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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규직 압박이 비정규직의 행복이라는 대통령의 희한한 논리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입사 초반에는 호봉제, 중반에는 성과급제, 후반에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복합 임금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는 또한 ‘성과가 낮은 정규직에게는 직업 훈련 등을 거쳐 구제의 기회를 주되, 성과 개선이 없으면 해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만들기로 했다고 합니다. 





정부의 관계 부처에 따르면 ‘첫 입사 10년 차까지는 호봉제를, 관리직급인 11~20년 차부터는 직무·성과급제를, 정년퇴직을 앞둔 21년 차부터는 임금피크제를 각각 적용하는 방식’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 제도를 공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정부의 '2015년 경제 정책 방향'은 ‘복합 임금제’를 통해 ‘노동시장의 임금 경직성 완화와 해고 요건 완화’를 목표로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복합 임금제’와 '해고 요건 완화'는 정부가 직접 나서 정규직을 지금보다 더욱 쥐어짜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열악하기 그지없는 비정규직 해법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공기업을 대상으로 이런 신자유주의적 관치를 하겠다면 그것까지 말릴 방법은 없습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힘에 부치자 이번에는 공기업을 민간기업과 똑같이 효율성과 생산성에 목메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니 공무원들도 이제는 ‘미생의 장그래’처럼 지옥을 경험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공기업에 고용된 비정규직들이 월급이 올라 활짝 웃는 일이 있을지 지켜보는 것은 할 수 있을 듯싶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정부의 권한이니 가타부타 얘기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얘기한다고 들을 정부도 아니고,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똘똘 뭉쳐서 정부에 대항하니 그들의 전투력을 믿을 밖에요. 공무원 연금 개혁은 찬성하는 필자이지만 공기업을 민간기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도록 만드는 것에는 반대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저항에 응원의 박수는 보내드립니다.





하지만 정부가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절대다수가 국민인 직원들의 임금과 해고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불통의 통치를 견지하는 현 정부는 유별날 정도로 대기업과의 소통에는 놀라운 능력과 서비스 정신을 보여줍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 대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고, 보다 쉬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주겠다니 대기업의 오너들과 경영진 및 대주주들은 덩실덩실 춤추며 만세를 부를 판입니다. 실효세율이 형편 없어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쌓아둘 수 있었던 대기업에게 추가적인 사내유보금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모양입니다. 



정부의 도움으로 인건비가 줄어드는 대기업이 신규로 직원을 더 뽑을 것이란 보장도 없고, 비정규직의 월급과 복지가 향상된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대기업의 편의만 신경쓰는 현 정부의 행태는 부와 기회를 상위 1%에게 몰아주고 세습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신자유주의의 정수를 보는 듯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세금을 늘릴 수 있는 누진적 조세정의와 갑을정 간의 공정거래, 비정규직에 대한 복지확대 등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정부는 이런 비정상적 방법을 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규직의 해고가 쉬워지면 늘어가는 것은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직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미래세대의 소득을 낮추고, 노인에게 주어질 연금의 치명적 부실로 이어집니다. 



규제가 암덩어리라며 무지막지한 외과수술을 단행하는 것도 모자라, 정규직을 희생시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친기업적 성향을 넘어, 극단의 이분법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적용하는 분열과 반목의 통치에 다름 아닙니다. 설사 정규직에서 뺏은 것을 비정규직에 넘겨준다고 해도 하위 90%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부의 재분배라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상위 10%와의 불평등은 전혀 개선되지 않습니다.         

  

국민을 상위 10%와 하위 90%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하위 90%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놓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정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직종에 따라, 기업에 따라, 직원에 따라, 환경에 따라, 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직원의 임금과 인사 제도를 정부가 개입해 무조건 오너와 경영진 및 대주주에게 유리하도록 손보겠다는 발상은 전체주의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비정상의 극치입니다. 





공산주의보다 무서운 것이 국가 전체를 관치하는 전체주의라는 것은 히틀러와 스탈린이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일방적 관치가 끝을 모르고 넓혀지는 것이 전체주의로 가는 길이며, 일본 군국주의의 판박이에 다름 아니었던 박정희 시대의 유신독재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대체 박근혜 정부는 국민에게 모든 권력이 있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정희의 통치방식을 21세기 버전으로 바꾸어 극단적 관치로 밀어붙이면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압축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 시대착오적 발상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진 자본주의 세상에서 임금과 해고의 문제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절대적 요인입니다. 스스로 체제의 바깥에서 살겠다며 모든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임금과 해고의 문제는 정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닙니다. 전체주의에 준하는 독재도 국민의 동의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듯이, 국민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정부가 독단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연관돼 있는 임금과 해고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현재의 노사와 미래세대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민주공화국의 정부에 의해 일방적이며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의 목표가 경제위기를 핑계로 대한민국을 상위 10%를 넘어 1%의 수중으로 넘겨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하위 90%의 하향평준화가 목표가 아니라면, '복합 임금제'와 '해고 요건의 완화'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합니다. 정부에 의해 신자유주의를 넘어 세습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국민은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