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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공간

변희재의 광기와 벌레들의 역겨움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빚이 늘어나고 있다. 유대인의 전유물과 다름없었던 신용창출(금융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악덕 고리대금업)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 자본주의라면,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빚이란 미증유의 거품을 형성한 후 빅뱅의 순간처럼 폭발하기 마련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식적인 빚만 120조 달러(13경원)에 이른다. 어느 나라나 지하경제가 있는 것처럼, 공식적인 빚보다 큰 비공식적인 빚까지 합치면 300조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 전 세계의 자산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구온난화와 토지의 사막화, 각종 환경오염 등을 감안하면 지구적 차원의 자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니, 미증유의 빚을 청산할 방법이 없다.





결국 2008년의 금융 대붕괴를 능가하는 경제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지금의 세상이란 지난 250년(특히 지난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폭주에 폭주를 거듭해왔기 때문에, 그 탄력에 관성적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거듭해온 폭주의 속도가 높을수록, 브레이크 능력이 떨어질수록 참사의 범위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처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몰락처럼, 중국과 인도도 이런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선진국들이 누려온 파티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인류 전체가 종말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지만,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환경에 놓인 저소득층이 대참사의 주된 피해자가 될 것은 분명하다.



소위 비대칭적 종말이라고 하는 것이 이를 말한다. 한국처럼 빠른 성장에 매몰돼 사회적 안전망이 형편없는 나라일수록 비대칭적 종말의 범위는 커질 수밖에 없다. 폭주해온 속도가 워낙 높아서 어떤 브레이크도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주리조트 붕괴사고와 세월호 참사 및 빈발하는 싱크홀, 메르스 대란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변희재가 배후에 있다는 기사도 있었지만, 세월호 유족과 시민들이 단식을 벌이고 있는 장소에서 짐승보다 못한 짓을 벌였던 소위 일베충이라 하는 자들도 이런 비대칭적 종말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들은 지금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는지도 모르고, 똥 같은 놈들의 광기어린 정치놀음에 쓰레기처럼 이용되고 있다.



어차피 인생을 일회용 물품처럼 살아가는 자들이니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함께 갈 수 없는 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똥 같은 놈의 궤변에 놀아나는 똥파리와 일본모기 같은 더러운 벌레들까지 신경써줄 여력이 없다. 때로는 비대칭적 종말의 힘을 빌어서라도 이 세상에서 쓸어내야 할 것들이 있다.



세상이 종말에 가까워 오면, 개개인이 의식하지 못해도 사회 곳곳에서 병리적 현상들이 속출하기 마련이다. 대형 사고는 직접적인 피해이기 때문에 눈에 확 띠지만, 소리 소문없이 퍼져가는 병리적 현상들은 막상 자신의 삶을 좀먹을 때가 돼서야 깨달을 수 있다. 국가를 이루는 체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체제도 그 생명이 다할 때까지 돌아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상대하는 제1야당이 자체의 문제로 지랄 염병을 떠는 것도 종말적 병리현상들이 정치의 영역까지 퍼졌음을 보여준다. 언론들은 진실은커녕 사실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방송은 종말의 현상들을 오락으로 포장해내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지식인을 대체하고, 성직자들이 정치모리배 행세를 서슴지 않는다.



철학의 죽음은 도덕이나 양심, 정의와 관용의 종말보다 더욱 비참하게 이루어져 부활의 여지도 남아 있지 않다. 세상 곳곳이 사이비들로 넘쳐나고, 달콤한 거짓말이 부패한 진실처럼 행세한다. 2014~15년의 한국이란 지옥이 종말 보다 먼저 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자, 악마의 교본이다. 차라리 비대칭적 종말을 환영하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 스스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지구적 차원의 교정 작업에 미래를 맡길 수밖에 없다. 희망에 대한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그리하여 체념의 극단까지 떨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희망의 단초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천국에 우리 스스로 이를 수 없다면, 지옥을 깨워서라도 천국을 움직이게 할 수밖에 없다. 역의 역이 정이라면, 부정의 변증법도 하나의 방법이다.





똥 같은 자들의 핏빛 광기와 똥파리와 일본모기 같은 벌레들의 행진에 구역질나는 영광이 있으라. 역한 그들의 냄새가 세상의 모든 곳에 퍼져 지옥을 움직이게 만들라. 예수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야 영원한 생명과 지극한 사랑을 이룰 수 있었고, 부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서야 억겁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무한한 자비를 이룰 수 있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개를 펴고, 어둠이 깊어야 새벽이 온다. 아직 더 떨어져야 할 나락이 남았다면, 바닥에 이를 때까지 추락하기를. 그리고 바닥까지 떨어진 이후에는 오직 푸르고 투명한 비상만이 남아 있기를. 부패하고 더럽고 역한 모든 것들은 바닥에 털어버린 채. 소각해야 할 쓰레기들은 지옥에 남겨놓은 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