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과 정책 관련 토론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든 JTBC 대선후보 초청토론은 왜 문재인이 준비된 후보인지를 말해준 토론이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는 것이 국가적 수치인 홍준표는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민간이 일자리 창출을 주도해야 하며 정부는 뒷받침해야 한다는 안철수와 유승민의 주장에 이명박근혜의 신자유주의 기조와 무엇이 다르냐며 민간을 압박하는 동시에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문재인의 주장은 정확할 뿐더러, 노동의 소멸을 가져올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대비책이었습니다. 





1945년 이후 독일에서 원형(질서자유주의)이 등장했다가 영국(대처-하이에크)과 미국(레이건-프리드먼), 독일(슈뢰더-프라이부르크학파)에서 본격화돼 지금까지 이어져온 신자유주의 역사란 대내외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역할을 최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근대적 자유주의의 조합(절차적 민주주의의 구현)에서 출발했고, 공화주의와 공동체주의 등에 의해 보완된 국민국가가 본연의 역할(실질적 민주주의의 구현)을 하지 못한 채 극소수 지배엘리트의 이익만 대변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경제학과 경제사, 정치철학과 정치사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온 필자가 수없이 많은 글에서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적 헬조선에서 벗어나려면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 정의론에 기반해야 하며, 경제적으로는 진보적 가치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다양해진 이해와 개별적 선호를 만족시키면서도 세계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시장경제를 뒤엎을 수 없는 노릇이기에, 개별적 선호와 욕구, 공정하고 평등한 이익을 실현하려면 경쟁력의 근간인 자유주의와 재분배 및 복지확대로 양극화 및 차별을 최소화하는 진보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절에 뿌리를 내린 압축성장(정경유착, 재벌독식), 과대성장(시장만능주의, 환경생태 파괴, 미세먼지 공습), 불평등성장(양극화와 차별, 비정규직 양산)을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줄푸세'로 극대화시킨 이명박근혜의 망령을 완전히 거둬내면서도 민간과 국가의 경쟁력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문재인, 유시민, 안희정 등이 참여정부의 국정기조로 정착시켰던 진보적 자유주의는 이념의 양극단에서 양산된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적 대타협의 주체인 시민주권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촛불집회로 집약된 시대정신이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부와 민간의 결정에는 시민들이 참여해서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의 역할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시민주권 행동주의의 핵심)이라면 진보적 자유주의에 근간한 문재인에게서 탈조선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TV토론이 진행될수록 준비된 면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충돌 직전까지 치달은 북미와 남북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불식시키면서도, 안전이 보장된 가운데 다양한 가치와 선호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초석을 놓을 수 있습니다.





차기 정부가 모든 부문에서 60년의 적폐를 모조리 거둬낼 수는 없습니다. 3년 후의 총선에서 모든 개혁입법을 통과시킬 의석수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협치와 소연정을 추진하면서도 행정권력을 활용해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적폐들을 최대한 거둬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민주정부 10년을 빼면 광복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수구보수의 정경언관 유착을 뿌리부터 뽑아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놓으면 차차기정부는 법인세와 소득세에 대한 고율의 누진증세와 기본소득(시민소득의 일종)의 도입까지 추진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민주진보진영의 장기집권이 가능할 때만이 선진복지국가(마샬의 사회적 권리와 프랭클린의 뉴딜정책, 케인즈의 국가개입주의에서 연원)와 촛불집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가능성을 보여준 시민주권 행동주의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장담하지만 정부와 시민사회가 4차 산업혁명을 제어하고 대비책을 준비해두지 않는다면, 진보의 낙관론을 앞세운 과학기술의 무분별한 발전이 인류의 해방이 아닌 인류의 종말과 민주주의 축소(기술 전체주의)로 이어질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프로그래머적인 관점과 산업적 이익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안철수의 이해가 형편없는 것을 넘어 위험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재용의 구속과는 상관없이 삼성전자를 사상 초유의 대박으로 이끄는 것을 넘어 한국경제의 성장률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반도체의 고공행진이 말해주는 것은 저장능력을 회기적으로 높여줄 차세대 반도체가 나오면 4차 산업혁명의 물길이 노동의 종말로만 그치지 않을 것임을 확실하게 말해줍니다.      



차기정부의 지도자로 좌우를 아우룰 수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자인 문재인이 적격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좌파와 시장 우파의 신자유주의는 과학기술 발전(경제학이 다루지 않고, 다룰 수 없는 자본주의 세계화의 핵심)이 노동성을 극대화시킬 것이라는 진보의 낙관론을 공유합니다. 68혁명을 주도했던 신좌파의 참여민주주의에서 폭력적인 면을 시민불복종과 평화적인 시위로 승화시킨 진보적 자유주의의 시민주권 행동주의만이 탈조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P.S. 심상정이 문재인에게 법인세 인상과 증세 의지가 약하다며 집요하게 비판하는 것은 정의당 후보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상황에서 법인세 인상 부분은 미국의 금리인상과 트럼프의 보호무역, 이에 대한 유로존과 중국의 대응, 중국경제과 신흥국의 경제 상황 등을 비롯해 세계경제의 회복세를 지켜봐야 합니다. 문재인이 법인세 인상을 마지막에 둔 것도 이 때문이며, 어차피 차기정부 임기 중에 법인세 인상이 필요한 시점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시민주권 행동주의가 다시 한 번 촛불을 밝히면 됩니다. 



또한 군대에서의 동성애는 반대하고,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문재인의 발언에 대해 진보진영 일각에서 격하게 반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가 파국적 인구절벽으로 들어서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발언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합법화를 동일시하는 것에는 논리적 정합성이 있지만, 동성커플에게 불이익이 가해지는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7.04.26 07:23 신고

    동성애 차별금지와 동성혼합법화는 다른 개념임을 문재인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홍준표가 문재인을 조금 살려준 것은 첫 질문으로 끝내버려야 하는 데 다시 질문을 함으로써
    논란거리를 제거했습니다.
    진보세력이야 격렬하게 반대하겠지만. 당연한 논리입니다.
    마지막 단일화 질문은 어쩌면 이번 대선 결과에 쐐기를 박은 장면이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4.26 10:25 신고

      그럼요, 차별금지법으로 문화적 의식을 바꾼 후에야 동성결혼합법화가 가능해집니다.
      차별금지법으로 불이익을 줄이면 동성결혼합법화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개선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2. TripleSeven 2017.04.26 07:39

    어제 토론을 보면서 정책토론의 비중이 높아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침 뉴스를 보니 역시나 정책의 내용보다는
    토론의 태도에 대해서 논란을 키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청자에게 그것이 사실인듯 각인시키고, 그에 대한 반론으로 문후보의 시간을 사용하게 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일축하는 태도는 지지자에게는 시원한 모습이었지만,
    아직도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태도를 문제삼지 않을까 우려가 될 따름입니다.
    아울러 3당 단일화와 관련하여 어제 유승민 후보가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보의 생각이고, 요즘 상황을 보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데,
    일각에서는 모두가 리스크가 있는 단일화 대신
    일부 후보의 사퇴카를 활용한 단일화 전략을 제기하기도 하던데,
    늙은 도령님께서 이부분에 대해서도 좋은 생각 부탁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7.04.26 10:28 신고

      어차피 기성언론에 영향을 받는 층들은 문재인에게 표를 주지 않습니다.
      요즘은 팟캐스트와 SNS 등이 있어 그들의 문재인 죽이기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50%를 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만, 중요한 것은 당선가능성입니다.
      문재인의 당선가능성은 60%를 넘나들기 때문에 투표만 확실히 하면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4.26 08:23 신고

    정책본부장,이보세요 이런부분만 부각시키는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고 놀랐습니다
    양아치 같은 홍준표나 초딩같은 안철수, 토론 패널 전문가로 나온듯한
    유승민 후보에 비해 충분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4.26 10:29 신고

      원래 언론에게는 바라지 않습니다.
      팟캐스트와 SNS가 이를 대신하고 있으니 투표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4. 추노 2017.04.26 15:27

    어제의 토론을 보면서 홍양아치가 박사모의 표를 끌어모으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는 이번 대선에서 자신이 당선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오로지 박정희찬가만을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안초딩의 표는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내부적인 압력이 단일화로 향할 것이지만 이 또한 호남의 표를 의식한다면 어려울 것입니다.
    어차피 유나부랑이는 끼지 못할 것이고 내부분열이 가속화 될 것 같습니다.
    해서 이번은 정권교체가 무난하리라고 보여지지만, 개표기문제는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는 듯 합니다.
    언론은 당연히 이에 대해서는 함구할 것이기에 전방위적인 개표기 반대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한 안심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단일화에 대한 여론몰이를 통해서 오차내 박빙이라는 언론플레이가 조성된다면 말입니다.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위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절실한 듯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4.27 04:34 신고

      문재인이 압승합니다.
      그것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문제는 당선된 다음에도 지지를 보내줘서 적폐들을 청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언론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 다음이 검찰이고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필자는 분노한 촛불혁명이 4단계로 나누어진다고 본다. 1단계는 박근혜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 2단계는 정권교체과 언론 개혁을 위한 미래청사진 수립, 3단계는 과거사 청산과 세대교체를 통한 정치혁명, 4단계는 체제혁명의 진행과 완수다. 1단계는 촛불시민이 주도하고, 2단계는 촛불시민과 유권자, 정치권이 주도한다. 3단계는 촛불시민과 새정부, 시민사회가 주도한다. 4단계는 촛불시민과 새로운 정치세대, 새정부와 시민사회가 주도한다. 





촛불시민의 목표가 박근헤 퇴진과 정권교체, 과거사 청산을 넘어 체제혁명까지 이루려면 촛불시민이 모든 단계마다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모든 혁명들이 타도 대상(체제, 정부, 인물 등)을 무너뜨린 이후에 세대교체와 체제혁명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한 것은 혁명의 주역들이 체제를 바꾸는 과정에 주역은커녕 조연으로도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토크빌의 《프랑스혁명과 앙시앙레짐》보다는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을 참조하는 것이 낫다).



'촛불시민의 11월혁명'이 이전의 시민혁명들과 다른 것은 SNS와 팟캐스트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활용함으로써 동시다발적 참여가 가능한 '네크워크 혁명'이었다는 것이다(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을 참조할 것). 이대생이 물꼬를 터듯이 촛불혁명의 주역이 1020세대였던 것도, 원자단위로 분산돼 있지만 빛의 속도로 의견을 교환하고 그것에 따라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합의에 이르고, 네그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합집산이 자유로운 벌떼처럼 동시다발적 참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질식(유신독재)시킨 대가로 약간의 부를 국민(50대 후반~70대에 집중됐고 세습중산층이 형성됐다)에게 나눠준 박정희의 불평등성장은, 현재의 선진국들이 모두 다 그랬던 것처럼, 고도성장에는 성공했지만 그 열매를 나누는 데는 실패했다. 아니,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박정희 사후, 유신독재를 청산하기도 전에 전두환이 집권하는 등 반칙과 특권의 정경언관 유착을 주도한 유신의 후예들이 시장우파로 변신해 대한민국을 통치했기 때문이다(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이해하고 싶다면 토마스 프랑크의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을 보라). 



시장 우파(인간노동의 상품화에 반대했던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사탄의 변종)로 변신한 유신의 후예들이 관행이니 뭐니 하면서 부정과 부패, 비리와 반칙에 지독할 정도로 관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재벌과 정부 주도의 성장 후 분배(낙수효과)를 주장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성장하고 재벌들이 얼마나 부를 축적해야 95%의 국민들에게 분배가 이루어지는지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는다.  



피케티의 도움을 받으면, 관련 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마르크스가 자본가의 자본축적(부의 축적)이 끝나는 시기를 특정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들도 모든 국민이 중위소득에 몰려있는 분배의 시기에 대해서는 특정하지 않는다. 프라이부르크학파가 주도한 '질서자유주의'(최초의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서독이 마샬의 '사회적 권리'를 수용한 '사회적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후, 최고의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민주주의적 분배를 강화(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들의 공통점이었던 분수효과의 출발점)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독일과 선진국에 진입하는데 성공한 나라들에 비해, 고도성장은 이루었지만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사회적 권리'(보편적 복지)를 최소한만 실현한 대한민국은 불평등과 차별만 극대화시킨 채 선진국 문턱에서 중진국의 늪에 빠진 것이다. 이명박근혜 9년에 이르러서는 중진국의 늪을 넘어 무한대의 퇴행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의 공습을 포함한 그 모든 피해는 N포세대와 미래세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폭력적으로 전가됐다. 



남녀노소가 참여한 혁명으로 커졌지만, 11월의 촛불혁명이 1020세대들의 네트워크적 저항과 분노, 상상력에서 시작된 것도 불평등성장의 최대 피해자가 이들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이 축제와 비슷한 형태를 띠는 것도, 이들에게는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집회 자체가 배운 대로의 민주주의이고, 부패한 기득권과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이기에 즐거운 것이다(프랑스 68혁명 때의 '놀이를 통한 억압적 사회질서의 전복'과 상통). 이들에게 평균수명이 늘어났지만,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란 포기의 대상일지라도, 현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촛불혁명의 주역들이다. 



이들을 핵심으로 하는 '촛불시민 혁명협의체'가 구성돼야 할 필요가 여기에서 나온다. 혁명을 다룬 모든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 듯,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며 혁명을 이루면 방관하던 늙은이들이 기어나와 가로채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촛불시민 혁명협의체'가 반드시 구성돼야 한다(이대생의 경험이 필요하다). 체제혁명에 찬성하는 촛불시민 모두가 후보며, 기존의 정치권 경험이 있는 자들과 사이비 지식인 및 학자들은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 



각종 커뮤너티와 지역별 토론을 네트워크화 한 다음에 다양한 후보자들을 추천받고(여성과 1020세대가 2/3), 그들의 의사를 확인한 후 메인 사이트와 연결된 투표를 진행해 1000명 정도를 선발한 다음에 최종적으로 100명을 추첨으로 뽑는다. 이들이 '촛불시민 혁명협의체'를 구성하고, 떨어진 900명은 '지역별 협의체'를 구성한다. 이렇게 구성된 '촛불시민 혁명협의체'가 기존의 시민단체와 혁명과제를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토론을 통해 혁명과제를 도출한 다음, 최종적으로 촛불시민의 승인을 받는다. 승인된 혁명과제들은 정치권에 전달한다. 





보다 구체적인 계획은 필자의 몫이 아니다. 촛불시민 모두의 것이며 몫이다. 필자가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체체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문화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혁명의 바탕이 되는 정치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체제혁명에 성공할 수 없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가 고착화된 현실에서 또 한 번의 고도성장 같은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은 극단의 불평등과 차별, 최악의 경우 인류의 멸종만 불러올 뿐이지, 유토피아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답은 민주주의의 발전단계에 있으며, 노무현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저는 사상의 완결성을 인정하지 않는 쪽입니다. 모든 사상은 소중하지만, 모든 사상은 완결성을 인정할 때 절대주의가 되고 사람에 대한 지배와 속박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상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존중할만한 사상이 있다면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민주주의 사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자기 이론적 근거, 자기 가치의 근거에 대해서 스스로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위대합니다. 그리고 그저 관념의 세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현실로서 업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위대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jeremy 2016.12.11 11:53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현실의 해법은 아마도 "점증적"과 "단계적"인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점증적"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확고하다는 뜻이고, 아마도 시스템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고, "단계적"이란 위 글에서 밝혀주신 내용에 따라 체제 변혁적으로 나아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주위의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기 때문에, 아마도 "점증적"인 개혁에 동의하는 기류가 많은 것 같긴 합니다. 일단 민주주의와 정의, 그리고 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에 대한 물꼬는 텃으나 그 물길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현재로선 명확하게 생각을 정이하지는 못했었는데, 도령님의 생각과 방향에 대한 명쾌함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을 읽고 엊그제 추미애 대표가 제안한 "국회 정부 정책협의체"에 이은 "국회 정부 시민단체 정책협의체"의 출현도 기대해 보게 됩니다. 이제 불의의 권력과 자본에 맡겨놓았던 "대의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일정부분 거둬들이고, 일정부분 "직접민주의의" 에 부합하는 체제로 가야하고 체제 개편을 이뤄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노무현 대통령의 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대통령이기전에 "사상가" 였고, 어느 석학들과 대담을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란 생각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노무현님의 사상이란, 관념 속에서만 살아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란 장에서 가감없이 표현되고 사용되고 무엇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놓고 있는 사상이기에 멋있고 품위를 느끼게 해줍니다. 마치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을 추구함에 있어서, 여유로움과 여백을 발견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는 점이랄까요.

    • 늙은도령 2016.12.11 21:37 신고

      보통의 해법은 두 가지입니다.
      헌데 시기가 다르면 해법도 달라집니다.
      지금은 혁명의 시기이고, 체제혁명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솔직히 점진적으로는 답이 없습니다.
      저는 이것에 찬성했었는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공부가 어느 수준에 이른 후부터는 인류의 노예화와 멸종을 막기 위해 혁명적 차원의 전복이 없으면 안 되는 수준입니다.
      30안에 인류는 노예화될 것이며, 21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멸종할 가능성이 너무 높아졌습니다.
      과학기술이 진화론의 지원을 받아 인류를 인공지능의 하등동물로 만들거나 멸종에 이르게 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정치적 담론이 저에게는 한가해 보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까 얼마나 무서운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릅니다.
      이에 대한 글을 향후 다룰 것인데, 어떤 울림이라도 있을지,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제 블로그에 하루 100만 명 이상이 몰려들어야 조금의 울림이라도 있을 테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2. 진흙속의연꽃 2016.12.11 12:10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듯이, 역사는 참여하는 자의 것입니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추위가 닥쳐도 궂은 날씨에 매주 참가한 촛불들이 만들어낸 역사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날을 기려 명예혁명, 촛불혁명, 11월 혁명 등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이런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까 사람들은 인증샷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모두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오늘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어제 7차 촛불에 참가했습니다. 승리의 축제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그래도 국민이 승리한 날입니다.

    http://blog.daum.net/bolee591/16157468


    • 늙은도령 2016.12.11 21:43 신고

      네, 승리했습니다.
      1단계의 전반부를 넘었습니다.
      아직 3.5단계가 남아있습니다.
      그때까지 지치지 말고 즐겁게 투쟁했으면 합니다.

  3. mangrove 2016.12.12 10:24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는 분명 괴리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우상호 원내대표는 "국회안의 언어"라는 것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괴리감이 어디부터 출발하느냐를 생각해 보면 제 생각에는 "권력의 오염"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자리가 사람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의 오염과 철저하게 싸웠던 서민의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의 구성원으로서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큰 요소입니다만, 한편으로는 거대정당의 일원으로서 그 권력은 결코 무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리타분한 소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므로 국회의원, 정치가는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 볼 줄 알아야 하고, 늘 권력의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국회의원은 명예직이 되어서도 않되고, 학벌이나, 명성에 , 인기에 영합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늘 서민이라는 원칙에 충실해야 하며, 언제든지 자기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신을 언제든지 무너뜨리고 새로 출발할 수 있는 원점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늘 부족한 자신을 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기대해 봅니다.

    정치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기다려 봅니다.

    • 늙은도령 2016.12.12 10:46 신고

      네, 노무현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국정치를 망치는 최대요인이라고 생각해 이것에 철저하게 저항했습니다.
      언어도 서민의 언어를 썼고(그래서 누구보다도 위대한 발언들이 쏫아졌고), 권력의 남용도 철저하게 제한했습니다.
      자신이 그래야 나머지 권력조직들도 국민 곁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의 장차관 고위관료들이 일부라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지요.

      데만크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국회의원이 귀족처럼 되지 않게 하려면 선거제도를 고쳐야 합니다.
      또한 각종 특권 중에서 의정활동에 필요한 필수적인 것만 빼고 모조리 없애야 합니다.

      선거는 필연적으로 의원권력을 만듭니다.
      이를 제어하려면 국민들의 끊임없는 감시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정경관유착을 박살내야 합니다.
      언론의 감시도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고요.
      시민사회도 이런 부분에서 활약해야 합니다.



옥시참극과 세월호참사가 만나는 지점에 신자유주의적 타락이 자리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자유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본질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하위 99%의 쥐꼬리만한 부를 상위 1%의 수중으로 옮기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로 하여금 자유시장의 논리에 따라 최대한의 경쟁을 보장하고 최소한의 규제만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수단입니다. 





옥시참극과 세월호참사는 이 세 가지가 극대화된 지점에서만 나올 수 있는 최악의 집단 범죄입니다. 가해자는 정부와 기업,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담합이고 피해자는 파편화되고 고립된 개인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자유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만들면 인간의 목숨도 돈으로 환산됩니다. 옥시참극으로 240명(훨씬 늘어날 것이다), 세월호참사로 304명이 죽었음에도 보상금만 지불하고 몇 명의 책임자만 마지못해 처벌하면 그만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다국적기업 옥시가 대한민국에서만 가습기 살균제를 팔 수 있었고, 처음으로 피해사례가 보고된 이후에도 거의 10년 동안 판매가 가능했으며, 몇몇 언론의 간헐적인 보도와 피해자 가족들의 지속적인 고발이 있었음에도 최소한의 조치만 이루어지다가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자 이제야 빌어먹을 정부가 나섰는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인지,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근본적인 것들은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참사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로 생중계됐음에도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아니, 밝혀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근혜, 정부,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안철수, 김한길, 박영선 체제), 조중동, 지상파3사, 종편, 보도채널(연합뉴스TV와 YTN), 쓰레기 패널들, 국정원, 정치검찰, 관변단체(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 일베 등이 총동원돼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증거를 인멸하고, 유족을 폭력배도 모자라 빨갱이로 몰았고, 자식의 목숨을 팔아 한몫 챙기려는 파렴치한 시체장사꾼이라며 인격살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옥시참극과 세월호참사는 가장 신자유주의적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원형을 제공한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도 이 정도까지 총체적인 타락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반기업적인 종북·강성 노조원 한 명이 보상금이나 타내려고 자살한 것으로 몰고갔을 전태일 열사의 죽음에 온 나라가 함께 슬퍼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입법 등이 이루어진 것도 신자유주의적 타락이 일상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광복과 한국전쟁을 치른 대한민국이 일본, 대만, 싱가포르와 함께 압축적이고 파시즘적인 성장을 이루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부정의가 쌓인 것이 옥시참극과 세월호참사의 본질입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이명박과 '줄푸세'의 박근혜의 공통점이 친기업적이고 친자본적인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제2, 제3의 옥시참극과 세월호참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정부 8년 동안 모든 국민이 체험했듯이, 신자유주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타락시킵니다. 정부마저 자본과 기업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자유시장의 작동에 종속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자본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마저 얼마든지 사고파는 상품(서비스)으로 치환시킬 수 있을 때 신자유주의는 극대화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사랑과 우정, 명예 같은 추상적인 것까지)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박근혜가 50억원을 아끼기 위해 세월호특위의 활동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옥시의 한국법인 대표가 100억원의 보상금을 내놓겠다는 것으로 임시처방하고 면피하려는 것도 신자유주의적 타락이 극대화됐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입니다. 정부의 의지가 형편없고, 이에 따라 검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하면 세월호참사가 지겹다고 말하는 것처럼, 옥시참극이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 눈에 보이는 지랄 같은 밤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catlover8 2016.05.03 05:27

    오랜만입니다. 그 동안 사실 거의 매일 들렸었는데, 흔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드리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시간은 빠듯하고, 그러다 보니 할 말이 계속 쌓여서 나중에는 계속 미루게 되더군요. 제가 원래 먼저 하고 싶은 말을 순서대로 해야하는 성격이라서요.

    하지만 제가 총선의 그 기적같던 출구조사가 발표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분은 도령님이었답니다. 제가 영국에서 도령님!!! 하고 불었었는데, 들으셨나요? ^^

    그 날부터 딱 24시간은 아주 행복하게 기쁨을 만끽하며 지내기로 했었고, 그 후에는 고작 선거가 끝난지 2주가 겨우 지났을 뿐인데 참 많은 일이 있었죠. 김종인 대표를 보고 있자니, 고작 2주가 아니라, 수개월이 지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대선까지 1년 반을 그 분을 모시며 함께 갈 생각을 하면 정말 벌써부터 진이 빠진다고나 할까요.

    저의 김대표의 생각은 도령님의 생각과 거의 같기 때문에 따로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사실 도령님 생각과 저의 생각은 거의 상당부분 일치하죠. 하지만 님께서는 저보다 훨씬 더 풍부한 학식과 철학으로 이를 표현하시니까, 제가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거구요.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저는 김종인 대표와 대선까지 함께 가기를 원하는 문재인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이 점이 어떻게 보면 크게 다른 점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님과 제가 바라보는 세상이 비슷하고, 같은 가치를 위하여 싸우고 있기에 여전히 함께 토론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총선전에 댓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박근혜 정권의 총선 참패, 어버이연합 사태와 맞물려 나름 제 생각을 담은 댓글들을 쓸 일이 많아졌었고, 최근들어 제 댓글들을 잘 보고 있다, 응원한다, 다른 모든 댓글들을 읽고 있다등의 답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댓글란은 어떻게 보면 저의 미니 블로그인셈이죠. 실제로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구요

    처음 제가 댓글이란걸 썼던 이유가 바로 세월호 특별법 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유가족들을 다루는 비인간적인 방식에 질려서 처음으로 써보았던 댓글, 그러다 메르스 참사를 거치며 댓글로 집단 지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바램을 가지게 되었고, 그 때부터는 부족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고, 성찰 할 수 있는 장문의 댓글들을 주로 써왔습니다.

    물론 중간에 오랜기간 댓글을 쓰지 않았던 시간들도 있었어요. 내 삶을 쓸데없는 것에 낭비하는 것만 같은, 과연 나의 이러한 작업이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는가, 라는 자문들.

    그런데 제가 정말로 꼭 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이고, 또 하나는 박근혜의 단죄입니다.

    지난 번에 님께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 관련 글을 올리시며 총선 이후 세월호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다가 어버이연합 사태등과 구조조정등으로 인하여 이 개정 문제가 물 건너 갈 수 있다고 걱정하신 걸 보았는데, 저는 어쩌면 이번 어버이연합 사태가 세월호 특별법 개정에 대한 관심을 더욱 더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버이연합 사태에 대한 글을 올릴 때 세월호 참사와 연결고리이기도 한 국정원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많은 이들이 국정원 개혁에 대한 필요성만큼은 공감을 하니까 어버이연합 사태에 개입한 국정원을 수사하기 힘들다면, 이미 여러 확실한 정황이 포착된 세월호 참사의 국정원 개입만큼은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된다구요.

    박근혜 정권의 무엇을 비판해도 결국은 모든 것이 세월호 참사로 돌아옵니다. 다행히 더민주의 많은 초재선의원들이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군요. 특히 네티즌들중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옆에서 폭식투쟁을 벌였을때 그것이 반인륜적인 행위임을 알면서도 사회 분위기상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던 죄책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그 죄책감이 분노와 간절함으로 표출되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보며 항상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국의 힐즈버러 참사 유가족들입니다. 이번에 무려 27년만에 정의를 찾았죠. 한국에는 잘 보도가 안된 것 같아 안타까운데, 제가 댓글에도 몇 번 썼었거든요. 근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힐즈버러 유가족들을 만나러 영국에 간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 유가족들의 투쟁과정에 대하여 잘 알죠. 저만해도 16년이상을 보아왔으니까요. 27년전 경찰의 잘못으로 경기장 테라스가 무너져 96명의 관중들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당하고, 생존자들중 또 일부가 트라우마로 자살하고..

    그 당시 영국 정부와 보수 언론이 이 사건을 조작, 은폐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이 참사를 당한 가족들이 노동자 계급이기 때문이죠. 짓밟으면 물러갈 것이다. 하지만 이 가족들은 전혀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싸웠습니다.

    27년뒤 정의의 판결이 내려졌을 때, 리버풀 도시인들은 리버풀 성당 앞으로 모였죠. 그들 앞에 섰던 유가족들은 늙고 병들어 있었고, 누구는 부모가 되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정의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정의와 진실은 결국 승리했습니다. 그 곳에 모인 리버풀 사람들은 다함께 노래했죠. 'You'll never walk alone..'

    이 27년의 투쟁동안 리버풀 도시는 하나로 뭉쳤습니다. 우선 거의 극우에 가까운 보수 신문, 그러니까 그 당시 거짓으로 사건을 날조하고, 사망자들을 모욕했던 신문들을 리버풀인들은 아무도 구독하지 않았죠. 그리고 그 지역 노동당 국회의원 안디 번함이 생을 걸었습니다, 이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스포츠인들도 매해 사망자들을 기리고, 국민들도 아무도 경기보러가다 죽은 이들을 무슨 27년씩 기리냐고 비난하지 않았어요. 저는 영국에서 16년을 넘게 살면서 그런 말 단 한 번도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방송국은 이 참사를 드라마로 만들어 유가족들을 응원하고, 동지애란 이런 것이 아닙니까?

    가장 감동스러웠던 장면 둘중 하나는 27년만에 드디어 법원에서 경찰의 잘못이었다고 판결이 내려진 후 현 보수당 내무부장관 테레사 메이가 의회에서 약 15분간에 걸쳐서 동료 의원들과 유가족들에게 이 결과에 대한 보고와 사죄를 담은 연설을 하는 장면입니다.

    저는 이 장관을 아주 싫어해요. 아마 보수당 의원들중 가장 싫어하는 사람중 하나일거에요. 하지만 이 연설만큼은 그녀가 형식상의 사과가 아니라 정치인이기전에 한 인간으로서 무려 27년을 투쟁해온 유가족들을 향한 무한한 존경과 연민, 동정심, 죄책감, 통렬한 반성, 그리고 진심어린 사죄였다는 것을 이 연설을 직접 들은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감동스러웠던 또 하나는 리버풀 축구팀의 최대 라이벌인 에버튼 축구팀이라고 같은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팀이 있는데요. 평소에는 서로 죽일 듯이 미워하지요. 그런데 이 판결 이후 경기장에 유가족들을 초대하여 모든 관중과 선수들이 기립하여 따뜻한 박수로 환대했던 장면입니다.

    늙고, 병든 부모들이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걸어들어 올 때, 저는 정말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27년이라니.. 어떻게 영국같은 선진국에서 27년을 싸워야 했을까. 세월호 유가족들은 27년이 걸리면 안될텐데..

    도령님, 한국 사회가 뭔가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닌 분들이 더 많으시겠지만, 참사 발생 2년이 지났는데 웬 추모냐는 사람들, 교통사고 얘기 이제 지겹다는 사람들, 보험금 많이 탔으면 이제 됐지 뭐 더 바라냐는 사람들, 세월호를 정치적 이슈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야당 비대위 대표, 뭔가가 굉장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도령님, 제가 저의 삶이 부끄러울 때 님의 글을 읽으면 위로가 많이 됩니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6.05.03 07:34 신고

      그 동안 댓글이 없어 아픈 것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다행이 그렇지 않다니 마음이 놓이네요.
      출구조사가 발표됐을 때 귀가 간지러웠는데 님의 소리였군요^^

      저는 문재인이 대선 승리를 위해 김종인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지지를 접겠다고 밝혔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첫 번째 모토 중 하나입니다.
      인류사의 모든 비극은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서 나왔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아감벤의 말을 빌리면) 정체라는 구성형태와 최고주권의 행사라는 통치행위를 구분하거나 절합해내지 못하고, 그래서 (바디우의 말을 빌리면) 상징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들이 박근혜로 하여금 민생과 경제를 내세워 전체주의적 통치를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다를 민주주의라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앞세워 배 부르고 등 따시게 만들어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공리주의적 통치만 난무합니다.

      세월호참사가 지겨운 것이 되는 것도 진상규명이 이루어진다고 (그것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는) 내가 배 부르고 등 따뜻해지지는 않는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옵니다.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는 나라.
      자유는 있는 것 같지만 거기에 권리는 없는 나라.
      평등에 기초할 때만 자유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공부가 전무한 나라.
      정치철학을 무시하는 나라.
      상식과 원칙, 양심과 정의도 없는 나라.
      ....... 이 모든 것을 배 부르고 등 따시면 필요없다고 하는 나라.

      이것들이 총선 이전의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총선에서 승리한 지금은 희망이 보이지만, 안하무인 김종인과 최악의 정치인 박지원 같은 개자식들을 넘어야 그 다음이 있습니다.
      총선의 일등공신인 문재인이 칩거에 들어가고, 함량미달 안철수가 떵떵거리는 것을 넘지 못한다면 총선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세월호참사는 세월호가 온전하게 인양되지 못하면 27년만에 진상규명이 이루어진 힐즈버러참사처럼 될 수 없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리버풀과 노팅엄의 경기에서 관중석이 무너진 후, 경찰의 응급처치가 형편없어서 사망자가 96명에 이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맨유 선수들이 비행기사고로 죽은 것과 함께 영국축구사의 최고 비극이었던 힐즈버러참사는 사고영상과 유족 및 관중들의 증언, 경찰기록, 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진상규명이 가능했지만 세월호참사는 박근혜와 국정원이 결부돼 있다는 것 때문에 결정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영국에 비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경험의 부족합니다.
      코빈이 당대표에 오르기 전까지 블레어 이후의 노동당이 사실상의 보수화한 것이 문제라고 해도, 노동당이 정권까지 잡은 영국과 극우정당이 60년을 지배한 한국은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정권교체가 우선이고, 25% 정도의 고정지지층이 있는 문재인이 대통령에 올라야 합니다.
      여기에 이번 총선의 향배를 결정한 청춘들이 대선에서 안철수라는 허상에 속지 않는다면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맞물려 힐즈버러참사처럼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스포츠를 좋아하기 때문에 3대리그를 모두 다 보고,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도 본방사수하는 편이지만, 힐즈버러참사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상식 수준에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참사의 진상이 밝혀진 후에도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총선 분석을 마친 후에 밀렸던 책들을 읽고 건강을 회복하는데 집중하느라 다른 것에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5월 중으로는 영상 강의를 시작하려고 하기 때문에 밀린 책들을 빨리 읽고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오늘 님의 댓글을 계기로 힐즈버러참사에 대해 자세히 공부해야 할듯합니다.
      세월호유족이 영국으로 간다니 승리의 경험을 공유했으면 합니다.
      인공지능과 인구절벽, 뇌과학, 환율, 역사 등에 관한 책들과 알랭 바디우의 <영화> <사도 바울>을 초스피드로 읽고나면 힐즈버러참사에 대한 보다 자세하고 많은 내용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겠지요.
      그것들을 검색하고, 관련된 책이 있다면 구입해서 읽고, 다큐멘터리 등의 자료도 찾아보겠습니다.

      어차피 영상강의의 첫 번째로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글을 늘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할 생각이니까요.
      한가지 걱정은 영상 강의의 수준을 어디에 미칠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당연한 것이 대학원 졸업자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듯합니다.
      통섭적 지식이다 보니 너무 종횡무진하는 것 같아 어느 선에서 강의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블로그보다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풀어놓아야 하는데 쉽게 풀 수 있을지,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있습니다.

      영상 강의가 인기를 끌면 세월호참사를 심층적으로 다룰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과는 달리 체제의 차원에서 접근할 것입니다.
      인공지능 같은 최첨단 기술이 기본소득과 손잡을 가능성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스포츠도, 영화도, 미술도, 문학도 다룰 것입니다.
      정치, 경제, 철학, 과학 등은 기본이고요.
      글쓰기가 갈수록 체력적 부담이 커져서, 특유의 말발을 활용해 영상으로 가면 체력적 부담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답글을 마구 썼습니다.
      그래서 오락가락합니다.
      이해해주시기를 바라며....

  2. 耽讀 2016.05.03 06:57 신고

    미국은 자본주의 천국이지만, 소비자를 속이고, 생명을 위협하는 기업은 끝내버립니다.
    옥시가 미국에서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면 끝났습니다.
    본국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은 역시 기업하기 좋은 나라이고, 시민은 알아서 생명을 지켜야 하는 나라입니다.
    박근혜 입에서 옥시 관련 발언은 나오지 않네요. 세월호 돈 아깝다는 말은 하면서. 규제를 단두대에 보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 늙은도령 2016.05.03 07:41 신고

      요즘은 미국과 영국도 우리가 아는 것보다 많이 타락햇습니다.
      엔론을 공중분해하고 회장을 수백년 형에 처한 것은 아주 드문 예입니다.
      미국, 영국, 일본, 한국이 가장 신자유주의적 국가이라 타락의 정도만 차이가 날 뿐입니다.

      물론 옥시참극이나 세월호참사 수준에 이르면 무조건 공중분해고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정부가 비호했다면 탄핵됩니다.
      이명박근헤의 대한민국은 친기업적 전체주의 국가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05.03 08:52 신고

    정부의 무능,탁상 행정,편의 주의
    국민을 졸로 본..
    그런것들이 종합적으로 나타난 옥시 사태입니다

    이제야 언론들이 관심을 나타내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5.05 01:30 신고

      언론보도는 7~8년 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도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정부와 언론이 무시하고 막고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제품의 허가와 관련한 상황들도 파악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 제품의 피해자는 수만~수십만 명에 이를수도 있습니다.

      옥시참극에 대한 자료는 충분할 것입니다.
      헌데 피해규모가 무한대로 커질 수 있어서 지금까지 침묵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제 수준에서 파고들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정부의 책임만 물은 것입니다.

  4. mangrove 2016.05.03 11:19

    모든 일에는 실마리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실마리를 제대로 찾아야 접근도 가능하고 풀어야 할 숙제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와 옥시사건의 공통점은 정부가 국민의 편이 아닌 자본의 편에서 사건을 해결 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또 다른 점은 세월호에는 모종의 정치공작의 의혹이 있는 반면에 옥시는 순수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봅니다. 말씀대로 국민은 찢어져 있고 혼자로서는 나약하기 그지 없어서 언제 어떻게 사라지든 이 세상은 관심이 없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세상일에 적극 가담할 만큼 유대나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일이 나하고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으면 세상을 원망하고 비관하게 된다는 것이죠.
    지금은 어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한 아일랜드 같은 경우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 그들은 기존에 신자유주의적인 경제활동을 버리고 이전과 동일하게 어업으로 회귀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국민적 합의.... 나는 손해를 봐도 세상은 바로 돌아가야 한다는 참 어려운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 합니다.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이런 것이 팀웤이라고 생각 합니다만... 대한민국은 그 팀웤이 사라졌죠. 대신 누군가 나 대신 그 일을 대신 처리해 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권에서 또는 재야에서 지금 껏 국민의 힘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서 그것을 사회에 정치권에 전달하려는 시도는 많았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두 실패로 끝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봅니다. 여기에 또, 냄비근성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달려 나오기 시작하죠.
    주말에 야구장에서 목이 쉬도록 응원하고 소리칠 열정은 있어도, 이 사회에서 나와 같은 처치 또는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무참히 짓밟혀도 거기에 목을 놓고 울어줄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정의가 무너지고 각박해지고 점점 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아이들도 학교에서 여실이 느끼고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진자에게 순종하는 법을 이미 배우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5.05 01:32 신고

      제가 급성장염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단 한 줄로 답할게요.
      현재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5. 참교육 2016.05.03 21:19 신고

    ㄱ렇군요. 그생각을 못했씁니다. 옥시와 세월호...!
    신자우주의의 극한점... .새월호 다른 이름의 옥시입니다.

  6. 트라이버튼 2016.05.04 15:35

    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에 참여하시겠습니까? 트라이버튼 해보세요. www.tributton.com/?uc=1&fc=336

  7. 마술피리 2016.05.04 19:04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지가 항상 고민인 민초입니다.
    님의 고견으로 정리가되고 반성도 합니다~^^

  8. 무예인 2016.05.04 21:45 신고

    휴 한숨만 나오네요 ㅜ.ㅜ

  9. 누가 누구를 2016.05.04 22:31

    참으로 묘하다.
    옥시 사건이 정부 탓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정부 탓인가?
    1998년과 2003년에 허락한 정부를 말하는 것인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말하는 것인가?
    기자들의 꼼수는 알아줘야 한다.
    뉘앙스는 현 정부 탓으로 돌리려는 모양인데 2003년에 허락했으면 현 정부 탓이 되지 않는다.
    그때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도 된다.
    그때 엄격하게 규제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두 대통령 모두 돌아가셨으니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ㅡ마경언

    • 늙은도령 2016.05.05 01:35 신고

      가습기 살균제 같은 제품은 사전에 걸러낼 수 없습니다.
      화학제품은 몇 만 가지 넘는데 정부가 사전에 걸러내는 것은 수백 개에 불과합니다.
      이는 미국의 FDA와 EPA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학제품들을 일일이 검사해서 판매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가습기 살균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학제품은 사전에 걸러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해사례가 나왔을 때 신속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정부의 책임은 그때부터 물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확인해야 할 것은 한국기업들이 옥시에게 로열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가습기 살균제 원료(또는 제조방법)를 제공받았을 때의 계약서와 옥시가 제공했을 각종 자료들입니다.
      거기에 인체에 해로우니 어떤 용도로는 쓰지 말라는 것이 나와있다면 한국기업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옥시에게 가장 많은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는 당시에 가습기 살균제를 걸러낼 수 있는 정부 조직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허가를 내주었을 때도 어떤 용도로 내주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정부가 허가를 내주었을 때 기업들이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했는지 등등 허가와 관련된 것도 수없이 많은 것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책임 소재를 따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피햬사례들의 공통점을 언제 파악했느냐도 중요합니다.
      알고도 판매를 나몰라라 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요.
      시점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네 번째는 역학조사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언제냐는 것도 파악해야 합니다.
      책임소재는 이후에나 정확히 따질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최소한만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것들을 확인해야 어느 정부의 책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님의 댓글은 아주 기본적인 것도 갖추지 못한 한심하고 비열하고 형편없습니다.
      언제부터 피햬사례가 보고되고 취합됐는지, 역학조사는 언제부터 이루어졌는지, 화학제품을 최소한이라도 걸러낼 정부기관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디에서 조사했고 어느 선까지 보고 됐는지,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언제 인식했는지, 옥시 본사와 한국업체와의 계약은 어땠는지... 수없이 많은 사실관계도 제시하지 않은 체 무슨 김대중과 노무현을 물고 늘어집니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화학제품도 수만 개입니다.
      그렇게 많은데 그것을 일일이 검사하고 시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러려면 석유로 만들어지는 모든 제품을 판매금지시킨 채 역학조사를 들어가야 합니다.

      해서 현실을 제대로 모르면 함부로 나대지 마세요.
      일베 수준의 댓글로 무슨 수작을 하려는지 알고 있지만, 최소한 제 글에 댓글을 달려면, 사실관계에 대해 정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즉, 까불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많이 아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제 블로그에서 조중동이나 일베로 취급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정의를 실현하고 싶다면 정부와 싸우세요.
      피해자들의 얘기를 널리 알리는데 힘써요.
      조사를 하다 보면 사실관계가 구명될 터, 김대중과 노무현에게도 책임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받아야죠.
      정부란 대통령만 바뀌지 연결되는 것임에도 그런 것을 하지도 않은 짐승만도 못한 대통령이 누구인지 그것부터 확인해요.
      벌레 같은 선동질이나 할 시간이 있으면...

    • 늙은도령 2016.05.08 06:21 신고

      위의 댓글에서도 말했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혀야 합니다.
      어떤 정부도 완벽할 수 없고, 대통령이 모든 부처를 일일이 살필 수 없는 노릇이지만, 최종책임자였던 세 명의 대통령의 기록에 옥시참극의 책임을 적시하려면 사실관계부터 명확하게 밝혀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 문제에 관해서 토론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세 명의 대통령이 옥시 제품의 유해성을 알고도 출시를 허가했다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겠지만, 부처나 그 이하의 차원에서 저질러진 일이라면 이런 식의 마녀사냥은 옳지 않습니다.

      옥시 제품을 허가하는 것까지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 신이 되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비판을 하고 책임을 물으려면 그에 합당한 논리와 사실관계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프레시안>을 통해 송기호 변호사가 연재하는 글 정도로는 아무것도 밝힐 수 없습니다.
      님의 논리대로라면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때 올랑도 대통령을 책임을 물어 사퇴시키던지 법정에 세워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대형사고와 살인사건을 막지 못한 대통령들도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런 방식이라면 신도 버텨내지 못합니다.

  10. 다쿠루 2016.05.10 22:18

    정말 편향적인 글이군요. 김대중 노무현시절의 잘못이 현 정부에 와서야 밝혀졌는데 그 탓을 현정부탓이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시네요. 정말 좌스럽고 벽창호 같은 글입니다.



올해의 최저임금은 6030원이다. 인상률이 정해졌을 때, 노사 양측에서 그런 데로 적정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하고, 쓰레기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인상률이 너무 높아서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을 한단다. 그렇다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저임금의 적정선은 없는 것일까? 있다고 해도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이래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모든 근로자의 연봉도 올라가는 것일까?

 

 



우리는 최저임금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기업(특히 중소기업) 측에서는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직원 전체의 월급이 올라가 인건비 부담이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고 울상이다. 노동자 측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을 최저임금이 보장하지 못한다고 울상이다. 정작 최저임금의 인상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 및 저임금, 임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배제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최저임금에 적정선은 없는 것일까? 최저임금의 적정선을 판정하는 기준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인가? 따라서 이번 인상률이 적정한 것일까, 아니면 턱없이 부족한 것일까?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제대로 적용될까? 인건비에 부담을 느낀 중소기업은 외국인노동자를 더 많이 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굳건히 자리 잡은 나라이다. 헌데 우리가 매일같이 떠들어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여러 글에서 밝혔듯이 부정적 세계화의 주범인 신자유주의가 79년과 80년에 걸쳐 영국과 미국에서 대처와 레이건이 당선되면서 급속도로 퍼진 경제 사조인가?

 

 

단언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실체, 변화와 파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신자유주의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무한경쟁을 일상화하는 신자유주의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즉 태어나 보니까 전통이나 관습, 일상의 환경처럼 신자유주의는 이미 주어져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적응하면 그만일 뿐 알고자 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위 88%로 대표되는 우리는 매일같이 당하고 휘둘리며, 저들이 촘촘하게 쳐놓은 여러 개의 그물망(통치 메커니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최저임금도 그들이 쳐놓은 그물망 중에 하나이며, 각자도생이라는 자발적 노예를 대량으로 만드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최저임금이 생각보다 많이 올라도 그것 또한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의 하나일 뿐이다. 



이 3권의 책만 읽어도 신자유주의의 학문적 이해가 정립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자유주의 경제학(자유방임을 모토로 하는 중농주의 경제학으로 고전파 경제학이라고 한다)을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된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에 그 원형이 있다. ‘가능한 한 최대의 경쟁을 그러나 최소한의 계획’을 모토로 하는 질서자유주의는 적극적 자유주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 권위적인 정부가 방해되는 것들을 가지 쳐주는 선별적 개입의 자유주의라고도 한다.

 

 

최근의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무정부적 자본주의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가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경제학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에서 분리된 자유주의 경제학이 정치의 내부에 자리하면서 탄생한 통치술의 총합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쟁(가격이 핵심)으로서의 자유시장 메커니즘을 국가의 모든 부분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교육과 결혼, 가족 같은 지극히 사적인 것들마저 시장경제의 종속변수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시장경제화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절대 시장경제라는 존재의 기초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시장경제의 주체인 기업이 시장경제를 통해 영원히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들은 기업 위주의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교환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장 메커니즘을 가격을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경쟁을 극대화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국가의 권력과 법률, 선별적 규제를 동원해 시장경제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에 개입해서 시장경제가 가장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자유방임이 아닌 적극적 자유주의나 개입적 자유주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세상을 시장경제화해서 상위 1%에게 하위 99%의 부를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권위적인 통치권력이다.   

 

 

신자유주의는 미래의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시장에서 떨어져나간 사람들을 재교육해서 경쟁을 확장하고, 법률과 규율 및 규범을 통해 모든 인간을 시장경제에 종속된 존재로 만든다. 시장경제에서 탈락한 자들은 경쟁의 법칙에 따라 굶어죽을 수도 있다. 경쟁력이란 자신의 책임하에 갖춰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는 개인의 책임일 뿐이며 공짜 점심은 없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주축인 기업(그중에서도 오너와 최겨영영진, 대주주들로 구성된 사측)을 위해 정부의 개입을 최대화하고 최적화하는 궁극의 권력이다. 가격과 경쟁이라는 두 개의 메커니즘을 통해 기업 중심의 시장경제를 최대한 활성화하고, 경쟁 메커니즘을 교란하는 독점기업의 출현을 제한하고 해체(IMF 때 한국의 재벌을 해체하려고 했던 이유)하며, 필요하다면 최저임금을 올려서라도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만든다. 최종적으로는 이 모든 돈들이 상위 1%에게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개인을 천부인권을 지닌 시민이 아니라, 기업적 입장에서 노동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쟁력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 본다.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 경쟁력을 지닌 채 시장경제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든다. 개인은 채용되기 위해 인적자본(능력자본)으로서의 경쟁력 제고에 전념해야 하며, 이것 때문에 선행교육과 스펙의 중무장이란 무한경쟁의 포로로 전락한다.

 

 

신자유주의가 부모나 가족, 사회나 정부가 개인에 투자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장려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업도 시장경제의 주체이지만,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에서 도태하지 않도록 더 높은 경쟁력을 창출해야 한다. 그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거나 고용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기업과 개인에게 끊임없는 혁신이 주문되며, 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만큼 그에 따라 예비 노동자와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도 계속해서 올라간다. 

 

 

가격 대비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기업은 도태되고, 그 자리에는 다른 기업이 들어서며, 한 기업 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서는 구조조정의 칼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시적 구조조정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당화된다. 신자유주의가 위험을 등지고 사는 삶, 위험과 함께 하는 삶을 장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에 투자해야 하고 창업도 마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잘린 노동자와 노동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한 관리도 국민의 세금을 독점하는 정부가 맡아야 한다. 그들이 시장경제에 해가 되지 않도록 죽을 때까지 무한경쟁의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포획될 수 있도록 각종 부조와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시장경제에 해가 된다면 부조와 복지비용의 관리를 통해 도태시켜도 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의 활성화가 목적이기 때문에 생필품을 구입하던, 대박이나 창업 및 안정적인 정규직을 꿈꾸며 공부를 하던, 다시 시장경제에 뛰어들기 위해 병을 고치던,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확장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기본소득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그들에게 최상의 결과를 창출한다. 좌파의 논리라도 시장경제에 도움이 되면 얼마든지 수용한다(좌파 신자유주의의 기원). 

 

 

                                                     

 

세계화를 추진하는 이유도 시장경제의 활성화 때문이다. 가격과 경쟁의 메커니즘에서 도태되는 분야에는 적정한 수준의 보조금도 묵인한다. 그것이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의 틀을 해치지 않는다면 품목별, 국가별 예외조항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 공황이 도래하던, 경기침체가 길어지던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허용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라는 기본 틀만 유지하면 된다.

 

 

이렇게 지구를 상위 1%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 위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목표다.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하는 부정적 세계화가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단 하나의 목표다. 인구 조절을 위해 공중위생의 확대도 필요하고, 각종 자선사업도 장려된다. 기업 위주의 시장경제만 유지될 수 있다면, 이익의 일시적인 감소도 감내할 수 있다. 판돈을 키우는 일은 너무나 쉬워서 그것 때문에 고민할 이유란 없다(영원히 지속되는 경제위기란 없다).

 

 

임금의 평균값으로 계산하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하던 최저임금 또한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노동자들을 시장경제 하에 두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다윈의 진화론과 뉴턴의 역학, 정부의 개입과 언론의 동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시장경제는 자기조정 능력을 획득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영원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일정 시대를 풍미한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공동체나 조직, 사회나 국가에 의해 자유라는 것이 출현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진화해온 시장경제의 총화이자 통치의 기술이다. 그래서 좌파 신자유주의도 가능하며, 우파 신자유주의도 가능하다. 인류의 삶 속에서 시장경제가 절대적 요소라면 우리는 신자유주의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신용시스템이 2008년 금융위기의 수준을 넘어 완전히 무너지면 모를까?

 

 

하지만 최종대부자로서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신자유주의에 벗어나려면 기차에서 뛰어내리던지, 기차에 탑승하고 있던지, 아니면 기차를 멈추던지 세 개의 선택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파헤친 푸코가 말년에 그리스철학의 핵심주제인 자기배려라는 가장 근원적인 성찰로 돌아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뛰어내리려 했던 것이다.  

 

 

내가 시장경제의 부속품이라면, 그런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자기배려에 최대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내가 정말로 소중하다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연결만 유지해야 한다. 시장경제에 속하지 않은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이란 시장경제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최하의 마지노선으로 주어지는 생존임금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신자유주의는 지구라는 차원에서 자원의 한계와 자연의 반격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한 무한한 성장이란 끝없는 퇴행이었으며, 시장경제마저 위협하는 최악의 메커니즘이었다. 생산과 소비의 확대라는 면에서 전체 인구로서의 인류를 관리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정보통신기술과 자동화 등의 확장으로 소비를 위축시키는 고용없는 성장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구온난화까지 급진성을 띠려고 한다. 이런 총체적 위험 때문에 최저임금으로 대표되는 생존임금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수준에서 한참 부족하게 됐다. 신자유주의는 실패했지만 시장경제는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 생존선 근처에서 각자도생을 위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최저임금 속에 숨어 있는 첫 번째 진실이 바로 이것이다(최저임금에 숨어 있는 두 번째 진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생명마루한의원 2016.01.23 18:38 신고

    잘읽고갑니다..^^

  2. 수호자 2016.01.24 15:58

    에듀윌 이곳저곳에 과잉광고 정말 지긋지긋하다... 대한민국을 온통 시험공화국으로 만들려하나... 광고를 하든 안하든 하고 싶은 사람은 찾아서 하고 하기싫은 찾아줘도 사람은 안한다... 제발 좀 적당히 해라...

    • 늙은도령 2016.01.24 16:51 신고

      에고... 학생들이 불쌍해요.
      한국은 학생들과 청춘들에게 지옥이 됐습니다.
      광고는 제가 책을 구입하는 비용으로 쓰는 지라...
      지금까지 책 구입비만 2000만원을 돌파해서 더 이상 제 재정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양해바랍니다.

  3. 돌고래 2016.01.25 20:44

    광고 있어도 좋아요..이렇게 좋은 글만 볼 수 있다연요^^

    • 늙은도령 2016.01.25 21:24 신고

      감사합니다.
      오늘 새로 구입한 책 12권이 도착했습니다.
      광고 덕분에 원하는 책들을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4. 새노래 2016.02.05 00:19

    괜한 트집잡는놈들 하는 말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저런놈은 정의도 없고, 소신도 없는 놈입니다, 오로지 주인이 던져주는 부스러기만 바라보고 사는 놈이라 신경 접어도 됩니다, 그 많은 책을 사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많은 책을 읽고 소화 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가 되는지 썩은 놈들은 모릅니다, 선생님은 신경 접어시고 좋은 글에만 집중 하십시요, 항상 읽어 보고 저의 판단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 하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건필 하시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포맷이 필요한 대한민국에 꼭 필요 하신분이십니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을 당하고 반역자를 처단 할때 지식인과 언론인들을 먼저 했다지요.. 그들은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느냐고 불평 불만이 많을때.... " 지식인과 언론인은 국가에서 가장 투자가 많이 되는 인재들이다, 그렇게 국가 혜택을 많이 본자들이 국가 위기 상태때 "침묵" 한 그것이 죄다,....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다, 그리스도 국영언론이 해체되고 전 직원이 해고되는 사태가 있었죠....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침묵은 나의 목을 죄어 올 뿐입니다, 이럴때 가만히 있다고 침묵이 금이 되는건 아니죠....

    • 늙은도령 2016.02.05 02:36 신고

      그럼요, 지식인들은 모름지기 비판을 멈추면 안 됩니다.
      비판을 멈춘 지식은 죽은 자나 다를 것 없습니다.
      건강에 신경쓸 게요.

 

 

 

독일은 비정규직을 기간제 근로자(fixed-term contract)로 표현합니다. 사측과 직원은 개별계약을 하며, 기간은 최대 2년(창업의 경우 4년까지 가능하나 지원자가 거의 없음)으로 1년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기간은 양자의 합의 하에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연봉도 같은 직종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양자가 협상해서 정하며, 4대보험도 정규직(permanent contract)과 동일하게 제공됩니다(시간제와 한계 근로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에 포함. 파견근로가 늘어나고 있지만 소수에 불과함).

 

 

 

 

2년의 계약 기간이 지난 이후에 기간제 직원을 재고용할 경우에는 무조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합니다. 동일 직원을 편법으로 고용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처럼 계약 종료 전에 해고한 후 신규로 재계약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간제 직원이라도 성과가 좋으면 계약 기간 중에도 정규직 계약을 할 수 있으며, 동일임금을 적용받기 때문에 연봉을 조정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간제 직원과 정규직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파견직도 동일하다)되며, 해당 직무의 지원자가 없으면 기간제 직원의 연봉이 정규직보다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 박사 하위 소지자나 전문직일 경우 기간제 계약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규직과 기간제 직원이 동일회사에 일하는 한 차별을 하지 못합니다. 정규직에게만 주어지는 혜택들이 있어 기간제 직원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영원한 계약이라는 뜻의 정규직이 되면 해고가 거의 불가능하고, 각종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정규직이 되기 위한 기간제 직원들의 자발적 노력이 이루어져 생산성이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히든챔피언, 즉 알려지지 않은 중견·중소기업이 많은 독일의 최대 강점, 헤르먼 지몬의 《히든 챔피언, 글로벌 원정대》에서 자세히 나옴). 이 때문에 정규직과 기간제 계약 사이에서 크게 갈등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노조가 없어도 법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에 고용안정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규직의 경우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사측이 평가할 기회를 줍니다. 직원이 약속했던 생산성에 미치지 못하거나 회사와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노동유연성이란 이것을 말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사측에게 무한대의 권한을 주려는 해고요건 완화, 취업규직 변경 완화, 파견직종 확대, 임금피크제 등처럼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성(독재일 때 가장 효율적인 줄푸세의 핵심)과는 전혀 다릅니다. 

 

 

 

 

게다가 독일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와 함께 복지와 연금, 보험체제, 사회안전망이 촘촘하게 구축돼 있습니다. 실적 악화로 회사가 파산해도 직원들의 삶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공됩니다. 저부담 저복지(상류층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상류층 입장에서는 세금과 연금 등의 상한성이 무지하게 낮기 때문이다) 국가인 한국(복지학에서는 국가의 복지 수준을 3단계로 나누는데 한국은 최하위 등급인 C에 포함)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독일은 이 모두를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40~50년대(국민소득 1만~2만달러 사이, 독일의 경우 질서자유주의 또는 사회적시장경제라 한다. 20세기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인 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의 원형이 독일에서 나왔으며, 미제스와 하이에크, 프리드먼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프라이부르크 학파가 주도했다고 밝혔다)에 완성했다. 3만달러도 아닌 1~2만달러다!!   

 

 

독일은 영토가 한국보다 크고 인구는 9천5백만 명 정도라, 선진국 함정에 빠져있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차선의 모델이다. 독일의 강점과 한국의 강점은 상당 부분 비슷해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합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따라할 수 있다. 박근혜와 그 일당, 수구세력의 거짓말에 속지 마시라. 우리의 경우, 중간 단계로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로 대표되는 '노르딕 모델'보다 비스마르크 모델 위에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를 더한 독일 모델이 현실적이다. 

 

 

물론 국민이 정치사회적 합의에 이를수만 있다면, 고부담 고복지가 최상의 모델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까지 포기할 이유란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제 동생은 초국적기업의 유럽법인장으로 5년 동안, 독일과 유럽의 직원들을 뽑았습니다. 경제학자나 전문가라 하는 자들의 얘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동생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따끈따끈합니다. 제가 공부한 것과 합쳐서 서로 일치하는 내용만 글에 담았습니다.      

 

    

 

 

                                                      
  1. 참교육 2015.12.20 11:08 신고

    정부가 자본의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만 선다면 자본도 노동도 함께 공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본의 입장에서면서 공정한 권력 행사라며 노동자들을 기만하니까 그들이 반발하고 있는게지요. 답답한 나라입니다.

    • 늙은도령 2015.12.20 14:57 신고

      복지선진국,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이 그러합니다.
      문제는 그런 나라들도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받아 많이 약해졌습니다.

  2. 포스팅 구경하고 갑니다 ㅎㅎ

  3. 공수래공수거 2015.12.21 09:07 신고

    우선 지도자들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지도자들이 먼저 깨쳐야 되는데 그것이
    안됩니다

  4. 거북걸음 2015.12.21 10:24 신고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5. 사랑맘 2015.12.21 15:40

    좋은글 잘봤습니다.. 혹시 페이스북도 하시는지요?? 여기있는글을 sns도 올리면 파급효과가 더 있을것 같기도한데.. 벌써 하고계실수도 있겠다 싶네요^^;;



독자분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편지를 써서 병 속에 넣은 후 바다로 떠나보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병 속에 편지를 넣은 주인공은 병이 어디로 갈지, 누구한테 갈지, 도중에 병이 깨져 사라지거나 영원히 바다를 떠돌지 알 수 없습니다. 미지의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걸었지만, 운이 좋아야 병을 주운 사람이 편지를 읽을 수 있는 동시대의 사람일 수 있지, 반대의 경우라면 해독 불가능한 나만의 독백으로 그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병 속의 편지'를 통해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다룬 철학자이자 사회과자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현재의 독일을 만들어낸 양대 학파 중 프랑크푸르트 학파(나머지 하나는 프라이부르크 학파로 신자유주의의 원형이자 질서자유주의 또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정립했다)의 1세대인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21세기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영국의 지그문트 바우만입니다. 



유대인으로 히틀러의 나치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자 미국으로 망명한 아도르노는, 정착할 수 없는 미국사회의 방랑자이자 소외자로서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을 다룬 《미니마 모랄리아》를 통해, 90대 후반의 고령을 이끌고도 활발한 저작활동을 하고 있는 바우만은 근대이성의 산물인 현대성 대한 고찰로 유명한 《유동하는 공포》에서 '병 속의 편지'라는 비유를 통해 지식인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철학자들인 두 사람은 47세의 나이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 발터 벤야민(필자가 아는 한 산문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지 보여준 최고의 철학자이자 사회과학자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긴 좌우를 막론하고 20세기 말과 21세기의 철학자와 사회학자, 미학자, 정치학자들 중에 미셀 푸코와 발터 벤야민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보편적인 정의와 최선의 유토피아가 있다고 믿는 노엄 촘스키, 철저하게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 하워드 진, 미국에서는 나오기 힘든 좌파지식이지만 미국 특유의 낙관론에 기대는 경향이 있는 리처드 도티, 존 롤스처럼 합리적 토론를 통해 민주적인 합의에 이르는 길을 탐구한 위르겐 하버마스 등은 벤야민이나 푸코에 인색하지만, 그들의 위대함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결국에는 자유와 정의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란 '결과의 낙관론'을 믿는 사람들은 희망의 전도사로 최후의 승리를 주창하기 때문에 미셀 푸코와 발터 벤야민처럼 지금/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그래서 비폭력적인 저항을 지지하는 진보좌파 지식인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은 저항과 투쟁을 반길 혁명가는 없기 때문입니다.  





석학들의 판단이야 어떻든, 이번 글에서는 90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적인 사회참여와 집필을 보여주고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의 도움을 받아 '병 속의 편지'가 지식인에 대해 지니는 알레고리(은유 또는 비유)를 다루고자 합니다. 영국이 배출한 최고이 석학 중 한 명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위대한 휴머니스트이자 정직한 철학자이며 불굴의 사회학자였던 마르크스와 아도르노, 브르디외를 인용하며, '병 속의 편지'에 담긴 지식인에 대한 비유에서 두 가지 추정을 제시합니다. 



(병 속에 담긴) 그 메시지가 종이에 써서 병에 넣어 띄워 보낼 만큼 가치가 있다는 추정. 그리고 그것이 발견되어 읽혀질 시점(비록 그 시점을 미리 확정할 수는 없지만)에 아직도 가치가 남아 있으리라는(발견자가 그것을 해독하고 연구, 이해, 적용하기만 한다면) 추정.



이런 두 가지 추정은 어떤 지식인이 자신의 사상에 대해 '들을 준비도 뜻도 없는 동시대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을 때, 그래서 '정해지지 않는 미래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맡기는 일'이 낫다고 여겼을 때 가능합니다. 이는 어떤 지식인이, 특정할 수 없는 미래의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상을 들어줄 것이며, 이해할 수 있으며, 연구하고 발전시켜 후대에 전해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라도 동시대의 사람들에게서 아무런 호응도 받지 못하고, 토론을 거쳐 인정받거나, 검증 절차를 거쳐 진리의 영역으로 들어서거나, 심지어는 맹렬한 반박이라도 받지 못하면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에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은 위대한 마르크스가 "아무튼 나는 말했고, 나의 영혼은 구원받았다"고 말한 것처럼, 체념에 빠져 똑같이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물론 마르크스처럼 위대하고 방대한 추상을 펼칠 수 있는 지식인도 없겠지만, 전복적이라고 할만큼의 혁명적 변화가 없으면 공멸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라 행동해야 할 때라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영국에서 마르크스주의자 제레미 코빈이 노동당 당수가 된 것에서 보듯 혁명의 기운은 전 세계적으로 분명하게 대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 속의 편지'는 영원한 가치를 믿는 사람, 보편적인 진리를 믿는 사람, 지금 진리를 찾고 가치를 지키려 애쓰게 만드는 우려가 계속되리라 의심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편법이다. 그 병 속의 메시지는 좌절이란 일시적일 뿐임을, 그리고 희망은 계속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가능성의 패배하지 않음과 그런 가능성을 가로막는 적들의 허약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우만은 지식인의 역할이 치열한 비판정신을 잃지 않는 것에 있다는 아도르노의 성찰을 따라갔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살해 위협에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던 아도르노가 너무나 흥청망청이고 더없이 풍요롭고 지독히 이중적인 미국에서의 경험이 정신적 부적응에 가까웠던 것도 고려해야지만, 완벽하게 고립된 지식인이 이런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뻔뻔하고 파렴치할 정도의 표절이 넘처나고, 권력과 자본의 돈에 빌붙어 살며, 파벌을 만들어 그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기에 바쁜 이 땅의 지식인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 



"모든 철학이 죽었다"는 비트켄슈타인의 절망적인 선언이 나왔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철학과 사회학이 죽어버린 시대가,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거대 미디어의 세상이자, 생각 자체가 사라진 채 끊임없이 이동하고 접속하며,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자신의 과거를 삭제하고, 현재의 나를 끝없이 업그레이드하는 모발일기기의 특징으로 대변되는 시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홀로코스트의 행정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가, 인류사의 최대 악으로 지탄받던 나치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이었던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ㅡ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를 출간한 뒤, 좌우로부터 융단포격을 받았던 것을 떠올리면 동시대의 주류에서 벗어난 사상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것은 고립을 자처하는 어리석은 선택이자, 학문적으로 자살행위에 다름이 아닙니다(신자유주의의 특징 중 하나가 악의 평범함이다. 모든 분야에서 타락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우의 융단포격을 받은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사상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그녀가

《인간의 조건》에서 지식인(모든 개인도 마찬가지이지만)에게 주어진 삶이 사막처럼 척박하고 황량해도 끝끝내 시작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비판이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병 속의 편지' 같은 편법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부르디외가 《세계의 비참》의 추고에서 말한 것을 지식인(특히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는)이라면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사회적 세계를 연구하는 데 인생을 바칠 기회를 얻은 사람은, 세계의 미래가 걸려 있는 투쟁 앞에서 무관심하거나 중립적으로 있을 수 없다.         

 


부정적 세계화가 돈이 되는 지역들을 전 지구적 시장으로 끌어들여 뼈속까지 빨아먹고 있는 지금/현재, 돈이 되는 것은 모두 다 전문화돼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도 없고, 전 지구적 지배계급과 거대 자본 및 초국적기업에 봉사하는 지식에는 국경이 없어졌습니다. 세계화의 주역들을 위해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며 계급화된 엘리트로 자리매김한 현대의 지식인들은 부정적 세계화를 위해 시민을 소비자로 변질시키는 상징제작자와 상징조작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부정적 세계화의 정도가 심화된 대한민국에서는 족벌신문과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방송들을 맴돌며 정치권만 기웃거리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영혼도 철학도 없는 그들은 오로지 돈과 권력만 쫓아 불나방 같은 행태를 서슴지 않습니다. 지식인의 업무가 현실비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과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이들은 사실과 진실은 물론 진리와 공리마저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 가치와 진실 여부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지식의 이름으로 홍수처럼 밀려오는 디지털 세상에서 지식인이 할 일이란 자신의 사상이 경고하는 미래상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부정적 세계화의 현실과 사회비판에 물러섬이 없어야 합니다. 성장과 개발이 불러온 현실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비대칭적 종말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지만, 모름지기 철학과 사회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실낱 같은 희망을 잉여에서 쓰레기로 버려지는 시대의 난민에게 제공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박근혜 정부가 무서울 정도로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지금, 지식인이라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유동하는 공포》의 마지막에 했던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회경제적 평등과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진보좌파의 가치가 민주주의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는 지식인이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정보와 지식이 오픈된 디지털세상이라고 해도 지식인이 해야 할 역할이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신자유주의의 천국인 미국과 영국에서 샌더스와 코빈이 각광받고 있다는 것은 대중들 사이에서도 거대한 전환에 대한 열망과 욕구가 용암을 내뿜고 있다는 뜻이기에, 이 땅의 지식인들도 다음과 같은 진단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목숨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부산대 교수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됩니다.  



다가오는 세기는 궁극적인 재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아니면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 새로운 협약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희망을 갖자. 이 두 개의 미래에 대해, 아직도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으리라고.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9.16 08:42 신고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말에 저도 공감합니디다
    이 정권은 반대이기 때문에 싫어할수밖에 없습니다

    고현철 교수의 고귀한뜻도 지켜내야할 가치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16 15:44 신고

      네, 지식인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제 한몸 지키기에 급급합니다.

  2. 백순주 2015.09.17 09:14 신고

    '해독 불가능한 나만의 독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그러운 듯 다시한번 설명해 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쯤 됐다 싶어 답을 다그쳤습니다.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남들은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을요.

    관심은 희생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7 15:14 신고

      누구를 설득하려고 하면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꾸준히 얘기하다 보면 듣는 사람도 비슷한 얘기를 접할 때 자신도 모르게 님의 얘기를 떠올리게 되고, 그런 과정을 몇 번이나 거쳐야 변하기 시작합니다.
      설득이나, 설명이나, 진실과 진리로 가는 길은 오랜 고통이 따르는 힘든 일입니다.
      말을 잘 이해하는 사람도 만날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화학실험에서 똑같은 조건으로 했는데 결과가 다르게 나올 때처럼요.

      관심은 희생이기도 하지만 노력이고 사랑입니다.
      노하우가 쌓일 거에요.
      그러면 설득력이 높아지고, 진심이 전달될 것입니다.
      art of love처럼요.

    • 백순주 2015.09.18 08:01 신고

      관심어린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쓰다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네요.
      이 말 뜻이 진심어린 말이었군요. 호호.

    • 늙은도령 2015.09.18 10:44 신고

      허허.. 그러네요.
      만일 상업광고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수천 배는 좋아질 것입니다.
      우주적 차원으로 소비하는 사회는 광고로 움직이니까요.

      남을 설득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따기 입니다.
      인간은 뇌의 구축이 거의 끝나는 16세 전후가 되면 설득당하지 않는 경우가 99.99%입니다.
      수많은 노인들이 박정희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박정희와 인생을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능하면 진실에 가까운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말해주는 사람의 몫이 아니기에.


미국의 구인·구직 정보업체 ’커리어캐스트’가 선정한 ’10대 몰락 직종’ 발표했습니다. 커리어캐스트는 미국 노동통계국의 고용전망 자료를 토대로 2012∼2022년 사이 우체부의 고용하락률이 모든 직종 가운데 가장 높은 28%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메일, 소셜네트워크 등의 발달 때문에 미래의 고용상에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를 피해갈 수 없는 직종을 선정한 것입니다.


                                                                     닐 포스트만의 저서


우체부에 이어 농부(19%), 검침원(19%), 신문기자(13%), 여행사 직원(12%)이 선정됐습니다. 그 다음으로 고용전망이 나쁜 직업으로는 벌목공(9%), 항공기 승무원(7%), 천공기술자(6%), 인쇄공(5%), 세무업무원(4%)이 포함됐습니다. 특히 항공기 승무원은 항공사별 저가 경쟁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승무원 고용이 줄어드는 것이 요인으로 분석됐습니다. 세무업무원은 각 기업이 자동 세무프로그램을 통해 세무 업무를 처리하려는 추세가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커리어캐스트에 따르면 급격히 발달하는 과학기술 때문에 많은 직종의 고용전망이 바뀔 것이며, 선정된 10대 업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커리어캐스트는 수학·통계 관련 부문과 통신·항공기정비·전자 관련 기술자, 웹개발자 등이 새롭게 부상할 것이라고 했지만 사라지는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최근의 고용없는 성장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여겼던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어느 순간일 수도 있다.



미국의 사회·언론·교육학자인 닐 포스트만은 《테크노폴리》에서 과학기술이 인류와 사회에서 빼앗아간 것을 비관적으로 바라본 프로이트의 언급을 인용했습니다. 프로이트의 언급이 항상 진실은 아니지만 고삐 풀린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세상이 우리의 기대와 다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애초에 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철도가 없었다면 내 아이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사용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만일 대양을 횡단하는 선박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친구는 항해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며 자연히 마음 졸이며 그의 소식을 전보로 전해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유아 사망률의 감소가 그 비율만큼 출산을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더구나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고 기쁨이 없으며 비참하기 그지없어 오직 죽음만을 바라고 산다면 오래 산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가? 


                                        


이런 현상이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과정이라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지배계층의 이익이 지배적인 체제를 구축한다고 했지만, 폴라니는 인간이 원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지배적인 체제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극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독점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보다 내 자신의 편리함을 중시한다면 타인의 불행과는 상관없이 과학기술 발전의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유토피아ㅡ경향신문에서 인용



닐 포스트만은 《테크노폴리》에서 이런 선택이 가능해지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자신이 연구하는 것의 결과에 대해 가치 판단을 거부한 채 기업과 자본의 탐욕에 종속되면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과 사회가 어떻게 변질됐는지 말해줍니다.   



걷잡을 수 없는 기술의 발전은 우리 인간성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까지 파괴시킬지도 모른다. 기술은 도덕적 기반을 상실한 문화를 만들어낸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정신적 과정들과 사회적 관계들을 뿌리채 흔들어놓았다. 


                       

하지만 1940~1950년대부터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를 고수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인터넷으로 발급할 수 있는 각종 서류들과 카드 발급 같은 것들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이용자의 편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해당 일자리의 유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공존과 상생의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독일 국민들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삶의 편리함보다 근로자의 일자리, 즉 소득 보존을 더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 것입니다. 



                                                            언제까지 바다 속에 방치할 것인가?



신자유주의가 가장 발달했고, 정보통신 인프라가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른 대한민국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이용자와 소비자의 편리함만 최고의 가치인양 포장하지만, 그것은 내 편의를 위해 누군가의 직업을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 놈의 빨리빨리와 단기적인 이익 극대화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고용없는 성장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또한 보수 세력들이 절대적 체제인양 떠들어대는 자유민주주의의 의미도) 기술주의문화아 테크노폴리에서는 각기 큰 차이가 있다. 사실 테크노폴리에서의 자유민주주의란 발터 벤야민이 '상품자본주의'라고 불렀던 것과 유사하다...현재 존재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사상체계에 충분한 도덕적 실체를 제공하여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제가 평등이 답이다ㅡ경제성장과 행복지수에서 자세히 다루었던 것처럼 대한민국이 1인당 GDP가 늘어나 부유한 나라에 진입하더라도 소득불평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행복지수는 결코 높아지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초래하는 변화를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구온난화와 토지의 사막화, 대규모 토지 오염, 전방위적 생태계 파괴, 수질 오염에 따른 물부족 사태, 90% 이상의 종이 멸종된 생물다양성의 파괴, 만성질환과 정신질환의 폭발적 증가, 전체 인류의 반이 하루 2달러 이하의 절대빈곤층인 이유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사회적 합의 없이 모든 분야에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지구의 탄생 이래 6번째 종말을 걱정해야 할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회적 가치가 반영된 지배적 체제를 결정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 가치편향적인 주장입니다.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인류의 공존과 상생을 위해, 정의와 평화, 박애와 관용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용없는 성장, 1%에게 부와 권력, 기회가 독점되는 것이 과학기술 발전이 보장하는 테크노폴리(과학기술지상주의)라면 우리는 과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을 도구화하고 서열화하며 노동은 물론 일상의 삶까지 착취하는 과학기술의 유토피아라면 우리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사회적 문제가 가장 적게 발생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매우 느리고 조금은 더 힘들지라도.     


  1. 여강여호 2014.07.16 16:38 신고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성장이 마치 복지의 선결조건인 것처럼 떠들지만
    이미 현실에서는 실패한 정책임이 판명된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짧은 기간의 고성장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와 언론을 이용한 전방위적인 왜곡에 판단이 흐려진 젊은 세대에게 성장이 복지라는 거짓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종국에는 그들의 통치 편리성만 추구하고 있는 형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사회적 문제가 적은 길로 가는 정책이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결국 현명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2. 참교육 2014.07.16 22:08

    근대화, 성장제일주의... 효율과 경쟁, 신자유주의... 소비가 미덕이라는 성장 이데올로기시대는 이제 마감해야 합니다.
    성장 뒤에는 양극화문제와 부존자원의 한계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시장지향적인 정부는 성장이 미덕이라는 논리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통 경제학에서는 시장의 가격원리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이 하락하면, 직종에 대한 매력이 소실돼 노동공급이 감소해야만 한다. 노동력을 사기 위한 노동시장에서 기업의 구인 욕구와 노동자의 취업 욕구가 최적의 조합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가 제품 가격에 따라 구매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헌데 실제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되곤 한다. 노동자의 임금이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까지 떨어지면 노동공급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곤 했다. 작금의 비정규직과 임시직 및 일요직 노동자들이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에도 자신의 노동력을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제공하는 것도 이런 역설을 보여준다. 



                                                 


자유주의 경제학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이런 역설은 “임금이 생계비 이하로 낮으면 근로자들은 부족한 생계비를 벌기 위하여 잔업을 하거나 부녀자와 아동들도 일하게 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최신판인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한 지금, 하루에 투잡 이상을 띠는 노동자와 아르바이트에 나선 부녀자와 아동들이 넘쳐나는 것도 이런 시장의 가격원리에 내재하는 근본적 문제이다.



1940~50년대에 신자유주의의 원형인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의 주창자 중 한 명인 오이켄은 자본주의 역사에 만연한 이런 역설을 예방하려면 국가가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경쟁질서를 확립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독점기업들을 해체한 공정한 경쟁질서가 확립되면 노동시장에서 수요독점이 해소되기 때문에 이런 역설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임금이 하락할수록 노동공급이 과잉되는 역설(마르크스는 사업자가 자본 축적을 위해 생계비에 미달하는 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초과착취라고 했다)이 계속되면, 이를 막기 위한 최종 해결책으로 최저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임금에 관한 시장의 가격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생계를 위해 국가가 최저임금을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저임금 인상율은 민주정부 10년 동안 가장 많이 올랐다ㅡ다음이미지 인용 



오이켄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면 노동시장의 수요독점에 따른 임금 하락이 사라진다고 봤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제조업 중심의 무거운 경제에서 금융이나 아이디어 및 서비스 산업처럼 가벼운 경제로 이행할수록 이런 역설이 강화됐다. 특히 영미식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확대되면 될수록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속출했다. 



문제는 이런 역설의 강화가 일반화되자 노동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생계비가 노동자의 임금이 생존비용에 턱걸이 하는 수준에서 책정되도록 악용되는데 있다. 오이켄 등에 의해 최저생계비라는 제도가 도입됐을 때만 해도 평균적인 남성노동자의 임금만으로 가족의 생계가 해결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축과 교육, 보험을 들 수 있었다. 



헌데 1973~75년 이래 전 지구적 차원의 경제 성장과 규모가 줄어들고, 국가에 의한 독점기업이 아니라 시장경제에 의해 민간독점기업들이 부를 독식함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은 추락을 거듭했는데, 그 근거로 이용된 것이 최저임금제였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신조에 따라 부의 불평등이 극대화되자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에서 생존을 보장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이에 따라 부녀자와 청년 및 아이들이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신자유주의적 퇴행이 발생했다.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최저임금제가 노동자는 물론 가족의 해체나 파괴,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근거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존임금으로의 변질,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에 숨어 있는 두 번째 진실이다.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면 노동시간 단축도 불가능해지고, 연예와 결혼 및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양산되며, 각종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이처럼 노동의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기준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이것이 선장과 승무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던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다윗 2014.07.19 03:49

    진보세력들이 얘기하는것처럼 최저임금이 그들의 업적일까? 여당후보가 최저임금 모른다고 난리치고 할일인가? 임금은 시장의 공급과 수급사이에서 결정되는게 가장 좋은것이다 막상 최저임금정해놓고 외노자 조선족마구 들어오게해서 서민일자리 복지더 위협하고있다 더 웃기는건 공기업 은행권 귀족노조 언론노조만 더 배불리는 구조된것은 어떻게 이해해야하나요? 자칭 진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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