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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복동 할머니가 국정감사에서 던져준 소름끼치는 깨달음


간이 망가진 만성질환자에게는 치명적인 항생제와 소염제를 다량으로 복용한 상태에서 위안부협상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를 보고 있었습니다. 항생제와 소염제에 포함된 스테로이드 성분을 견디지 못해 체온이 상승하고 빠른 속도로 속옷을 적실 만큼 식은땀과 그에 비례해 커져만 가는 고통에 힘겨워하던 어느 순간, 축축한 속옷을 한순간에 얼려버고도 남을 소림이 온몸을 관통했습니다. 벼락처럼 저의 영혼을 덮쳐버린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 때문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생생하게 경험한 노모로부터 수없이 들었지만, 그 당시에도 위안부는 대다수 조선인에게는 투명한 존재처럼 보이지 않았고, 가족들에 의해서도 철저하게 은폐돼야 할 부정의 존재였습니다. 당시의 모든 분들처럼, 한 명의 인간으로 실존하면서도 철저하게 소외된 존재처럼 모두에게서 부재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우리의 할머니들. 꽃다운 나이에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철저하게 짓밟혔지만, 일제는커녕 박정희 부녀라는 두 명의 대통령에게도 버림을 받아야 했던 김복동 할머니.    





일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양반 출신이어서 한반도로 건너온 일본인들과 수없이 싸웠던 필자의 노모도 당시에는 위안부의 존재여부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88세의 노모는 필자와 함께 위안부협상에 대한 국정감사를 지켜보며 분노를 금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모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지인으로서 잘못된 교육을 받았을지언정 조선인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며, 김복동 할머니의 발언을 한없이 슬픈 표정으로 경청했습니다.



위안부할머니들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조국에 돌아와서도 친척과 이웃에게까지 일본군의 성노예였다는 사실을 감춰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비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읽어 제목조차 생각나지 않지만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분들 중에서 상당한 비율(60~70%)의 할머니들이 자신의 피해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나와있었습니다. 제목조차 생각나지 않은 것처럼 제 기억이 잘못될 수도 있지만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에 장기기억에서도 사라졌던 충격적인 비율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온 김복동 할머니는 다수의 할머니들로부터 동의를 받았다며 굴욕적인 위안부협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김태년 의원장의 거짓말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의 거출금을 받겠다고 동의한 할머니들이 가족의 강요에 시달렸으며, 자신의 의견조차 제시하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일부 할머니들은 잘못된 정보에 속아 돈을 받았다는 주장도 개진했습니다. 위안부협상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김복동 할머니의 일갈은 필자로 하여금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우쳐주는 소름 돋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할머니들의 현재 상황이 각기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부 할머니들이 일본의 거출금이라도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굴욕적인 위안부협상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은 아니며, 자신을 대신 파렴치한 일본 정부와 수십년 간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분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분들도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그에 합당한 배상을 받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본의 거출금을 받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헌데 필자의 어머니보다 몇 살 어른인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을 듣는 중에, 김 위원장이 박근혜와 아베가 맺은 위안부협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이용해먹은 할머니들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다수 할머니들은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도 높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싶은 할머니들도 있겠지만, 최소한 김태년 이사장이 만났다는 할머니들의 상황에 대해 정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처럼, 일본의 거출금을 받은 분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조사해 한국 정부의 돈으로 변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군에게 성노예로 철저하게 짓밟혔음에도 그들의 돈이 필요할만큼 절박한 분들이 있다면 국민의 세금이나 성금으로 그분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후손들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만이 그분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정부를 대신해 일본 정부(아베 내각)를 상대로 법적 사과와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은 박근혜 정부와 협상 담당자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성을 강하게 제시해주었습니다. 일본의 거출금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들이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일본의 거출금을 받은 할머니들이 속은 것은 아닌지 확인해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효력을 지닌 불가역적 사과와 그에 합당한 배상을 받아낼 때까지 생존해 있는 할머니들을 제대로 보살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실태파악에 나설 리가 없기 때문에 정대협이라도 이분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그분들에게 자신이 받는 돈이 배상금이 아닌 거출금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그에 해당하는 돈을 국민의 성금으로 변제해주면 박근혜 정부의 비열한 행태를 까발릴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박근혜 정부의 거짓된 회유에 속아넘어갔다는 사실을 밝힐 수만 있다면 굴욕적인 위안부협상을 무효화시키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굴욕적인 위안부협상을 주도한 박근혜를 할머니들과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번 글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힘겨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죄송함의 발로이자 최소한의 사과입니다. 동시에 박근혜 정부에 대한 복수의 일환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협상의 불법성을 악착같이 숨기고, 야당들이 이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여러분과 제가 직접 밝혀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늦었지만, 대단히 늦었지만 역사의 정의는 그렇게 실현하는 것입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을 들으면서 수없이 많은 책들에서 배우지 못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아낸다고 해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던 가늠할 수 없는 피해와 영혼에 가해진 수없이 많은 살인행위를 온전히 풀어드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이 과거를 숨겨야 했던 할머니들의 원혼을 달래드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불행한 과거를 숨길 수밖에 없는 할머니들의 한도 풀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크기와 슬픔의 깊이를 어떻게 가늠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복동 할머니가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와 했던 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려주신 것들을 하나씩 실현해가야 합니다. 모든 정당성을 상실한 박근혜 정부를 최대한 빨리,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단죄하려면 지금부터의 우리는 어제까지의 우리와 달라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얼마남지 않은 할머니들의 회한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야 합니다.

 

 

굴욕적인 위안부협상을 원천무효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현실적 한계를 넘지 못하더라도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위안부협상 원천무효의 가능성이 살아있을 수 있으며, 이땅의 특권층에 자리잡은 악질적인 친열부역자들을 청산할 수 있습니다. 굴욕적인 위안부협상을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시대적 과제인지 깨달아야 하며, 다시는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박근혜와 아베가 맺은 위안부협상을 바로잡을 수 있을 때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생존해계신 할머니들의 여생이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도 받지 못한 채 떠난 할머니들의 영전에 꽃이라도 바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죽을 때까지 혼자만의 비밀로 감당하면서 하루하루가 슬픔과 회한으로 점철되고 있을 이름 모를 할머니들을 조금이라도 보듬어드릴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방송 준비 때문에 지금에서야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글을 썼을 때는 김복동 할머니가 생존해계실 때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랐습니다. 일본 정부가 껌깞처럼 던져준 10억엔을 국민의 성금으로 되돌려주고 위안부협상을 원점으로 돌려놓은 뒤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고 싶었습니다. 아베 내각의 초계기 도발과 반한감정 유발이 도를 넘은 지금, 김복동 할머니가 힘겹고도 슬펐고, 용감했으며 위대웠던 생을 마감했습니다. 

 

 

과거를 바꿀 수 없다면 미래라도 제대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위대한 투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슬픔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이 크지만,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것만으로는 일본 정부의 파렴치한 행태를 벌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국민과 미래의 국민까지 고려해야 할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이 대단히 무겁고 슬프겠지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과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똑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역사를 잊지 않은 한 명의 국민으로써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면 됩니다.    

 

 

언제나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은 생존해계신 할머니들을 배려할 수 없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죽음을 되돌릴 방법도 없습니다. 아베 내각의 악의적은 도발을 저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트럼프가 비워놓은 지정학적 공간을 우리의 힘만으로 채울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김복동 할머니가 보여주신 굴하지 않는 정신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보여주신 슬프고도 아름다운 투쟁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떠났지만, 우리는 보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