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 등이 공저한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을 보면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권력기관 중에서 검찰만이 유일하게 과거의 잘못과 탈법, 범죄 등에 대해서 일체의 사과도 하지 않은 유일한 조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권은 유한해도 검찰은 영원하다'는 삐뚤어진 엘리트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국민이 그들에게 부여한 권력을 이용해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만들어놓고도 단 한 번의 대국민사과도 하지 않은 유일한 권력기관입니다. 





민주화 이후 권부의 중심에서 밀려난 안기부(현 국정원)의 빈자리를 꿰차는데 성공한 검찰은, 그들에게 부여된 무소불위의 권력을 악용해 권력과 자본의 주구이자 동행자로써 '불멸의 신성가족'을 구축하는 데에만 전력을 다했습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최악의 유행어는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추락시킨 이명박근혜 9년 동안에는 (최강욱 변호사의 말을 빌리자면) 민주주의와 헌법마저 파괴하는 괴물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극도의 타락을 일반화시킨 이명박근혜 9년 동안, 검찰이 저지른 탈법과 범죄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검사 전체의 사표를 받아도 모자랄 판입니다. 검찰조직을 아예 분해해 다시 조립하는 수준이어야 촛불혁명이 바라는 검찰개혁에 이를 수 있지만,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그것을 이룬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꿈꾸는 검찰개혁에 성공하려면 법률만이 아니라 헌법까지 개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적 한계를 고려할 때, 서훈 국정원장이 추진하고 있는 적폐청산 모델을 검찰에도 적용하는 것은 법률적 뒷받침이 없는 현실적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라 생각합니다. 독재정권에 부역한 과거사에 대한 조직 차원의 대국민사과와는 별도로, 법무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새로 취임할 검찰총장이 외부인사(시민 포함)로 구성된 적폐청산 TF를 구성해 이명박근혜 9년의 탈법과 범죄, 정치적 결정에 대해 조사한다면 최상의 검찰개혁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강력한 힘에는 그 이상의 책임이 따른다'는 대사가 나오듯이, 검찰이 괴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정원과 언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런 논리는 정의를 실현하는 절대적 진리에 해당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에 자리한 정언명령이기도 합니다. 검찰개혁이 탈조선으로 가는 제1의 과제라면, 국정원의 적폐청산 모델을 검찰에도 적용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7.07.06 08:32 신고

    기춘공화국이라는 그 한마디 말이 모든것을 대변하는듯 합니다

  2. 참교육 2017.07.06 12:20 신고

    검찰에 붙여진 온갖 비난성 별명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건찰 개혁 문재인정부 반드시해내야 합니다.

  3. 친절한엠군 2017.07.06 23:16 신고

    정치는 진짜 사람 피를 말리는거 같아요ㅠㅠ 잘보고갑니다^^

  4. 아무개 2018.12.22 20:36

    적폐청산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문제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에서 출생했고 지금까지 살고있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에서 살아 보지 못한 사람이 적폐청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월이 흘러 현재 대한민국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모두 죽어서 다음 후세들이 적폐청산을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적폐청산에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아니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그를 바보라고 불렀다, 다른 말로는 그의 일생을 표현할 수 없어서. 영화 <변호인>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거대한 전환’에 관한 짧고 투박한 이야기다. 국가의 폭력과 불의를 압축하는 사건과 마주쳤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속물 변호사의 위대한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3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되풀이되는 국가의 폭력과 불의에 저항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영화의 완성도와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반감,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참여정부 인사들의 정치적 부활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변호인>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변호사 시절의 노무현을 일방적으로 미화했다며 영화의 가치를 폄하할 수도 있다. 러닝타임에 얽매여 서둘러 끝낸 결말이 <죽은 시인의 사회>의 표절이 아니냐고 비난할 수도 있다. 

 

 

모든 것에는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ㅡ예고편에서 캡처  

 

 

영화적으로 볼 때, 프란시스 코풀라 감독의 <대부> 시리즈 1편과 2편처럼 전반부에는 속물 변호사 노무현의 성공과 야만적 국가의 폭력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국가의 야만적 폭력에 마주쳐 현실에 눈 뜨는 중반부에는 인권변호사 노무현과 압도적 힘을 가진 국가가 공작을 벌여 변호사 자격을 박탈하는 과정이 교차 편집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나 <변호인>에는 국민의 자유와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정부)가 권력을 사유화해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압도적인 폭력에 대한 고발과, 깨어나는 시민으로서의 저항의 역사가 들어 있다. 정권의 안위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조작됐고, 그때마다 얼마나 심한 고문이 자행됐으며, 얼마나 많은 국민이 희생됐는지, 독재정권의 악마성이 들어 있다. 

 

 

<변호인>에는 돈을 잘 벌던 변호사가 그때까지 이룬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부와 권력, 기회의 독점에 따른 극도의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파괴하는 현 대한민국에 대한 정치적 성찰이 들어 있다. 왜 이 시대에 노무현 같은 바보가 필요한지, 그것도 여러 명이 필요한지 이 시대의 절박한 요구가 들어 있다.

   

 

예고편에서 캡처

 

 

나 아렌트의 말처럼 국가의 폭력이 “착취와 억압조차 사회가 돌아가게 만들고 나름의 질서를 확립”시키는 사건에 직면했을 때, 변호사 노무현은 현실을 직시했으며 분노했고 저항했다. 그는 정의의 담지자인 법의 언어로 국가의 폭력에 맞섰으나, 자신의 의뢰인을 지켜내지 못했고 변호사 자격마저 박탈당했다.

 

 

영화의 끝에선 작은 희망의 불씨를 볼 수 있었지만, 국가의 폭력이 무력해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일어선 변호사들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과 함께 한다고 해서 국가의 폭력이 사라진다는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았고, 정치적 해석도 끝까지 피해갔다.

 

 

어쩌면 제작진과 관계자들은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을 믿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전반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변호사 노무현의 변화에 무게를 실어주는 방식이 다소 거칠고 설득력이 떨어졌지만, 직선으로 부딪치는 후반부의 노무현이 그 시절의 절박함을 이 시대의 경험들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예고편에서 캡처

 

 

이처럼 <변호인>은 아직도 서슬이 퍼런, 아니 최근에 들어서는 퍼렇다 못해 이글거리는 국가의 폭력이 두려워 자기검열의 흔적ㅡ영화에서 편집돼 사라진 부분들ㅡ이 곳곳에 묻어나는 시대의 아픔이 반영된 영화다. 그 증거는 영화의 맨 처음에 나오고 이것 때문에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목에 걸린 국가의 폭력이라는 가시에 불편함을 금할 수 없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그 첫 번째 화면에 ‘실제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내용은 허구’라는 자막은 <변호인>에 가해졌을 유무형의 정치적 압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사상 최고의 속도로 흥행기록을 가라치우고 있는 <변호인>의 흥행몰이를 외면하거나, ‘한국영화 전성시대’나 ‘2,000만 배우 송강호’로 평가절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 <변호인>도, 교묘한 방식의 압박과 회유에 시달렸을 제작진도,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잊지 못해 상영관을 찾은 관객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국가 폭력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를 시작하는 한 줄의 자막이 보여주고 있다. 같은 이유로 해서 영화의 엔딩에 실제의 사건이 어떤 결말로 이어졌는지 자막처리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예고편에서 캡처

 

 

영화 <변호인>이 진정으로 말하는 것은 ‘이 영화는 허구’라는 안전장치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현실의 팍팍함이다. 법정의 노무현은 시리도록 아려서 꽃처럼 아름다운 인물이었을지언정 우리네 삶은 여전히 국가의 폭력에 둘러쌓여 있다. 영화는 이것을 말해주려 했다. 달라진 것은 보다 세련되고 민주적 절차를 이용하는 국가 폭력의 진화 뿐이다.   

 

일각에서 말하는 ‘성공한 법정영화’라는 평가는 <변호인>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축소시키는 의도적인 폄하다. 이는 마치 <화려한 휴가>를 시대에 휩쓸려버린 사랑이야기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또는 <부러진 화살>을 어느 또라이 교수의 법정투쟁기로 제한하는 것이다.   

 

 

<변호인>은 인간 노무현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변호인>은 영화라는 매체를 빌려 국가의 폭력을 고발한 직선적인 영화다. 그래서 사악한 폭력의 으뜸이자 절대악이었던 나치에 대한 뼈저린 후회와 뒤늦은 성찰에서 나온 명제, ‘처음에 저항하라, 그리고 결말을 고려하라’라는 말을 <변호인>에 그대로 따온다면 ‘첫 화면의 자막을 기억하라, 그리고 마지막 장면과 비교하라’라 말할 수 있으리라.

 

 

많은 부분이 편집됐거나, 아니면 잔혹한 실화를 모두 담아낼 수 없어서 러닝타임이 턱없이 부족했던 <변호인>의 흥행이 어디까지 이이질지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잊지 마시라, 국가의 폭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시대는 지금 깨어있는 시민들의 연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12.19 08:05 신고

    권력과 폭력은 본질이 같습니다.
    행사를 정당성인가 아닌가에 따라 폭력이 되기도 하고 권력의 행사가 되기도 합니다.
    교육을 통해 본질을 가르쳐 주지 않아 사람들이 헷갈려 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12.19 15:45 신고

      합의에 의한 허용된 폭력이지요.
      이것이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에 따라 이루어질 때는 공권력이고, 박근혜처럼 이용하면 야만공권력이 됩니다.
      국가의 폭력이 이럴 때 최고에 이르지요.

  2. 덕산 2015.12.19 08:28

    내일은 또 어떤일이 일어날지란 걱정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권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쓰여질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실감하고 살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12.19 15:48 신고

      제일 걱정은 이명박 8년 동안 한국경제마저 말아먹었다는 것입니다.
      부채가 너무나 급격히 늘어 내년 후반부터 몰아닥칠 경제위기를 중하위층은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재벌들이 사상 최고로 임원수를 줄였고, 사업을 매각하고, 포기하고, 방어 위주의 경영으로 돌아섰습니다.
      IMF를 능가하는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데 그것이 내년말이냐, 박근혜의 임기가 끝나는 해이냐의 차이만 남았습니다.
      암담합니다.
      저의 형제처럼 어떤 경우에도 최고의 자리에서 성공할 수 없는 분들이 정말 걱정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12.19 08:29 신고

    헌법 조항을 외치던 그 감동을 아직 생생히 기억합니다^^

    • 늙은도령 2015.12.19 15:49 신고

      아... 그리운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이 이제 그의 돌파력을 흉내내려 하고 있으니 기대해봐야죠.

  4. 바람 언덕 2015.12.19 12:16 신고

    오늘 이 시대는, 그리고 나는 누구를 변호하고 있는 것인지...



그 동안 부와 기회의 불평등이 세습자본주의와 과두정치로 귀착되는 이유를 파고들던 필자는, 이런 공부의 바탕 하에 공적연금 개혁에 대한 박근혜의 몽니를 비판하는 글을 여러 편 썼습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찬성하는 필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무원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개혁에는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야 대표부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는 합의에 이르렀음에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절대군주적 발언을 쏟아낸 박근혜의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데 박근혜의 반대에 힘입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논리에 설득을 당해서인지, 아니면 언론들의 일치된 비판에 넘어가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유시민의 주장을 신뢰해서인지 여야의 합의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청춘들을 보면서 ‘자발적 복종’이 가난해지는 싸움으로까지 번졌음을 절감했습니다. 





이 땅의 상당수 청춘들이 잘못된 현실에 저항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에 순종하면서 당장 취할 수 있는 이득을 놓치지 않겠다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실’을 극복할 수 없는 체념의 체제로 받아들인 채 그 안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것에 급급한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다수 청춘들이 쥐꼬리만한 것이라도 당장의 이득을 놓치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는 자포자기식 각자도생의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없다는 체념의 내면화가 미래를 위한 현재의 절약이나 희생을 어리석고 보장되지 않는 바보짓으로 격하시켰습니다.



이런 현상은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에서 욕구를 창출하는 단계(개인별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맞춤형 마케팅의 결과)에 이른 정보통신기술의 공학적 발전이 불러온 폐해이기도 하지만, 이 땅의 청춘들이 암담한 미래를 핑계로 현재의 자신을 체제에 순응하는 존재를 넘어 ‘자발적 복종’의 단계에 이른 인식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현실의 내가 가난하고 힘들며, 지금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그래야 한다는 증오의 분출이 ‘서로 가난해지는 경쟁’을 유도하는 기득권의 논리마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상위 10%를 이루는 기득권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두고 피 터지는 혈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다음의 인용문은 드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을 번역한 목수정 작가의 ‘역자 서문’에 나오는 것으로 더 이상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청춘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입니다. 현재의 청춘과 노인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세대 간 갈등이 하위 90%에 속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일이며, 기득권의 노예를 자처하는 것임을 말해주고도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을 상시시켜주고 싶었습니다. 배부리고 등 따신 것이 최고라는 일반적 통념이 인간의 가치를 얼마나 축소시키는지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선택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의 ‘땅콩회황’사건에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동료를 대신해 오너의 딸의 행패에 원칙대로 대응한 사무장을 지지하기 위한 대한항공 동료들의 그 어떤 집단행동도 없었다는 것이다...그러나 대한항공 직원들은 깊이 침묵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발길에 차이고 짓밟혀도 더 굳건한 충성을 바칠 뿐이라면, 계속 밟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이 사건을 화제에 올렸던 모든 대화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놀라워했던 대목은, 대한항공 직원들은 왜 지금까지 그런 행동을 받아들였는가였고, 홀로 회사에 맞서게 된 사무장을 지지하기 위한 파업이 없다는 지점에서 그들은 바로 그 해답을 찾았다. 한국판 재벌 자본주의가 빚어낸 이 슬픈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단 한 사람, 박창진 사무장만이 인간의 존엄을 지탱하며 서 있었다.






박창진 사무장은 좋은 직장과 높은 연봉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존엄을 포기한 ‘자발적 복종’에 해당하기에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거대 재벌과의 싸움은 그 자체로 지옥입니다. 하물며 개인이 홀로 거대 재벌과 싸운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는 여야의 합의에 격렬히 반대하는 청춘의 관점에서 보면 박창진 사무장의 선택은 지독히 어리석고 무모한 행태일 뿐입니다. 싸가지 없는 재벌오너의 딸에 맞선 것이 통쾌했기에 박창진 사무장을 응원하면서도, 그의 연봉이 1억여 원에 이른다는 경제신문의 보도를 접한 후에는 응원의 강도가 떨어집니다. 

     


납부예외자여서 국민연금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필자가 박근혜식 공적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것도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당장의 몇 푼 때문에 노후의 존엄을 포기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박근혜의 몽니에 반박하는 글을 계속해서 올린 것입니다. ‘자발적 복종’은 피통치자가 당장의 이익에 함몰돼 통치자의 요구에 순종할 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자발적 복종’은 노예로의 길이어서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살아남는 데만 치열해집니다. 이른바 파편화된 소외가 삶을 지배하는 각자도생(부와 기회를 독점하고 있는 지배계급에게 가장 유리한 피지배계급의 삶의 방식)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들이 단 한 푼의 손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각자도생에 필연적으로 수반되기 마련인 주체할 수 없는 증오가 소통과 합의를 이루는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너도 가지면 안 되고,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내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이것이 극에 이르면 일베나 서북청년단 같은 존재가 되고,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박창진 사무장이 됩니다. 각자도생은 무한대의 자유를 나의 방어에만 쓸 뿐,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바꾸는 데는 지독할 정도로 냉소적이 되거나, 일베나 서북청년단처럼 통치자의 편에서 서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반인륜적이고 파렴치한 폭력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통치자라는 절대강자(신은 승자와 함께 한다는 잘못된 신화)와 한편에 서면 왠지 모를 우월감을 느끼는 굴종의 반자유가 타인의 존엄까지 폄하하고 훼손하는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반동 보수들의 득세에 민주주의와 천부인권마저 무너뜨립니다. 이렇게 극우화된 ‘자발적 복종’은 나치의 행동대원처럼 무차별적인 폭력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작가이자 행동하는 지성이었던 까뮈가 말했던 것, “반공주의는 독재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라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유대인 학살에서 볼 수 있었던 인종주의적 폭력, 여성과 장애인 혐오 같은 극단의 차별, 대한민국 특유의 종북몰이가 난무하게 됩니다. 그렇게 개인의 존엄과 천부인권이 기꺼이 강자의 수족이 된 반동적인 개인들의 공격에 노출됩니다. 



이런 일방적 폭력(독재정권의 특징) 때문에 사회적 연대란 불가능해지고, 자발적 복종의 노예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조롱하고 죽이기 위한 참혹한 전쟁을 벌입니다. 그 사이에 기득권은 만찬을 즐기고 파티에 들어갑니다, 자발적 복종의 노예들이 피 터지는 혈전을 벌이기에 충분한 부스러기(낙수효과의 본질)를 남겨놓은 채.





나의 존엄은 돈과 권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나의 존엄은 굴종하지 않는 자유에서 나옵니다. 세월호 유족이 몇 십 억을 줘도 자식의 목숨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현 집권세력과 조중동 및 종편의 광기에 맞서는 것도 자식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 복종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힘(권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자유를 선택한, 그래서 지옥 같은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하지만 자유의 가치가 무엇에도 앞서기 때문에 위대한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박창진 사무장의 말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내가 이 싸움에 나서는 건‧‧‧‧‧‧ 나의 존엄을 내가 지키기 위해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나비오 2015.05.15 22:45 신고

    멋진 분이죠! 그 분의 뜻을 글로 남기는 늙은 도령님도 멋지시구요 !! 화이팅 입니다. ^^

    • 늙은도령 2015.05.15 23:26 신고

      참 어려운 결단을 했습니다.
      이런 분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가 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최악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2. 2015.05.16 07:02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16 14:52 신고

      잘 모르겠습니다.
      네이버는 뉴스 이용만 하는 까닭에...

      도움이 되는 글이었기를 바랍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요.

  3. 耽讀 2015.05.16 08:36 신고

    대학등록금을 하늘 높은 줄 오릅니다. 젊음이는 실업에 허득이고, 일자리를 구해도 알바 수준입니다.
    권력과 자본이 이런 상황을 만드는 이유를 저항하는 힘을 싹부터 자르기 위한 것이라고는 지적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학들어가도 공부하고, 책읽기고, 저항하기보다는 스펙을 쌓아야 합니다. 그 결과는 뻔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16 14:57 신고

      대학생들과 청춘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려움에 처한 것을 함께 아파하지만,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저는 의로만 해줄 뿐이라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당사자가 노력하지 않는데 끝까지 그들을 두둔해줄 이유는 없지요.
      노인들은 욕망과 아집, 불통과 관성적 투표를 한다고 해도 일관성 있게 1번을 찍습니다.
      투표에도 참여율이 높고요.
      헌데 청춘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승패가 갈리니 투표하지 않는 청춘까지 옹호해줄 생각은 없습니다.

  4. 이후 2015.05.16 10:28

    국내 치과대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정부에서 기존 대학졸업생들. 즉 개업의에게만 전공의 자격을 부여하고 현재 재학중이거나 장차 들어올 신입생들에겐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이수케 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 통과시키려 했습니다. 전국의 모든 치과대학이 일제히 수업거부에 들어갔습니다. 한달에 몇번씩 서울로 상경해 큰 집회를 열었고, 주위의 시민들을 설득하고자 집집마다 조를 짜서 방만했습니다. 서명을 받고 그걸 몇달동안 지속했죠. 그렇게 몇달이 흐르자 모든 치대생들이 유급될 처지가 되었습니다. 결국 정부와 국회는 굴복하고 말았죠. 이런 일들이 의대나. 치대. 한의대는 곧잘 일어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단과대학에서 그런일이 일어났다는 얘기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왜 그럴까요?. 모든 대학의 학생의 일제히 동맹휴업을 하고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하기 투쟁한다면 지금이라도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봅니다.
    각자도생은 도살할필요도 없이 알아서 죽어주는 가장 좋은 길이죠.

    • 늙은도령 2015.05.16 15:01 신고

      자신의 이익에는 민감한 것이지요.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이익만 챙기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지요.
      이런 면 때문에 노인과 농민, 저소득층, 저학력층이 보수를 찍습니다.
      이기적인 고학력자, 전문직종의 행태에 무조건 보수를 찍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이기적인 집단을 비난합니다.
      정말 추잡한 놈들입니다.

      대학생이던 청춘이던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는 옹호해줄 생각도 없습니다.
      그 동안 꾸준히 공부해보니 결국은 정치인을 욕하기보다 내가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정당이 이기게 돼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런 면에서 언제나 패배하고 있습니다.

  5. 이후 2015.05.16 10:39

    대학생들이 나사가 빠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똑똑할지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오합지졸입니다. 그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소수에대해 분노는 하지만. 자신들이 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선대와는 다르게 안락함과 평안함을 누리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느끼지 않을수도 있겠죠. 하지만 객관적으로 여건이 더 낫습니다.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
    정부가 젊은이들을 무시할 수 있을때. 그리고 젊은이들이 무력감에 빠져있을때 사회는 퇴행합니다.
    먹여살릴 아내도, 자식도 없는 맨홀몸인 젊은이들이 두려운게 뭐가 있을까요? 자신의 미래. 혹은 자신들 세대의 미래는 자신들의 힘으로 강력하게 일궈가는 것이지요.

    • 늙은도령 2015.05.16 15:04 신고

      이미 대학생들은 길들여져 있습니다.
      특히 명문대일수록 더욱 길들여져 있습니다.
      옛날에는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일수록 사회적 책임감을 지녔습니다.
      지금처럼 경쟁이 심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때도 경쟁은 심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려서부터 경쟁해 올라왔다는 이유로 과거와는 다르다고 합니다.
      저도 그것에 수긍했고, 그래서 대학생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왔습니다.
      하지만 각국에서 벌어진 사례연구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거 결과를 보면 도저히 옹호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그런 삶을 선택했다면 그러라 하십시오.
      저는 더 이상 그들을 옹호해줄 생각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투표까지 하지 않는데 무슨 권리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6. 바람 언덕 2015.05.16 11:13 신고

    사회를 변혁시키는 젊은 세대들의 고사는 학생운동권의 쇠멸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이것 역시 수구보수들의 집요한 전략이 교육계 전반에 걸쳐 오랜시간에 걸쳐 작동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을 경시하는 풍조를 지속적으로 조장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유하지 못하고 철학이 결여된 세대이다 보니 역사와 사회 속에서 주체적 자아로서 행동하지 못하고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상태에 머물 수 밖에는 없게 됩니다.
    지금같은 세대야 말로 젊은 세대들의 역동하는 에너지가 필요한 시점인데,
    그들은 지금 도서관에서 스펙이나 쌓겠다고 머리 싸매고 있습니다.
    전 그들에게서 우리사회의 절망을 봅니다.

    • 늙은도령 2015.05.16 15:07 신고

      원래 신자유주의는 교육제도를 통해 학생운동을 쇠멸시키고, 그들을 체제의 노예로 만듭니다.
      학생들은 거기에 저항할 힘이 없어서 일찌감치 포기하고요.
      게다가 기술공학의 발전과 제조업의 쇠퇴로 일자리도 줄어들었습니다.
      국가는 양질의 일자리 만드는 것을 포기했고요.
      그러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대학생을 옹호합니다.
      그 다음의 것, 즉 투표와 집회에 이르면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삶을 소비하는데 관심이 있지, 창조하는 데는 별로입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선택하는 것이기에 세상을 바꿀 노력에 동참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더 이상은 옹호하지 않을 것입니다.

  7. 한석규 2015.05.16 11:32 신고

    멋진분이시네요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8. 공수래공수거 2015.05.16 15:05 신고

    박창진 사무장..멋지고 대단한 사람입니다
    응원합니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는 못할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16 15:11 신고

      그럼요, 나 아니면 누군가 할 것이기에 내가 하겠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논리입니다.
      내가 내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지 남을 핑계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안 하면 됩니다.
      그것만 분명히 하면 됩니다.

  9. 머무는바람 2015.05.16 18:14 신고

    휴 잘보고 갑니다

  10. base 2015.05.16 22:24

    공교육이 사교육화 된지가 꽤 오래되었지요. 교육에 있어서도 오직 승자 독식의 원리만 작용하여 공부만 잘하면 모든것이 용서되어 아이들에게도 특권의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계층화와 빈곤의 양극화가 이루워져 상위층 학생들은 공부를 출세의 수단으로 그 외에는 관심이 없고, 중하위계층의 아이들은 무관심과 포기의 대상으로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 상황입니다. 그들에게 성찰과 비판, 사회적 변화에 대한 관심, 책임과 의무, 친구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이해, 용서와 사랑, 올바른 시민의식과 역사 의식등을 요구한다면 어른과 사회의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오직 지식만을 쌓아 높은 점수만 얻으면 되는 교육을 시켜놓고 무엇을 바란단 말입니까!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에게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어른들이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야 그나마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게 아닐까요. 아무것도 물려줄 수 없는 이 비참한 현실에서...

    • 늙은도령 2015.05.17 02:36 신고

      어른들이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인간의 조건과 삶의 가치, 사랑과 연대의 소중함, 협력과 평등 속에서 나오는 진정한 자유, 나와 타인의 존엄, 수평적 관계에서 나오는 우정, 정의를 향한 분노의 가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실천적 노력의 중요성, 무한한 창의성의 원천인 호기심, 엉뚱함 속에 담겨있는 빛나는 가능성... 정말 많은 것들을 아이와 나눠야 하고 이끌어주되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 희망을 희망할 수 있는 불굴의 의지, 물질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생각하는 힘의 위대함 등등을 심어줘야 합니다.

      전 앞으로 어른으로서 대학생 이상의 청춘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들을 격려하되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으니, 반대의 방향에서도 접근하려 합니다.
      피하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 안주하지 말라고 말할 것입니다.

      청춘이 무력해지면 미래는 없습니다.
      아이가 꿈꾸지 못하면 미래는 없습니다.
      어른이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면 세대 간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런 노력들을 할 생각입니다.

  11. 여행쟁이 김군 2015.05.17 02:04 신고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당

  12. 뉴론♥ 2015.05.17 06:12 신고

    오늘은 주말인데 늙은도령님도 수목원에 가서 맑은공기 마시고 좋은시간 보내세요

  13. *저녁노을* 2015.05.17 09:04 신고

    대단하신 분이군요.

    잘 보고갑니다.

  14. 일루와봐 2015.05.17 20:37 신고

    까뮈가 말하는 자유를 꿈꾸며 오늘도 나홀로 반항 중인데... 함께 하는 이들 보다는 뒤에서 손가락질하고 수근대는 이들이 더 많아요. 자발적 복종자는 능동적 자유인(이런 말이 있다면)을 못잡아 먹어 안달이지요 퓨후후
    남은 썬데이 나잇 최대한 즐겁게 보내 시길 바래요 ;)

    • 늙은도령 2015.05.18 00:03 신고

      저는 남을 의식하지 않으려 합니다.
      누군가는 햇을 것이라는 것보다 나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도 안 한다면 나라도 하겠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좌절의 시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잘난 맛이라도 일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뭐, 그것 뿐입니다.

  15. Cong Cherry 2015.05.19 15:54 신고

    참 대단하고 멋진 사람입니다.

  16. 2015.05.26 07:09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26 14:59 신고

      우리는 너무 소비자로 전락했습니다.
      정신과 이상, 가치, 신념, 자유, 평등 등을 잃어버렸습니다.
      솔직히 철학이 사라지면 이렇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물질적 변화만 일어나는 정신의 무덤 같은 국가가 됐습니다.


‘미스터 국보법’으로 불렸던 황교안이 보수진영의 후보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신냉전의 화약고로 몰고갈 수 있는 사드 배치를 확정하려는 광기까지 보이며 보수진영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걸친 황교안의 대선출마는 지지율이 20%를 넘으면 가능하겠지만,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이란 박근혜의 탄핵 인용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기에 대선출마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특검의 외통수(청와대 압수수색에 협조하라는 공문을 받았음)에 걸린 황교안이 청와대 압수수색과 특검 연장을 거부하면 대선출마를 포기하는 것이고, 이에 찬성하고 특검의 활동기간을 연장하는데 동의하면 박근혜와 선을 긋고 대선출마에 나서겠다는 뜻입니다. 이럴 경우 그의 지지율은 순식간에 빠져나갈 것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외통수에 걸린 것이지요. 내일까지 어떤 결정이던 해야 하는데 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의 지지율은 검증된 것도 아니고, 대단히 공허한 수구진영의 희망이 투사된 것에 불과해 대통령 출마를 선언(탄핵 인용 후)하는 순간 잠깐 동안은 각광을 받겠지만 3주 이상을 가지 못합니다. 그가 공직생활을 공안검사로 출발했고 그쪽에 편향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대선기간을 완주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의 장점이기도 한 대형교회의 지원도 예전처럼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은 그가 한 간증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세상은 변했는데 그는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모든 국민을 잠재적 빨갱이로 보는 공안적 시각에 갇혀 있는 황교안은 모 대형교회에서의 간증을 통해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이 법적으로 하자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황교안은 그 이유를 대한민국의 적화통일을 막는데 혁혁한 공헌을 한 자신과 공안검사 출신들을 좌천시켰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비롯한 공안검사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임에도 두 대통령의 종북좌파적 편향성 때문에 좌천시켰으니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공안검사 특유의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인식입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공안검사들이 국정원(중앙정부와 안기부)과 손잡고 조작과 왜곡, 고문과 협박을 남발해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 민주주의와 헌법을 유린했던 역사였다는 것은 상식인데, 황교안에게는 자랑거리입니다. 많은 공안검사들이 조작한 공안몰이와 희생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여서 그들의 악행(그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라 믿었을지 모르겠지만)은 천벌을 받아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황교안으로 대표되는 이들이 창조해낸 각종 공안사건들은 수없이 많은 국민들을 빨갱이로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1974년 4월 25일, 중앙정보부가 긴급조치 4호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240명을 체포하면서 시작된 민청학련 사건입니다. 고문을 통해 조작된 증거를 내세워 변호사도 없이 진행된 초고속 재판을 통해 사형선고를 받은 8명이 20시간 만에 사형에 처해졌는데, 이날의 기록은 국제사법사에 '치욕의 날'로 기록돼 있습니다.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와 공안검사를 동원해 독재를 자행했던 전형적인 수법 중 최악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은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과 노태우 정부를 위해서 깡패나 건달도 하지 못할 양아치 짓들을 서슴없이 저질렀고, 증거와 증언을 고문과 조작으로 만들어냈고, 국민을 감시하고 위협해 끊임없이 공포를 조장했습니다(독재는 공포를 먹고산다). 황교안이 이런 공안검사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증거는 '통합진보당 해산'과 함께, 국정원의 증거조작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본질이 “증거조작 사건이 아니라 간첩혐의 사건”이라는 국회 발언에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민주정부 10년’을 이끌었던 전직 대통령을 공안적 시각으로 판단해 범죄자로 폄훼한 황교안의 교회 강연은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권한대행으로서 자격이 없음을 말해줍니다. 하느님을 이용해 불법과 탈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성경에 나오는 사탄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정부를 지탱해주었던 국정농단과 공안정국 조성도 선배 공안검사인 김기춘, 그에 필적하는 우병우, 그리고 황교안이 주도적으로 조성하고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간증에서 드러난 황교안의 공안적 편향성은, 국정원과 사이버사가 조직적으로 자행한 정치와 선거 개입, 채동욱 검찰총장의 낙마와 댓글사건 수사팀 교체 및 좌천, 원세훈과 김용판에 대한 납득하기 힘든 검찰 수사,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및 공개에 대한 법적 처리 등도 특검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습니다. 황교안이 대통령 출마를 포기한 채 특검 연장을 거부한다면 국회가 나서 특검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활동기간을 1년으로 늘려도 됩니다.   



황교안의 강연 동영상을 통해, 낙마한 안대희와 문창극과 윤창중처럼 박근혜 정부의 인사가 청와대와 부처 장관들과 산하기관장까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모를 정도로 콩가루가 됐는지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해졌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새로운 의혹들과 제보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밀여드는 지금, 특검의 활동기간 연장은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합니다. 





공안검사들에 대한 두 대통령의 인사는 독재정권을 위해 숱한 고문과 조작, 범죄를 저지른 과거를 청산하기 위한 시대정신의 반영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것 이상의 권한을 남용했던 공안검사들에게 그에 합당한 자리를 찾아준 것이 두 대통령의 민주적인 인사였고 정의의 실현이었지 정치적 보복이나 빨갱이들의 환란이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이해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황교안이었기에 가능한 간증이었습니다. 



공안검사로서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그 부끄러운 역사를 하느님의 축복인양 포장하기까지 한 황교안을 정의의 법정에 세워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2011년 부산 호산나교회에서의 강연 동영상도 부산고검장 시절에 있었던 것이라 공무상에 얻은 정보를 누설한 혐의도 적용할 수 있어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노무현을 부관참시하는 것을 재미로 여기는 기독교 무리들이라 교회 안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해도.  





겉으로 드러난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일지 모르나, 김기춘과 황교안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주도한 공안정국 조성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이 유신독재의 복제품에 가까웠던 핵심 이유입니다. 어떤 독재도 모든 국민을 침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촛불집회가 보여주고 있다면, 대다수의 국민과 국익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목숨만 연명하려는 박근혜 일당의 시간끌기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자들의 광기에 십자가의 의미도 끝없이 퇴색하고 있습니다. 연인원 천만 명이 넘는 촛불시민들이 혹한의 날씨에도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라고 광장과 거리에 나왔음에도 황교안은 박근혜-최순실의 안위만 생각한 채 국민들을 욕보이고 능멸하고 있습니다. 천벌을 받아도 모자랄 자가, 대통령 출마라니요?! 황교안은 국가와 국민이 어떻게 되던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양심불량의 폭도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악마 같은 자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학생들과 종교인 등이 민주화와 인권을 요구하며 수업 거부나 시위, 유인물 배포 등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자 4월 3일 긴급조치 제4호를 선포하여 학생들이 수업거부 등의 집단행동을 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민청학련이라는 단체가 불온세력의 조종을 받아 반체제 운동을 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1,024명이 조사를 받고 180여명이 ‘인민혁명당과조총련, 일본공산당, 혁신계 좌파'의 배후조종을 받아 1973년 12월부터 전국적 민중봉기를 통해 4월 3일 정부를 전복하고 4단계 혁명을 통해 남한에 공산정권 수립을 기도하였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 지학순 주교, 박형규 목사, 김동길 교수, 김찬국 교수 등도 긴급조치 제4호 위반과 내란선동 혐의로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 사건을 취재하다가 체포된 다치카와 마사키 기자와 다른 일본인 1명도 내란선동죄 등으로 징역 20년의 중형에 처해졌다. 결국 이 사건으로 7명이 사형, 7명이 무기징역, 12명이 징역 20년 , 6명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사형이 선고된 8명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 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그 외 1975년 2월 15일 대통령 특별조치를 통해 석방되었다(법원은 2009년 9월에 무죄를 선고하며 독재의 도구였던 사법부의 흑역사를 반성했습니다ㅡ위키백과에서 인용한 민청학련 사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꼬장닷컴 2015.01.15 07:39 신고

    황교안은 편협의 교과서죠.
    완벽하게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1.15 14:41 신고

      정말 심각한 공안적 시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종교(기독교)는 아편이라 했는데, 그것 때문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잘 어울립니다.
      정교분리를 위해서라도 문제 있는 기독교와 공안검사들의 횡포를 막아야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1.15 08:56 신고

    저런 사람이 장관자리에 있으니..

    하느님도 무심하십니다

  3. 순록 2015.01.16 07:30

    쓰레기 같은 놈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들먹이다니 저런 악질이 성소의 강단에서 간증을 하게하는 엉터리 목사들은 역사가 퇴출시킬것이다.

    • 늙은도령 2015.01.16 15:06 신고

      정말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카톨릭이 종교개혁의 대상이 됐던 것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나 봅니다.

  4. 2015.01.17 20:06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1.17 21:56 신고

      그렇네요, 간신의 간증이네요.
      님이 단 한 줄로 압축하셨네요.

    • 의뜸이 2015.07.17 16:28

      피상적 장로들.정치장로들 이규택.황.명박.영삼.자살한 장로들

  5. 왜누리안티 2017.02.05 22:16

    문제는 여론조작과 어용언론, 그리고 선관위와 국정원!
    황교안은 잡아다가 해부해서 골상이며 뇌, 장기가 정상인지 기형인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지요.
    게다가 황교안은 국민 없는 나라+제2의 일제강점기+한국판 나치 독일+역사 디스토피아+참사 다발국+침묵의 카르텔 시대+경찰국가+공안정국+상위 1%만을 위한 나라의 도래를 바라고 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가 왜 종교를 아편이라 했는지 이해가 될 뿐더러 제가 무교인 이유도 다 거기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05 23:42 신고

      그러게요.
      종교가 세상을 망치는 시대입니다.
      예수와 신을 이렇게 이용해 먹는 자들이 문제입니다.

  6. 사람 사는 세상 2017.02.06 10:05

    저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닌 가짜 기독교인들중에 한사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성경이 잘못된 게 아니라 이를 이용하여 자기의 잘못을 포장하고 세상 사람들을 자기들의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는데 이용하는 무리들이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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