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주제로 들어가기 전에, 유럽이 살충제 계란에 경기를 일으킨 이유는 유대인 대학살에 살충제로 만든 독가스가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행정비용으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해야 했던 아이히만이, 1차 세계대전 당시 염소가스를 만들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프리치 하버의 '치클론B'라는 독가스를 사용해 유대인을 학살했는데, 그 독가스의 원료가 살충제였습니다. '살충제 트라우마'는 유럽인의 잔혹성을 말해주는 역사적 증거이기 때문에 살충제 계란이 유통됐다는 것은 광우병이 유럽을 휩쓸 때보다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킨 것입니다(하버는 과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고, 그의 부인은 남편을 용서할 수 없어 자살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계란에서 살충제가 나온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의 경우 (유럽에서는 금지된) 공장식 축산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단히 협소한 공간에 수만~수십만 마리의 닭들을 가둬놓았으니 몇몇 닭에서 진드기나 벼룩이라도 나오면 그것이 퍼지는 속도는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농장식 축산이 금지된 유럽에서도 살충제 계란이 대량으로 유통된 것을 보면 공장식 축산에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수 없지만, 거의 토착화된 AI가 유행하면 수천만 마리의 닭ㅡ닭으로 비유되는 사람은 제외ㅡ들을 매몰처리해야 하는 대학살이 되풀이되는 것도 공장식 축산 때문입니다. 



유럽의 경우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에게는 축산과 유통이 영원히 금지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이 청구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우리의 경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당 부처(식약처, 농식품부)의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해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공장식 축산의 동물들에게 각종 백신과 항생제가 투여되는 것처럼, 닭과 계란에도 직·간접적으로 살충제가 뿌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공장식 축산에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과 별도로 해당 공무원들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모든 언론들이 류영진 식약처장을 비판(임명된지 한 달도 안 된 그를 공격하는 것은 임명권자인 문통을 공격하기 위함이지만)하는 것들 중에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점은 어떤 이유를 들어도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이명박근혜 9년의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은 문재인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극복해야 하는 최대 현안입니다. 문통과 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무원들이 그에 발맞춰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사망자만 1200여 명에 이르고 피해자의 수는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가습기 살균제 참극'에서도 입증됐듯이, 정부와 공무원들이 새로운 화학제품에 대한 역학조사와 임상실험에 게을러서는 안 되며, 모든 화학제품을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포괄적 규제와 맞춤형 규제들을 적절하게 조합해 탐욕의 기업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시민단체와의 협업도 중요하며, 리콜이 실시됐을 때는 모든 담당자들이 현장으로 나가 물샐틈없는 회수에 성공해야 합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된 장관과 고위관료들은, 과거의 잘못을 출중한 실력으로 만회하고 있는 탁현민 행정관과 야당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처럼, 이명박근혜 9년의 타성에 젖어있는 조직을 정비하고 부처 공무원들의 정신자세부터 확실하게 바꿔놓아야 합니다.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고, 좋은 일자리 창출이 첫 번째 목표인 문통의 국정운영이 성공에 이를 수 있으려면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내각을 구성한 장관과 고위관료들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도움을 준 것은 일신의 명예는 될지언정 대가를 요구하는 거래가 될 수 없습니다. 문통의 높은 지지율은 첫 번째 내각을 구성한 장관과 고위관료 전체에 대한 지지율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정 기간을 제공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기간이 최대한 짧아야 함은 41.9%의 득표율로 당선된 문통의 새로운 지지자들에게 손에 잡히는 결과를 안겨줄 수 있을 때만이 성공한 대통령으로써 봉하마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통은 이전의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것을 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후보시절에 내놓은 공약들을, 약간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100% 실현하려고 합니다. 100대 국정과제도 그런 의지에서 나왔으며, 그중의 일부는 자신의 임기 내에 이룰 수 없지만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차기와 차차기 정부를 통해 더욱 확장해서 달성하려고 합니다. 탈핵과 문재인 케어, 복지 확대, 남북한 경제공동체 구축 등이 바로 그러하며, 이것들 모두가 공무원의 적극적인 역할수행이 없으면 달성할 수 없습니다.



상시적 구조조정과 실업자들로 넘쳐나는 현실에서 공무원에게 신분을 보장하고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악착같이 막는 것도 이 때문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공무원이라는 존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권위적이고 위압적이며 비효율적인 관료제에 파묻혀 이명박근혜 9년에나 통했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의 구태를 되풀이 한다면 촛불시민의 분노는 공무원을 향할 것입니다. 세상이 바뀐 줄 모르는 공무원들은 '공공의 적'으로 청산의 대상일 뿐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7.08.19 08:13 신고

    유럽의 사태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쉬쉬 유야무야
    넘어갔을것입니다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달걀을 먹었을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7.08.19 15:34 신고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도 유럽 같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2. 참교육 2017.08.19 10:06 신고

    유럽은 우리와 많이 드르네요
    공무원들이 주인을 개돼지 취급하고 무사안일한 자세와 공공의 적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 늙은도령 2017.08.19 15:38 신고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관료화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지만 이 두 가지 때문에 이번 대란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3. 동우 2017.08.19 13:43

    이번 사태를 보면서 폐지된 YTN 돌발영상 <이명박 - 멜라민 과자편>이 생각나네요. 보도 후 이명박 입맛에 맞는 낙하산 사장 임명을 시작으로 돌발영상은 폐지, 제작진은 강제 해직됬고 보수 우파의 언론 탄압의 계기가 되었죠.

    • 늙은도령 2017.08.19 15:39 신고

      이명박은 우리나라의 모든 부분을 타락시킨 최악의 범죄자입니다.
      반드시 사형으로 단죄해야 합니다.

  4. *저녁노을* 2017.08.19 16:00 신고

    거짓없는 바른 대응이 최선인데...
    안타깝더라구요. ㅠ.ㅠ

    • 늙은도령 2017.08.20 00:31 신고

      잘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공무원 세계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데....

  5. 그동안 잘못 되었던 것들이 차차 정리되고 바뀌어가길 바래봅니다 ㅠ

  6. 둘리토비 2017.08.20 21:22 신고

    먼저 제가 관심있는 지역의 북유럽의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도 살충제 달걀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소식에 좀 철렁했습니다
    자연방목으로 닭들이 모래를 이러저리 뒤집고 털고 하는데서 진드기가 발생하지 않거나 낮아진다고 하는 것을 주목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정치적 적폐와 공무원의 안일함이 도마에 오르지만 여기 넘 집착을 하면 정작 소비자에겐 더 큰 불안입니다.
    정책수립과 그것의 "철저한 실행"이 지금 가장 중요해 보입니다

    • 늙은도령 2017.08.20 23:30 신고

      유럽이라고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나 문제인물은 있기 마련이지요.
      사고는 그래서 어디서나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사고를 최소화하되, 일어났으면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적폐들이 제대로 드러나고 고처졌으면 합니다.
      망가졌다면 고쳐가야지,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립 짐바르도의 《루시퍼 이펙트》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반사회적 행동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된 '스탠포드 교도서실험'을 통해, 한나 아렌트가 유태인 학살의 행정담당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면서 발견한 '악의 평범성'을 증명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책의 말미에 내부고발자를 다룬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노승일과 고영태. 박현영 같은 내부고발자가 없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알 파치노와 러셀 크로우가 주연한 영화 <인사이더>를 통해서도 내부고발자와 그의 가족, 친척과 지인 등에 가해지는 전방위적 위협과 회유 등이 얼마는 크고 심대한지 알 수 있지만, 《루시퍼 이펙트》에 나온 목록을 보면 영화에 담아낸 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특기이기도 한 '내부고발자 죽이기'는 세상을 보다 민주적이고 공정하게 만드는 의로운 행위의 씨를 말린다는 점에서 반드시 극복하고 청산해야 하는 '악 중의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박근혜의 검찰수사가 진행된 오늘,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노승일을 인터뷰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시의적절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최대 협조자였던 문체부가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설립을 취소함으로써 일자리마저 잃어버린 노승일의 처지를 생각하면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을 다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검찰의 보복에 시달리고 있는 김샘과 김은혜 학생에 이어 노승일과 고영태, 박헌영 등도 지옥의 입구에 들어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챙길 수 없지만, 내부고발자는 고발의 대상이 크면 클수록 돌아오는 보복의 크기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집요하고 철저함에 따라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지옥의 불길 속을 걷는 것처럼 고통의 연속입니다. 대한민국을 60년 가까이 지배해온 박정희와 삼성의 절대적인 신화에 맞섰다는 점에서 노승일 등이 겪어야 할 고통의 양은 끝이 없어 보이는 터널 속에 버려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의 연속으로 점철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내부고발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해주는 장치가 형편없는 우리의 경우, 노승일과 고영태, 박헌영 등이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과 비례해서 생사의 갈림길로 내몰린다는 경험적 성찰에 따르면 이명박근혜 9년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만큼 이들을 지켜주는 것도 더없이 중요합니다. 노무현은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탑혀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남기고 싶었다'면, 2017년의 우리는 노승일 같은 내부고발자를 지켜줌으로써 반칙과 특권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화답했으면 합니다.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학점 취득을 위해 박근혜-최순실에 굴종했던 교수들과 교직원에게 진실과 정의를 요구했던 김은혜(특수감금혐의로 기소됐음)와 굴욕적인 위안부협상에 반대하고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한일 정부에 맞서 싸운 김샘(4개의 재판을 받고 있음),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두 개의 절대신화에 종지부를 찍은 노승일과 고영태, 박헌영 등을 지킬 수 없다면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와 기억들을 물려줄 수 있을까요?



내부고발자가 필요 없는 세상은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해도,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조차 포기할 수 없다면 내부고발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완비될 때까지 노승일과 고영태, 박헌영을 지켜주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가 검찰의 소환을 받은 날, 노승일이 처한 상황을 국민에게 알려준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기존의 언론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해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노승일 등을 위한 다음 스토리펀딩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여강여호 2017.03.22 07:45 신고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갖추졌더라면
    이번 탄핵 국면에서 좀 더 많은 진실들이 폭로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3.22 08:03 신고

      내부고발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 때 세상은 정말로 투명해질 것입니다.

  2. 참교육 2017.03.22 08:20 신고

    다시보기가 되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어제 박근혜 검찰 조사 받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참 답답하다는 생각과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후진국입니다.

    • 늙은도령 2017.03.22 08:25 신고

      검찰과 경찰 같은 사정당국은 여전히 후진국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박근혜에게서 대통령의 느낌을 받는가 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7.03.22 09:22 신고

    압박감과 공포를 안 느껴본 사람이라면 정말 모를것입니다
    정부가,사회가,우리가 보담아야 할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7.03.22 09:46 신고

      네, 내부고발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민주주의 국가입니다.

  4. 평범한시민 2017.03.22 10:23

    도령님, 항상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잊혀질법한 이슈도 짚어주셔서 감사하네요.
    참고로 김어준의 뉴스공장입니다. ^^

    • 늙은도령 2017.03.22 10:37 신고

      감사합니다.
      본문에서는 그렇게 썼는데 제목에서 실수했네요^^

  5. 동우 2017.03.23 12:11

    다음 스토리펀딩(노승일은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없다? ) , 링크 올려 드립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9873

    • 늙은도령 2017.03.23 17:53 신고

      이런 일이 진행돼야 합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한 명의 의료 전문직(의사)에 불과한 백선하가 백남기씨 유가족, 국민의 70% 이상, 의료계 전부와 맞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 세상에서 이런 신과 같은 독점적 권리(이반 일리치는 이를 '근본적 독점'이라고 했음)가 작동할 수 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산업혁명 이후 과학과 기술(공학), 지식과 학위 등을 앞세워 세상의 모든 필요를 지배하게 된 전문가 집단의 부상을 살펴봐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과정에서 삶의 거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했던 인간은 시장경제 안에서 대량으로 공급되는 상품과 서비스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필요(어제의 사치품이 오늘의 필수품이 되는 것, 광고를 통해 필요없는 필요를 창출하는 과정, 제품과 서비스의 세분화를 통해 필요가 폭발하는 과정 등)가 창출되면서 인간은 임금노동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만들어진 필요를 소비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됐다.   



평생을 바쳐도 극히 일부밖에 사용할 수 없는 상품과 서비스의 홍수 속에 "전문가들은 인간 본성에 대해서도 남모르는 지식, 오직 그들만이 공급할 권리가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상품과 서비스가 제공되는 길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전문가들은 마치 중세의 사제들처럼 더 상위의 엘리트 집단에게 이익을 챙겨주는 대가로 그들의 양해를 받아 권력을 보유'하는 수준에 이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 등장한 지배적 전문직은 한마디로 인간의 필요에 대한 통제권 자체를 요구한다. 그들은 현대 국가를 여러 기업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합된 지주회사로, 즉 그들 스스로 자가보증한 자격이 쉽게 효과를 낼 수 있는 통합체'로 바꿨다. 세상을 재구성한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고 처방할 권한까지 주장'하고 '단순히 좋은 것을 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를 실제로 선포'하는 독점적 지배자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인간의 '필요'가 있을 만한 분야라면 어디서든 이들 신종 전문직은 지배적이고 권위적이며 독점적이고 합법적인ㅡ그러나 이와 동시에 개인을 나락하게 하고 결국 불구로 만드는ㅡ자격을 주장함으로써 공익을 수호하는 특권적 전문가 행세를" 함으로써 지배권을 확고하게 정립했다. 특정 분야의 지식(유용하다는 증거도 없다!)만 조금 더 가지고 있을 뿐인 전문가들이 옳고 그름과, 문제를 처방하는 특권적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런 과정은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건강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 의료 분야에서 특히 도드라졌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의료 전문직은 '질병의 이름표를 단 것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우선권'을 확보한다. "나아가 질병의 이름표를 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관할권을 우선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백남기를 수술하는 과정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시킨 백선하처럼)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룰 능력이 그들에게 있는가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질병을 다루기에 선한 의도를 지닌 전문가로 받아들여지는 의료 전문직은 의심의 눈초리도 받지 않는다. 백선하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백남기씨의 사망을 악착같이 늦춘 의료 전문직에 속한다. 그것도 의료 전문직 집단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권위를 지닌 서울대학교병원에 소속된 의료 전문직이다.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해 독점적 지배력(근본적 독점)을 획득한 의료 전문직 중에서도 최상위의 먹이사슬에 자리하고 있는 자가 서울대병원의 백선하다.  



의료 전문직은 삶의 전 과정에서 질병(정신적 영역까지)을 고쳐주고, 질병을 예방하게 해주고, 건강한 삶을 위해 생활방식도 정해주고, 생명의 시작과 성별을 결정하고, 사망의 시점과 종류까지 확정해주는 존재라서 그들의 '근본적 독점'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현대의 의료 전문직은 섹스, 임신(인공수정 포함), 임신중절(낙태) 등을 관리함으로써 생명의 시작을 결정하고, 성전환수술로 성별마저 결정하고, 죽음의 단계를 세분화함으로써 사망의 시점과 종류까지 결정하는 '근본적 독점자'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전 과정에서 의료 전문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디에나 있는, 언제든지 찾아가야 하는 의료 전문직은 그들의 '근본적 독점'이 선한 의도에서 벗어나 악한 결과를 만들기 위함으로 사용된다면, 잠재적 환자로서의 개인은 현대의료를 부정하지 않은 한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다. 필자가 서울대병원의 백선하를 통해, 한나 아렌트가 유태인 학살의 행정전문가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곤혹스럽게 제시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의 전화를 받고 등산복 차림으로 달려온 백선하가 백남기씨의 뇌파 반응이 있다며 수술을 권했을 때 가족들이 이를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은 의료 전문직의 선의를 믿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백남기의 삶과 죽음을 독점(주치의)할 수 있게 된 백선하가 이런저런 처지를 해도 그것이 악한 의도에서 진행된 정치적 의술이었다고 의심할 수 없었다. 백선하가 백남기씨의 사망을 '병사(심폐정지)'로 정했을 때야 백남기 가족은 속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방법이 없었다.

 


백선하가 의술이라는 이름으로 백남기씨에게 자행한 모든 짓거리가 우병우 라인에 있는 살인경찰(전문직 관료)들이 사건을 조작(이미 조사해 무혐의처리한 '빨간 우의'를 재등장시킨 것 등)가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는 사실들이 모조리 밝혀졌어도, 의료 전문직 누구도 그가 정한 사인을 바꿀 수 없는 것도 그들이 누리는 '근본적 독점'이 깨지는 것까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백선하가 악한 의도로 백남기씨의 주치의가 되는 순간 누구도 그의 특권적 지배권을 부정할 수 없게 된 것, 그것에서 이 모든 반민주적이고 패륜적인 정치폭력이 가능해졌다.          

   




만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살인경찰(우병우 라인의 경찰수뇌부와 행동대장들)의 백남기씨 시신 강탈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대한민국은 이반 일리치 등이 《전문가들의 사회》에서 말한 대로 "정치가 시들어버린 시대, 유권자들이 교수들의 충고에 따라 자신의 요구를 법제화할 힘을 전문 관료들에게 위임해버린 시대, 누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결정할 권리를 포기한 시대로 기록"되는 것을 넘어 불의한 권력의 악마적 행태에 굴복한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양심에 반하고 부정직하고 불의하며 악마적인 '근본적 독점'의 살인경찰을 막아낼 수 있다면,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되찾아올 수 있다. 파편화된 개인에 불과했던 성주군민이 미국의 패권주의와 이에 기생한 불의한 정권에 맞서 승리한 것과 이대생들이 '박근혜-최순실-최경희로 이어진 절대권력의 야합'에 맞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부패하는 '근본적 독점'에 맞서 수평적이고 열린 소통을 통해 민주적 연대를 이루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자.



정유라를 지키기 위해 최순실도 포기할 수 있음을 내비친 박근혜의 살인경찰은 24일과 25일에도 강제집행을 시도할 것이다. 그렇게 명분을 축적한 다음에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10월 26일(부검영장 시효가 끝나는 날, 이런 것 때문에 무당이 통치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에 지방의 경찰병력까지 동원해 백남기씨 시신을 강탈할 가능성이 높다. 성주군민과 이대생이 보여준 승리를 깨어있는 시민의 연대로 확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왔노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보았노라, 불의한 정권의 살인적 폭력을! 

이겼노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왜누리안티 2016.10.23 23:01

    게슈타포 관계자가 25일까지 집행하지 못하면 다시 영장을 신청한다고 했습니다.
    그놈들이 항상 내세우는 건 거짓과 허위, 조작과 은페뿐이겠죠.
    분명히 이영일, 박창수, 노수석 때처럼 지 입맛대로 조작할 겁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지 원...
    나중에 내년 재보선과 대선서 야당이 이기고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그놈들 전부 숙청될 텐데, 왜 그렇게 발악을 하는 건지...

    • 늙은도령 2016.10.24 02:49 신고

      그들은 그렇게 최순실 게이트로 쏠리는 관심을 돌릴 것입니다.
      강신명을 비롯해 경찰수뇌부는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악착같이 도발하겠지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백남기를 지켜낸다면 박근혜의 레임덕은 빨라지고 퇴진까지 갈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에 맞서 승리를 계속해서 더해야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6.10.24 08:20 신고

    영장 집행시한이 다가 오는데 결국은 영장 집행을 안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못했다는 명분을 쌓으려 할것입니다
    백선하가 뭘 기대하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엄청남 판단 착오를
    한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메스를 든다는것은 절대 안될입니다

    • 늙은도령 2016.10.24 21:32 신고

      네,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문명발전 때문에 시민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악화됐습니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시민들이 주인인 세상이 옵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세상이 돌아가야 합니다.

  3. 참교육 2016.10.24 11:19 신고

    전국민을 상대로 갑질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환자의 생명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한 권력의 비위 맞추기입니다. 구역질입니다.
    페북으로 퍼 갑니다.

    • 늙은도령 2016.10.24 21:34 신고

      민주주의는 인민이 통치하는 체제인데 이제는 전문가를 앞세운 엘리트 권력의 과두정치로 변질됐습니다.

  4. 건는다산 2016.10.27 11:13 신고

    의료인으로서 팩트만본다면 저건 말도안되요. 직접적 사망관계가 있는것을1번사인 즉 외인사라고 해야 맞다고 수도없이배웠습니다. 그다음추정들을 나열하는것이구요. 히포크라스선서에 은사를 위하라고 하는것은 이럴때를 염두해둔걸까요. 그나마다행인건 젊은 의학도들이 그대로 사기를 눈감아주지 않았다는것..
    그런데 저 백선하교수는 저런말도안되는 주장을한 이유가뭘지 궁금하네요 건보재정으로 흔든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사리사욕때문에그런것인지 이런건도대체왜조사를안하는겁니까.. 요즈음일련의사건들때문에 인지부조화가생겨서혼란스럽네요



"모든 철학이 죽었다"는 비트켄슈타인의 절망적인 선언이 나왔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철학과 사회학이 죽어버린 시대가, 신자유주의 통치와 거대 미디어의 세상인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생각 자체가 사라진 채 끊임없이 이동하고 접속하며,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자신의 과거를 삭제하고, 현재의 나를 끝없이 업그레이드하는 모바일기기의 특징으로 인해 지금-당장이라는 소비지상주의가 만연된 시대적 특징을 감안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비판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 지식인들이 현실비판에서 멀어지면 화석의 존재처럼 변해버린 존재의 근거마저 사라져버립니다. 포기는 쉽고, 타협은 탈콤하며, 전향은 부를 제공합니다. 지식인이 꼭 가난할 필요는 없지만, 비판정신을 잃을 만큼 많은 부를 쫓아가면 나태한 정신이 비판정신을 부패시키기 일쑤입니다. 타협과 타락의 시작은 늘 비슷한 것에서 비롯되기 마련입니다.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홀로코스트의 행정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그녀도 유대인이다)가, 인류사의 최대 악으로 지탄받고 있는 나치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이었던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ㅡ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를 출간한 뒤, 좌우로부터 융단포격을 받고 자신의 주장을 더 이상 펼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동시대의 주류에서 벗어난 사상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좌우의 융단포격을 받은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사상을 끝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인의 역할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지식인(모든 개인도 마찬가지이지만)에게 주어진 삶이 사막처럼 척박하고 황량해도 끝끝내 시작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철회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며, 휴머니즘을 가득한 정치철학의 부활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국 지식인의 표상이었던 리영희 교수와 최근에 생을 달리한 신영복 교수가 그렇게 살았지만, 그들의 뒤를 이을 행동하는 지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지성사는 각자도생의 퇴로에서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에 필적하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것도 결국은 언론과 지식인의 권력과 자본에 대한 치열한 비판이 종적을 감췄기 때문입니다.  



비록 큰 돈을 벌 수도 없고, 권력과 자본과 결탁한 사이비 지식인들과 다른 관점을 지닌 올바른 지식인들에 의해 많은 공격에 시달리겠지만, 비판이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병 속의 편지' 같은 편법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부르디외가 《세계의 비참》의 추고에서 말한 것을 지식인(특히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는)이라면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사회적 세계를 연구하는 데 인생을 바칠 기회를 얻은 사람은, 세계의 미래가 걸려 있는 투쟁 앞에서 무관심하거나 중립적으로 있을 수 없다.         

 


부르디외의 성찰처럼, 이번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슴에 단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기리는 벳지를 달고 다니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여지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중립이란 없다"고 말한 것은 동일한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과 지상에서의 삶을 구원해야 하는 성직자와, 인류에게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 알려야 하는 지식인들은 인간에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헌데 교황이 '죽음의 문화'라고 말한 부정적 세계화가 지구의 곳곳을 가로지르며 전 지구적 시장으로 끌어들여 뼈속까지 빨아먹고 있는 지금/현재, 돈이 되는 것은 모두 다 전문화돼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힘들고,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전 지구적 지배계급과 거대 자본 및 초국적기업에 봉사하는 지식에는 국경이 없어졌고, 지식인들도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세계화의 주역들을 위해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며 계급화된 엘리트로 자리매김한 현대의 지식인들은 부정적 세계화를 위해 시민을 소비자로 변질시키는 상징제작자와 상징조작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부정적 세계화의 정도가 심화된 대한민국에서는 족벌신문과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방송들을 맴돌며 정치권만 기웃거리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영혼도 철학도 없는 그들은 오로지 돈과 권력만 쫓아 불나방 같은 행태를 서슴지 않습니다. 지식인의 업무가 현실비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과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이들은 사실과 진실은 물론 진리와 공리마저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 가치와 진실 여부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지식의 이름으로 홍수처럼 밀려오는 디지털 세상에서 지식인이 할 일이란 자신의 사상이 경고하는 미래상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부정적 세계화의 현실과 사회비판에 물러섬이 없어야 합니다. 성장과 개발이 불러온 현실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지만, 모름지기 철학과 사회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실낱같은 희망을 잉여에서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는 현 시대의 난민과 미래세대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비판이론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지식인이라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유동하는 공포》의 마지막에 했던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회경제적 평등과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진보좌파의 가치가 민주주의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는 지식인이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깨어 있고 행동하는 시민에서 소비하는 개인으로 파편화된 일반인들이 비판이론을 정립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진리와 정의 및 자유와 평등에 대한 부단없는 탐구와 기득권의 탐욕을 고발하고 경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식인들이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폭력적인 현실은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득권의 탐욕에 지식인이 침묵하면 언론도 침묵하고, 교육도 무너지고 권력은 오만방자해집니다. 그럴 경우 바우만의 마지막 희망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도 아무런 역할을 못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세기는 궁극적인 재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아니면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 새로운 협약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희망을 갖자. 이 두 개의 미래에 대해, 아직도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으리라고.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달빛천사7 2014.08.20 05:51 신고

    잘보고 감니다. 좋은하루되셔염

  2. 태봉 2014.08.20 08:41

    좋은 날이 올거라 희망해 봅니다
    잘 보고 가요 화이팅~~!!^^

  3. 유머조아 2014.08.20 15:58 신고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무척 철학적이십니다..

  4. 새벽을기다리며 2014.08.20 17:38

    좋은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한 사회의 대중이 오도된 사고방식이나 정세판단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은 언론과 지식인의 최고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ㅡ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인용



최근에 들어 자신들만 옳다는 박근혜와 그의 환관들의 권력에 취해 그들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제대로 된 보도를 내보지 않고, 이에 침묵하는 이 땅의 지식인들을 보며 하나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것은 사회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 땅의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어떤 보도와 지식도 그것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이루어지고 제시되지 않으면 죽은 것이며, 비겁한 것이고, 쓸모없는 것입니다. 



쓰레기라는 소리가 가장 정확한 한국의 언론들과 자신의 동굴 속으로 숨어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외치는 것은 자기 변명이자 권력과의 타협이며,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최악의 행태입니다. 저는 이번 글에서 이 땅의 침묵하는 지식인들을 향해 제 생각을 석학들의 성찰에 도움을 받은 풀어보고자 합니다. 저의 생각은 그들의 성찰을 이리저리 조합한 정도에 불과하고 거기에 숟가락 하나만 얻은 것임을 먼저 밝혀둡니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편지를 써서 병 속에 넣은 후 바다에 떠나보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병 속에 편지를 넣은 주인공은 병이 어디로 갈지, 누구한테 갈지, 도중에 깨지거나 영원히 바다를 떠돌지 알 수 없습니다. 운이 좋다면 병을 주운 사람이 편지를 읽을 수 있는 동시대의 사람일 수도 있지만, 몇 시대가 지난 다음이라면 편지의 내용이 해독 불가능한 것으로 버려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병 속의 편지'를 통해 지식인의 자세와 역할에 대해 다룬 철학자이자 사회과자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현재의 독일을 만들어낸 양대 학파 중 프랑크푸르트 학파(나머지 하나는 푸라이부르크 학파로 신자유주의의 원형인 질서자유주의 또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정립했다)의 1세대인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21세기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영국의 지그문트 바우만입니다. 아도르노는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을 다룬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바우만은 근대이성의 산물인 현대성 대한 고찰로 유명한 《유동하는 공포》에서 '병 속의 편지'라는 비유를 통해 지식인의 비판정신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받을 지도, 도중에 사라질 지도 모르는 병 속의 편지를 가지고 지식인의 비판정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시대에 뒤쳐진 어리석은 짓일 수도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인문학 강의가 넘쳐나는 한국에서 별로 읽어주는 사람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짓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지식을 검색하고 인용하면서도, 표절이 넘쳐나는 세상이 한국이니 모든 책을 직접 보고, 오랜 성찰을 통해 나온 글을 쓰는 것보다 어리석은 짓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적인 사회참여와 집필을 보여주고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의 도움을 받아 '병 속의 편지'가 지식인에 대해 지니는 알레고리(은유 또는 비유)를 다루어보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고 진정성을 담은 호소에 화답하는 차원에서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화두가 불통이 아닌 소통이고, 그것에 기초한 연대와 합의의 도출이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입니다.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위대한 휴머니스트이자 정직한 철학자이며 불굴의 사회학자였던 마르크스와 아도르노, 브르디외를 인용하며, '병 속의 편지'에 담긴 지식인에 대한 비유에서 두 가지 추정을 제시합니다. '병 속의 편지'를 통해 지식인의 비판정신과 비판이론에 대해 얘기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 추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병 속에 담긴) 그 메시지가 종이에 써서 병에 넣어 띄워 보낼 만큼 가치가 있다는 추정. 그리고 그것이 발견되어 읽혀질 시점(비록 그 시점을 미리 확정할 수는 없지만)에 아직도 가치가 남아 있으리라는(발견자가 그것을 해독하고 연구, 이해, 적용하기만 한다면) 추정.



이런 두 가지 추정은 어떤 지식인이 자신의 사상에 대해 '들을 준비도 뜻도 없는 동시대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을 때, 그래서 '정해지지 않는 미래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맡기는 일'이 낫다고 여겼을 때 가능합니다. 이는 어떤 지식인이, 특정할 수 없는 미래의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상을 들어줄 것이며, 이해할 수 있으며, 연구하고 발전시켜 후대에 전해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리영희 교수가 생전에 누누이 말했던 것처럼,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라도 동시대의 사람들에게서 아무런 호응도 받지 못하고, 토론을 거쳐 인정받거나, 검증 절차를 거쳐 진리의 영역으로 들어서거나, 심지어는 맹렬한 반박이라도 받지 못하면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에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은 위대한 마르크스가 《자본론》과 수많은 저작들을 통해 시대를 통렬히 비판한 후에 "아무튼 나는 말했고, 나의 영혼은 구원받았다"고 말한 것처럼, 일종의 체념에 빠져드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병 속의 편지'는 영원한 가치를 믿는 사람, 보편적인 진리를 믿는 사람, 지금 진리를 찾고 가치를 지키려 애쓰게 만드는 우려가 계속되리라 의심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편법이다. 그 병 속의 메시지는 좌절이란 일시적일 뿐임을, 그리고 희망은 계속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가능성의 패배하지 않음과 그런 가능성을 가로막는 적들의 허약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역할이 치열한 비판정신을 잃지 않는 것에 있다는 아도르노의 성찰을 따라가며, 바우만은 위의 인용문을 재언급했습니다. 물론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살해 위협에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던 아도르노가 너무나 흥청망청이고 더없이 풍요롭고 자유롭지만, 자유민주주의에 집착하며 다른 이념적 지향에 대해 집단적인 폭력도 서슴지 않는 미국의 이중적 행태에 크게 실망한 영원한 이방인으로서의 정신적 부적응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머나먼 이국에서 완벽하게 고립된 지식인이 이런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뻔뻔하고 파렴치할 정도로 표절이 넘처나고, 권력과 자본의 돈에 빌붙어 살면서도, 이런저런 사적 인연을 동원해 거대한 파벌을 만들어 그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기에 바쁜 이 땅의 지식인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거짓이 더욱 그럴싸한 진실 같은 시대에서 초라해 보이는 진실을 외치는 일은 사막에서의 예언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겠지요. 


 


P.S. 지그문트 바우만의 명복을 빕니다. 그의 저작들에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저로서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현대를 관통하는 성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누구보다도 탁월했던 바우만의 신작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정말로 아쉽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의 저작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행복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90세가 넘어서도 치열하게 성찰했던 바우만에게 경의를 표하며, 영면에 들어 편안하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Croaton 2014.08.02 16:36 신고

    인류는 결국 진보합니다. 먼 고대에서부터 보자면 정말 막장 같은 시대도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모든 것을 딛고서 진보했고, 현재는 비록 이름 뿐이지만 민주주의까지 왔습니다.

    인류가 이렇게도 느려터지게 진보하는 이유는 의식의 변(전)환이 없어서입니다.(물론 제 생각) 그러나 개미가 기어가도 세월은 오래 걸릴지언정 결국은 42.195 미터를 돌파합니다. 당대에서 안되면 그 다음대에서라도 돌파하고야 맙니다.

    다만 서글픈 것은 모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음에도 그것을 꽃피우지 못하는 우리 이웃들이죠. 지금 당장 행복하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딴나라 이야기라고 말하는 깨어나지 못하고 잠 자고 있는 동포들입니다.

    어려서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만화의 내용 중에서 아스트랄이라는 세계가 나오는데 그 아스트랄이라는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꿈꾸고 소원하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가난한 이와 소외 받은 이가 있고 또한 권력을 행사하는 이와 거기에 빌붙어서 민중을 탄압하는 나쁜 넘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세계에 사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능력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면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그 만화를 본지가 40년은 된 거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인간 사회가 원래 그러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이 전체적인 것을 보기 위해서는 그 곳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 아스트랄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처지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이 없겠지만 거기에서 빠져 나와서 완전히 제 3자로써 볼 때에라야 문제가 뭔지.. 해결책이 뭔지.. 이런 게 보일거라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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