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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나는 노무현을 통해 미래의 지도자를 봤다



제왕적 권력이 주어진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은 형용모순 같지만 반권력적이었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다양한 정치체제를 검토한 끝에 삼권분립의 중요성을 밝혀냈지만, 그것은 경험에 의존한 형식적인 분류라는 한계어서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주의체제가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균형과 견제가 제일 중요한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세계화시대에 접어들어 국가의 역할이 늘어남에 따라 행정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거의 모든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쏠려 있는 남북분단과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한민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준 통치행위란 지독할 정도로 반권력적이어서 너무나 민주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최대한 분산시켰고, 군림하는 통치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쳤던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필자가 아는 한도에서 볼 때, 근현대사를 통틀어도 노무현처럼 통치한 지도자는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만일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가 인류가 선택한 최선의 체제라면, 그래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정부의 목적이 국민의 안전과 행복, 존엄한 삶의 질을 위해 정치적 자유와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고, 사회경제적 평등을 위해 기득권의 반칙과 특권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면,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은 민주적 권력이 어때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그것의 결과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통치권력의 행사라면 귀를 열고 들으려 했고, 치열한 열린 토론(박근혜의 수석비서관회의처럼 받아쓰기란 존재할 수도 없었다)을 통해 균형 잡힌 합의에 이르려 했다. 보다 많은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들으려 했고, 최대한 국민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소통을 강화하려 했다. 통치에 방해가 된다 해도 권력의 감시자로서의 언론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감수했다. 





그는 내부의 반발이 극에 달했던 연정을 한나라당에 제의할 만큼, 야당과의 대화와 소통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못한 대한민국 정치사회적 문화에 어떻게 해서든 민주적 절차를 정립하려 애썼고, 그것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탄핵도 받아들였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느리고 시끄럽고 힘들지만, 대부분 정답에 근접한 합의에 이른다는 것을 지난 민주주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통치자와 헌재 같은 최고 지도자나 최고 기관에게 가장 잘 들릴 때 민주주의는 제 자리를 찾아가곤 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비틀거리고 삐걱거리면서 제 자리를 찾아가고 발전하며 단단해짐에 따라 보다 성숙된다. 제왕적 권력이 주어진 최고 지도자가 통치행위에 있어서도 민주적 원칙을 지키고, 투명성의 확보를 위해 모든 기록을 전자화하고,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많은 기록물을 남겨 후대의 평가와 비판에 열린 자세를 취했다. 특권화된 기득권의 반칙과 특권과 타협하지 않았고, 박정희 유신독재시절부터 이어져온 기업들의 통치자금을 받지 않음으로서 한국 특유의 관치(정경관유착)에 종지부를 찍었다(이것을 조중동이 삼성공화국으로 변질시켰다). 



이 바람에 유수의 재벌과 대기업들의 경영진들과 정치브로커들이 시골양반이었던 노건평을 찾아가 바람을 넣었고, 거의 다 실패하고 말았지만 권양숙 여사에게 줄을 대기 위해 온갖 시도를 마다하지 않았다. 필자가 가장 슬프게 정의한 '노무현의 역설'이 바로 이것이며, 이런 반권위적 통치 방식 때문에 퇴임해 일반 농민으로 돌아온 바보 노무현을 통한의 죽음으로 몰고간 조중동과 국정원, 정치검찰이 '노무현 죽이기'의 프레임으로 악용할 수 있었다.                   

                                                              




노무현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믿었고, 다중지성의 진화와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조직된 힘을 믿었다. 그에게는 늘 사람이 먼저였고, 퇴임 이후에도 이런 삶의 진성성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필자는 국민국가가 탄생한 이래 노무현 같은 최고지도자를 본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제왕적 권력에 스스로 제한을 뒀고, 권력 집행의 민주적 절차를 실질적인 면으로까지 확대한 거의 유일한 지도자였다.

 

 

필자가 노무현에게서 본 것은 성숙된 민주주의에 적합한 미래의 지도자였다. 대통령으로서의 공과를 넘어 그를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 확대라는 인류사의 목표를 지향했던 미래의 지도자를 봤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로서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실천했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 확대를 견인할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가 지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를 믿었고 사람사는 세상의 도래를 믿었다.

 

 

이명박근혜 8년 동안 이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지만, 국정화에 반대하고 위안부협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청춘과 효녀연합 등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엘리트의 문제였을 뿐 시민들에게는 더욱 강렬한 요청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노무현의 죽음, 용산참사와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하면서 국민이 깨어나고 있다. 소녀들이 들었던 탄핵반대 촛불을 그들이 이어받아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상식과 원칙, 정의와 평화, 공존과 상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외치고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떠났다 해도 보내지 않았기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 있으며, 그것이 시공간을 초월해 2016년의 혹한에서도 횃불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청춘과 시민들의 열망이며, 잠시 가슴에 담아두었던 노무현 정신의 발화이다. 대체 이들에게 민주주의가 아니면 무엇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