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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공동체

왜 옐렌 의장은 물가상승률 2%를 강조할까?



동등한 권리들 간에는 힘이 결정한다.


                                                                                      ㅡ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인용




답부터 얘기하면, 케인즈 경제학과 프리드먼 경제학이 나눠지는 경계가 (제로금리를 기준으로 할 때) 물가상승률 2%이기 때문이다. 케인즈 경제학의 목표는 주기적인 공황을 일으키는 시장실패를 정부 개입으로 막아 완전고용을 이루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2% 이상의 기대물가상승률이 필수적이다.





(제로금리를 기준으로 할 때) 물가상승률이 2%대 이하로 떨어지면 경제가 위축되거나 디플레이션으로 접어든다는 증거여서, 정부가 확대재정정책을 펼쳐 경제를 부양한다. 70~90%에 이르는 고율의 소득세와 상속세, 50%대의 법인세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당연시됐다. 1960년대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우리 모두는 케인즈주의자다’라고 말할 정도로, 완전고용과 정부 개입에 의한 2%대 이상의 기대물가상승률은 불변의 원칙으로 인정받았다.



신자유주의(신고전파 경제학과 신보수주의가 만난 우파적 버전을 말함) 40년은 이런 케인즈 경제학을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거둬내는 것이었고, 궁극적으로는 일체의 규제가 없었던, 그래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할 수 있었던 19세기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헌데 여기에 거대한 정치경제적 지적사기가 숨어있다. 레이건과 클린턴, 부시와 오바마로 이어진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부가 걷어낸 것은 고율의 과세, 각종 규제, 보호무역, 정부보조금, 복지와 사회안전망, 두 자리 수의 기준금리가 핵심이었는데, 이것들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은 채 2%대의 물가상승만 들먹인 것이다.



볼커와 그린스펀, 버냉키에 이어 미 연준의장에 임명된 옐런은 전 세계를 말아먹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면죄부를 발행하기 위해 2% 이상의 물가상승이 문제라고 호도한 것이 오늘 이루어진 지적사기의 실체다. 전 세계를 상대로 펼쳐진 미 연준의 지적사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옐런이 신자유주의의 금과옥조인 2% 이하의 물가상승만 강조한 것은 하위 99%의 부를 상위 1%로 이전하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다. 볼커(최악의 연준의장, 볼커쇼크는 신자유주의의 승리를 위한 자해극이었다)에서 그린스펀을 거쳐 버냉키로 이어진 신자유주의적 통화주의를 포기할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하위 90%의 지갑을 털어서 마련한 돈으로 천문학적인 구제금융과 무제한 양적완화를 펼칠 수 있었으면서도, 지갑을 탈탈 털린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2% 물가상승만 강조한 옐런의 발언에서 더욱 분명해졌다(전 세계의 반발 때문에 1~3개월 정도 금리 인상을 미룬 것으로 보이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개인과 사회, 국가를 막론하고 강자를 위한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철저하게 망가져야 세계가 살 수 있음을 오늘의 연준의장 옐런이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과 기축통화국이란 지위를 이용해 탐욕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하위 99%가 존엄한 인간답게 살 수 있으려면, 단기적으로는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개개인의 복리와 후생을 보장하는 파레토 최적을 실현하는 것과 장기적으로는 성장 없이도 풍요를 실현할 수 있는 공존과 상생의 정치경제학을 확립하는 것뿐이다. 이를 위한 각종 제안은 넘쳐날 정도로 많다(헨리 조지, 칼 폴라니, E.F. 슈마허, 이반 일리치,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등).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