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미국 사람들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가 구축한 금융체제를 통해, 지구가 5~6개는 있어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분수에 넘치는 파티를, 외국인의 지갑에서 나온 돈으로 수십 년 동안이나 진탕하게 벌였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로 남아 있고, 그들의 소비 여력이 높아져야 세계 경제가 살아나는, 지독하게 왜곡된 전 지구적 시장체제가 두 번째 문제로 남아 있다. 



거창하게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및 대지의 사막화를 언급하지 않아도, 이 두 가지 문제만으로도 지난 40년 동안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세계화가 만들어낸 각종 모순들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고든 레어드는 《가격 파괴의 저주》에서 2008년의 신용 대붕괴 이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OECD 가입국의 중하위층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감당하기 힘든 빚을 떠안게 된) “많은 소비자는 불공평한 세계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값싼 물건에 매달리게 된다. 이것이 항구적인 할인 기계의 작동 방식이다. 간단히 말하면, 소비자는 값싼 수입품을 탐닉하고, 이는 국내의 일자리를 불가피하게 잠식하며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값싼 물건에 매달리게 된다.”



이때를 전후로 해서 월마트로 대표되는 할인경제가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물보다 싼 석유' 덕분에 인류는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한 먹거리를 준비하지 못한 인류는 지갑이 얇아진 만큼 값싼 제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각종 제품들이 주는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은 채, 외국(주로 중국)에서 들여온 값싼 생필품이 널려 있는 대형마트가 그들에게는 구원의 교회이자 욕망의 배출구였다. 



연중 내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할인행사는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의 월급으로도 기본적인 삶은 가능하게 해주는 마법의 구세주였다. 전 세계 부의 90%가 상위 10%에게 집중되는 상황에서 거대한 규모의 할인경제는 저임금노동자의 불만 표출과 폭력적 혁명을 사전에 봉쇄하면서도, 자본이 그들의 지갑을 마이너스 상태까지 털어갈 수 있는 일방통행로로 작용했다. 여기에 '먼저 쓰고, 나중에 갚는' 플라스틱 머니와 전자 머니의 보편화는 '빚의 경제학'을 저임금노동자에까지 확대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신용(금융) 대붕괴 이후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던 금융업체들은 과도한 '빚의 늪'에 빠져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숫자에 주목했고, 동시에 청년실업율이 높아지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대학생의 학자금대출 연체율에 주목했다. 이들은 '롱테일 경제학'에서 주목한 (무시되거나 버려지는) 꼬리 부분에 속하는 신용불량자이지만, 그들의 숫자가 늘어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 정부나 사회,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가파르게 올라가는 연체이자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최후의 채무변제자가 있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돼 개인파산의 수준까지 내몰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고율의 고리대금업을 할 수 있는 시장규모는 계속해서 커졌다. 가우스의 종형곡선에 의거해 기존의 신용체계 밖에 있었던, 그래서 신경도 쓰지 않았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신용체계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시장규모에 비해 별로 뒤지지 않을 만큼 커져버렸다.       



빈곤퇴치와 고등교육의 확대를 위해 도입한 마이크로크레딧과 학자금대출이 신용 대붕괴로 기존의 시장규모가 상당히 축소됐지만, 똑같은 이유로 예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시장이 창출됨에 따라 월가의 고리대금업자들은 신용 대붕괴에 의한 손실을 만회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마이크로크레딧의 창시자인 유누스의 성공사례를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어느 나라나 유권자의 한 표가 필요했던 정치권의 이해와 맞아떨어져 마이크로크레딧 열풍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가난한 여성들의 빈곤퇴치와 미래세대에 대한 질 좋은 교육 제공이라는 인류의 공통된 가치ㅡ실제로는 그들까지 착취하기 위해ㅡ를 내세워 공적인 영역에서의 고리대금업이 가능해졌다. 각국의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마이크로크레딧과 학자금대출을 빈곤퇴치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국제적 프로젝트로 격상시켰고, 이름도 거창한 '빈곤의 거버넌스'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마이크로크레딧의 창시자로 노벨상까지 탄 유누스가 '이렇게까지 이자가 올라갈지 몰랐다'고 한 말에서 빈곤퇴치의 슬로건은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거대 금융자본의 새로운 먹거리로 변질되었다. 금융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며 거대 금융업체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 제공된 공적자금과 무제한 양적완화에 '빈곤의 거버넌스'까지 더해지면서, 신용 대붕괴를 일으켰던 주범들은 2008년보다 더욱 부유해졌고 막강해졌다, 빈곤층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2008년 이전에는 전 지구적 시장경제에 편입되지 않은 채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던 이들은 제도권 금융시장에 편입되면서, 이전보다 더욱 가난해지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소액의 이자도 지불할 여력이 없어, 자살은 물론 매매춘이나 장기매매, 인신매매나 마약 운반 같은 폭력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를 연상시키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산업은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나 파고들어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참혹한 현실에 대해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2010년 경기 침체기에 중위 자산(중위에 위치한 사람이 보유한 자산)은 거의 40퍼센트 가까이 줄어서 1900년대 초반 수준으로 회귀했다. 미국 내 자산 증가분은 모두 상위 계층에게 집중되어 왔다...하위 25퍼센트 계층의 평균 자산은 경제 위기 이전에는 <마이너스> 2,300달러였지만, 경제 위기 이후에는 마이너스 1만 2,800달러로 경제 위기 이전에 비해 무려 여섯 배나 떨어졌다...미국의 극빈층과 빈곤 여성들의 기대 수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현상이며, 미국과의 금융거래가 많은 나라일수록 피해가 심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런 것들을 내세운다.



하지만 too big to fail(대마불사)이라는 말도 안 되는 근거로 단행된 이런 조치들에 의해 월가의 주가는 신용붕괴 이전으로 회복돼 슈퍼리치들의 재산은 회복되거나 더욱 늘어났지만,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빚이 늘어난 중하위층의 삶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다. 이것이 월가로 대표되는 거대 금융자본과 미국 연방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라는 0.1%의 특권그룹이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하고 세습하며 공생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국민의 지갑을 털고 미래세대에게 온갖 빚과 폐해들을 부담시키는데 일체의 망설임도 없으며,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자 여전히 예외국가임을 외쳐대며, 아직은 죽지 않았다고 성을 내는 유일 제국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21세기의 초반부의 진정한 모습이다. 아무리 많은 사이비 학자들을 동원한다 해도 이윤 추구 외에는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는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손을 잡으면 부와 기회를 독점하는 극소수의 수중에 권력이 넘어가고, 시장권력에 의한 전체주의적 지배가 공고해진다. 



플라톤이 원형을 제공했고, 기독교가 발전시켰으며, 칸트가 정식화했고, 헤겔이 완성한 ‘지배의 변증법’이 인간에 대한 폭력과 자연에 대한 파괴라는 진보의 신화(이는 도구적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올려놓기에 필연적으로 과학만능주의와 기술주의문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결과의 낙관론과 운명론을 수용하는 인식과 태도, 체념을 보편화한다.) 창출했고, 그것이 이제 역사의 퇴행과 비대칭적 종말에 이르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스티글리츠는 적절한 분배와 속도 조절, 대안적 먹거리와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성장지상주의가 가져 온 결과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제에 공명하게 됐다고 말한다.



첫째,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았고,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둘째, 정치 시스템은 시장 실패를 바로잡지 못했다. 셋째, 현재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 공업 국가들이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했으며) 이 세 가지 주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다. 불평등은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낳고, 이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여러 악순환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1. 뉴론7 2014.08.26 05:19 신고

    좋은하루되세염 잘보고 감니다.



제2장. 폭주하는 기차를 멈춰라




통합 자체가 결국에는, 서로를 근절시키려 드는 권력 집단들로 분화되기 위한 이데올로기임이 입증된다. 거기에 밀려드는 사람은 자신을 잃어버린다...그들은, 모두는 ‘전체’를 위한 미래의 희생자라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고는 그 전체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내어 그와 비슷하지만 저 바깥에 있는 것에 전가시킴으로써만 참아낸다.


                                                                                             ㅡ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인용



격렬한 정당 경쟁 자체가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지지 못한 자들’의 정당이 승리할 때 이들이 혜택을 본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다.


                                                                                                  ㅡ 래리 M.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에서 인용





MIT공대나 캘리포니아 공대 출신의 수학자와 NASA에서 일했던 최고의 프로그래머들이 금융업계로 이직해 만들어낸 금융공학이 2008년 금융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금융공학을 통해 만든 파생상품(서브프라임 모기지증권이 대표적)이 수천 수만 번의 다단계 판매를 통해 부풀려지면서 미증유의 거품이 형성됐고, 이것이 터지며 최소 수십 조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이 허공 속으로 살아진 것이 2008년 월가 발 금융붕괴의 전말이다. 



미국의 월가와 영국의 금융단지에서 발행된 파생된 상품이 지구를 몇 바퀴나 돌며, 무한대의 가지치기를 거듭했으니 첫 출발 때는 몇 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던 것이 수십 조 달러에 이를 만큼의 뻥튀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이 불완전한 자료를 가지고 추산한 것이 수십 조 달러였으니, 거품이 폭발했을 당시의 금액이 수백 조 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해도 이것에 대한 반박할 수 있는 금융업체나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첨단의 공법들을 들고나온 자들이 일처리가 엉망진창이었다는 뜻이다. 탐욕은 수학적 계산마저 혼돈 속으로 빠뜨린다.    



유대인 고림대금업자들이 수천 년 전부터 사용했던 신용 창출의 방식이 금융공학이라 미명 하에 현대화됐을 뿐, 근본적으로 2008년의 금융붕괴는 신용의 대붕괴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에서 세계 금융계를 지배하는 가문으로 성장한 로스차일드가의 자본 축적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적은 돈이라도 수없이 회전시키면 큰 돈으로 만들 수 있는ㅡ하버드 비즈니스스쿨(MBA)의 첫 번째 수업이 이것이다ㅡ신용 창출이란 본질적으로 악마성을 내포하고 있다. 



채권자에게 이자라는 불로소득을 만들어주는 신용 창출은 원금(대출, 채권, 증권, 주식, 펀드 등)의 회전수에 따라 이익의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에, 최대한 회전수를 늘려 거품을 키우는 악마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리먼 브라더스에서 시작된 거품의 폭발이 다차원적인 메트릭스처럼 퍼져가며 수십 조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ㅡ이런 표현이 너무나 빈약하다ㅡ을 증발시키는 미증유의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헌데 이들의 악마성에 철퇴를 내리쳐야 할 오바마 정부는 처벌은 고사하고 최악의 범죄 집단인 금융업체와 거대 투자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수백 조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대한민국 1년 예산의 두 배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무너진 경제가 살아나지 않자, 오마바 정부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무제한적인 양적완화에 들어갔다. 이들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이용해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풀고ㅡ중국과 일본, 한국과 아랍의 국부펀드 등이 미 재무부가 발행한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마련한다ㅡ사실상의 제로금리를 통해 주가를 올리는 데는 성공했다. 



대신 부실채권을 매입한 국가들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전파됐고, 1929년에 발생한 대공황보다 더욱 치명적인 경제대침제가 도미노 현상처럼 발생했다. 최근에는 유럽을 거쳐 남미와 중국으로까지 경제위기가 전염된 상태며, 아시아의 신흥개발국가들에서도 경제위기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증상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미 월가를 지배하고 있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악마적 탐욕에 전 세계가 끝을 모르는 총체적 난국에 처한 것이 2008년의 신용 대붕괴다. 



이처럼 전 세계에 치명타를 입힌 신용 대붕괴의 주범들은 그때보다 더욱 부자가 될 수 있었지만, 그 피해는 미국 이외의 국가들ㅡ정확히는 각국의 국민들ㅡ이 뒤집어썼다. 이것이 신용 대붕괴의 결과이자, 월가가 이끄는 미국의 본 모습이며, 제국 특유의 악마성이며, 상대가 없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타국의 돈을 해적질을 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특히 미국의 쥐꼬리만한 원조를 받은 대가로 미국의 정치경제적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 대만과 필리핀의 피해가 가장 크다.  



미국은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년간 수천 억에 이르는 덤핑관세ㅡ세부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100% 해적질임을 알 수 있는데, 일본은 알아서 기고 유럽은 맞대응을 하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 대만의 수출기업들이 주요 타겟이다ㅡ를 부과하고, 미국의 국내법에 불과한 슈퍼 301조를 발동해 공공연히 무역보복을 자행하고, 최근에는 초국적기업들을 동원해 특허소송을 남발하고 있다.       



전 세계를 장기적인 경제위기에 빠뜨린 신용(금융) 대붕괴는 레이건 정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대규모의 지속적인 감세와 복지 관련 재정의 대규모 축소 및 연방정부의 업무를 민영화하는 것이 핵심이다)과, 아버지에서 아들로 격세집권한 부시 정부의 친기업적ㅡ특히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인 2개의 전쟁을 통해 대박을 터뜨린 군산복합체와 초국적 석유기업ㅡ이고, 월가와 백인 상류층을 위한 친금융적인 정책 때문에 발생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달리 말하면, 자유주의와 자유시장과 자본주의로 구성된 ‘탐욕의 삼위일체’의 실질적 지배자들이 유일 제국 미국의 연방정부(특히 재무부와 국방부, 연방준비제도와 각종 정보기관)를 장악하면서 만들어낸,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이자 최대 규모의 폰지사기(일종의 다단계 사기로 각국의 실물경제를 담보로 자행됐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정치자금에 휘둘리는 미국 정계의 악마성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라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신용 거품을 만들고도, 그것이 터지기 직전까지 쓰레기보다 못한 파생금융상품을 팔아먹었으니, 2008년의 신용 대붕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이자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였다. 유일 제국 미국의 연방정부와 월가가 일으킨 신용(금융) 대붕괴는 1, 2차세계대전에서 발생한 것보다 더한 피해를 인류에게 남겼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블랙홀의 권위자인 마틴 리스는 《인간 생존확률 50:50》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에 따른 영향으로 1억 8,700만 명이 전쟁과 학살, 박해, 기아로 죽었다”고 했으니, 2008년의 신용 대붕괴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범죄였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문제는 전 지구적 차원의 난개발(거의 대부분의 빚으로 진행됐다) 때문에 이것만으로 인류가 치러야 할 피해를 특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양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세계경제의 성장동력이 충분했기 때문에 그 피해를 단시일 내에 만회할 수 있었지만, 2008년의 신용(금융) 대붕괴는 인류의 성장동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친 전 지구적 피해를 예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 통계수치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경제대침체가 끝나야 나오겠지만, 그 시기가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어, 전설 속에서나 계량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20세기가 19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제국주의와 좌우의 전체주의 정권 및 냉전시대로 이어진 전쟁범죄와 대량학살로 얼룩진 폭력의 세기였다면, 최소한 21세기의 전반부는 사적독점을 이룬 거대 금융·투기자본의 무차별적인 고리대금업과, 부정적 세계화를 주도한 초국적기업들이 일으킨 정치경제적 폭력으로 얼룩진 세기로 기록될 것이다. 21세기는 이제 14년이 흘렀을 뿐인데도 20세기에 발생한 피해의 총량과 맞먹는 피해들을 양산하고 있다. 



특히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된 '개발과 성장의 역설'이 초래한 지구온난화와 수질 오몀 및 대지의 사막화는 지구에 생명체가 서식하기 시작한 이래 5번째의 종말을 걱정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돌이킬 수 없는 지구물리학적 피해는 핵발전의 위험과 폭력시장의 확대까지 초래해 수억에서 수십억 명에 이르는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빈국일수록, 사회경제적 약자일수록 그 피해가 치명적일 지구물리학적 피해는 거의 대부분 상위 5%에 속하는 부국과 부자들이 일으킨 것이어서, 지구적 차원의 정의는 영원히 실현불가능한 것으로 굳어졌다.      



                                                



월가와 초국적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후원받아 미국의 대통령에 오른 오바마가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 부은 덕분에 폭락했던 주가가 회복되고, 슈퍼리치들의 금고는 다시 채워졌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중하위층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의 부와 기회의 불평등은 OECD 가입국 중 한국과 함께 최상위를 차지하고, 내부적으로는 역사상 최고의 불평등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IMF 부총재였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스티글리츠 보고서》와 IMF 수석연구원이자 현 인도은행 총재인 라구람 라잔의 《폴트라인》, 찰스 모리스의 《미국은 왜 신용불량국가가 됐을까》처럼 신용 대붕괴를 다룬 수많은 책과 연구에 잘 나와 있듯이, 신용 대붕괴에 의해 재산의 대부분을 날려버린 것도 모자라 죽을 때까지 갚기도 힘든 빚더미의 수렁에 빠진 미국의 중하위층과 여타 국가의 중하위층의 삶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빈곤층으로 떨어진 하층민의 수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신용 대붕괴가 일어났었다는 사실조차 모두 잊어버린 상황에서.




  1. 태봉 2014.08.24 19:26

    폭주하는 기차의 끝은 어떤 모양일까요? 과연 그 해결책은 무엇이고 실현가능할까요?

    • 늙은도령 2014.08.24 20:35 신고

      조세제도를 바꾸고 공정거래가 가능하게 만들면 지금보다 몇십 배는 좋아집니다.
      우리는 당장이라도 좋아질 수 있습니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됩니다.
      조중동과 방송이 문제입니다.

  2. 동의합니다 2014.12.12 01:47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경제적 불평등은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육체를 만들 듯
    올바른 가지관을 가지지 않는 한
    더불어 함께 잘 살자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부의 불평등은 영원히 대물림이 될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기성세대는 그나마 어떻게든 넘겨 왔지만
    앞으로 이 나라를 짊어 질 젊은 세대들은
    얼마나 힘든 세상을 살까 하는 생각에
    참으로 마음이 무거운 요즘입니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남을 돌아 볼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제안이 담긴 유익한 칼럼 계속 부탁합니다.

    • 늙은도령 2014.12.12 03:22 신고

      네, 조금만 덜 갖고 나누면 됩니다.
      성장의 결과가 미래세대에게 어려움을 넘겨주는 것이라면 당장이라도 성장을 멈춰야 합니다.
      좀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천천히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공존과 공생의 묘를 찾아내지 않으면 인류는 종말을 피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위기는 인간이 만든 것이니, 인간이 풀어내야 합니다.
      정치가 바로 서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축소되고 왜곡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치가 바로 서야 합니다.
      모든 불평등은 반민주적 결과들입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즉각적인 욕망과 쾌락을 쫓아가는 현대성을 이해하려면 아직도 살펴봐야 할 것이 두 개 더 남아 있다. 그것은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확대재상산하는 것에서부터, 기득권 위주의 상위정치에서 배제된 네티즌들의 정치의 장인 인터넷과, 그 폭발적 파급력이 빛의 속도를 연상시키는 SNS의 등장이다. 최근에 활성화된 개인 방송과 팟캐스트까지 더하면 현대성의 핵심으로 등장한 즉시성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와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근대》와 《유동하는 공포》를 통해 완전하지 않은 과학기술의 사용에 따른 각종 위험들의 증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된 무차별적인 개발의 부작용, 산업혁명 이후 닥치는 대로 이루어진 천연자원의 착취에 따른 환경 파괴, 견고하게 결합된 무거운 경제에서 액체처럼 유동하는 가벼운 경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확실성의 증가 등을 다루면서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매스미디어의 변천에 관해 다루었다. 



구글이미지에서 인용



현대사회의 위험성이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경고하고, 견고했던 체제들이 무너져내리면서 사회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었던 이들은, 닐 포스트만처럼 매스미디어의 테크놀로지에 천착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터넷에서 트위터까지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된 삶과 불확실성에서 도피하기 위한 즉시성이 만들어낸 비합리적 선택의 증가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비합리적 선택과 합리적 선택과의 차이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느냐, 지지 않느냐로 나뉜다). 



이들은 인류가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체제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경제에 집중하는 동안, 체제의 상부구조를 이루는 정치와 철학, 문화와 교육 등에서 벌어진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퇴행의 중심에는 텔레비전이 독점했던 메시지를 보다 세밀하게 분할해서 점령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앞에서 다루었듯 텔레비전을 이루는 테크놀로지는 폭력성과 선정성과 상업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와 정반대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 정보통신기술도 이런 방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텔레비전이 독점했던 메시지를 시공간적으로 분할한 것에서 기인한다. 



철저하게 '1대 다'의 소통방식을 취했던 텔레비전에 비해, '1대 1'의 소통을 내세웠던 인터넷과 SNS는 넘쳐나는 정보와 익명성으로 인해 민주적인 매체에서 무정부적이고 카오스적인 매체로 변질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율정화란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것이어서, 원래부터 존재하지도 작동할 수도 없는 것이었고, 정보의 양이 늘어나고 질적 차이가 구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필터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정보와 익명성의 바다에서 근대이성이 탄생시킨 현대성은 루소와 칸트와 홉스가 그렇게도 우려했던 아노미적 무한경쟁과 무정부적 자유방임의 투쟁과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인류가 끝없는 유목생활에서 벗어나 정착함에 따라 문명이라는 것이 시작됐고, 근대이성이 탄생하기까지 발전의 뱡향은 예측가능한 사회와 미래를 만들기 위한 합리성의 극대화였다. 그것이 신의 섭리에서 나왔건, 우주의 법칙에서 유래했건, 자연의 원리에서 끌어왔건,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에서 출발했건, 장기적인 계획과 질서 잡힌 확실성의 원천으로써의 합리성의 추구는 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에 일치한 불변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보편화에 이어, 즉시성과 유목성 및 선정성과 상업성을 특징으로 하는 정보통신기술과 모바일기기의 발전은 한 세기도 되기 전에 인류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욕망과 쾌락에 대한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폭력적인 현대성(한정된 자원과 일자리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투면서 발생한다)이 창출한 온갖 허상들을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낙관적이고 변증법적인 신화로 포장하는데 성공했다. 갈수록 첨담화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구원과 해방이 실현된 유토피아로 향해 간다면, 그때까지 자신의 죽음을 늦추는 방법이 최상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의 발전이 영생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래서 지금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무수히 작은 단위로 쪼개놓음으로써, 영원한 삶도 가능할 수 있다는 관념이 지배적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도 있다, 토끼가 먼저 출발한 거북이를 따라잡는 과정에서 토끼가 간격을 좁힐 때 거북이도 최소한이라도 앞으로 나갔기에 토끼가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의 흐름이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가정 하에 시간을 잘게 쪼개놓으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궤변은 소피스트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비해 과학과 기술은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발전했이지만, 소피스트의 궤변처럼 시간을 잘게 쪼개놓으면 영원한 삶도 가능하다는 관념은, 멈추지 않는 파동으로 영원히 날아갈 수 있는 빛으로 대변되는 전기전자기술의 과학적 원리와 일치한다. 이런 궤변과 과학의 이종교합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하지 못하는ㅡ구태여 구별하려 하지 않는ㅡ아노미적 현상을 일반화한다. 끊임없이 시공간을 옮겨다니는 새로운 유목인의 등장은 이런 이종교합에서 나온 자연스런 결과일 수도 있다.  



                                                                       


이처럼 '날아가는 화살은 멈춰있다'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를 연상시키는 2차원적 관념이 3차원의 현실을 뒤집어버린 것은 인류 문명의 발전에 내포돼 있는 정신적 퇴행을 드러내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물질만능주의가 만연된 세상이 거꾸로 된 세상이라고 말했는데, 작금의 세상은 즉각적인 만족을 통해 영속적인 삶을 추구하는 현대성에 의해 다시 한 번 뒤집혀버린 것이다. 이런 2중의 변증법에 의해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질서 잡힌 체제를 추구했던 근대이성은 현대성으로 넘어오자마자 끊임없이 유동하는 특성을 지니게 됐고, 그에 따라 삶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이제 장기적인 계획이 담긴 청사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단계로 접어들었고, 현실공간을 빠르게 넘나드는 가벼움을 유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전략으로 굳어졌다. 신자유주의로 발전한 자본주의는 인간의 삶만 파편화시킨 것이 아니라, 파편들의 충돌로 인해 높은 열(갈등)이 발생시켰으며, 이것으로 인해 각각의 파편들이 녹아내려 세상이 액체상태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체제와 제도는 물론 그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유동하는 상태로 접어들었고,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위험과 두려움이 공포를 생성하며, 개인의 삶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바우만이 말하는 '액체화된 근대'의 출현과 '유동하는 공포'의 만연이란 이런 상태를 말한다. 이는 분명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가 '초위험사회'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현대성의 모토는 이렇게 출현했고, 잘게 쫗개놓은 시간의 관념에 맞는 삶을 영위하려면, 미래를 위해 현재의 만족을 미루지 않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졌다. 



헌데 즉각적인 만족을 위해서는 '오늘의 사치품이 내일의 필수품'이 될 수 있도록 만들거나, '내일에는 내일의 신상품이 출시'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잘게 쫗개놓은 시간들을 만족시켜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해 오늘에는 사지 못한 사치품이 내일에는 가격이 내려 필수품이 돼거나, 오늘 채우지 못한 만족을 내일의 신제품으로 채울 수 있어야 싼 가격에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라도 구차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소비지상주의는 이렇게해서 일반화된다.  



결국 자본주의가 사회와 체제 속의 시민들을 개인들로 파편화시키는 과정에서 공동체와 가족이 해체됨에 따라, 이런 즉시성의 추구는 정신적 차원에서 충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매일같이 쏟아져나오는 신제품들을 쉴새없이 광고하는 텔레비전과, 매일같이 지우고 덮혀지고 새로 업그레이드 되는 인터넷과 SNS가 최상의 매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고, 개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적 지위로 격상했다. 



원래부터 다양한 나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시간을 잘게 쪼개듯, 자아를 여러 개로 쪼개 각종 사이트와 네트워크를 넘나들며 즉각적인 욕망과 쾌락을 탐닉하던 흔적들을 곳곳에 남겨놓게 됐고, 이것들은 쌓이고 축적돼 매체를 지배하고 있는 자들에게 개인의 취향을 꿰뚫어볼 수 있는 빅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광고주들의 꿈이었던 맞춤형 광고가 가능하게 됐고, 끝없는 매출 창출과 이익의 추구의 기반이 확고하게 다져졌다.  



이렇게 소비지상주의 시대가 우리의 눈앞에 도래했다. 끊임없이 대형마트와 쇼핑몰(홈쇼핑 포함)을 채워주는 신제품과 매순간마다 업그레이드 되는 정보와 지식들은 즉각적인 만족을 일상화시켰고, 먼저 쓰고 나중에 갚는 플라스틱 신용과 전자 신용의 발전은 파편화된 개인들을 빚의 굴레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충분히 예측가능한 결과를 회피하면서, 당장의 만족에 매달리는 이런 비합리적 선택들은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합리적인 선택으로 전도되고, 머리결마저 소중한 존재로 포장됨에 따라 미래를 위해 만족을 늦추는 것은 자신을 저버리는 배반의 행위가 됐다. 





문제는 이런 다양한 매체들을 운영하는 극소수의 전 지구적 지배 그룹으로 즉각적인 만족의 대가들이 흘러들어가는 데에 있다. 천문학적인 빚에 대한 이자는 그 자체만으로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렀고, 돈이 곧 권력인 세상에서 지배 그룹의 영향력은 텔레비전과 인터넷과 SNS를 중계도구로 활용해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표를 붙이고, 돈이 되는 모든 분야를 독식할 수 있었다. 결국 모든 미디어가 지배 세력의 이익에 협조하고 봉사하는 시대에 접어듬에 따라, 미디어가 전해주는 콘텐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의 도구인 미디어 자체가 중요해졌다.                 

      


전 지구적 지배 세력의 광고와 협찬(과 미디어에 길들여진 개인들의 시청료)로 돌아가는 이들의 힘은 국가의 주권을 구성하고 있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이은 제4부에서 이들 삼부를 좌지우지 하는 제1부의 역할을 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본질적으로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천상의 궁합을 가진 것이 미디어의 본질이어서 폭력적인 현대성의 폐해들은 몇 번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유동하는 공포’와 공간을 압축해 지배의 범위를 넓히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 과실들은 극소수의 수중에 떨어졌음은 이제 상식의 영역에 자리했다.  



이런 극단의 불평등으로 귀착되는 폐해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ㅡ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ㅡ는 정말로 여러 번 있었다. 1929년에 발발한 경제대공황이 그 중에 하나였고, 2008년의 금융 대붕괴와 2011년부터 구조화된 유럽의 경제위기가 최근의 것이었다. 이렇게 현대성의 폐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인류ㅡ정확히는 전 지구적 엘리트와 국민국가 단위의 지역적 엘리트와 국제기구를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들ㅡ는 근대이성의 질주가 초래한 현대성의 문제점을 교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살리기는커녕, 아예 방향을 돌려 사회경제적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관용의 정신을 실현한 복지국가의 잔재마저 일소시키는 퇴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중심에는 욕망과 쾌락에 대한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행태를 끊임없이 부추긴 텔레비전과 인터넷, SNS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오랜 전부터 특정 세력에 의해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회주의의 몰락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세를 불린 급진적 자유주의자와 좌파에서 전향한 신보수주의자들이 자본과 권력의 주변부에서 핵심으로 포섭되는 과정에서 더욱 심화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이 내놓은 새로운 통치이론(신자유주의)과 가치판단의 기준에 따라, 근대이성이 창출한 현대성은 사회적인 도덕규범에서 완전히 이탈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거대 금융자본과 초국적기업은 빛의 속도로 국경을 넘나들며, 천연자원을 바닥까지 착취하고, 무한대의 신용을 창출해 전 세계 부의 90%을 독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공존과 상생이 불가능한 이런 극도의 불평등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은 것이 아님에도, 전 지구적 지배 그룹은 부정적 세계화의 병폐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그날까지, 갈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가보자며 신자유주의의 엔진 출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다. 자기조정 시장에서 발전한 자유시장과 사회적 생산관계의 변화로 등장한 자본주의, 새로운 통치술의 형태로 등장한 자유주의가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형성된 탐욕의 기관차가 빛의 속도까지 출력을 높이는 동안 지구와 인류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고,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는 폭발 직전의 단계에 이르렀다. 



지난 30년의 신자유주의적 폭주는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지구의 반격에 직면했지만, 전 지구적 지배 세력은 폭주하는 기관차의 속도조절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어쩌면 그들도 제어할 수 없는 속도에 이른 기관차를 멈출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 속도를 감당해낼 브레이크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을 전후한 지난 250년 동안 인류는 지구 역사상 5번째의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고, 그 중심에는 인간의 성찰을 가로막아 즉각적인 만족의 포로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게네시스 2014.08.14 17:11

    기술은 발전하지만 우리가 중요해야할 인문학적인 분야나 윤리는 점점 사라져 가네요ㅠㅠ 그게좀 슬픕니다

    • 늙은도령 2014.08.14 19:55 신고

      네, 돈이 되는 사람들에게 과학과 기술 발전으로부터 얻는 이익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통령 ㅡ 현대 물리학의 최정점에 이르면 유체이탈과 순간이동이 가능해진다. 헌데 두 가지 부작용이 있으니, 하나는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나머지는 간헐적으로 일어난다. 전자는 자신이 하는 말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해 수첩에 적힌 것만 읽는 것을 말하며, 후자는 오후나 밤이 되면 평균 7시간 정도 육체가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구글 어스도 무용지물!!  



                                             



수석비서관 회의 ㅡ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만들어준다. 선생님은 비선라인이 보내준 몇 개의 문장을 수첩에 적어와 차근차근 읽어준다. 학생들은 한 자라도 틀릴까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받아쓴다.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다음 학기에 강제 전학 당한다.   



머피의 법칙 ㅡ 몇 날을 고생해 쓴 글은 세련된 언어의 조합이 화려하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고, 새로 쓰려는 글은 날것들의 열망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다양한 조합을 이루어내지만 나만 볼 수 있다. 2014년의 대한민국 제1야당에 그 지적재산권이 있다. 





민주정부 10년 ㅡ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기 위해 기초공사를 하다 발견한 과거의 유물. 서둘러 봉인된 것처럼 보이는 소중한 유물을 들어내자 곳곳에서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한다. 과거의 유물에 갇혀버린 우리 젊은 날의 푸르고 서툴러서 아름다웠던 초상.



족벌언론 ㅡ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 만큼 한심한 자들도 없고, 그들과 맞서는 자들 만큼 어리석은 자들도 없다.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은 악마의 성경을 읽으며 세속의 은총에 감사하는 꼴이며, 그들과 맞서는 자들은 정의의 법전을 읽으며 인간의 법정에 세워지는 꼴이기 때문이다. 





법인카드 ㅡ 생산자과 소비자의 분리가 확실하며, 5060세대의 남성이 1020세대의 여성에게 구애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모 기관의 모토와 분탕질과는 정반대의 권력관계를 생성한다.  



현 집권세력의 통치술 ㅡ 6.4지방선거에 맞춰 유병언과 구원파 집중 조명하고, 7월재보선에 맞춰 기초연금 지급하고, 총선을 앞두고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국민을 상대로 협박하는 정언유착의 금권정치.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진 세월호특별법을 막기 위해 검찰과 경찰에 이어 군대마저 패대기치면서도 경기활성화를 내세워 세월호참사 피로감 유발하는 욕망과 탐욕의 통치가 역사를 바꾸고, 일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비약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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