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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남역 살인사건을 상품화한 <토일렛>의 개봉을 반대하며


'토일렛'이라는 영화가 개봉할 모양이다. 방학을 맞아 귀국한 조카가 해당 영화를 필자에게 알려주었다. 조카는 분을 삭히지 못하며 해당 영화의 포스터를 검색해 보여주는데, 포스터에 붉은 글씨로 인쇄돼 있는 영화의 카피를 본 순간, 필자는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폭발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인종차별적 발언을 밥먹듯이 해댔던 트럼프의 당선에 힘입어 폭동을 일으킨 것에 비견될 만큼의 여성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카피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8월 개봉이 확정돼 시사회까지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이 영화의 카피는 이렇다. "모든 것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 때문이었다.' '강남역 여자화장실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충격적 심리 스틸러 <토일렛>' 세월호참사를 이용해 상업영화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처럼, 이땅의 여성들에게 숨막힐 듯한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활용해 심리 스틸러류의 상업영화로 만들어 장사에 나섰다는 뜻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여대생 두 명을 살해한 이유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 때문'이었단다. 두 명의 여대생을 살해한 이유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 때문'이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완전범죄를 꿈꾸었다'고 말한다. 이땅의 여성들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각인된 '강남역 살인사건'을 상업영화의 모티로 삼은 것도 악마적인데, 여성의 목숨을 '남성의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의 희생양으로도 만들고도 모자라 완전범죄나 꿈꾸었다는 카피에 분노하지 않으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영화의 스토리는 매력적인 두 여대생에게 작업을 걸었으나 거절당한 한 명의 남자가 그를 흉보는 여대생들의 뒷담화에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가 치밀어 일행과 함께 여대생들을 살해했으며, 완전범죄로 만들어 법망을 피해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업을 거절한 여대생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의 뒷담화에 남성들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에 의한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짐승보다 못한 존재며, 여성 두 명의 목숨은 그들의 '분노 해소용'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상훈 감독은 "강남역 살인사건, 층간 소음 살인사건, 묻지마 살인사건 등 상식을 벗어난 즉흥적인 범죄들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토일렛>을 제작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허면 포스터의 카피는 무엇인가? 감독이 밝힌 기획 의도와 포스터의 카피 사이에는 태평양의 물을 모두 다 쏟아부어도 채우지 못할 거대한 심연이 자리하고 있다. <토일렛>의 포스터를 접한 여성들과 네티즌들의 항의와 비난이 쇄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이상훈 감독은 <토일렛>은 강남역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영화라며,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감싸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나 역시 그 누구보다 강남역 사건에 울분한 사람이고 범죄자에 대해 지탄하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카피에 담긴 세일즈 포인트는 그의 해명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상훈 감독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전혀 다른 설정을 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강남역 살인사건'을 연상시키는 일체의 것들을 배제했어야 한다.  



이상훈 감독은 또한 '<토일렛> 역시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품'이며, '완벽한 범죄는 없고 범죄자는 결국 그 벌을 받는다는 것이 영화의 메시지이자, 주 내용'이니 '아무쪼록 더 이상의 오해나 불편한 영향들을 끼치치 않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도 말했지만, 수많은 여성들과 필자 역시 불편한 것을 넘어 분노를 삭히지 못할 정도다. '경종을 울리자는 뜻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포스터의 카피와 영화의 설정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상훈 감독의 해명에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담겨있다면 영화의 상영을 포기해야 한다. 세월호참사를 모티브로 상업영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제지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과는 달리 <토일렛>은 이미 만들어졌고, 시사회를 가졌으며, 홍보·마케팅에 들어갔으며, 개봉일자까지 정해졌다. 여성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이런 쓰레기 영화는 개봉되면 안 된다. 이 영화에 등급을 매겨 개봉을 허락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직무유기도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여성과 강정주부, 청소년, 청춘을 철저한 소모품으로 우려먹는 신자유주의의 폭주가 남성 위주의 세계관과 체제를 공고하게 만든 결과가 작금의 헬조선이라면, 줄리안 무어(미국의 영화배우)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한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불경한 말과 동의어로 치부되곤 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페미니스트는 '휴머니스트'와 같은 말인데." 페미니즘 운동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인권운동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토일렛>에는 이런 것들이 없다.

    




여성의 성상품화가 일상화됐고, 데이트폭력이 급증세이며, 몰카와 리베지포르노가 범람하고, 여성의 자유와 기호를 남성의 잣대로 규정하는 것이 도를 넘은 상황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을 비롯해 이땅의 여성들에게는 영원한 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상업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감독과 제작사가 여성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라도 있다면 극장 개봉을 취소해야 한다. 



영화 <토일렛>의 개봉에 반대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