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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리쌍의 법대로와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



결국 법을 앞세운 폭력적인 강제집행이 이루어졌다.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폭력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허울뿐인 개념과 함께, 우월적 강자가 상대적 약자를 찍어누르는 전가의 보도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개념화한 '일반의지'는 법으로 구체화된다. 인민이 만들고 지켜야 하는 법에는 모두가 동의한 일반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에 최고 주권의 통치자라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법 앞의 평등'이다. 누구도 상대적 약자라는 이유로 법정에서 불리하지 않으며 동등한 변호를 보장받는다. 지금처럼 우월적 강자는 거대 로펌의 변호를 받고, 상대적 약자는 국선변호사나 무료변호를 받는 실질적인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국가에서는 절대명제로 어떤 의문도 허용되지 않는 '법 앞의 평등'은 부와 지위, 인맥 같은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불평등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루소의 일반의지를 반영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지고, 이익의 충돌이 첨예해졌으며, 통치자이자 피통치자인 인민이 국가주권(최고주권)에 복종해야 하는 의미의 국민으로 격하된 이래, 법의 제정을 소수의 국회의원과 전문가, 행정부에 넘어간 이후에는 법의 정립, 집행, 적용에서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법 앞의 평등'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렇게 생긴 야만의 빈공간에 우월적 강자들이 전유물로 변질된 '법대로'가 자리잡았다.



리쌍의 '법대로'도 이런 배경 하에 바라봐야 한다. 리쌍의 옹호자들은 강제집행이 '법대로'로 진행됐기 때문에 '합법적이기에 압도적인 폭력을 동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서윤수 씨가 우장창장을 개업하기 위해 들인 자금(현재 2억5,000만원)을 빌미로 리쌍의 '법대로'를 옹호한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우월적 강자가 법(임차대보호법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을 앞세워 상대적 약자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내몰아도 괜찮은 기준이 2억5,000만원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일반의지가 담겨있는 법(사회계약)이 어떤 불평등도 인정하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서 우월적 강자의 무기이자 보호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허울뿐인 개념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드의 성주 배치를 강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한미 간에 체결한 법률인 '소파 규정의 불평등'을 파고든 것인데, 리쌍의 '법대로'와 법논리 상에서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홍만표를 동원한 정운호 게이트와 진경준 검사장의 축재에서 보듯,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검사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법대로'에서 나온다. 검찰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한 기소권 독점도 법에 근거한다. 극소수의 슈퍼리치와 거대 투기자본이 주권국가와 싸울 수 있는 것도 '법대로'를 극대화한 것에서 나온다.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법은 99.99% 우월적 강자의 수단으로 변질된다.   



싸이(강제집행을 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에 이어 리쌍까지 '법의 맹점'을 이용해 '법대로'만 외치며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우월적 강자가 상대적 약자를 지옥으로 내모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아 먹먹하기만 하다. 물적 탐욕에는 만족이란 없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 가지려 하는 것이 물적 탐욕이다. 리쌍은 시청자와 팬들의 사랑으로 벌어들인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 땅의 약자들은 촛불만 들 수 있지만, 강자들은 '법대로'를 앞세워 경찰, 용역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다. 어디에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상생과 공존, 공감과 상식이란 없고, 그래서 사람사는 세상이란 아득한 꿈이 되버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