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재산,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자식의 대학진학과 인생을 결정한다는 얘기에서 보듯, 지금은 아버지라는 존재가 한없이 퇴행해버린 시대입니다(망상 하나 ㅡ 나찰 같은 엄마부대는 있어도 아빠부대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일까? 군복을 입은 어버이부대는 정치사회적 조폭이언정 양성평등론자라도 되는 것일까? 부모라는 이름을 한없이 더럽히고 있는 것은 둘 다에서 공통적이지만). 그 존재만으로 한 가정을 이끌 수 있었던 아버지의 시대는 아득한 옛날에나 찾아볼 수 있는 과거의 유물이 됐습니다. 





그나마 가장을 주장할 수 있었던 근거인 '돈을 벌어오는 기계'로서의 아버지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40대 중반까지 정규직에 남아 있기도 힘든 현실에서, 자발적 노예가 되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부장적 신자유주의 시대의 패자로서 도시의 어둠을 떠돌아야 했습니다. 어머니로서의 여성에 비해 아버지로서의 남성이란 그저 초라해지는 존재를 대표하는 명사가 됐습니다.



헌데 한 사람이 아버지로서의 부성애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모성애에 비해 부성애도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딸을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떠난 보낸 후에야, 후회와 회환과 분노로 자신의 부성애를 드러낸 사람이 있습니다. 딸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늦었고 부족했기에, 이제는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사람이 되버린 한 명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먼저 보낸 딸은 생을 다하는 날까지 기억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남아있는 딸은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랑과 돌봄으로 첫 번째 딸을 지켜주지 못했기에, 두 번째 딸을 지켜주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딸에게 너무나 미안했기 때문에, 두 번째 딸에게는 똑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하루에 하루치 이상으로 죽어가면서도 허무하게 보낸 딸에게, 홀로 남은 딸에게 자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주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이 땅의 초라한 아버지로서 이 땅의 모든 딸과 아들에게 미안함과 사랑을 전합니다. 표현에 서툴고 다가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고 지켜주지도 못한 딸과,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남아있는 딸을 위해 제왕적 권력과 불의한 체제, 파렴치한 집단에 맞서 부성애라는 이름으로, 못난 아버지라는 자책으로 따뜻하면서도 강인하고, 단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김영오씨의 단식에서 생을 초월한 아버지의 사랑을 봅니다. 그것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것도 아니고, 현 집권세력과 싸워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에서 출발한 그의 단식은 허망하게 떠나보낸 딸과 남아 있는 딸에 대한 속죄와 사랑의 표현이자, 진정한 삶으로 돌아가려는 속죄와 구원의 의식입니다. 자책하고 슬퍼할 시간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는 거대한 부성애의 단호한 결의이자 떠난 딸과 남은 딸에게 하는 약속입니다.  



그는 단지 한 사람의 평범한 아버지일 뿐이며,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단지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렇게도 어설프고 서툴렀던 사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식의 첫날부터 죽음을 각오했기에, 그래서 누구보다도 살고 싶은 두 딸의 아버지로서 한 명은 진실규명의 그날까지 가슴 속에 품고, 한 명은 가슴 깊이 안아주기 위해 단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1년 반이란 세월이 더 흘렀습니다. 맹골수도에 수장돼 있는 세월호는 심하게 부식된 상태에서 인양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고, 진상규명에 다가가는 모든 작업은 청와대와 정부, 쓰레기 언론들에 의해 차단됐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세월호특위의 청문회는 안철수의 탈당쇼에 파묻혀 국민의 관심도 받지 못했습니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바라는 모든 분들이 박근혜 정부와의 싸움을 멈출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P.S. 오늘 단원고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계속해서 코피가 나왔습니다. 저의 체력이 바닥에 근접했다는 위험신호여서 단원고에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단원고에 가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가 김영오씨에게 단식과 세월호특별법의 제정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가 한 일에 대해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김형오씨나 유족들을 통해 듣는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서 단원고에 참석하려 했는데 이 놈의 빌어먹을 건강이 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리라 믿습니다.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조금 늦춰졌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은 아니니 다음 기회를 찾을 밖에요. 단원고 학생들을 아직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하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졸업이라도 그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누면 활짝 웃는 날이 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3학년 2반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하면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1.11 08:54 신고

    이번 총선에서 세월호건이 여야 교체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한욱상 2016.01.13 10:03

    늙은 도령님 건강 잘 챙기시기를..

    • 늙은도령 2016.01.15 01:42 신고

      네, 조절 잘 하겠습니다.
      최근 세월호유족들을 만나러 안산에 가다 보니 조금은 피로한데 의사가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고 했으니 계속해서 안산에 가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만날려고요.

 

 

 

필자는 11년 전, 이맘 때쯤 고속도로를 주행 중에 공황증상이 일어났다. 만성디스크의 통증이 다리로 내려가더니 페달을 밟는 발에 부분적 마비가 올 것 같았고, 그런 두려움이 어는 순간 통제의 범위를 넘어섰다. 공황증상이 일어나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맹렬하게 밀려들었다. 저녁 9시, 수많은 차량이 다니고 갓길도 없는 고속도로라 운전을 멈출 수도 없었다. 



단 1초도 더 운전할 수 없을 정도의 공황증세는 '정말로 죽는구나'하는 압도적인 공포로 나를 몰아쳤다. 몸을 가눌 수 없는 무력감에 운전대를 놓고 몇 초라도 쉬고 싶었다. 극단의 공포가 몰고온 무력감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손을 놓고 그대로 쓰러지면 교통사고를 피할 수 없지만, 코앞에 닥친 죽음의 공포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일 먼저 필자가 모시고 있는 노모의 얼굴이 떠올랐고, 입에서는 신음처럼 '어머님, 어머님, 나 죽을 것 같아'라는 말이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운전대를 놓으면, 그래서 잠시라도 쉴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나를 죽음의 심연으로 몰아치는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몸과 의지는 무너져내렸지만, 차를 세울 갓길도 없었고 뒤에서 수많은 차량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10여 분을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삶에 대한 실낱 같은 끈을 놓치지 않으려 나는 계속해서 '어머님'을 외쳤고, 갓길을 찾고 또 찾았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손을 놓으면 죽는다는 것만 생각했다.  살고 싶어서, 어머님을 두고 먼저 죽을 수 없어서, 운전대를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10여 분을 죽음에 대한 극단의 두려움과 공포와 싸워야 했다. 

 

 

비로소 갓길이 나왔고, 나는 힘겹게 차선을 옮겨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던 공황증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지만, 탈진할대로 탈진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2시간을 쉬면서 안정을 취했지만 끝내 운전을 할 수 없어 대리기사를 불렀고, 그날 이후로 공황증세가 심해져 병원에 입원해 치료까지 받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공황증세와 싸워야 했고, 숱한 노력 끝에 겨우 공황증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느꼈던 바로 그 십여 분의 두려움과 공포를 단원고 학생들은 몇십 배나 많은 시간 동안 느꼈을 것이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해경의 구조를 간절하게 빌었을 것이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형과 동생, 누나와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다. 나는 갓길이라는 탈출구라도 있었지만, 세월호의 침몰 속도가 빨라지고 해경이 멀리 물러섰을 때 아이들은 절대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 절망과 무력감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이제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어린 나이에 생의 끈을 놓아야 했을 때,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 없다고 절망했을 때, 아이들은 밀려드는 바닷물을 피해 무리를 이루며 서로를 의지하려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여야 했을 것이다. 필자처럼 어머니와 아버지를 불렀을 것이고, 먹통이 된 스마트폰으로 죽음의 순간들을 기록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마지막 기억들이 바로 이러했을 것이다. 

 

 

단원고 아이들은 그렇게 극단의 공포와 두려움, 좌절과 체념의 기억들에 짓눌린 채 하늘로 떠나갔다. 세월호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가지 못한 마지막 말들이 떠돌고 있었을 것이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을 것이며...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며 그 기억들에 시달렸을 것이며... 애타게 부르고 찾았던 가족과 친구들이 냉혹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조직적인 방해와 증거 인멸 때문에 거리로 나섰을 수밖에 없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유족의 슬픔과 분노를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그것을 가늠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청와대로 달려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마지막에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이 어떠했을지는 조금이라도 추측할 수 있다. 내가, 병투성이인 내가, 간암의 재발을 안고 살아야 하는 형편없고 무기력한 내가 죽을 때까지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짐승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그렇게 보내놓고도 나만 살겠다고 거짓말과 모르쇠로 일관하며 벌레처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고 304명의 죽음이 지겹다며 진상규명을 위한 유족들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마지막에 흘렸을 눈물이 지금은 유족의 눈에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 하늘에 갔을 때 짐승과 벌레의 나라에서 살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난지 천일,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았고, 해수부의 지휘 아래 증거가 인멸되고 인양이 불가능할 정도로 분해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촛불집회에서 한 말이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우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이다." 거지갑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세월호특별법이 하루라도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할 이유가 이것 말고 더 무엇이 필요하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신송재 2015.12.17 01:06

    가슴이 미여 터질것같은 부모의 심정을 너희는 아느냐!!
    악한 너희에겐 304천사님들이 꿈에 나타날것이다.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하는 부모의 심정을 너희가 아느냐.

    • 늙은도령 2015.12.17 02:30 신고

      박근혜와 새누리당, 수구집단과 지상파3사의 경영진들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역사의 법정에 세워야 합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로 가장 분노하는 것은 두 추기경의 행태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그들의 반그리스도적 행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12.17 08:26 신고

    맞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짐승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짐승들과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사랑맘 2015.12.17 13:37

    저도 부끄럽네요.. 그동안 잊고 있었어요..
    청문회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다시 기억해 내고 있는데 감히 상상할수조차 없는 슬픔에 아무 위로도 드리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있음이 죄스럽습니다..가까운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공감하려하기보다 너무 감정적이라며 오히려 저를 걱정합니다.. 약자를 위한 정치..그런 약한 이들을 품을 여유가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네요..

    • 늙은도령 2015.12.17 13:43 신고

      그래서 싸워야 하고 소리쳐야 하고 투표해야 합니다.
      이런 세상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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