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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공동체

지적공동체를 향한 첫 걸음, 그 첫 번째 글

필자는 두 가지 의미에서 푸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하위 90%의 부를 상위 1%에게 이전(거꾸로 된 재분배)하는 정치경제적 과정인 신자유주의 통치술은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푸코는 이것을 절감했던 것 같다.



많은 학자들은 모든 권위를 해체하던 푸코가, 해체작업이 뛰어날수록 자신이 지적 권위자로 자리 매김되는 모순을 극복할 수 없어 오랫동안 침묵했다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푸코는 모든 권위를 해체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권력의 구조와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최후의 권력을 대면할 수 있었고,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침묵했던 것이다.


필자가 보는 푸코의 침묵은 방향의 급전환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삶에 대해ㅡ그것이 뭐라고 불리건 간에ㅡ인류의 해방에 대해, 진정한 구원에 대해 얘기하고자 (프랑스 특유의 지적이고 언어적인 유희를 벗어내기 위해) 이루어진 공백이란 생각한다. 필자는 여기에 갇혀 있고, 이것을 정리할 수 있어야 지적공동체의 첫 발을 뗄 수 있다.


나머지는,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성의 역사》시리즈에서 푸코가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맞서려면 각각의 개인이 저항의 지평선을 넓히는데 참여한다는 의미에서의 자기 배려와 자아 성찰 및 해방이다. 모든 개인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때, 그래서 자신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할 수 있을 때, 인간은 해방에 이르며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푸코의 삶정치).



푸코의 성찰처럼, 각각의 개인이 칸트(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탐구한 뒤, 역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고, 공존의 세상을 위한 방법까지 사유와 실천의 영역을 넓혔다)와 니체(대략적으로 말하면 칸트 류의 성찰에 이르러 인간으로서 최고에 이른 자가 초인이며, 그는 그 자체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며 정의로운 세상의 창조자다)가 혼합된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면 극소수가 독점하는 권력과 승자의 역사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발적 노예가 되지 않은 한 진정한 자유인을 속박할 수 있는 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하위 90%가 소비를 줄이면 상위 1%도 무너지듯이. 마르크스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도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모든 자유인과 투쟁할 수 있는 권력과 승자란 존재할 수 없으니, 푸코는 체제를 뒤집는 혁명(맹자가 오래 전에 천명했던)보다 어떤 체제도 무력하게 만드는 개인의 해방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그렇게 폭력이 없는 혁명을 이루려했다. 그가 루소나 마르크스보다 칸트와 니체에서 희망을 본 것도 이 때문이다(공자와 맹자를 공부한 다음에 칸트와 니체를 보면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칸트에서는 인사상을, 니체에서 예사상을 볼 수 있다. 묵자는 홉스를 닮았다. 그는 강력한 주권을 가진 국가를 상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근대적 인류, 즉 시민(추상화된 개념적 존재인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와 대비되는 존재로써)은 침해불가능하고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지닌 평등한 존재며, 국가란 이것을 충족시키는 존재라는 것이 자유주의의 본질인데, 이것이 말의 성찬을 넘어 근대 이후의 현실에서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유재산이 보장될 때 자유주의의 실현이 가능한데(그렇다고 무한대의 재산축적을 가능하게 만든 로크까지는 가지 마시라), 마르크스가 온갖 저작들에서 밝힌 것처럼 자본주의의 출현 이후로는 무한대의 자본축적이 가능한 사적독점 때문에, 폴라니가 여러 저작들에서 밝힌 것처럼 자기조정 시장이란 허구의 아이디어가 초래하고 있는 종말 때문에, 자유주의가 꿈꾸었던 민주주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나마 근대적 시민의 탄생과 함께 했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된 사회주의와 짝을 이루었던 시절에만 자유주의의 이상을 상당한 수준까지 실현할 수 있었다. 단군조선의 홍익인간과 동학의 인내천의 교집합과 너무나 닮은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적 성향을 지닌)에서만 시민적 덕목인 자유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었다


특히 좌우 양쪽의 버전이 있으며, 시대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자유주의가 하위 90%의 부와 공공의 영역으로 나두었던 국가의 부를 상위 1%라는 지배엘리트(이들은 이익의 독점이라는 공통의 이해를 공유하기 때문에 계급적 특성을 띤다)에 이전하는 반동의 과정(상위 1%가 주도한 역계급투쟁)이라는 점에서, 부의 재분배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제도들을 되살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맞서기 위한 푸코의 성찰은 대단히 중요하며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처럼 추상적 관념에 머물렀던 시민의 재구성은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논의만 무성했지 제대로 구현되지도 못했던 시장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교합, 생태학적 고려에서 나온 다양한 문화의 병존을 되살려낼 필요성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최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