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권력이 주어진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은 형용모순 같지만 반권력적이었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다양한 정치체제를 검토한 끝에 삼권분립의 중요성을 밝혀냈지만, 그것은 경험에 의존한 형식적인 분류라는 한계어서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주의체제가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균형과 견제가 제일 중요한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세계화시대에 접어들어 국가의 역할이 늘어남에 따라 행정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거의 모든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쏠려 있는 남북분단과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한민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준 통치행위란 지독할 정도로 반권력적이어서 너무나 민주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최대한 분산시켰고, 군림하는 통치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쳤던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필자가 아는 한도에서 볼 때, 근현대사를 통틀어도 노무현처럼 통치한 지도자는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만일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가 인류가 선택한 최선의 체제라면, 그래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정부의 목적이 국민의 안전과 행복, 존엄한 삶의 질을 위해 정치적 자유와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고, 사회경제적 평등을 위해 기득권의 반칙과 특권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면,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은 민주적 권력이 어때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그것의 결과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통치권력의 행사라면 귀를 열고 들으려 했고, 치열한 열린 토론(박근혜의 수석비서관회의처럼 받아쓰기란 존재할 수도 없었다)을 통해 균형 잡힌 합의에 이르려 했다. 보다 많은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들으려 했고, 최대한 국민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소통을 강화하려 했다. 통치에 방해가 된다 해도 권력의 감시자로서의 언론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감수했다. 





그는 내부의 반발이 극에 달했던 연정을 한나라당에 제의할 만큼, 야당과의 대화와 소통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못한 대한민국 정치사회적 문화에 어떻게 해서든 민주적 절차를 정립하려 애썼고, 그것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탄핵도 받아들였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느리고 시끄럽고 힘들지만, 그럴 때만이 다양한 국민의 소리가 통치자에게 가장 잘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발전하고 넓어지며 성숙된다. 제왕적 권력이 주어진 최고 지도자가 통치행위에 있어서도 민주적 원칙을 지키고, 투명성의 확보를 위해 모든 기록을 전자화하고,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많은 기록물을 남겨 후대의 평가와 비판에 열린 자세를 취했다. 특권화된 기득권의 반칙과 특권과 타협하지 않았고, 박정희 유신독재시절부터 이어져온 기업들의 통치자금을 받지 않음으로서 한국 특유의 관치(정경관유착)에 종지부를 찍었다(이것을 조중동이 삼성공화국으로 변질시켰다). 



이 바람에 유수의 재벌과 대기업들의 경영진들과 정치브로커들이 시골양반이었던 노건평을 찾아가 바람을 넣었고, 거의 다 실패하고 말았지만 권양숙 여사에게 줄을 대기 위해 온갖 시도를 마다하지 않았다. 필자가 가장 슬프게 정의한 '노무현의 역설'이 바로 이것이며, 이런 반권위적 통치 방식 때문에 퇴임해 일반 농민으로 돌아온 바보 노무현을 통한의 죽음으로 몰고간 조중동과 국정원, 정치검찰이 '노무현 죽이기'의 프레임으로 악용할 수 있었다.                   

                                                              




노무현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믿었고, 다중지성의 진화와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조직된 힘을 믿었다. 그에게는 늘 사람이 먼저였고, 퇴임 이후에도 이런 삶의 진성성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필자는 국민국가가 탄생한 이래 노무현 같은 최고지도자를 본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제왕적 권력에 스스로 제한을 뒀고, 권력 집행의 민주적 절차를 실질적인 면으로까지 확대한 거의 유일한 지도자였다.

 

 

필자가 노무현에게서 본 것은 성숙된 민주주의에 적합한 미래의 지도자였다. 대통령으로서의 공과를 넘어 그를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 확대라는 인류사의 목표를 지향했던 미래의 지도자를 봤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로서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실천했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 확대를 견인할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가 지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를 믿었고 사람사는 세상의 도래를 믿었다.

 

 

이명박근혜 8년 동안 이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지만, 국정화에 반대하고 위안부협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청춘과 효녀연합 등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엘리트의 문제였을 뿐 시민들에게는 더욱 강렬한 요청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노무현의 죽음, 용산참사와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하면서 국민이 깨어나고 있다. 소녀들이 들었던 탄핵반대 촛불을 그들이 이어받아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상식과 원칙, 정의와 평화, 공존과 상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외치고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떠났다 해도 보내지 않았기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 있으며, 그것이 시공간을 초월해 2016년의 혹한에서도 횃불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청춘과 시민들의 열망이며, 잠시 가슴에 담아두었던 노무현 정신의 발화이다. 대체 이들에게 민주주의가 아니면 무엇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반골 2016.01.25 22:48

    노무현 대통령님이 그립습니다.

  2. 오종민 2016.01.26 00:22

    늦은밤 술한잔사고있는데 그때 지켜드리지 못한것이 천추의 한이 되네요 그리 갑자기 가실 줄이야

    • 늙은도령 2016.01.26 00:30 신고

      그러게요.
      정말 그렇게 힘들어했을 때 힘이 되주지 못했습니다.
      잊지 맙시다.
      기억하고 행동합시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 보루임을 증명합시다!!

  3. 공수래공수거 2016.01.26 08:49 신고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 버립니다
    잊어서는 절대 안될것입니다

    기억할것을 너무 많이 만들어 주는 이 정권,,
    빨리 없어져야,,

  4. 耽讀 2016.01.26 10:25 신고

    만약 김대중-노무현-이해찬-문재인 이 나라 대통령을 이어갔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5. 참교육 2016.01.26 20:18 신고

    우리국민들이 어쩌다 이정도의 대통령도 만들지 못하는지 ... 통탄할 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27 00:36 신고

      천민자본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한 것이 문제지요.
      먹고 등 따뜻하면 그만이라는.....
      물론 국민을 그렇게 만든 것도 저들이지만.

  6. 모도 2016.01.27 11:37

    좋은 글 감사합니다.

  7. 치버 2016.01.27 20:32 신고

    사진을 보니 눈물이 나네요...

  8. 조현갑 2016.01.28 18:44

    사람 노무현을 좋아했던 이기에...
    또 이른글들에 딴지거는 이들, 매도하는 이들, 모욕하는 이들이 신경써이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후손들은, 역사는 노무현 당신을 잊지않고 사랑할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28 19:55 신고

      박근혜까지 물러나면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가 얼마나 위대했는지 드러날 것입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았으니 노통을 자랑하셔도 됩니다.

  9. 노란풍선 2016.03.04 20:59

    진짜보고싶다 저어~~어린이들한테 밀짚모자 내려놓고 인사하는 저분 우리는왜?이리도 복이없어서 저런분을 빨리보낸건지?

    • 늙은도령 2016.03.04 21:16 신고

      네, 정말 국민에게는 고개를 잘 숙였던 분이었어요.
      그분을 너무 일찍 보내드렸어요.

 

 

좌파는 자유주의의 근간이었다. 좌파가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그 근간마저도 위태로워졌다.

 

                                                                        ㅡ 러셀 자코비의 《유토피아의 종말》에서 인용

 

 

 

4년 전 필자는 '안철수 현상'과 노풍을 비교·분석하면서, 안철수라는 그릇이 현상을 소화해낼 수 없을 뿐더러 현상의 주인공도 될 수 없다고 단언했었다. 조금은 착하고 신선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작은 이명박에 불과한 안철수가 보수가 아닌 진보적 가치를 담아내는 정치인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했었다. 필자는 그러면서 안철수가 현상에 휘둘리다가 진보와 보수의 경계에 갇혀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필자의 예언에 비하면 안철수가 오래 버텼고, 나름대로 선전한 것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현실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청춘들에게 정치에 재미를 붙이고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준 것도 안철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한길과 손을 잡으면서 난파 직전의 야권에게 변화의 가능성과 잠시나마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도 안철수의 정치적 공로라 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김한길과의 통합 덕분에 전통의 제1야당이 얼마나 형편없는 자들로 가득차 있는지 보여준 것은 안철수가 정치적으로 거둘 수 있는 최대의 업적이었다. 안철수가 혁신의 대상으로 거론한 '낡은 진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안철수 현상'이라는 너무나 버거운 짊에서 허덕이며 정치인 안철수가 거둘 수 있었던 성공은 기득권화된 보수야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만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보수에 있음에도 진보 진영에서 정치를 하고자 하는 한 안철수가 거둘 수 있는 정치적 업적은 제1야당의 허상을 만천하에 폭로한 것으로 충분하고도 넘친다. 그 덕분에 문재인이 지독할 정도로 가혹한 검증을 받아야 했고(여기에는 박지원의 공로도 크다), 20%밖에 안 되는 컷오프가 너무나 불만이지만 제1야당이 살아남으려면, 그래서 정권 창출에 성공하려면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수라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호남을 제외하고 제1야당을 말할 수 없지만, 호남만 팔아먹는 제1야당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부와 권력, 기회가 독점되고 세습되는 신자유주의 독재를 깨기 위해서는 당의 정체성을 우축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좌측으로의 이동으로 재확립해야 한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사회경제적 평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정치적 자유도 제한된다는 19세기의 깨달음이 되살아났다.  

 

 

'문안박 연대'를 천명했고, 그것의 유효성을 아직 거두어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와 함께 가겠다면, 그것까지 비판할 생각은 없다. 제1야당의 대표에게 그 정도의 재량은 있는 법이니까. '낡은 진보'에 대한 정의가 우선돼야 하지만, 혁신전당대회를 거부한 채 안철수의 혁신안을 수용한 것도 노무현의 기운이 느껴질 만큼 멋진 한수여서 비판할 이유가 없다. 문재인은 이제 달라질 것을 분명히 했고, 그 방향도 긍정적이다.

 

 

해서 안철수에게 요구한다, 자신의 정체성부터 분명히 할 것을. 박근혜의 유체이탈 어법처럼, 안철수로 대표되는 정체성의 모호함은 지긋지긋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 정도에 이르렀기 때문에. 혁신의 대상으로 지목한 '낡은 진보'가 무엇이며, '새로운 진보'는 무엇인지? 어떤 가치체계와 시대정신을 담았으며, 지속적이며 실현가능한 지향성을 가졌는지? 어떤 변화와 미래를 그리고 있으며, 그 결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인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12.06 21:37 신고

    안철수. 정말 걱정그럽습니다.
    이 사람이 야당을 두조각 내기 위해 새누리가.심어놓은 사람이라는 유비통신이 사실이 아닐 까 의심스럽습니다.

    • 늙은도령 2015.12.06 21:44 신고

      유비통신이 꾸준히 나왔지요.
      그는 원래 보수에 가야 했는데, 거기서 승부를 봤어야 했는데....

  2. 불루이글 2015.12.06 22:52 신고

    지금 안철수의 행보는 마지막 몸부림 수준 에 지나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가 당을 떠나는 것 보다 당에 남아 있는게 당의입장에서는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여겨 집니다.
    이제 문대표와는 레벨자체가 깜냥이 안되는 인물이 되 버린 사람 입니다
    한때 반짝했든 영광을 되돌아 보며 몸부림 치는정도로 치부 해야 겠지요
    문대표는 마지막 의리를 지키려 매몰 차게 내치지는 않고 있을 뿐이라 여겨 집니다.

    • 늙은도령 2015.12.06 23:06 신고

      안철수는 처음부터 새누리당에서 춥발했어야 합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으니 이 모양까지 온 것이지요.

  3. 잠이안옹당 2015.12.07 02:23

    러셀의 말은 한국에서는 적용이 안되는거로 압니다.
    스코틀렌드의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자유주의 사상은...
    한국에는 애초에 정착한 적이 없어서......
    cfe 같은 소규모 협회?에서 몇몇 교수들이 유일하게 그나마 연구하고 관련책을 번역한게 전부.....

    제 주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보통 한국의 좌파는 사회주의 막시즘 성향이 강한지라 러셀의 말의 정반대죠
    그렇다고 한국의 우파가 자유주의 성향을 띄는것도 아니고
    한국의 우파경우(예:새누리) 경제운용하는것보면 자유주의하고는 거리가 멀더군요.
    국회선진화법때문이라고 항변하기도 하는데. 정작 공동체사회건설하자느니 단통법을 만드느니 하는걸보면.
    한국 우파의 이념적성향은 중도좌파 성향이 강하더군요.

    • 늙은도령 2015.12.07 02:54 신고

      러셀이 말한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술로 바뀐 자유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좌파가 자유주의의 근간이었다는 말은 일종의 역설적 표현이며, 현실사회주의의 실패 때문에 자유의 근원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죽었다는 표현입니다.
      경제운용으로 좌우를 구분하는 것은 주류경제학의 주장일 뿐이지, 현실경제에서는 자유주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법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허구적 아이디어에 불과한 자기조정시장이 자유시장으로 변했을 뿐, 경제운용에서 좌우가 나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서 좌우가 나뉘는 것입니다(뉴턴 역학과 다윈 진화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마르크스와 밀 등이 정치경제학이라고 하면서도 경제학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좌파가 마르크스에 경도돼 있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마르크스의 오류에 경도돼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한국 진보정당의 한계도 여기서 나온다고 봅니다).
      마르크스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정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진실일지언정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추상화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의 우파는 기회주의자들의 모임이라 언급의 가치도 없습니다.
      유승민조차도 진정한 우파가 아닙니다.

      참고로 자유주의에서 자유가 빠져나와 자유방임이라는 강자의 자유로 바뀌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들어와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선취하는 것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대해 공부하실 수 있다면 더 큰 이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4. 잠이안옹당 2015.12.07 02:27

    실제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표주자인 오스트리아학파는 아예 한국에서 배우는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하고요.
    오스트리아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교수가 국내유일하게 1~2명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자유주의 경제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국내에 거의 없다고봐야할정도로
    자유주의의 불모지인 상황이기도합니다.

    • 늙은도령 2015.12.07 02:57 신고

      그러나 독학할 수 있을 만큼은 책들이 출판된 상태입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연관성을 아는 것만으로도 님의 공부는 정확하고 훌륭하니 충분히 공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참 러설은 제가 공부한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저는 구좌파보다 신좌파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러셀의 주장에도 일정 부분 동의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5. mylive 2015.12.14 02:37

    시대에 덜 떨어진 양파.쪽파만 찿다가 꼬마민주당으로
    쪽박 찰 것이다.국민이 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는데.그대들은 쪽파.양파가 그리 중요한가.국민곁에
    없는 쪽파.양파는.그림에 떡이요.존재 가치도 없은 배부른 인간들에 말 장난 일뿐이요.

    • 늙은도령 2015.12.14 03:23 신고

      문재인은 노무현 이상으로 내외적인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이제 최대 걸림돌이 하나 사라졌으니 그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입니다.
      호남의 기득권들만 탈당하면 더욱 분명한 변화를 보실 것입니다.



신자유주의화를 국제적 자본주의의 재조직화를 위한 이론적 설계를 실현시키려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 또는 자본축적의 조건들을 재건하고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해석할 수 있다.


                                                             ㅡ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에서 인용





지금까지 신자유주의를 다룬 책 중에서 가장 명료하게 신자유주의를 압축한 설명이 위의 인용문이라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이해하려면 꼭 숙지하기를 바랍니다. 푸코가 밝혔듯이 신자유주의는 19세기의 자유주의가 통치술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생긴 상위 1%가 하위 90%를 상대로 벌인, 일종의 계급전쟁입니다. 



공통의 이해와 이익을 공유하는 계급은 하위 90%가 이루어야 할 것인데, 신자유주의에서는 상위 1%가 공통의 이해와 이익을 위해 계급을 형성합니다. 이것 때문에 소수에 불과한 지배엘리트들이 하위 90%의 돈과 노동을 탈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상위 1%는 사회주의, 하위 99%는 자본주의가 적용된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합니다. 





상위 1%에 근접한 9%는 체제의 간수로 하위 90%를 감시하고 분류하고 범주화해서 상위 1%의 필요에 맞게 관리하고 동원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잘 돌아가도록 하위 90%를 각각의 임무를 수행시키며 그들의 노동과 부를 착취합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노동착취와 함께 임금과 혈세(정부사업 및 국가업무의 민영화 등으로)까지 탈취합니다. 



체제의 간수로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의 경영진이나 중역들이고, 재벌이나 대기업의 경영진과 고위임원, 교육기관의 수장이나 종신교수 및 프로페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급진적 지식인, 고위공무원, 상급법원 판사, 정치검찰과 경찰간부, 교도소장, 공장장, 각종 감독관, 용역업체 간부, 범죄조직 보수 등등 각 분야에서 체제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상위 1%의 이익을 실현시키는데 일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신분상승의 가능성인 사회이동성을 말할 때 주로 인용하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 9%에게만 해당합니다. 신자유주의가 정착되기 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례가 다양한 계층에 적용됐지만, 이제는 체제의 간수에게 적용됩니다. 상위 1%가 정치적 용어로 경제를 말할 때 쓰는 성공이니 대박이니 하는 것들은 성공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체제의 간수에게만 유효한 것이 신자유주의 체제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좌파적 버전과 우파적 버전이 공히 존재하며,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근본주의를 내세운 극우적 버전(시장자유주의 우파라고 순화해서 부르기도 한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경제규모는 커져도 국민의 소득은 늘지 않고, 정치적으로는 1원1표를 성립시키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일상화한 것을 말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위계적 질서가 강한 초국적기업이나 대기업 집단, 거대금융업체, 슈퍼리치 등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지배엘리트의 이익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과 자본 편향적인 법치주의(현재의 권력과 자본에게 무한대의 자유를 주기 위해 체제의 반대세력을 합법적으로 억압하는 것이 목표)를 말합니다. 교육적으로는 권력과 시장 주도의 교육제도를 공고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1%의 지배층과 99%의 자발적 복종의 피지배층을 구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탈성장사회의 교육과 학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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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을 쓴 조하나 버크만은 신자유주의가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경영진과 주주들이 통제하는 위계적 기업, 자본주의’로 구성된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이룰 수 있는 이유가 이것에 녹아있습니다. 박근혜의 권위주의적 통치(줄푸세), 재벌의 황제경영 등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과 《쇼크 독트린》을 쓴 나오미 클라인은 소련과 동유럽, 남미를 박살낸 시카고보이즈(프리드먼의 제자들)와 하버드 신자유주의자(제프리 삭스가 대표적이었다)들이 보여주었던 통치방식에 따라 재난자본주의, 카지노자본주의, 쇼크자본주의라고도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와 혼란 시기(전쟁, 내전, 금융 및 경제위기)에 적용해야 해야 이식이 가능하며, 권위주의적 정부가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정지시킬수록 성공확률이 높습니다.



현대 신자유주의의 탄생지인 독일의 경우 좌파적 버전(사회적 시장경제)이 상당 부분 살아남았고(필자는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에서 사회주의적 요소와 민주주의가 배제된 것이 우파적 버전으로 발전했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를 생각이다), 유럽 각국에 사회민주주의(민주적 사회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시장사회주의라고도 한다)의 형태로도 남아있습니다.



우파적 신자유주의는 영미식 신자유주의라 하며, 최근에는 미국식 자본주의 또는 근본주의적 신자유주의라고 합니다. 이것의 기원은 리프먼, 미제스, 하이에크, 프리드먼, 나이트, 포퍼 등이 참여한 몽페를랭 협회(초기 이름은 액턴-토크빌 협회였다)가 결성됐을 때 구체화된 신자유주의(국가 개입을 극도로 반대하고, 통화주의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중앙은행의 독립, 자유방임 시장경제와 이를 위한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가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극우적 버전인데, 권위주의적 정부, 제왕적 대통령, 위계적 재벌, 기득권화한 양당, 노조와 파업 불용, 비정규직 양산, 상시해고, 취업규칙 완화, 최저임금의 악용, 각종 규제 철폐, 경제민주화 회피, 경쟁 중심의 교육, 지역적 차별, 언론의 상업화, 안보 강조, 재난자본주의, 시장 중심의 경제주의, 여성의 상품화, 세대 간 갈등 조장, 소비지상주의, 사법과 인식의 보수화 등이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정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가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사회주의적 요소 때문에 민주정부 10년을 뺀 60년을 내내 극우적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였지만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치고 있으며, 박정희 향수에 사로잡힌 37.5%의 고정지지층만 확보한 상태입니다. 이들 중에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은 0.0001%도 안 되겠지만, 이들의 열성적인 투표 참여로 인해 하위 90%의 돈을 상위 1%로 이전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현재의 한국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치적 자유도 사회경제적 평등도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것도 극우적 신자유주의가 남북분단 상황을 악용해 최대로 번성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재벌 오너도 한 사람의 시민에 불과한데 국회에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이 마치 나라를 망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된 것도 극우적 신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인 모든 파업에 불법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이 가능하고, 기업의 경영실패는 노동자에게 전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평등에 기반하는 민주주의가 최소화됐고, 부자감세와 서민증세가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것도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성공을 말해줍니다. 한국 현대사를 성공한 자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국정교과서 부활도 극우적 신자유주의가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헬조선에 가깝습니다. 집권세력이 포털을 대놓고 길들이는 독재적 행태가 가능한 것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민주주의를 최소화하는 극우적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세습자본주의가 정착됨에 따라, 뉴라이트 계열의 부활하는 것은 역행하는 역사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정치엘리트와 위계적 재벌의 경제엘리트가 이끌고 있는 상위 1%가 지배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 출발은 잘못된 광복의 형태(남북 분단)에 있었고, 이를 이용한 친일부역자들과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맥아더의 오판이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적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려면 박정희 시절의 압축성장과 IMF 외환위기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IMF 외환위기부터 다루겠습니다.  




10월9일 첫 만남을 가지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청공(靑空) 2015.09.12 18:19 신고

    왜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이런 식으로 정착이 되었을까요? 저는 조중동과 재벌, 이승만의 자유당부터 지금의 새누리당까지 이어지는 기득권층(이라 부르는 매국집단, 재난집단)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철학 따위는 없고, 영악함을 제외하고는 지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 어떤 것이라도 짓밟고 망칠 수 있는 이들이요. 저는 이념과 체계조차 인간 이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추악한 이들을 잉태한 것은 일제라고 생각합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사회학과의 게오르크 폴만 교수의 전세계 엘리트들의 이동경향성을 추적한 연구에서 한국은 비정상적으로 영미에 편향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미국의 무국가성에 대한 이해없이 문화적 토양과 법과 국가체계가 상이한 한국에 무분별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심었습니다. 미국에 자국의 국가기밀을 팔려고 서로 다투는 그 모습은 미국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국가와 사회의 의사결정에서 이들을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압도적이고, 그들의 금력과 권력 또한 반대진영에 비해서 너무나도 공고합니다.

    제대로 된 후속세대라도 키워야 할텐데... 작금의 교육과 사회가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들을 키울 수 있을지... 키우고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답답하네요.

    • 늙은도령 2015.09.13 03:39 신고

      기본적으로 한반도가 해방될 때 친일 부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한 것이 컸습니다.
      이 책임은 당시의 미 국방부와 맥아더에 있습니다.
      이들이 너무 안이하게 일본을 판단했고,소련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은 기회주의자의 천국이 됐습니다.
      더더욱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그것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한국이 친일부역자들은 친미사대주의로 방향을 틀었고 박정희 또한 그것을 철저히 이용해 먹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조중동과 친일 부역자들이 한국의 주요 엘리트가 됐습니다.
      미국 유학파들이 한국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도 일본이란 나라를 점령한 맥아더의 후원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일제의 교육제도가 그대로 정착했고, 한국의 국가체제가 미국과 일본의 혼합물이 됐습니다.
      여기에 압축성장은 도덕의 필요성을 없앴고 성공만이 살길이라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것들을 더 이야기해야 하지만 아무튼 한국은 현대로 접어들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공지상주의와 경제주의를 거둬내야 다음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거둬내야 조중동도 친열 부역의 후계들도 몰아낼 수 있습니다.
      한국적인 것과 유럽식 철학, 체제 등을 합쳐야 미래가 있습니다.
      제가 한국적인 것들을 글로 옮기지 않는 것은 유럽을 먼저 이해해야 미국의 문제를 알 수 있고, 그래야 한국 지배엘리트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글로 옮기기에는 너무 길어 지적공동체가 잘 되면 거기서 풀어야겠지요.
      우리나라에도 철학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대가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을 각성시킬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국민들에게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대단히 어렵지만 하나씩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최근 많은 움직임들이 있으니 점점 나아질 것입니다.
      최소 10년은 갈등 상황이 폭발해야 미래가 있습니다.

  2. 돼지+ 2015.09.13 00:27 신고

    이게 절대 바뀌지는 않지만 바뀌지않는이상 저희 애들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갈수 있을까요

    • 늙은도령 2015.09.13 03:43 신고

      제가 보기에는 10년 내로 대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일단 세계적으로 더 이상 이런 식의 경제와 정치가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부류들이 늘어났습니다.
      가장 빠른 길은 미국이 바뀌는 것이지만, 아무튼 신자유주의의 폭주는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인터넷이 조금 더 좋은 콘텐츠를 반영할 수 있으면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이고요.
      한국은 현대성의 나쁜 점들이 모두 모여 있는 난장판이지만, 그것이 용광로처럼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3. 참교육 2015.09.13 08:07 신고

    어둠이 짙어진다는 것은 새벽이 가까워졌다는 희망을 말하지요.
    우리사회는 더 이상 물러설수 없는 막장에 가끼워지고 있습니다. 자본은 자기네들의 세상을 구가하지만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깨어나야 하는데.... 깊은 잠에 빠진 민중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합니다.

    • 늙은도령 2015.09.13 23:39 신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자본의 힘이 너무 강합니다.
      그들은 실질적인 면에서 강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명목상의 자본은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그런 것이 불가능합니다.
      정치와 사법까지 얽매여 있느니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합니다.
      헌데 그런 힘을 시민이 만들지 못하니 외부효과가 있어야겠지요.
      문제는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것이라, 걱정이 앞섭니다.

  4. besso 2015.09.19 01:41

    님 글을 읽다보면 웬지 정토회가 생각이 납니다. 희망의 내음...
    진정한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이 만나서 좋은 세상을 만들면 참 좋겠습니다.
    다만 인류라는게 원래 탐욕이 근본이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오히려 정화해보자는 식으로 .. 뭐랄까 참회의 마음으로 접근하는게 좋다는 생각도 하구요.



많은 전문가와 언론들이 미국과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이유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접어들었고,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니 헷갈릴 만도 하다.





필자도 한 가지만 제외하면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박근혜와 시진핑이 공유하는 것으로, 전 세계를 1%의 수중에 넘겨준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있다, 최고지도자에게 제왕적 권력이 주어지는 권위주의적 독재정치와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혼합이라는(등소평과 장쩌민이 밀턴 프리드먼을 스승처럼 따랐다)..



자기조정 능력이 있어 시장참여자 모두에게 최적의 이익을 제공하는 완전시장은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유토피아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양한 종류의 시장으로 분할한 뒤, 자기조정 능력이 있는 전 지구적 차원의 완전시장으로 통합하는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조정과정을 왜곡하는 어떤 개입도 없어야 한다.



문제는 완전시장(시장근본주의)이라는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아 무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고, 파레토는 ‘사회적 계획가’라고 했다. 베버는 ‘청교도정신’이라 했고 로크는 ‘사유재산’이라 했다. 하이에크는 ‘자유에의 열정’이라 했고, 프리드먼은 ‘자유방임’이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추상적이고 허구적인 개념이어서 현실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권위주의적이고 제왕적인 정치권력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공식적으로 모든 경제학자는 사회주의자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조정 능력이 있는 완전시장에 이르려면 민주주의를 제한할 수 있는 정치권력이 필수적이다.



푸코가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통치술로 전환된 자유주의를 다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설파했듯, 독일이 원조인 신자유주의는 국가(정부)가 자유방임이 최대한도로 구현된 완전시장을 이루기 위해 ‘경쟁을 최대화하고 규제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를 테면 국가의 독점을 막기 위해 국영기업(국가업무까지)을 민영화해야 하고, 규제(관세 등의 세금 포함)가 없는 자유무역을 시행해야 하고,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국가지출(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최소화해야 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허용해야 한다.





결국 신자유주의의 유토피아인 완전시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정부)가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에게서 일시적이라도 민주주의와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평등과 자유, 기본권 등을 포기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와 시진핑은 이것(신자유주의 통치술)이 가능한 제왕적 권력의 소유자다.



박정희, 등소평, 피노체트, 리콴유 등이 완전시장을 지향하는 시장경제를 인정한 독재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듯이, 박근혜와 시진핑도 신자유주의 통치술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제한할 수 있는 박근혜가 대국굴기를 이루기 위한 시진핑의 전승절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부)가 모든 국민이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보장하고, 그것에서 나오는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박근혜와 시진핑의 공통점이 그것 아니면 무엇이 있겠는가? 



1%에게는 무한한 부와 권력과 자유를, 99%에게는 한정된 부와 자발적 복종, 각자도생을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통치술, 제왕적 권력도 모자라다고 주장하는 박근혜가 국가자본주의와 대국굴기를 꿈꾸는 시진핑의 전승절 행사에 참여하는 이유다. 외교적 고려는 그렇게 크지 않다. 박근혜가 가고 싶을 뿐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8.29 11:07 신고

    서방 지도자는 한명도 참석을 안하더군요
    시진핑을 중심으로 좌근혜 대접을 받고 싶었던거겠죠..

    • 늙은도령 2015.08.29 15:12 신고

      대통령 맛에 이것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무튼 2년5개월.... 잘 지나가야 할 텐데....

  2. 행인 2015.08.30 18:01

    박근혜가 유일하게 잘하는게 대중국외교인거 같습니다
    중국이 북한을 얼마나 압박했으면 김양건과 황병서같은 북한 최고위급지도자들이 4일동안 잠도 못자고
    남한과 협상하게 만들었을까요

    • 늙은도령 2015.08.30 19:28 신고

      네, 중국이 상당히 밀어붙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재발방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이비 학자들을 동원한다 해도 이윤 추구 외에는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는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와 통치술로서의 자유주의(경쟁을 최대화하고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경제 중심으로 국가가 돌아가도록 만드는 승자 중심의 통치술)가 손을 잡으면 부와 기회를 독점하는 극소수의 수중에 권력이 넘어가고, 절대다수의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전체주의적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평균적으로 따졌을 때 살아있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이 절망적으로 다가오는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수십 년 동안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병자에게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희망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가장 끔찍하게 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희망고문과 열정패이가 일상일 때는 힐링마저 또 다른 절망의 연장에 불과할 뿐입니다.  





운이 좋아 양질의 일자리와 부의 재분배를 조금이라도 챙길 수 있었던 기득권 세대들은 어떻게든 나머지 삶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출생 때부터 이것에서 배제된 중하위층의 1030세대들은 기득권의 식탁에서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두고 무한경쟁을 펼쳐야 생명이라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흙수저라도 올릴 밥상이라는 것이 아예 주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 명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커지고, 사회경제적 약자일수록 극단으로 내몰리게 되는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항목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런 퇴행적 현상은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확장됐으며, 공고화됐습니다. 특히 가장 신자유주의적 나라인 '헬조선'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첫째,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았고,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둘째, 정치 시스템은 시장 실패를 바로잡지 못했다. 셋째, 현재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 공업 국가들이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했으며) 이 세 가지 주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다. 불평등은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낳고, 이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여러 악순환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에서 인용).






이런 정치와 경제의 실패 때문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앞선 세대가 남긴 것이 풍요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결핍인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빈약한 복지와 공정한 재분배를 감추기 위해 방임에 가까운 자유가 주어졌으나, 좋은 직업을 얻을 기회를 주지 않아 저임금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세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평등조차 박탈된 이들은 주로 1030세대에 집중돼 있습니다. 2015년 현재 30세 이하인 사람들은 지금처럼 엿 같은 현실이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그 해결책마저 그들이 늙은 후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평생을 지옥에서 살게 되는 최초의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까지 더하면 청춘들이 감수해야 할 빈곤과 위험의 정도는 무한대로 늘어납니다.



이들은 ‘자신이 원인 발생에 가담하지도 않았지만, 그 피해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고, 문제의 해결에도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최악의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로서는 전혀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어 체념이 보편화되고 내면의 분노로 시달리는 ‘저주받은 세대’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앞선 세대가 남긴 것을 따먹기는커녕 그들이 남긴 쓰레기를 뒤집어써야 하는 최초의 세대인 이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죽장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절규하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기득권 세대들이 나누려 하지 않고, 정부가 부의 재분배를 강제하지 않고, 재계가 따르지 않는다면, 1030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지옥과 다름없습니다.



이들이 해체된 가족과 무력해진 사회에 정착하지 못한 채 디지털 세상을 배회하는 것도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하나로 묶어 ‘지배의 변증법’을 만들어낸 기득권의 무제한적인 탐욕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부와 기회와 권력은 상층부에 쌓이고, 빈곤과 차별과 위험은 중하위층과 청년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탈피할 때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걸 수 있습니다.



지금은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청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쟁취할 때 '헬조선'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 시작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충분한 돈과 자원이 있으며, 소수의 기득권이 모든 부와 기회를 독점하지 않고 나누고자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인류는 미래세대의 것들마저 가져다 썼기 때문에 넘칠 만큼의 부와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1030세대의 미래를 포기한 나라에 어떤 희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5060세대와 정치권, 정부와 재계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들이 남긴 것으로 해서 1030세대가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의 세습과 생명연장의 꿈이 미래세대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살아있는 자체가 치욕이며 부끄러움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8.12 08:41 신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들의 고통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정말 눈에 보이는것만 믿어서는 안될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16:36 신고

      네, 그래야 하는데 이 놈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
      답답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 참교육 2015.08.12 09:17 신고

    막장 자본주의에 태어난 세대들.... 삶 자체가 비극입니다.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취급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야합니다. 체제를 바꿔야합니다. 유럽식 사민주의로라도...

    • 늙은도령 2015.08.12 16:38 신고

      네, 자본주의 다음이 사회주의인데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를 고민할 때입니다.
      인류는 더 이상 자본주의를 고집하면 안 됩니다.
      이제는 사회주의로 가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혼합하면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칼 폴라니가 가장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3. 일본의 케이 2015.08.12 09:29 신고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받아들리기 힘든 현실...

    • 늙은도령 2015.08.12 16:43 신고

      청년들의 분노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울 생각입니다.
      어차피 제가 글을 쓰는 이유도 그것에 있으니까요.

  4. 耽讀 2015.08.12 13:36 신고

    개혁은 힘듭니다.
    민주혁명이 필요할 때입니다.
    민주혁명을 일으킨 후, 경제민주화와 정치민주주의 그리고 친일부역자들과 독재부역자, 자본부역자들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 미래는 암울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16:44 신고

      네, 민주주의의 혁명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말로 혁명이 필요합니다.

  5. 다노시무 2015.08.13 12:52 신고

    오랜만이죠.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조만간 일이 생겨도 생길것 같네요.
    그러탐 같이 죽창을 들어야 하겠죠

    신기하게도
    제 카톡배경도 죽창사진
    입니다..ㅎㅎ

    그럼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옹~~~^^

    • 늙은도령 2015.08.13 20:36 신고

      대단히 위험한 시기입니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최악이 될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나라를 말아먹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각종 불평등과 차별이 심화되고 대물림됨에 따라 수없이 많은 '사회경제적 잉여'와 '쓰레기로 버려지는 삶'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인 2030세대의 경우 부채의 늪과 저임금 단기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을 사는 존재로 전락했다. 



이런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고 재기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했던 사회적 자본마저 무너져 내려 빈곤의 고착화와 대물림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이에 대해 다양한 자료와 통계를 사용해 여러 가지 분석과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만, 경제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특별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의 모든 연구들이 2030세대의 미래를 암울하고 비관적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을 다룬 저자 중에 에릭 우슬러너는 《신뢰의 힘》에서 문명의 진보가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인류를 정반대의 결과를 양산하는 이유에 대해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의 붕괴를 자세히 다루었다. 그는 수많은 자료와 통계, 인터뷰를 통해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모두에서 신뢰의 관계가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이 2030세대에게 지옥 같은 삶을 강요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가 이런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절망적인 현실에 갇혀 ‘헬조선’을 외치는 2030세대를 이해하는데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해준다. 활기와 도전으로 넘쳐야 할 청춘이 행복한 삶과 발전 가능성으로 연결되지 않고 절망적인 고립와 배제로 연결되는 세상이란, 모든 관계에서 상호 호혜성과 공존의 기반인 신뢰가 깨져버린 현대의 척박함을 보여준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개인들 사이의 연계,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신뢰성)’인데, 우슬러너는 ‘신뢰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경제규모는 갈수록 늘어나지만 삶의 질은 갈수록 줄어들고, 인생주기에 따른 기본적인 삶의 경험과 과정을 포기하는 세대로 전락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기 베이비붐 세대의 신뢰 증가현상은 미국의 신뢰 감소현상이 세대교체가 아닌 모종의 요인에 의해 초래됐음을 의미한다. 전기 베이비붐 세대의 신뢰 증가현상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되살아났다는 것이 반영됐다. 다른 집단, 예를 들어 베이비붐 세대보다 젊은 세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타인을 덜 믿고 미래를 덜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낙관론에는 그들의 소득향상과 함께 공평한 소득분배가 반영되어 있다. 전기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과 이후 세대보다 소득을 더 공평하게 분배받았다. 따라서 그들이 가장 낙관적이고 신뢰 지향적인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불평등과 차별이 심한 나라가 된 미국이지만, 한 때는 최고 세율이 91%에 달하는 등 미국의 역사를 통틀어 성장과 분배가 가장 완벽하게 이루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거의 유토피아에 근접했던 1940~45년 사이에 출생한 전기 베이비붐 세대는 안정적인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그 이후의 세대에 비해 정치와 공동체 참여, 종교와 봉사활동 등에 적극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 때가 미국에서 사회적 자본이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전후 체계가 무너지고, 공정한 분배를 담당했던 조세정의가 무력화됨에 따라 상위 1%에 천문학적인 부와 권력이 집중됐고, 그에 따라 중하층의 경쟁이 심화됐고, 적자생존의 시장근본주의가 정치의 영역까지 지배하기에 이르면서(특히 리처드 피트 등의 《불경한 삼위일체》를 보라)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가 급격히 악화됐다.



미국인들이 서로를 덜 믿게 되면서 점점 더 작고 동질적인 공동체 안에서 보호막을 두른 채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이(소수집단, 동성애자, 이민자) 다수에 비해 특혜를 받을까봐 우려하는 것 같다. 호황기에는 점점 커지는 파이가 빈곤과 차별 같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 경제적 불평등이 커지자ㅡ예로부터 경제적 불안을 느끼면 늘 그랬듯이ㅡ내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고립주의와 근본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외국인‧소수집단‧이민자 등이 다수의 복리를 해치는 위험한 이방인으로 간주되었다. 일반적 신뢰가 개별적 신뢰에 무릎을 꿇어 이제는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 믿는다.



이런 결과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양산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인종차별이 심해지고 있고, 각종 총기사고, 증오범죄, 10대 출산율, 이혼율, 자살률, 정신질환자, 아동사망률, 빈부격차, 부정부패, 탈세 등이 높아진 것도 미국사회를 지탱해주던 사회적 자본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정치의 극한대립은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고, 이제는 공공연히 두 개의 미국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미국의 사회적 자본을 이렇게까지 망쳐놓은 것은 정경유착과 상위 1%가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하는 신자유주의가 미국의 정치와 재계를 장악한 다음에 일어났다.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났고, 압축성장의 폐해가 폭발하고 있는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갈수록 청년실업자가 늘어나고, 저임금 비정규직만 늘어나는 현실까지 감안하면 2030세대의 절망과 분노는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미국은 주에 따라 다르지만, 지역 단위의 복지와 사회적 안전망은 일정 수준 이상은 작동하고 있어 저복지 국가인 한국에 비교하면 2030세대의 절망과 분노는 약한 편이다.  





리처드 윌킨스와 케이트 피킷의 《평등이 답이다》를 보면,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사회적 자본이 높은 주일수록, 즉 소득불평등이 적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주일수록 행복지수가 높게 나온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결론을 내놓았고, 이는 한국에서도 어김없이 진실이다. 



서울의 강남에서 강북, 분당과 죽전, 평촌과 일산 등의 신도시 순으로 대학진학과 직업의 종류 등이 결정나는 한국의 상황은 미국은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지역과 부에 의한 차별이 너무나 심한 편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아니고 욕이 나온다. 최근에는 개천마저도 썩은 물과 녹조로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일 만큼 열악해졌다. 



따라서 소득향상이 좋았고 소득분배가 공평했던 시절에 열심히 살아온 5060세대들이 모든 것이 나빠진 2030세대들을 비판하려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들이 받고 있는 압력이 얼마나 큰지, 그런 것들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지난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국가와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근본적이고 깊이,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기제까지 자세히 봐야 한다.



특히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한계를 정확히 파악한 칼 폴라니의 성찰처럼, 사회의 일부분이었고 정치의 하위개념이었던 경제ㅡ특히 초국적기업과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시장경제가 자원의 희소성을 내세워 상위 1%의 리그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과 사회적 자본의 붕괴가 각각의 세대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피해자이지만 극단적 폭력을 선택한 일베가 자유(책임이 따른다)와 자유방임(책임을 거부한다)을 구별하지 못하는 극우적 버전의 2030세대라면, ‘헬조선’을 외치는 2030세대는 정치적 자유의 출발점인 사회경제적 평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적 버전의 잉여들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복지국가는 사회주의적 가치가 반영된 복지와 사회안전망, 사회적 자본이 잘 갖추어진 나라들이다.

  


사회적 자본과 행복지수를 나타내는 각종 수치가 OECD 가입국 중에서 최악으로 나오는 한국에서 이제야 ‘헬조선’을 외치는 2030세대가 나온 것은 오히려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아직은 소수이고, 지향점이 확실하지 않고, 어디로 흘러갈지, 어떻게 살아갈지 예상할 수 없지만 신자유주의와 이명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작용인 것만은 확실하다.



벗어날 수 없는 먹이사슬과 한없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탈출하고 싶은 이들의 절망과 분노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이 보장돼야 해소될 수 있기 때문에, 극도로 우경화된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편에서 서서 상대적 약자들에게 폭력과 차별, 혐오와 배제를 가하는 일베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죽창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들의 절망과 분노, 외침을 한국사회가 제대로 반응하고 포용하지 않으면 파국적 결말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base 2015.08.07 19:26

    역사적으로 국민의 생활이 극도로 피폐해짐으로 일부 세력 또는 민중에 의해 개혁이나 혁명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이 그러한 징후를 보이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듭니다. 단지 먹거리만의 문제가 아닌 현대병으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고있은 아픔이 진정 안타깝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07 19:57 신고

      네, 병리현상이 자꾸 커지네요.
      하지만 헬조선은 일베와는 달리 기득권에 반하는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일베는 권력에 손잡고 폭력과 차별, 혐오를 조장하지만 헬조선은 더 이상 피해를 입지 말자는 것이기에 젊은이들의 정서를 보여줍니다.
      여론을 움직이는 여론환경이 변하기를 바랍니다.

  2. 아이스킹 2015.08.08 02:08

    제가 느끼는 대한민국은 차이를 만드는 집단과 차이를 극복하려는 두 그룹의 충돌이라고 봅니다. 다수가 극복 할 수 없는 격차로 고통 받지만, 다수가 차이를 만드는 정당에 투표를 합니다. 이 괴리를 선명하게 알리고 누가 격차를 계속해서 만드는지 명확하게 각인 시켜야만 젊은 이들이 희망을 이야기 하고, 정의를 말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할 겁니다.

    • 늙은도령 2015.08.08 02:41 신고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언론은 광고로 돌아가기 때문에 차별을 만드는 자들의 요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국 방법은 하나입니다.
      혁명에 준하는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것은 정치세력화밖에 없습니다.
      정치철학이 확고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런 정치세력이 나와야 합니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는 한 이 세상을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스스로 참여하고 연대하지 않은 한 답이 없는 것이지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8.08 08:26 신고

    아래에서 위로 치고 올라가는 분노의 정치 세력을
    언제쯤이면 볼수 있을까요?
    젊은 혁명가가 나와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08 17:12 신고

      네, 그래야 합니다.
      정말로 젊은 정치인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4. 참교육 2015.08.08 12:42 신고

    자본이 만드는 세상은 막가파 세상입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청년들이 깨어날 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5. 호빵멘 2015.08.11 23:45 신고

    요즘 헬조선이란 말이 나와서 뭔가 했는데 작성자님 글을 읽고 모두 해소했네요.
    정말 핵심을 잘 집어 주신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트윗으로 퍼 갑니다...

    • 늙은도령 2015.08.12 00:06 신고

      답답한 내용이지요.
      어떻게 인류가 여기까지 왔는지, 대한민국이 이렇게도 형편없는 국가가 됐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전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이 보수정당에 표를 주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가지 연구가 나와 있는 상태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극단적 보수주의자 레이건에게 표를 주었던 미국정치학회 회장이었던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입니다. 두 저자는 이 책들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법안에 찬성하는 공화당과 보수정치인에게 표를 주는 이유와 민주당의 아성이었던 캔자스주가 공화당으로 돌아선 과정에 일어난 일을 방대한 자료와 통계를 통해 객관적으로 밝혔습니다(최근에 들어 이런 사례연구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에서 보듯이 영세자영업자와 한계 상황에 이른 중소기업을 위해서라도 최저임금 인상의 시기와 폭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저소득층이 많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일종의 동병상련인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디스’하는 결과로 귀결됩니다. 이들의 주장대로 하면, 영세자영업자와 한계기업들이 알바나 저임금 노동자를 쓸 수 있게 하라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열악한 상황의 고용주는 어떻게든 버텨나가겠지만, 그들보다 훨씬 숫자가 많은 알바나 저임금 노동자는 노동착취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이들은 또한 경제가 침체된 상황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올리면 영세사업장이 망해 더 많은 실업자가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 3D업종처럼 열악한 노동이 필수인 곳에서는 이미 외국인노동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시대는 변했고, 물질적 풍요로움도 경험했는데 1960년대의 노동으로 돌아가라니 청춘들이 차라리 취업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없어 부도와 폐업을 하는 영세사업장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내수경제가 어려운 것은 정부와 경제 주체들의 잘못 때문이고, 그래서 서민의 소득이 줄어서 벌어지는 일인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가난한 사람들끼리 생존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가진 자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것도 계급의식을 가질 수 없는 하층민들의 이전투구 때문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것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 대한 것인데 이상하게 이념적 색칠이 가해집니다. 이런 이념적 색칠을 하는 주체는 당연히 보수 성향의 언론과 방송, 집단과 세력들입니다. 이들의 주장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확대재생산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자들은 경제를 모르는 아마츄어이자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붕괴시킬 수 있는 자들로 공격받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의 감정적 골은 깊어집니다. 그 결과 반대파의 대부분이 보수정당에 표를 주는 것을 선택합니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빈부의 격차가 벌어졌음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공화당을 찍고, 우리의 경우 새누리당을 찍습니다. 물론 이들은 당장의 삶이 중요하기에 장기적인 성찰을 할 수 없고, 이것이 그들을 보수적으로 만듭니다. 그들에게 변화는 두려운 것이지요.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헌법, 국가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구성원이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며, 국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세금을 걷고 거대한 관료제를 유지하고, 공권력을 독점하는 것입니다. 헌법은 국가에게 강요되는 규범으로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권을 실현하도록 정부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류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온갖 종류의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지고, 법을 지키는 것은 국가가 가난한 구성원들끼리 싸우는 일이 없도록 조세정의와 공정거래, 부의 재분배와 복지 및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최대화하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불평등하게 태어났다면 인간의 의지와 연대로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격렬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입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노동을 할지라도 최저임금을 받으면 기본적인 삶의 질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것인데, 지금의 논란은 본말이 전도된 채 진행되고 있습니다. 1대 99사회의 등장을 말하는 현실에서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이해와 욕망의 이분적 갈등을 유발시켜 분할통치를 공고히 하는데 있습니다. 홍준표의 무상급식 중단과 저소득층 자녀지원이 가장 전형적인 예입니다.



월평균 4만원밖에 안 되는 돈이지만, 이런 돈이라도 지원받는 쪽은 보수정당을 찍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쥐꼬리만한 지원으로 자녀의 성적이 올라가고 삶이 달라질 것도 없는데, 어떻든 지원을 받았다는 그것 때문에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정당에 표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받는 최소한의 지원마저 끊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상당하고요. 





이런 선별적 복지와 공적 부조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세상을 바꿀 힘은 없기에 그것이라도 받으려면 보수정당에 표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상당수 사람들과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형편없는 투표율이라도 과반수가 넘는 국회의원을 보수정당에 몰아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민국은 남북분단 상황이 맞물려 보수정당의 절대적 우위가 계속해서 지속됩니다. 민주정부 10년은 그래서 한국 현대사의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당장 몇 푼의 돈이라도 손에 쥐려면 보수정당을 찍는 것이 훨씬 유리한데 진보정당을 밀어줄 이유가 없습니다. 



전과 14범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집값 상승이 기대됐기 때문에 욕망의 투표를 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이명박과 보수정당에 몰표를 주었습니다. 참여정부가 좌파정부여서 고의적으로 집값을 떨어뜨렸다는 것에 조중동이 집중포화를 가해 유권자들이 이명박에게 표를 던지도록 만든 것도 한몫했습니다. 





전 세계의 경제 역사를 살펴보면 진보정권이 집권했을 때 성장률도 높고 빈부격차도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저호황이 지속된 시대에는 거의 모든 정부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서 확률적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 시기를 빼면 진보정당의 업적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은 전 세계 공통의 진실입니다. 언론과 교육이 중요해지는 것이 이 지점인데, 이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은 보도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은 채, 보수정당의 주장(자본과 재계의 입장을 대변)만 확대재생산함으로써 TV와 신문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노년층을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언론은 성인들에게, 교육은 청소년들에게 보수적 가치를 주입시키고 의식속에 각인시켜 보수화시켜버립니다. 이렇게 수십 년을 길들여지다 보면 보수적 가치와 현실 간의 엄청안 괴리에 무감각해집니다. 합리적 이성은 사라지고 동물적 욕망만 남습니다. 이런 인간의 욕망에 호소하는 보수정당들은 신앙처럼 자유민주주의를 울부짖으며 '자유(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방임에 가깝다)'를 위해 사회경제적 평등도 '파이가 커져 흘러넘칠 정도(낙수효과)'에 이르기까지 뒤로 미루자고 합니다. 기한은 정해진 것이 없고, 기준도 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평등은 물론 자유까지 박탈하는 정책을 남발합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으며, 보통의 믿음보다 훨씬 더 적게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이익과 욕망이 명령하는 데로 행동하고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존재입니다. 이것 때문에 당장의 이익과 욕망에 호소하는 보수정당의 호소가 먹혀듭니다. 언론이 선정적인 방식으로 연일 떠들어대고요. 



그 결과 저학력 빈곤층은 보수우파의 노예가 됩니다. 이런 경향이 극단에 이르면 '민주주의보다 독재가 더 낫다'는 《자발적 복종》에 이릅니다.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애국심이라고 포장합니다. 국가가 조금의 지원금만 주면 폭력적인 관제집회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완벽한 노예에 이르며, 정신적·물질적 주인인 보수정당과 후보에게 표를 몰아줍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열악하게 만들고 가난을 대물림하게 만드는 보수정당을 찍는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남북이 분단된 대한민국은 이것이 일상화된 나라이고, 이제는 종편을 통해 노년층을 대상으로 극단적 종북좌파몰이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선별적 복지나 국가 지원금 등을 제공할 수 있는 보수정당과 후보에게 표를 몰아줍니다. 이미 세뇌된 그들은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면 떡고물의 크기가 커질 것이란 환상의 포로가 됐기 때문에 진실을 알려줘도 빨갱이라며 극도의 분노를 표출합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방법이 없고, 진보적 성향의 중년층과 청춘들과 극심한 세대갈등이 빠져듭니다. 선별적 복지를 받기 위해, 하나의 부스러기라도 더 얻기 위해, 자신을 꼴통이나 꼰대라 하는 젊은이들을 용납할 수 없어 보수정당과 후보에게 표를 줍니다.



문제는 당장의 이익과 욕망 때문에 보수정당에게 표를 주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있습니다. 보수정당이 집권하는 기간 동안 다른 계층의 소득 증가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이 더 늘었는지 살펴야 하는데, 보통 이것을 하지 않습니다(클릭하면 한국적 상황까지 설명한 2부로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모두 2015.03.19 18:06

    부자들은 일자리를 주니깐 ㅋㅋ

  2. 참교육 2015.03.19 18:24

    피해자가 가해자 편을 드는 세상....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마취되어 있는 민초들... 그 마취제는 바로 교육과 언론이 아닐까요?
    미췬된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 늙은도령 2015.03.19 18:29 신고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들과 <자발적 복종>까지 함께 보면 답이 보일 것입니다.

  3. 팍쉰보병 2015.03.20 06:30

    도령님은 에둘러 말씀하시지만...
    '국민정신의 부패'가 촛점이라 생각합니다.

    공평무사하고 투명한 기준이 없으니 민초들이 '목구멍이 포도청'을 빙자
    돼지새퀴들에게 굴종하고 돼지새퀴들은 사회 분배구조를 더욱 더 의곡시키고...

    쥐새퀴 찍어서 집값 오르지 않아 득 본것 없고 푼돈 몇푼도 얻는 것 없는
    민초들의 자멸인 사기꾼 놈에게 휘둘리는 '양심불량' 투표의 결과로 인한 폐해는,
    기대 이익 수혜의 부도라는 간단한 게 아니라 ,
    아예 처음부터 올바르고 공정한 행위의 규칙자체가 소멸되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셨듯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니
    경제적 이해타산과는 괴리된 사회정의(正義)적인 소양 고취가
    오히려 이익 지향적인 속물근성을 자제시켜 공정한 행위 가능성에의
    기대치를 높이지 않을까 ?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3.20 06:46 신고

      그럼요, 사회정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의 실천을 고취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런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진정한 의미의 혁명도 가능합니다.

  4. 머무는바람 2015.03.20 10:18 신고

    잘 보고 갑니다. ^^*

  5. 공수래공수거 2015.03.20 10:28 신고

    가진자들의 교묘한 선전,선동에 놀아난 결과이고
    무지의 소치이기도 합니다

    결국 선거를 통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선가때만 되면
    그간의 일을 까맣게 잊고 또 현혹되거나 세뇌당합니다

    • 늙은도령 2015.03.20 16:49 신고

      방법이 정말 사악합니다.
      용납이 안 됩니다.
      정말 천벌을 받을 놈입니다.

  6. 2015.03.22 06:58

    인간자체죠.
    가난했던 사람들도
    돈벼락맞고 부자되고
    고용주 되고
    사업주되면 달라집니다.
    국민이 깨어야됩니다.일이년 걸릴일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든 선진국이든 복지국가든
    그나라 국민들이 생각하는 수준만큼만
    이룽ᆞㄱ진다는

    • 늙은도령 2015.03.22 16:53 신고

      네, 민주주의는 씨그럽고 힘든 것입니다.
      언제나 진행 중이며 완성도 없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내에서 민주주의 전체 흐름을 보다 좋은 쪽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만이 인류 전체가 향유할 민주주의 질도 높아집니다.

  7. 읽다가 2015.03.22 22:39

    읽다보니 중간쯤에 '인간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선택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선택' 했다는 문구에서는 좀 의아해지네요.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반대개념은 자본주의인데....민주주의의 반대개념은 독재입니다.

    • 늙은도령 2015.03.23 01:11 신고

      아, 그것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하나의 체제로 인정하던 시절이 있어서 그때의 결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가 맞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반대라는 개념은 조금 다릅니다.
      실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경제적 개념이고, 사회주의는 정치경제적 개념입니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전체주의입니다.
      독재는 민주주의를 통해서도, 전체주의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게엄령이나 긴급조치 같은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일시적인 독재를 허용하는 것이라서 정치적 개념으로 볼 때 조금은 다릅니다.
      사실 국가를 기준으로 하면 개인화하는 경향과 전체화하는 경향으로 나누어진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8. 민주화 2016.01.24 19:27

    가진자들이 언론을 잘 길들어서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네요

    • 늙은도령 2016.01.24 19:51 신고

      방송 중 하나만은 독립적인 방송이 있어야 합니다.
      JTBC도 중앙일보화가 심각해져 초반같지 않습니다.



미국 국방부에서 내부통신용으로 만들었던 인터넷이 민간에 이전된 이후 사이버 세상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루었습니다. 바퀴와 시계, 내연기관과 분업화된 포드의 생산라인, 활자와 세탁기 등이 세상을 바꾼 것에 비해 인터넷이 바꾼 세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미흡하다는 것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1990년대 말 미국과 일본, 영국과 한국 등에서 벤처거품이 폭발하면서 짧은 경제위기를 초래했던 것도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이 약속한 세상이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SNS까지 더해지면서 ‘인터넷과 SNS의 역설’까지 등장했습니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자스민 혁명’이 아랍을 들끓게 했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참혹한 실패로 귀결되면서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강화됐습니다. 제도권 언론을 대체할 것 같았던 블로그의 열기도 한여름 밤의 꿈처럼 벤처거품의 폭발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사이버세상의 부작용이 갈수록 쌓이고 축적되는 가운데, 빅브라더의 출현까지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네트워크 효과란 초국적기업을 위한 전가의 보도가 됐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출현은 인류 진화의 과정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기에 이르렀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세상을 뒤엎는 가운데서 묘한 변화가 감지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밝히기 힘들었던 권력과 자본의 심부에서 벌어진 일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빅브라더의 출현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인터넷과 SNS은 극도로 혼탁하지만, 그런 혼탁함 속에서 권력과 자본이 남긴 쓰레기와 악취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수백 년 간 쌓여온 기득권의 벽이 여전히 높지만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대선개입도 밝혀졌고, 현직 부장판사의 일베충 같은 댓글도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빛의 속도로 세계를 질주하는 것은 최상위 1%의 전유물 같았는데, 이제는 그런 파시즘적 속도에 99%가 익숙해지면서 정치적 평등의 실현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철학과 지식, 과학기술의 최종 목적지가 완전한 자유의 실현이라면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희망의 단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직 막말과 거친 표현이 난무하는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사회경제적 평등까지 이끌어낼지 알 수 없지만, 사회경제적 평등에서 출발하는 민주주의가 역설의 최고 경지에 이르러 정치적 평등을 시작으로 사회경제적 평등을 이루어내지 말라는 법도 없을 듯합니다.



자본주의의 폭주가 신자유주의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완전히 뒤집힌 세상이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면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성찰처럼 ‘액체근대’나 ‘유동하는 공포’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갈수록 정형화된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제멋대로 출렁이는 세상이 제자리를 잡을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병과 잠시도 홀로 둘 수 없는 어머님 때문에 집과 병원과 마트만 왔다 갔다 하는 필자가 지적 여행(최근에는 철학의 형이상학에 빠져서 헤매고 있지만)을 계속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음도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임스 베니거가 《통제혁명》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우주의 탄생과 진화의 역사가 보여준 것처럼, 최상위 1%가 작금의 혼란을 통제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최근에 들어서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새로운 역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이런 추세가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과 한병철의 《투명사회》의 디스토피아로 갈지, 아니면 뒤집힌 세상을 또 한 번 뒤집는 역설을 보여줄지 알 수 없지만, 인터넷과 SNS에 부정적이었던 필자가 ‘인터넷과 SNS의 역설’에서 처음으로 희망을 봤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인원이 처올린 뼛조각이 우주선이 될 수 있다는 스탠리 큐브릭의 놀라운 영상미처럼.



돈의 크기와 상관없이 저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합니다. 제가 힘겨운 투병에서 짧은 승리를 이어가면서 삶의 역동을 경험할 수 있음도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가져다준 고마움이 아닐까 합니다. 가끔은, 정말 가끔은 세상이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희망에 빠져봅니다.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 대한민국 곳곳에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이들을 하나씩 걸러내고 있음에 힘을 내봅니다. 희망과 절망의 비율이 1대 99라고 해도 1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면 희망의 대가로 견뎌내야 할 압도적인 절망도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제국》과 《다중》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전복적 스피노자》에서 “민주주의는 두려움의 제거뿐만 아니라 더욱 높은 형태의 자유의 구성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2.13 06:42 신고

    민주주의란 갈수록 법전에 남아 있을뿐입니다.
    전자개표도 수개표로 바꿔야한다는 운동이 일고 있더군요.
    정보화시대에 대한 공포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13 14:56 신고

      언제나 이런 암흑기를 거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합니다.
      완전한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행정, 입법, 사법 기능이 모두 있는 절대적 민주주의가 되면 가능한데 그것은 유토피아적인 것이지요.
      스피노자가 그렇게 생각했더군요.
      그에 준하는 절대적 일치성과 다양성이 동시에 하나의 체제에서 개인들의 집단적 사고로 이루어진다면 완벽하겠지요.
      그 근처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인터넷과 SNS 등은 사용에 따라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2. 꼬장닷컴 2015.02.13 08:01 신고

    아직 갈길이 멉니다.
    힘들고 지치지만 그럼에도 뚜벅두벅 내 갈길을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에서 백성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 늙은도령 2015.02.13 14:58 신고

      네, 민주주의는 언제나 갈길이 멉니다.
      흥망성쇄를 거듭하는 것이 그 내적 본질입니다.
      다만 최상의 상태에서 창조적 발전과 안전성이 유지될 때 국민은 권리를 누리며 의무를 다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는 절대다수의 민초에게 발현할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3. 耽讀 2015.02.13 08:10 신고

    아직도 저들음 힘이 셉니다. 뭉개고 가는 것이지요. 인터넷과 sns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지요. 조중동은 의제를 설정하고 종편은 하루 종일 극우시각을 전합니다. 오후에 식당에 가면 다 종편입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은 하늘에 떨어지는 보따리가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이 행동할 때 가능합니다.

    • 늙은도령 2015.02.13 14:59 신고

      조금씩 뒤집어 가는 것입니다.
      젊은이들 조중동 거의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힘을 가질수록 조금씩 나아지리라 봅니다.
      하나씩 각개전투를 해서 무너뜨리다 보면 아주 조금은 나아졌겠지요.
      그렇게 전진하는 것입니다.
      시끄럽게 떠들고 저항하고 투쟁하면 민주주의는 강화됩니다.

  4. 랩소디블루 2015.02.13 08:13 신고

    언젠가는 좋아지겠지욤 희망이란 항상 존재하니고 있네염.

  5. 공수래공수거 2015.02.13 08:45 신고

    그마저 없었으면 암흑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을겁니다

    항상 건강 돌보시면서 생활하시길...

    • 늙은도령 2015.02.13 15:01 신고

      네, 건강에 조심, 또 조심하고 있습니다.
      적정 글쓰기 이후에는 편하게 누워서 책을 일고 잘 먹고 있습니다.
      운동도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 항상 하고 있습니다.

  6. 바람 언덕 2015.02.13 10:17 신고

    건강만 하십시요...
    ^^*

  7. Starry 2015.02.13 12:09

    처음으로 흔적 남기고 갑니다.
    언제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8. 꼴찌PD 2015.02.13 15:59 신고

    공유와 확산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 인터넷과 SNS의 무서움을 알겠네요.

    • 늙은도령 2015.02.13 17:49 신고

      저는 처음으로 긍정적인 면을 봤습니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다중에 의한 민주주의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언제나 변화와 갈등의 대척점은 있지만 그런 가운데 일정한 합의를 찾아가는 모습.
      다양성과 주체성을 골고루 살아있는 공간....
      뭐, 이런 것들을 말합니다.
      제가 요즘 스피노자를 읽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9. *저녁노을* 2015.02.13 18:22 신고

    더 무서운 세상을 만들어버린 것 같아요.



최근의 아고라에 알밥 논객(보수 논객과는 다르다)과 알밥 댓글이 본격적으로 득실대기 시작한 첫 번째는 문재인 의원이 당대표선거에 출마한 다음부터입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 박지원이 있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새정연 당대표선거에서 지지후보 없음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있음은 당연합니다.



두 번째는 전혀 준비되지 않아 끝없이 헤매는 박근혜 정부의 ‘증세라 말할 수 없는 증세’에 분노한 서민과 유리지갑들이 본격적으로 복지 확대를 요구하고 나왔을 때입니다. 무상급식이 오세훈의 ‘땡규’ 주민투표로 전국적인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폐족이었던 친노의 부활과 함께 야당의 지방선거 승리로 연결된 경험이 새누리당으로서는 몸서리치도록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안 때문에 아고라는 알밥 논객과 알밥 댓글로 난장판이 됐습니다. 그들이 쓴 글들은 근거도 빈약하고 논리도 형편없지만, 서로를 밀어주거나 연속해서 글을 올리는 방식으로 아고라에 글을 올리는 많은 논객들의 좋은 글들을 밀어내고 묻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들은 공격적인 주제를 선정해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정부에 불리한 사안이 도출되면 그것을 변명하고 희석시키기 위해서 글을 올립니다. 테러 수준에 해당하는 그들의 글들은 초딩도 썩소하게 만드는 형편없는 글이지만, 일부 논객이 아고라를 등지는 것까지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종의 테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존재했던 댓글 테러는 진화를 거듭해 새누리당과 정부의 비판자인양 하면서 아고리언들이 댓글을 다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이는 아고리언 사이의 소통과 토론을 막는 것이어서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고라 고사작전의 핵심은 갈수록 진화하는 댓글 테러입니다.





미르네르 같은 슈퍼논객들이 활동하던 당시에 아고라의 영향력은 어지간한 제도권 언론보다 높았습니다. 인터넷업계의 독점적 사업자로 올라선 네이버는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는 필자가 글을 올리지 않았지만, 아고라의 명성은 다른 통로를 통해서 지겨울 정도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이 두 가지 사안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은 청렴결백한 서민적 지도자의 상징 같은 존재입니다. 수많은 아고리언들이 서민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은 아고라의 여론을 중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복지 확대는 수많은 아고리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선별적 복지는 표로 환원될 수 있는 정치권의 이익에 따라 수혜자가 달라지지만, 보편적 복지(중위소득 바로 아래를 목표로 한다고 해도)는 지지정당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권리로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보편적 복지는 사회경제적 평등에서 출발하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입니다. 이럴 경우에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고 존엄한 존재로서의 삶의 질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고대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고라’도 사회경제적으로 평등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적 공간이었습니다.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서민 지도자와 사회경제적 평등(역사적으로 볼 때 착한 성장은 이런 상황에서만 이루어졌다)을 실현하는 복지 확대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하나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귀찮고 국가재정을 이용해 분할통치를 선호하는 새누리당으로서는 끔직한 결과입니다.



알밥 논객과 알밥 댓글이 늘어난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고라 운영자들이 이런 무차별적인 테러에 맞서 제대로 된 글들을 ‘오늘의 아고라’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서민의 소통장으로서 아고라의 영향력이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알밥 논객보다 알밥 테러를 줄이기 위해 댓글 신고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논객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댓글을 많이 보는 편입니다. 댓글에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며,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쉼 없는 노력을 통해 지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듯이, 다양한 서민의 소통장인 아고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조금만 노력하면 알밥 댓글 테러를 줄일 수 있으며, 그것이 아고라를 통해 아고리언들의 여론을 정치권에 전달하고 압박하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사진 출처 : 아고라 화면 캡처, 구글이미지


                                  


  1. 뉴론♥ 2015.02.08 06:56 신고

    수업시간에 아고라에 대해서 배운적이 잇어서 아고라는 단어는 잊어먹지 않았네염 .

  2. 참교육 2015.02.08 08:30

    이제 제도언론에 대한 불신이 되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공중파를 독점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권력의 속내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대안언론이 제자리를 찾을 날을 기대해 봅니다.

    • 늙은도령 2015.02.08 16:04 신고

      대안언론이라도 강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조금이라도 미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3. 소피스트 지니 2015.02.08 10:15 신고

    다음 아고라도 안가본지 오래됐습니다. 어디가나 알바들이 득실대요... 그나마 깨어있는 블로거들의 글을 찾아보는게 나은 일이지요

    • 늙은도령 2015.02.08 16:25 신고

      그러면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아고라 이용자가 많아야 블로그 이용자도 늘어납니다.

      이곳 티스토리는 광고가 된다는 장점 때문에 공감 추천이 너무 적습니다.
      저는 제가 읽은 글은 무조건 공감 추천 누릅니다.
      가능하면 댓글도 다 달고요.
      그렇게 서로 노력하면 전체적으로 상승합니다.

      헌데 그 밑바탕은 아고라입니다.
      저도 블로그를 하게 된 것이 아고라 때문이었습니다.
      시장을 넓히는 것은 티스토리의 폐쇄성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고라 이용자를 이곳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이곳의 시장도 커집니다.
      그러면 모든 블로거에게 가는 혜택도 늘어납니다.
      저는 그것이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스템의 경우 티스토리 운영 주체만 돈을 법니다.
      광고비는 일정 비율로 나뉘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이 매우 싸게 평가되는 것입니다.

      저처럼 돈 없이 사는 사람(그러나 가난합니다. 소비를 안 할 뿐이지요)은 글을 쓰는 재미로 이곳에 글을 올리지만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글을 올리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시장을 키워야 합니다.

      에고....
      제가 사업하던 시절의 경영학만 강의했네요.
      시장규모를 늘리는데는 도가 터서 그만.....

  4. 공수래공수거 2015.02.09 09:43 신고

    저도 아고라에는 잘 가지 않습니다만
    그런일이 있었군요

    • 늙은도령 2015.02.09 16:06 신고

      개판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이용자가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보수세력이 아고라 고사작전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진보 세력은 물론 진보 진영 전체가 몰락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최근에 2개의 국가로 나눠진 수단은 예외로 할 때)라는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해낸 민주정부 10년의 주역이자 60년 전통의 거대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끝없는 추락이 자리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몰락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진보적 가치에 대한 왜곡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축소시켰다. 진보의 기원인 좌파라는 단어와 노조라는 단어에 반체제적이거나 종북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덧씌워지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반하는 현상이 일상화됐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확대는 계급적 차별과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로 대표되는 기득권(신자유주의적 지배엘리트)에 맞서, 진보적 가치의 핵심인 사회경제적 평등과 제도적 자유(표현과 결사의 자유가 핵심)가 존엄한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인권의 발전과 확대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이에 비해 법 앞의 평등(공화국의 가치)이란 개념은 영원히 달성될 수 없는 언어적 성찬이어서 기득권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보수적 가치의 핵심이다. 보수 정권일수록 법의 지배나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정치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사회경제적 평등을 죄악시하는 자유방임적 가치들은 언제나 보수적이다. 경제 분야는 60년대, 정치 분야는 70년대, 그 밖의 분야는 80년대에 접수해 자유방임적 가치들을 무소불위의 지위로 끌어올린 신자유주의가 가장 보수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화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개념으로 확장된 신자유주의는 보수정부가 초래한 IMF 환란을 이용해 최단 시일 만에 한국을 점령했다. IMF 환란과 민주화운동 때문에 민주정부 10년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지만, 신자유주의의 점령 때문에 진보적 가치들이 부식되는 것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전두환의 군부독재 때부터 기득권을 대변하는 족벌신문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조중동과 현재의 새누리당에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 뉴라이트로 전향한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수혈되기 시작한 것도 IMF 환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뉴라이트 인사들이 진보적 가치를 파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어서 민주정부 10년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었다. 여기에 IMF의 구조조정의 수혜자인 재벌들의 지배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동시에 사회 전 분야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진행됨에 따라 참여정부 중반부터는 진보 세력의 급속한 퇴락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쇠퇴를 필연적으로 불러오지만, 민주주의를 이용해 진보적 가치를 고사시키는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기술과 경험의 집합체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복지와 사회안전망의 확대가 경제성장과 함께 이루어졌지만, 진보적 가치는 신자유주의의 득세에 밀려 악화일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진보 세력의 몰락이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정치 분야라 해도 이런 추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진보 정당들이 참여정부 시기에 정체기로 접어드는 모순에 빠져들었고, 이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전 분야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됐다.



대한민국의 보수화는 되돌릴 수 없는 추세로 자리 잡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조중동과 무더기 종편의 등장, 방송장악까지 더해지면서 박근혜 정부의 탄생이 가능했다. 진보적 가치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극도로 줄어들었다. 안철수 신당과의 합당에서부터 박영선의 이상돈 영입 시도까지, 구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의 몰락도 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문희상 의원이 새 비대위원장에 오른 것도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나온 땜질식 처방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의 것들을 기반으로 했을 때, 새정치민주연합의 몰락을 불러온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두 개의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폭주가 만들어낸 계층구조와 이념구조의 변화가 중첩되는 것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두 번째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성향의 대중매체가 정치적 프레임 설정의 독점적 지배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의 부재이다. 



세 번째는 남북으로 분단된 지정학적 상황에서 왜곡된 정치적 이념의 경직성과 민주화운동의 경험에서 나오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부족과 인지부조화이다. 네 번째는 자본과 권력의 시녀이자, 동반자인 대중매체(전통의 조중동과 제도권 방송, 보수 성향의 거대 포털과 인터넷 매체들)가 주도하는 공적 영역의 사적 영역화에 대한 이해부족과 전략부재다. 민주주의가 불가능할 정도로 떨어진 투표율도 근본적으로 보면 이것에 기인한다.



이 네 가지 요인을 별도의 글로 다룰 것이지만, 신자유주의와 확대의 반대편에서 이루어진 진보적 가치의 축소와 왜곡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체성을 흔들었고, 브레이크 없는 몰락으로 이어졌다.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는 (형편없는 성찰과 되지도 않은 말장난에 그쳤지만) 이중에서 세 번째에 집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실은 현실이다. 수구와 강경 보수의 잡탕인 새누리당에 맞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정당으로써 새정연이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몰락한 진보정당이 부활할 수 있다. 인터넷이나 SNS, 촛불집회로 여론의 흐름에 영향을 줄지언정 현실정치를 바꿀 수는 없다. 거대양당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새정연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몰락해선 안 된다. 



  1. 중용투자자 2014.09.19 08:07

    진보와 보수의 구별이 어려울 정도가 되버렸네요.
    신자유주의는 우선 경제력으로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어 버리니 국민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불신도 확대되는 듯합니다.

    • 늙은도령 2014.09.19 16:17 신고

      새정연이 진보의 이름으로 몰락해선 안 됩니다.
      진보 정당이 부활할 때까지 새정연이 버텨줘야 합니다.

  2. 여강여호 2014.09.19 20:11 신고

    지금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력으로 진보정당 회생의 길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보수정당의 실패와 보수의 약육강식 민낯을 대중이 인식하기 전까지는....
    그래서 진보도 보수도 아닌, 보수적 사회가 만든 어거지 진보의 맏형 새정련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 같기도 하고요. 위 답글에서 말씀하신대로 버텨줘야 하는 것도 새정련의 막중한 역사적 소명이 아닐까 합니다.

    • 늙은도령 2014.09.19 20:56 신고

      네, 진보정당의 부활을 위해서 버텨줘야 합니다.
      극도로 보수화된 국가에서 진보정당이 부활하려면 새정연이 버텨주어야 합니다.

      단, 보수적 인사들이 나가 분당을 하는 것은 찬성합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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