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진보와 싸기지 없는 진보의 전형이자 한줌만한 지식을 가지고 대중을 호도하는 데는 도를 튼 진중권이 절차적 민주주의가 모든 것인양 이재명을 감싸고 나왔습니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으로는 이재명과 막상막하인 진중권은 무슨 신적인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민주당 권리당원과 선거인단을 상대로 조사라도 해봤는지, 대다수의 당원과 시민들이 2012년에 이재명의 욕설파일을 들었다고 단언했습니다.  

 

 



진중권처럼 타인의 경험을 파악할 수 있는 신 같은 능력도 없으며, 여론조사를 해볼 수도 없는 필자의 주변(70% 이상이 경기도민)에는, 당연히 필자도 포함해, 이재명의 욕설파일을 들어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두가 최근에야 들었고, 그 중에 절대다수는 끝까지 듣지도 못했습니다. 상식과 양심을 지닌 인간으로써 도저히 들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그들에게 동료나 부하직원 등에게 이재명 욕설파일을 들은 적이 있는지 확인만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최근에 들어서야 들은 비율이 90%를 넘었습니다. 저는 또한 친하게 진하는 의사들(상당수가 문재인케어를 반대해 나와 대척점에 서있지만)과 간호사들에게도 물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듣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모두 다 경기도민임에도 이재명 욕설파일을 듣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제가 알아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고, 표본오차도 3~5%를 넘지 않았습니다. 제가 확인해보거나 부탁을 해서 통계를 내본 결과가 신뢰성을 가질 수 없음은 리서치의 기본만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지만, 수백 명에 이르는 표본수와 그들 대부분이 경기도민이라는 점에서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확률이 너무 높게 나왔습니다. 이재명 거부운동의 핵심인 혜경궁 김씨의 패륜적인 트윗과 이재명의 관계에 관해서는 100% 몰랐습니다. 

 

 



이재명 욕설파일의 문제점을 남경필 아들문제로 물타기 한 진중권의 비열함은 차치하더라도, 어떤 근거로 민주당 권리당원과 경선인단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2012년에 이재명의 욕설파일을 들었다고 단언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하의 네이버나 국정원도 할 수 없는 일을 진중권은 할 수 있나 봅니다. 그에게는 민주적 절차만 지키면 모든 것에 정당성이 부여되기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독일에서 공부했다는 자가 히틀러와 나치의 집권과정을 살펴보지도 않았나 봅니다. 그가 전공했다는 미학의 대가들도 이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은 저작을 통해 경계하고 또 경계했는데, 진중권은 그 부분만 선택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나 봅니다. 벤야민도, 아도르노도, 호르크하이머도, 바우만도 이구동성으로 경계하고 경계했던 것을 진중권은 선택적이거나 의도적으로 까먹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레드 선!       

 


논리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진중권의 이재명 감싸기와 남경필 조롱하기는 그의 인격과 지식이 얼마나 개차반인지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대중이, 그 숫자가 통계학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크기에 이른 대중이 진중권에게 입진보와 싸기지 없는 진보라는 딱지를 붙인 것도 오늘의 <외부자>를 보면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진중권을 보면 이재명스럽다는 말이 유행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덤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2018.05.23 06:51

    비밀댓글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8.05.23 07:34 신고

    선거 결과가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3. 문파 2018.05.23 07:47

    입진보들이 문대통령에게는 트집잡아대고 겁나 엄격하지만 이성남 주구장창 띄우는걸 보며 이성남 세력이 민주당을 접수하는 것을 노리는듯 합니다...

    문빠 운운질하면서 대통령 지지자들한테도 공격적인 기레기 언론들과 입진보들이 유독 이성남을 띄우는것은 확실히 경계를 해야죠.

    그리고 그넘의 노선을 떠나 이성남은 개인 인격자체에 대한 심한 회의감이 들 정도입니다..민주당내 반문들중에도 이 정도의 인격과 도덕성은 없을듯하네요...

    진짜 당을 떠나 이성남은 남갱필보다 과연 더 선하고 정의로운 자인가?에 대해 매우 회의감과 의심이 들죠.

    • 늙은도령 2018.05.23 16:45 신고

      저는 이재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논의를 넗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기본에 관한 문제입니다.

  4. 대나무 2018.05.23 07:48

    도령님 말대로 제 주변 경기도민들 욕설파문 녹취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들어본 사람들 보다 듣지 못한 사람들의 훨씬 많았다는 거죠.

    저는 몇 년전 한참 이슈일때 들었지만 정말이지 끝까지 듣기가 민망할 정도로 거북스러웠습니다. 듣는 이가 놀라울 정도로 욕설 장난 아니더군요.

    설사 내 어머니께 그 누구가 심한 행동을 했다더라도 같이 맞서 똑 같은 행동을 했다는 건 인성 문제라 봅니다.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잘못된 행동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과 행동은 평소 내재되어 있는 자신의 품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고사성어가 있는 겁니다.

    • 늙은도령 2018.05.23 16:47 신고

      네, 똑같이 돌려준다면 같은 짐승이 되는 것입니다.
      욕설의 내용도 자세히 들어보면 형수는 그저 웃었다는 것 때문에 욕설을 먹는 것이더라고요.
      부인의 일방적 주장만 듣고 형수에게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진실 여부를 떠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5. 과유불급 2018.05.23 08:43

    이재명지지층과 그지원세력이 민주당내 확실한 세력으로 자리잡았다고 보여집니다.이재명 인성이야 굳이 욕설파일을 따로 듣지 않아도 알고 있지만 혜경궁 김씨논란과 욕설파일에 대한 해명을
    그지지자들이 아예 방송에서 대놓고 하는것은 이논란들에 대한 이재명의 자만감을 그대로 보여주네요. 이건 같다!다르다! 문제가 아닙니다.그런데 현재의 논란들에 관한 해석이 이렇게도 가능한가요?

    • 늙은도령 2018.05.23 16:48 신고

      경기도의 도민이 워낙 많아서 건들지 못하는 것이지요.
      선거가 끝나면 이런 논란도 끝날 것이라 생각하며 뭉개고 가는 것 같습니다.

  6. 창덕궁 2018.05.23 12:42

    형수가 어머니에게 함부로 대했다는 것도 이재명의’주장’일뿐 ‘증거’는 없단다 찢빠들아
    쌍욕화일 들어는 봤나? 이재선씨가 전화 안받으니 형수한테 전화 걸어서 욕을 쏟아내더라

    • 늙은도령 2018.05.23 16:49 신고

      네, 일방적 주장이지요.
      이재명의 형제들이 진실을 얘기하면 모든 논란이 끝나는데 두려운 것이지요, 이재명이.

  7. 2018.05.23 17:49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8.05.23 18:43 신고

      이것은 용서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재명이란 인간을 지도자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진실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문재인 대표가 언론이 말하길 비노와 비주류라고 하는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재성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비노와 비주류는 최재성이 범친노이기 때문에 공천학살이 자행될 수 있다며 임명을 반대했습니다. 친노도 아닌 범친노라고 합니다.





필자가 이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종편과 보도채널에 나와 일방적인 주장만 하고 있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권위주의 독재와 항거했던 세력(인물)이 정권을 잡은 적은 단 두 번이었다는데 있습니다.



해방 이후 민주주의 투쟁을 해왔던 인물 중 김대중과 노무현만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친DJ(이하 동교동계)와 친노가 야당의 주류가 되는 것은 일정 부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동교동계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듯이 일정 수준의 친노도 만찬가지입니다.



이는 차떼기 정당 소리를 들었던 한나라당이 과거와 단절한다는 의미에서 새누리당으로 옷을 갈아입은 이후(빨간색을 선택하는 등 보수도 혁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어서 대단한 변화였음은 인정하자)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고, 그래서 친이와 친박이 있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후임이 노무현 대통령이기에 친노가 동교동계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일 때 친이가 주류였고, 박근혜가 대통령인 지금은 친박이 주류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한길과 안철수 투톱체제는 현재의 김무성과 유승민 투톱체제와 같습니다.



동교동계의 반이 박근혜 정부에 합류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힘이 그만큼 약해진 것을 말하며, 이는 시간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이에 비해 친노라고 불리는 의원들 중 한 명도 박근혜 정부에 합류하지 않은 것도 시간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은 별도로 한다 해도).



현재의 야당에 친노가 주류인 것은 문재인이 대표가 된 이상 당연한 일입니다. 노무현의 가치와 정신에 동조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친노의 패권주의 때문에 야당이 선거에 연이어 패배했다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2010년 지방선거의 결과를 상기하라).





두 번째는 기레기들과 비노 의원들이 맹비난하는 친노라는 계파의 정의와 특성, 성향, 가치, 행태 등이 단 한 번도 정확히 제시되고 분류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노의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 때문에 야당과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객관적으로 입증된 연구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친노라는 계파가, 그들의 패권주의가 사라지면 야당이 정권을 탈환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그래서 야당을 지지한 유권자들과 넓게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는 연구라도 내놓을 수 있다면 친노라는 계파에게 표를 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최장집 사단의 민주화운동 세력들에 대한 비판은 그들만의 주장일 뿐 야권 성향의 지지자들에게 폭넓게 인정받는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실용주의 계보를 잇는 존 듀이와 리처드 도티에도 미치지 못하는 강단 진보의 지적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들보다 한참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강준만 식의 ‘싸가지 없는 진보’ 비판은 도덕의 정치화와 정치의 도덕화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보수의 시각에 다름 아니라, 친노 비판으로는 표피적인 가치만 가질 뿐입니다. 가장 좌파적인 가치(조세정의를 통한 부의 재분배)가 절실한 현실을 무시한 이들의 뜬구름 잡는 친노 비판은 우파의 영구집권에 일조할 뿐입니다.



친노라는 계파가 패권주의만 추구하기 때문에 퇴출돼야 하는 자들이라면 그 근거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또한 대안도 제시해야 합니다. 이들에게는 비판만 있을 뿐 그 이상은 없습니다. 이들은 높은 위치에 올라가 밑을 보고 말한 뿐입니다(안철수 팀에 합류한 최장집의 어이없는 자퇴를 상기하라).



도무지 야당의 대표 같지 않았던 문재인이 최재성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한 것에 동의하는 이유도 그가 처음으로 대표다운 리더십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제1야당의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야당 지지자들이 체감하는 것처럼 기득권 의원과 일부 세력들의 보수화에 있습니다.





이들을 거둬내지 않는 한 야당이 제대로 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묘안이 없음에도 분당을 각오할 정도의 냉정한 공천혁명이 없다면 야당에 표를 줄 유권자들은 더욱 줄어들 것입니다. 이해찬과 한명숙, 문희상도 적지에서 출마하지 않은 한 예외를 두면 안 됩니다.



원칙과 기준을 정하고 그를 통과하지 못하는 의원들은 냉정하게 걸러내야 합니다. 문재인 대표는 한 달에 반은 호남에 내려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끝없이 인내하고 희생해온 호남 유권자들에게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그들과 계속해서 소통해야 합니다.



기계적인 물갈이가 아니라 이명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실정을 끝장낼 수 있는 그런 물갈이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깨어있는 시민들이 행동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비전과 가치, 리더십과 희망을 공천혁명을 통해 보여줘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6.24 19:02 신고

    저는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떨칠 수 없습니다.
    물러나야 하 인사들이 그리 쉽게 내놓겠습니까? 어ㅕ운 일을 당하면 그들이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어떤 인사들인지 보고 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5.06.25 15:00 신고

      문재인은 매우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준 것이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이었는데 그것을 돌파하겠다고 나왔으니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지요.
      이것이 공천혁명을 향한 길이기를, 그렇게 가도록 도와야죠.
      그러고도 안 된다면 그때는 문재인도 아웃이지요.
      마지막 기회를 잘 살리기를 바랍니다.

  2. 가난한여행자 2015.06.24 20:57 신고

    제생각에는 야당이 자기분열은 하는 이유는 선명성이 없는 이유인것 같네요
    좀더 현실적으로 들어가보면 공천권 싸움인데 ,,
    야당자체에 회색분자,오열을 제거 해야합니다

    야당 분열비난 하기전에 거대한 악 집단인 새누리당을 공격했으면 합니다
    지금 야당이 국민에게 무슨해를 주고 , 부패에 가담했는지 ,,새누리당에 비하면 양처럼 순한 정치인들입니다

    새누리당은 역사상 집권당중 가장 부도덕하고 ,부패가 심한 권력집단입니다
    OECD국가중 저리도 부패한 정당 구성원들이 집권당 , 국회의원 하는 나라가있을까?
    새누리당은 쓰레기통에서 우연히 모인 ,역사상 가장 부패하고 반역사적 이익집단입니다
    (이집단은 이념은 사익추구입니다 )

    친노가 무슨문제 인가요? 친노라는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지
    노무현은 야당의 적자입니다

    지금은 야당을 공격할때가 아닙니다 ...거대악인 새누리당을 공격하고 할때입니다

    이대로 가다가 저들이 한번 더 집권하면 , 나라는 거덜나고 ,국민들은 비참해집니다


    야당내에 회색분자들을 출당하고 , 선명성으로 재무장해서 정의칼로 거대악인 새누리당을 쓰러 뜨려야합니다

    다윗(노무현)이 새누리당 골리앗의 돌팔매로 죽이고 그의 목을 치던칼로....
    노무현의 선명성, 정의감과 과감한 공격성으로 다시금 재정비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노무현정신 부활''''입니다


    저들이 다시금 5년지배하면 우리나라는 절망나락으로 떨어 집니다
    너무 흥분했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25 15:01 신고

      박근혜의 국회법 거부권 행사 때문에 강하게 나가게 생겼습니다.
      이제는 탄핵을 얘기할 때입니다.

  3. 여행쟁이 김군 2015.06.24 21:30 신고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당 ㅠ
    그립네요 노무현 대통령

  4. 공수래공수거 2015.06.25 08:10 신고

    내년 총선에서의 과반수 이상 달성을 위한 첫걸음을 이제
    막 내딛었습니다

    절대 양보하지 말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년 선거 가능성이 있습니다

  5. 耽讀 2015.06.25 08:20 신고

    이종걸은 조부 이시영 선생이 아닙니다.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사무총장 하나 임명못하는 대표가 무슨 대표입니까?
    문재인 대표 이번에 이종걸 압박에 최재성 포기하면 깔끔하게 대표가 아니라 정계 은퇴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6.25 15:10 신고

      이종걸은 제가 사업할 때부터 기부 좀 해달라고 했던 자입니다.
      저에게 10년 이상 메일을 보냈고요.
      그리 대단한 자가 아닙니다.

  6. 루비™ 2015.06.25 10:21 신고

    잘 보고갑니다. 도령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7. 아이스킹 2015.06.25 11:32

    지금 문재인 대표에 반대하는 인물들 보면 친노 비노의 프레임이 아니라 개혁 찬성과 반대로 구분하는 게 더 명확하다고 봅니다. 최재성의원을 범치노라며 반대하는 행태가 이번에 확실히 드러났다고 봅니다. 망가진 언론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당을 분열 하는 것 처럼 이야기 할 진 몰라도 이 정도 내홍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이제는 착한 문재인이 아니라 능력있는 대표로 나아갈 때 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5 15:12 신고

      그럼요, 그래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정면돌파해야지요.
      개혁을 반대하는 기득권은 잘라내야 합니다.

  8. 『방쌤』 2015.06.25 12:26 신고

    능력있는 확고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근거가 있는 비판이라기 보다는 아집에 가까운 징징거림에 더이상은 흔들려서는 안되겠죠

    총선 승리를 위한 초석을 다지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 늙은도령 2015.06.25 15:14 신고

      네, 지금은 그러합니다.
      반드시 개혁에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야당이 삽니다.

  9. 최홍대 2015.06.25 17:02 신고

    어디서든지 감투만 쓰면 달라지는것은 왜일까요.

  10. 불루이글 2015.06.25 18:33

    정권 재창출이 아니면 어떤 방법도 지금의 사악한 정치환경을 바꿀수 없다는 것을 문대표는 깨닫고 있는것 같습니다.

    오직 그길을 가기 위해서는 갖은 비난과 험난함이 따른다 해도 특전사의 강인함으로 나아 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선것 같습니다.

    아무리 정부의 무능과 부패 실정을 부르짖어도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 올수 밖에 없는 가혹한 친정부 부패세력과 친정부 언론들의 언론학살과 여론몰이
    그동안의 현실이 그를 지금 투사로 만들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제 사악한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더큰그림이 필요하다고 뼈저리게 느끼고 이번 사무총장 임명이라는 강수로 리더쉽의 첫발을 내딛얻다고 믿고 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5.06.25 18:36 신고

      문재인이 지금은 강하게 밀고나가야 할 때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좌우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입니다.
      야당이 선명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진보좌파는 자신의 정체성(이념)을 사회와 국가의 절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자본주의와 자유방임 시장경제, 대중매체 등이 만들어낸 결과들이 소수의 기득권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절대다수의 비기득권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거나 극복하는데 정치적 목표를 둔다.



민주주의와 대중매체가 보편화된 20세기 후반부터 사실상 폭력적 혁명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좌파는 정치행위를 통해 이념적 가치인 다양한 방식의 차별을 줄이고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줄여야 했다. 폭력 혁명의 필요성을 놓을 수 없었던 좌파의 투쟁방식은 설 자리를 잃게 됨에 따라, 진보라는 투쟁방식의 정치적 변화를 선택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그냥 시장의 확대에 불과하다)가 더해지자, 이념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공론장의 구조변동’이 이루어졌다. 공동체나 지역 단위의 공론장은 국가 전체와 세계를 거의 동시에 보여주는 대중매체의 속도에 의해 무너졌다. 인식의 출발점인 시각적 단위가 커지면 전통의 공동체는 너무 작아서 무의미해진다.



기본적으로 대중매체의 테크놀로지는 현실의 피폐함보다는, 꿈이나 희망처럼 좋아 보이는 것, 재미있어 보이는 것,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것, 대세(특히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드라마와 각종 쇼, 연예인 스캔들 등)를 이루고 있는 것 등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대중매체는 전파를 타는 콘텐츠가 시청자를 중독(인터넷은 재접속)시킬 수 있어야 이익을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대중매체는 시청자와 이용자들이 보기에 좋은 것, 재미있는 것, 복잡하지 않는 것 그래서 깊은 생각 없이 표피적인 인스턴트 쾌락에 빠져들게 하는 것들을 양산한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치열한 토론과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정치적인 것들마저 몇 초 만에 판단할 수 있는 즉시성을 띠어야만 대중매체를 탈 수 있다. 시청자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인터넷과 SNS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이런 경향을 더욱 심화시켰다. 단문 위주의 재잘거림인 트위터나, ‘좋아요’에 따라 글의 가치가 정해지는 페이스북, 말의 결핍을 불러오는 카카오톡 등은 정치의 몰락이나 정치철학, 즉 이념이 추구하는 것을 질식사시킨다. 정치는 늘어나지만 이념적 정체성은 희박해진다.



무엇보다도 정치의 본질인 말(토론)이 메시지와 영상, 단문 등으로 대체됨에 따라 상징조작이 일상화됐고, 욕망과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선거의 승리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정치의 역할에서 치열한 토론과 냉혹한 현실 인식이라는 공익을 창출하는 과정이 힘을 잃었다.



이때부터 세상의 보수화가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욕망과 쾌락에 대한 상징조작이 난무하는 미디어정치가 이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상대와 치열한 토론을 거쳐, 보다 유리한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으로서의 정치가 갈수록 피곤한 것이 된다. 즉 쿨하지 못한 것이 정치가 됐다.



사회경제적 평등이 전제될 때 ‘자유의 왕국’으로서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좌파의 이념(전체화하는 경향과 개인화하는 경향이 있는 국가의 특성과 함께 봐야 한다)은 무용지물이 됐다. 태생과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방임적 자유를, 법이나 제도에 의해 보장되는 자유로 제어하지 않으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 절대적 힘을 발휘한다.



헌데 이런 인식이 대세를 이루면서 강준만류의 오류가 발생한다.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 질서와 제도를 인정하는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전제를 이룬다. 이런 현실 인식은 현재가 최선의 결과이고, 기득권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가장 보수적이다.





‘정치가 타협’이라는 강준만의 진단은, 폭력 혁명이 불가능해진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좌파적 이념을 정치적으로 풀어보려는 진보진영에게 끝없는 양보라는 정치적 타협을 강제하는 올가미로 작용했다. 신자유주의와 미디어정치의 약자인 진보진영이 좌파적 가치를 실현하려면 기득권을 인정하는 ‘싸가지’부터 갖춰야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에 대한 이해가 생긴 이래, 이념의 다른 말인 정치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탄생과 함께 결정된 불평등을 정치라는 과정을 통해 공익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후천적인 평등을 이루는 것이었다. 동서양과 종교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제시되는 행동의 황금률이나 사회적 정의가 바로 그것이다.



근대이성이 '계몽의 변증법'으로 산업혁명 이후의 역사를 욕망과 쾌락의 실현에 방점을 두면서 이념적 분할이 이루어졌다(프랑스혁명도 이념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시민권의 확대와 현대적 의미의 역사도 이때를 전후로 해서 이루어지고 정립됐다. 언제나 기득권의 이익에 봉사했던 정치가 공평, 공정, 정의, 평등의 구현이라는 철학을 되찾은 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달라진 것이란 과학기술의 발전과 대중매체의 보편화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발전뿐이었다. 공간을 시간으로 점령하는 세계화란 이 두 가지의 지원 하에 정치에서 철학적 가치를 담고 있는 이념을 배제시키는 과정이었다. 마키아벨리적 추문을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올린 것도, 정치를 마케팅으로 바꿔버린 미디어정치다. 한국의 경우 언론인(특히 기자와 앵커)이 정치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중매체가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강준만식의 진보 비판이란 그 자체로 보수화를 의미한다. 대중매체가 주도하는 미디어적 시각에서 보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진보의 정답인데, 그것을 이루는 방식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국민의 수준이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이라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민의 수준이 높다고 정치가 이념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차별을 조장하는 엘리트주의가 부활하고, 노력보다 능력이 중시되고, 결과의 평등을 강제하는 것들이 갈수록 힘을 잃는 부정의로 가득한 현실에서 국민을 계몽시키면 정치와 민주주의의 수준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준만식의 진보 비판과 시대 진단은 그저 지식인을 자처하는 자들의 언어적 유희일 뿐이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정치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사후적 평등을 추구하는 정치과정을 통해 모든 개인이 또 다른 시작을 할 때, 다음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출발을 할 때, 공정하고 공평한 경쟁과 공존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에 의해 균형과 견제가 가능하도록 사회와 국가를 제도화하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되, 어쩔 수 없이 참사가 일어나면 가장 민주적인 대처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게 인류가 민주주의를 지배적 체제로 선택한 이유다.  



거의 모든 국민들이 삶에 찌들어 있도록 만들어, 풀뿌리 민주주의조차 불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20세기 후반부터 정치권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었다. 다시 말하면 20세기 후반부터 정치권에서 이루어진 타협이란 우파적 가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는 뜻이다. 



달라진 것이란 20세기 후반보다 모든 면에서 불평등이 늘어나 풀뿌리 민주주의는커녕, 자식의 죽음을 대중매체를 통해 생중계로 보았지만 부모들이 목숨을 건 단식이 아니면 진상규명에조차 다가갈 수 없는 정치적 타협을 가장한 야합이 늘어난 것이고, 진보 지식인을 자처했던 자가 타협하라고 유족들에게 대목을 박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정치적 타협과 투쟁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철저하게 보수화되고 재봉건화된 세상에서 진보가 싸가지라도 없으면 무엇으로 버틴단 말인가? 진보에게 싸가지 없다고 욕하기 전에 진보를 싸가지 없게 만드는 대중매체와 극단의 불평등이 초래한 현실의 부정의함부터 제대로 인식하라. 역사상 최고의 추문으로 유명해진 마키아벨리적 접근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싸가지 없는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싸가지다.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가 말이라는 것을 되살려내고, 보수진영은 애초부터 정체성이 없어 상황에 따라 변신하는 기회주의적인 집단이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욕망과 쾌락을 잘게 나눠 분할해서 지배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인류가 선택한 민주주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경제적 평등을 보장하기 때문이며,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최종적 결과의 불평등을 끊임없이 최소화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에 필요한 것은 이념의 본질을 되찾는 것이며, 유시민처럼 싸가지가 없어도 정치의 본질이 말에서 출발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행동은 말보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쉽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자유방임 시장경제,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각종 불평등을 양산하고 인류를 공멸의 위기로 내몰았다는 것이 판명난 지금, 보수가 토론을 피하고 대중매체를 동원해 상징조작에 전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 비판에 적용해야 할 것을 강준만 교수는 진보에게 적용했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대중매체 인터뷰와 기사와 칼럼 등을 기준으로 하면. 즉 강준만은 더 이상 진보 지식인이 아니라 보수 지식인이다. 세상이 변했다고? 아니, 더 나빠졌을 뿐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선 아우성치며 시끄럽고 싸가지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중용투자자 2014.10.01 08:50

    진보,보수,중도 이런 프레임에 가둬두고 판단을 한다면 어떤 사람도 피해갈 수 없을 듯합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유심히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 태봉 2014.10.01 11:20

      제 개인적인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이 세상은 결국은 각자가 프레임을 통한 세계를 보고 경험합니다 그래서 중요한건 프레임의 내용인 이념적 가치관,세계관의 정확하고 바른 정립이 우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재벌 ,정치,미디어권력 등 기득권세력에 의해서 중도,보수,진보라는 개념이 잘못 인식되고 있습니다 늙은 도령님이 말씀하였듯이 가치와 보존,국익추구가 보수일진데, 사익에 눈이 먼 수구를 보수로 잘못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된 프레임에 대중들은 쇄뇌되어 있어서 그들은 그들을 잘 이용해 먹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각자의 개인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님의 말씀처럼 수구는 사적이익에 몰빵하므로 수구는 수구식으로 행동일치가 가장 잘되나 봅니다ㅋ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넘이 재잘거렸습니다

    • 늙은도령 2014.10.01 22:31 신고

      이념적 깊이란 말과 행동의 일치를 불러옵니다.
      최소치가 아니라 최대치로요.
      정치적 기술만 늘뿐, 이념적 이해가 부족하면 정치는 언제나 기득권의 놀이터가 됩니다.
      국회에 다양한 계층의 정당이, 다양한 이해가 충돌하는 집단의 일원이 진입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합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것들이 이루어집니다.
      헌데 거대 양당체제에서는 둘만의 이해만 일치하면 됩니다.
      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해도 그들만의 이익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어서 그 과정에 국민이란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4.10.01 22:34 신고

      그럼요, 태봉님.
      이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확고한 실천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기득권이 만든 논리인 타협이 최상인줄 압니다.
      보수는 바꾸지 말고, 최대로 해도 기존의 것들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주장합니다.
      이미 벌어진 차이는 줄어들지 않거나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진보는 이것을 정치과정을 통해 줄이고, 줄이고, 그러다가 역전도 가능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념적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원히 승자와 강자의 세상만 계속됩니다.

  2. 지나는독자1 2014.10.02 09:58

    늙은도령님, 또 다른 지식인, 운동가들은 말고, 시민단체도 말고, 지금 야당 정치인들은 야당이 중도층 표를 얻어 집권"하려면 반드시 강교수 이야기를 새겨들어야 할 듯.... 싶네요. 진보가 되었건 좌파가 되었건 싸가지가 없으면 다른 건 몰라도 '집권'은 절대로 못합니다. 강교수 말은 쉽게 말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쟤들은 더 심하잖아'라고 말하는 건 집권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현실을 직시하라는 게 또 강교수 말이라고 봐요.^^

    • 늙은도령 2014.10.02 14:17 신고

      강준만의 진단은 단기적 승리를 위한 하책입니다.
      강준만은 국민의 수준이 그 나라의 민주주의의 수준이라고 하면서, 국민을 끌어올리야 한다는 방법으로 방법적 접근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또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솔직히 보수와 진보 모두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방법적으로는요.
      그래서 결국은 이념, 즉 가치를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강준만의 진단에는 일부 동의하지만, 그는 기본적인 것을 놓쳤습니다.
      기본이 흔들린 성공은 일시적이고 어쩌면 영원히 집권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진보보고 보수를 따라 하려면 절대 못 이기지요.
      진보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강준만은 반대로 풀었습니다.



JTBC가 시사보도프로그램을 개편하면서 조금씩 회항하던 종편화가 확실해졌다. 개편한 이유가 탈정치화에 있는 것이 확실한 손석희의 8시 뉴스룸까지, 예전의 MBC를 대신하던 JTBC의 시사보도프로그램을 볼 이유가 점점 더 사라지는 것 같다. 출생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가 보다.





최근의 JTBC 시사보도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계파정치에 매몰된 정당으로 끊임없는 폄하를 하고 있다. 반대로 새누리당을 얘기할 때는 동일한 내용을 폄하하지 않고, 적정선에서 포장하느라 정신이 없다. 패널들이 새누리당과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이 나오면, 사회자는 서둘러 봉합하기에 바쁘고, 끝을 흐린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비대위에 계파수장이 참여한 것을 당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한 것으로 폄하하면서도, 계파수장의 다른 말인 대선 잠룡들이 참여한 새누리당 혁신위는 공통의 합의를 통해 룰을 만들기 위한 것이란다. 조경태와 정청래의 막장발언을 이용해 계파정치를 비판하는 듯한 편집은 논리적 비약이 너무 커서 의도적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 달 전만 해도 5시(그때는 4시) 정치부회의만 그랬는데 개편 후에는 뉴스룸까지 그러하다. 뜬금없이 강준만 교수를 초청해 2회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싸지지 없는 진보》는 개편 전까지 4시 정치부회의를 중심으로 친노 강경파를 한국정치의 문제로 몰아간 것과 동일한 맥락이어서 손석희마저 자유주의적 중도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8시 뉴스룸의 개편은 최악이라 할 수 있다. 두산그룹을 완전히 바꿔놓은, 그러나 포스코는 그렇게 하지 않아 비판받아 마땅한 페놀 유출 관련 보도와 이명박 정부의 4대강공사처럼 탈정치적이고 지난 정권의 문제를 다루는데 상당한 시간을 배정한 것은 현 정부 비판의 축소와 탈 정치화와 궤를 같이 한다. 뉴스9이 뉴스룸으로 개편된 목적은 정치 중심의 뉴스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며, SBS처럼 지상파 8시뉴스를 겨냥한 것이다.



JTBC의 종편화는 대중매체의 본질인 콘텐츠의 상업화와 오락화로 가는 길을 취했기에 지극히 기업적이다. TV조선이 정치 이슈를 선정적이고 이분법적으로 다뤄 폭력적인 증오상업주의로 먹고 살고 있다면, JTBC는 개편 이후 이슈에 대한 경직성을 버리고 연성화를 택해 방송 콘텐츠의 탈정치화와 오락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JTBC의 변화는 뉴스룸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SBS 8시 뉴스를 자극해 양질의 보도가 전파를 타게 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고 있다. 최근 일주일만 놓고 보면 8시 뉴스룸보다 SBS의 8시 뉴스가 완전히는 아니지만, 최소한 현재의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면에서는 한 발 앞섰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하위직 공무원과 근무연수가 적은 공무원일수록 피해가 집중된다는 것을 보도하고, 자살률과 증세 문제를 다루는 것에서도 뉴스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갔다. JTBC가 공무원연금 개혁의 당위성을 국민연금과 동일시하는 것은 비교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연금의 개혁은 필수지만 비교대상을 일반과 찾는다면 구태여 공무원을 둘 필요가 없다. 



앵커의 클로징 멘트도 SBS 8시 뉴스가 JTBC 8시 뉴스룸보다 훨씬 좋았다. 세월호 실종자를 진도체육관에서 나가라는 현지 주민(전체를 대표하는지 알 수 없지만)의 항의에 대한 보도에서도 뉴스룸보다 8시 뉴스가 인권과 국가의 역할이란 면에서 본질에 더 근접했다. 애플 신제품에 대한 부정적 보도도 지극히 삼성스러웠다.



또한 누구나 할 수 있고,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한 4대강공사 비판보다 의료민영화와 영리화의 부작용에 대해 다루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개편 이후의 JTBC는 현 정부와 정면 충돌하는 부분은 가급적 피하고 있으며, 이슈 선택의 기준도 인기영합적인 면(시청률이 핵심)이 강해졌다.





JTBC의 시사보도프로그램을 보면 세월호 참사에 집중했던 것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현 집권세력에 의해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세월호 프라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의원의 세비 및 식물국회 운운하는 것은 세월호 피로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어서,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는 이중적 행태다.



시사보도프로그램의 개편에 맞춰 중도보수화를 본격화하고 있는 JTBC의 시사보도프로그램은 종편의 출범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패널 중에 진보 진영을 대변하는 사람은 찾아 볼 수도 없고, 대통령과 여당 비판에는 핵심을 빗겨난 주변부적인 것만 다루고, 그것마저도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에서는 안스러워 보일 정도다. 



향후 2년간 특별한 선거가 없는 것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방송생태계의 균형추 역할을 JTBC 시사보도프로그램의 개편은 진보진영의 몰락을 더욱 부추길 것 같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덕산 2014.09.30 19:05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JTBC 뉴스 였는데.. 안타깝습니다.
    정말 대안 뉴스 아님 볼게 없어진것 같네요.
    당분간 tv는 끄고 살렵니다.

    • 늙은도령 2014.09.30 21:03 신고

      네,그게 나을 듯싶습니다.
      저는 비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봅니다.
      이제는 볼 것이 없는 것이 방송입니다.

  2. 여강여호 2014.09.30 19:37 신고

    jtbc 뉴스가 뜨고 있다는 현실 자체가
    우리 언론의 천박함을 대변하는 것이라 하겠지요.
    그나마 손석희 체제가 끝난다면.....그때는 그냥 조중동이겠지요?

    • 늙은도령 2014.09.30 21:04 신고

      아마 오락적인 면이 강화될 것입니다.
      그것이 대중매체의 본질이니까요.
      선거 때가 다가오면 그때 좀더 확실히 드러나겠지요.

  3. 중용투자자 2014.09.30 23:05

    JTBC가 초심을 잃치 않도록 끊임없는 채찍질이 필요할 듯합니다.

    • 늙은도령 2014.10.01 00:17 신고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가 위기에 빠진 듯하자 JTBC 전체의 기조가 변햇습니다.
      손석희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그가 영웅도 아닌 이상.

  4. 리야 2014.09.30 23:11

    패널의 균형이 깨졌습니다..

    시청자들도 점차 균형을 잃어가지요..이 정부가 바라는대로요..

    앞으론 김경진 변호사, 김태일 교수, 박상병 정치평론가등등..

    섭외되지 않을거란 생각도 들고요..

    황태순, 황장수, 홍성걸 같은 자들이 판을 치겠지요..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 늙은도령 2014.10.01 00:18 신고

      패널의 균형이 무너진 것은 이미 오래됐습니다.
      그래도 참고 볼만은 했습니다.
      다른 방송들이 너무나 편향됐기 때문입니다.
      헌데 JTBC도 대중매체의 본성인 오락화에 빠져들었습니다.
      배가 불러진 것이지요.

  5. 공수래공수거 2014.10.01 10:26 신고

    다른 뉴스(종편,MBC등)와는 좀 다르다 싶었는데
    결국은 같아지는건가요?

    • 늙은도령 2014.10.01 22:37 신고

      방법에서 약간 변했고, 약해졌으며, 자신의 이익에 따라 반응하는 시청자를 향해 방향을 튼 것 같습니다.
      이른바 중도보수화하는 것이지요.
      대중매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럴 경우 5시 정치부회의처럼 정치적 이슈들이 오락화됩니다.
      그 다음은........



진보 세력은 물론 진보 진영 전체가 몰락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최근에 2개의 국가로 나눠진 수단은 예외로 할 때)라는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해낸 민주정부 10년의 주역이자 60년 전통의 거대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끝없는 추락이 자리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몰락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진보적 가치에 대한 왜곡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축소시켰다. 진보의 기원인 좌파라는 단어와 노조라는 단어에 반체제적이거나 종북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덧씌워지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반하는 현상이 일상화됐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확대는 계급적 차별과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로 대표되는 기득권(신자유주의적 지배엘리트)에 맞서, 진보적 가치의 핵심인 사회경제적 평등과 제도적 자유(표현과 결사의 자유가 핵심)가 존엄한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인권의 발전과 확대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이에 비해 법 앞의 평등(공화국의 가치)이란 개념은 영원히 달성될 수 없는 언어적 성찬이어서 기득권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보수적 가치의 핵심이다. 보수 정권일수록 법의 지배나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정치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사회경제적 평등을 죄악시하는 자유방임적 가치들은 언제나 보수적이다. 경제 분야는 60년대, 정치 분야는 70년대, 그 밖의 분야는 80년대에 접수해 자유방임적 가치들을 무소불위의 지위로 끌어올린 신자유주의가 가장 보수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화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개념으로 확장된 신자유주의는 보수정부가 초래한 IMF 환란을 이용해 최단 시일 만에 한국을 점령했다. IMF 환란과 민주화운동 때문에 민주정부 10년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지만, 신자유주의의 점령 때문에 진보적 가치들이 부식되는 것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전두환의 군부독재 때부터 기득권을 대변하는 족벌신문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조중동과 현재의 새누리당에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 뉴라이트로 전향한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수혈되기 시작한 것도 IMF 환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뉴라이트 인사들이 진보적 가치를 파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어서 민주정부 10년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었다. 여기에 IMF의 구조조정의 수혜자인 재벌들의 지배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동시에 사회 전 분야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진행됨에 따라 참여정부 중반부터는 진보 세력의 급속한 퇴락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쇠퇴를 필연적으로 불러오지만, 민주주의를 이용해 진보적 가치를 고사시키는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기술과 경험의 집합체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복지와 사회안전망의 확대가 경제성장과 함께 이루어졌지만, 진보적 가치는 신자유주의의 득세에 밀려 악화일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진보 세력의 몰락이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정치 분야라 해도 이런 추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진보 정당들이 참여정부 시기에 정체기로 접어드는 모순에 빠져들었고, 이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전 분야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됐다.



대한민국의 보수화는 되돌릴 수 없는 추세로 자리 잡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조중동과 무더기 종편의 등장, 방송장악까지 더해지면서 박근혜 정부의 탄생이 가능했다. 진보적 가치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극도로 줄어들었다. 안철수 신당과의 합당에서부터 박영선의 이상돈 영입 시도까지, 구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의 몰락도 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문희상 의원이 새 비대위원장에 오른 것도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나온 땜질식 처방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의 것들을 기반으로 했을 때, 새정치민주연합의 몰락을 불러온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두 개의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폭주가 만들어낸 계층구조와 이념구조의 변화가 중첩되는 것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두 번째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성향의 대중매체가 정치적 프레임 설정의 독점적 지배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의 부재이다. 



세 번째는 남북으로 분단된 지정학적 상황에서 왜곡된 정치적 이념의 경직성과 민주화운동의 경험에서 나오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부족과 인지부조화이다. 네 번째는 자본과 권력의 시녀이자, 동반자인 대중매체(전통의 조중동과 제도권 방송, 보수 성향의 거대 포털과 인터넷 매체들)가 주도하는 공적 영역의 사적 영역화에 대한 이해부족과 전략부재다. 민주주의가 불가능할 정도로 떨어진 투표율도 근본적으로 보면 이것에 기인한다.



이 네 가지 요인을 별도의 글로 다룰 것이지만, 신자유주의와 확대의 반대편에서 이루어진 진보적 가치의 축소와 왜곡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체성을 흔들었고, 브레이크 없는 몰락으로 이어졌다.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는 (형편없는 성찰과 되지도 않은 말장난에 그쳤지만) 이중에서 세 번째에 집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실은 현실이다. 수구와 강경 보수의 잡탕인 새누리당에 맞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정당으로써 새정연이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몰락한 진보정당이 부활할 수 있다. 인터넷이나 SNS, 촛불집회로 여론의 흐름에 영향을 줄지언정 현실정치를 바꿀 수는 없다. 거대양당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새정연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몰락해선 안 된다. 



  1. 중용투자자 2014.09.19 08:07

    진보와 보수의 구별이 어려울 정도가 되버렸네요.
    신자유주의는 우선 경제력으로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어 버리니 국민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불신도 확대되는 듯합니다.

    • 늙은도령 2014.09.19 16:17 신고

      새정연이 진보의 이름으로 몰락해선 안 됩니다.
      진보 정당이 부활할 때까지 새정연이 버텨줘야 합니다.

  2. 여강여호 2014.09.19 20:11 신고

    지금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력으로 진보정당 회생의 길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보수정당의 실패와 보수의 약육강식 민낯을 대중이 인식하기 전까지는....
    그래서 진보도 보수도 아닌, 보수적 사회가 만든 어거지 진보의 맏형 새정련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 같기도 하고요. 위 답글에서 말씀하신대로 버텨줘야 하는 것도 새정련의 막중한 역사적 소명이 아닐까 합니다.

    • 늙은도령 2014.09.19 20:56 신고

      네, 진보정당의 부활을 위해서 버텨줘야 합니다.
      극도로 보수화된 국가에서 진보정당이 부활하려면 새정연이 버텨주어야 합니다.

      단, 보수적 인사들이 나가 분당을 하는 것은 찬성합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 사회의 전경은 민주주의의 표피를 덮고 있으나 그 표피 아래에서 귀족주의의 옛 색깔들이 간간이 얼굴을 내민다......이 나라 사람들처럼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없으며, 재산이 항구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이론을 이 나라 사람들처럼 경멸해 마지않는 사람들도 없다.


                                                                           - A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중에서 인용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를 읽지 못했기에 내 평가는 프레시안과 한겨레 등에 나온 기사들에 한정된다. 강준만은 진보세력이 연이은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 “싸가지 없는 진보의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불일치’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진보가 논리와 이성에 집착하는 한 욕망의 시대인 21세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읽을 가치가 없어 보이는 책



그는 논리와 이성에 집착하는 진보가 유권자들에게 싸가지 없는 놈처럼 보이고, 그것 때문에 표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정책과 이념이라도 싸가지 없게 행한다면 유권자들을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강 교수는 진보세력의 ‘이성 중독증’이 ‘옳은 말이지만, 싸가지 없게 보여 부동층(20%)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개인적 욕망에 감정으로 접근해 싸가지 있게 구는 부동층의 지지를 받아 선거에서 이겼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따라서 ‘싸가지 없는 진보가 집권하고 성공하려면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이고, 그럴 때만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한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 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 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는 태도, 왜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느냐고 호통 치는 듯한 자세, 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에게도 상처를 주는 행위, 번드르르하게 말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꾸는 태도 등”을 비판하는 진보의 행태를 비판했다.



                                   보수의 시각에서 진보를 비판한 것에 불과한 강준만



필자는 진보의 고리타분함과 경직성에 대해 여러 번 비판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필자의 주장은 강 교수의 진보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프레시안 보도가 강 교수의 책을 제대로 압축한 것이라면, 필자의 답은 ‘아니올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먼저 강 교수가 진보의 기원을 거론하며 ‘이성 중독증’을 말한 것은 분명한 오류다. 강 교수가 말한 이성이 근대이성에서 나온 계몽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의 오류는 너무나 치명적ㅡ근대이성에서 나온 계몽은 보수와 진보 모두의 기원이다ㅡ이어서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듯이, 진보도 열심히 변하는 중이지만, 그렇다고 '이성 중독증'이라 하면 그것은 지나친 단자화다.    



반면에 그가 말한 진보가 추구하는 이성이 정의나 공정과 같은 ‘옳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오류다. 정의나 공정의 기원은 플라톤과 공자처럼 질서나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인권의 기원에서 보듯 ‘옳은 것을 말하는 것’도 보수에서 기원하는 것이지, 진보에서 기원하지 않는다.



또는 그가 말한 이성이 ‘자연의 법칙’이나 ‘우주의 법칙’ 같은 ‘역사의 법칙’이라면 이 또한 오류다. 마르크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말한 ‘역사의 법칙’이란 고전물리학과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오류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진보의 ‘이성 중독성’을 말했다면 오류에서 오류를 찾아내 비판했으니, 그것은 진리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 교수는 21세기를 ‘욕망의 시대’라고 하면서, ‘진보의 싸가지 없음’이 부동층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선거에서 진다고 했으니, 이는 부동층 전체를 ‘욕망의 노예’로 디스한 것이다. 그가 대중매체의 전문가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진보와 보수를 넘어 인간을 형편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의원의 글까지 더하면, 칼 폴라니와 니콜라스 카가 말했듯이, 그들에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부족하다.



읽다가 어이없어 덮어버린 책



강 교수의 이런 조짐은 ‘강남좌파’를 형용모순이라 비판한 시절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진보의 덕목을 가난으로 본 것인데, 이성도 그렇게 본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논리적 오류가 두 개에서 너무나 큰 간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가 미국적인 것들에 물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내놓는 그의 주장을 보면 곳곳에서 오류가 출몰한다.



대중매체의 본질처럼, 미국적 자유주의자로 변신한 것이 분명한 강준만 교수의 주장은 부분적 표상과 수치들로 전체를 재단하려 한 것에서 나온 속도의 폐해이다. ‘모든 창작은 인식의 조급함’이라는 말이 있는데 강 교수가 그러한 듯하다. 그는 현대 대중매체의 화면ㅡ관점 또는 시각ㅡ을 통해 진보와 보수를 보고, 화면에 비쳐진 것에 좌지우지 되는 존재로서 부동층을 재단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의 최종 진단도 지극히 미국적 대중매체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토록 망가진 것은 진보의 ‘이성 중독증’ 때문이 아니라, 정치판을 욕망의 장으로 만든 보수의 극단적인 타락 때문이다. 이성은 도덕과 다르며, 보수의 타락은 미국 유학파들(정치, 경제, 사회, 언론)에 의해 주도됐으며, 그 핵심에 겉과 속이 다른 대중매체적 테크놀로지가 있다.



강준만 교수는 이제 마키아벨리적 보수 인사가 다 된 것 같다. 진보 세력한테 논리와 이성을 버리고, 욕망을 추종하는 정치쇼를 벌이라고 충고하니. 부동층의 표를 얻기 위해 진보에게 욕망이란 가면을 쓰라고 하니,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강 교수에 대한 진중권의 반론 중 “강 교수가 싸가지 소지 의무를 강조하는 걸 보니, 이 사회가 그 사이에 많이 보수화되긴 한 듯”이라고 한 것은 그나마 정확하다.

  1. 중용투자자 2014.09.04 02:11

    틀리다가 아닌 내 생각과 다르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

    • 늙은도령 2014.09.04 05:24 신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책을 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프레시안과 한겨레의 기사를 기준으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책을 사서 읽다가 <강남좌파>와 똑같은 경험을 할 것 같아서 책을 구입할지 망설여집니다.
      강준만 교수의 주장은 좌파에서 전향한 신보수주의자의 주장과 너무 흡사합니다.

      일단 읽다가 처박아 놓은 <강남좌파>부터 마저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중반까지 읽다가 논리적 모순과 오류 때문에 접었던 책이라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2. 리야 2014.09.04 02:33

    다르다고 표현할려면 소위 신문칼럼이나 게재 해야겠죠..

    명백한 오류를 발견하고 틀린걸 다르다는 식으로 표현하면

    개인 블로그의 의미와 추구하는 이상이 글쎄요...퇴색되진 않을까요?^^

    • 늙은도령 2014.09.04 05:30 신고

      책의 내용을 보지 못했기에 <강남좌파>에서 보였던 것들이 프레시안과 한겨레의 기사에 똑같이 되풀이 됐기 때문에 틀렸다고 했습니다.

      만일 이번 책의 내용이 오류를 극복했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요.
      헌데 기사 내용과 인터뷰들을 살펴본 것으로는 틀렸다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의 책은 대중매체를 다룬 것들은 훌륭한데, 너무 다작이라 조급함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제가 근현대사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일종의 짜집기죠.
      제가 쓰는 근현대사는 처음부터 짜집기를 방법으로 정한 것이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강남좌파>처럼 강준만 교수의 책은 다르지요.

      저도 진보좌파와 보수우파를 재정의하는 것을 구상은 해두었습니다.
      문재인 의원을 만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확인할 것이 남아 있어 아직 집필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것이 확인되는대로 글로 옮길 것입니다.

      진보좌파는 분명 재구성돼야 합니다.

  3. 도래 2014.09.04 10:31


    사실 이 칼럼 좀 실망입니다.

    이성과 욕망에 국한해서 정치판을 얘기하자면 볼 것도 없이 욕망이 이깁니다.
    정치에서 이성이란 이념과 편향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욕망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 정치판을 논하는 거라면 좀 고리타분한 학자풍의 서술은 피하셨으면...
    특히 인용이랍씨고 외국 유명 학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한국에서는 너무나 상투적입니다.
    사실 그런 것이 없으면 한국에서는 잰척을 할 수도 없는 현실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거 일종의 노예 근성입니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자기 생각 자기 말을 하라 이렇게 주장하겠습니다.
    님은 그 능력이 있을 수 있고 그 능력을 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무협소설의 잠재력을 본다면.

    만일 이 칼럼이 도령님 재주의 한계라면 한번쯤은 죽었다 깨나는 성장적 위기를 거쳐야만 무언가 진짜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제 솔직함의 무례를 용서하시길...

    • 늙은도령 2014.09.04 15:24 신고

      내가 아닌 누가 한 말을 내말처럼 사용할 수 없는 것이지요.
      또한 강준만이 말한 이성이나 논리 등을 애기하려면 당연히 그 기원에서 찾아야겠지요.
      그렇게 한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전 그런 글 쓰는 것의 양심을 지켜야 했습니다.
      외국의 것이라도 그것이 옳다면, 우리나라에는 그 정도의 대가가 없다면 그들의 글을 인용할 밖에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정치철학자가 있는지요?
      제가 다른 나라의 정치철학자들을 인용하지 않을 만큼 그 정도의 석학이 있는지요?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용을 빌리는 것이고, 요즘 지식인들 너무 책을 안 읽어요.
      시대가 빠르게 변한다면서.
      하지만 달라진 것이 정말 있느냐?
      과학기술적인 것 말고는 없습니다.
      오히려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고 있지요.
      강준만은 그것을 말했을 텐데, 그것이 싸가지로 표현되는 것은 지극히 단순환 논리입니다.
      또한 요즘은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남을 것을 내것이라 할 수 없고, 그들의 것 이상을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하면 그것을 인용하는 것이 글쓰는 사람의 자세라 생각합니다.
      소설과 정치철학은 다릅니다.
      아직도 저는 배우는 중이고, 대가가 되려면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았습니다.
      강준만의 글쓰기가 언제나 이런 식이어서 저도 같은 방식으로 대한 것이고요.

      두 번째는 이 칼럼은 프레시안와 한겨레 기사, 동아일보, 라디오 인터뷰 등을 기준으로 썼기 때문에 그 한계 내에서 글을 써야 논리적 비약이 없지요.
      또한 기사나 인터뷰 이상의 것이 첵에 들어있다면 그때는 제대로 된 비평을 하겠지요.

      주어진 것에서 지나친 상상은 비약이 됩니다.
      저는 그 한계 내에서 글을 쓴 것이고, 책의 내용에 따라 제가 틀리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의 정의부터 새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현장에 대한 이해가 병행돼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강준만이나 진중권을 보면 학자적 냄새는 나나 거대 조직에 대해서는 너무 몰라요.
      또한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지식이 부족해요.
      그래 가지고는 절대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해와 변화, 우리나라의 상태에 대해 이해하기 힘듭니다.
      지금의 보수와 진보는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논리가 변형된 것에 불과하게 가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출발부터 변화까지 그 역사에 대해 철저한 이해없이 글을 써요.
      그래서 뒤죽박죽이 됩니다.
      강준만도 진중권도 그런 면에서 다 틀렸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다음 글들에서 밝힐 것입니다.

    • 도래 2014.09.04 21:21

      국내건 외국이건 석학이라는 부류들이 가르치는 것들, 도령님이나 나와 같은 고수라면 스스로 깨칠 수 없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많이 읽되 나의 사고로 그들의 통찰력을 체내에서 소화시켜 내 말로 내 표현으로 출수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공이 쌓이고 공력이 되는 것입니다.

      정계이건 학계이건 어디든 기득권이 있지요. 기득권이란 허물자고 있는 것입니다. 도령님이나 나나 변방에서 출도하는 사람들은 중앙을 쓸어버리겠다는 반골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개가 없다면 흔한 말로 시체지요. 변혁이고 혁명이고 다 포기해야지요.

      딴 말 필요없습니다. 땅과 하늘을 뒤엎겠다 하겠다, 이겁니다. 이 자신감을 볼 수 있다면 제 말의 의도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도령님의 '내 이야기'를 전부 읽어보았습니다. 큰 한을 키울 수 있는 사람, 그 해원을 위해 초극할 수 있는 사람, 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떤 미친 사람이 바람같이 왔다 스쳐사라진 셈 치십시오. 무협에 대한 미련으로 단순 독자로서는 계속 방문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분발하십시오.

      아 그리고 이 말 한마디는 추가하고 싶네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느껴지는 뜨거운 마음, 여기에서 강한 동지의식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4.09.05 17:31 신고

      석학의 것들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면 벌써 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내것이라고 내놓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제가 접한 사람들 중에 몇몇은 제가 넘을 수 없는 수준에 있어서 그들을 넘을 수준에 이르면 그때는 본격적으로 재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헌데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제 목표는 푸코와 벤야민인데 21세기의 제가 20세기의 그들만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를 높이 사준 점은 고맙습니다.
      지금의 제 수준으로도 누구와도 토론하건 내목소리를 내건, 어느 정도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목표는 그 이상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더 공부하고 더 쉽게 글을 쓰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들을 한 번은 털고 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통해 제 소리가 나오겠지요.
      저는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느긋하게 갈 생각입니다.
      어차피 지금은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구적 차원의 변화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TV를 끄고 책을 읽는다면 모를까 그것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금은 천천히 갈 것입니다.

      때가 있으리라 봅니다.
      때를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제 능력 밖입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지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건강상으로도 모두 그렀습니다.

      요 며칠 급성장염 때문에 너무 아프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지 않네요.
      일단 급성장염부터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이런 분이 다시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헌데, 최근에는 문재인 리더십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리더십이 아닌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4. 여강여호 2014.09.04 20:03 신고

    미디어 전문가로서 철저하게 대중문화적 관점에서 정치를 분석한 듯 하네요.
    과거에 쓴 책을 상기해 보면
    강준만 교수의 정치 성향의 변화가 엿보입니다.
    근데 우로 너무 많이 갔네요.

    • 늙은도령 2014.09.05 17:35 신고

      엄청 나갔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수준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조급함이 느껴집니다.
      꼴통 좌파만이 좌파의 모든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를 놓고 좌우를 봐야 하는데 그것을 깨닫을 수 없을 만큼 경직된 것 같습니다.
      다작의 폐해가 스스로 바닥을 드러내는 것인데, 강준만의 경우 바닥이 보입니다.
      그가 숲은 나두고 나무를 갖고 이렇다 저렇다 하니 숲을 논할 차원에 이르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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