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과학비판



궁극적이고 대답 불가능한 질문들을 물음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질문하는 존재로 정립한다. 대답 가능한 질문을 묻는 과학이 철학에 기원을 두는 것은 이 때문인데, 이 기원은 모든 세대를 통해 항상 현존할 원천으로 남아 있다.


                                                               ㅡ 한나 아렌트의 《정치의 약속》에서 인용



이제 도스토예프스키나 프로이트, 디킨슨이나 베버, 트웨인이나 마르크스 가운데 그 누구도 합법적인 지식생산자가 될 수 없다. 단지 재미있어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 뿐, 그들은 과거의 산물일 뿐이다. 진리를 원한다면, 주저없이 과학으로 눈을 돌릴 일이다. 과학만능주의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이것은 테크노폴리 속에 과학만능주의가 생겨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ㅡ 닐 포스트만의 《테코노폴리》에서 인용





부와 기회를 독점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극도의 불평등과 회복불가능한 위험을 인류와 자연에게 떠넘긴 ‘탐욕의 삼위일체’의 성공에는 영원한 성장이라는 진보의 믿음을 보편적인 진리로 만들어준 과학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자본주의의 초기에는 과학과 과학적 결과와 발명이라는 것이 시장의 외부(국가가 예산을 배정하고 대학이나 개인이 연구의 주체가 되는 방식과, 기업과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방식)에 위치하면서, 성장을 견인하고 시장이 정체상태에 빠졌을 때마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외부효과로 인식되었다. 



금속인쇄술의 발명으로 과학지식이 보편화됐고, 화약의 발명으로 전쟁이 빈발해졌으며, 자석의 발명으로 식민지 정복을 위한 항해술의 발전이 가능해졌다. 석탄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내연기관이 나왔고 그것이 산업혁명의 동력이 된 이후에 나온 과학적 결과물들은 시장의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제품화할 수 있는 연구들만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초과학(물리학과 화학이 핵심)의 발전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정도로 과학의 시장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기에 ‘탐욕의 삼위일체’가 기획한 국민(민족)국가 탄생의 원대한 비밀이 숨어 있다. 초기의 상인자본과 산업자본은 지속적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자되는 것에 비해 결과물의 효용성과 경제성이 의심스러운 다양한 분야의 과학(특히 기초과학)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했다. 결국 해결책은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대량생산에 따른 충분한 수요를 만들기 위해 국내의 그물망 같은 인프라와 해외 시장과의 안정적인 연결망 구축을 담당했던 국가가 이를 대신하도록 만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유전자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지적 욕구라는 불치병이 자리하고 있어서 과학적 결과들은 계속해서 나올 터였고, 심지어는 잘 갖춰진 교육제도 밖에서도 과학적 성과는 지속적으로 나온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과학발전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고, 그 결과물이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 제도적으로ㅡ국가가 투자한 비용(세금) 대비 국민의 이익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게 만들어놓은ㅡ시장에 흡수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과학의 눈으로 본 경제성장에 관한 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는 과학의 성과들이 약속하는 진보에 대한 낙관론(경제성장을 통해 파이부터 키워야 한다는 거짓말)과 성장의 결과들이 개인에게 내려가는데 약간의 시차가 있을 뿐이라며, 끝없이 미뤄지기만 하는 ‘낙수효과’를 내세워 연구의 결과를 독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작동하지 않는 낙수효과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전 세계적으로 무분별한 개발을 통해 경제규모를 확장하고 그 이익의 상당 부분을 독점한 결과, 자산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의 GDP와 맞먹을 정도로 성장한 초국적기업과 거대 금융자본은 과학을 아예 ‘탐욕의 삼위일체’에 종속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제니퍼 위시번의 《대학주식회사》를 보면 정부의 예산(국민의 세금)으로 대학이 담당했던 과학연구의 결과물들이 헐값에 기업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나와 있다. 이는 국민의 세금을 통해 기업의 배를 채워주는 반국민적 행위이며, 특히 누진적 세금으로 회수돼 복지를 통해 국민에게 재분배되지 않으면 사회계층간의 불평등이 심화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방식이야말로 미국이 유일 제국으로 발돋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나라들을 등쳐먹은 방법으로 자신까지 말아먹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금의 대한민국처럼 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기업이 자체 연구소에서 윤리적 문제에서 벗어난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으며, 대학의 연구소와도 독점 계약ㅡ연구원들은 학생 신분이어서 얼마든지 저임금 노동 착취가 가능하다ㅡ을 맺어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사례가 수없이 언급되었다.



바슐라르와 칼 포퍼, 칼 세이건과 제임스 베니거, 스티븐 호킹과 스티븐 와인버거, 리처드 도킨스와 에드워드 윌슨, 니콜라스 카와 장하석, 나심 탈레브와 제레미 다이아몬드 등의 저작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이오니아 자연과학과 자연철학의 진정한 후계자인 근대과학의 출발에, 자연을 인간의 행복을 위해 정복 가능한 대상으로 만든 베이컨과 근대이성을 종교의 영역에 올려놓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내놓은 데카르트가 있었다. 



또한 인간 이성(순수이성)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한정지으려고 했던 칸트의 영향도 지대했다. 칸트는 그의 비판시리즈를 통해 하늘만 바라보던 인간들을 지상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그가 정한 인간 이성의 한계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칼 포퍼에 따르면 칸트는 ‘형이상학에 대한 돼먹지도 않은 소리가 나오는 터전을 없애 버리려는데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칸트가 없애 버린 것은 그 헛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합리적 논증을 사용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됐다고 말했다(사족이지만, 칼 포퍼는 토마스 쿤보다 베르그송과 같은 세대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칸트를 놓고 멋진 설전을 벌였을 것이므로).





즉, 과학적 객관성을 추구하는 인식의 기본 틀은 각종 이론을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없는, 그래서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선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바람에 과학적 지식이 진리의 영역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검증 과정이 질식사해버렸다. 아인슈타인이 불변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우리가 전제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빛이 강력한 인력을 발휘하는 태양을 지나갈 때 휘어지고, 그렇게 시공간이 휘어지는 방식으로 시간여행도 가능할 수 있다며, 기존의 과학적 인식을 혁명적으로 뒤집어버린 상대성이론)을 입증함으로써 과학적 객관성의 불완전함을 경고했지만, 이마저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고전물리학적 발견들에 기초한 영원한 진보라는 개념이 한정된 자원과 공간만 제공하는 지구에서는 절대 실현될 수 없는 허구임을 알 수 있는데, ‘탐욕의 삼위일체’는 과학적 진보의 영원성에 대한 모든 저항들을 하나씩 점령해가면서 무한질주를 계속할 수 있었다. 하물며 과학적 지식이 돈이 되는 상황에서 칸트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란 ‘탐욕의 삼위일체’에게는 최상의 선물이었다. 헤겔의 등장은 이 모든 과정의 완결판이었으니, 그는 미완성의 변증법을 통해 과학기술이 견인하는 진보의 영원성과 개인에 대한 사회와 체제의 우월함을 선언함으로써 모든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개인 대한 사회의 우위와 역사의 필연은 ‘탐욕의 삼위일체’가 시장의 규모를 무서운 속도로 확장하는데 결정적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이로써 근대이성이 완성됐으며 그 첫 번째 수혜자는 불완전한 근대과학이었고, 부산물은 근대철학이었으며, 최대 수혜자는 거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들이었다.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준 근대이성이 과학의 발전에 공헌한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16세기에 현대적인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설익은, 그래서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었던 과학에 대한 믿음부터 살펴봐야 한다. 아쉬운 것은 어렸을 때 읽었던 베이컨의 책들을 모두 다 처분한 관계로, 필자에게 변증법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재인용했다.



우선 자신들(과학적 성과의 전통의 대가들)이 모르는 것을 그들은 안다고 믿는다. 경솔한 믿음, 회의에 대한 거부, 신중하지 못한 답변, 교양의 과시, ‘모순’의 혐오, 이해타산적인 태도, 탐구에의 태만, 언어물신주의, 단순한 부분적 인식에만 머물러 있음. 이 비슷한 것들이 인간의 오성과 사물의 본성이 행복하게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고는 오성을 공허한 개념이나 무계획한 실험과 결혼시켰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이러한 결합의 결과나 열매가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인쇄기는 조야한 발명품이고, 대포는 이미 익숙한 물건이었고, 나침반은 벌써 이전부터 어느 정도 알려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 물건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는가. 하나는 학문에 있어서, 다른 하나는 전쟁에서. 또 다른 하나는 재정, 무역 그리고 항해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은 말하자면 소 뒷걸음치다가 건진 것들이다. 지식은 많은 것들을 자신의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제왕들이 보화를 가지고도 살 수 없는 것, 그들이 명령이 미치지 않는 것이며, 왕의 첩자들이 그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도 없고, 항해자와 탐험가들은 그것이 생겨난 원산지에 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우리는 말로만 자연을 지배할 뿐 자연의 강압 밑에서 신음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연의 인도를 받아 발명에 전념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자연 위에 군림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베이컨의 선언은 베니스 대지진이라는 무자비한 자연을 과학의 발전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지만,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와 필요하다면 인간에 대한 인간의 파괴까지 넓혀지는 진보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밝힌 것처럼, 그 결과는 종말이나 파국이라는 말이 너무나 많이 언급돼 실증이 날 정도에 이른 현대의 만연하는 공포와 폭력의 일상화이다. 베이컨이 말한 ‘우리가 실제로 자연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베이컨의 유토피아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된 오늘날, 그가 정복되지 못한 자연의 탓으로 돌린 강압의 본질이 명백해졌다. 그것은 지배 자체였”음이 확실해졌다. 





이렇게 베이컨에서 출발해 신의 영역에 오를 기회를 포착한 과학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며, 무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신화의 첫 장을 열었다. 과학은 지식에서 나오고 실험과 생산을 통해 제품화할 수 있기 때문에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과학적 지식은 원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베이컨의 선언에 의해 자연을 정복하는 능력(이윤의 원천)을 얻었고, 기업이 이를 제품화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노동 착취의 과정인 대량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학자가 아니었던 베이컨은 과학자다운 면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과학의 언어인 수학 지식도 형편없었고 과학적 실험에 대한 경험도 없었지만, 과학 발전의 현대적 토대를 마련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닐 포스트만은 《테크노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문의 진보》에서 베이컨은 발명가들을 위한 대학이라는, 마치 매사추세츠(MIT)와 유사한 대학의 설립구상안까지 들려준다. 베이컨은 정부가 발명가들에게 실험과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해 주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학술 저널과 국제 학회를 주관한 일도 있다. 그는 과학자들 간의 완전한 협동을 꾀하였는데, 이는 티코 브라헤,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노출시키지 않고 최대한 숨길 방법을 찾고 있었기에, 이러한 발상은 그들을 무척이나 놀라게 했을 것이다. 베이컨은 또한 과학자들이 쉽게 대중을 위한 공개강연에 나설 수 있도록 충분한 보수를 보장하라고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발명품의 활용방법을 계몽시키는 것 역시 발명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가 과학 사업을 바라보던 시각은 현대인의 안목 그대로였던 것이다. 즉 조직화되고,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하며, 공적인 의무를 지니고, 인류가 삶의 조건들을 개선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유용한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4.01 07:07 신고

    오늘은 차분하게 정독해야할 것 같습니다.
    늘 많은 공부를 하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5.04.01 16:08 신고

      첫 번째 출판으로 생각했던 글이어서 조금은 어렵습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보완 탈고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네요.

  2. 뉴론♥ 2015.04.01 08:48 신고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은데 실력이 없어서염 부럽네염 늙은노령님은 글을 잘쓰시네요

    • 늙은도령 2015.04.01 16:09 신고

      그 동안 읽은 책들을 녹여내야 하는데 게을러서.....
      당장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 분들을 위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깊은 글은 쓰기 힘드네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4.01 10:05 신고

    혜안과 박학다식에 늘 감탄을 합니다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4. 공유의 플랫폼 2015.04.01 10:18 신고

    제대로된 과학의 발견 그리고 통찰력을 가진 과학자가 한국에는 거의 없는것 같습니다.

  5. 耽讀 2015.04.01 13:54 신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닙니다.
    과학 영역은 항상 어렵습니다.

    • 늙은도령 2015.04.01 16:14 신고

      네, 어렵습니다.
      최대한 쉽게 쓰느라 어려운 부분을 생략해서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6. 나비오 2015.04.01 14:47 신고

    음 매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마지막 정리 부분에서
    베이컨을 새롭게 보게 되네요
    그가 진정한 혁신가라는 ^^

    • 늙은도령 2015.04.01 16:15 신고

      지금의 세상을 만든 장본인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성찰이 현대를 만드는데 결정적이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