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박스에 들어있는 인용문들은 러셀 J. 달톤의 《시민정치론》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달톤은 이 책에서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선진 산업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여론(공중의 가치 변화)과 정당(시민의 정치 참여)의 변화를 다루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이끄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친 시대적 변화의 결과이지만, 글박스에 담은 것은 의무교육의 형태로 제공되는 양질의 공교육과 질높은 대학교육의 영향력입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한 주입식이고, 부모와 조부모의 재산과 직위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는 차별의 현장이자 선행학습의 경연장이며, 대학의 입학생에게 요구하는 살인적인 스펙들의 바다이자, 기업의 몫이었던 신입사원 교육까지 개인과 가족에게 넘겨 신용불량자 양산과 중하위층 파산의 주범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교조와 깨어있는 교사들, 혁신학교, 대안학교들이 이런 교육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공교육의 후진성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땅의 1020세대들은 이대생의 투쟁과 소녀상지킴이,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청소년행동주의, 박근혜 퇴진과 부역자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등에서 보듯이 1020세대들은 교육적 환경의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팟캐스트, SNS, 정당과 정치인과의 직접 교류 등을 통해 무한퇴행 중인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바로잡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정당을 압박하고 정부를 비판합니다.



대한민국은 광복과 함께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번성하기 쉬운)가 강제로 이식됐으며, 이승만부터 박정희를 거쳐 노태우까지 독재정부가 집권을 독식했기 때문에 기성세대들의 민주주의 경험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부마항쟁과 4.19혁명, 5.18민주화항쟁과 6.10민주항쟁 등으로 독재정부의 반민주성에 제동을 걸었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지금의 1020세대들이 태어나고 자란 노무현 참여정부에 들어서야 실질적 민주주의를 필요성을 인식했습니다. 선진 산업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반화된 시민주권에 눈을 뜬 것입니다. 





빠른 반응성, 자아 실현, 자기 노출, 유연한 가치, 진보적 성향, 자유주의적 감수성(개인주의), 이슈지향적 정치참여, 일상에서의 민주주의, 플래시몹과 다양한 방식의 집회와 항의 같은 축제로서의 혁명(재미 이데올로기), 성공지상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탈물질주의,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동물의 권리를 중시하는 생태민주주의, 사회적 평등, 성적 평등, 젠더 정치, 소수자의 인권 보장, 핵에너지 반대 등을 표방하는 이들은 경제성장과 안정된 경제, 국가안보, 질서유지, 범죄와의 전쟁 등을 중시하는 물질주의적 기성세대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60년대 민주주의를 확대했던 '위대한 세대'와는 달리 그 이후의 세대들은 전통의 공동체 참여와 정치결사체 활동의 약화, 지속적인 투표율 하락 등을 이유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퍼트남과 프랭클린, 데이몬 등도 있지만, 더 많고 더 좋은 교육을 받은 1020세대들에게서 '비선거적'인 정치참여 행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게이트'와 촛불집회를 통해 드러나고 있듯이 1020세대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해 왔고, 그 빈도와 적극성에서는 기성세대를 뛰어넘습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행복한 가족'이라는 성공의 보편적 공식에 따라 살기만 해도 고도성장의 일원으로 부를 늘려갈 수 있었던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그런 것들이 모조리 무너진 상황에서 태어난 1020세대들은 그들 스스로 삶을 개척해가야 했습니다. 성공의 보편적 공식이 무너졌으니 각자의 선택과 행위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미래가 불투명하다 해도 물질적 풍요를 일정 수준 이상 누리고 있는 1020세대들은, 장시간노동과 가족 부양을 위한 자발적 복종, 자아 실현의 포기 등을 물질적 이득과 바꾸었던 기성세대보다, 삶의 관습적 가치들을 포기(N포세대)하더라도 자아 실현과 행복 추구, 적극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정치 참여를 선택한 것입니다. 시대가 달라졌듯이 세대도 달라졌습니다. 



필자가 '시민정치론'을 접하기 전까지는,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세월호유족과 함께 416세대들을 지켜보기 전까지는, 소녀상 지키기와 국정교과서 반대에 나선 청소년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대생의 투쟁과 승리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성주군민과 김포시민의 대정부 투쟁에 감동하기 전까지는,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 목격하기 전까지는 1020세대들의 탈정치화 현상과 민주주의의 축소를 걱정했습니다. 공통점을 찾기 힘들어, 또는 기업의 마케팅전략의 일환으로 정의된 X세대라 했던 3040세대에 비해서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걱정과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고, 시대에 뒤떨어진 먹물들의 비관적 전망인지 알게 됐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지표와 통계, 연구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생각과 경험의 눈높이를 1020세대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니, 그곳에서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전혀 다른 증거와 현상들이 넘칠만큼 많았습니다. 빛과 어둠 중에서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민주주의는 위기일 수도 있고, 기성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늘 아래 멈춰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이런 상반된 현상을 목도한 학자와 세대들은 각자의 증거와 목소리를 높이겠지만, 최소한 필자에 한해서는 희망의 일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386세대인 필자는 상상도 못했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시민주권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이재용 게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배엘리트들과 정당정치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지만, 이대생의 투쟁과 촛불집회 등은 민주주의의 부활을 말합니다. 





어느 세대나 경제적 안정은 무시할 수 없는 중대한 가치이지만,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경제성장에 목매지 않는 시민주권 행동주의자들의 등장은 반갑기만 합니다. 현재의 이념분포에 따르면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가 많다고 해도, 매년 진보적 성향이 강한 몇십 만 명의 청소년들이 유권자로 진입하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구시대의 악습과 폐해들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진보적이지만 이념의 포로는 아니며, 자유주의적(개인주의)이어서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젊은 유권자의 증가는 무한경쟁의 물질주의에 매몰된 대한민국의 천민자본주의를 가치 지향의 탈물질적인 직접민주주의로 탈바꿈시킬 것입니다. 



우리의 공교육이 모든 과목에서 서열을 매기고 차별을 조장하고 개성을 죽이고 기업의 부속품을 배출하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지옥에서 벗어나 각자의 개성과 자질을 찾아내 다양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서구의 교육(대표적인 것이 핀란드)처럼 변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헬조선과 정반대에 위치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글박스는 창의적 교육이 시행되고 있는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심층적으로 풀어낸 달톤의 《시민정치론》에서 발췌한 것이니, 1020세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육은 학습하는 내용으로 인해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 서구의 교육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참여, 자기표현, 지적인 이해와 같은 가치들, 그리고 다른 탈물질적 목표들을 강조한다. 현대적 대학 교육의 자유주의적 지향은 사회적 관점들의 확장을 장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끝으로 교육의 효과는 세대 효과와 중첩된다. 젊은이들이 나이 든 세대보다 교육을 더 잘 받았다젊고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사람들 사이에 탈물질적 가치들이 집중된다는 점은 이러한 경향에 추가적인 중요성을 부여한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탈물질주의자의 퍼센티지가 증가할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좀더 젊고 더 탈물질적 세대들이 나이 든 물질주의자 세대들을 교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총체적인 교육수준이 계속 증대되면 탈물질적 가치들에 대한 지지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이 점은 탈물질주의자들이 물질주의자들도보다 정치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또한 탈물질주의 정치적 영향력이 그들의 숫자가 의미하는 것 이상으로 클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중요하다. 실제로 미래의 엘리트 집단ㅡ대학교육을 받은 젊은이들ㅡ사이에서 탈물질적 가치들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개인들이 성공적으로 경제, 사회, 정치적 지도자의 위치에 진입하면 변화하는 가치들의 효과는 당연히 강화될 것이다.



1999년의 유럽가치서베이는 물질주의자들이 좋은 임금수준과 일의 안전성을 직업에서 중요한 성격적 요소로 꼽은 반면에 탈물질주의자들은 창의력 사용의 기회를 얻는 것, 유용한 직업을 갖는 것, 편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과 같은 목표들을 꼽았다고 알려주었다. 많은 비즈니스 분석가들이 직업윤리의 쇠퇴를 한탄하지만 사실 직업윤리가 새로운 목표세트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탈물질적 신조에 따르면 개인은 자신의 지위에 부여된 권위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권위를 확인해야 한다. 오늘날의 부모들 특히 탈물질주의적인 보모들은 자식을 교육할 때 훨씬 더 독립성을 강조한다. 사회적 삶과 정치적 삶의 여러 측면들에서 공중의 행태는 점점 더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늘어나는 독립심은 소비자들 사이에 브랜드 이름에 대한 충선심의 감소와 투표자들 사이에 정당에 대한 충성심의 쇠퇴 현상으로 반영되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은 더 큰 자유와 개별성에 대한 요구를 반영한다. 이것은 패션, 소비자 취향, 사회적 행태, 대인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가치변화의 과정은 종교적 가치와 성적 관습을 포함하고 있다. 물질주의자들은 경제적 안전에 대한 관심에 덧붙여 혼외정사, 낙태, 동성애와 같은 성 관련 이슈들에 대해 구속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탈물질주의자들은 기득권 정치가 종종 간과했던 새로운 정치적 이슈 세트ㅡ환경의 질, 반핵 에너지, 젠더 평등, 제한된 소지자중심주의ㅡ를 옹호한다. 



위싱턴에서 열리는 지구온난화, 원전의 안전, 젠더 평등에 관한 토론들은 유럽 국가들의 수도에서 열리는 것들과 밀접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슈들의 주창자들은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교육을 잘 받았으면 탈물질주의자다. 가치변화는 정치적 참여에도 영향을 미친다. 탈물질적 가치들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에 직접 참여하도록 자극한다. 그 장소가 학교든, 일터든, 정치과정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탈물질주의들은 물질주의자들보다 정치에 더 관심이 있으며, 그러한 관심을 정치적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더 크다.  



일부 국가에서 탈물질주의자들의 투표 참가율은 종종 낮게 나타났다. 한 가지 이유는 기성 정당들이 탈물질적 이슈들을 포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탈물질주의자들은 선거와 대부분의 정당들처럼 공식적인 위계적 절차와 조직들에 회의적이다. 그 대신 탈물질적 가치들은 시민의 솔선, 항의, 그리고 다른 형태의 직접행동에 대한 참여를 자극한다…이러한 비당파적 참여기회들은 탈물질주의자들에게 정치에 그들의 가치 정향과 들어맞는 좀더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한다. 대부분의 탈물질주의자들은 좀더 요구수준이 높은 형태의 정치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도 갖추고 있다.



물질적 가치들의 영속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되지만, 공중의 가치들이 변하고 있다…전통적인 물질적 패턴의 영속성을 보여주는 거의 모든 사례의 경우에도 탈물질적 가치를 반영하는 반대 사례가 나타난다. 거의 모든 시민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지역적 관청을 상대로 로비하는 가운데도 다른 쪽에서는 성장이 녹지의 상실 또는 삶의 질 악화를 의미한다고 걱정을 한다. 가치의 다양성은 시민정치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정치토론은 단순한 합의적 목표들에 도달하는 수단뿐만 아니라 목표를 정의하는 일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 가치변화의 이슈들이 바뀌고 있다. 환경보호, 개인의 자유, 사회적 평등, 참여, 삶의 질에 대한 관심들이 경제와 안보 이슈들로 채워진 전통적인 정치 아젠다에 추가되었다…탈물질주의자들은 대의민주주의의 구조화된 선거정치를 덜 포응할 가능성이 있다. 대신 그들은 직접참여와 새로운 직접민주주의 형태들의 주창자다. 이는 다양한 공익집단들을 포함하고 있는 적극적인 시민사회에 추가로 더해지는 역할이다.   




#새누리가박근혜다
#박근혜하야하라

#바른정당도박근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7.01.15 01:11 신고

    학생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적극적으로 응원합니다~
    당연히 표현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엄연한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시민의 목소리이고 인격체입니다~

    • 늙은도령 2017.01.15 06:43 신고

      지금의 청소년들은 예전의 청소년과 다릅니다.
      그것 때문에라도 선거연령은 낮춰야 하며, 자신을 대표하는 시민으로서 대접해줘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고령화시대의 보수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2. jeremy 2017.01.15 18:38

    탈물질화에 대한 가치가 그 중심인 것 같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삶의 질이 보장된다는 조건이 필연적으로 제기될 듯 싶습니다. 현재를 사는 젊은 세대들이 가치관과 사회 또는 기성세대가 주입했던 성공의 잣대가 서로 급격하게 충돌하면서 해결점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의 대화에서, 반기문의 말처럼, N포세대라 불리우는 젊은 세대에게 닥쳐온 문제들이 그저 '노오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단정짓는다면 끝없는 평행선을 달릴 것입니다. 따라서 기성세대는 이러한 세대간 단절을 해결해주고 세대간 화합을 이뤄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젊은이들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줄 때, 건강한 시민의식들은 더욱 더 꽃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성세대의 현재 누리고 있는 몫을 미래세대인 젊은이들에게 일정부분 나눠주고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7.01.15 19:52 신고

      노오오력을 강조하는 것은 기성세대, 특히 성공한 자들의 주장입니다.
      시대와 상황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옛날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지요.
      지금의 청춘은 노오오력을 안해서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 노오오력을 너무 많이 해도 다음이 없어서 힘든 것이지요.
      이것 때문에 청춘은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탈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삶의 행로를 바꾼 것입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행복한 삶이라도 꾸며가겠다는 것입니다.
      소비를 최소화하되, 비경제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정치를 택한 것이지요.
      그들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7.01.16 08:38 신고

    무엇보다도 기성정치인의 장에 젊은 세대들이 들어 가야 합니다
    20대 30대 국회의원이 나와야 하고 전문 위원으로의 참여도 필요합니다
    다음 국회에는 반드시 그랬으면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1.16 14:51 신고

      네, 그들은 과소대표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박근혜가 자신의 충견인 이정현의 당대표 당선을 축하한다며 청와대에서 벌인 만찬의 메뉴를 보면, 대한민국을 박정희와 자신 소유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박근혜의 성골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바닷가제와 훈제연어, 캐비어 샐러드, 송로버섯, 샥스핀 찜, 한우 갈비 등의 초호화 코스요리에 냉면을 후식으로 제공한 이날의 만찬에서 기업이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을 서민에게 전가한 한전의 누진세 폭탄 문제도 언급했다니, 그 이중적 행태에서 성골의식에 사로잡힌 박근혜의 본질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글을 쓰는 것보다 유시민이 썰전에서 까발린 청와대 성골들의 민낯에 대한 글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필자의 건강을 챙기는데 나을 것 같다. 유시민의 말에 약간의 경험을 더한 이 글에서, 입만 열면 앵무새처럼 (상위 5%에게만 돌아가는) 국익과 (자신이 퇴임한 이후에 정치적 방패막이로 동원할 수 있는 노예들을 의미하는) 국민만 반복하는 박근혜와 청와대에 포진한 성골의 본질을 가발렸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3년 8개월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변함없는 지지를 표함으로써 대한민국과 미래세대를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분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지옥이 이승에만 있지 않고 저승에도 있다는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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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데는 유시민을 능가할 사람이 없는 듯하다. 까도까도 계속해서 비리들이 분출하는 양파수석 우병우 게이트의 본질은,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과 함께 소위 성골을 자처하는 자들의 민낯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추문의 경연장이다. 유시민과 전원책이 말했듯이 소위 성골이라 하는 사람들은 혼맥(다른 나라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학맥과 지연 등이 더해져 '이너써클'을 형성한다. 





보다 세분하면,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와 이병철의 아들인 이건희처럼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직계혈족만 골로 분류한다. 이들과 결혼한 사람들이 진골로 분류된다. 정치, 경제, 언론, 사법 등에 퍼져있는 이들은 재벌들의 순환출자보다 복잡하게 얽힌 혼맥을 기반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한다. 사드 배치 결정과 대우조선해양 4조 지원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서별관회의처럼, 진골이나 환관들이 처리할 수 없는 중차대한 사안들을 조정하고 결정한다



자신을 성골 중의 성골로 인식하는 박근혜가 진골에 해당하는 우병우를 단칼에 내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기춘에 이어 박근혜 정부의 부통령 소리를 들었던 우병우는 이너써클에 진입한 성골스런 진골이어서 쉽게 자를 수 없다. 그가 알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최고급 비밀들도 고려해야 한다. 재벌들이 퇴직한 고위임원들을 고문이나 재직시 월급의 80% 정도를 지급하며 최대 5~7년까지 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 부통령 소리를 들었던 우병우라면 두말하면 잔소리다.



세계를 지배하는 0.1%의 슈퍼클래스들도 거의 대부분 성골에서 나온다. 상위 1%에게 하위 99%의 부를 이전하는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초토화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 세습자본주의라는 '디지털 봉건시대'로의 회귀가 현실이 됐다. 성골과 일해본 경험이 있는 필자가 우병우 게이트에 관해 한 편의 글도 쓰지 않은 것은 썰전에서 다룰 때까지 기다린 것도 있지만, 아무리 떠들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성골과 진골들의 세상을 전복하는데 성공했던 프랑스대혁명이 더욱 막강해진 왕정복고로 귀결된 것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미국혁명을 제외한 거의 모든 혁명들이 실패로 끝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성골의 힘이 그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며, 그들에게 충성하는 진골들이 환관을 자처하거나 체제의 간수들(전체 인구의 5% 정도)을 동원해 절대다수의 평민들을 짓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의 왕족과 귀족을 뜻하는 성골과 진골의 핵심은 세습에 있다. 혼맥이 제일 중요한 것도 세습 때문이며, 세상이 자본주의로 접어든 이후에는 유산되는 자본의 양이 성골과 진골을 평민과 구별하는 절대조건으로 자리했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세습자본주의의 등장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전 세계 차원의 부유세 도입을 주장했던 것도 동일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공교육을 강조한 것은 신분이동 수단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루소, 마르크스, 폴라니, 헨리 조지 같은 수많은 좌파 석학들이 사유재산(소유권)을 신에게 연결해 침해불가능한 절대성을 부여한 로크의 사상을 타파하고, 세습되는 자산과 소득에 고율의 누진세를 부과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이 지난 대선에서 조세정의(부의 재분배)를 그렇게 강조한 것도 성골과 진골에게 권력과 부를 몰아주는 세습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함이었다. 



우병우 게이트는 평생을 성골 중의 성골로 살아온 박근혜의 인식이 초래한 최악의 추문이며, 이땅의 특권층이 공유하고 있는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국무회의에서도,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NSC에서도, 청와대 만찬에서도 심지어는 대국민담화에서도 일방적인 하명과 훈시, 환관들과 청와대 출입기자의 받아쓰기만 있을 뿐, 단 하나의 질문도 허락하지 않는 것도 성골 중의 성골로 살아온 박근혜의 인식에서 나온 블랙코미디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정치적 명제는 박근혜와 환관정치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우병우의 게이트도 그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유시민이 냉소적으로 말했듯이 박근혜 정부는 '7시간의 미스터리'로 대표되는 대통령의 행적조차 알 수 없는 나라이며, 성골과 진골들이 내뱉는 역대급 막말과 망언들로 넘쳐나는 헬조선의 근원이다. 혁명이 필요하다, 그것도 판을 완전히 뒤엎는 전복적인 혁명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7.29 08:17 신고

    끼리 끼리.
    유유상종 하는 집단들입니다

    리셋 시켜야 합니다

  2. 맹그로브 2016.07.29 09:42

    구족을 멸하기 편하겠군요. 한 놈만 잡으면 나머지는 줄줄이 알아서 딸려 올라올 테니..... 구지 나눌려고 애쓸 필요도 없으니.. ㅋㅋ

  3. 참교육 2016.07.29 10:39 신고

    저도 언젠가 조선일보 사주 혼맥도를 보고 너무 놀랐던 일이 있습니다.
    이제 청옹성이 되어 있습니다. 내부자들에게서 그들의 민낯을 봅니다. 서민들은 개돼지에 불과합니다.

    • 늙은도령 2016.07.29 15:37 신고

      장난 아닙니다.
      박정희 집단 가문도를 보면 우리나라 재벌과 언론이 모두 다 연결돼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성골 세계가 그랬습니다.
      어머어마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정말 드럽더군요.

  4. 왜누리안티 2016.07.29 11:53

    이제는 대혁명, 드골식 언론청소 등으로 대한민국을 근본까지 송두리째 엎어야 할 때입니다. 구호는 "Rip and Tear. Until it is Done!"

  5. 안녕하세요 2016.07.30 00:48

    재밌게 읽었는데 썰전 몇화인지 알려주실수 있으신가요?? 저도 보고싶네요

  6. 안녕하세요 2016.07.30 00:53

    감사합니다 !!

  7. -_-; 2016.07.30 20:49

    진경준은 거액을 부정한 방법으로 벌고 그 정도 자리까지 가서 왜 멈추지 않았는가?
    단순히 욕심이 끝이 없다 생각했는데....
    그에 대한 해답이네요.

    "성골이 될수 없었던 진골..."

    • 늙은도령 2016.07.31 00:23 신고

      물질적 탐욕은 끝이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만족할 줄 알아야 인간인데, 짐승으로 전락한 자들이 만족하지 않는 것이지요.
      성골과 진골이 없는 세상이 민주주의인데, 그것이 한 번도 가능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8. 반골 2016.07.31 18:22

    암담한 세상!

  9. 반골 2016.07.31 18:22

    암담한 세상!

  10. ;; 2016.08.02 11:23

    좋은글이네요..혁명만빼면

    • 늙은도령 2016.08.02 23:15 신고

      방법이 없으니까요.
      혁명에 준하는 변화가 없으면 지금보다 더 나빠질 뿐입니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나노공학, 뇌과학 등에 대한 공부가 깊어지면 질수록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집니다.
      인류가 알고리즘과 기계의 지배를 받을 날이 멀지 않으니....

  11. 다카키마사오 2016.08.17 12:39

    신발놈아 성골???
    개***아!
    쪽발이 똥개새끼와 그 후레자식이 성골? 기자이새끼 은근히 뭐하고 자빠졌네 기사접어라 개새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이란 다른 수단에 의해 행해지는 정치"라고 말했다. 전쟁이 정치의 수단 중 하나라고 말한 학자들은 클라우제비츠를 제외하고도 수없이 많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석학 중 한 명인 칼 폴라니조차도 전쟁을 정치의 연장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모든 정치적 탈출구가 사라졌을 때, 전쟁은 가장 파괴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도출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의 변증법적 합의'가 깨진 것은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수십 만 명의 사망자 중 10~20%가 한국인이었다)에 핵폭탄을 투하한 뒤였다. 처칠의 말처럼 '모든 것이 허용되는 전쟁'은 과학자와 기술공학자들에게는 천혜의 환경을 제공한다. 나치와 일제가 자행했던 생체실험(주한미군의 탄저균 실험도 최소한의 생체실험)처럼 윤리와 도덕적 문제 때문에 할 수 없던 실험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공리주의를 최고로 실현한 대량살상무기(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덕분에 각종 과학기술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수억 명의 인간을 살해하고 실험한 대가로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말살할 수 있는 최첨단 살상무기들에 적용된 과학기술의 총화는 더 이상 전쟁이 정치의 연장일 수 없는 최악의 세상을 열었다. 



푸코가 《안전 영토 인구》에서 근대국가의 탄생에 관해 획기적인 관점을 제시했다면, 이를 이어받아 보다 발전시킨 바우만이 《모두스 비벤디》에서 "일반적인 견해와는 반대로, 근대국가가 개발 목표로 내세우면서 끈질지게 추구한 '사회국가'의 핵심이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바로 보호(개인적인 불행에 대한 집단적인 보장)였다"고 말한 것처럼 현대의 정치에서 전쟁은 더 이상 유효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사이버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은 논외로 한다). 



근대국가가 국민의 보호를 위해 '복지 제도와 복지 급여(사회적 임금), 국가 차원의 의료 서비스와 공교육, 주택 공급, 노사 양측의 상호 권리와 책무를 자세히 규정해 피고용인의 복지와 권리를 보호해 주는 공장법' 등을 시행했고, 현대국가에 들어서는 근로기준법, 양질의 일자리 창출, 재취업 및 평생교육, 차별금지법, 소수자 우대 정책 같은 것들이 추가된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시 말해 근대국가의 탄생 시점부터 정치의 목적은 통치자의 통치술에 초점을 맞춘 마키아벨리적 추문정치와 정치의 연장으로서 전쟁을 인정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근거한 죽음의 정치가 아니라, 피통치자(시민, 국민, 다중)의 안전과 보호에 기반하는 행복권을 실현하기 위한 생(삶)의 정치였다.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수없이 많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결단코 정치가 아니다. 



더 나아가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죽음의 또 다른 말인 잉여와 비존재(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비존재, 자신의 뜻에 반하면 국민이 아니라는 박근혜의 비국민 타령이 이에 속한다)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정부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어 잉여와 비존재를 단 한 명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정치다. 최초의 공동체부터 그리스의 폴리스와 단군조선의 홍익인간을 넘어 현대에 이른 모든 정상적인 국가들의 정치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이었다. 



무려 304명의 국민이 희생된 세월호참사를 비롯해, 용산참사, 쌍용차해고노동자들의 자살(사회적 살인), 백남기씨에게 가해진 국가폭력,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메르스대란, 권력과 자본이 저지르고 정치가 외면하는 온갖 종류의 사회적 살인, 치욕저인 위안부협상 등등… 새누리당과 쓰레기들의 지원을 받은 이명박근혜 8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정치란 단 0.0001%의 정당성도 가질 수 없는 비정치였고, 반정치였으며, 죽음과 공포와 절망을 양산하는 최악의 정치였다.






이런 탐욕과 악마의 정치로도 모자랐는지,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언제나 변함없이 권력과 자본에 충성하는 쓰레기들의 광적이고 파시즘적인 지원 하에 모든 국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국민이 아닌 주한미군의 보호를 위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고, 일본인과 그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을 허용하려고 한다. 



헌법 1조에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돼 있음에도 이런 죽음의 정치에 국민은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다는 것까지 더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단 하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헌법(법의 지배)이 보장하는 국민의 힘으로 광기 어린 비정치이자 반정치인 친일수구세력과 분단고착세력의 죽음의 정치를 종지부찍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어떤 타협에 이르던, 쓰레기들이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고 확대재상산하던 정치적 타협의 최종 승인은 국민의 몫이며, 원천무효로 만들 수 있음도 국민의 몫이자 무엇에도 앞서는 절대적 권리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2.29 08:59 신고

    국민의 힘을 보여줄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정말 반드시 보여 주어야 합니다

  2. 반골 2016.02.29 23:19

    "전쟁은 정치의 부산물이다" 이라고 누가 말했는데 잋어버렸네요~
    암튼 이번 선거는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군지 저들에게 똑똑히 알려 줘야합니다!

  3. 좋은밤되시기바래요



자살만 생각하던 필자가 ‘세상을 알고나 죽자’라는 심정으로 출발한 지난 10년 동안의 공부는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로 압축된다. 정말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신자유주의 통치술로 귀결되는 것은 인류의 멸망을 피하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산업화된 대학에 자리를 틀고 앉은 강단의 지식인들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치열하게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확인하고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을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의학이 도와줘 10년 이상을 더 살 수 있다면 몇 개의 지적공동체라도 이루어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작은 예들을 만들고 싶었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수백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무엇인가 미진했던 부분을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비롯한 푸코의 강연 저작들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경제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술이며,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가 강한 국가와 기업에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한국과 일본, 독일의 기업들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최근에 읽은 조하나 보크만의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적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더 신자유주의적 국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박정희의 통치술에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는 것에서 기인함을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조금은 지루했지만,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경영진과 주주들이 통제하는 위계적 기업, 자본주의’를 열렬히 지지한다고 나온다. 필자도 이것에 동의한다. 여기에 무제한의 사유재산과 독재자, 기업의 사적독점을 중심으로 한 정경유착이 더해지면 신자유주의는 완성된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가 최단기간 내에 강제적으로 이식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필자가 공부한 바로는 박정희가 한국적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의 원형을 제공했고, 줄푸세의 박근혜에 이르렀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도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명박근혜가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일 수 있는데 일정 수준의 도움을 준 결과를 초래했다(이는 당시의 사정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통점인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경제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최소화시키거나 말살시킨 형태다. 따라서 노조가 살길이 없고, 민주주의가 극도로 위축되기 때문에, 공교육이 재생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고, 최고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민주주의는 배척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여기에 정치검찰과 국정원, 국토부와 함께 최고의 기득권 이익집단인 교육부가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따라 대학에서 민주주의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장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간 갔고, 이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사회에서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형편없이 낮아졌지만, 그들로부터 간선제를 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채 비리사학을 복귀시켰고, 국공립대에 예산 지원 중단이라는 압력으로 간선제를 밀어붙일 수 있었고, 교수들이 간선제로 뽑은 총장 후보도 청와대의 낙점을 받지 못하면 임명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국공립대들이 하나씩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고, 87민주화항쟁의 최대 성과 증 하나인 총장직선제가 부산대만 남겨놓은 상황에 이르렀다.



부산대마저 총장간선제가 확정되면 권력의 뜻에서 벗어나는 대학이 더 이상 나올 수 없으니, 그 다음에는 교과서의 국정화와 대학의 신자유주의 우경화와 산업 및 상업화(민간대학은 다 이 길로 들어섰다)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교육을 유치원에서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완전히 장악하게 되고, 교육부의 목표는 완전히 이루어진다.





이럴 경우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화석처럼 흔적만 남는 최악의 교육환경이 조성된다. 이 땅의 보수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고 미래세대까지 신자유주의 우파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수우파의 영구집권이 가능해지는 것이고, 미레새대가 지옥으로 가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이런 최악의 과정을 지켜본 부산대 교수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교육부의 일방통행을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이제는 학생의 자살만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도 되지 못해 교수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막막하고 절망적이었으면, 최고의 지성이라고 하는 교수마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겠는가?



정말 대한민국은 곳곳에서 미친 증상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오고 있다. 푸코가 말한 ‘광기의 시대’가 대한민국에서 통째로 재현되고 있다. 정의는 고사하고 윤리와 도덕을 넘어 상식과 지식, 종교와 예술마저도 돈이 되지 않으면 천대받는 세상이 됐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도 되는 이기주의가 극에 달했고, (조)부모의 재산과 사는 지역, 학벌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여긴다.





일베나 서북청년단, 어버이연합처럼, 자유청년연합 등이 초법적인 폭력을 일삼아도 처벌도 되지 않고 수구세력과 극우집단이 비호하고 있어 그들의 초법적 폭력은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국민은 온갖 방식의 조작과 이간질로 반목하고 작은 이익을 두고 극단으로 갈라짐에 따라 사회적 합의로 가는 길이 아예 차단돼 버렸다.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정부 부처들과 기관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일보다는 대통령과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혈안이 됐고, 대통령이 지시한 것만 행함으로써 국민의 요구는 무시하기 일쑤다. 국방부와 국정원은 청와대의 관리를 벗어난 느낌이 들 정도다. 정부는 무능을 넘어 무책임까지 일상화돼 최악의 행정부로 전락했지만, 그마저도 쓸데없는 일만 벌이고 있다.



한국이 미쳤다. 어디를 둘러봐도 뭐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다. 대통령부터 선행학습에 내몰린 유아까지 권력과 성공에 대한 욕망만이 역겨운 냄새를 내며 대한민국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 혼란과 역주행을 견딜 수 없었던 교수가 자신의 목숨을 던져 미친 대한민국에 묵직하고 참담한 경고를 던졌다.





필자는 교수의 유서를 읽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숨이 막혀 읽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나라와 세상, 집단들은 미쳤지만, 그 와중에도 바르게 살려는 분이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필자 주변에는 교수들이 널려 있지만 거의 대부분 적당한 타협에 익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 언론에 한 번도 다루지 않았다는 것에 극도의 절망을 느꼈다.



허구한 날 정부에 유리한 쓰레기 보도들만 양산하고, 선정적인 사건만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종편과 존재이유를 포기한 보도채널이 친정부적 행보만 이어간 이래 지상파3사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모든 언론과 방송이 제 역할을 포기했고 교육은 공공성을 포기했다. 필자는 부산대 사태를 어디에서 접해보지 못했다. 매일같이 여러 신문과 방송을 보면서도.



아래의 유서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묵직하고 먹먹한 돌 하나가 가슴에 자리하고 있는데, 유명을 달리한 교수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같이 미친 일들이 더해지는 바람에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미쳤다, 망하는 길을 향해. 기득권은 특권화를 울부짖는다, 미래세대의 고혈을 짜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드디어 직선제로 선출된 부산대학교 총장이 처음의 약속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최종적으로 총장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부산대학교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일 뿐이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교육부의 방침대로 일종의 간선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서 올려도 시국선언 전력 등을 문제 삼아 여러 국·공립대에서 올린 총장 후보를 총장으로 임용하지 않아 대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란 점이다. 교육부의 방침대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후보를 임용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대학의 자율성은 전혀 없고 대학에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오직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는 민주주의 심각한 훼손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이 대학과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무뎌있다는 점이다. 국정원 사건부터 무뎌있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교묘하게 민주주의는 억압되어 있는데 무뎌져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학에서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는 오직 총장직선제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 된다.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이며 국·공립대를 대표하는 위상을 지닌 부산대학교가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이라도 이런 참당한 상황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대사를 봐도 부산대학교는 그런 역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총장직선제 수호를 위해서 여러 교수들이 농성 등 많은 수고로움을 감당하고 교수총투표를 통해 총장직선제에 대한 뜻이 여러 차례, 갈수록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가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너무 무뎌있다는 방증이다. 대학 내 절대권력을 가진 총장은 일종의 독재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교수회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이 들어갔고, 오늘 12일째이다. 그런데도 휴가를 떠났다 돌아온 총장은 아무 반응이 없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제 방법은 충격요법밖에 없다. 메일을 통해 전체 교수들에게 그 뜻을 전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교수끼리 보는 방법으로 이미 전체교수 투표를 통해 확인한 바 있는 상황에서 별 소용이 없다. 늘 그랬다. 사회 민주화를 위해 시국선언 등을 해도 별 소용이 없다. 나도 그동안 이를 위해 시국선언에 여러 번 참여한 적이 있지만, 개선된 것을 보고 듣지 못했다. 그것보다는 8·90년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방식으로 유인물을 뿌리는 게 보다 오히려 새롭게 관심을 끌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지난 날 민주화 투쟁의 방식이 충격요법으로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근래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 자신 부끄러운 존재이지만. 그래도 그 희생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몫을 담당하겠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 역할을 부산대학교가 담당해야 하며,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야 무뎌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각성이 되고 진정한 대학의 민주화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가 굳건해 질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에쏘 2015.08.18 19:52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뭐라 말을 덧붙여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미쳐간다는 말 밖에는...

    • 늙은도령 2015.08.18 19:59 신고

      정말 광기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극우 수구세력들의 준동이 도를 넘었습니다.

      그나저나 건강하신 것이지요?

  2. 방문객 2015.08.18 20:12

    충격적입니다. 교수 직위와 삶을 포기해서라도 불의에 맞서셨군요.

    • 늙은도령 2015.08.18 21:16 신고

      실제 교육부가 마음에 안 들면 총장 임명 품위를 청와대에 올리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피해본 대학교가 여러 군데입니다.

  3. 참교육 2015.08.18 22:13 신고

    선생님의 글을 통해 학문의 깊이와 인간애 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가지신 분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막가파들이 판을 치는 세상 민주주의를 포기하겠다는 인간 망난이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선생님의 뜻 하신바를 꼭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00:07 신고

      요즘은 정말 어디서부터 움직여야 하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이 극단에 이르렀습니다.
      지구온난화까지 겹치면 정말로 극단의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이 중요한데, 우리는 잘할 수 있을까요?

  4. HowlS 2015.08.19 00:38 신고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02:05 신고

      묻혀 버리면 안 되고, 국공립대 교수들로 고인의 뜻이 전파돼야 합니다.
      교수사회가 그럴 수 있을지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이대로 묻히지 않게 노력해야 합니다.

  5. 진검승부 2015.08.19 11:13 신고

    30년이 필요할 지, 100년이 더 필요할 지....우리세대까지 다 저승에 가면 바뀔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16:56 신고

      정부가 법인세 인상과 부자증세해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외에는 절대 답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전체 인류가 지금보다 몇 배는 잘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풀려있습니다.
      조세정의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제대로 되면 당장 내년부터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6. 백순주 2015.08.19 13:01 신고

    아직 제 깜냥이 선생님 글을 소화할 수 없을 듯 하여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살며시 들춰낸 글에 역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충격'이란 단어는 이제 목숨을 내놓아야만 가능한가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의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면...
    요즘 혼란스럽습니다.
    그동안 보도 듣도 못한 일들을 눈으로는 보는데 머리로는 도망치고 있습니다.
    진정 이 사회를 위해 제가 할 일은 있는 걸까요?

    • 늙은도령 2015.08.19 16:58 신고

      그럼요, 많지요.
      지금 쓰시는 글들도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한국은 제조업을 포기하는 순간 망합니다.
      화학은 한국 최고의 젖줄이고요.
      님은 지금처럼 살아도 충분합니다.

  7. 공수래공수거 2015.08.19 13:51 신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경북대학교도 수개월째 총장을 교육부가 승인을
    하지 얺고 있습니다
    대학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하려는 청와대의
    술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두렵습니다
    유신시대로의 회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17:05 신고

      이런 대학이 많습니다.
      방통대도 총장 임명이 1년 이상 미뤄졌다 정권이 원하는 자가 올랐지요.
      경북대는 아직도 싸우고 있고, 몇몇 대학도 지금 전쟁 중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류층은 유신으로 복귀했습니다.

  8. 행인 2015.08.19 19:57

    자신의 목을 걸고 왕에게 상소를 올리는 조선시대 선비 같은 분이 아직도 있다는 게 상당히 놀랍습이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20:16 신고

      이것이 그냥 묻히면 안 되는데 벌써 언론에서 사라진 느낌입니다.
      이런 분들의 희생은 반드시 기억되고 세상을 바른 방향으로 가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9. Chris 2015.08.20 01:26

    정말 미쳤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저렇게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이 그냥 소비되는 현실이 아프네요.

    • 늙은도령 2015.08.20 01:50 신고

      정치라는 것이 정말 추악해졌습니다.
      기득권을 형성해 지들 이익만 챙기는 최악의 사기로 변질됐으니까요.

  10. 2015.11.18 09:53

    어리버리한 동네 아줌마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생양아치 깡패집단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어떤 것도 통하지않는...

    모든 것이 저들의 권력에 장악되어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가슴은 뜨거워 분노가 들끓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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