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가 관세 부과와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 혹은 외한 통제를 할 경우 어쩌면 상대편 나라의 복지에는 자신들이 얻은 이익보다 더 큰 손실을 끼칠 수 있다.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r) 전술은 보복 조치를 불러올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각국은 서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더 나쁜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다.

                                                                           

                                                                            ㅡ 찰스 P. 킨들버거의 《대공황의 세계 1929-1939》 중에서

 

 

갈수록 단위가 커지는 지역화폐 예찬론에 브레이크를 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가 많은 파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지역화폐의 문제점들을 파고든 조세연의 보고서는 경기도에서는 지역화폐로, 전국적 차원에서는 기본소득으로 거대한 지적사기를 펼치고 있는 이재명의 대통령병을 제대로 까발렸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습니다. 조세연의 보고서는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너무 당연한 분석이어서 잘못된 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재명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경기도 판인 지역화폐는 부자에게 떡 하나 더 주는 불공정과 부정의의 정치경제적 세탁에 불과합니다. 조세연 보고서에 나와있듯이, 지역화폐의 재원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돌아갈 현금성 복지ㅡ출산지원금, 청년배당,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 공무원 복지포인트 등ㅡ에서 90%가 나옵니다. 상위 5%의 부자에게 누진과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해도 시원찮을 판에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보편적 복지비용에서 재원을 마련하는 최악의 강도질입니다.  

 

지역화폐는 케인즈의 승수효과도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지역화폐를 받기 전에 지출했던 기존의 생활비를 대체할 뿐이어서 경제적 파급효과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경기도 인접지역 주민들이 지역화폐를 현금으로 깡할 경우 그 지역에서 사용될 돈마저 경기도로 이전됩니다. 조세연 보고서에 나오는 인근 궁핍화(근린궁핍화)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국경을 나누는 선 하나로 미국인과 멕시코인의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착한(또는 좋은) 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 지역의 특정 집단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지역화폐의 문제가 자명하게 보입니다. 바라건대 조세연 보고서에 대한 토론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금융위기나 대공황을 다룬 책들과 불평등 극복을 위한 피케티 이후의 경제학 서적들을 보면 이재명과 그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얼마나 불공정하고 부정의한지 금새 알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www.youtube.com/watch?v=EozaE0HYMP0

 

 

1870~1970년까지 100년 동안 미국인의 생활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인 다양한 발명품들ㅡ내장열차, 전등, 냉장고, 세탁기, 실내배전, TV, 자동차, 비행기, 에어컨, 네트워크화된 집 등ㅡ과 공중보건 및 의학, 공교육 등의 발전이 다시 되풀이될 수 없는 경제혁명이었다고 주장한 로버트 J. 고든은 지식과 정보사회를 문을 연 디지털 혁명이 생각보다 인류의 복지를 늘리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디지털기술, 즉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이 이끌어갈 미래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인 고든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는 많은 경제학자나 미래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최근에 들어 디지털 공간이 만들어내는 분열과 갈등의 세상은 고든의 주장이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조국 죽이기'로부터 하나도 배우지 못한 자들의 '추미애 죽이기'는 디지털기술이 가져다 준 것은 삶의 질 향상이 아닌 후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듭니다. 

 

본질은 다루지 않은 채 지엽적이고 진영적 논리에 매몰돼 극단적 대결을 이어가는 좌우의 유튜버와 스피커들의 공방을 보고 있으면 토론과 타협의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갈등과 분열, 반목과 혐오의 콘텐츠들로 인해 정신건강이 나빠지고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룹별로 나뉘어 있는 페이스북보다 불특정다수에게 오픈된 유튜브가 더욱 혼란스러운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현실 공간으로 돌아가면 코로나19의 재유행을 힘들지만 버틸만 했던 2.5단계 거리두기로 거뜬히 극복해가고 있는 위대한 국민들의 상호 배려와 이타적 희생들을 보면 희망을 가져도 됨을 확인하게 됩니다. 10여 일만에 집밖으로 나가 함께할 수밖에 없는 삶의 공간에서 만나고 지켜볼 수 있는 국민들은 모두가 승자이자 위대한 국민이었습니다. 철인이 아닌 이상 그들 모두 코로나 블루가 극단적으로 커졌을 텐데 미증유의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해온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위대한 역사였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그래서 계량화된 경제지표에는 전혀 잡히지 않는 이런 위대함이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없는 노무현의 시대가 가능한 것이 이런 위대한 국민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조국 죽이기와 추미애 죽이기가 노무현 죽이기의 반복이 되지 않고 대역전이 가능해진 것도 이런 국민들이 현실공간을 상생과 공존, 배려와 존중으로 채워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10%가 여전히 디지털 공간에서 활약하며 나름의 주장과 사실 확인을 하고 있지만 끝없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기술상의 테크로놀로지 때문에 디지털 워리어의 강세가 당분간은 지속될 전망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지식채널로 돌아 보다 수준 높은 지식을 무장한 지적검증부대를 만들고 싶지만 최소한 공수처 설치와 4대의료정책 집행까지는 디지털전사의 역할을 놓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삶은, 희망이 있는 삶은 몇 미터 밖에 있었습니다. 끝을 모르는 코로나19의 재유행에도 단 몇 걸음이면 도달할 수 있는 사람사는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먼저여서 상호 배려하고 존중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희망을 놓지 않고 코로나19 재유행이란 거대한 늪을 거뜬히 건너고 있었습니다. 많은 자영업자와 가맹점주들이 고생하고 있었지만 정부의 집중적 지원을 받으면 그들도 코로나19의 공습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희망해 봅니다. 

 

단 하루였지만, 10여 일만에 세상에 나가보니 거기에 삶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습니다. 다시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질긴 희망이 세상사의 장벽을 뛰어넘어 행복의 일단이라도 그려내기 시작할 때 삶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살만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반나절이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신지요?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우리는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동안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실적을 이룩해낸 그런 최고의 국민입니다. 

 

 

https://youtu.be/36raW1Oa-NA

 

나라가 망하던 말던, 국민의 생활이 어려워지던 말던 정권만 되찾으면 그만이라는 국당과 정당으로써 생명을 다하고 있는 정의당이 한시가 시급한 4차 추경 처리를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보수적 표퓰리스트 이재명과 그 정도 수준 밖에 되지 않은 이재웅 등이 주장한 전국민 통신비 지원 반대입니다. 이재명이 전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을 지급하면 통신사 배만 불릴 뿐이며, 승수효과도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을 국당과 정의당이 냉큼 받아먹은 것입니다. 

 

정의당은 무시한다 해도, 국당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대통령만 되면 나라와 국민이 어떻게 되던 상관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이재명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승수효과를 들먹이며 떠들었던 것들이 국당의 추경 처리 반대논리로 채택된 것이지요.  케인즈가 《일반이론》에서 제시한 승수효과는 결과를 놓고도 검증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지난 60년 동안 지속적인 논쟁을 벌였지만 어느 쪽도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현실의 경제학은 수학적이고 추상적인 접근으로는 그때마다 답이 달라집니다. 이념적 색깔을 칠하면 더욱 답이 달라지는 것이고요. 이재명 수준에서 승수효과를 제대로 이해해 문재인 정부의 결정을 반대하는 논리로 사용할 리 없었을 터, 야당에게 반대의 명분이나 준 것이지요. 제가 여러 영상을 통해서 대통령병에 걸린 이재명이 민주당이 아닌 국당의 후보로서 딱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과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일단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야성적 충동'을 다스리기 위한 케인즈의 확대재정이 아니라 케인즈가 바로잡고자 했던 것을 더욱 부추기는 확대재정입니다. 경제학적으로 설명이 상당히 필요하지만 대규모 공적자금과 무제한 양적완화로 대표되는 확대재정의 결과들이 모두 다 실패로 결론나고 있음은 현재의 미국과 일본, 영국, 유럽 등에서 분명하게 입증되고 있습니다. 

 

케인즈의 승수효과는 그의 경제학의 최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한 것이 이런 예상하지 못한 결과들의 발생 때문입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케인즈가 승수효과를 주장하던 시절(고성장 고금리 고물가)과 다른 현재의 경제상황(저성장 저금리 저물가)도 고려해야 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수식이나 모델만 알고 있다고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수식이나 모델은 현실을 극도로 단순환한 것이라 수없이 많은 변수들이 묻혀버립니다. 

 

경제학보다 경제사 공부가 더 중요한 것도, 타 학문과의 공동작업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재명처럼 대통령병에 걸린 표퓰리스트가 얼치기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경제학적 지식이 부족한 국민들을 선동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기술 위주의 낙관적으로 보는 미래학자나 시장과 성장만능주의자들의 허튼 소리 때문에 작금의 모든 문제들이 발생했음에도 여전히 이재명 같은 표퓰리스트에 놀아나는 것이 답답할 노릇입니다. 

  

 

이번 글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경제학 논쟁을 재연할 필요는 없을 터, 통신비 지급에 반대하는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면 김경수 경남지사가 제안한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최상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통신비 지원이 필요없는 부자들에게 지원하지 않거나 일부 연령대를 제외하는 것보다 김경수 지사의 제안처럼 '무료 와이파이망 확대'가 차별없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논쟁 대신 미래를 위한 투자로써 가치 있어 보입니다. 

 

김경수 지사처럼 타협점을 찾기 힘든 갈등이 있을 때 실현 가능성이 있는 접근을 내놓고 발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입니다. 문재인 정부로써는 시간이 많다면 이번 통신비 지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통해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지만 코로나19 재유행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에서 4차 추경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부는 이재명의 반대논리에 화답한 야당들이 대놓고 반대하는 상황에서 김경수 지사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지금까지 채택한 어떤 체제보다 우월하지만 그럼에도 온갖 허점을 가진 체제여서 국민의 수준에 따라 성공과 실패, 발전과 퇴행이 갈립니다. 대통령병에 걸린 이재명이나 무조건 반대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실패만 염원하는 국당, 기존의 당원들을 쫓아내면서까지 국당의 2중대 역할에 충실한 정의당의 반대도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과 기레기들, 극우유튜버, 악성 음모론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세계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칭찬하는데 오로지 이들만이 반대하는 현실이 답답하지만, 그게 민주주의의 한계라면 어떻게든 돌파해 보다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로 가야 하겠지요. 그런 면에서 김경수 지사의 제안은 시의적절하며 정치의 기능을 되살리는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https://youtu.be/rhVFR_p_CJ8

 

  1. 2020.09.14 06:2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20.09.15 07:48 신고

      바뀐 것은 일부 있습니다.
      그만큼 더 공부했고 최신의 석학들이 지난 50년간의 실증적인 증거들로 무엇이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는지 입증했으니까요.
      피케티 같은 경우는 참여사회주의를 들고나왔습니다.
      신세대 석학들은 좋은 경제학을 비롯해 실증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논지를 펼칩니다.
      그래서 더 신뢰가 가고요.

      저는 정치만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며 맨 처음에 가졌던 생각이 맞다는 것으로 돌아왔을 뿐입니다.
      몇 가지 서로 엉켰던 것을 풀어낼 수 있었는데 자본주의와 자기조절 시장경제에 종속된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표퓰리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가장 어울리는 조합이고요,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인정합니다.
      단 그것의 한계를 대단히 높게 설정했고 그를 통한 재분배를 통해 상향평준화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지요.

      세계적인 석학들도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후로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각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고, 그 이후로 방향이 바뀌었지요.
      저도 그중에 한 명일 뿐입니다.
      영상을 자세히 보시면 이해하실 것이고요.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의 거품까지 파악했기 때문에 더더욱 발전했고, 변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런 변화를 참교육님께서 이해하지 못하시기 때문에 이상하게 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처는 출발선으로 돌아왔으나 보다 중무장해 돌아왔습니다.

 

피케티와 파에즈 등을 비롯해 신세대 석학들이 신자유주의 50년의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기본소득이 아닌 청년기본(기초)자산제를 주장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어느 나라나 자식에 대한 교육비가 끝없이 상승하는데 비해 그 결과는 수많은 패자들만 양산할 뿐 투자 대비 효율성이 형편없을 정도여서 이 고리를 바로잡지 않으면 다음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청년기본자산제는 25세 같은 특정 나이에 청년 모두에게 기본자산으로 1억 정도를 주는 것인데, 재원은 신자유주의 50년 동안 모든 부와 권력, 기회를 양산해온 부자들에게 누진과세를 통해 마련합니다. 1945년도에 이미 실행됐던 이런 정의로운 조세체제는 국민이 투표로 결정하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시행가능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처럼 잡다한 일들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기본소득은 기존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거의 줄어들지 않으며, 시행과 유지에 너무나 많은 부작용들이 예상돼 좋고 착한 경제학을 하는 어떤 석학도 기본소득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청춘에게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며, 25세가 될 때까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도록 만들어줍니다.

부모들은 자식 교육에 등골이 휠 이유가 사라지고, 공교육은 극적으로 부활합니다.

 

세습되는 돈과 권력으로 기회마저 독점한 사교육 위주의 성공의 사다리도 사라집니다. 이밖에도 세계화의 피해자들을 집중적으로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청년기본자산제의 파급효과는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이런 내용에 대해 자세히, 그리고 쉽게 다루었습니다.

   

 

 

https://youtu.be/wbswoq-G2TQ

 

 

대단히 보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얼치기 진보매체들과 함께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한 MBC가 기본소득 토론을 마련했습니다. 이재명을 가열차게 밀어주고 있는 YTN의 폭주에 식겁한 모양입니다. 정준희가 사회자로 바뀐 것은 오늘 처음 알았지만, 세계적인 석학으로 칭송받았다가 최근에는 수많은 비판에 직면한 리프킨 교수를 제3의 패널로 섭외한 것에서 MBC와 진보매체들의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가 극단적으로 펼쳐질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유발 하리라의 명성에 상당히 많은 지분을 내줄 수밖에 없었던 리프킨 교수의 저작 중 《노동의 종말》과 함께 가장 많이 비판받는 것이 《한계비용 제로사회》인데, 이재명의 주장 상당 부분이 이 두 권의 책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초공룡의 대변자였다면 딱이었을 사이비 진단으로 넘쳐납니다. 신세대 석학들로부터 얼치기 미래학자들이 가장 많이 비판받는 내용이 모든 분야가 자동화되고 로봇으로 대체돼 한계생산비용이 제로에 이를 것이라는 점입니다.  

 

 

미래학자들이 부활시켰지만 이재명이 완전히 퇴행시킨 원래의 기본소득은, 마르크스의 역사결정론처럼, 앞으로의 세상과 기술 발전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치달을 것이기 때문에 '노동의 종말'은 피할 수 없는 결정된 역사이며, 마르크스의 또 다른 주장처럼, 극소슈의 슈퍼울트라매직 부자들이 모든 부를 독점하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좌파라는 가면을 쓴 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자들이 말하는 기본소득은 해당 국가의 1인당 GDP에 근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1인당 4만원을 주는 기본수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전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해 저주를 퍼부은 이재명의 기본소득 4만원 제공과 무엇이 다른지요? 100분토론에서 이재명의 횡설수설 쏟아낸 말들의 오류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전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기본소득 옹호자들의 수많은 오류들의 되풀이였을 뿐입니다. 

 

솔직히 제대로 기본소득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재명의 주장에 동의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오류투성이의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기본소득 옹호자들이라면 모두 다 자신의 지식과 연구가 얼치기 사이비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SBS를 맹렬하게 따라잡아 새로운 기레기의 제왕으로 등극하기 직전의 YTN과 옛날의 나쁜 버릇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 MBC의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눈뜨고 보기가 힘드네요.

 

 

 

www.youtube.com/watch?v=MqQm739xk18

 

 

제 분석이 맞다면, 미국 증시의 폭락은 여러가지 면에서 1929년의 대공황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싱크로율이 가히 100%에 가까울 정도 닮았기 때문에 걱정이 앞섭니다. 전세계의 메트로폴리탄들이 동기화돼 부동산투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최근의 전세계 증시들도 이상과열을 보여주었는데, 이 또한 1929년의 대공황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그때는 고금리, 고성장, 고물가였다면 지금은 저금리, 저성장, 저물가라는 점에서 다르지만 전체로써의 세계경제는 1929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대공황 이후의 회복탄력성만 놓고 보면 작금의 상황이 더 위험합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능력이 어떤 정부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땅의 동학개미들은 무려 150조가 넘는 돈을 빌려, 또는 증여받아 미국 증시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대공황이 일어날 때마다 하위30~40%의 자산을 털어 부실을 턴 다음, 천문학적인 차원으로 풀린 정부의 돈들을 상위1%에 이전시킵니다. 빈민층은 그렇게해서 대량으로 양산되며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욱 벌어집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qSGPGZmJcxk

 

  1. 참교육 2020.09.10 07:00 신고

    막차타는 사람들.... 걱정입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 늙은도령 2020.09.11 10:45 신고

      그들이 막차를 타게 만든 놈들이 정말 용서받을 수 없지요.
      돈이 넘쳐나는 사람이야 걱정할 일이 아니지만 대출과 대부 등을 받아 막차탄 사람은 작살날 수 있습니다.

  2. 유공실 2020.09.10 07:52 신고

    분할 매수해야죠~ 위험성은 항상 존재하니깐요

    • 늙은도령 2020.09.11 10:46 신고

      대공황이 되면 그런 것들도 아무 소용없답니다.
      하락폭이 모든 주식에 반영됩니다.
      실제 경제사를 공부해보시면 매일같이 거래하는 것과 다른 세상을 보실 거에요.

 

신자유주의의 목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모든 분야에 가해졌으며, 그렇게해서 투자 대비 효율성만 강조하는 경제학이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달콤한 상업 가설'이 무한대로 증폭해 최종 단계에 이른 것이지요.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를 집어넣으면 탐욕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을 내보내는 사탄의 맷돌'이 경제학 제국주의를 건설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상위 1%의 지배엘리트들이 소수의 경제학자들을 동원해 다른 학문, 특히 정치학과 함께 움직였던 경제학을 무한경쟁을 조장해 승자독식이 가능한 세상으로 만드는 도구로 타락시키는데 성공한 결과가 경제학 제국주의입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는 학계의 소수에 불과했던 수리경제학ㅡ높은 수준의 수학이 아니라 정치인과 언론인, 대중을 속이기에 충분한 정도의 수학으로 오염된 경제학ㅡ을 떠받들던 신고전파 종합주의자들이 자신들을 후원해준 지배엘리트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경제학이 무소불위의 지위로 격상한 것이 지난 신자유주의 50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모든 학문을 효율성(경제성)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무릎 꿇게 만든 경제학 제국주의는 상위 1%의 지배엘리트(특히 60년대에 이미 억만장자에 들어서 정치인과 고위관료마저 포섭할 수 있었던 부자들)의 돈잔치 덕분에 학계의 소수에 불과했던 신고전파 종합(고전파+신고전파+왜곡·수정된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이 모든 학문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갈등과 분열, 차별을 조장하는 탐욕과 이기주의의 득세가 이렇게해서 일반화된 것이지요. 

 

민주주의와 헌법, 국민의 위에서 제멋대로 날뛰었고 그들의 뜻대로 안되면 다시 제멋대로 날뛰겠다고 공공연히 협박하는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경제학 제국주의가 만든 이 시대의 괴물들입니다. 이들의 탐욕과 이기주의에 쐐기를 박지 않으면 지난 50년의 무한퇴행을 바로잡을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언론의 기레기로의 타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경제학 제국주의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https://youtu.be/qMZ56KkY_WQ

 

  1. 선한이웃moonsaem 2020.09.08 11:38 신고

    경제학 제국주의드리 인류애를 말살시키는군요. ㅠㅠ

    • 늙은도령 2020.09.09 00:31 신고

      많은 분들이 잘 모르세요.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타락시키는 줄을. 그리고 그것이 지난 50년 동안 극대화됐다는 것도.
      경제학 제국주의는 신자유주의 50년의 결과이지요. 탐욕이 좋다고 하는 이데올로기죠.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펜데믹의 재유행이 가능한 상황에서 2차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이 아닌 피해가 중첩돼 한계상황으로 몰린 국민들에게 집중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이 단기간에 걸친 공습이었다면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어느 정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피해의 양상이 너무나 다르고 하위 70%에 집중되는 장기전에서는 선별적 지원이 최선의 방책임을 확인한 것이지요.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2차 재난지원금 금액 지원 대상과 지급 방식에는 얼마든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며 "모든 국민이 코로나 때문에 힘들고 지친 상황 속에서도 방역에 협력하고 계시기 때문에 적은 금액이라도 국민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고 말한 것은 이재명 지지자를 위한 배려 차원의 발언이었습니다. 이 문제로 민주당이 분열되는 것도 막을 필요가 있었고요.  

 

70~80넌대나 통할 수 있었던, 더 멀리가면 19세기에나 통할 수 있는 논리와 지식, 이념을 가지고 현대를 재단하는 일부 진보좌파들을 보면 답답한 심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재벌이나 대기업을 공격하고 중소기업을 찬양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생태계 파괴와 환경 오염, 지구온난화 물질 배출은 재벌이나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더 많이 나옴에도 이들은 주구장창 중소기업 찬양론만 떠들어댑니다.

 

기술 발전과 강력한 규제, 자체 노력을 통해 재벌과 대기업의 오염물질 배출을 대폭 줄였지만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상당량의 오염물질을 여전히 배출하고 있습니다. 제조업 재편이 중소기업 위주로 이루어지면 답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구화된 단일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산업구조 재편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되며 몇 가지 점만 보충하거나 1945년에는 가능했던 정치적 합의로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핵심은 인류의 멸종 가능성을 줄이는 것인데,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일부 진보좌파의 논리로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1년 단위의 누진자산세 부과와 자본이동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유일한 답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넘어 보다 구체적인 방안까지 일부 다루었습니다.

 

 

 

https://youtu.be/ZIWPCCSQ1K0

 

 

 

보건복지 정책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거나 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의 앞부분이라도 읽었던 사람이라면 일률적 평등ㅡ유토피아적 평등에서 기원한 개념으로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며 보편적 기본소득의 근저에도 이 개념이 자리하고 있음ㅡ이 다양한 이해와 선호, 환경, 근원적 불평등 등이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는 현실에서는 절대 적용될 수 없는 무지의 소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과의 평등을 주창한 것처럼 오해되는 마르크스조차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고 말함으로써 사람마다 다른 능력과 필요를 분리시키는 것에서 '자유의 왕국'이 도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필요라는 것은 결과의 평등과는 상당 부분 배치되는 개념입니다. 상대적인 불리함에도 차등이 있으며, 중증장애인이나 고령의 노인처럼 절대적 불리함에도 필요의 크기와 종류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보편적 복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제공할 수 있는 복지의 수준을 5단계로 나눌 때, 각각의 국가가 세금으로 마련된 재원을 불균등하게 집행해 모든 국민에게 평균적으로 해줄 수 복지의 수준을 말할 때 보편적 복지라고 합니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민이나 주체할 수 없는 자본을 축적한 국민이나 할 것 없이 국가가 그 모두에게 복지를 제공하되 평균적으로 이 정도까지는 해주겠다는 것이 보편적 복지입니다. 

 

다양한 이유와 선택으로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않하는 국민들이 있더라도 그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보편적 복지의 수준이 나라마다 다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준선(또는 하한선)은 한 나라의 정치력과 경제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복지의 수준이 5단계ㅡ세밀하게 나누면 50단계도 가능하다. 다른 말로 하면 엿장수 맘대로라는 뜻이다ㅡ로 나뉘는 것도 이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재명이 주장하는 핵심 정책들을 자세히 파고들면 모두 다 이런 것들로 가득합니다. 전세계를 우경화하고 극단의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간 표퓰리스트의 정책들을 살펴보면 이재명 같은 주장을 하는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표퓰리즘의 화신인 이재명의 정치를 조금만 추적하다 보면 국가의 수준이던, 집단의 수준이던, 개인의 수준이던 모든 관계와 공존 및 상생의 근원인 신뢰와 공감을 인정하지 않는 가치관과 세계관에 기반함을 알 수 있습니다. 

 

수당 수준으로 떨어진 기본소득을 전국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인양 호도하면서 정치선동만 일삼는 이재명이 최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끌어들여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짓거리까지 자행했습니다. 이런 이재명의 정신세계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 다루겠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보편적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며, 그 때문에 이재명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https://youtu.be/TrY3LWMZcms 

 

 

 

이재명이 페이스북 글로 문재인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대해 불공정하다며 대통령병에 걸린 표퓰리스트 특유의 정치선동과 폭력성을 또다시 드러냈습니다. 주진우와 김용민, 김경래, 최경영,  등처럼 이재명을 노골적으로 밀어주는 MBC와 YTN은 물론 KBS까지 가세해 문재인 정부의 선별 지원을 불공정의 이름으로 공격했습니다. 이재명스러운 자들과 자칭 엘리트로 넘쳐나는 곳이 방송사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이런 현상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젠더 문제와 권력이 교차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불공정과 부정의로 몰아가는 '20대남자'의 자기파멸적 피해의식과 표피적인 반응의 맥락없음이 이재명과 그의 스피커를 자처하는 방송들에서 똑같이 되풀이됐습니다. 소수에 불과한 상대적 약자들을 이용해먹는 이재명의 불공정 운운은 코로나19의 피해가 전국민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될 때만 최소한의 맥락이라도 작동할 수 있는 극단적 정치선동이자 갈라치기의 전형입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모든 국민이 다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며, 반사이익을 누리는 부문의 기업들과 관련 종사자도 있습니다. 부동산투기를 일삼고 주식시장에 이상과열을 몰고온 상위 1%는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재산을 늘렸다는 현실까지 고려하면 이재명의 주장은 대통령병에 걸린 자의 조급함을 보여줄 뿐입니다. <스트레이트>와 <시사직격> 등을 중심으로 한 MBC와 KBS의 노골적인 지원도 이에 편승한 것이고요. YTN의 이재명 편향성은 노골적인 것의 극단이고요(갈수록 심해지는 이들의 편향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루겠습니다). 

 

코로나19의 피해를 전국민에게 비례적으로 적용하자는 발상은 피해가 집중적으로, 중첩적으로 몰린 하위 70%에게 돌아갈 몫을 줄이기 때문에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지역상품권 운운도 소비의 수도권 집중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수도권에 의한 지방의 내부식민지화를 더욱 강화할 뿐입니다. 지역상품권은 모든 부문이 갖춰진 도시일수록 유리한 제도라 지역간 불평등을 늘릴 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책임총리제를 실천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을 이용해 문통가 민주당까지 공격하며 정치선동적 발언을 마구마구 쏟아내는 이재명의 폭주는 3차 거리두기 시행에서 최고봉에 이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지만, 코로나19 펜데믹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에서 세계적인 표퓰리즘의 득세가 촛불혁명에 성공한 대한민국도 피해갈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이재명이 정치적 계산에 빠른 것까지 더하면ㅡ재난지원금 차별지원에 반발한 자신의 페이스북 글이 커다란 문제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세를 전화하는 것에서 명확하게 드러남ㅡ그의 표퓰리즘은 원칙도, 맥락도 없는 기회주의의 극단까지 치닫게 됩니다. 디지털 시대의 최대 문제가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 뒤에서 가짜뉴스를 통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자들과 이들에 편승해 정치적 선동을 일삼는 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https://youtu.be/1aA-K2TUwwE

 

  1. 2020.09.07 06:32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20.09.08 05:16 신고

      아니요, 그는 철학도 신념도 없습니다.
      있다면 대통령병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가 철학이나 신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보수 진영에서 활동해야지요.
      그의 주장과 정책들의 대부분이 현대 보수들의 주장과 동일합니다.
      미래학자들과 현대 보수는 극단의 불평등을 양산한 현재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기본소득이라는 영구처방으로 상위1%의 폭주에 면죄부를 주는 공통점이 있지요.
      또 하나는 무제한 양적완화 같은 무대포적인 확장재정을 주장하는 것이고요.
      많은 분들이 현대의 착한 경제학이나 피케티 같은 학자들의 책을 보지 않기 때문에 속는 것입니다.

 

지난 6개월간 무서운 폭으로 상승한 미국 증시가 연이틀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의 반사효과를 누린 것으로 부풀려진 애플과 테슬라 등 나스닥 시장을 주도했던 기술주들도 연이틀 하락폭을 키웠습니다. 1929년의 대공황을 다룬 수많은 책 중에서 케인즈, 프리드먼, 킨들버거, 민스키, 쉴러 등의 책을 보면 공통적으로 나온 것이 6개월 정도의 강한 상승장 이후의 대폭락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미국 증시가 이틀 연속 하락한 것을 조정 기간, 즉 그 동안 상승할 이유가 없음에도 지나치게 급등한 주가에 대한 차익실현 수요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다음주 월요일과 화요일에도 미국 증시가 폭락하면, 대공황에 준하는 금융위기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1929년의 경제대공황과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파생상품의 무한 폭주에서 비롯된 금융시스템의 붕괴였다는 점에서 이번 폭락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대공황의 근원인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상승과 폭락이 2년의 시차를 두고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까지 더하면 이번 폭락은 대공황으로 가는 전조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지난 2일 사상 처음으로 1만2000선을 뚫었던 나스닥이 3일 598.34포인트 하락한 1만1458.10으로 마감했고, 4일 오전 10시 20분 기준으로 2.95% 추가 하락하는 등 폭락 장세를 이어간다는 점이 1929년의 대공황과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소폭 상승 후 하락세로 바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도 1929년의 대공황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지난 3일 각각 8%, 9%씩 큰폭으로 하락했던 애플과 테슬라 같은 대장주들이 4일 장 초반에도 3~4%씩 하락한 것도 1929년의 대공황 때와 완전히 똑같습니다. 아마존과 페이스북 같은 기술주들이 4% 안팎까지 하락하는 등 상승을 주도한 기업들의 하락폭이 크다는 점까지 대공황의 도래를 말해주는 것 같아 섬뜩하기만 합니다.  

 

1929년 직전에도 실업률이 소폭 상승했는데, 뉴욕주식 시장 개장 1시간 전에 발표된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8월 실업률이 전월 대비 1.8%(10.2%에서 8.4%로) 낮아진 것도 불길하기만 합니다. 미국 실업률이 8%대로 개선된 것은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처음이지만 트럼프 정부가 6조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얼마나 부실한지 말해주는 증거일 뿐입니다.

 

CNBC에 출연한 알리안츠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사람들이 펀더멘털(실물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추가로 10% 떨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월스트리트와 거대기업에게 불리한 얘기는 하지 않기로 유명한 에널리스트나 거대기업의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주식 폭락을 말하면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나심 탈레브의 말이 태풍처럼 밀려듭니다.

 

《블랙스완》과 《행운에 속지마라》의 저자로 유명한 탈레브는 2008년 금융위기를 예상ㅡ본인은 경고했을 뿐,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언했다고는 하지 않지만ㅡ한 것 때문에 '월가의 현인'으로 불리는 최고의 트레이더이자 금융회사 CEO이었습니다. 나심 탈레브처럼, 2008년 금융붕괴를 예측했던 《이상과열》의 저자 로버트 쉴러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그들도 이번 폭락을 대공황의 전조로 보고 있는지, 세계적인 석학들의 진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www.youtube.com/watch?v=n4xoFLTBHdE 

 

 

어떤 제약도 빛의 속도로 퍼지는 디지털 기술과 지구 차원의 단일 시장을 구축한 플랫폼 공룡사업자들의 탐욕 추구의 결과, 민주적 소통의 장으로 기대받았던 디지털 공간이 분열과 갈등,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최악의 네트워크로 변질됐습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무차별적으로 퍼지는 바이러스성 콘텐츠는 정교한 조작을 거친 가짜뉴스의 형태를 거치기 때문에 상당수의 이용자들이 속고 또 속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갈등과 분열, 증오와 차별, 폭력과 선동을 조장하는 바이러스성 콘텐츠의 범람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튀틀린 형태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정교한 조작이나 그럴싸한 음모론적 형태를 띠는 바이러스성 콘텐츠는 다양한 가치관과 성향, 이해를 가진 플랫폼 이용자들의 의식구조를 조금씩, 꾸준하게 바꿔놓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플랫폼 이용자들은 바이러스성 콘텐츠에 노출되는 회수만큼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플랫폼 공룡사업자들은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를 절대적 가치로 자리매김시키는데 성공함에 따라 정교한 가짜뉴스와 악성 음모론 작성·유포자들이 디지털 공간을 마음껏 떠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상당한 노력을 투자해야 진실이나 지식으로 승격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들이 이들에 의해 갈등과 분열, 차별과 폭력을 유발시키는 악성 바이러스에 전염되게 만듭니다. 

 

의사ㅡ또는 의사를 가장한ㅡ가 개인 유튜브 방송을 통해 기본적 상식에도 벗어나는 얘기들을 쏟아낼 수 있는 것도 어떤 규제에서도 자유로운 공룡사업자들의 이익극대화 전략 때문입니다. 기존의 언론들이 디지털 공간에 끝없는 가짜뉴스의 원천을 제공하는 기레기로 전락한 것도 공룡사업자들의 플랫폼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용자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각종 바이러스성 콘텐츠가 범람할수록 공룡사업자의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헌데 디지털 세계를 장악한 이들이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에 힘입어 무한대의 이익을 긁어모을 수 있는 기반을 다져준 것이 신자유주의 50년을 추동해온 경제학 제국주의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투자 대비 최대의 효율을 거두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덕목이라고 주장한 경제학 제국주의가 지난 50년 동안 병립하는 일체의 가치를 죽이고 탐욕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 남기는데 성공한 것이 현재의 디지털 공간입니다.  

 

자유를 중시하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권리를 강조하지만 그에 따르는 의무를 분리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보다 평등이 더 큰 개념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던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이익극대화 전략의 무한질주는 경제학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지옥 같은 결과입니다. 신앙과 지식, 공기와 물, 노동과 자원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거래되게 만들면 탐욕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이 번성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든 시장참여자가 최대의 이익을 얻게 된다는 '자기조절 능력이 있는 시장'이나 '렌덤워크 가설'에 의해 시장참여자 모두가 해피해질 수 있다는 '효율적 시장'이 전 분야에 걸쳐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 경제학 제국주의의 핵심입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두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므로 모든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개인은 시장원리에 따라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경제학 제국주의는 법앞의 평등마저 경제적 논리로 재단하게 만듭니다.    

 

디지털 공간이 각국 정부로부터 어떤 규제도 받지 않고,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의 뒤에 숨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바이러스성 콘텐츠를 쏟아내도 되는 곳으로 직행한 것도 경제학 제국주의 때문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투자 대비 효율이 유일한 가치판단 기준이기에 목사와 의사라는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테러행위에 다름없는 짓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각각의 네트워크를 구성한 이들의 폭주는 플랫폼 공룡사업자들을 각국 정부가 세계적 차원에서 규제할 수 있을 때만이 양질의 정보가 오가는 민주적 소통의 장으로 자리할 수 있습니다. 각국 정부가 이것에 합의하지 못하면 트럼프 같은 자들이 끊임없이 나타나 오프라인 공간마저 갈등과 분열, 차별과 증오, 폭력과 테러의 장으로 만들어버릴 것입니다.

 

 

https://youtu.be/_AN8iABrvrU

 

 

예전의 손가혁처럼 이재명 지지자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품성과 지식, 성찰, 범죄경력, 각종 정책, 발언, 강연, 저작 등처럼 일생에 걸쳐 그를 형성한 가치관과 세계관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정책들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확인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지지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확증 편향과 집단극단화에 빠진 이유도 넘치도록 많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보편적 기본소득입니다. 두 번째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지도력'을 '하고자 하면 반드시 하는 지도력'으로 오독해 기득권 위주의 대한민국을 뒤집어버리고 싶은 욕망의 표출입니다.

 

이밖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일부 경제학자와 미래학자의 문제투성이 주장만 주구장창 떠들어댈 뿐입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검증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기본소득주의자들의 일방적인 주장만 가지고 모든 것을 재단하는 이들의 주장이 어디에서 연원하는지 다루었습니다. 

 

그 다음에 세계적인 경제학자와 인공지능 전문가 같은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이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이유를 다루었습니다. 이재명의 지도력에 대해서는 앞선 영상에서 다루었기에 생략했으며, 저에게도 많은 비판을 받았던 홍남기 부총리가 이재명의 발언에 '철 없는 소리'라고 한 것은 국가부채에 대한 통화주의자들의 주장을 재무경제학적으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 영상으로 미루었습니다. 

 

이번 홍남기 부총리의 발언이 99.99% 옳고 이재명의 발언이 99.99% 틀리다는 것을 그 영상에서 다루겠습니다. 그럴 경우 좀 어려울 수 있어서 모든 분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낼 방법을 찾느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몇 번 정도의 연습영상을 찍은 후에나 업로드할 영상이 나올 것 같습니다. 

 

대법원에서 검찰의 기소에 관해서만 무죄취지로 파기환송된 이후, 박원순 시장이 비극적인 선택을 한 이후의 이재명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사사건건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자신의 위상을 수직상승시키려는 행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를 지지하고 밀어주는 온갖 진보스피커와 유튜버들이 얼마나 편파적인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과 위선적인 행태도 마다하지 않는 자들은 보수우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보좌파에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찢빠들처럼 문파라는 가면을 쓴 채 온갖 못된 짓들을 자행하는 극렬 문빠들이 있는 것처럼요. 민주장 내에서 말도 안되는 내부총질만 하는 자들과 함께. 

 

 

https://youtu.be/GOjltUVfPgo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으로 대표되는 다윈의 진화론적 주장에 따르면, 생존에 성공한 모든 개체는 능력의 한계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승자독식이 이루어질 때까지 무한경쟁을 하는 대신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선택하는 도덕성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압도적이거나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힘을 보유하지 않는 한 공멸로 이어지기 마련인 승자독식보다는 적절한 수준의 협력을 통해 종이나 개체군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에서 균형을 잡는 도덕성을 키워왔다는 것이지요.   

 

종이나 개체 단위에서 유래한 도덕성에 대한 이런 접근은 세계적인 생태학자 개릿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을 통해 진리의 차원으로 승격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공유지의 자원을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모든 개인이 무한경쟁에 뛰어들면 공유지의 자원이 바닥을 드러내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 후생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공유지의 비극'입니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시장에 참여한 어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해를 초래할 때만 가능한 상태에 이르는 지점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파레토 최적' '파레토 균형'이라는 후생경제학의 제1원리가 여기에서 나왔는데, 모두의 이익이 완벽한 균형에 이르러 모두의 이익을 늘리지 않는 한 사람의 이익도 늘릴 수 없는 완벽한 균형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파레토 최적'에서 영감을 받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시장에 참여한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이기적인 노력과 선택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거해 최적의 시장가격을 형성하면ㅡ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된 시장가격이 모든 참여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지점ㅡ이익의 극대화가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진화론적 해석을 인위적으로 극대화한 것입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이런 주장들은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정보와 선택, 계약이 이루어지고, 비행기와 고속도로, 고속철도 등과 같은 고도화된 물류시스템에 의해 시공간의 한계를 무력화한 현대에서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이 극복될 수 있는 근대적 시장규모에서는 '도덕성이 다른 면에서는 이기적인 개체들이 협력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끔 해주는 심리적 적응물이'라는 진화론적 주장이 통용될 수 있었습니다.

 

나와 우리만 구별하면 되는 사회관계와 시장규모가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별로 확장되고, 부족 단위의 공동체는커녕 지역과 국가를 넘어 전 지국적 차원으로 추가 확장되면 '공유지의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다가옵니다. 자본의 축적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세계화는 인류로 하여금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시장경제에 무방비로 던져버렸고, '벨 에포크 시대의 도래'라는 사상 최악의 불평등을 초래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이런 국가와 인류 차원의 불평등은 1차세계대전과 스페인독감, 경제대공황, 2차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대학살을 연이어 일으켰습니다. 미국의 뉴딜정책과 유럽의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상생과 공존, 평등의 세계적인 합의가 2차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체결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무려 30년 동안 이어진 평등한 세상을 위한 공통의 협력은 지구적 차원의 상생과 공존이 불가능한 꿈만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자본주의 황금시대로 회자되는 '영광의 30년'은 1979년 영국에서 대처가, 1980년 미국에서 레이건이 최고지도자에 당선됨에 따라 무려 50년에 걸쳐 완벽하게 해체됩니다. 이 기간을 신자유주의 50년 또는 신소유주의 50년이라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태어나 자란 세대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경쟁이란 좋은 것이며, 성공도 실패도 개인의 책임이며 운이라는 요소는 개입할 수 없다며 소수의 승자독식 승자를 무한대로 칭송하고 절대다수의 패자들을 국가의 세금이나 축내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추락시켜버렸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탐욕이 모든 수준의 경쟁에서 최고의 덕목이 됐으며,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다는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무한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새로운 도덕이 모든 개인의 내면에 절대적 기준인양 자리잡도록 만들었습니다. 개인이 축적할 수 있는 부의 한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초고율의 누진세를 부과해 하위 99%에게 나눠주는 재분배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최악의 대죄로 사형선고를 내려버렸습니다.

 

조슈아 그린이 《옳고 그름》에서 "똑같은 도덕적 사고가 한 집단 안에서는 협력의 기초가 되지만 집단 사이에서는 협력을 방해한다"는 현대적 비극이라 칭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정된 자원과 유한한 기회라는 한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이익 추구적 행태는 자원 고갈과 생태계 파괴, 환경 오염이라는 외부효과를 피할 수 없음에도, 이익은 극소수가 독점한 채 피해는 절대다수에게 전가하는 탐욕의 폭주를 도덕성에 따른 공정한 정의인양 포장해버렸습니다.

 

극소수에게 무한대의 부와 권력, 기회를 몰아준 신자유주의 50년이란 '탐욕'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만을 뽑아내는 '사탄의 맷돌'을 무한정으로 돌리기 위한 상위 1%의 거짓과 궤변의 향연이었습니다. 상위 1%의 탐욕을 위해 하위 99%가 피터지도록 싸워야 하는 세상이 이렇게해서 일반화됐습니다. 분열과 갈등은 모든 차원에서 발생했으며, 하위 99%에 속하는 우리(또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또다른 하위 99%에 속하는 그들을 죽여야 하는 제로섬게임이 생존의 기준이 됐습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무한경쟁 승자독식 사회의 이면에는 극소수의 탐욕을 위해 절대다수가 피해를 감수해야 논리가 도덕의 이름으로 자리하는 세상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에 대해 코로나19 펜데믹의 최전선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켜왔다고 생각하는 젊은의사들의 분노가 유별나게 큰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선배들에 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이 가뜩이나 줄어든 자신의 밥그릇을 더욱 축내는 것일 뿐이며, 특수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선배 의사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해법을 고민하거나 여론의 향배를 지켜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성을 완전히 집어삼킨 극단의 분노와 복수심에 가득찬 이들은 장렬히 전사할지언정 문재인 정부와의 타협이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최악의 선택이자 죽을 때까지 풀 수 없는 치욕입니다.

 

 

의료계의 파이를 키우는 것도 낙수효과의 작동불능 때문에 자신에게 떨어질 몫이 없으므로, 당장의 밥그릇 또는 가까운 미래의 밥그릇을 챙기는 극한 투쟁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판단에 이성과 사고는 작동불능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젊은의사들은 최대집이 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이래 공공의료를 강화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에 사사건건 반대를 해온 지난 3년의 비협조가 정당했기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하는 극한투쟁도 정당한 것입니다.

 

노력한 것 이상을 번 선배와 비교할 때 투자와 노력에 대비 터무니없이 작은 몫만 챙길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최대집과 의협의 투쟁은 지극히 정당하고 자신의 몫을 지켜주기 위한 희생적인 영웅일지도 모릅니다. 자신(또는 우리)에게 주어져야 마땅할 몫을 미래세대에게 나눠주려는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은 정당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독재나 전체주의에 다를 것이 없으며, 그들에게 주어져야 마땅할 몫을 강제로 빼앗아 미래세대에게 나눠주려는 것이어서 사회주의적이고 심지어는 공산주의적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의료를 벗어나면 배운 것이 없는 그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쟁을 제한하고, 자신보다 못한 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모든 행위가 사회주의고 공산주의인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일방통행을 무력화시키지 못하면 자신과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의사의 선택이 극단적인 단체행동이나 사직서를 제출하는 감정적 대응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상위 1%가 밀어붙인 무한경쟁의 승자독식 논리를 내면화한 젊은의사에게는 '죽이 아니면 까무라치기' 외에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는 도덕적 원리에 따라 문재인 정부를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것 이외의 선택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앞의 영상에서 이번 투쟁에서는 회색으로 칠해진 중간지대가 없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들은 4대의료정책을 좌초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얼마든지 담보로 내걸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문재인 정부와 현재의 국민, 미래세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완벽하게 거부하고 있는 젊은의사의 도덕율은 단체행동은 'all or nothing'의 내면화가 얼마나 극한투쟁으로 국가와 국민을 천길나락으로 몰아낼 수 있는지 웅변해줍니다.

 

문재인 정부의 4대의료정책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최대집이 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이후의 의료계의 이기적인 행태는 어떤 정부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도 진작에 넘었습니다. 상위 1%, 더욱 자세하게 파고들면 상위 0.01~0.1%로 모든 부가 쏠리는 현실에서 3년차를 넘긴 단임정부에 질 수 없다는 결기와 광기가 의협 집행부를 넘어 젊은의사들에게까지 단체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내부에서도 불평등이 극대화되는 상위 1%는 영원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남은 것이란 레임덕밖에 없는 4년차 정부가 더욱 만만한 상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들만의 사회주의를 구축하겠다는 의협 집행부보다 더욱 강경한 젊은의사의 단체행동과 집단적 사직서 제출은 갈등과 분열로 얼루직 이 시대가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최후의 과제와도 같은 것입니다. 

 

지난 50년의 세상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흘러왔다고 앞으로의 세상도 같은 방향으로만 흘러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저들의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지켜보면서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찾아해맸던 보편적 도덕원리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는 하루하루입니다. 새로운 공유지를 만들어내는 도덕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세상이란 끝없이 늘어나는 분열과 갈등을 매일의 양식처럼 먹고살아야 하는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oGeLtR7rMg     

 

 

극단적 표퓰리즘의 대명사인 이재명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보편적 기본소득을 정치적 매표행위로 둔갑시킨 것도 모자라,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기득권 지키기에 올인한 의사들의 파업을 보면서도 전국민 2차 재난지원금 운운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국판 트럼프'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의사와 전공의, 의대생들에게는 2차 재난지원금이 파업보조금이 될 수 있음은 생각조차 않은 정치적 매표행위의 화룡점정이다.

 

자신의 정치적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운 보편적 기본소득은 어떤 언어로 포장한다고 해도 시카고학파의 바람이자 목표였던 시장 우위의 소비 극대화로 귀결된다. 지난 50년 동안 공존과 상생의 도덕경제학에 사망선고를 내린 채 탐욕과 경쟁만 무한대로 키운 시카고학파의 부활을 이끄는 것이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이재명의 기본소득이다. 

 

김종인의 기본소득은 궤변 중의 궤변에 불과하지만 하위 50%를 목표집단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재명의 기본소득보다 실현가능성이 높다. 경제학적 근거가 대단히 부족한 보편적 기본소득은 디지털적으로 변형된 마르크스주의적 오류가 특이점주의자들로 대표되는 기술전체주의자의 주장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이나 챙기겠다는 지적사기에 다름아니다.

 

유사 유토피아적 뜬구름잡기의 전형인 보편적 기본소득은 시장경제의 극대화를 위해 시카고학파의 두 거목인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에 의해 정립된 개념이다. 경제학적 기반이 너무 미약해 유토피아적 정치철학까지 끌어들인 보편적 기본소득은 인공지능 특이점주의자들의 환상에 기대지 않으면 존립의 정당성마저 유지할 수 없는 허술한 논리로 가득하다.   

 

얼마나 지급해야 목표한 바를 이루고, 지속가능한 경제정책이 될 수 있는지, 지난 몇십 년 동안 최초의 출발점에서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이 보편적 기본소득의 현실이다. 피케티와 그의 동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1945~1975년까지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견인했던 초고율의 누진과세없이 보편적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100% 거짓말이다.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 MS 등이 아니라 애플이 최초로 시가총액 2조달러ㅡ이것도 대단히 위험한 비이성적 과열의 결과이지만ㅡ에 오른 것도 무늬상이라도 제조업체의 옷을 둘렀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보편적 지급이라는 이상을 잃으면 모든 정당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재명의 기본소득이 기존의 수당 수준에까지 떨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시카고학파의 경제정책과는 달리 불평등과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으려면 개별 국가의 1인당 GDP에 근접해야 한다. 기본소득 이외에 추가로 노동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으면 어떤 기본소득도 기존의 불평등이 극단에 이를 때까지 시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처럼 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하는 기준도 떨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고 기본소득이 낮게 책정될 경우 국가는 극단의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국가경제와 재정을 박살내는 코로나19 펜데믹 같은 세계적 차원의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규모 이상 기후, 지진이나 화산 폭발, 전쟁이나 원전 폭발 같은 대규모 재해도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집행됐다는 것은 더 이상 일자리 창출이나 새로운 산업부흥이 불가능한 경제환경이 구축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보다 먼저 보편적 기본소득을 실시하면ㅡ용혜인 의원의 주장ㅡ국경을 전면폐쇄해 이민자들의 유입을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단 한 명의 유입이라도 이루어진다면 그 다음의 유입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과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온갖 경제적 문제들과 대규모 조세회피의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이밖에도 높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경쟁국의 부상으로 국가적 차원의 경제 펀더멘털이 약해졌을 때, 보편적 기본소득을 실시하지 않은 나라에서 우리와의 수출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질 때(자신의 나라에서 벌어 타국의 기본소득에 사용되는 것을 그냥 지켜볼 나라는 없다) 등처럼 보편적 기본소득의 지속불가능한 이유는 넘칠 만큼 많다.

 

재난지원금이야 일회성이거나 아무리 많이 해봤자 몇 번에 그치기 때문에 보편적 기본소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처방이다. 코로나19 펜데믹의 피해가 건강이 나쁠수록, 개인이나 가족이 가난할수록, 가난한 지역에 살수록, 가난한 나라에 살수록 커지는 것까지 고려하면 둘의 연관성은 완전히 단절된다. 경제적 인센티브로 시민적 덕성과 이타주의적 상호주의를 대체하는 인간과 가족, 공동체의 해체 같은 윤리적 차원의 문제는 무시한다고 해도. 

 

 

보편적 기본소득에 관해서는 좌파보다도 우파의 접근이 그나마 현실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무지하기 그지없는 김종인의 궤변처럼 기존의 현금성 복지를 통폐합해야 하는 것을 계산에 넣는다면 개진도진이 돼버리지만. 혼자하는 공부지만 공부가 깊어질수록 보편적 기본소득에 부정적이 되는 이유는 피케티 같은 석학들의 솔직하고 부정적인 평가와 동일하다. 

 

유발 하라리와 제레미 다이아몬드 같은 세계적 석학 8인이 공동집필한, 그러나 너무 쉬워서 두세 시간만 투자하면 완독할 수 있는 《초예측》 같은 교양서적만 읽어도 보편적 기본소득의 허구성을 알 수 있다. 특이점주의자들의 환상에 부정적인 프로그래머들이 늘어남에 따라 보편적 기본소득의 초기 정당성마저 무너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현실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부족한 자들의 대국민 지적사기가 보편적 기본소득이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성공적으로 줄인 더욱 우월한 정책들이 1945~1975년 사이에 이미 채택되고 운영된 적이 있음에도 기본소득 추종자들의 지적사기는 멈출 줄 모른다. 작은 단위에서 진행된 기본소득 실험들이 모조리 실패한 이유만 알아도 그들의 지적사기를 막을 수 있다. 

 

하긴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살인과 테러를 저지르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의사들이 집단파업을 하면서도 큰소리칠 수 있는 세상이니 보편적 기본소득을 내세운 지적사기야 어린네 장난이리라. 표퓰리스트가 되지 않으면 무능한 정치인이자 지도자 소리를 듣는 정치경제적 환경에서 온갖 사기꾼들이 판치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으리라.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신과 동일한 창조의 영역이지만, 과거의 좋은 점들을 되살리는 것은 집단적 반성으로도 충분하다. 기레기들의 가짜뉴스와 탐욕스러움이 모든 것을 왜곡하고 사이비 지식인들이 큰소리칠 수 있는 세상이니 진실이 설 자리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지친다, 몇 걸음만 걸어도 다리를 거는 지적사기들의 만연함에. 

 

노인일수록 탐욕스러워지고 청년일수록 편협해지는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몰고가는 것으로 자신의 이익만 탐하면서도 시민을 타락시키고 갈등만 양상하는 언론과 지식인, 정치인의 추악하기 그지없는 삼각동맹이. 

 

 

P.S. 방금 뉴스를 보니까 이재명이 재난지원금을 선별지원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벗어나며 보펴적 복지에 위반된다는 헛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마르크스도 기절초풍할 평등에 대한 새로운 정의ㅡ지극히 표퓰리즘적인ㅡ를 창조해낸 이재명의 헛소리를 확인한 후 관련 내용을 내일 중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2020.08.25 05:53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20.08.25 16:06 신고

      저는 확고합니다.
      이재명에 대해서는 넘칠 만큼 파고들었고 기본적으로 그가 주장하는 정책들은 대한민국을 말아먹는 표퓰리즘의 전형입니다.
      그는 경기도지사로써도 너무 넘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지요.
      지식과 성찰이 제멋대로고 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것마저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변형, 왜곡시킵니다.
      보편적 복지와 재난지원금, 기본소득도 제대로 몰라요.
      그에 대한 글은 이미 써두었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입니다.
      이재명의 주장은 국민과 나라를 지옥으로 몰고가는 헛소리들로 가득해요.

  2. eheh 2020.08.27 12:25

    제발 30만원씩 나눠주세요
    큰도움이됩니다 ㅜㅜ

    • 늙은도령 2020.08.28 02:05 신고

      재난지원금을 하위 70%에 주는 형식을 취하면 3~4차까지 해도 됩니다.
      이재명의 엉터리 주장대로 하면 재난지원금은 더욱 줄어들고 늦어질 것이에요.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합의만 하면 하위 70%를 위한 2차 재난지원금은 벌써 지급됐을 건데......

 

이명박의 4대강공사는 국민의 혈세 24조가 투입된 단군 이래 최대의 공사였습니다. 명분은 홍수조절능력 등 여러가지였지만 실제로는 한반도대운화를 위한 정신나간 사전작업이었지요. 토목건설업계의 배만 불려준 4대강공사가 용납될 수 없는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홍수조절능력에 관해서는 냉정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제 친척 중에는 세계적인 토목·건설학자들이 있어 그분들에게 전문적인 내용까지 다양한 종류의 자문을 구했고, 국내외의 관련 서적들을 찾아 공부도 했습니다. 한반도를 수장시킬 듯한 초장기 장마라는 기상 이변에 맞줘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보들의 홍수조절능력에 관해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조사를 지시한 것은 대단히 적절했습니다.

 

전세계를 통틀어 4대강 보만큼 거대한 규모의 토목사업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조사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에 힘들어 하는 모든 국가와 미래세대에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구온난화와 4대강 보 문제는 맞물려 있기 때문에 진영논리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최악의 결과만 초래할 뿐입니다.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이명박이 강행한 4대강공사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였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예상할 수 없는 기상이변들이 현실이 된 지금, 우리와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해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조사가 필요한데, 그에 대한 다양한 이유들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SGoxCsNRdE

 

 

 

이재명으로 대표되는 보편적 기본소득 주창자들에 비해 특정 나이의 청년과 세계화의 피해자에게 집중적 지원을 해주는 기본'초'소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피케티와 파에즈, 뒤플러 등이 주장하는 기본'초'소득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도전 자체를 포기하는 청년과 피할 수 없는 세계화의 최대 피해자인 고령의 실업자를 위한 기초자산입니다. 

 

보편적 기본소득 ㅡ 비례세, 기존의 복지 중 일부를 폐지하거나 아주 협소한 형태의 조세를 몇 가지 만들어 재원을 마련해 모든 국민에게 주는 것입니다. 재난지원금과 비슷하지만 아동수당이나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 등처럼 기존의 복지나 수당을 포기해야 함. 극단적 불평등의 수혜자인 상위1~5%에게도 똑같이 지원을 합니다. 

 

현재 이재명 등이 주장하는 것은 기존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소비 진작을 통해 성장동력을 창출하자는 것입니다. 프리드먼과 하이에크가 주장한 음의 소득세와 보장소득과 비교할 때 재원 마련은 비슷하지만 혜택은 중상류층까지 넓혀 소비를 늘리자는 것입니다. 레퍼 곡선과 낙수경제, 또는 낙수효과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기본소득은 월 100~300만원 사이를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중상류층까지 포함되는 누진적 증세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한 이유도 누진적 증세없이 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표를 겨냥한 경제적인 처방이 보편적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피케티 등이 주장하는 기본'초'소득은 전체 자산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초상류층에게 초고율의 누진적 세금을 거둬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최대 피해자인 청년과 고령의 실업자에게 도전 및 재도전의 기회와 존엄한 삶을 보장해주자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중장년은 자식과 부모를 부양해야 할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사유재산의 신성함과 무한대의 자산 독식을 허용하면서도 지켜주는 현재의 불평등체제주의와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고사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극단적인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했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이 추동하는 기술 발전과 신앙과 공기에도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시장 기능의 무한 확대로 새로운 산업을 조성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세상ㅡ그러나 얼마든지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ㅡ입니다. 

 

게다가 재산을 세습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에 과세하는 것이 점점 줄어듭니다. 자본주의의 미덕인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경쟁마저 불가능해진 상황입니다. 오로지 집안을 거덜내는 교육만이 신분 이동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어느 시대보다 청년들의 교육 수준이 높은 상태입니다. 불평등과 양극화로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차이가 무한대로 벌어진 상태입니다. 첫 번째 직장이 후지면 그 다음의 상승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청년들이 아예 도전을 하지 않도록 만듭니다.

 

이러다 부모가 돌봐줄 수 없는 30대에 이르면 중소기업이라도 취직해야 하기 때문에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이것을 타파하지 않으면 가족이나 사회, 국가의 미래는 없습니다. 자원과 기회, 권력을 독점한 상위1~5%에게 고율의 누진세(피케티는 83%로 봤으나 정확하지는 않음. 80% 전후라는 것에는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일치)를 부과해 마련된 재원으로 청년에게 기초자산으로 제공하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형성됩니다.

 

술이나 마약 같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제외한 무엇을 하던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축하거나 주식투자, 부동산 매입 등도 가능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취업하는 것입니다. 취업을 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에 맞는 직업도 알 수 없고, 조직 생활에 대한 경험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초자산이 있으므로 마음에 들지 않으며 얼마든지 퇴사해서 다른 도전을 할 수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럿이 모여 공동창업도 가능하고, 그럴 경우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실패해도 기존의 복지체제 안에서 최저임금 수준의 삶은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의 젊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기본'초'소득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1cT8SJyscM

 

 

제가 미친듯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정치학, 정치철학, 경제학, 경제사 분야는 어떤 전문가보다 많이 공부했고 하고 있으며, 양자역학과 인공지능, 뇌과학을 포함한 인지과학 전반, 그리고 의학과 화학, 생물학 등까지 공부하는 이유는 이땅의 지적 사기꾼들이 국민들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것도, 페이스북과 유튜브 활동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과학이나 공학, 의학 같은 분야의 진짜 전문가들은 제 능력밖이나, 정치, 경제, 사회, 언론, 철학, 인공지능, 4차산업혁명, 교육, 영화 등에서 암약하며 수많은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자신의 탐욕만 채우는 자들을 걸러내기 위함입니다. 수많은 미디어의 등장으로 지적 사기꾼들이 수많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기 쉬운 시대에 누군가는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돈도 안되고, 욕도 많이 먹으며, 대단히 외로운 길이지만 추호의 후회도 없이 꿋꿋하게 갈 수 있는 것은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죄의식을 덜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나쁜 시대의 한계 많은 경제학을 공부한 주진형도 그런 사이비 지식인 중 한 명입니다. 정신분열증 현상까지 보여주는 진중권과 지독한 나르시시트인 조기숙 등과 비교하면 훨씬 낫지만 반골적 성질 때문에 나오는 헛소리가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과 MBC 스트레이트를 비판하며 수도 이전까지 정치쇼라고 들먹이는 논리의 허술함과 비약, 지적 오류를 하나하나 짚었습니다. 주진형의 문제도 나리시즘의 전형인데, 이런 헛똑똑이들이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단테의 말이 주진형의 헛소리에 정확하게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wDm2-y_U0

 

  1. 2020.08.14 14:37

    저는 촛불 때 선생님 글을 보게되었고 이후로도 꾸준히 찾아 읽으머 늘 배우고 감사드립니다. 왜 이토록 치열히 공부하시고 또 그걸 나누고싶어하시는지 대의를 이해하게되면 더 열심히 말씀 듣게됩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셔서 더큰 활동해주시기를 독자로서 이기적인 욕심부려봅니다. 선생님 건강하십시요.

 

지배엘리층과 상위1%, 기레기들의 지적 사기를 막아내는 것이 제가 공부하는 목표입니다. 제가 대가가 되기 위한 책 집필보다 블로그와 영상을 찍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약자들을 등처먹는 사이비 지식인들과 이익집단, 기레기들의 거짓말을 찾아내 모조리 까발리기 위해 미친듯이 공부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2,500여 권의 책을 읽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제가 읽는 책 중에 자기계발서나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이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늦은 나이에 수학으로 가득한 물리학과 수리경제학을 공부한 것도,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 등까지 공부한 것도 사이비들의 지적 사기를 까발려 약자들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윤희숙과 진중권, 조기숙과 주진형을 비롯해 무엇보다도 이재명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하는 자들의 논리를 모조리 까발리는 것도 그들이 내부 총질러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기 때문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통과 이를 실현해가고 있는 문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한 계속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zzaLjZ89so

 

저는 임대인이자 임차인입니다. 지난 4월 이사했는데, 2년 후 집주인이 비워달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게 걱정을 항상 달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임대차법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상한규정을 보고 마음을 놓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은 4년 뒤부터는 꼼짝없이 월세살이겠구나였습니다.

임대시장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전체적으로 상생하는 시장입니다. 모든 임대인과 임차인이 사이가 좋을 필요는 없지만, 지금의 임대인과 틀어져서 이사를 나가더라도 다른 집을 찾는 데 큰 문제가 없다면 시장이 원만히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유지시키면서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려면 임대인이 가격을 많이 올려야겠다고 마음먹거나 시장에서 나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임대인의 부담을 늘려 임차인을 보호하는 것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임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결국 임차인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임차인 보호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임차인 보호 강화는 국가의 부담으로, 즉 임대인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세는 고금리 시대 저축 기능을 가진 집마련 수단으로, 임대인에게는 목돈과 이자 활용수단으로 역할했습니다. 저금리 시대로 전환한 지금 전세제도는 축소될 운명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번 임대차법으로 인해 급작스런 소멸의 길로 밀어넣어졌습니다. 아직도 전세 선호가 많은 상황에서 큰 혼란과 불편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입니다.

1990년 임대계약을 1년에서 2년에서 연장하는 법이 통과됐을 때, 1989년말부터 전세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 전년대비 30%, 1990년에는 24%가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임대료 인상도 5%이하로 묶었으니 임대인이 뭘할 수 있겠냐구요?

30년 전에는 금리가 10%에 달하던 시대이고 지금은 금리가 2%도 안됩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아들이나 딸한테 들어와 살라고 하겠지요. 친척조카에게 들어와서 관리비만 내고 살라고 할겁니다. 월세로 돌리던지요. 얼마든지 예측가능합니다. 이법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시장에서 전세대란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 중 무엇이 예측 불가능합니까?

 

백번 양보해 몰랐다고 칩시다. 적어도 남의 인생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에 대해 법을 만들 때는 최선을 다해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라고 있는 것이 상임위 소위의 축조심의입니다. 축조심의과정이 있었다면, 저라면, 임대인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지, 고가 전세의 부자 임차인까지도 보호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지, 근로소득 없이 임대로 생계를 꾸리는 고령 임대인은 어떻게 배려할 것인지 등을 같이 논의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배짱과 오만으로 이런 노력도 없이 천만 전세인구의 인생을 고통스럽게 합니까. 이법을 대표발의한 의원들, 소위 축조심의없이 입법과정을 졸속으로 만들어버린 민주당, 모두! 우리나라 부동산정책의 역사에서, 민생정책과 한국경제 역사에서 죄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2020.07.30 국회의원 윤 희 숙

 

 

영상을 통해 하나하나 모조리 박살냈습니다. 구역질나는 지적 사기를 까발리느라 지쳤습니다. 이번에는 영상을 참조하셨으면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8xHGsUWo

 

 

OECD는 물론 이땅의 기레기들과 미통당, 자칭 경제학교수와 전문가라 하는 자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JP모건까지 문재인 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경제에 성공한 정부라네요. 반문연대를 결성한 이 죽일 놈들의 경제대망론이 거짓말 중의 거짓말이며 최악의 소설이라는 사실이 연일 세계 주요 기구들에서 발표됨에도 이땅의 기레기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부동산정책 실패만 주구장창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적이 세계 1등인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설명할 것도 없지만,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불확실성ㅡ국민경제에서는 가장 치명적인 것, 하지만 투기세력에게는 가장 좋은 것ㅡ을 가장 잘 관리하고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나라도 이루어지 못한 이런 성과가 탁월한 결과로 이어졌고, 기업들의 실적이 회복세로 접어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경제학은 금융과 재정학에 불과합니다. 죽은 학문으로써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땅의 경제학자나 전문가들 중에 세계적이 거장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죽은 자식 불알만 만지며 지랄발광을 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무지함과 용감함은 동전의 양면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한 것인데,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이땅에 살았고 살고 있고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감당했고 감당하고 있으며 감당해야 합니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진 지금, 진정한 문파라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살처분해서 그들의 DNA마저 파괴하지 않으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기레기부터 사악한 조폭집단에 불과한 정치검찰을 해체시켜야 합니다. 이번 영상에서 이들의 주장 일부를 박살내 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k4T2pQljl4

 

 

문재인 대통령과 빌 게이츠 회장이 인류를 종말의 위협으로 몰고가고 있는 전염병을 그 후보군에서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펼치는 협력은 인류의 역사를 이기주의의 무한경쟁에서 이타주의의 상호공존으로 바꾸는 위대한 도전입니다. 

 

지난 40~50년은 한 사람이 세계의 모든 부와 자원을 독점해도 어쩔 수 없다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와 신소유주의의 광기어런 탐욕의 기간이었습니다. 전 인류가 공통으로 누려야 하는 모든 이익들은 상위 0.01%에게 집중되고 그들이 쏟아낸 각종 폐해와 위험들은 하위99%가 뒤집어써야 하는 악마들의 원형경기장이자 쓰레기처리 공장이었습니다. 

 

좋은 세계화는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나쁜 세계화만이 전 세계를 지옥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좋은 세계화는 상생과 공존이 가능한 풍요롭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분배와 존엄함의 세상을 추구합니다. 몇몇의 부자는 나올진정 세계대전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평화 속에서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좋은 세계화의 목표였습니다. 

 

지난 40~50년을 이어온 나쁜 세계화는 트럼프와 브렉시트로 대표되는 우경화와 인종차별, 근본주의, 생태파괴, 지구온난화, 핵전쟁 위협, 배타적 민족주의, 기술만능의 특이점주의(인공지능), 시장만능의 불평등주의 등과 함께 전염병이라는 인류 멸종의 요인들을 양산했습니다. 세계화는 그렇게 모두의 적으로 변질됐습니다. 

 

 

헌데 두 거인이 이런 물결을 바로잡으려 합니다. 좋은 의미의 세계화가 무엇인지 말해주려 합니다. 인류 멸종의 시나리오 중 선두에 있는 한가지를 영원히 추방하려 합니다. 코로나19로 대표되는 인류 공통의 전염병 퇴치 프로젝프! 세계에 새로운 리더십 모델을 구축한 문재인 대통령과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함을 입증하고 있는 빌 게이츠, 두 거인이 손을 잡았습니다. 

 

인류를 전염병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려는 두 거인의 의기투합은 하찮은 음모론 따위가 끼어들 공간이 없습니다. 소아마비 백신 이후 거의 80년만에 부활한 백신 이타주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eit2k9Oe8U

 

 

코로나19 펜데믹이 1929년의 경제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를 만들었다면, 미국을 비롯한 모든 선진국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면, 그래서 그들의 경제가 위기에 빠졌다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문재인 정부야말로 경제 성공의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도 코로나19 펜데믹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민주적이며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펜데믹의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역 성공이 곧 가장 뛰어난 경제 정책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신세대의 탁월한 경제학자들이 미래의 모델로 대한민국 모델을 연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기레기들과 미통당, 나쁜 경제학자와 정치학자, 사이비 논객, 보수극우유튜버들이 이구동성으로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떠들어대지만 현장의 반응은 정반대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입니다. 차기 대권은 문통의 국정철학을 이어갈 수 있는 정치인이어야 합니다. 정책의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을 때 작금의 정책들이 최고의 결과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이재명식 표퓰리즘이나 사회주의적 밀어붙이기는 최악의 재앙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국민의 대부분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박근혜 탄핵과 이명박 사법처리라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었기에 오늘이 가능했습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어느 나라도 하지 못한 탁월한 위기관리가 가능했으며, 기적같은 선방이 가능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승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역사를 만들고 있으며, 21세기의 대한민국 신화를 만들고 있는 주역입니다. 자신에게 뿌뜻함을 느끼셔도 됩니다. 여러분은 그럴 자격이 넘칠만큼 충분합니다. 저 또한 구독으로 보답을 받을.... 아니, 아닙니다. 그냥 여러분에 편승했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Vq31qBEDc0

 

제가 왜 현재의 상황을 낙관하고 있는지 말할 수 있어 너무 기쁘네요.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도 국민과 의료진, 방역당국, 현장의 도움으로 한국경제가 기적같은 선방을 할 수 있었다며, 한국경제가 3분기에는 반등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입니다, 현장은 이미 반등을 시작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제 지인들이 다니고 있는 재벌부터 대기업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오랜 노력 끝에 납품에 성공한 외국기업들과 다양한 바이어들에게 주문물량을 할당해줄 수 없어서 납품 물량을 줄이거나 아예 거절해야 하는 상상도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재료와 생산이 필요한 제조업은 복사만 하면 그만인 디지털산업과 달라서 물량을 한꺼번에 늘릴 수 없습니다.

 

오랜 바이어의 주문을 끊거나 줄어야 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화된 시장구조에서 제조업체로서는 자살행위에 다름아닌데,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제조업체들이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볼 때는 즐거운 비명이라고 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도대체 누구를 끊고 누구에게 덜 주어야 하고 누구에게 많이 주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지요.

 

이런 현장의 변화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 되지 않았을 리 없으니 이런 말씀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경제에 실패했다고요? 세계에서 가장 잘 경제를 이끈 지도자라는 것이 우리를 제외하면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미통당과 기레기들, 극우유튜버, 사이비 지식인, 고리타분한 주류경제학자들만 정반대의 주장을 내놓고 있을 뿐입니다. 

 

 

부동산가격도 몇 개월 이내로 잡힙니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할 뿐 공생의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자들의 '조세저항운동'이 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지경이거든요. 미통당과 기레기들이 집값 폭등을 연일 떠들어대며 문통의 사과를 요구하는 덕분에 종부세와 다주택자 중과세가 가능해졌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요. 

 

부동산은 불변의 지위제가 아닌 가변의 지위제입니다. 다시 말해 가격이 동시에 떨어지면 절대적 차이만 있을 뿐 상대적으로는 기존의 차이가 유지됩니다. 어떨 때는 비싼 부동산들이 더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빈부의 격차도 줄어듭니다. 경제가 좋아지면 부동산이 아닌 주식에 투자할 터, 선순환되는 시장환경이 조성되는 것이지요. 

 

경제이론은 대부분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부족함과 거짓말을 고백하는 요즘, 경제는 정치가 결정함이 더욱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노통과 마찬가지로 문통 보유국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자부심을 느끼는 날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거대여당이 다주택자 세부담 강화 등 최근 정부와 여당이 발표한 부동산 대책 후속 세법 개정안을 해당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일제히 통과시켰습니다. 미래통합당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어 종합부동산세법·법인세법·소득세법 등 이른바 ‘부동산 3법’을 의결했습니다.

 

종부세법 개정안은 3주택 이상 또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 소유자에 대해 과세표준구간별로 세율을 현행 0.6~3.2%에서 1.2~6.0%로 상향, 법인세법 개정안은 법인이 보유한 주택 양도세 기본세율에 더해 매기는 법인세 추가세율을 현행 10%에서 20%로 상향됩니다. 소득세법 개정안은 2년 미만 단기 보유 주택, 다주택자의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율을 인상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시 분양권도 주택 수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행정안전위원회는 2주택자에 대해선 8%, 법인과 3주택자 이상인 경우 12%로 취득세율을 높이는 등의 내용을 담은 지방세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습니다. 국토교통위원회는 세입자 보호를 담은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중 전월세 거래신고제의 근거가 되는 부동산거래신고법과 단기임대(4년), 아파트 장기일반(8년) 임대를 폐지하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등을 통과시켰습니다.

 

전날인 27일 법제사법위원회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가 포함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상정을 마친 법안들은 다음달 4일로 회기가 끝나는 7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합니다. 미통당과 기레기들이 독재 운운하며 개거품을 물었지만 거대여당은 책임정치에 올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정치적 행위도, 입법 과정도, 심지어는 1인 독재도 정치경제사회적 환경이 무르익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투기자본까지 들어온 우리의 부동산 시장이 무섭게 달아오른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주택수요가 높은 상황ㅡ언제든지 현금화해 치고 빠질 수 있다는 뜻ㅡ에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로나19 펜데믹을 잘 극복했으니 불확실성이 가장 적은 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투기세력들의 유동성이 한국의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었고 문재인 정부의 어떤 부동산정책도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입니다. 풍선효과를 보이는 곳만 집중 규제하는 핀셋전략이 없었다면 부동산투기는 거품을 형성하는 단계까지 치달았을 것입니다. 

 

사실 유동성이라는 말은 나쁜 경제학자이 만들고 살처분 대상인 기레기들이 확대포장해 국민을 속이는데 사용되는 속임말입니다. 이 말은 정확하게 말하면 불확실성, 즉 위험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유동성이 풍부할수록 위험도는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도박, 즉 투기가 성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잡으려면 강력한 증세를 해야 하는데, 조세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에 국민적 저항이 큽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적 저항만큼 무서운 것이 없으므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품이 형성되지 못하게 하면서 하위90%의 국민들이 극단의 불만을 표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그럴 때만이 증세라는 정치적 자충수를 둘 수 있습니다. 국민의 다수가 원한다면 증세를 못할 것도 없습니다. 독재도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한데, 하위90%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정책이라면 못할 이유가 없지요. 그것이 미국 자본이던, 한국의 상위 10%에 속한 자본이던 간에 이들의 부동산 투기는 문재인이라는 지도자와 177석에 이르는 거대여당의 콧털을 건드린 것과 같았습니다. 그 결과가 부동산3법의 속전속결 처리입니다. 

 

 

https://youtu.be/L7a69YMaPhM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단테의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형국입니다. 상위1%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그들의 부를 무한대로 늘리려는 부동산 투기세력의 승리가 코앞에까지 다가왔습니다. 민주진보정부를 무너뜨리는 최상의 방법이 부동산투기세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어떤 정책도 실패하게 됩니다.

 

사유재산의 신성화가 초래한 무제한의 불평등과 양극화, 상위1%ㅡ최근에는 상위1% 내에서도 불평등이 급속도로 늘어나 0.1%와 0.01%으로의 초집중이 이루지고 있다ㅡ가 세계를 다스리는 방법, 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미통당과 기레기들... 

 

정의당은 자중지란에 빠졌고.. 정말 답이 없네요. 불평등한 사회는 그에 대한 나름의 해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나라의 부동산불패신화는 내집 마련이라는 단 하나의 욕망만 부추기고 또 부추깁니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데 성공한 피케티와 그의 동료들이 통곡하고 돌아가실 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IGmGHWWOjU

 

구글의 모토는 ‘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에서 은근슬쩍 '옳은 일을 하자(Do the right thing)'로 바뀌었습니다. 수평적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겠다면서 창업자들이 내세운 모토로는 더 이상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구글이 유럽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때려맞는 것도 사악해질대로 사악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구글의 모토도 바뀐 것이지요. 천문학적인 시장을 놓칠 수 없어 중국 공산당에 굴복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고요.

 

 

 

가장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기업(구글의 경영진과 대주주들이 노조파괴의 최고 컨설팅회사 IRI와 계약하는 바람에 구글 직원이 거리로 나서며 '사악해지지 말자'는 구호를 외쳤다)으로 승승장구하게 된 구글로써는 사악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옳은 일을 하자'는 모토도 헛소리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인종차별의 상징인 트럼프와 성향이 비슷한 저커버그의 페이스북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조세천국(조세회피처)을 이용해 탈세를 일삼던 구글이 유로로부터 천문학적인 규모의 벌금을 부과받고 1조 7천억에 겨우겨우 합의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출발해, <구글의 두 얼굴>을 거쳐 <구글의 종말>까지 구글을 공격하는 책들이 줄줄이 출판되는 등 사악해질대로 사악해진 구글로써는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크리에이트와의 이익 공유'가 그것입니다.    

 

 

 

구글은 어떤 크리에이터들과 이익을 공유할까요? 공유하는 이익은 매출의 몇 % 정도에 이를까요? 사악해지는 것을 포기한 구글이 옳은 일을 하고 있기는 할까요? 구글은 옳은 일의 정반대에 위치한 크리에이터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구글코리아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대한민국 정부쯤은 우습게 여기는 구글코리아는 돈이 된다면 어떤 크리에이터던 간에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안하무인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들이 그 결과 중 단 하나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더 무엇을 보여드려야 할까요? 부동산정책 실패했다면서 투기적 다주택 세금과 상위 2~3%만 포함되는 종부세를 강화하니까 세금폭탄이라며 이율배반적 행태만 주구장창 보여주는 미통당과 무엇이 다를까요? 구글의 이익 공유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최대 이익을 위해 기꺼이 사악해지는 그들의 추천 영상 알고리즘의 정체(이것은 별도로 다루겠습니다)는 무엇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PaJ1K-JtsVA

 

 

 

 

 

인류 역사상 불평등과 양극화가 가장 심했던 시기는 벨에포크 시대(1880~1914)입니다. 프랑스혁명 대표들의 정치적-이데올리기적 실패 때문에 1대 99사회의 출현이 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크게 두 가지가 주범으로 지목되는데 사유재산의 신성화와 지극히 낮은 조제재정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평등주의 세력의 정치적 실패는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약한 청년들에게 더욱 가혹했습니다. 공교육 붕괴, 무차별적 민영화, 낮은 세율, 무한경쟁, 각자도생으로 대표되는 신소유주의 사회의 폭주 앞에서 2030세대들이 최대 희생양이 됐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NH4Yd7ScaAU

 

 

두 대통령의 리더십 차이로 본 부동산정책과 추미애와 윤석렬의 충돌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불평등과 양극화의 원인과 해결책도 포괄적으로만 다루었습니다. 유튜브와 지식인의 문제도 다루었고, 방탄과 블랙핑크에 대한 보도량을 기준으로 한국 언론의 남성주의적 지배를 다루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XA3z1zPuCk

 

 

국민을 상위50%와 하위50%로 나눠 부동산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참여연대의 이분법은 철저한 실패로 끝난 사회주의 실험을 하자는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그들이 요구한 7가지 요구사항을 문재인 정부가 수용하면 중위40%의 중산층이 박살납니다. 상위1%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해외투자로 방향을 아예 틀 수도 있습니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참여연대의 요구사항은 글로벌 블평등 해결과도 연동될 수 없는 자살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요구사항이 잘못된 판단과 기준에 의거했기 때문에 어떤 정부도 수용할 수 없는 막무가네 요구입니다. 민주 정부만 들어오면 지나칠 정도로 오버하는 이들의 이중행태도 가증스럽기만 하고요. 

 

문통을 직격한 조기숙과 참여연대, 그들의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https://www.youtube.com/watch?v=5vnS63FqgQM

 

 

 

참여연대 홈페이지를 통해 이들의 주장을 살펴봤는데, 부동산시장을 아예 죽여버리자는 이들의 7개 요구사항은 오만방자한 조기숙 교수보다 몇 배는 더하네요. 모조리 실패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실험을 대한민국의 부동산에 관해서 특별나게 적용하자는 것이어서 기가찰 노릇입니다. 진중권이라는 루저의 양극성 장애현상(자기조절능력을 상실한 상태)이 조기숙을 거쳐 참여연대로까지 일파만파로 퍼져가니,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권력으로 밀려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오로지 하나의 잣대로만 세상을 보는 이들의 7개 주장은 대한민국 경제를 파멸로 몰고가자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들의 대단히 사회주의적이며 전체주의적인 발상 앞에서 할 말을 잃을 정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독재자도 아니고, 연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예 시장 기능을 뭉개버리라고 하네요. 조상들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지만, 조기숙이나 참여연대를 두고 한 말이었나 봅니다.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뜬다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들의 레파토리는 변할 줄 모르는 화석과도 같습니다. 상위 50%를 죽여 하위 50%를 살리자며, 국민을 일도양단해버린 이들의 7개 요구사항을 하나로 묶어 시뮬레이션 해보면, 저 이민 가고 말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yitVkL7H7U

 

 

참여연대가 제안한 투기 규제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7대 요구안은 

  1. 보유세 실효세율 획기적인 강화, 공시가격 즉각적인 현실화
  2.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강화
  3. DSR(채무상환비율, Debt Service Ratio) 등 상환능력에 따른 대출규제 강화
  4.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세제혜택 폐지
  5. 계약갱신 청구권 보장,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도입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과 전월세 신고제 도입
  6.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전국 투기과열지구 전역에 분양가상한제 시행

20년 이상 장기공공임대주택 대폭 확대 등입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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