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삼위일체’가 주도한 이런 과학의 궤도 이탈은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제시한 패러다임 이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하나의 새로운 과학이론(또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 다른 과학자들이 그것을 실험하고 다른 방식으로 재현해도 부정적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것을 대체할 다른 과학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정상과학의 위치에 들어선다는 정상과학론을 구조화했다. 하나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과학이론이 나오면 똑같은 과정이 과학계 내부에서 진행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 한층 진전된 정상과학이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이렇게 정(기존의 정상과학)-반(반대 또는 대립되는 과학 이론의 등장)-합(과학적 검증을 통해 다시 정립된 새로운 정상이론, 이것이 다시 ‘정’이 되고 변증법적 발전이 지속된다)의 순환이라는 ‘계몽의 변증법적 발전’에 의해 과학혁명은 영원히 지속되는 영구운동으로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하늘에 별이 빛나는 한, 우리가 하늘을 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상 과학의 발전은 멈추지 않고 모든 장애물들을 돌파해나갈 것이다.



과학의 부정적 입증에 철저하게 파고든 칼 포퍼와는 달리 토마스 쿤이 공식화한 계몽의 변증법적 해석에 따라 과학혁명은 영원한 발전을 보장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쿤이 무한대의 발전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언젠가는 과학의 진보도 한계에 이를 것이라 했지만ㅡ이것에 관해서는 포퍼도 마찬가지다ㅡ이는 자신이 정립한 과학혁명의 패러다임 이론과도 모순에 처한다. 마르크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통해 자본주의가 극에 이르면 내부로부터 붕괴해 유토피아(자유의 왕국)에 이른다는 것과 대단히 유사하다. 






물론 이런 방식에 대해 닐 포스트먼은 《테크노폴리》를 통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진술의 조건을 검증 가능성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은 정반대다. 과학적 진술은 거짓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과학적 진술과 구분된다. 과학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진리’를 인식하는 능력이 아니라 거짓을 깨닫는 능력이다”라고 주장하며 칼 포퍼의 이론에 반박을 표하기도 했지만, 세상이 다시 뒤집히는 지금에 와서는 포퍼의 주장이 정확했던 것 같다(장하석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는 과학철학에 접근하기에 대단히 좋은 길을 제시한다). 



어쨌든 과학혁명에 대한 그의 패러다임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같은 모든 분야로 넓혀져, 과학혁명에 대한 맹신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막심 탈레브가 《블랙스완》에서 ‘돈이 되는 모든 것은 전문화된다’고 말한 것처럼, 비전문가에 대해 또는 적대적 공생관계의 과학자들과 대안과학자들에 대해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전문성이라는 높은 장벽을 구축한 과학자들은 그들만의 천국에서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었다(하고 있고, 할 것이다). 이렇게 계몽의 변증법이 탄생시킨 진보의 과정에 심각한 왜곡이 일어나면서 지적 모순을 바로잡을 확률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런 배타적 독점권(파벌을 이루는 모든 학문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한다) 때문에 오류의 가능성은 높아졌고, 부작용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데 쉬워졌으며, 문제의 해결도 같은 부류의 과학자들이 도맡아 처리했다. 또한 과학연구가 대학과 기업으로 넘어감에 따라 반드시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과학자들의 목을 조여 왔다. 투자비용은 계속 늘어나는데 확실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황우석 교수와 만능세포 발견과 취소를 거듭한 일본의 젊은 과학자처럼 완전하지 않는 연구결과를 조작해서 대규모 사기를 벌이는 일들이 다반사로 이루어졌다(한국 교수들의 학위논문을 전수조사 하라, 그러면 진실이 밝혀질지니!). 





이들은 인류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학적 연구의 결과물들이 일정한 부작용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과학자가 책임을 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가치중립적인 면책특권을 이용해 부작용이 속출하는 연구결과물들을 대량생산과 전문서비스의 영역으로 넘겨버렸다. 어떤 것이든 시장 시스템으로 넘어가면 오직 한 가지 목적, 이윤만 추구되기 때문에 부작용들의 확산과 축적은 막을 도리가 없다. 시장이 알아서 다른 것들로 대체할 때까지 악순환은 계속된다.



문제는 막심 탈레브가 《블랙스완》에서 말한 것처럼, 인류는 극도로 세분화되고 고도로 전문화된 연구의 타당성과 윤리적 방법에 대해 사전에 검사할 수 없고, 당연히 연구의 결과물의 장단점과 문제점을 생산단계 이전에 확인할 수 있는 지적검증부대(벡이 말한 대항과학이나 대안과학 또는 대안전문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문제의 결과물이 알려진 것보다 부작용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경우(토지 오염과 사막화, 이에 따른 물 부족 사태와 생태계 파괴, 미세먼지 같은 스모그의 일상화, 지구온난화와 각종 기상이변, 무조건 인재인 파멸적인 원전 폭발과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공포와 스트레스의 폭발적 증가 등)에도 리콜조치가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다. 또한 제품이 나오기까지 여러 단계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과학자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과학은 그림자 영역 속으로 들어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된다. 사전 예방이라는 최상의 방법은 이윤 추구에 굴복해 영원히 취해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정치만이 아니라 전문화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만연되고 제도적으로 고착화된다. 지금 기업의 연구소에서, 또는 기업의 의뢰로 개인연구소에서 어떤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사적 영역을 보호해주는 자유민주주의가 최상의 체제가 되며, 삼권분립이라는 정부 구조가 책임의 분산을 자초하거나 유발하는데 일조했다. 문제가 발생해도 합법적 면죄를 받거나 최소한의 형량과 벌금으로 과학의 부정적 결과는 모든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소비자가 입은 피해는 (거의) 보상받지 못한다.





이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현상은 과학자들이 연구의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위험과 위협을 조직적이고 객관적으로 해석’해 부작용에 대해 투명하게 밝혔는지, 아니면 ‘경시하거나 은폐했는가’로 판정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과학적 결과물을 독점하는 산업자본의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이것조차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 상태다.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를 통해 적나라하게 밝힌 것처럼, 무분별한 과학적 결과물의 산업화와 서비스화에 따라 부와 위험의 불평등이 중첩되는 사회계급이 발생했고, 공통된 계급의식과 연대의 가능성이 없는 개인화된 이들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비대칭적 종말에 무방비상태로 놓여 졌다는 경고가 속출하기에 이르렀다. 



각종 오염과 중독에 대한 기준치는 개별적으로 제시되고, 그 기준치의 근거도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눈으로 보이고 만성질환의 증가를 초래하고 있음에도 숫자의 제시는 개별 기준치들은 인간이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접촉하는 가운데 모든 기준치들의 총합은 개인의 인체에 축적되고 있다. 이는 과학적 부작용을 전체 인류를 상대로 한 자연적인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방식으로 인체가 과학의 실험대상으로 전락했다. 달리 말하면 세상에 의해 공인된 그래서 부정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침묵의 암살자가 등장한 것이다. 거의 모든 과학자들의 종교입문서나 헌법 같은 《과학혁명의 구조》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쿤의 주장이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과학혁명에서는 소득 못지않게 손실도 따르며, 과학자들은 손실에 대해서는 유독 맹목적인 경향을 띤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혁명을 통한 진보에 관한 어떠한 설명도 이 대목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패러다임 사이의 선택을 결정하는 과정과 권위의 성격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전혀 틀린 것은 아닐 공식화, 즉 과학에서 힘은 곧 정의라는 명제를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권위가 그리고 특히 비전문적 권위가 패러다임 논쟁의 조정역을 한다면 그들 논쟁의 결과는 혁명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과학적 혁명은 아닐 것이다. 과학의 존재 의미는 어느 특별한 유형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패러다임 사이에서의 선택의 능력을 부여하는 것에 달려 있다. 과학이 존속되고 성장하기 위해서 그 사회가 얼마나 특별해야 하는가는 과학 활동에 대하여 인류가 보인 이해력의 부족에 의해서 알 수 있다. 기록이 남아 있는 모든 문명의 기술, 예술, 종교, 정치체제, 법률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옛 문명의 이러한 영역들은 우리들의 문명에서만큼이나 발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로부터 전승되었던 문명만이 가장 원초적인 과학 이상의 것을 지니고 있었다. 과학 지식의 대부분은 지난 4세기 동안 유럽이 낳은 산물이었다. 그 밖의 다른 지역, 다른 시대는 과학적 생산 활동이 나타나는 그런 특별한 과학자 사회를 뒷받침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과학은 스스로 과학화됐다. 일체의 도전과 자기성찰을 허용하지 않게 되었고, 위계적 학제와 권위주의적 파벌 속에서 ‘과학에 대한 비판, 진보에 대한 비판, 전문가에 대한 비판, 기술에 대한 비판’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과학의 진보를 믿지 않는 자들과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은 정신병자나 비합리적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칼 포퍼가 말했듯이 “과학적 지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반적으로 진리에 도달한 의미의 지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서로 경쟁하는 가정들과 그 가정들이 실험적 증거를 거쳐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에 관한 정보”에 불과한데도,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진리로 확정이나 된다는 듯이 그들만의 리그에 안에서 과학적 정의는 물론 사회적 정의와도 거리를 넓혔고, 스스로 자본의 노예가 되는 것을 평균 이상의 소득과 승진, 명성으로 대체해버렸다. 





과학은 또한 인간 구원에 대한 최종적 믿음을 종교로부터 빼앗아 갔지만, 살아있는 동안의 인류 해방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한 과학자집단이 문제를 일으키면 다른 과학자집단이, 그러나 둘은 지향하는 결과에서는 동일한 비전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의 방법에 대해 극단적 논쟁에 돌입하지만, 비전문가들은 논장의 밖에서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신자유주의가 번성한 지난 30년 동안 ‘과학은 진리의 도움을 받는 활동에서 진리없이 활동’했으며 ‘내적으로 과학은 더 이상 의사결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는 위험의 전 지구적 확산이었고, 유일한 성과물이란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윤을 쌓아준 것이다. 



과학은 이제 자신을 반성적으로도 비판적으로도 바라보지 않으며, 돌아오는 이익과 승진에의 욕망, 목을 조여 오는 연구자금의 사슬 속에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세속화됐으면서도 진리의 담지자이자 지배자로서의 역할은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책임이 사라진 곳에서 연구방법과 부정적 결과에 대해 윤리적으로 고민할 과학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에서의 파벌은 경제학에서의 파벌보다 더욱 심하다는 사실은 여러 과학자들의 고백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과학도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한 채 현실에서 멀어진 것도 이런 파벌의 부작용에서 나온 것이다. 



게다가 벡의 지적처럼, 과학의 결과물을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과 다양한 종의 멸종 같은 파괴적인 결과들이 속출하는데도 불구하고, 산업적 이해에 사로잡혀 있는 과학은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 원인들을 제거하기 보다는, 그것들을 다시 산업화해 시장을 확대함으로써 이윤 창출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움직였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원인은 애매한 상태로 남겨지게 되고, 각종 실수와 문제의 변형을 시장의 활성화에 내맡기는 웃지 못 할 사태가 빈발하고 있다. 과학실천에서 ‘학습과정은 체계적으로 단축되며 저지’됨에 따라 각종 질환이 여기저기서 속출한다. 



인류는 당뇨병, 암, 심장병, 우울증, 비만, 호르몬 장애, 자살 충동 같은 문명질환의 무방비상태로 놓인다. 이렇게 새롭게 형성된 문명질환들을 치료하기 위해 새로운 산업화의 동력이 창출된다. 결국 “더욱더 많은 영역에서 산업은 문제의 기원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무시한 채 자신이 이차적으로 유발한 문제들에서 이윤을 얻고 있다.” 부작용이 눈에 보이는 것들로 변하면서 과학은 갈수록 무오류성의 신화를 대중으로부터 압박받으면서도, 과학이 도달할 무오류성 때문에 모든 부작용들을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다는 과잉전문화에 매몰되면서 ‘한없이 뒤로 후퇴하는 자가동학적 진보의 신화’를 연일 써나가고 있다. 




1986년에 독일에서 출간된 《위험사회》에서 울리히 벡은 과학적 부작용의 원인을 이차적인 산업화의 동력으로 삼는 과정을 가장 일반적인 화학산업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예는 너무나 많지만 나치가 아우슈비츠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살충제와 미국이 베트남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의 땅으로 만들겠다며 무차별적으로 퍼부은 네이팜탄과 고엽제가 화학산업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가장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화학산업은 유독폐기물을 생산한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해결책’은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는, 폐기물 문제가 지하수 문제로 되는 것이다. 화학 및 여타 산업들은 음료수의 ‘정화장치’를 판매함으로써 이러한 문제에서 이윤을 얻는다. 이러한 정화장치로 거른 물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칠 경우에는 약을 먹으면 되며, 따라서 그 ‘잠재된 부수효과’는 정교한 의료체계를 통해 차단하고 연장된다. 이런 식으로 과잉전문화의 정도에 따라 문재해결과 문제생산의 사슬이 형성되며 이것은 보이지 않는 이차적 결과라는 ‘요정 이야기’를 다시금 완전히 ‘확증한다.’ ‘객관적인 제약들’과 ‘자기 동학’이 발생하는 원형구조는 이처럼 본질적으로 그 협소함, 방법과 이론에 대한 그 이해, 그 경력 사다리 등에서 과잉전문화된 인지적 실천의 모델이다. 극한까지 추진된 분업은 이차적 결과, 그 예측불가능성, 그리고 이 ‘운명’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도록 하는 현실 등의 모든 것을 생산한다. 과잉전문화는 자기확증하는 순환 속에 결과의 운명론을 집중시키는 능동적인 사회적 실천모델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4. 과학비판



궁극적이고 대답 불가능한 질문들을 물음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질문하는 존재로 정립한다. 대답 가능한 질문을 묻는 과학이 철학에 기원을 두는 것은 이 때문인데, 이 기원은 모든 세대를 통해 항상 현존할 원천으로 남아 있다.


                                                               ㅡ 한나 아렌트의 《정치의 약속》에서 인용



이제 도스토예프스키나 프로이트, 디킨슨이나 베버, 트웨인이나 마르크스 가운데 그 누구도 합법적인 지식생산자가 될 수 없다. 단지 재미있어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 뿐, 그들은 과거의 산물일 뿐이다. 진리를 원한다면, 주저없이 과학으로 눈을 돌릴 일이다. 과학만능주의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이것은 테크노폴리 속에 과학만능주의가 생겨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ㅡ 닐 포스트만의 《테코노폴리》에서 인용





부와 기회를 독점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극도의 불평등과 회복불가능한 위험을 인류와 자연에게 떠넘긴 ‘탐욕의 삼위일체’의 성공에는 영원한 성장이라는 진보의 믿음을 보편적인 진리로 만들어준 과학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자본주의의 초기에는 과학과 과학적 결과와 발명이라는 것이 시장의 외부(국가가 예산을 배정하고 대학이나 개인이 연구의 주체가 되는 방식과, 기업과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방식)에 위치하면서, 성장을 견인하고 시장이 정체상태에 빠졌을 때마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외부효과로 인식되었다. 



금속인쇄술의 발명으로 과학지식이 보편화됐고, 화약의 발명으로 전쟁이 빈발해졌으며, 자석의 발명으로 식민지 정복을 위한 항해술의 발전이 가능해졌다. 석탄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내연기관이 나왔고 그것이 산업혁명의 동력이 된 이후에 나온 과학적 결과물들은 시장의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제품화할 수 있는 연구들만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초과학(물리학과 화학이 핵심)의 발전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정도로 과학의 시장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기에 ‘탐욕의 삼위일체’가 기획한 국민(민족)국가 탄생의 원대한 비밀이 숨어 있다. 초기의 상인자본과 산업자본은 지속적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자되는 것에 비해 결과물의 효용성과 경제성이 의심스러운 다양한 분야의 과학(특히 기초과학)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했다. 결국 해결책은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대량생산에 따른 충분한 수요를 만들기 위해 국내의 그물망 같은 인프라와 해외 시장과의 안정적인 연결망 구축을 담당했던 국가가 이를 대신하도록 만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유전자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지적 욕구라는 불치병이 자리하고 있어서 과학적 결과들은 계속해서 나올 터였고, 심지어는 잘 갖춰진 교육제도 밖에서도 과학적 성과는 지속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과학발전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고, 그 결과물이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 제도적으로ㅡ국가가 투자한 비용(세금) 대비 국민의 이익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게 만들어놓은ㅡ시장에 흡수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과학의 눈으로 본 경제성장에 관한 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는 과학의 성과들이 약속하는 진보에 대한 낙관론(경제성장을 통해 파이부터 키워야 한다는 거짓말)과 성장의 결과들이 개인에게 내려가는데 약간의 시차가 있을 뿐이라며, 끝없이 미뤄지기만 하는 ‘낙수효과’를 내세워 연구의 결과를 독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작동하지 않는 낙수효과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전 세계적으로 무분별한 개발을 통해 경제규모를 확장하고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을 독점한 결과, 자산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의 GDP와 맞먹을 정도로 성장한 초국적기업과 거대 금융자본은 과학을 아예 ‘탐욕의 삼위일체’에 종속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제니퍼 위시번의 《대학주식회사》를 보면 정부의 예산(국민의 세금)으로 대학이 담당했던 과학연구의 결과물들이 헐값에 기업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나와 있다. 이는 국민의 세금을 통해 기업의 배를 채워주는 반국민적 행위이며, 특히 누진적 세금으로 회수돼 복지를 통해 국민에게 재분배되지 않으면 사회계층간의 불평등이 심화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방식이야말로 미국이 유일 제국으로 발돋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나라들을 등쳐먹은 방법으로 자신까지 말아먹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금의 대한민국처럼 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기업이 자체 연구소에서 윤리적 문제에서 벗어난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으며, 대학의 연구소와도 독점 계약ㅡ연구원들은 학생 신분이어서 얼마든지 저임금 노동 착취가 가능하다ㅡ을 맺어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사례가 수없이 언급되었다.



바슐라르와 칼 포퍼, 칼 세이건과 제임스 베니거, 스티븐 호킹과 스티븐 와인버거, 리처드 도킨스와 에드워드 윌슨, 니콜라스 카와 장하석, 나심 탈레브와 제레미 다이아몬드 등의 저작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이오니아 자연과학과 자연철학의 진정한 후계자인 근대과학의 출발에, 자연을 인간의 행복을 위해 정복 가능한 대상으로 만든 베이컨과 근대이성을 종교의 영역에 올려놓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내놓은 데카르트가 있었다. 



또한 인간 이성(순수이성)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한정지으려고 했던 칸트의 영향도 지대했다. 칸트는 그의 비판시리즈를 통해 하늘만 바라보던 인간들을 지상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그가 정한 인간 이성의 한계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칼 포퍼에 따르면 칸트는 ‘형이상학에 대한 돼먹지도 않은 소리가 나오는 터전을 없애 버리려는데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칸트가 없애 버린 것은 그 헛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합리적 논증을 사용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됐다고 말했다(사족이지만, 칼 포퍼는 토마스 쿤보다 베르그송과 같은 세대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칸트를 놓고 멋진 설전을 벌였을 것이므로).





즉, 과학적 객관성을 추구하는 인식의 기본 틀은 각종 이론을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없는, 그래서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선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바람에 과학적 지식이 진리의 영역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검증 과정이 질식사해버렸다. 아인슈타인이 불변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우리가 전제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빛이 강력한 인력을 발휘하는 태양을 지나갈 때 휘어지고, 그렇게 시공간이 휘어지는 방식으로 시간여행도 가능할 수 있다며, 기존의 과학적 인식을 혁명적으로 뒤집어버린 상대성이론)을 입증함으로써 과학적 객관성의 불완전함을 경고했지만, 이마저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고전물리학적 발견들에 기초한 영원한 진보라는 개념이 한정된 자원과 공간만 제공하는 지구에서는 절대 실현될 수 없는 허구임을 알 수 있는데, ‘탐욕의 삼위일체’는 과학적 진보의 영원성에 대한 모든 저항들을 하나씩 점령해가면서 무한질주를 계속할 수 있었다. 하물며 과학적 지식이 돈이 되는 상황에서 칸트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란 ‘탐욕의 삼위일체’에게는 최상의 선물이었다. 헤겔의 등장은 이 모든 과정의 완결판이었으니, 그는 미완성의 변증법을 통해 과학기술이 견인하는 진보의 영원성과 개인에 대한 사회와 체제의 우월함을 선언함으로써 모든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개인 대한 사회의 우위와 역사의 필연은 ‘탐욕의 삼위일체’가 시장의 규모를 무서운 속도로 확장하는데 결정적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이로써 근대이성이 완성됐으며 그 첫 번째 수혜자는 불완전한 근대과학이었고, 부산물은 근대철학이었으며, 최대 수혜자는 거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들이었다.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준 근대이성이 과학의 발전에 공헌한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16세기에 현대적인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설익은, 그래서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었던 과학에 대한 믿음부터 살펴봐야 한다. 아쉬운 것은 어렸을 때 읽었던 베이컨의 책들을 모두 다 처분한 관계로, 필자에게 변증법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재인용했다.



우선 자신들(과학적 성과의 전통의 대가들)이 모르는 것을 그들은 안다고 믿는다. 경솔한 믿음, 회의에 대한 거부, 신중하지 못한 답변, 교양의 과시, ‘모순’의 혐오, 이해타산적인 태도, 탐구에의 태만, 언어물신주의, 단순한 부분적 인식에만 머물러 있음. 이 비슷한 것들이 인간의 오성과 사물의 본성이 행복하게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고는 오성을 공허한 개념이나 무계획한 실험과 결혼시켰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이러한 결합의 결과나 열매가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인쇄기는 조야한 발명품이고, 대포는 이미 익숙한 물건이었고, 나침반은 벌써 이전부터 어느 정도 알려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 물건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는가. 하나는 학문에 있어서, 다른 하나는 전쟁에서. 또 다른 하나는 재정, 무역 그리고 항해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은 말하자면 소 뒷걸음치다가 건진 것들이다. 지식은 많은 것들을 자신의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제왕들이 보화를 가지고도 살 수 없는 것, 그들이 명령이 미치지 않는 것이며, 왕의 첩자들이 그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도 없고, 항해자와 탐험가들은 그것이 생겨난 원산지에 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우리는 말로만 자연을 지배할 뿐 자연의 강압 밑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연의 인도를 받아 발명에 전념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자연 위에 군림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베이컨의 선언은 베니스 대지진이라는 무자비한 자연을 과학의 발전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지만,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와 필요하다면 인간에 대한 인간의 파괴까지 넓혀지는 진보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밝힌 것처럼, 그 결과는 종말이나 파국이라는 말이 너무나 많이 언급돼 실증이 날 정도에 이른 현대의 만연하는 공포와 폭력의 일상화이다. 베이컨이 말한 ‘우리가 실제로 자연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베이컨의 유토피아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된 오늘날, 그가 정복되지 못한 자연의 탓으로 돌린 강압의 본질이 명백해졌다. 그것은 지배 자체였”음이 확실해졌다. 





이렇게 베이컨에서 출발해 신의 영역에 오를 기회를 포착한 과학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며, 무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신화의 첫 장을 열었다. 과학은 지식에서 나오고 실험과 생산을 통해 제품화할 수 있기 때문에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과학적 지식은 원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베이컨의 선언에 의해 자연을 정복하는 능력(이윤의 원천)을 얻었고, 기업이 이를 제품화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노동 착취의 과정인 대량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학자가 아니었던 베이컨은 과학자다운 면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과학의 언어인 수학 지식도 형편없었고 과학적 실험에 대한 경험도 없었지만, 과학 발전의 현대적 토대를 마련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닐 포스트만은 《테크노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문의 진보》에서 베이컨은 발명가들을 위한 대학이라는, 마치 매사추세츠(MIT)와 유사한 대학의 설립구상안까지 들려준다. 베이컨은 정부가 발명가들에게 실험과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해 주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학술 저널과 국제 학회를 주관한 일도 있다. 그는 과학자들 간의 완전한 협동을 꾀하였는데, 이는 티코 브라헤,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노출시키지 않고 최대한 숨길 방법을 찾고 있었기에, 이러한 발상은 그들을 무척이나 놀라게 했을 것이다. 베이컨은 또한 과학자들이 쉽게 대중을 위한 공개강연에 나설 수 있도록 충분한 보수를 보장하라고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발명품의 활용방법을 계몽시키는 것 역시 발명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가 과학 사업을 바라보던 시각은 현대인의 안목 그대로였던 것이다. 즉 조직화되고,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하며, 공적인 의무를 지니고, 인류가 삶의 조건들을 개선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한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4.01 07:07 신고

    오늘은 차분하게 정독해야할 것 같습니다.
    늘 많은 공부를 하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5.04.01 16:08 신고

      첫 번째 출판으로 생각했던 글이어서 조금은 어렵습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보완 탈고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네요.

  2. 뉴론♥ 2015.04.01 08:48 신고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은데 실력이 없어서염 부럽네염 늙은노령님은 글을 잘쓰시네요

    • 늙은도령 2015.04.01 16:09 신고

      그 동안 읽은 책들을 녹여내야 하는데 게을러서.....
      당장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 분들을 위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깊은 글은 쓰기 힘드네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4.01 10:05 신고

    혜안과 박학다식에 늘 감탄을 합니다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4. 최홍대 2015.04.01 10:18 신고

    제대로된 과학의 발견 그리고 통찰력을 가진 과학자가 한국에는 거의 없는것 같습니다.

  5. 耽讀 2015.04.01 13:54 신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닙니다.
    과학 영역은 항상 어렵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01 16:14 신고

      네, 어렵습니다.
      최대한 쉽게 쓰느라 어려운 부분을 생략해서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6. 나비오 2015.04.01 14:47 신고

    음 매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마지막 정리 부분에서
    베이컨을 새롭게 보게 되네요
    그가 진정한 혁신가라는 ^^

    • 늙은도령 2015.04.01 16:15 신고

      지금의 세상을 만든 장본인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성찰이 현대를 만드는데 결정적이었습니다.



결국 사회가 ‘1 대 99(실질적으로는 0.1 대 99.9) 사회’로 재편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그래서 광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0.1%만 비대칭적 종말을 지켜보며, 끝내 살아남아 새로운 세상에서도 홀로 독야청청할 것이다. 울리히 벡의 말처럼 ‘부는 상층부에 쌓이지만, 위험은 하층부에 쌓인다.’ 따라서 부와 기회와 위험의 불평등이 정확히 중첩되는 부분의 사람들부터 종말을 맞을 것이다. 





상황을 바꿀 시간은 이미 지났다. 정말로 0.1%의 특권그룹에게 유리한 ‘상황이 나빠질수록 좋다’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추상화한 자본주의의 하부구조(생산방식과 전문화된 과학기술)에 의해 상부구조(정치, 문화, 교육, 종교 등)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로 전문화된 하부구조 자체가 정치화(특히 과학기술과 의료 분야에서)함으로써 ‘인간 해방’을 부르짖었던 일체의 유토피아 이론들이 폐기됐다(존 그레이의 《추악한 동맹》을 보면 다양한 종류의 종말론적 유토피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어쩌면 인류는 21세기가 반도 지나기 전에 개별적 자연사가 아닌 대규모 죽음과 비대칭적 종말을 목격할 수도 있다. 상황을 바꾸기에는 시간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태도와 인식 면에서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발전, 즉 성장과 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이 길게는 지난 250년의 산업화 기간 동안, 짧게는 지난 30~40년의 신자유주의 기간 동안 인류의 미래는 산산조각났다.





특히 지구온난화와 핵발전 확산의 위협은 서로 맞물려 있고, 미국 재무부의 채권을 연계로 새로운 형태의 공생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인류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전자는 제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인류를 위험에 빠뜨렸다면, 후자는 전자의 길을 따라가며 새로운 제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나라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온실가스의 반 이상을 배출하고 있음에도, 자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온실가스를 변함없이 내뿜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래의 에너지 공급선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최근에 들어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석유보다 몇 배는 많은 세일가스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런 오바마 정부의 선택은 무제한 양적완화가 담고 있었던 실질적인 의미와 동일하기 때문에 어떤 나라도 제국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1975년에 소비에트의 붕괴를 예견했던 에마뉘엘 토드는 미국이란 나라의 경제적 본질과 미래에 대해 정확히 예측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존 그레이의 《추악한 동맹에서》 재인용).



미국은 자체적인 경제활동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미국이 현재의 소비수준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외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2003년 4월 현재 그 규모는 하루 14억 달러씩 늘고 있다. 미국이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무역 제재 조치를 우려해야 하는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이 될 것이다.



유일 제국 미국의 자멸에서 보듯, 영국의 대처와 블레어는 물론 레이건과 프리드먼, 프랜시스 후큐야마와 어빙 크리스톨, 다니엘 벨과 모이니핸 같은 미국의 신보수주의자(존 그레이에 따르면, 이들은 경제 분야에서는 사회주의를, 정치 분야에서는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하나의 세계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게 깨졌다. 





인류의 역사를 하나의 발전과정으로 봤던 콩트, 자유의 기원을 원시상태에서 찾았고 그래서 소유권의 개념을 신의 선물로 오판한 로크를 비롯해서, 소련연방의 계획경제가 실패한 이유를 국가개입주의 때문이라고 잘못 이해해 자유방임경제(신자유주의)를 주창한 하이에크(독일의 프라이브르크 학파 포함),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완성한 프리드먼의 어리석은 환상까지, 영원한 진보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난 지금, 우리는 그런 터무니없는 믿음의 근간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근간으로 남아 있는 근대과학ㅡ직선적 성장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계몽이라는 작업을 통해 모든 유토피아와 종말론적 종교를 대체한 근대이성의 산물을 말한다. 근대과학은 과학자가 아니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성찰이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과학적 발견으로는 뉴턴역학과 다윈의 진화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ㅡ의 역사와 허상에 대해 개략적으로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뒤엉켜 들어간 구체적인 역사적 행태나 사회 제도뿐만 아니라 이 계몽 개념 자체가 오늘날 도처에서 일어나는 있는 저 퇴보의 싹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 지금, 벤야민과 푸코, 폴라니와 아도르노의 성찰에 비견될 만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과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 등을 중심으로 과학의 역사와 허상에 대해 다루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음 장에서 정상과학에 대한 패러다임 이론의 시조로 알려진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칼 포퍼의 《탐구의 논리》와 《과학적 발견의 논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제임스 베니거의 《통제혁명》, 스티븐 와인버그와 리처드 파인만, 스티븐 호킹, 레너드 서스킨드, 데이비드 윌슨, 장하석 등의 저작들을 참고로 해서, 개별 과학자가 아닌 총체적인 면에서의 근대과학이라는 자본주의적 종교의 겉옷을 벗겨보고자 한다.



개인에 대한 사회(역사)의 우위를 선언한 헤겔과 마르크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탁월한 사유의 끝에서 허무하게 타협해버린 헤겔의 전철을 항상 상기하며, 서사가 끝난 뒤에도 인간의 삶은 계속돼야 한다는 ‘결과의 낙관’으로 전철된 과학의 속살을 조금이라도 살펴보자. 과학의 문제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물의 사용을 독점하는 ‘탐욕의 삼위일체’와 과학철학의 부재가 불러온 비극적 결과이기 때문에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과학이 제 자리를 잡을 때 현재의 문제 중 상당수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고등생명체로서의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필연의 과정이며, 반성적 성찰을 통해 새롭게 탄생해야 하는 과학의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고, 거의 대부분 눈에 보일 정도(보통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찾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로 심각해졌다. 필요한 것은 부정하거나 회피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며 체념하거나 순응하는 진실에 대한 우리의 용기 부족에 대한 성찰이다.



1998년에 많은 산업화된 국가들에서 과학 발전의 완전하지 못한 결과물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발생하게 된 지구온난화(육용으로 사육되는 가축들이 배출하는 매탄가스의 양은 자동차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에 버금갈 정도로 많다. 이런 면에서 볼 때 AI와 구제역, 광우병, 에볼라 등은 지구를 파괴시키는 유가공업체들의 거대한 피라미드, 맥도날드와 KFC 등처럼 육식과 비만을 부추기는 거대 패스트푸드업체들, 이에 길들여져 끝없이 가축들을 살육하는 인간들에 대한 반격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필자가 채식주의자이며 불교신자는 아니다.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줄이고, 비만과 유전자 변이의 위험을 줄이고, 각종 성인질환을 피해가려면 육식을 줄이고 채식과 과일 등의 고른 식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삼시세끼'의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구온난화의 요인은 의외로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으며,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대비해야 하는데 삶의 방식을 바꾸기 싫어하는 인간의 심리가 이를 어렵게 한다는 뜻이다. 



1998년에 많은 산업국가들에서 지구온난화에 대해 일반 대중의 의식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필자는 그 결론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과학비판에 들어가려고 한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이 이 책의 무모한 목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이 책의 우울한 목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낙관파에 속하는 엔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인용했다.



기존의 모든 자료를 검토하고 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모든 조건이 똑같다고 할 때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부분의 국민은 지구온난화의 억제를 위해서 국가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어떤 행동에 나설 것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자신들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그러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3.16 06:19 신고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인간의 종말, 지구의 종말.... 욕망의 끝이 어딘지 보입니다.

    • 늙은도령 2015.03.16 18:34 신고

      네, 점점 끝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상당한 피해가 일어날 텐데 가난한 사람들이 주 타겟이 될 것 같아 두렵기만 합니다.
      제가 연재를 하는 이유도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함입니다.

  2. 耽讀 2015.03.16 07:57 신고

    자본은 먹을거리까지 지배하고 있습니다. 식물생산량은 전세계 인구가 먹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수억명이 굶주립니다. 비극입니다.

    • 늙은도령 2015.03.16 18:36 신고

      네, 모두 먹여살 릴 수 있습니다.
      초국적식품업체들이 식량생산을 독식하고 있어 굶어죽는 사람이 매년 수백만 명이나 나오는 것이지요.
      전 세계 인구의 10~20억 명이 절대빈곤층인데 이들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지요.
      자본의 탐욕은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삽니다.

  3. 좋은글 너무 잘읽고 갑니다

    • 늙은도령 2015.03.16 18:36 신고

      네, 감사합니다.
      저도 님의 블로그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4. 나비오 2015.03.16 16:36 신고

    앤서니 기든스 대학교 때
    한참 책 사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유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지
    안 될지 조만간 결판이 날 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5.03.16 18:37 신고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많은 사람이 수십 년 내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5. 여행쟁이 김군 2015.03.16 19:27 신고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좋은 글인듯 해요~
    잘 읽고 갑니당~~

    • 늙은도령 2015.03.16 19:38 신고

      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될 때 천천히 읽으면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6. 알아야산다구 2015.03.16 20:46 신고

    우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7. 강동훈 2015.03.28 02:50

    1.로스차일드가문의 세력은 과연 사그러들었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세력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다만 방식이 바뀌었을뿐이지요 
    독식하던 체재에서 파트너쉽을 구축해 더 복잡해진 현대사회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군림하기위해 방식을 바꾼것뿐입니다 
    대표적으로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연준의 주주구성만봐도 알수있죠 초기 연준의 주주구성은 이렇습니다 
    총 20만주중 록펠러+쿤롭의 뉴욕내셔널시티은행 3만 
    폴와버그의 뉴욕내셔널상업은행 2만1천주 
    jp모건의 퍼스트내셔널은행 1만5천주 
    로스차일드의 하노버은행1만2천주 
    체이스은행과 케미컬은행이 각각6천주 
    후에 뉴욕내셔널시티와 퍼스트내셔널이 합병해 씨티은행이됩니다 
    그리고 케미컬과 하노버가 합병해 케미컬뱅크가 세워지구요 
    후에 케미컬은 체이스맨하탄과 합병하고 체이스맨하탄은 모건과 합병해 현재의 jp모건체이스가됩니다 
    세력이 하나로 뭉치고 있는거지요  
    이중 록펠러는 로스차일드의 지원(석유운반)으로 미국의 석유시장을 독점하게되서 성장한케이스구요 
    모건은 모태부터가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입니다 
    쿤롭가와 폴와버그또한 로스차일드의 대리인들이구요 이는 과거 로스차일드의 역사를 추적하다보면 알수있는 자명한사실입니다 
    또한 후에 폴와버그는 쿤롭가의 사위가 되죠  
    이후 1983년 이들의 지분은53%로 늘어나게되고 연준은 말그대로 이들의 기관이 됩니다  
    이 은행가들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죠? 바로 한명도 빠짐없이 로스차일드와 관계된 사람들이란점입니다  
    현재 그들은 이외에도 미국내 모건체이스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있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제휴관계에 있고 조지소로스의 퀸텀펀드의 주요이사직 멤버입니다 
    소로스의 위치는 투자고문입니다 
    2.로스차일드의 자산규모는 어느정도인가 
    항상 이것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는데요 
    이것때문에 음모론으로 몰고가는분들이 많더라구요 
    일단 화페전쟁에서 저자가 예측한 5경은 & #39;1940년대 로스차일드가문의 재산은 5000불로 추산되었다 
    이금액은 그당시 세계 gdp의 반에 이르는 수치이다 
    그 금액에 수익률6%를 가정한다면 현재 50조달러에 이른다& #39;이겁니다 
    부록에 보니까 최대8%면 900조달러에 이른다고 하더군요 
    이런추측은 제가봐도 무리가 있는것같습니다 
    하지만 당시 로스차일드의 자금력을 엿볼수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현재 전세계gdp의반이면 지금은10경원에 이르는 돈입니다 
    그리고 제가 또하나 느낀점은 오히려 해외네티즌들은 음모론으로 치부하기보단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몰고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 다른나라들보다 정보가 많이 부족한게 그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아시아여도 일본과 중국의시각은 저희나라와 많이 다릅니다 
    화폐전쟁이전에 이미 로스차일드가를 다룬 많은 서적들이 있었구요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들에 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니 막상 그런 정보들을 접했을때 저런 천문학적인 재산이 있는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거죠 
    사실 전 이미 화폐발행권을 가지고있는 이상 재산논쟁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들의 권력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저 금액이 결코 많다고 생각되지는않네요  
    3.로스차일드는 다른 세력에 밀려난지 오래이다? 
    현재 실세는 로스차일드가 아닌 록펠러이다라고 예측하는분들이 많이 계시던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록펠러가 최고강대국인 미국을 바탕으로 급성장한건 맞지만 과연 로스차일드가문처럼 전세계에 뿌리를두고 연합하는건 아닙니다 
    록펠러는 일단 미국에 국한되어있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에비해 로스차일드가문은 전세계에 퍼져 각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일단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만 봐도 알수있죠 
    이스라엘은 로스차일드가 세운나라라고해도 손색이 없을정도로 로스차일드의 많은지원을 받아 건국한나라입니다 
    미국은 왜 이스라엘에게 절절 매는걸까요 로스차일드의 힘때문이죠  
    또한 이미 세계 가장 큰 규모의 석유업체인 로열더치쉘을 소유하고있는 그들이지만 최근 이스라엘에서 세계최대규모수준의 지하자원들이 발견되면서 로스차일드의 자원확보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정말 열받지만 이정도면 하늘이 허락한 독재자들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스차일드는 금가격을 정하고 다이아몬드시장의 최대업체인 드비어스의 대주주이며 홍콩채권을 발행하는 홍콩최초의 외국계은행 hsbc은행을 설립한 사순일가와 사둔입니다 
    중국까지 진출해 사실상 장악하고있는거죠 
    이외에도 와인으로도 유명합니다  
    여담으로 모건이 사망한후 그가 남긴재산은 턱없이 적었는데 이유는 그는 자신의 모든 기업지분중19%밖에 소유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로스차일드의 소유였다고하네요 
    또한 록펠러가의 사람인 넬슨록펠러 부통령은 록펠러가의 재산은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이 관리하기때문에 자신들은 모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록펠러가 워낙 세력이 커져서 로스차일드를 넘어섰다고 말하는데 글쎄요 
    과연 로스차일드 가문이 왕좌를 그리 순순히 넘겨 주었을까요?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로스차일드가 록펠러가문의 금융지분을 37%를 인수했다는겁니다 
    표면적으로 알려진 규모가 훨씬적은 로스차일드가 어떻게 록펠러의 전체금융지분의 37%나 인수할수 있었을까요? 
    록펠러가 세력을 완전히 굳히기위함이라면 반대로 로스차일드의 지분을 꿀꺽하는게 맞는얘기 아닐까요? 
    이런정황들을 가정했을때 제가 내린 결론은 아직도 로스차일드왕국의 세상이다라는것이였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성보경대표의 칼럼입니다 한번 참고해보시면 이해가 빠를듯하네요 http://m.mt.co.kr/renew/view.html?no=2006052614421022752 
    이것도 한번 참고 해보시면 재미있을듯 합니다 
    content://com.sec.android.app.sbrowser/readinglist/0325105350.mhtml 

    • 늙은도령 2015.03.28 03:38 신고

      로스차일드 가문이 록펠러 가문보다 부자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금융가문임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유럽이 유일하게 전쟁을 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는데 로스차일드 가문이 유럽의 재무장관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은 월가와 미 재무부, FRB를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는 한 세계 최고인 것은 분명합니다.
      저도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본 이후로 로스차일드 관련 책들을 사서 봤습니다.
      너무 과장된 <화폐전쟁>도 읽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부는 비상장회사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측정이 불가능하지만 경 단위는 분명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세계지배는 록펠러 가문의 세계지배처럼 음모론의 영역이었습니다.
      헌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자본만 살아난 상태이라 그 음모론이 상당 부분 현실에 근접하게 됐다고 봅니다.
      로스차일드가 금융세계를 지배하는 한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규모가 커진 지금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금융만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스차일드 음모론은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현대세계는 다양한 것들이 교차하고 있어 18세기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재탄생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물론 로스차일드 가문의 도서관에 있는 기록들이 오픈된다면 음모론의 진위여부가 가려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대표되는 금융지배세력이 악의 축이며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핵심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가문의 장자와 극히 일부에게만 허용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파생상품의 크기를 알 수 없듯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은 측정이 불가능하지만,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많이 줄어든 것은 분명합니다.

      금융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과장된 결론에 이르기도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이 과소평가됐다는 것에는 백 퍼센트 동의하지만 제 지식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입니다.

  8. 강동훈 2015.03.28 02:54

    안녕하세요 늙은도령님
    요즘 부쩍 경제쪽에 관심많은 한 청년입니다
    평소 작성하시는 글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요 밑의글은 제가 화폐전쟁을 읽고나서 금융세력들을 나름대로 정리해본것입니다 한번 봐주시고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강동훈 2015.03.28 03:03

      일반적인 경제지식을 들이대며 보이는것만 믿으려하는분들이 너무많아 놀랐습니다
      많은분들과 토론해보고자 여기저기 글을 올려봤지만 별 소득이 없더군요
      그러던차에 늙은도령님의 글을 읽게되어 많은공감이되서 이렇게 댓글까지 달게됬습니다
      전 후에 음모론으로 치부되는 여러 미스터리한 문제들을 연구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싶습니다 저글은 제가 처음으로 작성한글인데 한수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
      모든 음모론의 정점이자 꼭대기에있는 로스차일드가문을 나름대로 추적해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9. 강동훈 2015.03.28 09:57

    제가 생각하던 그대로 입니다!!정말 십년묵은 체증이 내려가는듯 해요ㅎㅎ저도 과장과 음모론의 중간정도 라고 생각합니다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주 방문해서 자문 구하고 싶습니다
    좋은하루 되시고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3.28 17:54 신고

      네, 제가 답할 수 있는 것들은 답변을 드릴 게요.
      님도 좋은 공부 많이 하기를 바랄 게요.

  10. 강동훈 2015.04.02 12:21

    안녕하세요 늙은도령님
    간만에 인사올립니다
    날도 화창해지는데 하시는일마다 술술 기분좋게 풀리시길 기원합니다^^
    가장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분이 늙은도령님 밖에 생각나지않아 이렇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늙은도령님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제가 최근 인드라라는 블로거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요 영향력있는 블로거인지는 모르겠는데 예전 미네르바처럼 인터넷논객활동 하는분 같더군요
    제가 아무래도 경제지식이 얕다보니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 글인지 구별해내기가 힘든것같아요
    이분글보면 주요자본이 금에서 석유쪽으로 넘어가면서 권력이 로스차일드에서 록펠러에서 완전히 넘어갔다고 하던데 늙은도령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또한 모건가와 록펠러가가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이었다가 배신을하고 분리되어나왔다하던데 사실로 보시는지요?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요? 제 짧은생각으로는 한때 세상의 절반을 쥐고있던 그들이 순순히 세력을 내어주진 않았을것같은데요 현재 금융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있는 자들은 어떤자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이 너무 많고 두서없어서 죄송합니다ㅠ
    궁금증을 참을수가 없어서요ㅎㅎ

    • 늙은도령 2015.04.03 00:19 신고

      두 가문에 대한 팽팽한 대립은 전문가들마다 다릅니다.
      록펠러 가문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현재의 초국적기업의 상당수가 록펠러 가문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독점금지법 때문에 6개의 에너지기업을 나뉜 록펠러 가문이 다국적기업의 기원이었고, 그 6개의 기업이 여전히 세계를 주름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국적기업에 중점을 두는 최근에 들어서는 로스차일드 가문보다 록펠러 가문이 가장 부유하고 힘이 세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월가와 런던금융가를 지배하고 있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힘을 제래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착시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는 금융이 지배하는 체제입니다.
      규모 면에서는 록펠러 가문이 크지만 실속 면에서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당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금융, 특히 신용창출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외형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숨겨진 재산의 크기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세계의 부와 영향력을 연구한 책들이 록펠러 가문을 중시하는 것은 그들은 상장된 회사고, 산업의 근간인 에너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규모로 치면 애플은 삼성전자와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회사지만 이익 면으로 보면 세계 최고인 것과 같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융을 쥐고 있는 이상 세상 지배에 뛰어들 이유가 없지만, 초국적기업으로 이루어진 록펠러 가문은 세계 지배라는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눈으로 보고 체감할 수 있는 영향력은 록펠러 가문이 훨씬 막강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뒤에는 돈의 흐름이 있습니다.
      물론 록펠러 가문끼리 신용을 창출하는 내부거래적 요소들이 금융을 건너띄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실속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챙겨도 영향력 면에서는 록펠러가 앞서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11. 강동훈 2015.04.03 01:09

    다시한번 해안에 감탄하고 갑니다!! 책 출간하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나중에 선생님이 시간한번 내주시면 찾아뵈서 많은 조언을 구하고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03 02:15 신고

      책을 출간하려다 건강 문제로 포기한 상태입니다.
      너무 전문적인 영역까지 다루면 많은 분이 읽지 않을 것이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명성을 높이는 것보다 당장 어려운 분들을 대신해서 글로 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일 4시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산본으로 이사왔기 때문에 미리 전화를 주시면 됩니다.
      블로그 후원에 제 전화번호가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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