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만 생각하던 필자가 ‘세상을 알고나 죽자’라는 심정으로 출발한 지난 10년 동안의 공부는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로 압축된다. 정말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신자유주의 통치술로 귀결되는 것은 인류의 멸망을 피하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산업화된 대학에 자리를 틀고 앉은 강단의 지식인들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치열하게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확인하고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을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의학이 도와줘 10년 이상을 더 살 수 있다면 몇 개의 지적공동체라도 이루어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작은 예들을 만들고 싶었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수백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무엇인가 미진했던 부분을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비롯한 푸코의 강연 저작들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경제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술이며,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가 강한 국가와 기업에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한국과 일본, 독일의 기업들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최근에 읽은 조하나 보크만의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적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더 신자유주의적 국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박정희의 통치술에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는 것에서 기인함을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조금은 지루했지만,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쟁적 시장, 더 작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경영진과 주주들이 통제하는 위계적 기업, 자본주의’를 열렬히 지지한다고 나온다. 필자도 이것에 동의한다. 여기에 무제한의 사유재산과 독재자, 기업의 사적독점을 중심으로 한 정경유착이 더해지면 신자유주의는 완성된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가 최단기간 내에 강제적으로 이식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필자가 공부한 바로는 박정희가 한국적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의 원형을 제공했고, 줄푸세의 박근혜에 이르렀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도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명박근혜가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일 수 있는데 일정 수준의 도움을 준 결과를 초래했다(이는 당시의 사정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공통점인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경제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최소화시키거나 말살시킨 형태다. 따라서 노조가 살길이 없고, 민주주의가 극도로 위축되기 때문에, 공교육이 재생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고, 최고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민주주의는 배척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여기에 정치검찰과 국정원, 국토부와 함께 최고의 기득권 이익집단인 교육부가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따라 대학에서 민주주의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장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간 갔고, 이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사회에서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형편없이 낮아졌지만, 그들로부터 간선제를 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채 비리사학을 복귀시켰고, 국공립대에 예산 지원 중단이라는 압력으로 간선제를 밀어붙일 수 있었고, 교수들이 간선제로 뽑은 총장 후보도 청와대의 낙점을 받지 못하면 임명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국공립대들이 하나씩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고, 87민주화항쟁의 최대 성과 증 하나인 총장직선제가 부산대만 남겨놓은 상황에 이르렀다.



부산대마저 총장간선제가 확정되면 권력의 뜻에서 벗어나는 대학이 더 이상 나올 수 없으니, 그 다음에는 교과서의 국정화와 대학의 신자유주의 우경화와 산업 및 상업화(민간대학은 다 이 길로 들어섰다)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교육을 유치원에서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완전히 장악하게 되고, 교육부의 목표는 완전히 이루어진다.





이럴 경우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화석처럼 흔적만 남는 최악의 교육환경이 조성된다. 이 땅의 보수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고 미래세대까지 신자유주의 우파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수우파의 영구집권이 가능해지는 것이고, 미레새대가 지옥으로 가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이런 최악의 과정을 지켜본 부산대 교수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교육부의 일방통행을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이제는 학생의 자살만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도 되지 못해 교수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막막하고 절망적이었으면, 최고의 지성이라고 하는 교수마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겠는가?



정말 대한민국은 곳곳에서 미친 증상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오고 있다. 푸코가 말한 ‘광기의 시대’가 대한민국에서 통째로 재현되고 있다. 정의는 고사하고 윤리와 도덕을 넘어 상식과 지식, 종교와 예술마저도 돈이 되지 않으면 천대받는 세상이 됐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도 되는 이기주의가 극에 달했고, (조)부모의 재산과 사는 지역, 학벌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여긴다.





일베나 서북청년단, 어버이연합처럼, 자유청년연합 등이 초법적인 폭력을 일삼아도 처벌도 되지 않고 수구세력과 극우집단이 비호하고 있어 그들의 초법적 폭력은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국민은 온갖 방식의 조작과 이간질로 반목하고 작은 이익을 두고 극단으로 갈라짐에 따라 사회적 합의로 가는 길이 아예 차단돼 버렸다.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정부 부처들과 기관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일보다는 대통령과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혈안이 됐고, 대통령이 지시한 것만 행함으로써 국민의 요구는 무시하기 일쑤다. 국방부와 국정원은 청와대의 관리를 벗어난 느낌이 들 정도다. 정부는 무능을 넘어 무책임까지 일상화돼 최악의 행정부로 전락했지만, 그마저도 쓸데없는 일만 벌이고 있다.



한국이 미쳤다. 어디를 둘러봐도 뭐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다. 대통령부터 선행학습에 내몰린 유아까지 권력과 성공에 대한 욕망만이 역겨운 냄새를 내며 대한민국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 혼란과 역주행을 견딜 수 없었던 교수가 자신의 목숨을 던져 미친 대한민국에 묵직하고 참담한 경고를 던졌다.





필자는 교수의 유서를 읽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숨이 막혀 읽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나라와 세상, 집단들은 미쳤지만, 그 와중에도 바르게 살려는 분이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필자 주변에는 교수들이 널려 있지만 거의 대부분 적당한 타협에 익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 언론에 한 번도 다루지 않았다는 것에 극도의 절망을 느꼈다.



허구한 날 정부에 유리한 쓰레기 보도들만 양산하고, 선정적인 사건만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종편과 존재이유를 포기한 보도채널이 친정부적 행보만 이어간 이래 지상파3사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모든 언론과 방송이 제 역할을 포기했고 교육은 공공성을 포기했다. 필자는 부산대 사태를 어디에서 접해보지 못했다. 매일같이 여러 신문과 방송을 보면서도.



아래의 유서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묵직하고 먹먹한 돌 하나가 가슴에 자리하고 있는데, 유명을 달리한 교수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같이 미친 일들이 더해지는 바람에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미쳤다, 망하는 길을 향해. 기득권은 특권화를 울부짖는다, 미래세대의 고혈을 짜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드디어 직선제로 선출된 부산대학교 총장이 처음의 약속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최종적으로 총장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부산대학교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일 뿐이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교육부의 방침대로 일종의 간선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서 올려도 시국선언 전력 등을 문제 삼아 여러 국·공립대에서 올린 총장 후보를 총장으로 임용하지 않아 대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란 점이다. 교육부의 방침대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후보를 임용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대학의 자율성은 전혀 없고 대학에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오직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는 민주주의 심각한 훼손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이 대학과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무뎌있다는 점이다. 국정원 사건부터 무뎌있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교묘하게 민주주의는 억압되어 있는데 무뎌져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학에서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는 오직 총장직선제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 된다.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이며 국·공립대를 대표하는 위상을 지닌 부산대학교가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이라도 이런 참당한 상황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대사를 봐도 부산대학교는 그런 역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총장직선제 수호를 위해서 여러 교수들이 농성 등 많은 수고로움을 감당하고 교수총투표를 통해 총장직선제에 대한 뜻이 여러 차례, 갈수록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가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너무 무뎌있다는 방증이다. 대학 내 절대권력을 가진 총장은 일종의 독재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교수회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이 들어갔고, 오늘 12일째이다. 그런데도 휴가를 떠났다 돌아온 총장은 아무 반응이 없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제 방법은 충격요법밖에 없다. 메일을 통해 전체 교수들에게 그 뜻을 전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교수끼리 보는 방법으로 이미 전체교수 투표를 통해 확인한 바 있는 상황에서 별 소용이 없다. 늘 그랬다. 사회 민주화를 위해 시국선언 등을 해도 별 소용이 없다. 나도 그동안 이를 위해 시국선언에 여러 번 참여한 적이 있지만, 개선된 것을 보고 듣지 못했다. 그것보다는 8·90년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방식으로 유인물을 뿌리는 게 보다 오히려 새롭게 관심을 끌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지난 날 민주화 투쟁의 방식이 충격요법으로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근래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 자신 부끄러운 존재이지만. 그래도 그 희생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몫을 담당하겠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 역할을 부산대학교가 담당해야 하며,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야 무뎌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각성이 되고 진정한 대학의 민주화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가 굳건해 질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에쏘 2015.08.18 19:52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뭐라 말을 덧붙여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미쳐간다는 말 밖에는...

    • 늙은도령 2015.08.18 19:59 신고

      정말 광기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극우 수구세력들의 준동이 도를 넘었습니다.

      그나저나 건강하신 것이지요?

  2. 방문객 2015.08.18 20:12

    충격적입니다. 교수 직위와 삶을 포기해서라도 불의에 맞서셨군요.

    • 늙은도령 2015.08.18 21:16 신고

      실제 교육부가 마음에 안 들면 총장 임명 품위를 청와대에 올리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피해본 대학교가 여러 군데입니다.

  3. 참교육 2015.08.18 22:13 신고

    선생님의 글을 통해 학문의 깊이와 인간애 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가지신 분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막가파들이 판을 치는 세상 민주주의를 포기하겠다는 인간 망난이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선생님의 뜻 하신바를 꼭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00:07 신고

      요즘은 정말 어디서부터 움직여야 하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이 극단에 이르렀습니다.
      지구온난화까지 겹치면 정말로 극단의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이 중요한데, 우리는 잘할 수 있을까요?

  4. HowlS 2015.08.19 00:38 신고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02:05 신고

      묻혀 버리면 안 되고, 국공립대 교수들로 고인의 뜻이 전파돼야 합니다.
      교수사회가 그럴 수 있을지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이대로 묻히지 않게 노력해야 합니다.

  5. 진검승부 2015.08.19 11:13 신고

    30년이 필요할 지, 100년이 더 필요할 지....우리세대까지 다 저승에 가면 바뀔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16:56 신고

      정부가 법인세 인상과 부자증세해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외에는 절대 답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전체 인류가 지금보다 몇 배는 잘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풀려있습니다.
      조세정의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제대로 되면 당장 내년부터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6. 백순주 2015.08.19 13:01 신고

    아직 제 깜냥이 선생님 글을 소화할 수 없을 듯 하여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살며시 들춰낸 글에 역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충격'이란 단어는 이제 목숨을 내놓아야만 가능한가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의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면...
    요즘 혼란스럽습니다.
    그동안 보도 듣도 못한 일들을 눈으로는 보는데 머리로는 도망치고 있습니다.
    진정 이 사회를 위해 제가 할 일은 있는 걸까요?

    • 늙은도령 2015.08.19 16:58 신고

      그럼요, 많지요.
      지금 쓰시는 글들도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한국은 제조업을 포기하는 순간 망합니다.
      화학은 한국 최고의 젖줄이고요.
      님은 지금처럼 살아도 충분합니다.

  7. 공수래공수거 2015.08.19 13:51 신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경북대학교도 수개월째 총장을 교육부가 승인을
    하지 얺고 있습니다
    대학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하려는 청와대의
    술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두렵습니다
    유신시대로의 회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17:05 신고

      이런 대학이 많습니다.
      방통대도 총장 임명이 1년 이상 미뤄졌다 정권이 원하는 자가 올랐지요.
      경북대는 아직도 싸우고 있고, 몇몇 대학도 지금 전쟁 중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류층은 유신으로 복귀했습니다.

  8. 행인 2015.08.19 19:57

    자신의 목을 걸고 왕에게 상소를 올리는 조선시대 선비 같은 분이 아직도 있다는 게 상당히 놀랍습이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늙은도령 2015.08.19 20:16 신고

      이것이 그냥 묻히면 안 되는데 벌써 언론에서 사라진 느낌입니다.
      이런 분들의 희생은 반드시 기억되고 세상을 바른 방향으로 가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9. Chris 2015.08.20 01:26

    정말 미쳤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저렇게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이 그냥 소비되는 현실이 아프네요.

    • 늙은도령 2015.08.20 01:50 신고

      정치라는 것이 정말 추악해졌습니다.
      기득권을 형성해 지들 이익만 챙기는 최악의 사기로 변질됐으니까요.

  10. 2015.11.18 09:53

    어리버리한 동네 아줌마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생양아치 깡패집단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어떤 것도 통하지않는...

    모든 것이 저들의 권력에 장악되어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가슴은 뜨거워 분노가 들끓는데..



많은 분들이, 저 또한 분명히, 최근의 대학생들에 비해 7~80년대의 학생들은 대학교에 편하게 입학했다고 말합니다. 평균 3세에 시작되는 선행학습부터 시작해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최근의 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경쟁의 강도가 7~80년대의 학생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3명 모두가 명문대에 입학한 제 형제들 중 형과 동생은 과외를 받지 않아도 전국적으로 최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고, 대학진학률도 2~30%에 그쳤으니 경쟁의 강도 면에서 최근의 대학생에 비하면 높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최근의 대학진학률은 하락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70%대를 기록하고 있으니 경쟁의 강도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어릴 때부터 살인적인 경쟁에 노출된 이들이 대학에 들어와서도 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에 직면해 고통스러운 대학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7~80년대의 대학생들과 다릅니다. 79~80년을 빼면 대학졸업장이 취직을 보장하던 시절의 대학생들은 사회적 책임감 때문에 민주화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고, 가족과 사회 및 5.18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부책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낭만을 만끽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최근의 대학생에게 부패하고 불의한 세상과 맞서 싸우라고 주문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시장경제와 독점자본주의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거대담론을 얘기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인식되기 일쑤입니다. 나 하나 살기에도 힘겨운데 타인과 공동체 및 사회를 염려할 이유도 여력도 없다고 합니다. 



필자도 세계를 파국으로 몰고 간 보수정당이 저학력에 저소득층의 지지를 받아 계속해서 집권하는 이유에 대해 파고들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이런 일반적 통념에 동의하고, 대학생과 청춘들을 이해하고 변호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앞세대가 만들었지 그들이 만들지 않았다는데 동의했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미친년 널 띄듯 공부하고 있는 필자가 최근에 들어 ‘자발적 복종’과 ‘반동 보수의 성공’ ‘어리석은 유권자’에 관한 연구들을 파고들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데로 하면 무엇도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5~60여권에 이르는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반동 보수의 문화운동과 환경의 변화가 만들어낸 착시현상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니 7~80년대의 대학생들도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쟁(이를 테면 4당5락이 있었다. 4시간 자면 명문대를 가고 5시간 자면 못 간다는 뜻)을 치렀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대학수도 적었고, 정원도 적었기 때문에 경쟁의 강도도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 실질적인 경쟁률도 지금보다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선행학습을 어려서부터 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지만,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때도 매달 시험을 봤고, 중학생이 되면 치열한 선행학습과 수없는 복습을 해야 했습니다. 매달 시험을 치렀고, 논술이 없는 대신 본고사(81년 폐지)가 있었습니다. 상위의 학생들은 동경대학(당시에는 하버드대에 비교될 정도였다) 진학용 문제집도 공부해야 했습니다.



경쟁의 빈도는 낮았을지 모르겠지만 깊이 면에서는 오히려 높았을 수도 있습니다. 성적에 따른 우열반도 있었고, 야자도 있었고, 학원도 있었고, 과외도 있었습니다. 국정교과서 외에도 추가로 공부해야 할 참고서와 문제집도 엄청나게 많았고 예습과 복습이 필수인 숙제도 산더미 같았습니다. 학습의 부담은 지금보다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7~80년대 상위 성적의 학생들이 최근에 태어났다면, 중고등학교 내내 상위층을 형성하며 명문대학에 입학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수재였기 때문에 현 시대의 수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보다 취직이 쉬웠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제조업이 많았고 기술공학의 수준이 지금보다 낮아서 고용 없는 성장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대학생들이 보다 어린 나이에 경쟁에 내몰린 것이나, 졸업과 동시에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1인당 GDP의 증가를 이뤄낸 자유시장경제의 심화와 기술공학의 발달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기성세대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발전이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특히 일제 36년의 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의 보수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잘 사는 나라에 들어서자는 국민적 욕망과 어우러져 독재도 마다하지 않는 압축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유럽과 일본, 대만에 비하면 박정희 시대의 압축성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성장의 기초를 쌓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기초 하에 살인적인 노동을 견뎌낸 저임금 노동자들과 ‘월화수목금금토’라는 자조적인 유행어에서 알 수 있듯이 과중한 업무를 소화해낸 근로자들, 잠시도 쉴 틈이 없었던 전업주부의 희생과 노력 등이 어우러져 대한민국은 꾸준한 성장(이것이 바른 방향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노동 대비 낮은 임금을 감수한 이들의 피와 땀이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보수정당의 권력독점이 수출 위주의 자유시장경제와 기술공학적 발달의 필연적 결과인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한 것이지, 젊은이들의 그렇게도 욕하는 기성세대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구조적 부조리와 부정의를 타파하기 위해 대학생과 넥타이부대가 주축이 된 6.10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할 수 있었지만,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 13번째 대선까지 기성세대가 체제를 선택할 방법도, 제도를 구축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저항했고 싸웠으며 수없이 패했습니다. 



게다가 김영삼 정부의 실정으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영미식 신자유주의가 순식간에 구축되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는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낙수효과와 규제완화, 노동유연화, 민영화 등을 신격화한 영미식 신자유주의는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모든 분야에 무한경쟁의 시장논리가 적용됐습니다.



기술공학의 발달은 거의 모든 제조업에서 자동화를 극대화시켰고,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의 발전과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적용으로 임직원의 노하우를 대체할 수 있었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심화됐고, 최근에는 사물인터넷의 번성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자리가 줄어들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청년실업율이 늘어나고 노인고용률이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며, 비정규임시직이 늘어나는데 비해 양질의 정규직이 줄어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류를 노동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고 풍요와 여가생활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과학과 기술공학의 발전이 1%의 지갑만 불려줬을 뿐, 새로운 형태의 빈곤과 배제를 일상화시켰습니다.   





이에 반하여 새로운 경제가 출현해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체하는데 실패했고, 그에 따라 경쟁의 강도는 높아만 갔습니다. 다른 나라들보다 유독 대한민국에서 경쟁의 강도가 심화된 것은 자원이 없는 나라라며 인적자원(자산과는 달리 자원은 쓰고 버릴 수 있고,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인적자원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프레임은 인간을 자원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부 정책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평생을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키워야 했던 베이비부머 세대가 정점을 찍은 후 출산율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고, 보건후생과 의료서비스의 발전과 풍족한 식사로 인해 유아사망률이 떨어짐에 따라 경쟁이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7~80년대에 비해 대학교의 수가 급증했지만 7~80%의 학생이 진학을 하니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대현상인 저출산도 똑같은 이유로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입니다. 모든 선진국들도 출산율이 떨어지고,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새로운 먹거리는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인류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그런 식의 성장을 선택했기 때문이며, 자의던 타의던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5.18 09:18 신고

    어떤 시대라도 동일 잣대로 비교하는건 어불성설입니다
    많은 부분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권의 정책에 따라 달라진건 사실입니다

    • 늙은도령 2015.05.18 15:04 신고

      저는 청춘들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일부 바꾸려고 합니다.
      무한대로 청춘들의 어려움만 옹호하다가는 엄옥하던 시절을 관통해온 그 당시의 청춘들을 너무 벼랑으로 내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청춘들을 변호하는 것이 보수 반동의 득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생각한 것보다 보수세력이 지닌 무기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상태로는 답이 없습니다.
      획기적인 변화를 찾아야 하고 대안을 창출해야 합니다.

  2. Lazini 2015.05.18 11:00 신고

    2부까지 읽어야 글의 요지를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만.. 그런 만만치 않은 생존경쟁을 경험한 세대가 부모이면서 함께 실패를 겪으며 위로받을 인간적인 접촉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 최근 학생들의 상황이 아닐까합니다. 청소년과 20대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는것은 외부 경쟁압박만이 아니라 이를 버티게 해주는 요소들이 줄어들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 늙은도령 2015.05.18 15:06 신고

      1부은 대학생 입장과 386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기성세대를 변호한 것입니다.
      2부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할 것입니다.
      몇 부에서 끝날지 모르지만 새로운 접근을 제시할 생각입니다.

  3. 2016.03.27 13:51

    386이란 80년대 대학학번을 말하는건데 81년부터 본고사가 폐지되었는데 그들은 완전히 학력고사세대인거죠.
    또한 사교육도 법으로 못하게 학원,과외가 81~88년 전두환 정권동안 됬었죠. 실제로 그 당시에는 개천에서 용난다가 가능했던 시기였고 이는 전두환을 극도로 싫어하는 언론측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 늙은도령 2016.03.27 14:01 신고

      제가 마지막 본고사 세대였고 첫 번째 예비고사 세대였습니다.
      제수를 했기 때문에 둘을 다 경험했죠.



오로지 남의 대들보만 눈에 들어오는 박근혜 대통령은, 재보선의 압승에 고무되어 나라 전체를 신자유주의적 통치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거의 모든 규제들을 무력화시키려고 하면서도, 윤 일병 집단구타 살인사건과 충격적인 GOP총기난사사건 등의 비극적인 참사의 처방으로 조기교육의 필요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다. 군대가 갖는 태생적이고 제도적인 한계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한반도, 지정학적으로 열강들이 충돌하는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다섯 국가 중에서 한국만 36년이나 식민지 착취와 수탈을 당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식하고 바라보는 군대란 아버지 박정희의 쿠데타로 연결되는 것 때문인지, 군대를 오락거리로 포장해서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MBC의 '진짜사나이'에 나오는 군대인가 보다. 현실과 리얼리티쇼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텔레비전에 길들여진 성찰없는 미디어세대의 전형적이 모습이다. 군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기교육과 인문학적 소양을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일제 강제합병시대 이후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교육이고, 식민지사관을 추종하는 세력들에 의해 교학사 교과서 사태까지 이어진 것도 박 대통령의 인식이 그녀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추종한 식민지근대화론의 논리가 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 허구성이 여러 가지 연구와 자료, 통계들로 밝혀졌음에도 현 집권세력의 뿌리가 식민지 36년 동안 부를 축적한 친일 부역과 일제가 구축한 군대에 있으니 대통령이 인지부조화를 드러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최근에 들어서는 최상위 부자들이 막대한 비용이 드는 선행학습을 통해 계급적 차별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유체이탈 화법의 전형이자, 참으로 한가하기 그지없다. 부부의 대다수는 출산을 미루고, 출산 이후에는 맞벌이를 해야 아이를 교육할 수 있는데 조기교육과 인문학적 소양을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 삼포세대에 이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지고, 대학들은 인문학 강좌를 폐지하고 있는데 이런 뜬구름 잡기식 발언은 어떤 경험과 성찰에 근거한 것일까?



인류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본성에 사랑을 찾도록 만들었고, 후손을 이어가기 위해 사랑의 성행위에 절정의 쾌락을 안배했는데, 아예 사랑을 하는 것조차 힘에 겨운 청춘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설사 조부모의 재력이나 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연애를 할 수 있다 해도, 전반적인 섹스의 양은 늘었으되, 서로를 아끼고 보호하는 사랑보다는 하룻밤의 욕망과 쾌락을 위한 소비적 행위처럼 이성교제를 한다. 



그에 따라 피임과 낙태도 비약적으로 늘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에게 주어지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만남이 쉬웠기에 이별도 어렵지 않으며, 교제기간이라는 것도 극단적으로 짧아짐에 따라 상대를 알기도 전에 사랑의 전 과정이 끝나버리기 일쑤다. 연예와 사랑의 가벼움은 결혼을 할 때에 이르러서는 철저한 계산을 통해 손익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보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실존과 존재의 모든 형태가 소비하고 계산기를 튕기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현실 체험도 사이버공간에서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통제 하에 진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삶의 편리함은 끝을 모르고 늘어나고 있지만, 그런 편리함을 집요하게 팔아먹는 기업과 자본의 탐욕에 자연과 지구는 물론 모든 생명과 최종적으로는 먹이사슬의 맨꼭대기에 있는 인간마저 사회경제적 위계에 따라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았다.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다양한 미디어들



물론 지구와 자연의 어떤 반격에도 살아남을 자들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인 지구 멸망에 나오는 생존자들이 실제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방어막을 펼칠 수 있는 최상류층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거대한 부를 이용해 일체의 위험에서 살아남을 공간들을 구축하고 있다. 그런 자기보존의 능력마저 급격한 경사면을 이루며 각종 불평등을 양산하고 있지만, 최상류층이 잠시도 쉬지 않고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런 궤변에 저항할 여력도 없고,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길들어져 있는 99%의 인류는 하루, 한 시간, 일 분의 만족과 단기적인 생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삶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들이 매일같이 체험하는 것은 생존본능에 충실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라면 삶을 잘게 나누어 지속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그때그때를 넘기다 보면 오늘과 같은 내일이 초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부만이 지속적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신의 능력을 대출ㅡ천문학적인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ㅡ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라 해도 인간을 움직이는 철학은 단 세 개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것들 또한 최종적으로 하나로 합쳐진다. 돈과 성공과 권력.. 그리고 둘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돈으로 귀결된다. 천문학적인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타인의 지갑을 착취해야 하고, 그러려면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돼야 한다. 



오직 돈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축해야 하며, 무한대의 이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신용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지닌 자만이 돈이 창출한 권력과 질서에 복종하기 마련이다.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풍요와 행복을 위해 도입된 추상적인 존재들ㅡ화폐와 무한대의 신용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금융공학ㅡ이 이제는 인류의 노동과 목숨을 담보로 신의 권능을 대신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런 천박하고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바꾸려면ㅡ가능성이 조금은 있다ㅡ인간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수십 년 전부터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철학적 사고를 되살려야 한다. 애석하게도 철학적 사고란 지극히 쿨하지 못한, 개념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그래서 삶에서 배척되기 일쑤인 그런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신봉하는 자들처럼, 외국의 노예로 산다 해도 배 부르고 등 따시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주류가 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고의 형태를 말한다. 



때론 자아의 실체를 찾아가는 존재론적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순간순간의 삶에 집중하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실존론적인 사고에 빠져들기도 하며, 한없이 늘어나는 추상적 사고에 빠져들기도 하다가도 때로는 숱한 경험이 만들어준 번개 같은 직관에 따르기도 하는, 분열적이면서도 통합적이고 다층적이면서도 압축적인 주체의 인식론이 철학적 사고의 핵심을 이룬다.   





물질과 제품, 서비스가 주는 편리함과 욕망 및 쾌락의 충족보다는, 가난할지언정 정신적 영역에서의 치열함과 풍요로움에 빠져들고, 느릴지라도 다양한 가치와 지혜의 세계를 산책하며, 화려한 인공의 조명을 벗어나 자연이 주는 청명한 빛에 나를 맡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저녁 노을이나 황혼이 져야 비로소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같은.. 한 마디로 미친놈 소리 듣기 쉬운 지혜와 성찰의 세계에서 하염없이 배회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타인은 정말 지옥이라면, 타인이 없는 나란 존재할 수 있을까? 나를 정말로 배려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그렇게 타인을 대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내가 가는 길은 성지로 이어질까 아니면 지옥으로 이어질까? 내가 가면 길이 되는 것일까, 내 뒤에 누군가가 걸어가면 그때야 길이 되는 것일까? 이런 답이 없는 것들은 끊임없이 물어보고, 끝까지 밀고나가야 가능한 것이 철학적 사고의 본질이다. 이런 과정에서 승리의 배당이란 지극히 초라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리얼킴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헌데 현대의 천민자본주의와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소비에의 욕망과 쾌락은 이런 것들ㅡ당장의 만족을 뒤로 미루는 것ㅡ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욕망한다, 오늘에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것이 내일에는 저가의 필수품이 되기를. 신용을 통해 분할 구매하면서도, 내일이면 또다른 신제품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며칠 가지 않을 순간의 만족과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불만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이런 악순환은 언제 시작됐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존재하는 모든 분야가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돌아가고, 돈이 되지 않는 분야는 버려지고 퇴출되는 이명막근혜의 8년의 대한민국은 필연의 과정이었고,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조중동과 산업화 주역들이 그토록 주장하듯,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였고, 박정희는 압축성장의 지도자였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을까? 그래서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은 정말로 성공한 역사였을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덕산 2014.08.15 09:23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가지는 거라생각합니다.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래서 서로 늘 충동하는거 아닐까요? 여기서 충돌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사회의 순기능인데 이게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요즘처럼
    끔찍한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네요.

    • 늙은도령 2014.08.15 21:25 신고

      네, 부의 재분배를 통해 가면 기업도 성공하고 종업원도 성공하고 소비자인 국민들도 성공합니다.
      기업은 소비자가 없으면 돌아갈 수 없고, 다른 곳에서 일하는 기업들의 도움으로 받아야 합니다.
      기술과 지식은 얽혀있는 것이지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공생의 경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합니다.

  2. 참교육 2014.08.15 12:08 신고

    원인제공자는 자본주의 입니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는 인권도 자유돟 평등도 복지도 모두 꿈일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15 21:27 신고

      네, 자본주의에 인간의 심장과 영혼을 심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경제민주화입니다.
      박근혜는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여자입니다.
      나라를 아예 몇몇 친일 부역자와 기업 및 자본의 수중으로 넒겨주려고 합니다.
      하야나 탄핵이 불가능하다면 다음 정권을 탈환해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대통령 ㅡ 현대 물리학의 최정점에 이르면 유체이탈과 순간이동이 가능해진다. 헌데 두 가지 부작용이 있으니, 하나는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나머지는 간헐적으로 일어난다. 전자는 자신이 하는 말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해 수첩에 적힌 것만 읽는 것을 말하며, 후자는 오후나 밤이 되면 평균 7시간 정도 육체가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구글 어스도 무용지물!!  



                                             



수석비서관 회의 ㅡ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만들어준다. 선생님은 비선라인이 보내준 몇 개의 문장을 수첩에 적어와 차근차근 읽어준다. 학생들은 한 자라도 틀릴까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받아쓴다.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다음 학기에 강제 전학 당한다.   



머피의 법칙 ㅡ 몇 날을 고생해 쓴 글은 세련된 언어의 조합이 화려하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고, 새로 쓰려는 글은 날것들의 열망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다양한 조합을 이루어내지만 나만 볼 수 있다. 2014년의 대한민국 제1야당에 그 지적재산권이 있다. 





민주정부 10년 ㅡ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기 위해 기초공사를 하다 발견한 과거의 유물. 서둘러 봉인된 것처럼 보이는 소중한 유물을 들어내자 곳곳에서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한다. 과거의 유물에 갇혀버린 우리 젊은 날의 푸르고 서툴러서 아름다웠던 초상.



족벌언론 ㅡ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 만큼 한심한 자들도 없고, 그들과 맞서는 자들 만큼 어리석은 자들도 없다.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은 악마의 성경을 읽으며 세속의 은총에 감사하는 꼴이며, 그들과 맞서는 자들은 정의의 법전을 읽으며 인간의 법정에 세워지는 꼴이기 때문이다. 





법인카드 ㅡ 생산자과 소비자의 분리가 확실하며, 5060세대의 남성이 1020세대의 여성에게 구애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모 기관의 모토와 분탕질과는 정반대의 권력관계를 생성한다.  



현 집권세력의 통치술 ㅡ 6.4지방선거에 맞춰 유병언과 구원파 집중 조명하고, 7월재보선에 맞춰 기초연금 지급하고, 총선을 앞두고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국민을 상대로 협박하는 정언유착의 금권정치.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진 세월호특별법을 막기 위해 검찰과 경찰에 이어 군대마저 패대기치면서도 경기활성화를 내세워 세월호참사 피로감 유발하는 욕망과 탐욕의 통치가 역사를 바꾸고, 일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비약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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