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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루지 매치, 성난 황소가 록키를 만났을 때



영화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영화를 고르라 하면 ‘불의 전차’와 ‘성난 황소’ ‘록키’ ‘밀리언 달러 베이비’ ‘파이터’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밖에도 떠오르는 영화는 많지만 이 다섯 개의 영화는 시나리오부터 음악, 연기와 연출 등까지 영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고루 갖추었습니다.





이중에서 ‘성난 황소’와 ‘록키’는 권투를 다룬 영화로 허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영화에 속할 수 있는 명작입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성난 황소’는 ‘택시 드라이버’ ‘대부2’ ‘좋은 친구들’ ‘미션’ '디어 헌터' ‘더 팬’ '캐이프 피어' 등과 함께 그의 명연기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메소드 연기(배우들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배역에 완전히 몰입시켜 실물과 같이 연기하는 기법)의 전설처럼 회자되는 ‘성난 황소’에서의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그가 왜 20세기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인지를 말해줍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성난 황소’에서의 그는 권투선수와 한물간 코미디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을 보여준 ‘록키’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등을 수상했고, 스텔론은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시나리오를 직접 썼다)에 노미네이트 된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콧대 높은 아카데미가 포르노 배우를 했던 스텔론에게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의 영광까지는 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다 해도 의료사고 때문에 안면신경마비와 언어장애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스텔론이 포르노 배우를 하면서까지 허리우드를 떠나지 않았던 집념이 아메리칸 드림으로 이어진 것은 영화만큼 극적이었습니다. 영화 ‘록키’와 배우 스텔론의 가치는 여기까지가 최상이었습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는 속담의 주인공이 된 스텔론은 신자유주의적 근육질 외교를 밀어붙인 레이건 정부의 유혹과 압력에 넘어가 ‘람보’와 ‘록키’ 시리즈로 부와 인기를 얻었지만, 반미정서의 핵심에 자리하는 액션스타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릅니다.





70~90년대 허리우드를 지배했지만,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노장이 ‘그루지 매치’에서 만났습니다. 영화적으로 볼 때 ‘그루지 매치’는 최악의 권투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적 가치(가족을 앞세운 전체주의적 자본주의)를 전파하는 역할에 충실한 ‘그루지 매치’는 허리우드의 소재가 얼마나 빈약해졌는지 보여줍니다.





늙은 ‘록키’에 ‘성난 황소’의 라모타(복싱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슈가레이 로빈슨의 라이벌)를 접목했지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 이후 추락을 거듭한 로버트 드 니로를 보는 것은 총천연색 슬픔이자, 흐르는 세월의 안타까움이었고, 과거의 명성을 갉아먹는 연민이었습니다.





다만 부러운 것은 퇴물이 되가는 노장들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가 어떻게든 만들어지고, 흥행과 상관없이 전 세계로 보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허리우드는 탐욕의 유일제국으로 복귀 중인 미국의 핵심 자원이었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이런 허술한 영화도 전 세계에 팔아먹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복서였던 로이 존스 주니어가 해설자로 등장하는 ‘그루지 매치’를 끝까지 보는 동안 저는 ‘그로기 상태’가 됐습니다. 사상 초유의 고령사회의 도래에 맞춰 한물 간 노장의 팔아먹는 것도 좋지만, 이런 영화를 통해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허리우드의 몸부림도 보기 좋지는 않았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 정말 믿고 보는 몇 안 되는 배우였는데 세월 앞에는 장사가 따로 없습니다. 어쩌다 보게 된 ‘그루지 매치’.. 위대한 배우의 몰락을 보여준 씁쓸하고 가슴 아픈 영화였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