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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조국에 이어 유시민 죽이기가 시작됐다

현재의 자한당과 보수 진영에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재목은 단 한 명도 없다. 보수 진영의 잠재적 대권후보의 선두였던 홍정욱 전 의원도 딸의 마약문제로 치명타를 입었다. 노통의 말을 빌리자면, 유승민과 안철수는 '깜'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력화시켜 조국 법무부장관을 낙마시킨 강경 보수 성향의 윤석렬이 등장했다. 그의 힘이 얼마나 센가 하면 문통이 검찰개혁에 관한 법무부의 일을 직접 지휘해야 할 정도다. 정말로 엿 같지만, 윤석렬은 문통과 동급의 수준에까지 이른 것이다. 

 

 

민주진보 진영의 상황은 어떤가? 급진좌파와 구좌파들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이재명은 법적 유무죄와 상관없이 대통령 후보에서 탈락했다. 자한당 후보가 공격하기 쉬운 대선후보 중 이재명을 능가할 사람은 없다. 윤석렬의 지휘 하에 기득권 카르텔의 맹폭을 당한 조국 교수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정치권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하다. 비판이란 정치사회적 행위를 신의 기준으로 올려 조국에게 적용해 일체의 반론이 불가능하게 만든 최악의 프레임인 '조적조' '조로남불'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치사회 비판은 완벽한 삶을 살아온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숱한 잘못과 실패를 거듭해온 사람도 정치사회적 비판을 할 수 있다. 조국 일가에게 가해진 신과 같은 기준은 인간의 세상에서 통용될 수 없는 하늘의 기준이다. '조적조'와 '조로남불'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돼야 한다면, 어제의 100분토론에서 범죄와 조작, 거짓의 누더기로 점철된 추잡하고 비열한 삶을 살아온 홍준표는 문통과 조국만이 아니라 이재명도 비판할 수 없다. 

 

 

정치사회적 비판과 개인으로써의 삶이 완전히 일치해야 한다면 공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예수, 부처, 공자가 유일하다. 평생을 혼자 살아서 대단히 깨끗했던 칸드 정도가 그나마 비판이 허용된 공인이 될 수 있다. 정치사회적 비판은 완벽한 삶을 살아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패륜적인 범죄자라고 해도 할 수 있다. 조국의 경우도 법정에서 무죄를 받으면 '조적조'니 '조로남불'이라며 조롱과 욕을 먹을 만큼 악질적인 것이 절대 아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부터 공안검사를 했던 황교안과 반칙과 특권, 비리의 백화점인 나경원의 삶과 조국의 삶을 비교해 보라. 답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자한당과 기레기들이 유독 민주진보인사에게만 신이나 소화할 수 있는 기준을 들이대는 것에 넘어가지 말라. 10년 가까이 개차반처럼 살아온 나같은 형편없는 놈도 정치사회적 비판을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조국이 교수였던 시절에 쏟아낸 비판들이 그의 공적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은 형훼화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사람만이 정치사회적 비판할 수 있다면 히틀러와 스탈린, 대처와 레이건, 트럼프와 시진핑 등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경제적 비판까지 포함하면 이재용으로 대표되는 재벌 오너들의 반칙과 특권도 비판할 수 없다. 공정과 정의가 법과 제도로 뒤받침될 때 힘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통이 시정연설에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한 차원 높은 공정과 정의도 법과 제도로 뒤받침돼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다룬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튼 조국의 화려환 귀환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문통이 시정연설에서 합법적 범위 안에서 관행적으로 허용된 반칙과 특권, 불공정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공정과 정의에 대한 제대로 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조국의 귀한은 더욱 앞당겨질 수 있다. 김경수도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있지만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가 드루킹 논란을 극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박원순은 능력 대비 호감도가 낮다. 이것은 확장성이 제일 중요한 대선후보로써는 치명적 약점이다. 서울시장에 3번 연속으로 당선된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행정가로의 자질과 능력은 합격점을 받았지만, 3연임 동안 서울시 내부에 어떤 문제들이 축적돼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장기집권은 아무리 조심하고 경계한다고 해도 알게 모르게 치명적으로 폭등할지도 모르는 문제들이 쌓이고 축적되기 마련이다. 

 

 

이낙연 총리가 유력 후보로 떠오를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정치는 말'이라는 점에서 촌철살인의 달변가라는 그의 장점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장수 총리로써 내각을 이끌었던 행정경험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총리 출신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지금까지의 잔혹사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이 모든 장점들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중도층을 열광시킬 정치적 잠재력이 노통이나 문통에 근접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자신은 절대적인 부인을 하고 있지만, 자한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은 누가 뭐래도 유시민 이사장이다. 최근에 들어 중도보수층에까지 스며들었던 호감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의원 시절 수준으로 돌아간 느낌도 있지만, 민주진보 진영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자한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잠재적 후보임에는 틀림없다. 죽어도 정치는 하지 않게다고 수없이 공언했던 문통이 국민의 부름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유시민이라고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 유시민을 향한 기득권 카르텔의 전방위적 죽이기가 시작됐다. 알릴레오에서 패널로 나온 기자의 성희롱 발언 때문에 기레기로 자리매김한 KBS 기자들로부터 통렬한 되치기를 당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것을 시점으로 모든 언론들이 유시민 비판에 가세했고, 자한당은 물론, 윤석렬의 검찰까지 유시민 죽이기에 합류했다. 그가 직접한 망언도 아니었고, 당일 방송의 말미에서도 미흡하지만 사과도 했다. 그 이후에도 정중한 사과를 여러 번에 걸쳐 했고,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사과를 표명할 것이지만, 유시민 죽이기의 강도는 높아지고만 있다. 

 

 

이러다간 조국에게 가해진 기준이 유시민에게도 가해질 판이다. 신이나 소화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을 들이대면 천하의 유시민이라도 살아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통의 핵심지지층인 2040 여성들이 그의 진심어린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는 것도 불안요소이다. 유튜브 방송에 광고와 협찬은 물론 여론 형성의 영향력까지 밀리기 시작한 기성 언론의 총공세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KBS가 그랬던 것처럼, 워마드와 불꽃페미 류의 나치페미까지 동원하면 유시민 죽이기는 상당한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홍준표가 백분토론 20주년 방송에서 유시민의 정계 복귀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홍준표는 유시민도 문통과 같은 상황에 처하면 정계 복귀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나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악착같이 물고늘어졌다. 민주진보 진영의 잠재적 대권후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불리한 위치로 내몰리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정경심 교수의 영장 발부나 기각처럼 법원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로 대표되는 이런 상황은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자한당과 수구언론, 정치검찰, 기독교 무리들의 작품이다. 진보언론이라고 다를 것이 없지만 유시민에게도 조국에게 덧씌워버린 기준ㅡ너무나 촘촘하고 넓어서 초미세먼지도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ㅡ이 적용되기 시작하면 민주진보 진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그것에서 자유로운 자한당 놈들만 유리해질 뿐.

 

 

필자가 조국의 정계 복귀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진보 진영의 정치인은 가난해야 한다는 족쇄를 풀어버려야 강남좌파가 늘어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민주진보 인사의 운신의 폭도 넓어진다. 노회찬 전 의원의 극단적인 선택도 이런 불공정하고 일방적인 기준 적용에 따른 참담한 비극이었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세금을 많이 내게 만들고, 그에 따라 복지가 늘어나면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로널드 드워킨이 《자유주의적 평등》에서 역설했던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

 

 

노무현 죽이기, 문재인 죽이기, 유시민 죽이기는 이땅의 민주진보 진영을 사지로 내모는 수구보수 진영의 영원한 목표이다. 구좌파와 급진좌파, 강한 진보가 아직도 마르크스주의에 매몰돼 있는 지금, 참여민주주의와 시민주권 행동주의로 대표되는 직접민주주의의 강화 추세를 이어가려면 문재인 죽이기와 함께 유시민 죽이기도 초전에 박살낼 수 있어야 한다. 이재명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시민은 유시민이다! 

 

 

 

P.S. 유시민 이사장이 윤석렬이라는 사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것은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