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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갈 데까지 가 보자는 기득권의 도박



미국과 유럽, 중국과 일본처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선진국과 경제대국들이 아예 대놓고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선진국이라고 해도 특별한 성장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돈을 푸는 것 이외에는 현재의 지위를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싸움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냥 당할 수만은 없는 신흥국들도 이에 맞대응하고 있습니다. 제로섬 게임을 연상시키는 이들의 환율전쟁은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고속열차를 떠올릴 만큼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를 모릴 리 없는 이들의 환율전쟁은 현재의 경제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 국면에 이르렀는지 반증해주고 있습니다. 





경제 불황에 따른 유래 없는 유가하락(경제 불황의 직접증거)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석유수출국기구)는 미국의 세일가스에 대항해 현재의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위험천만한 환율전쟁에 이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킬 에너지전쟁도 사활을 건 치킨 싸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유가 하락이 경제 활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각국 정부에게 환율전쟁을 부추기는 원인이자 결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경제 후발국의 수익원인 각종 원자재 수익률도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무역교역량이 늘어도 환율전쟁 때문에 기업이익이 줄어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내수시장이 크고 견고한 나라라 해도 세계화의 영향으로 외부변수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유가가 떨어지고 원자재 가격도 하락하는 상황에서 중국에서 철수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 그들 모두가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인도 등의 다른 후진국으로 이전하지 않는 것 등은 미약한 미국 경제의 회복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신흥국의 경제성장도 인플레이션을 빼면 제대로 된 성장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작금의 상황을 전 세계적인 구조조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경제 불황의 근본 원인은 부의 불평등이 너무나 커져 소비를 받쳐줄 중하층(전체 인구의 90%)의 지갑이 얇아진 것이 결정적입니다.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라하고 출산율이 저하하고, 평균수명의 증가로 노령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더해져 세계 경제는 끝을 모르는 나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각국 정부는 공격적으로 경기확장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돈을 풀어 새로운 신용을 창출한다고 해도 경제의 미래가 좋지 않아 천문학적인 빚만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최종 대부자인 국가도 부도가 날 수 있음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여러 번 증명됐습니다. 빚이란 원금이 정산되지 않는 한 후대로 이어지고 눈덩이처럼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반전의 계기도 나올 수 없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이어져온 지금의 체제를 완전히 뒤엎지 않으면, 세계 경제는 파국의 지점까지 달려갈 것 같습니다. 각국 정부는 이미 총알에 올라탄 형국입니다. 세계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공동의 합의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입니다.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시기를 놓쳐버렸지만, 그 지구온난화가 천문학적인 부실을 털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사실 자본주의란 늘 그런 식으로 위기를 돌파해 왔습니다. 각국 정부는 관성에 젖어 파국의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부실을 터는 방식으로 최고의 것이란 중하위층을 생존의 위기로 내모는 대불황으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수십억 명을 위기로 내모는 인위적인 빚잔치를 할 수 없으니 경제상황에 떠넘기는 것이지요.  





거대 기업과 슈퍼리치, 거대 자본에 고율의 누진세를 물려 전 세계적으로 소비시장을 늘리기 위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면 지금의 불황을 당장이라도 끝낼 수 있음에도 특권화된 기득권은 어떤 불황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파국을 피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경제를 살리기 위한 부수적 피해(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될 비대칭적 종말)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지요.



다음 정권에 치명적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경기확장 정책을 펼치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을 파기하지 않은 채 담뱃값처럼 간접세 형태를 늘리는 것을 넘어, 이제는 정규직의 과보호(최경환의 중규직 발언 논란)를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임기 동안 파국의 시기를 미뤄놓고 보자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곡소리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힘들어하는 현장의 소리를 지난 30년 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내몬 IMF 환란과 2008년의 경제위기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채와 불평등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한류와 창조경제도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는 모두 다 허상에 불과합니다. 초국적 기업집단 삼성그룹에서 4개의 기업을 팔았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되새겨 보십시오. 이제는 돈이 안 되는 계열사를 끌고 갈 의지도 없고, 미래의 반전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겠다는 뜻입니다. 무서울 정도의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처럼 특권화된 기득권층이 문제 해결의 방법을 갈 데까지 가보자로 정했다면, 이제는 혁명적 저항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폭력적 혁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와 언론(특히 방송)이 타락한 현실에서 서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혁명의 역사를 봐도 미국혁명(이들은 혁명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이외에는 성공한 혁명이 없습니다.



결국 환상의 유토피아를 상정한 마르크스적 폭력혁명이란 불가능한 옵션입니다. 촘촘히 짜진 전 지구적 체제가 이를 원천방지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체제를 뒤엎을 수 없다 해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특권화된 기득권이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을 바꿀 수 있을 정도까지는. 



다행히 현재의 체제는 최대의 강점이 최대의 약점이라 이것이 가능합니다(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