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치와 경제의 실패 때문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앞선 세대가 남긴 것이 풍요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결핍인 시대가 도래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광고의 홍수와 제품의 풍요 속에서 살아온 젊은이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만족을 늦추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소비 촉진을 위해 방임에 가까운 자유가 주어졌으나, 좋은 직업을 얻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저임금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됐다. 넘치는 자유는 국가와 사회의 구제가 사라진 것에서 대신 주어진 것이라 그들의 삶을 옥죄었다.



이에 따라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평등조차 박탈당한 1030세대들은 잉여를 넘어 ‘쓰레기로 버려지는 삶’에 두려움과 순간에 집착하는 성향 사이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이란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을 당연시 여기고, 적자생존의 승자독식을 인정하는 정글 같은 사회였다. 민주주의에 익숙하지만, 일정 수준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주어져야 민주주의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논리와 상충됐다.





앞선 세대의 경험과 지혜란 빛의 속도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업데이트되는 현실에선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심지어 “2010년 현재 40세인 사람이 어떤 문제의 원인 발생이 시간적으로 자신이 태어나서 40년 전에 있었고, 그 해결책이 그가 죽은 후에 실행되기 때문에 자신은 원인 발생은 물론 그 해결책에도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그런 문제에 대한 책임이 귀속”되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및 생태계 파괴, 대지의 사막화와 물 부족 사태 등은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 그들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앞 세대들을 모두 욕하자니 지금 누리는 자유와, 바로 그 감당하기 힘든 자유 때문에 저임금의 자리마저 날아갈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줄어듬에 따라 체념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사회경제적 결핍에 대한 서열에 민감하면서도, 이를 내면화해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기도 보다는 그 안에서 사는 법에 적응해야 했던 이들은 앞선 세대가 남긴 것들로 하여 ‘최초의 저주받은 세대’로 원치 않는 정체성을 구축해갔다. 이들이 해체된 가족과 더 이상 손을 잡아주지 않는 사회, 원천봉쇄된 기회와 철저히 차별화된 삶을 내면의 분노로 쌓아가면서, 신빈곤층을 형성한 채 디지털 세상을 배회하는 새로운 형태의 유목인으로 변화해갔다.



이런 이중, 삼중의 박탈은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하나로 묶어 ‘지배의 변증법’을 만들어낸 전 지구적 특권그룹의 무제한적인 탐욕에서 나온 결과다. 부와 기회와 권력은 최상층부에 쌓이고, 빈곤과 차별, 위험은 중하위층에 쌓여서 그 간격이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짐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유목민이 탄생했고, 이는 문명 이전의 유목민이 그들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폭주하는 기차를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 달랐다.



이렇게 수많은 패자ㅡ앞선 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ㅡ를 양산한 채, 전 지구적 독점자본과 초국적기업으로 성장한 세계적 특권그룹은 폭주하는 기차의 속도를 광속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모조리 털어내고 있다. 그들에게 부와 권력을 안겨준 ‘무거운 경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자, ‘가벼운 경제’로 변신하기 위해 지금까지 유효했던 사회적 계약들을 무효화하며, ‘어느 곳에나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존재’로 변신하고 있다.



그 결과 전 세계의 500개 초국적기업이 축적한 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133개국의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커켰고, 전 세계 총생산량의 52%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고용은 전 세계 노동력의 1.8%에 불과할 만큼 형편없어 부의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다. 전 세계 0.1%의 슈퍼리치는 무려 전 세계 자산의 25%를 차지하고 있고, 슈퍼리치를 1%로 넓히면 45%에 이른다. 인류 역사상 이런 부의 독점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극소수의 부의 독점의 역사였다. 





이제 본사라는 개념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몇 번이나 걸러지고 추려져 별도의 왕국을 구축한 1%는 ‘우리-집단’에 들지 못한 99%의 ‘그들-집단’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졌다. 그들은 이제 ‘그들-집단’이 전복적 혁명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의 부스러기만 흘려줄 뿐, 미래의 독점권을 현재의 시점에서 선점하고 있다. 그들의 탐욕이란 ‘종의 기원’을 넘어 신의 권능을 지닌 악마의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1%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NGO와 국제기구의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무조건적인 기부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들은 1%를 대신해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단기적인 지원과 인류애로 포장된 의료행위나 봉사활동을 수행함으로써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면죄부를 발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비판은, 이들이 전 세계에서 보내진 구호품을 온갖 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각종 부작용들을 양산하는 것도 모자라, 1%만이 거래할 수 있는 폭력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서들을 보면 전체 구호품의 15~20%가 통행세 명목으로 지역 출신의 범죄조직이나 용병들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나온다.



이들은 이것을 팔아 새로운 무기를 구입하고 조직원을 늘리고 훈련시켜서 세력을 넓히고 있다. 이들은 또한 인도주의사업에 가담하는 것을 넘어 각종 테러를 양산하고, 빈곤을 이용해 내전을 일으키는 등 폭력시장의 규모를 급속도로 늘려나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주도하는 폭력시장의 규모가 수조 달러에 이른다는 보고서들이 속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40년 만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사를 통해 경고했던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 거대한 군사 조직과 대규모 방위산업체 간의 결합은 미국에겐 생소한 경험이다. 그 전체적인 영향력, 즉 경제적, 정치적 심지어는 정신적 영향은 모든 도시, 모든 주의 의회, 연방정부의 모든 기관에서 느껴진다. 우리는 이러한 발전이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 내포된 중대한 의미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노력, 자원, 생계 모두가 관련되어 있고, 사회의 조직 또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산복합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들이 부당한 영향력을 획득하지 못하게 감시해야 한다. 잘못 주어진 권력의 재앙적 번성은 이미 시작되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폭력시장은 이제 지구온난화와 토지의 사막화, 국제적 불평등에 기반해 빠른 속도로 시장규모를 늘리며 전 지구적 위협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모든 것이 자유방임적 시장논리에 따라 돌아가면 어떤 결과가 파생되는지 폭력시장의 기하급수적 확대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다. 세월호 참사도 이런 면에서 보면 폭력시장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전 세계를 경제대공황으로 몰아넣어 수없이 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고, 사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공동체와 가족을 해체하고, 수많은 자살과 죽음을 몰고 온 신용붕괴는 그 범죄를 주도적으로 행한 세계적 특권그룹에게 면죄부를 발행한 것을 넘어, 그 밖의 모든 사람들과의 소득 차이를 최대한 벌려놓았고, 탐욕의 질주를 하는 동안 금융산업 내부에 축적된 각종 위험요소들을 어마어마한 공적자금(현 세대의 세금)과 무제한적인 양적완화(미래세대의 부채)로 해소한 것도 모자라, 폭력시장(민간이 주도하는 전쟁과 테러)이라는 새로운 먹거리까지 창출하는 4중의 성공을 거뒀다.







2008년의 신용 대붕괴와 그것이 초래한 세계적인 경제대침체는 거대 금융(투기)자본과 초국적기업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무거운 경제들을 털어내는 구실로 작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구실로 작용했다. 부정적 세계화의 결과인 신용 대붕괴는 범죄 당사자인 전 지구적 특권그룹으로 하여금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무거운 경제를 털어내며 가벼운 경제로 이행하는 시기를 앞당겨주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는 대규모 실업으로 이어지며, 비정규직 시장으로 진입하는 노동자의 수가 대폭 늘어나고, 생존선 밑으로 떨어진 사람들 간의 저임금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짐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노동자의 임금 상승은 기대하기 힘들며, 인류가 수백 년의 투쟁을 통해 거둔 노동자의 권리마저 무시될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소득원이 사라짐으로써 가족의 해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생계형 이혼도 늘어나고, 그 동안 참고 버텼던 각종 질환도 증가하고 정신적 질환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십대의 범죄와 임신율과 낙태율이 증가하고, 은퇴자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높아지고, 저임금 일자리와 한정된 복지를 놓고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사에서, 무섭게 부상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위치에 오른 거대한 군산복합체의 네트워크를 걱정했듯이, 이제는 신자유주의의 지배그룹인 1%가 하는 일들은 모두 다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1. 영감 2014.08.27 12:33

    다음 블로그에 작성하신 좋은 글을 보고 티스토리까지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끝없는 거품으로 치닫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보면서
    결국 한번에 터져버릴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유명한 동화가 있습니다.
    수많은 애벌레들이 거대한 기둥을 향해 위로 끊임없이 올라가는데 결국 정상에 올라가 보니 아무것도 없더라는..
    님께서도 병마와 싸우시면서 최소한의 돈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경쟁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가 빨리 인구가 줄어서 인간의 가치가 좀 올라가면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의학이 발달해서 노년인구 비율이 자꾸 올라가니 인구 구성이 조정되려면 꽤 오랜 기간이 걸리겠지요.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 선진국들은 나름대로 돈구멍이 다 있습니다. 조상을 잘둔 덕이지요
    우리나라는 돈되는 자원이 거의 없는 인구만 많은 나라이니 수출경제로 대외의존도가 높아서 신자유주의를 버릴 수가 없지요.
    계속 이민을 보내서 자급자족 수준의 소규모 국가로 가야되는데
    그러면 국력이 약해져서 주변의 중국이나 일본에게 먹힐 가능성도 있으니 참 답이 안나오네요.
    북한처럼 꽁꽁 잠궈도 결국 망하지요. 조선말 쇄국정책으로 망해봤잖아요.
    남한은 개방해서 거품으로 위태롭고 북한은 잠궈서 망해가고
    참 답안나오는 처지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27 19:26 신고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강해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기업들의 경쟁력은 높은 편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제대로 된 분배정책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럽의 부국들은 자원이 없는 곳이 훨씬 많습니다.
      그들의 발전도 2차세계대전 이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수출위주의 경제 때문에 내부에 상당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데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부국들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영국이나 독일처럼 금융에 올인하거나 제조업에 올인한 나라들입니다.
      나머지는 분배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만든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보다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면 내수시장이 살아납니다.
      전 세계적으로 5천만 정도의 시장을 가진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까지 하면 선진국의 기본 조건인 내수시장이 형성됩니다.
      북한은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그들은 국민을 희생시켜 국방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것은 실패한 국가의 전형이기에 우리의 도움을 뿌리칠 수 없고, 그 정도 수준에서 얼마든지 관리가 가능합니다.
      인구는 경제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장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도권 위주의 자본주의를 지방으로 펼쳐나갈 수 있으면 우리는 지금보다 몇 배 이상 잘 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인데 이를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부의 불평등을 줄여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사회적으로 치르는 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저는 정치권이 조세정의만 확실히 하면 한국은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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