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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선거에 영향을 미쳤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라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대선·정치개입 혐의’에 대한 1심(서울중앙지방법원) 선고공판에서 국정원법 위반(정치개입)은 인정됐지만, 선거법 위반(대선개입)은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정치개입이 총선과 대선 기간 동안 일어났고, 조직적인 범죄를 통해 선거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이 선거운동은 아니라는 기기묘묘한 판결을 내렸다.



법리해석에 새로운 경지를 연 1심 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정치 편향적이고 아전인수격 해석이 넘쳐나고, 존재할 수 없는 논리를 세우기 위해 온갖 형용모순들에 빠져들었다. 이번 판결은 언어학이나 기호학과 논리학에 대해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논리적 모순들을 찾애낼 수 있을 만큼 형편없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문을 살펴보자.





법원은 “정치관여 사이버활동은 그 자체로 국정원법 위반”이며, “특히 선거 시기에 있어서는 국민들 판단에 영향 미칠 수 있는 매우 위험, 부적절한 행위”라면서도, “피고인들 행위가 선거 또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도 그게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기에는 검사 입증 부족하다면 형사법 대원칙에 따라 피고인들에게 형사책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르면 필자가 “박근혜는 항일 독립운동가를 척결하는 일본부대의 일원이었던 악질적인 친일부역자였고, 자신이 살기 위해 300명에 이르는 남로당원(이중에는 남로당원이 아닌 자도 있었다)을 팔아먹고 목숨만 건진 채 군대에서 쫓겨났던 박정희처럼 빨갱이스러운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망할 수도 있다”고 말해도 ‘선거 또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도 그게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기에 대선개입은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이번 판결의 핵심 요소가 등장한다.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다면 형사법 대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형사책임 물을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유권자에게 필자의 글이 영향을 미쳤다 해도, 이에 대해 검사(검찰)가 대선개입이 확실하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필자는 형사책임에서 자유롭다.





다시 말하면, 검사(검찰)의 증거 확보 능력에 따라 필자의 유무죄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바로 여기서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해 수사를 총괄했던 채동욱 검찰총창과 윤석렬 지검장을 대통령과 청와대가 온갖 욕을 먹으면서 찍어 발라낸ㅡ조선일보가 특종 보도했다ㅡ결과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법원은 검사의 입증이 부족했음을 이어진 판결문을 통해 명확히 밝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부분 공소사실 상당부분, 국정원 직원들 행위임이 입증 안 됐고, 나아가 피고인들의 선거운동 지시, 그에 따라 심리전단 직원들이 특정 후보자 당·낙선 목적으로 계획적, 능동적 선거운동 했다고 보기 어렵다.  달리 인정할 증거도 없다,  범죄 증명 없는 경우에 해당해 한다.



트위터를 제외한 사이트, 커뮤니티 계정은 117개다. 이는 전부 심리전단이 사용한 계정임이 충분히 입증된다...트위터 1157개 계정 중 재추출한 116개와 트윗덱 59개 등 총 175개는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되지만, 나머지 982개는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다.



위의 판결문에서 보듯, 1심 법원은 원세훈 국정원장과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인정하면서도, 대선개입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지극히 모순적이고 기기묘묘한 판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검찰의 입증 능력이 형편없이 부족했거나, 형편없이 부족하도록 수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정원이 정치개입과 선거개입에 해당하는 불법을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검찰이 정치개입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제시한 반면 선거개입을 입증할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1심 법원의 해석이다. 즉 선거법 85조를 적용하면 무죄지만, 86조를 적용하면 유죄라는 법리해석과 상관없이, 국정원의 조직적인 불법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뒤바꿀 만한 일은 없었다는 것이 1심 법원 판결의 핵심이다.





이명박 정부에 면죄부를 발행한 이번 판결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황교안 법무부장관 라인에 의해 채동욱 검찰총장과 윤석렬 지검장이 발라내질 때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은 이미 게임 종료됐다는 뜻이다. 혹자는 아직 2심과 3심이 남아있지 않느냐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그때쯤이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도 거의 끝나가거나 자연스러운 레임덕에 처했을 때이니, 어떤 판결이 나온들 한국의 정치지형도가 바뀔 이유란 없다.



오히려 새누리당 유력 대선주자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원, 검찰을 몰아치며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이용할 수도 있다. 조중동을 비롯해 제도권 방송들이 이를 확대재생산해 정권 재창출이나 내각제 개헌 등으로 물꼬를 터갈 수도 있다.  



결국 이 나라를 완전분해해서 기득권과 특권층이 없도록 새롭게 조립하겠다는 청사진을 놓고 투표가 진행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변화란 기대할 수 없다. 인물이 아닌 청사진을 실천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국민의 대오각성이 없는 한 이런 부정의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이 땅의 사이비 보수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란 시민에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유를 주되, 그 자유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자본과 권력을 독점한 지배세력의 노예로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304명의 국민이 자본과 권력의 탐욕 때문에 죽었어도 진상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노예로 사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빌어먹을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죽을 각오로 행동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절대다수일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때 최대의 선물을 돌려주는, 지독히 이중적인 체제이자 이데올로기다. 사회경제적 약자가 자본과 권력의 노예를 자처하면 그에 합당한 만큼만 되돌려준다. 그게 이땅의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