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삼위일체’가 주도한 문명의 재구축은 홉스가 바랐던 최고주권의 《리바이어던》에 근접하면서도,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와 ‘환상의 짝꿍’을 이룬 자유주의(푸코가 말한 통치술로의 자유주의)를 지배적 이념으로 끌어올렸다. 부분적 진리에 불과한 진보에 대한 대책 없는 낙관론이 보편적 진리가 됐고, 성장의 독점으로 발생한 불평등과 위험의 확대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에서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졌다. 



이런 방식으로 ‘진보의 낙관론’에 절대적 권리를 부여한 ‘탐욕의 삼위일체’는 산업혁명의 발생지 영국을 거쳐 천혜의 조건을 갖춘 미국에 정착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을 건국이념으로 정립하면서 유일제국의 탄생을 알렸다. 풍요만 생각하면 되는 천혜의 땅에서 미국의 지배엘리트(WASP, 앵글로색슨계 미국인 프로테스탄트)은 국가를 기업화 했고, 기업과 개인의 이윤 추구 행위를 신의 영역에 올려놓음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했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다룬 1929년의 경제대공황은 ‘탐욕의 삼위일체’가 해체될 최대의 위기였지만 뉴딜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고비를 넘긴 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같은 국지적 전쟁들과 세계적 차원의 파시즘적 개발을 통해 거뜬히 재기에 성공했다. 계산이 불가능한 천문학적인 비용과 수천만 명에 달하는 죽음, 회복불가능한 환경파괴의 대가로 부활한 ‘탐욕의 삼위일체’는 제조업의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린 노동 분업(포드자동차의 노동 분업이 분기점)을 전 세계적 차원으로 분산배치한 포스트포디즘을 단행하면서 전 지구적 시장구축을 위한 성장과 개발의 엔진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전성시대를 만들어낸 포스트포더니즘의 본질은 저임금 노동력을 착취하고 산업의 위해요소를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이전한 것으로, 식민지 팽창(제1차 세계화)에 이은 제2차 세계화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이 환경오염을 동반한 저임금노동의 천국으로 등장했지만, 매년 중국을 뒤덮고 있는 스모그가 한반도를 거쳐 미국까지 공습함으로써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성장의 대가는 위험의 확산이었고 노동착취에 따른 부의 불평등이었다.



1, 2차 오일쇼크와 미국의 강 달러 전략 때문에 국가부도 직전에 이른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무너지자, 자유시장 자본주의 진영에서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어리석은 선언들이 속출했다. 속빈강정이자 속물들의 경연장이었던 ‘제3의 길’은 무차별적인 성장 엔진의 출력 향상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뿐, 인류를 위한 제의 길은 찾지 못했다. 



석탄을 대체한 석유의 에너지혁명과 석유의 정제기술의 발전 및 플라스틱의 탄생으로 자본주의 전성시대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지만, 전 세계적인 성장이 가속화됨에 따라 인류와 자연은 각종 위험에 노출되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다(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와 《글로벌 위험사회》를 보라). 핵발전의 급속한 확대도 위험의 확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켜 인류의 공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내몰렸다.  



인류를 부흥시킨 석유의 역사(에너지전쟁의 역사)는 자본주의 전성시대의 역사이자, 제국주의와 유일 제국이 전 세계를 착취하는 탐욕의 역사였다. 인류(특히 미국, 최근에는 중국이 가세)가 석유를 사용함에 있어 미래세대의 사용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염두에 두면서 속도 조절에 성공했다면, 지금 같은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에너지 혁명과 대규모 채굴은 언제나 파괴를 동반했고, 그 핵심에 '물보다 싼 석유'가 자리하고 있으며, 높은 이율로 개발비용을 제공한 거대 자본(특히 영미의 거대 금융업체)과 석유 확보를 위해 전쟁을 일삼은 군산복합체의 탐욕으로 얼룩졌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산업의 내부에서는 숙련된 남성 노동자의 퇴출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 빈자리들이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과 어린 청소년들로 대체되고 있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장려하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인류 역사상 비정규직 알바로 평생을 전전하는 세대가 탄생했다. 이는 뒤늦게 서구의 모델을 좇아가는 신흥국과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까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노예의 등장과 세습자본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지배적 산업의 형태도 중후장대한 제조업 중심의 무거운 경제에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가벼운 경제와 서비스 산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 



고용의 질과 조건을 열악하게 만든 노동유연화와 직장을 구하기 위한 이동의 거리가 넓어지면서 가족과 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국민국가의 독점적인 주권도 전 세계적인 시장권력으로 넘어가고 있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두가 아는 이 추악한 비밀을 최고 지도자가 공식적으로 발설했다는 이유로 ‘탐욕의 삼위일체’에 빌붙어 사는 집단들의 융단폭격에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는 후반에 다루겠다). 



성장과 개발이 전 세계적인 규모와 파시즘적 속도로 이루어질수록 자원은 고갈되기 시작됐고, 자연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이에 따라 대기의 질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화학비료의 대량사용에 따라 토지의 오염과 물의 산성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이 모든 부정적 결과들이 치명적인 지구온난화와 광범위한 사막화, 대규모 개발이 초래한 환경오염에 따른 수질 악화(물 부족 사태의 핵심)로 집결되고 있다. 기상이변의 속출은 국가적 차원에서 대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부정적 세계화에 따라 기업과 국가간 경쟁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저임금의 고착화와 노동유연화에 따른 상시적 구조조정과 대량실업이 보편화됐다. 이 때문에 새로운 빈곤과 결핍에 시달리는 사회계급이 탄생했고, 부와 위험의 불평등한 분배가 기회의 불평등과 합쳐져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이익의 독점을 위해서는 단 한 발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직전까지 지구라는 행성과 말하지 못하는 자연과 그저 죽어갈 뿐인 동식물과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간의 조건까지 최악으로 내몰고 있다. 





가족과 사회의 몰락은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고, 성 평등이란 미명 하에 경제적 불평등과 취업의 불안정을 동반하는 이혼이 증가일로에 있다. 대중매체와 손잡은 성산업의 발달은 상업적으로 포장되고 고무된 인스턴트 sex를 성해방으로 대체했고, 상시적이고 일방적인 피임만 번창시키는 부작용을 속출시켰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결혼이라는 개념처럼 거추장스럽고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것이 됐다. 



인류라는 추상적이고 공간적인 개념을 동시대의 정치·경제·문화적 개념으로 바꾸는데 성공한 매스미디어의 화려한 비상은 자신의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선정적인 타국의 사건들과,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차이를 반영하지 않은 경험들을 실시간으로 안방과 거실로 전달함으로써 스크린 상에 보이는 것과 자신의 현실 간의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양산해냈다. 인류를 소비지상주의에 매몰되고 순간적인 쾌락에 함몰되도록 만든 것은 매스미디어가 만든 최대의 업적이다.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의 등장은 과학기술 발전의 필연적 결과였지만, 국가와 사회, 가족의 몰락과 해체에 가속도를 붙였다. ‘탐욕의 삼위일체’는 마이다스의 손이어서 그들의 손이 스쳐간 곳들은 모든 부를 뺏긴 채 하나같이 폐허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공격 일변도의 남근과 근육질로 대표되던 남성의 권력은 임금이 줄어들고, 실업의 기간과 횟수가 늘어나면서 초라하게 찌들어졌고, 그만큼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금고는 가득 채워졌다. 자궁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권력은 경력단절과 양육권이라는 빈곤의 위험성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그만큼 자본의 금고는 더욱더 채워졌다





이 모든 것이 서로의 성에 대한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진행됐는데, 남성은 노년에 대한 두려움과 sex파트너에 대한 비용증가와 근육질의 연성화로 말년의 외로움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어둠의 심연으로 떨어졌다. 여성은 성적 자기결정권이 강화되고, sex파트너의 숫자는 늘었지만 항시적인 피임과 낙태의 증가, 건강의 악화와 만성적인 스트레스(정반대도 있다)에 시달리게 됐다. 



남성 위주의 경제구조가 여전하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과 경력 단절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고, 확실하게 유전자의 반을 전달했다는 생물학적 판타지(자녀에게 투사된 슈퍼맨콤플렉스와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대표적)에 사로잡힌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과잉투자라는, 그래서 자본의 금고만 채워주는 집착과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사회는 대중매체와 인터넷에 의해 공적인 기능이 해체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드라마와 영화, 예능과 토크쇼, 리얼리티쇼, 스포츠경기 결과와 돈이 되는 모든 분야에서 성공한 대중화된 스타들의 자질구레한 일상과 스캔들에 빠져들었다. 각종 오락 프로와 리얼리티쇼의 득세는 연예인과 스타를 넘어 소시민의 사적인 일상까지 대화의 주제로 끌어들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치적이고 사회경제적인 공적 공간이 사적인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함으로써 지배엘리트와 피지배층의 분리(정치혐오와 무관심의 폭증)가 본격화됐다. 공적인 것들이 사적인 것들에 점령됨에 따라 공적 공간으로서의 정치적인 것들과 서민의 안정망으로서의 사회는 존재의 근거를 상실했다. 시민정신이란 존재할 수 없고 시민단체마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어 민주주의마저 작동 불능의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전 지구적 시스템을 구축한 시장권력에 맞설 수 없는 국가(정부)는 주권의 행사를 국내로만 돌려 ‘탐욕의 삼위일체’가 남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만 전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자유와 진보(성장과 개발)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사회민주주의의 퇴조와 함께 복지의 축소가 뒤를 따랐다. 사회와 국가의 쇠퇴로 사회경제적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반이 해체되고 자유의 공간마저 파고들어 기본적 권리마저 침식시켰다.



거의 모든 장벽들을 제거한 ‘탐욕의 삼위일체’의 폭주는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두려워했던 것들(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커지면서 정치적 자유마저 박탈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전체주의적 성향과, 이기적인 성향의 강화에 따른 공적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을 현실화시켰으며, 유일제국 미국의 몰락과 유럽의 경제위기, 식민지 경험이 있거나 ‘자원의 저주’를 겪고 있는 나라에서 항시적 내전상태가 고착되고 있다. 



이밖에도 어제까지 이웃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인종청소를 동반하는 항시적인 국지전과 ‘탐욕의 삼위일체’를 비난하면서도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테러리즘의 무한 확장(미국이 주도하고 있다)이 거대한 폭력시장을 양산하고 있다. 집단과 집단,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어디서도 안심할 수 없는 공포가 유동하는 세상이 도래했고, 부의 불평등과 위험의 불평등은 교차하거나 중첩됐고, 그에 따른 비대칭적 종말(빈국과 빈곤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이 전 지구적 경향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세상은 구글 회장 슈미트가 ‘수없이 많은 인공위성이 하늘을 날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광기 어린 선언처럼, 개인의 사생활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절대 권력자 빅브라더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으며(특히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유리감옥》을 보라),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예언한 쇼비즈니스 세상도 보편적인 현상으로 일상화됐다(특히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를 보라). 



모든 파국의 징후들과 상시적인 내전상태, 무차별적인 자살 테러들이 ‘오늘의 뉴스’를 점령하고, 모든 것을 오락화하는 공적 공간의 사적화가 강화됨에 따라 정치의 실종과 사회의 몰락이 동시에 일어났다. 저임금 비정규·파견·임시직과 장기 실업이 일반화되고, 승자독식과 성공지상주의가 당연시되고, 실패의 책임에 이어 위험과 공포의 재분배가 개인화된 세상에서 ‘탐욕의 삼위일체’는 1%에 의한 99%의 배제와 소외를 만연시키고 있다. 



슈퍼클래스로 불리는 1% 내에서도 하위 0.9%는 ‘다음번 별도의 통고가 있을 때까지’만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 수 있다. 이 상태로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계속된다면 인류의 부는 0.1%의 수중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나머지 99.99%는 소득과 자산의 차이에 따른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류의 삶은 퇴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2.18 07:29 신고

    대처와 레이건... 무슨 이즘인가를 붙여 세상을 뒤집어 놨지요.
    참 사악한 친구들입니다. 기득권자들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추악한 자본주의의 생얼입니다.

    • 늙은도령 2015.02.18 16:33 신고

      60년대부터 준비해 70년대에 미 재무부와 양국의 금융업체를 지배하게 되면서 80년대에 이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상위 1%를 위한 세상이 됐습니다.

  2. fam1596 2015.02.18 08:05 신고

    아유 정말 ~~ 힘든 분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잘보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5.02.18 16:34 신고

      갈수록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으면 폭동도 가능한 시점으로 가고 있습니다.

  3. 꼬장닷컴 2015.02.18 09:32 신고

    도령님..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리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십시요.
    이제 구정 지나고 뵙도록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18 16:34 신고

      네, 님도 건강하시고 설 연휴 잘 보내십시오.
      좋은 세상을 기대해 보면서요.

  4. 2015.02.18 10:47

    비밀댓글입니다

  5. *저녁노을* 2015.02.19 04:44 신고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 늙은도령 2015.02.19 21:40 신고

      님도 즐거운 명절 되십시오.
      저는 3월 초에 이사가는 것 때문에 준비를 하느라...

  6. 바람 언덕 2015.02.19 11:42 신고

    본문의 내용과는 다른 댓글입니다만...
    새해 인사드리러 왔어요.
    건강하시고, 더욱 빛나는 글들로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더두말고 덜두말고 딱 지금처럼만...
    건강과 글...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시는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 늙은도령 2015.02.19 21:49 신고

      노력해야죠.
      잘 되겠지요.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가끔은 뜻대로 되지 않아서.
      즐겁게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다 보면 건강도 좋아지니까.

  7. 공수래공수거 2015.02.20 14:14 신고

    설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아무쪼록 건강하신 한해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21 00:04 신고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바로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아무튼 조심하면서 설 연휴, 체력을 비축 중입니다.
      3월 초에 이사 가야 하기 때문에....

  8. 2015.02.21 03:25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2.21 00:12 신고

      아, 그게 영문 중에 님의 아이디와 비슷한 일베들이 있어 차단했는데 디스토리가 비슷한 아이디는 동시에 차단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들이 보통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해당 아이디와 비슷한 아이디를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디스토리의 차단 프로그램도 그런 것 같습니다.

      헌데 다음 메인페이지가 무엇을 말하는지 저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못 찾았습니다.

  9. 2015.02.21 04:03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2.21 04:28 신고

      답장 보냈습니다.
      늘 관심과 격려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글 중 일부를 여러 매체(미디어오늘 등)에서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인터넷매체의 편집장은 제 글을 자신의 글인양 여러 편 올려 잘렸답니다.
      이러다가 정말 유명해질까 걱정입니다.



사업을 망한 후 온갖 병에 시달린 지난 10년 동안 제게는 2년마다 돌아오는 공포의 기간이 있습니다. 전세계약을 연장하거나 거처를 옮겨야 할 때입니다. 지난 6년 전부터 2년마다 수천만 원씩 오르는 전세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용인에서 가장 싸고 오래된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5,000만 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와의 계약이 1년 연장된 동생의 결단으로 8년간 살았던 전셋집에서 떠나 동생의 아파트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만일 동생이 회사에서 잘렸다면, 저와 어머님은 지금보다 매우 작은 아파트나 빌라 등으로 이사 가야 했을 것입니다. 고령인 어머님과 저의 건강 때문에 무섭게 치솟는 전세가 상승을 형과 동생이 책임져 왔는데 동생이 잘렸다면 아파트의 크기도 뭉툭 잘라내야 했습니다.



저는 자수성가한 형과 동생 덕분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면, 수없이 많은 분들은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2년마다 잔인한 금융권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판단됩니다. 지옥 같은 2년의 삶이 연장되고, 렌프푸어로서의 고통은 깊어만 갑니다. 이미 사회가 소화해낼 수 있는 위험수위를 넘겨버린 가계부채의 지속적인 증가는 그 참담한 결과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세계 경제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미국의 나 홀로 호황도 구조적으로 오래갈 수 없는 것이어서, 세일가스의 효과와 강 달러 전략이 한계에 부딪칠 2년 후에는 급격한 경기 후퇴가 일어날 것입니다. 국제유가가 20대 달러로 추락하면서 거대한 세일가스 업체들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은 금리인상으로 파국의 위험은 피해가겠지만, 그것은 곧 국내에서 가계부채의 폭발을 의미합니다.



중국경제의 경착륙에 대비해야 할 미국의 금리인상은 추가적인 인상의 시기만 남아있는 상황이어서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폭발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옥행열차(설국열차의 마지막 칸)에 올라타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언제든지 변명을 위한 근거로 국회(특히 더불어민주당)의 발목잡기 때문에 경제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세계 경제를 고려할 때 그런 언어적 유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모든 재벌들이 임원을 포함해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단행하고 있습니다. 성장을 멈춘 세계경제와 새로운 먹거리 창출이 힘겹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들 역시 인건비를 줄이는 것 말고 뚜렷한 탈출구가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전 지구적 차원의 구조조정이 일어난 다음에야, 즉 수억에서 수십억 명의 중하위층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후에야 세계경제가 살아날 수 있음(자본주의의 본질)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허면 파국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있습니다,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부채(300조 달러를 훨씬 넘었다)의 상당 부분을 동시에 탕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확실한 효과가 나올 만큼의 대규모로. 무력화된 정치와 전 세계 부의 70~80%를 독식하고 있는 슈퍼클래스의 저항으로 누진적 증세와 보편적 복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직 이것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따라서 파국 직전에 있는 한국경제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됩니다. 첫 번째는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 즉 파국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내일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오늘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추가로 대출도 받고, 소비도 줄이지 않고, 카드도 긁어대고, 자동차도 바꾸고, 섹스의 양도 줄이지 말고, 그러다 임신하면 씀풍씀풍 낳고··· 그렇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차피 최종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하므로, 동시에 수천만 명이 파산에 처하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란 대규모의 부채탕감을 단행하는 것 이외에 답이 없습니다. 단 이런 방법에는 자신과 가족과 알 수 없는 이웃의 고통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발할 것입니다. 차이란 그나마 즐기기나 했다는 것이지, 고통의 크기는 별반 다르지 않거나,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현실경제에서 '어떻게 되겠지'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방법은 모든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먹고 살 만큼 일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돈이 들어가는 일체의 여가생활을 하지 않고, 안면몰수하고 일체의 관혼상제는 잊어버리고, 이미 7포세대란 얘기도 회자되는 마당에 사랑과 연애도 멀리하며, 그것도 안 되면 돈이 되는 것을 하나씩 내다팔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입니다. 개인 대 개인 간의 물물교환도 고려해야 하고요.



상황이 이쯤되면 최종대부자인 정부가 또 나섭니다. 거대 금융기관과 대기업에만 적용되던 부채탕감을 넘어 개인에게 제공된 공적자금인 공적부조를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누진증세와 기본소득제도 도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제위기에서 탈출할 재원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몇 십 배의 신용을 또다시 창출하고, 그럼으로써 결정투성이의 자유시장이 다시 작동하도록 만들면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하니까요. 물론 모든 금융위기와 경제위기의 근원인 거품이 형성되는 악순환의 고리도 되살아나지만.  



이처럼 우리에게는 양 극단의 선택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차별은 존재하며 불평등도 여전하겠지만, 파국 다음의, 또는 그 직전의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아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저와 동생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을 선택하실 것인지요? 그나마 필자는 동생의 능력이 되니까 이런 선택이 가능한데 많은 분들은 그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천국, 양 극단에 있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만 선택이 가능합니다, 상위 1%와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동원된 5% 내외의 체제의 간수들을 제외하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여강여호 2014.12.28 18:25 신고

    그러게요. 저도 몇 달 후면 계약만료인데 걱정입니다.
    내놓은 정부대책마다 별 실효성도 없고....모든 국민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나 할런지.
    12월 들어 일 때문에 포스팅을 거의 못할 뿐더러 이웃 마실도 못 다니고 있습니다.
    3d 업종이라 내년이라고 상황이 좋아질 턱이 없는듯 하고, 이래저래 걱정만 쌓이네요.
    힘든 세상이지만 내년에는 조금이라도 희망의 빛이 보였으면 합니다.
    늙은도령님도 원하시는 일들 다 잘 풀렸으면 하고요. 새해인사 미리 남기고 갑니다.

    • 늙은도령 2014.12.28 23:15 신고

      내년은 정말 힘겨울 것입니다.
      정부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없으니까, 그 피해를 이상한 곳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정말 내놓는 정책마다 국민의 이름으로 이익집단을 챙겨주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무지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님도 내년에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희망고문이라 하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니....

  2. 공수래공수거 2014.12.29 09:07 신고

    동병상련의 마음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정녕 이 나라는 50만을 위한 나라입니까?

    • 늙은도령 2014.12.29 19:51 신고

      자본주의를 끝까지 가지고 가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인류는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 완벽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절대 인류는 극소수의 수중에 있을 것입니다.

  3. 낙조 옹 2014.12.30 12:23

    대한민국 망국지도 는 탐욕스런 우파 임니다 어버이연합 일배 뉴라이트 이런 족이 대한민국 이르키고 지켜 온 그들이
    끈네은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 고 감니다 대한민국 앞날이 명약 관화 임니다 슬퍼요 ?양심 정의 를 그리고 민족을 들먹이면
    종북 이란 딱지 부치고 종북이 아니라 나는 지북 이라함이 타당 하다고 ? 말할네요 이성계 는 고려의 장수 이면서 요세 말로
    쿠테타 이르켜 조선이 라는 나라 세워 500년 이씨 조선 를 이어 왓은데 혜괴 하지요 끈네는 일제 침탈로 망햇지요 대한민국
    앞날를 점처 보시지요 상상할수록 소름이 임니다

    • 늙은도령 2014.12.30 13:14 신고

      정말 걱정이 태산입니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이니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로 이어지는 7년 동안 대한민국이 70년대로 돌아갔습니다.



오로지 남의 대들보만 눈에 들어오는 박근혜 대통령은, 재보선의 압승에 고무되어 나라 전체를 신자유주의적 통치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거의 모든 규제들을 무력화시키려고 하면서도, 윤 일병 집단구타 살인사건과 충격적인 GOP총기난사사건 등의 비극적인 참사의 처방으로 조기교육의 필요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다. 군대가 갖는 태생적이고 제도적인 한계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한반도, 지정학적으로 열강들이 충돌하는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다섯 국가 중에서 한국만 36년이나 식민지 착취와 수탈을 당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식하고 바라보는 군대란 아버지 박정희의 쿠데타로 연결되는 것 때문인지, 군대를 오락거리로 포장해서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MBC의 '진짜사나이'에 나오는 군대인가 보다. 현실과 리얼리티쇼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텔레비전에 길들여진 성찰없는 미디어세대의 전형적이 모습이다. 군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기교육과 인문학적 소양을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일제 강제합병시대 이후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교육이고, 식민지사관을 추종하는 세력들에 의해 교학사 교과서 사태까지 이어진 것도 박 대통령의 인식이 그녀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추종한 식민지근대화론의 논리가 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 허구성이 여러 가지 연구와 자료, 통계들로 밝혀졌음에도 현 집권세력의 뿌리가 식민지 36년 동안 부를 축적한 친일 부역과 일제가 구축한 군대에 있으니 대통령이 인지부조화를 드러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최근에 들어서는 최상위 부자들이 막대한 비용이 드는 선행학습을 통해 계급적 차별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유체이탈 화법의 전형이자, 참으로 한가하기 그지없다. 부부의 대다수는 출산을 미루고, 출산 이후에는 맞벌이를 해야 아이를 교육할 수 있는데 조기교육과 인문학적 소양을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 삼포세대에 이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지고, 대학들은 인문학 강좌를 폐지하고 있는데 이런 뜬구름 잡기식 발언은 어떤 경험과 성찰에 근거한 것일까?



인류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본성에 사랑을 찾도록 만들었고, 후손을 이어가기 위해 사랑의 성행위에 절정의 쾌락을 안배했는데, 아예 사랑을 하는 것조차 힘에 겨운 청춘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설사 조부모의 재력이나 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연애를 할 수 있다 해도, 전반적인 섹스의 양은 늘었으되, 서로를 아끼고 보호하는 사랑보다는 하룻밤의 욕망과 쾌락을 위한 소비적 행위처럼 이성교제를 한다. 



그에 따라 피임과 낙태도 비약적으로 늘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에게 주어지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만남이 쉬웠기에 이별도 어렵지 않으며, 교제기간이라는 것도 극단적으로 짧아짐에 따라 상대를 알기도 전에 사랑의 전 과정이 끝나버리기 일쑤다. 연예와 사랑의 가벼움은 결혼을 할 때에 이르러서는 철저한 계산을 통해 손익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보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실존과 존재의 모든 형태가 소비하고 계산기를 튕기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현실 체험도 사이버공간에서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통제 하에 진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삶의 편리함은 끝을 모르고 늘어나고 있지만, 그런 편리함을 집요하게 팔아먹는 기업과 자본의 탐욕에 자연과 지구는 물론 모든 생명과 최종적으로는 먹이사슬의 맨꼭대기에 있는 인간마저 사회경제적 위계에 따라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았다.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다양한 미디어들



물론 지구와 자연의 어떤 반격에도 살아남을 자들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인 지구 멸망에 나오는 생존자들이 실제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방어막을 펼칠 수 있는 최상류층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거대한 부를 이용해 일체의 위험에서 살아남을 공간들을 구축하고 있다. 그런 자기보존의 능력마저 급격한 경사면을 이루며 각종 불평등을 양산하고 있지만, 최상류층이 잠시도 쉬지 않고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런 궤변에 저항할 여력도 없고,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길들어져 있는 99%의 인류는 하루, 한 시간, 일 분의 만족과 단기적인 생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삶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들이 매일같이 체험하는 것은 생존본능에 충실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라면 삶을 잘게 나누어 지속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그때그때를 넘기다 보면 오늘과 같은 내일이 초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부만이 지속적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신의 능력을 대출ㅡ천문학적인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ㅡ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라 해도 인간을 움직이는 철학은 단 세 개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것들 또한 최종적으로 하나로 합쳐진다. 돈과 성공과 권력.. 그리고 둘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돈으로 귀결된다. 천문학적인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타인의 지갑을 착취해야 하고, 그러려면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돼야 한다. 



오직 돈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축해야 하며, 무한대의 이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신용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지닌 자만이 돈이 창출한 권력과 질서에 복종하기 마련이다.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풍요와 행복을 위해 도입된 추상적인 존재들ㅡ화폐와 무한대의 신용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금융공학ㅡ이 이제는 인류의 노동과 목숨을 담보로 신의 권능을 대신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런 천박하고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바꾸려면ㅡ가능성이 조금은 있다ㅡ인간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수십 년 전부터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철학적 사고를 되살려야 한다. 애석하게도 철학적 사고란 지극히 쿨하지 못한, 개념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그래서 삶에서 배척되기 일쑤인 그런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신봉하는 자들처럼, 외국의 노예로 산다 해도 배 부르고 등 따시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주류가 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고의 형태를 말한다. 



때론 자아의 실체를 찾아가는 존재론적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순간순간의 삶에 집중하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실존론적인 사고에 빠져들기도 하며, 한없이 늘어나는 추상적 사고에 빠져들기도 하다가도 때로는 숱한 경험이 만들어준 번개 같은 직관에 따르기도 하는, 분열적이면서도 통합적이고 다층적이면서도 압축적인 주체의 인식론이 철학적 사고의 핵심을 이룬다.   





물질과 제품, 서비스가 주는 편리함과 욕망 및 쾌락의 충족보다는, 가난할지언정 정신적 영역에서의 치열함과 풍요로움에 빠져들고, 느릴지라도 다양한 가치와 지혜의 세계를 산책하며, 화려한 인공의 조명을 벗어나 자연이 주는 청명한 빛에 나를 맡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저녁 노을이나 황혼이 져야 비로소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같은.. 한 마디로 미친놈 소리 듣기 쉬운 지혜와 성찰의 세계에서 하염없이 배회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타인은 정말 지옥이라면, 타인이 없는 나란 존재할 수 있을까? 나를 정말로 배려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그렇게 타인을 대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내가 가는 길은 성지로 이어질까 아니면 지옥으로 이어질까? 내가 가면 길이 되는 것일까, 내 뒤에 누군가가 걸어가면 그때야 길이 되는 것일까? 이런 답이 없는 것들은 끊임없이 물어보고, 끝까지 밀고나가야 가능한 것이 철학적 사고의 본질이다. 이런 과정에서 승리의 배당이란 지극히 초라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리얼킴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헌데 현대의 천민자본주의와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소비에의 욕망과 쾌락은 이런 것들ㅡ당장의 만족을 뒤로 미루는 것ㅡ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욕망한다, 오늘에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것이 내일에는 저가의 필수품이 되기를. 신용을 통해 분할 구매하면서도, 내일이면 또다른 신제품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며칠 가지 않을 순간의 만족과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불만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이런 악순환은 언제 시작됐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존재하는 모든 분야가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돌아가고, 돈이 되지 않는 분야는 버려지고 퇴출되는 이명막근혜의 8년의 대한민국은 필연의 과정이었고,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조중동과 산업화 주역들이 그토록 주장하듯,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였고, 박정희는 압축성장의 지도자였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을까? 그래서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은 정말로 성공한 역사였을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덕산 2014.08.15 09:23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타인과 끊임없이 관계를 가지는 거라생각합니다.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래서 서로 늘 충동하는거 아닐까요? 여기서 충돌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사회의 순기능인데 이게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요즘처럼
    끔찍한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네요.

    • 늙은도령 2014.08.15 21:25 신고

      네, 부의 재분배를 통해 가면 기업도 성공하고 종업원도 성공하고 소비자인 국민들도 성공합니다.
      기업은 소비자가 없으면 돌아갈 수 없고, 다른 곳에서 일하는 기업들의 도움으로 받아야 합니다.
      기술과 지식은 얽혀있는 것이지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공생의 경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합니다.

  2. 참교육 2014.08.15 12:08 신고

    원인제공자는 자본주의 입니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는 인권도 자유돟 평등도 복지도 모두 꿈일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4.08.15 21:27 신고

      네, 자본주의에 인간의 심장과 영혼을 심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경제민주화입니다.
      박근혜는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여자입니다.
      나라를 아예 몇몇 친일 부역자와 기업 및 자본의 수중으로 넒겨주려고 합니다.
      하야나 탄핵이 불가능하다면 다음 정권을 탈환해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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