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양자역학은 크게 볼 때 이론을 세운 후 이를 증명하는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기본입자들이 무수히 발견되고 스핀처럼 양자역학적 운동 때문에 같은 기본입자라도 하는 역할이나 존재 방식 등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뉘면서 현대물리학은 매우 복잡한 학문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론(이론물리학)을 세우고 증명하는 일(실험물리학)을 한 명의 물리학자가 할 수 없게 됐습니다(아인슈타인이 대표적으로 그는 철저하게 이론에만 집중했고, 이 때문에 상대성이론은 물론 중력파의 존재까지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막노동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관측과 실험을 통한 증명은 실험물리학자들의 몫이었고요).  





이론을 먼저 세우고 이를 증명하는 것이 뇌과학으로 넘어가면 인공지능의 기하급수적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뇌의 역분석이 됩니다. 잘 조직된 실험에 의해 어떤 자극이 주어졌을 때 뇌의 특정 영역들(운동은 소뇌, 기억은 해마 등 핵심 영역이 존재)에서는 이에 상응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정밀한 고해상도 스캐닝으로 이런 변화를 관찰하면 카오스적(무작위적)이고 자기조직적이고 프랙털적인 형태로 새로운 신경망이 구축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수백조 개에 이르는 개재뉴런으로 구축된 수백만 개의 네트워크가 동원돼 뇌 전체에서 가장 적정한 변화(신경세포가 보낸 자극을 기억으로 저장하기 위해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는 것)를 이끌어냅니다. 이렇게 뉴런과 시냅스, 개재뉴런이 동원된 최적의 경로가 찾아지면(기억으로 저장되면) 허용된 한도 내에서 무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쓸모없는 경로들(시냅스 작용에 의해 연결된 뉴런들)은 모두 다 퇴화된 후 다른 용도의 경로 구축(기억)에 동원됩니다. 



특정 기억이 흐려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최적의 경로에 있는 일부 또는 전부의 경로가 퇴화돼 다른 기억의 저장에 이용된 것을 말합니다. 단 기억은 개재뉴런으로 구축된 수백만 개의 네트워크 곳곳에 분산되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부분적인 기억만 남는 것도 이 때문이며, 역으로 퇴화된 경로가 다시 구축돼 기억이 완전히 되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장기기억)이라는 것도 이런 방식으로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아무튼 뉴런과 시냅스, 개재뉴런 등이 만들어낸 최적의 경로는 뇌스캐닝 결과를 보면 하나의 패턴으로 인식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 즉 기억, 감정, 인식, 의식, 사유 같은 지적 활동(지능)은 그에 상응하는 패턴의 형태를 띱니다. 1980년 초반에 인공지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AI의 겨울)했던 것도 뇌의 역분석이라는 것을 거의 할 수 없었고 패턴 인식에 관한 획기적 이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뇌스캐닝 기계처럼 뇌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이 없었고 복잡계나 카오스, 프랙털 이론 등도 없었으니 당연한 것입니다. 





패턴! 이것을 찾기 위해 수십 년이 투자된 것이고, 그 덕분에 진화의 모든 과정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자, 인류 과학기술의 원천인 인간의 뇌를 복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전유물인 고도의 지능 때문에 창조론을 적용하던, 진화론을 적용하던 인공지능(기계 지능)의 출현은 필연이었습니다. 인간의 최종목적이 신이 되거나 근접한 존재가 되는 것이기에 인간 지능을 넘어선 기계 지능의 탄생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술 발전의 법칙에 따라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을 능가할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기계 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나 학자들은 현재까지 이루어진 기술 발전을 부정하는 공통점을 보이는데, 이는 인간중심적 발상에서 나온 구시대적 발상입니다. 어차피 기술은 발전할 것이고,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진행중이어서 15~20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중심적 사고라는 것도 상당 부분 무너진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성형수술만으로도 이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성형수술은 인공물을 신체에 넣는 것이며,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을 비생물학적 진화의 산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인공심장이나 신장, 관절, 여러 종류의 삽입물 등을 넣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신체는 생물학적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비생물학적 장기나 삽입물이 늘어나면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모호해집니다. 



만약 의식이나 인식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이 만족스러울 경우) 자신감 상승이나 자기만족적 감정 등에 의해 인식의 차원에서도 이전의 자신과 달라집니다. 건강을 찾은 환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의식이나 감정적인 차원에서 이전의 자신보다 나아진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발전이 아니라고 한다면 애당초 성형수술이나 아픈 장기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이런 예들은 수도없이 많고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생물학적 진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 아닐까요? 이런 식으로 다수의 전문가와 학자들이 인공지능과 사람과의 공존을 긍정적으로 얘기합니다. 이런 식의 사고가 극단에 이르면 뇌의 일부를 대체하거나, 인공지능과 뇌를 연동하거나, 아니면 뇌를 대체하거나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나의 피부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나 사이보그 같은 비생물학적 존재에 나의 뇌를 장착하는 것도 가능할 터이고요. 





제가 극도의 혼란에 빠졌던 것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인간이란 존재를 정의할 수 없었습니다. 창조론이건 진화론이건 인간이란 존재는 신에 가장 근접한 존재이며, 신에 가장 가깝게 가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사고하고 명상하는 존재입니다(불교의 경우 득도하면 누구나 신이 된다, 할렐루야!). 이런 인간적 특성은 신과 우주, 자연과 사물, 진화의 법칙에 대해 파고들 수밖에 없으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은 고도로 발달된 뇌입니다. 



뇌는 지능을 창출하고 지능은 영원하고 완전한 것을 추구합니다. 뇌, 즉 지능의 입장에서 보면 해탈이나 득도에 이르는 것보다 병에 걸리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온갖 제약이 있는 신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입니다. 이것만 영속할 수 있는 것으로 대체하면 못할 일이 단 하나도 없을 텐데 이놈의 신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바로 이런 생각이 과학기술을 끝없이 발전시켜왔고, 이제는 영속할 수 있는 궁극의 지능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영적 존재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게다가 인간이 영적 존재가 되는 것과 영속할 수 있는 궁극의 지능을 비생물학적 신체의 뇌 속에 담아둔 존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간 지능의 산물이 과학기술이고, 그것이 극단에 이르러 영속하는 궁극의 지능을 탄생시키면 그것이 인류가 꿈꾸었던 최종 목표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말해 인간이 꿈꾸는 것이 신에 근접한 영적 존재이거나 영속하는 존재라면 그것이 인간이 창조한 진화하는 기계 지능의 형태인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아직도 몇 권의 책을 더 읽어야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신의 창조나 진화의 법칙에서 볼 때 중간 과정에 위치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기술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고, 향후 10년 정도(필자가 보기에는 20년)면 기술 발전의 마지막 단계를 돌파할 것으로 보이기에, 그런 상황에서 온갖 한계로 가득한 신체를 기반으로 하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고의 결과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이 온갖 한계들을 극복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 발전의 결과인 영속하는 궁극의 지능에 이르는 것이라면 제가 인간으로서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은 마지막 특이점을 넘은 세상을 대비하자고 하지만 대체 무슨 대비책이 있을까요? 우리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지능인데 어찌 상대할 수 있을까요? 궁극의 지능이 출현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고, 그것이 인간의 신체가 아닌 비생물학적 신체에만 유효하다면 살아있는 동안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 이외에 제가 할 일이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그래서 소설을 쓰려고 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런 부정적 전망이 아닌 긍정적 전망으로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을 바라볼 때 인류가 유토피아에 이르는 길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비록 21세기나 22세기 초반까지만 유효한 것이라고 해도. 그때쯤 되면 인공지능을 대하는 인간의 의식도 엄청나게 변해있을 것이라 지금의 추측들은 모조리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6.14 08:26 신고

    쉬고 있는 뇌의 잠재력을 10%라도 더 사용할수 있는 방법이 나온다면
    정말 획기적이 될듯합니다
    뤽베송의 영화 "루시"가 생각납니다^^

  2. 현주씨 2016.06.14 09:12 신고

    오늘도 잘읽었습니다.

  3. yuni99 2016.06.14 23:53

    ㅋㅋㅋㅋ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상대론을 발표한 후에는 이론보다 더많은 시간을 실험에도 투자했어요. 또 실험 물리학자를 막노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과학에대해 무지한 분이라고 느꼇어요 ㅎㅎ..

    • 늙은도령 2016.06.15 13:32 신고

      아인슈타인은 실험에 대단히 서툴렀습니다.
      상대성이론을 증명하는 것도 영국 관측과학자가 했고요.
      아인슈타인은 이론을 세우는 과정에 집중했고, 나중에는 대통일이론을 만들려고 노력하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펜하이머 등은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의 기본에서 상당히 틀린 것들도 많았다는 말을 했던 것이지요.
      아인슈타인이 한 실험들을 실험물리학에 포함시킬 정도는 아닙니다.

      또한 실험을 막노동에 비유한 것은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노력은 막노동에 버금갈 정도로 시간과 데이터, 영상 등과의 싸움입니다.
      실험물리학이 실험의 전과정을 컴퓨터로 하는 지금에도 막노동적인 개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정말로 시간과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표현을 있는 그대로 보니 참 단순한 분이라 생각되네요.
      아인슈타인이 실험에는 상당히 무지했음은 수많은 물리학 서적에 나오는 얘기이고요.

  4. yuni99 2016.06.14 23:58

    또 괴델의 불완전성 이론을 증명하는 논리를보면 80년정도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계건 인간이건 수학을 전제로 전개하는 논리에는 한계가 존재하고 모순되는 부분이 존재해요. 본문의 특이점은 무어의 법칙에대해서 말씀하신것 같은데 무어의 법칙이 깨지더라도 인공지능이 생각하고 논리를 전개하는건 인간보다 넓더라도 한계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또 차이점이라고는 인간은 공리를 세우는 창조적인 사고로 지난 2000년동안 지금 눈에보이지않는 추상적인 세계를 이끌어왔다는거죠 그러니까 인공지능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듯한 그런 자세를 조금더 벗어 나봅시다 ㅎㅎ

    • 늙은도령 2016.06.15 13:41 신고

      2014년 이후에 이루어진 연구들을 살펴보십시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가 나온 2006년 이후로 별로 발전이 없다 2014년부터 상상을 불허하는 발전이 이루어졌으니까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생명공학, 뇌과학 등의 최고 전문가들이 2014~2015년에 출간한 책과 연구들을 살펴보시면 님의 지식이 얼마나 모자란지 알 것입니다.
      최근의 인공지능은 인간이 제시한 룰(프로그램)이 없이도 학습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인공지능에 관해 쓰고 있는 글은 그런 최신의 것들을 기준으로 합니다.
      저도 이렇게까지 인공지능이 발전했고 나머지 공학들도 발전했는지 몰랐으니까요.
      최신의 뇌과학, 뇌역분석, 현대물리학 등을 보면 인공지능이 왜 몇 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지능이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은 이제 15~20년 정도만 남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루어낼 세상을 그려보려는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인간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전문서적들도 읽고 있으니 기술적인 한계에 대해서도 따져보고 있습니다.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올지, 사유와 추론과 창의적 글쓰기도 가능한 초인공지능이 나올지 등등을...

      낮은 수준의 창작과 사유가 가능한 인공지능은 이미 나왔고, 그래서 드라마 각본도 쓰고 교향곡도 작곡에 들어갔고, 기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써왔고.. 이런 식으로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이루는 인공지능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습니다.
      다른 기술들도 마지막 특이점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공존하려면 인간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편협하고 탐욕스럽고 비합리적이면 초인공지능은 인간과의 공존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헬조선의 다름 아닌 대한민국만 봐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면 그냥 나둘리 없으니까요.

      아, 무어의 법칙은 2차원에서는 통하지만 나노튜브나 발전된 실리콘 등으로 3차원 반도체가 만들어지면(실험실 차원에서는 만들어졌고, 현재 IBM 등이 완성단계 직전에 이르렀다) 무어의 법칙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무어의 법칙 같은 것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정도의 폭발전인 발전을 뜻합니다.
      이전의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런 세상...



범야권 공영방송을 표방했던 '시민표창 양비진쌤'의 마지막 회에서 유시민과 진중권이 말했던 '혁명적 파괴주의'는 양정철이 말했던 것처럼, 푸코와 데리다와 들뢰즈 등으로 대표되는 신좌파의 해체주의를 연상시킬 수 있습니다. 거대담론을 모조리 해체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던 신좌파들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학자들로부터 형이상학적 언어놀이자 지적 유희에 빠진 자들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양정철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국정경험이 꼭 좋은 것만 아니라는 사실을 '시민표창 양비진쌤'의 청취에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신뢰의 리더십을 구축한 문재인이 가끔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실언을 하는 것도 국정경험의 그늘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종인의 오만불손함과 독선적 행태를 비판했던 조국과 문성근이 파국을 막기 위해 '비례 2번'을 인정하자는 트윗을 올린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신좌파에 대한 비판들은 지적수준이 형편없고 단순하기로 유명한 미국의 학자들이 주도했습니다. 어떤 학문이던 미국에 상륙하면 하향평준화를 면할 수 없지만, 미국 유학파가 지배엘리트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습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신좌파가 꿈꿨던 유로피언드림)를 실현하고 싶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들의 포위에 갇혀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유시민이 열린우리당을 해체하는데 성공한 자들이 출범시킨 통합민주당에 합류할 수 없었던 것도 노무현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정당에서 둥지를 틀 수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권위주의적 성향이 극단에 이른 자가 김종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꿰뚫었던 유시민이 왕정을 선택한 더민주를 옹호하느라 민주주의에 반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표창원에게 상대적 소수파에게 가해진 민주통합당 주류들의 행태가 바로 그러했음을 말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적 소수파에게 항복선언을 받아내야 만족했던 그들의 반민주적 행태가 국민의당과 정의당에게 항복선언을 하고 밑으로 기어들어오라는 김종인의 오만방자함과 독선(헬조선의 청춘들이 꼰대라고 하는 것이 핵심)으로 재현되는 것을 보며 유시민은 '시민표창 양비진쌤'의 조기종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표창원은 끝까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지만, 상대적 소수파(정치적 약자)를 인정하고 배려하지 않는 곳에 민주주의란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시민의 '혁명적 파괴주의'가 나왔습니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열린우리당을 산산조각냈으며, 박근혜의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무현 탄핵을 주도했던 자들이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야권 전체를 산산조각내는 것을 지켜보며 유시민은 마지막 카드를 화두로 던졌습니다. 저들의 작품인 헬조선을 완전히 해체해 다시 조립할 수 없다면, 내부로부터 산산히 부서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늙은도령으로서의 필자가 그렇게도 막고 싶어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최후의 방법, 신좌파의 해체주의와 상당히 유사한 '혁명적 파괴주의' 유시민의 입에서 나왔고, 미치고 환장하게도 그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코가 밝혔듯이, 민주주의를 이용해 최후의 권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신자유주의(진보적 자유주의의 대척점)에 맞설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각각의 시민이 절대권력의 저항점이 되는 것인데, 이것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유시민이 화두로 던졌고 진중권이 부언했던 '혁명적 파괴주의'입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절대권력(신자유주의 통치술의 최종목표)에 맞서 승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신이 아니라면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절대권력이 약점을 보였을 때 그것을 철저하게 파고들어 내부로부터 무너지도록 만드는 것이 '혁명적 파괴주의'의 핵심입니다. 문제는 '혁명적 파괴주의'가 자칫 잘못하면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엄청난 피해만 불러올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모든 견고한 것들이 무너져 내려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한 것의 능동적 확장판이 '혁명적 파괴주의'인데, 바우만이 《액체근대》에서 밝힌 것이 맞다면, 모든 견고한 것들(절대권력)이 산산조각나는 것이 아니라 액체형태로 바뀌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피해(헬조선의 본질)를 양산할 수 있습니다. '죽창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면 좋겠지만, 저들에게는 대량살상무기가 너무도 많습니다. 





헌데 작금의 대한민국이 N포세대를 양산하고 있는 헬조선이라면, 그리고 유시민이 말했듯이 총선은 4년 후에, 대선은 5년 후에, 그렇게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라면 '혁명적 파괴주의'도 나쁜 선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폭력적 혁명이 아닌 샌더스가 상당 부분 실현해낸 정치혁명에 속하는 것이기에, 절대권력을 산산조각낼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혁명적 파괴주의'를 시도해볼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헬조선에 적응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N포세대들이 사표방지심리에서 벗어나 정의당에 몰표를 준다면, 정치혁명으로서의 '혁명적 파괴주의'는 추악한 꼰대들의 권력욕으로 가득한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일거에 바꿀 수 있습니다. 북한에 버금가는 질곡의 세월이 4년 혹은 5년이나 늘어나는 것을 감수할 정치적 용기와 경제적 의지만 있다면, 유시민이 화두로 던진 '혁명적 파괴주의'는 무에 가까운 폐허에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지만, 헬조선의 청춘들이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하면, 시도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4월13일의 총선에서 정의당에 표를 몰아주면 7~8할은 성공한 것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가 실현되는 것이며, 노무현의 꿈이었고, 문재인의 운명이며, 유시민이 실천하고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헬조선의 청춘들에 의해 실현되는 것입니다. 



비박학살과 셀프공천까지 나온 마당에 꿈이라도 마음껏 꿔봅시다. 이 세상 누구보다 잔인한 4월에서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월호유족들을 위해서라도. 아니, 아직도 저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돼 있는 9명의 미수습자들을 위해서라도. 선거 지원유세를 끝으로 현실정치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문재인과 그에게서 노무현의 부활과 미래의 희망을 찾았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3.23 08:43 신고

    현 싯점 야당에 강력한 대안이 없다는것에 다시 한번
    노랍습니다
    노회한 정치인의 몽니에 흔들리고 있으니..
    색깔이 점점 옅어 지고 있습니다
    국민의 당과 점점 다를바 없어지고 있네요..
    지도부들의 개인적인 욕심때문에 이 나라가 보수들의 잔치판이 될
    농후해지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3.23 13:44 신고

      가장 중요한 가치들이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공천과정이 정치를 없애고 있습니다.
      정치공학적 계산만 했다면 노무현은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국민을 감동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2. 태극권 2016.03.23 09:40

    이번 선거는 예전처럼 사표가 두려워 더민주를 찍는 그런 선거가 되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___ 유시민의 의견이 동감하고 있습니다. ___ 생쥐나라에서 왜 고양이 국회의원을 뽑을 수 없는 것입니다. ___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줄무늬 고양이든 ___ 모두 다같이 쥐를 잡아먹고 산다는 것은 너무 명백합니다. ___ 왜 야당을 찍어도 우리들의 삶이 계속 어려워 지기만 하는지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___ 생쥐들의 나라에는 작지만 강한 생쥐 국회의원이 필요합니다. ___ 작지만 강한 제대로퇸 야당인 ___ 정의당을 키웁시다. ___ 더이상 더민주에 민주는 없고 새누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3.23 13:45 신고

      제일 좋은 방법을 글로 올릴 게요.
      야권이 승리하거나 기사회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게요.
      정의당을 키우는 것에는 백퍼선트 동의합니다.



대한민국 경찰의 과학적 지식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마저 부정할 수준에 올랐나 보다. 상대성이론은 빛보다 빠른 입자(또는 파장)가 없다는 것이 핵심인데 경찰은 녹색 번호판이 반사되면 하얀 번호판이 될 수 있다며 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빛은 같은 색일 경우 반사된다. 물체가 초록색이면 빛의 초록색 파장이 반사돼 인간의 눈(대뇌피질의 시각중추)이나 카메라 렌즈에 초록색으로 보인다. 마티즈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는 한 초록색에 부딪친 빛의 파동이 하얀색 파동으로 변해 인간의 눈이라 카메라 렌즈에 인식되지 않는다.



마티즈의 속도가 상대성이론을 무너뜨릴 만큼 빠르다면 모를까, 초록색 번호판이 하얀색으로 반사되려면 카메라 렌즈가 초록색만 인식할 수 없는 참으로 서프라이즈한 색맹이어야 한다. 위의 사진을 보면 다른 색들은 모두 다 제대로 인식됐는데 유독 초록색만 하얗게 인식됐다면, 그 방법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경찰이 주장한 ‘카메라 각도와 반사각도’ 때문이라면 번호판 전체가 하얀색으로 찍힐 수 없다. 녹색 바탕에 하얀 숫자로 된 번호판 모두가 하얗게 보일만큼 빛의 파동이 일어날 수 있다면 나머지 색깔들에도 그에 합당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경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뉴턴의 역학을 완벽하게 보완했고 양자역학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제공한 상대성이론이 무너진다. 대한민국 경찰은 빅뱅 이후의 우주의 생성을 풀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기 때문에 노벨물리학상을 따놓은 것이나 진배없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이 초록색 표지판을 하얗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 특수 화학물질을 발라놓았다고 하면 얘기는 된다. 천하의 상대성이론이라고 해도 화학반응까지 무력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습게 봐서 그렇지 위대한 국정원이면 이쯤은 식은 죽 먹기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조명등의 검은 윤곽선은 크게 보이는데, 그것보다 더 굵은 검은색 부착물은 아예 보이지 않거나, 안테나의 형상이 깜쪽같이 사라질 수 없다. 카메라 각도와 빛의 반사로 이것을 설명하려면 상대성이론이 흔들릴 만큼 마티즈의 속도가 빨랐어야 한다. CCTV의 렌즈가 형편없다고 해도 특정 색에만 요술을 부릴 수는 없다.





빛의 파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외부적 요인이 들어가지 않는 한 특정 부분의 특정 색만 다르게 반사되지도 인식되지도 않는다. 마티즈의 속도가 중력을 왜곡시킬 만큼 빠르다면 빛의 굴절이 일어나 색깔이 변할 수 있지만, 초록색 번호판이 하얗게 변한 것과 나머지 변화를 한꺼번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만일 국과수가 경찰과 똑같은 결론을 내린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이론인 상대성이론이 종말을 고하게 된다. 색깔마저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번호판 또는 마티즈는 불티나게 팔릴 것이고, GM은 한국을 떠날 이유도 사라진다. 홍보효과로만 따지면 <트랜스포머>의 방정맞은 조연을 뛰어넘어 먹다 만 사과(영어로 하면 애플)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수십조를 퍼부어 온갖 실험을 한 끝에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를 발견했다고 난리친 CERN이 머쓱하게 됐다. 그 돈의 백만 분의 1만 대한민국 경찰에 투자했으면 지금쯤은 뉴턴역학과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통일이론도 나왔을 테니.  



어쨌거나 <X파일>의 멀더와 스컬리가 없는 이상천하의 아인슈타인도 국정원과 연루되면 어김없이 부관참시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대한민국인가 보다. 혹시 <맨인블랙> 시리즈를 국정원에서 찍은 것은 아닐까? 지구에 올 정도로 과학적 수준이 뛰어난 외계인이 아니고서야 이런 능력을 보여줄 수 없을 테니(아래 링크한 글은 경찰의 재연을 과학적으로 반박한 첫 번째 글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빛의 간섭, 경찰의 재연이 비과학적인 이유


 




                                     


  1. 공수래공수거 2015.07.23 08:31 신고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속 시원히 밝혀져야 할일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건 어제 저녁부터
    방송은 약속이나 한듯 이건 전혀 보도를 않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3 15:33 신고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도통제에 들어간 것입니다.
      미국도 베트남전에 그렇게 햇습니다.
      기득권언론은 통제가 가능합니다.

  2. 불루이글 2015.07.23 14:48 신고

    이룬 !그런 쾌거를 울나라 경찰이 올렸단 말씀 입니까?
    이건 노벌 물리학상 중에서도 전우주적 쾌거로서 최고의 수훈감 이네요

  3. Cong Cherry 2015.07.23 15:24 신고

    조용하네요;;
    착시현상이라서 초록색 바탕의 흰색 글자가 흰색바탕의 검은색 글자로 보이다니...,,,
    유레카!!!! 경찰이 누구도 알아내지못한것을 알아냈어요!!
    그렇다면 조만간 논문 하나 나오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7.23 15:34 신고

      네, 어마어마한 논문이 나오겠지요.
      상대성이론과 빛의 파동, 양자색학까지 파괴했으니 인류 역사상 최고의 논문이 나올 것입니다.

  4. ㅈㅈ 2015.07.24 09:24

    화질이 좋지 않은 카메라에 빛이 반사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상대성이론을 갔다붙이고 장황하게 비꼬는 모습이 보기 안좋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반성해야합니다. 비본질적인 문제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국정원에게 시간을 벌어다 줄뿐.. 자료 정리가 끝나기전에 신속히 사용내역을 조사할것. 한 직원이 죄도 없으면서 자살까지 한점. 베테랑 직원이 손쉽게 복구할수있도록 자료를 삭제했다고 하며 본인들이 원하는 정보만 복구시킬 수 있게 된 점이 본질적인 문제 아닐까요

    • 늙은도령 2015.07.24 15:36 신고

      마티즈를 서둘러 폐차했습니다.
      만일 마티즈 영상을 조작한 것이 밝혀지면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습니다.
      국정원으로부터 로그자료를 받기도 힘들고 미국을 경우했기 때문에 미국의 방조도 있었습니다.
      삭제할 권한이 없었던 사람이 자살한 직원입니다.
      마티즈를 통해 전환점을 잡을 수 있었는데 폐차시켰습니다.
      로그기록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면 아무것도 못 밝힙니다.



요 며칠 동안 종편과 보도채널을 보면 문재인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친일 5적’에 버금가는 악인이자 종북숙주이며 모든 문제의 근원인양 매도됩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을 넘어 공무원개혁도 망치고 국민연금까지 최악으로 만든 죽일 놈의 정치인처럼 취급됩니다.



지상파3사도 조중동과 종편 사이 어디쯤에서 국민을 호도하고 여론을 조작하는데 협조하고 있습니다. JTBC 뉴스룸을 제외하면 진실은커녕 무엇이 사실인지도 알 수 없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에서 밝힌 것처럼, 닫힌 4차원 세상에서 사실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게다가 시청자는 방송카메라의 각도를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사실을 어떤 각도로 찍느냐에 따라 그 유명한 오리(거위)도 될 수 있고 토끼도 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을 좌측의 것을 부리로 보면 오리고, 귀로 보면 토끼가 됩니다. JTBC 뉴스룸을 제외하면 모든 방송들이 정권과 자본의 각도에서 세상을 찍고 뉴스로 내보냅니다.



이렇게 일방의 주장만 담아낸 보도에 계속해서 노출되면 시청자의 인식은 조금씩 그들의 주장에 빠져들게 됩니다. 현대의 시청자는 자신이 싫어하는 방송을 보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방송에서 되풀이되는 보도와 주장을 사실을 넘어 진실로 확정해버립니다. 사고구조가 자동반응의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죽음으로 그 진정성을 대변한 성완종의 내부고발도 참여정부의 2차례 특별사면이 만든 작품이라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종편 등의 시청자는 박근혜의 불법대선자금 문제는 참여정부의 정치공작처럼 인식됩니다, 세월호 집회가 친북좌파 단체들이 조정하는 불법‧폭력집회로 각인된 것처럼.





뉴스타파와 나꼼수 이후 우후죽순으로 설립된 독립언론들은 마이너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제도권에서는 JTBC만이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만, 그것이 대세를 이루기에는 시청률이 너무 떨어집니다. 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지 못합니다.



박수도 맞장구쳐줄 손이 있어야 소리가 나듯이, 지상파3사 중에서 하나라도 JTBC의 보도에 맞장구치면 상황은 달라질 텐데, 자본과 정부의 광고와 협찬으로 돌아가는 재원구조가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깰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의 언론자유도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폭로되던, 그것이 현 정부와 자본에게 불리하면 호도되고 왜곡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게릴라전을 치르느라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독립방송들을 통합하거나 키울 방법이 없을까요? 지상파 중에서 한 곳을 골라 집중적으로 시청률을 높여줄 수는 없겠지요?





누가 뭐래든 현대는 디지털 미디어의 시대입니다. 이것이 정부와 자본에 기울어진 상태로 있는 이상 절대다수의 국민이란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선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생각과 판단을 할 수도 없습니다.



주변으로 밀려 운동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중심에서 풀어놓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합니다. JTBC에 버금가는 하나의 방송사만 나와도 기울어진 운동장은 수평을 향해 상당히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의 일부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저는 요즘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두터운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최루탄 연막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던 지난날의 경험을 살려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방법을 찾는데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자발적 복종의 단계로 접어드는 시청자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날 것입니다. 이를 막아야 함은 당연할진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지요? 혹시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습니까? 내년 총선까지 이대로 갈 수 없다면 무엇이라도 해야 합니다, 무엇이라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나비오 2015.05.08 15:29 신고

    무엇을 할 것인가?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

    • 늙은도령 2015.05.08 15:48 신고

      네, 대단히 중요한 시점입니다.
      지금부터 잘해야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나라로 이끌고 갈 수 있습니다.

  2. 세이렌. 2015.05.08 16:16 신고

    누가 됬든 올바른 정치를 해주길 바랍니다.

  3. 광주랑 2015.05.08 18:51 신고

    들렀다 갑니다^^ 즐거운 저녁 마무리하세요~ ^^

  4. bacchus 2015.05.08 20:26

    전문성을 가진 언론 감시조직을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시민.학계와 함께 공동조직하고 왜곡기사를 매일 모니터링하여 법적대응과 손배소송.해당 기자 직접 타격 등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하여 대응을 해야만 수구세력의 장기집권을 막을 수 있겠지요.

    • 늙은도령 2015.05.08 20:32 신고

      대단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다만 그런 것들을 담아낼 무엇인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게릴라처럼 자기 목소리만 내고 있는 독립언론과 대안언론이 하나의 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음 아고라처럼 많은 사람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무엇인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결국 자본의 문제인데, 이는 확실한 계획과 타임스케줄, 참여인사의 참신성, 분명한 목표의식 등을 제시할 수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5. 참교육 2015.05.08 21:02 신고

    종편도 문제지만 새정연도 막장입니다.
    야당이 없는 나라 도대체 이 나라의 앞길이 암담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08 22:27 신고

      문재인의 리더십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박지원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의 흔들기도 너무 심합니다.
      야당도 전체 분위기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주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문재인도 대표답게 행동할 수 있는데 모든 문제를 문재인 스스로 풀어야 한다면 답이 없습니다.
      문재인이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정청래 말고 젊은피들을 전면에 포진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내야 합니다.
      아니면 강제적으로라도.

  6. bacchus 2015.05.08 21:04

    스맛폰이라 짧게 밖에 못쓰겠네요.님의 다른 글을 읽어보니 제 생각과 너무 똑같습니다.저는 현재의 언론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해결책은 진보언론의 제도권진입인데 자본이 없죠.말씀하신 독립언론이나 아고라는 너무 제한적입니다.저들의 프레임 조작을 깨부수기위해서는 대응방법이 사실 별로 없습니다.그래서 저는 그들을 불독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야당을 동원하여 협박도 하고 항의도 하고 사사건건 저들을 괴롭혀서 언론조작을 조금이라도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08 22:33 신고

      많은 논객들이 정치 경제 언론 사회 법률 철학 과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가능한데 그렇지 못합니다.
      지적검증부대 비슷한 언론검증부대를 논객들을 묶어 감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저처럼 여유가 있어 충분한 공부와 글쓰기를 같이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세력은 새로운 전략을 개발해야 하고, 특히 과학철학에 대한 폭넓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솔직히 노무현과 유시민, 정태인 등을 제외하면 일당백의 진보정치인이 나오지 않습니다.
      은수미가 그나마 토론에선 뛰어난데 그런 신인들은 노땅들이 키워주지를 않습니다.
      진보는 늘 사람들의 순환이 빠르고 폭넓어야 합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게 아니라 분열을 통해 발전하는데, 철학이 사라진 상태에서 분열하니 현대의 진보가 고리타분한 이유입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절대 진보의 재집권은 불가능합니다.

  7. 랩소디블루 2015.05.09 05:03 신고

    잘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8. 공수래공수거 2015.05.09 07:58 신고

    그나마 뉴스타파가 인터넷에서 힘을발휘해야
    한데 쉽지가 않네요..
    언론의 힘이 정말 무섭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09 16:11 신고

      그럼요, 언론의 힘이 정부 3부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미디어 시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9. 耽讀 2015.05.09 07:58 신고

    종편보다 더 교활하고, 비열한 언론이 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 같은 '이른바' 진보언론입니다. 갈수록 진보언론이 아니라 수구언론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09 16:12 신고

      제가 보기에는 수준의 문제입니다.
      진보들이 공부도 하지 않고 세상의 변화도 거부한 채 자기 주장만 나열하거나, 아니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다보니 갈수록 기사의 가치가 상실되고 있습니다.
      뚜렷한 방향도 없고 이념적 지향도 없습니다.
      너무 지리멸렬합니다.

  10. sto 2015.05.09 10:13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게 문제인 듯..

  11. 트라이어 2015.05.09 10:39 신고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한것 같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무섭습니다..ㅠㅠ

    • 늙은도령 2015.05.09 16:16 신고

      자본주의의 철학적 이해가 늘어나면 지금의 2030대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돼있습니다.
      시대를 부정하기에는 그들의 삶과 사회가 옛날 같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한 이해를 늘려야 청춘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교육은 취직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살아가는 지식에만 집중합니다.

  12. 머무는바람 2015.05.09 12:40 신고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미디어가 문제 라고 생각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09 16:19 신고

      인간은 갈수록 가벼워지고 생각하지 않고 재미와 오락만 찾습니다.
      육체적으로 매력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그것은 짐승의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만의 매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짐승적 경쟁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철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은 짐승의 수준으로 떨어져 종말을 고할 것입니다.

  13. 하늘이 2015.05.09 18:00

    무언가 힘이 되고 싶은데 대안이 없네요 ᆞ도령님께서 간절한 만큼 에너지가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ᆞ그리고 차라리 동교동게가 한번 원없이 해보게 하는것도 어떨까 싶습니다 ᆞ그래야 잘 못 되었을때 더 이상 몽니를 부리지 않을까 ~답답함에 이런 의견도 올려 봅니다 ᆞ

    • 늙은도령 2015.05.09 19:05 신고

      동교동계는 이제 은퇴해야 합니다.
      새정연은 젊은정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문재인을 조금 더 지켜볼 생각이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 됩니다.
      결단을 내려야지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일단 6월말까지는 기다려볼 생각입니다.

  14. 소피스트 지니 2015.05.09 21:23 신고

    그들의 철옹성을 금방 무너트릴수 있을것 같았는데 참 어렵습니다.
    진짜 뭘 어떻게 해야할지..

    • 늙은도령 2015.05.09 22:44 신고

      한 번 자리잡은 체제가 무서운 이유입니다.
      기득권이 괜히 기득권이 아니고요.
      방법은 수없이 나왔지만 그것을 실현할 의지나 믿음이 너무 약할 뿐입니다.
      원래 자본주의가 그렇게 만듭니다, 인간을.
      깨어있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15. 공유의 플랫폼 2015.05.10 05:34 신고

    기득권들의 전략이 생각보다 교묘하게 꼼꼼한것 같네요.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 늙은도령 2015.05.10 14:03 신고

      현재의 민주주의로는 참 어렵게 됐습니다.
      기본적으로 유권자를 바보로 만드는데 성공했으니까요.
      투표가 제대로 안 되니 늘 당하는 것입니다.
      유권자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달라질 수 있습니다.

  16. 하시루켄 2015.05.10 22:01 신고

    요즘은 참 사회에 불신이 팽배해져서 어디하나 믿을만한데가 없죠.
    적어도 언론만큼은 사실을 보도해야하는데 언론까지 정치인들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일반 국민들이 진실을 접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는 나라가 바로서지 못할텐데 말이죠.

    • 늙은도령 2015.05.10 22:33 신고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 정책을 펼치는 데는 좋거든요.
      모두를 만족시켜줄 정책이 없는 관계로 불신을 조장해 국민을 나누는 것이 통치에는 유리할 때가 있습니다.
      분할통치가 왜 잘 먹히냐는 이런 것들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인간성마저 잘못된 정치에 의해 나빠지는 것이지요.



21세기의 마르크스로 칭송받으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예약해둔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부의 불평등을 설명하는 공식을 통해 각종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자료가공도 있었음을 밝혔습니다. 피케티는 이런 오류에도 불구하고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추호의 변함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빛을 바랜 것은 분명합니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항상 앞서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피케티의 공식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처럼 너무나 간단명료해서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오류와 부정을 인정해야 하는 회복하기 힘든 수모를 자처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좌우의 경제학자들이 피케티 현상을 “자본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 자본수익률도 떨어진다는 기본 법칙을 고려하지 않아 시작부터 오류가 있었던 가설”이라고 일축하는 것과, “부의 불평등 해소라는 진보적 과제에 대해 ‘과학 공식’처럼 간단명료한 주장을 펴자 덮어놓고 찬사를 보낸 해프닝”이라고 꼬집는 것이 힘을 얻게 됐습니다(원래 비판만 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피케티의 주장에 100% 동의할 수 없었던 필자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한 피케티를 보면서 마르크스적 오류가 떠올랐습니다. 마르크스적 오류란 뉴턴역학이나 다윈의 진화론처럼 현실경제를 단순명료하게 나타내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지나친 추상화(단순화)에 매몰되는 것을 말합니다. 



뉴턴역학과 다윈의 진화론, 헤겔의 변증법과 블랑키의 사상(당시에는 마르크스보다 영향력이 있었다. 일찍 죽지 않았다면 마르크스와 쌍벽을 이루었을 것이다)에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초기에 그것의 전체 역사를 예측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과 변증법적 유물론(역사결정론)으로 단순화시키는 추상화의 오류(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에 빠졌습니다. 



순수한 자본주의라면 마르크스의 설명이 정확하고 이를 능가하거나 부정할 방법이 없지만, 현실의 자본주의는 계급투쟁과 변증법적 유물론으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베르그송 정도의 물리학적 지식이 있었다면, 완성하지 못한 《자본론》 4권에서 이런 오류들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어서 너무나 아쉽기는 합니다.





마르크스는 정치와 과학기술, 언론, 종교, 문화, 교육, 철학, 제도, 법, 관습, 전통 등을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치부했지만, 정치적 기술(마키아벨리적 추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현실의 자본주의는 그의 성찰과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푸코의 지적처럼 마르크스의 성찰로 양자역학이나 분자생물학, 인문과학 등의 발견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생산관계라는 하부구조와 시장에서의 교환과정에 집착하는 바람에 상부구조를 이루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았고, 폴라니의 지적처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현실경제의 다양성과 지배적 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합의를 무시했습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의 성찰이 대체적으로 옳음에도 레닌의 경우처럼 실제현실에 부딪치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차치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칼 포퍼, 한나 아렌트, 울리히 백 등의 현실성 높은 비판들을 반박하기 힘든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반면에 모순과 오류투성이의 경제학인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최소통치로 대표되는 작은 정부와 모든 규제를 부정하는 시장근본주의를 통해 국가의 전체화하는 경향과 개인화하는 경향을 동시에 풀어냈기 때문입니다(미셀 푸코와 노엄 촘스키 등이 명료하게 설명했다). 



신자유주의가 체계화되고 일관된 논리가 관통하는 과학적인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의 힘을 빌린 현실적인 통치학이 된 것도 국가의 두 가지 성향을 꿰뚫었던 데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대처와 레이건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는 무소불위의 통치술로 격상됩니다. 



자본주의(특히 신자유주의)의 결과인,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에 대한 피케티의 공식이 대체적으로 옳지만, 우주의 원리를 하나의 공식에 담아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E=MC2로 압축된다)처럼 단순화된 공식으로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는 부의 불평등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단순화(진리와는 다르다)의 속성상 근본주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의 개념을 극도로 단순화한 유일신 사상이 배타적인 근본주의로 빠져들어 폭력을 양산(십자군전쟁, 좌우의 전체주의, 

미국의 제국적 탐욕, IS의 테러 등)하는 것처럼, 단순화가 극에 이른 모든 근본주의는 이분법적 세상에서만 유효합니다.



진보좌파가 마르크스적 오류에 빠지면 보수우파의 꼴통과 동일해지는 것도 단순화의 속성인 근본주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김기종의 광기도 민족근본주의에 뿌리하고 있으며, IS의 테러도 이슬람근본주의에 뿌리하고 있습니다.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탐욕도 시장근본주의에 뿌리함은 상식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양자역학과 분자생물학 등을 접하지 못한 마르크스가 뉴턴역학과 다윈의 진화론(근대를 지배한 두 가지)에 기반한 추상화와 결정론에 빠졌다면, 피케티 또한 자신의 공식에 빠져 피케티적 오류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21세기의 마르크스, 피케티의 오류 인정은 발전적이고 긍정적입니다. 현대경제학이 최소한의 밥값이라도 지불하려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피케티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피케티가 5월에 전문이 공개될 <21세기 자본에 대하여>에서 《21세기 자본》에 나오는 자신의 공식을 어떻게 수정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우주의 원리를 파악하는 통합이론의 발견에 실패한 아인슈타인처럼 피케티도 부의 불평등 심화를 설명하는 공식 발견에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몇 개의 공식으로 현실경제와 부의 불평등을 풀어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피케티의 능력과 보수적 시각에서 진보적 시각으로 전환된 것으로 볼 때, 그가 마르크스의 성찰에 근접하는 성과를 낼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경제학을 설파해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데 일조한 맨큐에 비하면 갈수록 심화되는 부의 불평등에 대한 피케티의 성찰은 오류를 통해 현실경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다 해도 21세기의 참담한 현실로 위대한 마르크스를 불러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했습니다. 



5월에 전문이 공개될 <21세기 자본에 대하여>가 기다려집니다. 아울러 후속 연구가 계속해서 나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부의 불평등이 세습자본주의로 전환되고 있다는 발견만으로도, 그래서 글로벌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만으로도 피케티의 성찰은 인류의 공존과 공생에 한 가닥 빛을 선사하는 거대한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피케티가 마르크스에 견줄 만한 위업을 이루기는 힘들었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근접하기를 바랍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늙으면 2015.03.12 07:45

    자본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불평등을 체험하는 인간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위대함을 모르지만 비자본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절대적빈곤을 겪은 사람들은 그 위대함을 잘 알지요

    • 늙은도령 2015.03.12 14:46 신고

      경제학과 빈곤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네요.
      님의 댓글과 정반대가 사실에 부합하죠.

  2. 참교육 2015.03.12 09:41

    저는 세종시 국립도서관에서 저 책을 보고 너무 많은 분량이 엙을 엄무가 나지 않아 그냥 돌아왔습니다.
    언제 시간 내 읽어야겠습니다. 하지만 소활 수 있는 역량이 될런지....

    • 늙은도령 2015.03.12 14:46 신고

      피케티를 읽기 보단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를 보는 게 낫습니다.

  3. 졸리다 2016.01.01 02:35

    저는 그냥 불평등이 왜 문제인가? 이런 생각을 자주합니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상대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질투를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대부분 동물이 그렇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야생동물이 먹이를 가졌을때 상대를 질투하는 메커니즘이 가동됩니다.
    그 질투는 공격성을 발휘하고 상대의 먹이를 빼앗아서 자신의 배를 불리고 생존하도록 유도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집니다. 상대의 음식, 아름다운와이프, 연인, 돈, 자동차, 집등등 다양한 욕구에 맞춰 질투를합니다.

    실제 삶은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지만 계속해서 비교를 하게됩니다.
    애초에 불평등이 문제가되는건 인간의 이런 진화과정에 습득된 공격적인 메커니즘이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꾸준히 발전하고 삶의 질이 좋아져도. 인간의 이런 공격매커니즘은 여전히 유전되어오고 있습니다.
    불평등의 근본원인은 인간의 본능이라고봅니다.
    평등한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거라봅니다.
    끊임없이 나와 타인을 비교하고 욕망을 추구할테니까요.
    다행스럽게도 법이란게 있다는것이 천만다행이라고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 지금까지도 사유재산은 고사하고 서로 빼앗기 위해 치열하게 살육을 할테니까요.

    과거는 대체로 평등했습니다. 물론 계급제였긴했지만.
    대부분이 노비고 잘살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보면 확실히 평등하지만.
    계급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노비들 가운데 열심히 노동을하든 머리를 잘굴리든 장사를 잘하든.
    이중에 결국 잘사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할겁니다.
    확실이 이런 상황이 되면 불평등이 눈에띄게 증가합니다.
    하지만 이게 과연 나쁜 현상인가? 라고보면 오히려 긍정적인 현상으로 봅니다.

    근본적으로 뭐가 평등한것인가?를 따지고들어가보면.
    평등을 목표를 하는 사회는 대부분 실패할거라봅니다.
    왜냐면 사람마다 욕구와 평등의 정의,가치가 전부다르기때문입니다.
    월급, 차량의수, 집의수, 집의평수, 명품브랜드, 화장실갯수, 이쁜와이프, 잘생긴남친 등등 끝도없습니다.
    애초에 나는 힘들게 노동해서 한달에 200버는데 너는 왜 앉아서 1억 버느냐 등등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질투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저는 현 불평등을 사회문제만으로 보기보다는.
    과거와 비교해 어느정도 문명이 진보하였고 편리해졌고 전체적인 부가 늘어났는지 질적인 측면을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평등을 문제삼아 잘사는 사람들을 끌어내린다고 가정해본다면 오히려 문명의 진보는 정체된다고 봅니다.
    좋으나 싫으나 문명의 진보를 이끈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를한 기업가들입니다.
    불평등하다고 공격목표를 기업가들로 방향을 잡아버리면 문명의 진보는 그것으로 끝이라고봅니다.

  4. 졸리다 2016.01.01 02:54

    아마 대표적인게
    단통법,도서정가제 같은 규제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쟁,할인을 금지시켜 모두다 동일한 가격에 사도록하면
    확실히 평등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비싸진다는겁니다.

    이런 현실적인 사회현상을 접해보면.
    평등은 무조건 옳다 또는 다수에게 이익이된다라는 논리는 오류라고 봐야될거같습니다.

    이걸 자본주의의 불평등 문제로 보면
    평등이 과연 경제발전과 경제주체 다수에 질적인 이득을 가져올까?
    아니면 평등의 댓가로 중요한 많은 것을 잃지는 않을까?
    충분히 의심해볼 근거가 있다고봅니다.



이번 글에서는 진화론에 나오는 최적화와 최대화 개념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또한 시간이 나는 대로 이 두 개의 개념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의 노동가치설과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의 차이에 대해서도 다루어보겠습니다. 이번 글에선 진화론를 이해하는데 주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최적화와 최대화 개념에 대해서 다룰까 합니다.

 

 

 

보통 우리는 최적화와 최대화를 동일한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둘의 개념은 정반대입니다. 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책의 제목에서 주는 선입관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자발전 진화》라는 책을 보면 리처드 도킨스와 다윈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비교해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적자생존이란 의미에서의 최적화

 

진화론의 핵심 논리이자 거의 전부인 것처럼 알려진 최적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요약하면 “유전적인 변이를 수반한 계획적인 번식은, 축적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유전적인 변이란 대부분의 진화를 추동하는 돌연변이를 말하는데, 수만~수십만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나기 때문에 가우스 종형곡선의 꼬리 부분(롱테일)에 해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보통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거의 대부분은 채택되지 않습니다. 방사선에 피폭되면 일어나는 돌연변이가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다음 세대로 유전되지 못합니다. 이를 나쁜 돌연변이라 한다면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돌연변이도 있는데 이것이 진화를 추동하는 좋은 돌연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돌연변이에 나쁘고 좋음은 없지만, 돌연변이가 인간은 물론 자연과 환경에 적합하지 못하면 당대에서 도태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유전돼 진화를 이어갑니다. 이런 방식으로 살아남은 돌연변이 유전자는 진화의 기억을 담아두는 유전자풀에 안착함과 동시에 다른 유전자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모든 생명체를 최적화된 형태로 이끌어갑니다.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진화를 누적적 자연선택이라고 하며 만일 하나의 생명체가 자신의 진화를 계획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살면 어떤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다윈과 도킨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을 보면 “유전적인 변이를 수반한 계획적인 번식은, 축적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개념에 대해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최고 걸작



▲ 적자생존이 승자의 진화를 말하는가?

 

허버트 스펜서가 정립한 적자생존이란 개념은 다윈의 진화론을 왜곡해서 나온 것으로, 주어진 자연환경(인류에 적용하면 사회가 된다)에서 살아남은 승자가 진화의 과정을 통해 후대로 전승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유전자 차원에서 말하면 모든 유전자에 대한 모든 유전자의 투쟁에서 승리한 것들이 후대의 진화를 이어간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지구상에 살아남은 종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지적인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힘 세고 포악한 종은 멸종하고, 착하고 배려하는 종은 생존한다"고도 말했습니다. 허버트 스펜서의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란 개념은 『종의 기원』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적자생존의 본래의 뜻을 왜곡해서 ‘적자가 곧 승자’라는 의미로 사용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병치시켜 무한경쟁과 적자생존 및 약육강식의 정글을 탄생시켰습니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 시대의 팽창주의(식민지 확대 경쟁)를 정당화한 강자의 논리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국가와 자본의 결탁이 자연의 법칙인양 호도됐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신은 언제나 승자와 함께 한다’는 적자생존의 논리를 비판한 것도 동일한 맥락입니다. 스펜스의 사회진화론이 우파의 전체주의인 히틀러의 나치와 히데키의 군국주의로 이어졌고, 좌파에서는 스탈린의 전체주의로 이어져 인류에게 치유할 수 없는 최악의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월가의 현인인 탈레브가 《블랙 스완》에서 말한 것처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이나 전사의 후예보다 적당한 타협을 한 평범한 사람들의 후예들이 더 많이 살아남았습니다. 적자생존은 승자에게 진화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멸종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실제로 생태계의 서열구조를 보면 승자만이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환경에서 적정한 환경에 적응한 종들이 살아남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대일로 싸워서는 이길 수 없지만 연대를 하면 어떤 강자도 물리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필자가 어느 영화평론가가 말했던 Little, Low, Lean, 즉 작고 낮은 사람들이 서로 기대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말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 이기적인 유전자로서의 최대화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유전자들은 수없이 많은 다른 유전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누적적 자연선택과 돌연변이로 만들어진 유전자들이 유전자풀에 입성해 다른 유전자들과 경쟁하거나 협력해서 다음 세대에 전해지려면 최대한 이기적인 행태를 통해 살아남아야 합니다.

 

 

자살유전자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 후대에 전해지기 위해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수명이 길어질수록 자살유전자는 힘을 잃게 돼 유전자 풀에서 쫓겨나 진화의 역사에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오직 생존해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진화의 결정체인 종의 생명마저 단축시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화하려 합니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라는 과정이 유전자 차원에서 보면 지극히 이기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개별 유전자는 필요하다면 다른 유전자의 기능을 최소화시키고, 자신의 힘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또 다른 유전자와 담합해서 자신의 특성과 반대되는 유전자를 퇴출시키기도 합니다. 이것이 자기보존의 차원에서만 행위하는 이기적인 유전자로서의 최대화를 의미합니다.


 


                                                  


  

▲ 인간이란 종의 이타적 특성

 

유전자가 이기적이라 표현했던 리처드 도킨스의 영향을 논외로 한다고 해도 유전자의 이기적인 면은 진화론의 시조인 다윈조차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의 핵심이 적자생존(유전자 차원과 종으로서의 차원 모두에서)으로 오독되기 쉬워,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도덕성과 이타적 본성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 인간의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기질이 인류의 성공적인 진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견해를 밝힙니다. 그는 특히 “공동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많은 부족들의 ‘충성심, 애향심, 복종, 용기, 동정심’을 인류 진화의 성공 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이타적인 유전자의 특성이 인간이란 종이 만물의 영장의 자리에 오르도록 만든 일등공신이란 것이란 뜻이지요.

 

 

칼 세이건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코스모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생명의 본질은 우리를 만들고 있는 원자들이나 단순한 분자들에 있는 게 아니라 이 물질들이 결합되는 방식에 있다.” 즉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원자로 이루어진 유전자도 이기적인 행태가 아닌 진화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이타적인 방식에 의해 지금의 인류를 창조했다고 것입니다.

 

 

서로 협력하여 복잡하고 거대한 생명들을 만들어내는 유전자의 이타성이 진화의 본질이라는 뜻이고 이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과 일치합니다. 물론 브르스 립튼의 《자발적 진화》는 정반대로 말하고 있지만, 유전자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종의 차원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양자역학이 고전물리학(뉴턴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대표적이다)의 도움이 없이는 우주의 법칙을 모두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윈 진화론을 박반하는 후생진화론의 핵심

 


▲ 현대의 차원에서 본 유전자의 최적화와 최대화

 

다윈의 진화론을 입증하려면 생명체를 이룰 수 있는 원소들로 최초의 복제자가 탄생하던 순간을 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물리학과 유기화학 및 무기화학, 분자생물학 등이 발전함에 따라 우주의 탄생부터 계산이 불가능한 확률이 겹치고 겹치면서 지구라는 행성이 최초의 유기체가 탄생해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진화를 해왔음이 밝혀졌습니다. 높은 온도와 방사능, 유해가스들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수준까지 안정화된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최초의 유기체인 첫 번째 복제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인 ‘원시 스프’의 재현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진화된 유인원에서 현재의 인류 사이에 어떤 진화의 비밀이 있었는지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신의 창조론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입니다. 어쩌면 ‘원시 스프’의 재현에 성공하고, 유인원에서 인류로 비약했던 진화의 비밀을 푼다고 해도 신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글의 주제가 창조론과 진화론을 비교하며 무엇이 진실인지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이에 관한 글은 시간이 되면 별도로 다루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믿던 간에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이타적 본성에 있습니다. 인류학에서 밝혀진 것들을 참조하면,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유전자의 최적화와 최대화는 개별 유전자들이 이기적인 성질과 이타적인 성질을 동시에 지녔다는 점에서 둘 다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성질 때문에 인간은 보다 지적인 생명체로 진화할 수 있었고, 처한 환경에 따라 적자생존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종으로서 이기적인 것에 치중하면 세상은 위험에 빠져들고 반대로 이타적인 것에 열중하면 세상은 행복해집니다. 삶의 필요와 욕구, 공존과 연대가 탐욕과 욕망, 독점과 무한경쟁으로 대체되면 최악의 세상인 신자유주의가 됩니다.

 

 

필자가 분장생물학이나 진화생물학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진화와 관련된 수십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린 결론은 유전자 차원에서는 이기적인 성질이 중요하지만, 종이란 차원으로 넘어오면 이타적인 성질(새누리당 빼고)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몸만 해도 천조 개에 이르는 세포가 서로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지적이며 영적인 활동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전자의 이타성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진화의 결과입니다.

 

 

물론 대한민국을 말아먹고 있는 극좌와 극우들은 제외됨을 밝혀둡니다. 그들은 진화도 가끔은 역방향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대한민국에서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떠받드는 보수의 DNA가 최대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사회경제적 평등에 기반한 다양한 자유를 지향하는 진보의 DNA는 최적화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셀 푸코에 따르면 국가란 개인화와 전체화의 두 가지 경향이 서로 충돌하고 반응하고 교차하는 곳입니다. 이 둘을 자유방임 시장경제 하에 통합시킨 신자유주의 통치가 일반화된 이후로는 모든 사회 환경이 사적 독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보수우파(박근혜 정부 뒤에 자리한 시장자유주의 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의 법칙과 신의 섭리에서도 벗어난 탐욕의 결과에 불과할 뿐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분명 우리는 예전만큼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도 예전보다 수백 배 이상 커졌습니다. 1인당 GDP도 30,000만 달러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현 대통령은 '줄푸세'를 통해 임기 내 40,000만 달러에 이르는 기반을 다지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달콤한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집니다. 경상수지는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나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모순된 경향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세계화의 부작용을 다룬 몇 권의 책을 중심으로 모순의 기원을 파고들어갈까 합니다. 《블랙스완》, 《프랙털 이론과 금융시장》, 《롱테일 경제학》을 중심으로 노력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모순을 밝혀보겠습니다. 이 책들의 저자들은 너무나 당연해 의심해본 적이 없는 보편적인 진리가 부분적 진리일 수도 있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 예로서 2008년 금융위기와 중후장대한 무거운 경제를 대체해가고 있는 가벼운 경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줍니다. 단 하나의 증거만으로 이전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세 권의 책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2030세대들은 이전의 세대들보다 더욱 공부하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 세 권의 책은 그 기원과 이론적 기초를 제시하며,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기도 합니다. 



 

 

먼저 세 명의 저자는 불평등의 기원과 그의 심화를 밝히기 위해 마테효과(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될 것이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 마저 잃어버리라, 사악한 경제학자들이 성경에서 찾아낸 부익부빈익빈의 근거)와 파레토 법칙(모든 공동체에서 전체를 먹여살리는 것은 뛰어난 20%의 엘리트다, 차별의 근거와 엘리트주의로 악용)과 파레토 최적(사회와 시장참여자 모두에게 최적의 이익이 주어진 상태. 따라서 추가적인 자신의 이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손해를 피할 수 없는 상태. 문제는 이런 완벽한 균형상태가 여러 가지여서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가 된다. 이것 때문에 합리적 시장이나 시장의 균형가설에서 출발한 모든 시장이론이 실패한 것이며, 반면에 모든 이에게 최적의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든 경제학자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우스 종형곡선의 왜곡과 오류(쓸모없는 부분이라고 무시된 종형곡선의 양쪽 하단에서 직선처럼 길게 늘어진 부분-롱테일-이 실제로는 하위 99%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가우스 곡선은 간과했다는 것으로, 프랙털이론과 롱테일경제학의 학문적 근거를 제공)부터 파고듭니다. 저자들은 따르면 이 세 가지가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고 상호 강화되면서 19세기 초반에 있었던 초장기 경제불황과 1929년에 시작된 선진국 중심의 경제대공황보다 더욱 심각한 경제대침제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결과 2008년 미국 월가와 런던 금융시장 발 금융 대붕괴(정확히는 신용의 대붕괴)에 의해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미국식 무정부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가 한계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슈퍼리치들도 상당한 돈을 날려버렸지만, 거의 전 재산을 날린 중하위층의 타격은 회복불능의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음에도 유대인들이 수십 년째 이사장을 맡고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우리의 한국은행과는 달리 민간은행이다)는 부자들의 금고를 다시 채워주고, 무한대의 돈놀이를 할 수 있는 미국 중심의 신용 체계가 무너지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이를 위해 연방준비제도는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실시했고, 슈퍼리치와 상위 10%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날린 손실을 만회했지만, 나머지 90%는 빈곤의 악순환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이 바람에 선진국의 주식시장은 금융 대붕괴 이전을 넘어 사상 최고에 이르렀고, 천문학적인 재산을 날린 슈퍼리치들은 금융 대붕괴 전보다 더욱 부유해졌습니다. 자본주의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공황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하위층의 지갑을 털어 만회하곤 했는데, 이것이 불가능해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은행과 금융시장을 오가며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밀어붙인 것입니다.

 

 

무제한 양적완화 때문에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시중에 풀렸지만, 이것이 실물경제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은행과 금융업체를 살리고 주식시장을 띠우는데 사용됐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실물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지만, 슈퍼리치와 상위층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낙수효과는 이번에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오죽하면 세상이 1%의 부자와 99%의 가난한 사람으로 나뉘었다는 말들이 전세계를 회자하겠습니까? 미 연방준비제도의 무제한적 양적완화 때문에 부의 불평등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고,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이라도 찾아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공존과 상생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이 일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됐습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노동자들은 비정규직과 임시직을 놓고도 다투어야 할 상황까지 내몰리게 됐습니다. 평균수명이 늘은 만큼 매년마다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는 새내기들과 피터지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것입니다.  

 

 

허면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수없이 많은 일자리도 없애버린 2008년의 금융 대붕괴는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됐던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제일 먼저 성경에 나오는 문구를 차용한 마테효과와 파레토의 법칙부터 살펴봐야 합. 우선 가우스 이론에 근거한 통계가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밝힌 《블랙스완의 도움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월가의 현인, 탈레브는 《블랙스완》에서 “확률과 수학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현실 세계의 근소한 수리적 변화는 정규분포곡선으로 대표되는 완만한 무작위성으로 추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가증식하고 거친 무작위성으로 추정된다. 수식화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우스 정규분포곡선이 아니라 만델브로적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이란 뉴턴역학이나 다윈의 진화론, 헤겔의 변증법,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처럼 선형적으로 돌아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이것에 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룰 예정인데, 원체 방대한 내용이라 최소 4~5편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습니다). 만델브로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양자역학의 기반을 이루는 두 개의 원리에 대해 짧게 다뤄보겠습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비약을 통해 새로운 조합을 이루어내는 양자역학의 근간이 되는 두 가지 원리는 불확정성 원리와 베타원리입니다. 

먼저 불확정성의 원리란 물질과 반물질이루는 기본입자들이 질량을 지닌 입자의 성질을 띠면서도 동시에 운동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형태인 파동의 성질도 띠어서 어느 하나를 파고들면 나머지가 무너지기에 우주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불확정한 상태로 머문다는 원리입니다(입자물리학적으로 보면 게이즈장 이론). 하이젠베르크가 정립한 불확정성의 원리는 빛이 입자이면서도 파동이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광양자론에서 처음으로 구체화됐습니다.

 

 

두 번째인 베타원리는 서로 같은 성질을 지닌 입자나 에너지가 서로를 밀어낸다는 원리입니다. 우주를 이루는 모든 기본입자들이 다차원적으로 압축돼 있던 특이점에서 거대한 폭발(빅뱅)이 일어나면서 우주가 창조된 것도 이 원리가 바탕이 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원리가 우주를 만들어낸 기본법칙인데, 이런 양자역학의 원리들을 통해 우주가 뉴턴역학에 의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뉴턴역학의 붕괴는 다윈의 진화론을 차용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물론, 헤겔의 변증법에 기초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도 무너뜨렸습니다. 우파의 신화로 자리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과 좌파의 신화로 자리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류의 발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적 비약(진화를 추동하는 돌연변이가 이에 속한다)의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예측가능한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뉴턴역학과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쓸모없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의 물리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는 초끈이론(양자역학과 뉴턴의 만유인력,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통합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일이론의 핵심인데, 이것에 관해서는 과학란에서 별도로 다룰 생각이다)이 양자역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들이 채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금융위기를 예언해 유명세를 탄 블랙스완의 저자 탈레브는 이 두 가지 이론에 근거해 가우스 정규분포곡선(뉴턴역학의 핵심인 작용과 반작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에 따라 통계를 작성하는 것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는지 2008년 발 금융시장 대붕괴을 통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선형방식을 따르는 기존의 통계수치는 현실의 변수들을 모두 다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확인 편향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책의 제목인 '블랙스완'은 인간이 발견한 백조들이 모두 다 하얀 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검은 백조는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수천 년 동안 이런 믿음이 강화되다가 어는 동물학자가 검은 백조를 발견함에 따라 수천 년 된 믿음이 단 한 번에 무너져내린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사항에 넣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위대한 성찰처럼 인간은 자신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인류 문명에 최악의 선물을 남긴 플라톤의 주름지대에 관한 내용은 별도의 글로 다루겠습니다).   



실제로 인간은ㅡ집단도 마찬가지이지만ㅡ자신의 성향과 기호, 경험과 환경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필요한 쪽의 의견만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로 구별되는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경우에는 이런 확인 편향의 오류가 심각하다 못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친구 간에도 등을 돌리게 만듭니다. 이런 확인 편향의 오류 때문에 가우스 정규분포곡선(위가 홀쭉하고 밑이 넓은 종 모양의 곡선)에 경도된 주류 경제학자들은 2008년의 금융시장 대붕괴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부의 양극화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자기조정 능력이 있는 완전시장을 방해하는 국가의 개입이나 과잉된 규제, 초국적기업의 담합과 내부거래, 경제정책의 일관성 부족,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정치인 등이 문제라고 합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도록 내버려 두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합니다. 애당초 보이지 않는 손이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면서요.


   

주류 경제학과 현장과의 차이를 확인 편향 오류 등으로 설명한 탈레브는 부의 양극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마태효과를 얘기했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는 마태복음 13장 12절에 나오는 내용인데,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될 것이며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질 것이라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대한 일종의 종교적 우화에 불과합니다. 



낮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예수가 신앙이 깊은 사람들이 하늘에 가면 더욱 대접을 받는다는 뜻에서 한 말을 주류 경제학자들이 부의 양극화가 시장경제의 발전 도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경제현상이라고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테러리스트를 사살하는 중에 수없이 많은 민간인이 피살된 것을 전쟁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부수적 피해라고 말한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이번에는 부의 양극화를 최초로 밝혀낸 파레토의 법칙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였던 파레토는 빈부격차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몇 세기에 걸쳐 국가들의 부와 소득에 대한 다량의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만델브로브트는 프랙털 이론과 금융시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는 한 축에는 소득 수준을, 그리고 다른 축에는 그 소득 기준을 가진 사람 수를 표시해 놓고 그래프용지 위에 데이터 차트를 그리자 거의 모든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동일한 그림이 그려졌다. 사회는 빈자 대비 부자의 비율이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완만히 기울어지는 <사회적 피라미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닥은 매우 두껍고, 부자 엘리트들이 속해 있는 위는 매우 얇은 <사회적 화살>에 더 가까웠다.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철저히 분석한 파레토는 소득 분포가 가우스의 정규분포곡선(종형곡선)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로써 세상의 부의 대부분을 소수의 부자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화 된 것입니다. 그가 발견한 법칙에 따르면 억만장자가 억대의 돈을 버는 확률이 가난한 사람이 만원을 버는 확률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20 : 80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득불평등이 더욱 커지면 1 : 99 사회도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 2008년 금융위기가 가져다 준 교훈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파레토에 의해 마태효과가 공식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물론 최근의 기준으로 보면 파레토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를 보여줬습니다. 파레토가 개인적으로 구할 수 있는 국가의 자료가 일부 유럽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고, 통계와 분석법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티핑포인트》와 함께 80대 20법칙을 넘어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롱테일 경제학의 도움을 받아 보겠습니다(가우스 이론에서 벗어나 프랙털 이론을 따른 이유는 삼성전자의 어닝쇼크, 미래의 먹거리가 문제야를 참조하십시오). 이 책의 저자 크리스 엔더슨은 미국의 속담을 인용하며 “만일 단 몇 명만 부자가 될 수 있다면 그들을 갑부가 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가우스 곡선의 꼬리 부분이 무한히 길어지면 종형을 이루는 머리와 몸통 부분을 넘어설 수 있다.



이는 단 몇 명이 갑부가 된다한들 한 국가의 부나 전 세계의 부를 모두 독식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갑두들의 재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욱 많은 부가 가우스 종의 곡선에서 ⅹ측 부분과 평행하게 이어지는 긴 꼬리(롱테일) 부분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류들의 시장경제의 규모보다 그것에서 잘려나간 꼬리 시장의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이것을 양성화할 수 있으면 가벼운 경제의 도래가 가능하며, 부의 양극화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소수에게 소득이 집중되는 부의 양극화는 《롱테일 경제학》의 주장도 무효로 만들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부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중산층의 수는 계속해서 줄고 있고 하위층과 극빈층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게다가 인간 수명의 연장은 종의 차원과 개인의 차원에서는 축복일지 모르지만, 정치경제적인 면에서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척되고 있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고령화 추세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출산율이 세계에서 최저로 떨어지며, 부의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계층의 이동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2030세대가 오죽하면 삼포세대라는 말로 회자되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중산층이 무너져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하층민은 극빈층으로 떨어진 2008년 이후에는 부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빨라지고 있습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다보스 포럼에서 전세계 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초국적 기업의 총수와 거대 금융 자본가, 세계적 언론기업과 각국의 정치지도자, 국제기구 책임자와 급진적 지식인들의 모여서 공공연히 자유시장 자본주의 실패를 얘기하는 것(이것도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쇼비지니스에 불과하다)도 이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인류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는지도 모릅니다.  



최근에는 허리우드 영화관계자들이 최고의 영화로 뽑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히로인인 비비안리가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부의 양극화가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는 오늘에는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도 믿기 어려울 판입니다. 기존의 시장경제로는 부자들의 재산을 늘릴 수 없어서 폭력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늘고 있고, 빈곤의 거버넌스(마이크로 파이낸스라고 알려진 미소금융을 말함)를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있지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좌파게티 2014.10.17 11:41

    아고라에 이어 블로그에서도
    명료한 글과 좋은 책들...
    소개 잘 받고 갑니다. ..
    시간나는대로 탐독해야 겠네요...

  2. 무대포 2018.12.02 13:36

    좋은글 감사드려요.
    너무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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