기적같이 생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단 한 순간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칙과 특권의 카르텔은 생명을 경시하기가 극에 이르렀는데, 이종인 사장의 다이빙벨이라도 투입해야 했다.





게다가 국민으로부터 시청료를 받는 KBS와 공영방송에서 악마의 방송을 전락한 MBC를 주축으로 해서, 대부분의 방송들이 정권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세월호참사의 보도들을 줄이고 있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다이빙벨 투입과 관련된 논란들이 불거지는 것은 박근혜와 청와대, 정부와 새누리당으로 향하는 성난 민심을 물타기 하려는 수작이었고, 끝내 다이빙벨은 구조작업에 투입되지 못했다. 

 

 

박근혜는 여왕이나 군주가 아니다. 그녀는 임기 5년의 대통령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행정부의 수장이다. 다이빙벨 논란도 대통령이 아이와 가족들을 위해 일단 투입하고 보라고 했으면 벌써 종결 났을 사안이었다. 채동욱 검찰총장과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내듯, 그렇게만 했어도 다이빙벨 논란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뭔가 찔리는 것이 없다면 이런 논란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터였다.    

 

 

아이들과 국민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의무이고 정부와 집권여당의 책무다. 대통령과 정부에게 그 거대한 국가공권력과 막강한 행정기관들을 통설할 권한이 주어지는 것도, 국정의 파트너로 집권여당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들과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와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침몰현장에 쏟아 부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헌데, 다이빙벨 투입논란이라니! 정말 역겨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었다. 지금까지도 세월호는 맹골수도에 수장돼있고 9명의 미수습자는 귀혼처럼 떠돌고 있는데 다이빙벨 논란이라니! 필요하다면 정부의 인력과 장비 모두를 투입해도 모자랄 판에 다이빙벨 하나 투입하는 것이 논란거리가 되는 나라가 박근혜 치하의 대한민국이었다. 사고 발생 직후, 세월호 선장과 직원들을 구하는 데만 열을 올린 해경에게 다이빙벨을 투입하라고 하면 어떤 논란도 필요없을 일이었다. 

 

 



더욱더 환장할 노릇은 다이빙벨 논란에 관한 다큐멘터리 상연도 가로막았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돋음한 부산영화제를 개판으로 만들고, 관계자들을 협박하고,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 박근혜가 입만 열면 떠들던 한류와 창조경제와 충돌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종편보다 악랄해진 MBC는 한 발 더나가 다이빙벨의 무용론과 음모론적 보도까지 서슴지 않았다.



필자가 세월호참사 되돌아보기를 시작하고, 블로그에 그 동안 써왔던 관련글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모은 것은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영원한 헬조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가 국민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마저도 집권세력과 언론들을 총 동원해 무력화시킨 것을 바로잡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못한 최악의 국가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직도 단원고 희생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 9명의 미수습자를 비롯해 모든 희생자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들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며, 살아서 책임자들과 진상규명을 불가능하게 만든 자들이 처벌받는 것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필자의 정의고, 살아야 하는 이유이며, 인간에 대한 최소한 예의를 지키는 일이다.



진실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생각한 것보다 더욱 추악할 수도 있지만, 단원고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면 세월호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이 선행되는 것은 절대 조건이다. 그날까지 투쟁할 것이며, 참사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모두 다 기억할 것이며, 슬픔과 눈물, 분노와 다짐으로 나 혼자만의 기록도 이어갈 것이다. 아직도 필자는 단 한 명의 아이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