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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ㅡ폭주하는 기차를 멈춰라4



특히 가장 미국적인 나라인 대한민국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국가의 권력기관들이 선거에 개입한 증거들이 넘쳐나는 데도 이에 대해 단 한 마디 사과도 없는 대통령이 거의 모든 공약을 파기하고 뒤집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통령은 정체불명의 민생경제만 외치면 콘크리트 지지율을 구성하는 자들이 격정적으로 화답한다.



온갖 불평등을 고착화시킨 성장 위주의 민생만 외치면서도 내놓은 정책마저 어그러지기 일쑤인 현 대통령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에게 지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겨준 전임 대통령이 여전히 활개 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지금까지 나온 전 정부의 선거 개입이나 각종 비리, 4대강사업과 불법으로 얼룩진 자원외교 등 당장이라도 그를 법정에 세워야 하는데 대체 현 대통령은 어떤 말 못할 사정이라고 있는지 검찰총장과 담당 검사들을 찍어내 발라내는 반민주적 행태들만 보여주며 세월아 네월아를 흥얼거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국가 안보와 좌파 및 종복몰이라는 만병통치약과 전가의 보도가 있다. 미국이 핵무기 보유(또는 가능성)를 공공연히 인정하기 시작한 북한의 움직임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아니면 미국으로부터 어떤 언질을 받았는지, 뜬금없이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신종 무기를 들고 나온 현 정부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또 다른 시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사전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통일마저 경제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국내 경제와 세계 경제의 어려움을 대변해주고 있지만,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대한민국도 이에 속한다)들이 이미 폐기한 성장지상주의의 새로운 버전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하기 그지없다.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사전 준비가 선행돼야 하고, 낮은 단계의 통일이라고 해도 국내의 일자리 상당수가 북한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 1030세대의 취업률은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부터 확고한 보증을 받은 기업들이 저임금 노동이 가능한 북한에 공장을 세울 것이며, 무분별한 자원 개발은 한반도의 대기와 토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이 부와 위험의 불평등으로 이어졌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통일은 대박이다’도 같은 과정을 되풀이할 것은 지난 70년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필자가 보기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의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일 것이며, 통일비용(수백~수천조)을 감당하지 못해 국가의 빚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과의 신뢰 구축 없이 통일을 경제적 이해득실만으로 접근한다면, 그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수밖에 없다. 이는 독일의 통일을 연구한 수많은 저작들과 연구논문들이 통계수치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낙수효과가 새빨간 거짓말이었듯이, 부의 재분배가 강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제성장은 반드시 부와 위험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이를 바로 잡으려면 전 세계적 노력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진보 개념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로 이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원한 진보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헤겔은 인류에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청년 시절의 마르크스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 변증법적 유물론과 ‘자유의 왕국’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유럽의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라는 타협책을 들고 나옴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란 전복적이며, 이루어질 수 없는 가상의 유토피아와 시민 중심의 사회라는 지속되기 어려운 동거에 들어갔다. 폴라니의 마르크스 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계급 간의 투쟁이 역사의 실체라면 계급이 사라진 역사란 존재할 수 없음에도, 유럽은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혼합을 선택함으로써 ‘사탄의 맷돌’로서의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처방전을 바탕으로 타협해버리는 우를 범했다.





이렇게 전복적 혁명을 막아낸 그들은 내부로부터 무한 경쟁을 지속하는 자유주의 자본주의와 타협함으로써, 강력한 외부의 압력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에서 자라고 있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에 의해 견고했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체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견고한 것들이 신자유주의의 맹공 앞에 녹아내리며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고 있다.



이에 반해 20세기 내내 마르크스를 수없이 부관참시해 그의 사상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은 미국의 지배엘리트들은 국가와 정치 자체를 기업과 비즈니스로 만들어 돈이 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는데 성공함으로써 온갖 불평등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면서도 사회경제적 평등에 대해서는 대놓고 경멸을 표하는 이들은 성공과 대박에 대한 환상을 강화하며 건국의 순간부터 체제의 바탕에 숨겨놓은 전체주의적 성향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했던 감독이자 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돈이 되는 그의 영화는 최대한 우려먹는 이중적 행태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개인의 신앙과 공기에도 신용 등급을 매기는 데까지 거침없이 나갔고, 대중매체를 동원한 문화산업을 통해 시민의 의식마저 동질화하고, 개인의 기호마저 자본주의화 하는데 성공했다.



세상을 양분했던 서구의 두 가지 산업주의 모델 중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린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는 ‘하이에크-대처’라는 정치경제적 조합과 ‘제3의 길’이라는 토니 블레어 내각의 일탈을 거쳐 2008년의 신용붕괴를 거치면서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고, 유럽의 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독일 중심의 유럽으로 재편되고 있다. 곳곳에서 칼 슈미트와 히틀러의 조합이 부활하고 있으며, 예외상태에서 더욱더 힘을 발휘하는 ‘탐욕의 삼위일체’가 신자유주의라는 타락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복지국가의 마지막 뿌리마저 뽑아내고 있다.



세계의 모든 국가에 대해 유일한 예외국가임을 스스로 천명한 미국에서는 프리드먼-레이건 조합, 진보의 중심에 보수의 씨앗을 파종한 클린턴, 미국 백인 상류층이 지지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국가업무의 민영화를 울부짖으며 세계를 상시적 전쟁상태로 몰고 간 부시, 월가와 실리콘벨리가 인정한 ‘검은 피부의 하얀 가면’의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외국의 돈으로 흥청망청 살아온 유일 제국의 맨얼굴과 치부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단 40년 만에 조상이 쌓아온 어마어마한 부를 모두 탕진한 유일 제국은, 새롭게 부상하는 제국인 중국과 정치경제적 식민지인 일본과 한국 등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무제한적인 양적완화와 무차별적인 무기 수출, 점점 줄어드는 유학생 유치, 근육질 판타지와 지구방위대로서의 십자군전쟁으로 일관하는 헐리우드의 영상산업, 갈수록 하한선이 내려가는 투자이민, 저임금 노동자로 부려먹던 불법체류자의 추방, 가뜩이나 부족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체계의 축소,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의 대규모 삭감 등으로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끌어다 부도난 통장을 메우고 있지만, 현재의 허상과 과거의 영광 사이에 갇혀 있는 유일 제국은 제살을 깎아먹고 있는 장기불황의 늪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구온난화에 치명적이며, 물의 대규모 오염을 피할 수 없는 세일가스에 대한 본격적인 채굴과 사용은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처방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익보다 큰 또 다른 형태의 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처방, 즉 고율의 법인세와 상속세, 슈퍼리치와 각종 분야의 스타들에 대한 누진과세, 토지세와 환경세 신설, 금융권의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 같은 일련의 조치에 성공하면 제국의 부활은 가능하다.



꿈같은 이런 스토리는 모든 불평등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는 존 로크의 사상ㅡ자연법을 이용해 소유권 개념을 정립했지만, 신을 끌어들여 침해불가능한 권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타인을 착취해 무제한적인 부의 축적을 가능하도록 만든 사상ㅡ을 칼뱅의 예정조화설과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떠받드는 연방국가 미국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대한 미국 혁명의 결실이었던 '미국의 민주주의'는 '독립선언서'와 ‘연방주의자의 연설’에서나 가능했던 가상의 것이었을 뿐, 현실에서는 건국 초기에만 제한적인 사람(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들만 누릴 수 있었던 인류 최고의 호사였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밝힌 것처럼, 경제적 이득보다 손실이 커졌기 때문에 노예해방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끝끝내 부정하려는 건국 이래의 새빨간 거짓말들을 되풀이하면서.



스미스와 리카도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침묵을 지켰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상식에 불과한 것들을 무슨 대단한 경제이론을 제시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만큼 미국은 ‘불경한 삼위일체’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준 숙주이자, 2008년 신용 대붕괴 이전까지는 가장 큰 시장이었고, 그 역할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해 전 세계를 부정적 세계화의 올가미 속에 가둬버린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