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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공동성명에서 free가 빠진 이유와 한미FTA 재협상 요구


문재인과 트럼프가 정상회담에서 나눈 대화들을 공동의 성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7시간이나 걸린 이유 중 핵심이 'free and fair trade'라는 문구에서 'free'를 빼는 것이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FTA 재협상이나 자유무역에 반하는 각종 보복조치를 강행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월가로 대표되는 금융과 IT와 (의료, 법률, 교육 같은) 전문서비스ㅡ이 세 분야는 이익 대비 일자리 창출과 정규직 비율이 가장 낮다는 공통점이 있으머, 이 때문에 불평등을 강화하는 수익창출구조를 공유한다ㅡ위주의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상위 1%(슈퍼리치이자 지배엘리트)의 수호천사 역할에 충실했던 오바마 때문이었습니다.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오바마 행정부의 편향된 정책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수만 명(장기적 영향까지 따지면 수백~수천만 명이 넘을 수도 있다)의 목숨을 앗아갔고 수천만 명의 중하위층을 빈곤층으로 내몰았지만,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의 주범들은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부와 권력을 더욱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에 분노한 미국의 저임금·저학력 노동자(경쟁력을 상실한 제조업에 집중)들이 보호무역과 미국우선주의를 들고나온 트럼프에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오바마는 월가와 런던금융가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악마들을 단죄해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을 일부라도 바로잡는 것에는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바마가 올린 최저임금은 미국의 기형적인 산업구조 때문에 일부의 노동자에게는 약간의 이익이 돌아가지만, 그만큼 늘어나는 소비 때문에 각종 부채(투기·금융자본의 돈줄)의 재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합류하지 못한 극빈층들은 노숙자로 전락해 시장경제의 밖으로 퇴출당했고요. 



이런 구조적 모순을 바탕에 깔고 오바마케어를 바라보면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민저항이, 시장경제 밖으로 밀려나 '쓰레기로 버려진 삶들'의 분노한 폭력혁명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막기 위한 임시처방전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주류언론이 철저하게 차단했던 샌더스 돌풍도 이런 면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며, 그의 핵심공약이 월가의 해체를 포함한 민주적 사회주의의 정책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샌더스의 공약은 유럽적 시각에서 보면 말년의 마샬이 수정·보강한 시민권 개념을 보편적인 인권의 개념으로 확장시킨 '민주적인 시장사회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샬의 《사회정책》 1985년 수정판, 마샬 & 보토모어의 《시민권》을 참조).



오바마 비판에 대해서는 얼마 전 작고한 지그문트 바우만과 페미니스트에서 신자유주의 고발자로 변신한 나오미 클라인과 동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필자가, '미국은 왜 신용불량 국가가 되었을까(찰스 모리스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지배엘리트를 구축하고 있는 상위 1%의 부와 권력을 위해 하위 99%의 얇은 지갑마저 털어간 역계급혁명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반혁명은 극단의 불평등을 창출할 수밖에 없는 4산 산업혁명의 무차별적인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오바마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려 하는 트럼프가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free'를 빼고 'fair'만 넣은 것은, 지배계급의 반발(탄핵으로 치닫고 있다!) 때문에 1%의 미국의 경제구조를 바꿀 능력이 없어서, 북한의 도발과 사드(중국의 보복 포함), 수구세력, 자유한국당, 기성언론 등에 발목이 잡혀있는 문재인 정부의 대한민국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악랄한 술수입니다. 한미FTA 재협상은 두려울 것이 없지만, 철강 등에 대한 살인적인 보복관세나 미국시장을 놓칠 수 없는 수출기업들에게 가해지는 전방위적 압박은 중국의 보복에 뒤질 정도가 아닙니다. 



'제3국을 경유하는 수출에 대한 관세(across-the-border tariff), 관세와 쿼터제의 제멋대로의 조합, 특정 국가를 겨냥한 노골적인 쿼터제, 불공정한 통상 관행에 대한 일방적인 시정 조치(enforcement measures for unfair trade practice)'로 대표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이익 챙기기'와 '착취적 일방통행'은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게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최종목표는 나프타와 TPP의 파기나 재협상, 중국의 통큰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지만, 그것들을 위한 예행연습으로 대한민국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의 무역장벽은 끝없이 낮추라면서, 자신의 무역장벽은 한없이 높이는 방식으로.



국제법을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한국기업들에게만 집중적인 단속을 펼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처벌을 남발하고 있는 시진핑 행정부의 비열한 보복까지 더하면, 사드의 비정상적 배치에 따른 대한민국의 피해가 계산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FTA 재협상에 당당하게 맞서라'고 했지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트럼프 행정부에게 파상공격의 동력을 제공해주고 있는 사드 배치에 대한 조건부 수용(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불가역적 합의)에도 고미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드 배치의 조건부 수용을 천명하면 (노무현의 좌절로 이어진) 지지층의 대량 이탈이 일어날 수 있으며,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근거인 대통령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급격하게 약화될 수밖에 없고, 촛불혁명의 명령인 적폐청산과 국가개조 작업에도 최악의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드 배치에 관한 국민적 토론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과 중국, 북한에게 대단히 불편한 내용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진다 해도 이런 적나라한 부분까지 토론할 수 있어야 탈조선의 적폐청산을 전방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힘이 실릴 수 있습니다. 한쪽이 요구하면 응할 수밖에 없는 한미FTA 재협상에서도 우리의 이익을 지켜야 하며, 독소조항의 개정을 역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한미FTA로 이익을 본 분야에서 피해본 분야로 이익을 재분배하는 것까지 다룰 수 있으면 최상이고요(위기가 곧 기회다!).



미국은 상대방에게는 자유무역을 강요하면서도 자신은 보호무역의 장치들을 마음대로 가동할 수 있는 위선적인 행태를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최강국이고, 국가사회주의의 중국도 정부 주도의 보복을 자행할 수 있는 또 다른 최강국입니다. 여기에 '통미봉남'이라는 미국과 북한의 직접협상이 진행되기라도 한다면 대한민국에 떨어질 관련 비용은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사드 배치에 관해 조건부 찬성(지역 재지정, 배치하되 가동하지 않는 것 포함)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양대 최강국과 맞설 수 있는 힘을 실어주려면 모든 것들을 까발린 열린 토론이 필요하며, 미래세대의 이익까지 고려한 냉철하고 지혜로운 합의에 이르러야 합니다, 미 소고기수입 전면개방 반대촛불집회로 미국의 양보를 받아낸 기억을 떠올리면서. 미국과 중국과 북한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도 없으며, 아베와 자민당의 일본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드를 축으로 반혁명을 노리는 수구세력의 준동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덤이고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