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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내가 경험한 통신사 로그기록에 대해 ‘나의 이야기’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정보통신사업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필자의 회사에서 만든 것은 문자메시지를 대량으로 전송하는 장비인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해당 장비를 여러 곳에 팔 수 있었습니다. 워낙 많은 곳에서 문자메시지를 대량전송했기 때문에 오작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한항공에서 저의 장비로 고객에게 알림문자를 보냈는데, 장비에서 오작동이 일어나 한 고객에게 똑같은 메시지가 수백 건 송신됐습니다. 황당한 일을 겪은 고객이 대한항공에 항의했고, 대한항공은 제 회사에 손해배상을 묻겠다고 나왔습니다. 저로서는 절체절명의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이런 오작동이 다른 장비에서도 일어나면 모든 장비를 리콜해야 하고, 그럴 경우 너무나 많은 피해보상이 발생해 사업을 .. 더보기
내가 다시 살게 된 이유 ㅡ 3 저는 아웃사이더적 기질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제가 소아마비 장애인이라는 것에서 나온 것 같고, 상대적이고 때로는 절대적인 약자를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불의한 강자에게 지극히 도전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아웃사이더적 기질과 풍부한 상상력,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등이 무모할 정도로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얄팍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본 사람은 저와 비슷한 성향과 기질에 빠지기 쉽고, 이는 『아웃사이더』의 저자 콜린 윌슨이 설파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란 '평생을 치통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자기보존의 본능과 끝없이 싸우면서도, 지독한 자아의 방황에 끔찍한 열병을 앓는 사람이고, 그 중에 일부는 성자의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고.. 더보기
내가 다시 살게 된 이유ㅡ2 저는 궁금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렇게 참혹한 실패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지, 수많은 인재ㅡ학력에서도, 경력에서도, 창의성에서도, 성실성에서도 잘해왔고 잘할 것으로 보였던ㅡ들이 창업했던 벤처기업들이 속절없이 망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창업하는 순간이 지옥행 열차를 예약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들 거의 전부에 확실한 인맥이 있고 권력의 핵심부까지 연결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도와주었음에도 제가 단 한 방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한시도 몸에서 떠나지 않는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그 수많은 실패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이.. 더보기
내가 다시 살게 된 이유ㅡ1 매일같이 자살만 생각하는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처음에는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L전자에 대한 원망이 강했으나, 갈수록 그것에 대비하지 못한 저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정신적 고통이 더욱 컸습니다. 직원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과 끝까지 저를 밀어주었던 친구들의 도움에 아무런 화답도 못한 것들이 저를 끝없는 회한의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그렇게 나약해진 정신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사업 실패에 대한 자책은 일상의 모든 것들에 스며선 견고하게 자리 잡아 끈질기게 저를 괴롭혔습니다. 가족과의 눈 맞춤도 힘이 들었습니다. 형과 동생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살 곳은 마련했지만, 유별나게 성공한 사람이 많은 제 주변의 상황이 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자격지심이 집요할 .. 더보기
대박이란 없다, 나의 사업이야기ㅡ6 그런 나날 속에서 극도로 커진 스트레스와 누적된 만성피로에 간이 망가지고 마이클잭슨 같은 슈퍼스타나 걸리는 백반증이 온몸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생긴 두 다리의 길이 차이 때문에 디스크가 악화돼 만성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수면 장애는 더욱 악화돼 공황 증세로 발전해 수시로 저를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가면서 저를 아예 집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까지 망가뜨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몇몇 빚쟁이들의 끊임없는 독촉은 그들의 투자금을 다 갚거나, 현재의 병들이 악화돼 드러눕거나 죽지 않으면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정말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에서 불치병인 간경화까지 저를 찾아왔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공황증상에 탈진해 죽음 직전의 공포까지 떨어지기를 수십 차례.. 더보기
대박이란 없다, 나의 사업이야기ㅡ5 헌데 말입니다, 이쯤 되면 뭔가 불길한 내용들이 나와 줘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모든 얘기들이 그렇듯이 위기가 없으면 그거야 동화라고 해도 밋밋해서 재미도 없고, 팔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라고 한들 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이 충만한 때, 위기는 언제나 안개나 유령처럼 스며들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곳에 조용히 머물러 있으며, 때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위기들의 한꺼번에 튀어나와 사업을 나락으로 끌어내립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돌다리도 두들긴 다음에 건너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숨겨진 위험이 실체적 모습을 드러낼 쯤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L전자가 ‘루팡’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대규모 납품계약을 맺어줄 테니, 공동사업을 하자고 찾아.. 더보기
대박이란 없다, 나의 사업이야기ㅡ4 사업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에 벤처기업에게 대출을 끌어다 주고 커미션을 챙기는 벤처투자 브로커인 고등학교 동기동창을 만나게 됐습니다. 저보다 먼저 벤처사업에 뛰어들어 수백억의 투자를 받은 동창을 통해 소개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신의 선물처럼 느껴졌던 동창놈과의 만남이 악마의 선물이었음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거기서부터 제 인생이 거침없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놈과 전혀 친하지도 않아 기억 속에도 없었던 놈이었는데, 이젠 평생의 원수 같은 놈(벤처거품이 터진 후에 도망을 다니다 끝내는 행방불명처리된 상태)이 되었으니 그것도 다 운명인가 봅니다. 여자를 엄청나게 밝히는 그놈은 투자자들을 소개시켜줄 때 언제나 룸살롱을 택했습니다. 그놈의 이상한 취향 때문에 저도 뻔질나게.. 더보기
대박이란 없다, 나의 사업이야기ㅡ3 사기는, 어차피 칠거면 크게 처야 먹히는 법입니다. 나중에 담당자였던 김 과장과 김 대리가 저에게 해준 얘기로는 자신들에게 하루에도 10개 이상의 사업계획서가 도착하는데, 그중에서 극히 일부만 미팅을 잡는다고 했습니다. 그냥 묻혀버리는 것들의 80~90%를 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한테 운 좋은 줄 알라는 것이었지요. 헌데 그들이 만난 수백 명에 이르는 벤처기업 사장이나 임원과는 180도 다른 제가 천하의 사기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동시에 정말로 상상을 불허하는 인맥을 갖고 있으나 아직까지 사업 경험이 없는, 그래서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휘귀동물로 봤다고 합니다. 또한 광적인 열정에 걸맞게 제법 뛰어난 상상력과 영업력을 갖춘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를 테면 구라가 무지.. 더보기
대박이란 없다, 나의 사업이야기ㅡ2 회사이름을 왜 ‘루팡’이라고 결정했느냐 하면, 어차피 사업에 뛰어든 이상 세상의 돈을 훔칠 거면 확실하게 왕창 훔치자, 뭐 그런 무지몽매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낭만적 생각(결정적 패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가 끝물이라고 해도 잘하면 벤처사업을 통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유효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미친 짓을 밀어붙인 것은 제가 세상 경험이 너무 없었고, 한 번 미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입니다. 해서, ‘루팡’의 유일한 직원이자 월급여로 2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루팡’의 부사장에 취임한 S물산 퇴직자에게 장비 설계도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사용해서 어떤 사업계약서도 만들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장비 설계도와 사업계획서가 만.. 더보기
대박이란 없다, 나의 사업이야기ㅡ1 글이나 쓰면서 살았으면 충분했을 필자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단순했습니다. 저의 사업이야기를 하려면 저의 멍에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필자는 백일 직후에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외국인이 들여온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걸렸던 것이지요.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당시에 많은 아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합니다. 헌데 그 후유증 때문인지 저는 어려서부터 신경성 수면장애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그 증상이 악화돼, 항우을제 계통의 수면유도제를 복용해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수면유도제를 장기 복용하게 됐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정말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저에게 '아침형 인간'이란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고 그에 맞춰 살 수밖에 없었.. 더보기
투명한 질서가 혼돈처럼 자유로운 곳 어쩌면 나는 깨어나지 않는 잠과 끝나지 않는 꿈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 작용이 죽음과 같아서 영원히 빛과 어둠 사이 갇힌다 해도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다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단한 삶의 연속 속에서 나는 늘 제자리를 맴돌고 또 맴돌았을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질긴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거기에서 비롯되는 영혼의 잠식과 정신의 몰락이었다. 이상보다는 조금 더 높은 무엇을 추구했지만 늘 돌아보면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있음을 발견했다. 온 몸에 가득한 상처란 나의 몸부림이 진실보다 조금 높은 곳의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득권과 다툰 패배의 결과들이었다. 나는 영겁회귀하는 것 같은 순간순간의 동일함 속에서 어제가 오늘이 되고, 내일이 다시 어제가 되는 공간에 갇..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