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들은 자신이 이룬 것들로 인해 자신의 후손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지독한 모순에 갇혀 미래세대 못지않은 피해자로 뒤집혀지고 있다. 그들은 압축성장의 표상에 갇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변한 것도 모자라, 현실을 끝까지 부정하면서 과거만 움켜쥔 채 자신의 자손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영화 '국제시장'이 그분들에 대한 현실도피적 헌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ㅡ'국제시장'에 대한 자세한 사회학적 비평은 별도의 글로 다룰 생각이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정수이기 때문에 '국제시장'에 대한 사회학적 비평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탐욕의 삼위일체’가 극소수의 승자에게만 미래로 가는 지독하게 좁은 풍요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절대다수의 패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궁핍과 위험으로 가득한 어디에나 자리하고 있는 미래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한, 그들의 전 생애에 걸친 삶의 모순은 죽어서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부의 불평등이 기회와 교육의 불평등으로 고착되고, 성장의 각종 부작용들이 개인의 어깨를 짓누르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위험사회의 비대칭적 피해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패자부활전을 인정하지 않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견고한 고체로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우만의 성찰처럼 고체의 밀도를 지닌 채 액체처럼 유동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들이 펼쳐놓은 물샐틈없는 그물망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산업발전의 단계에 따라 중후장대하며 자본과 노동이 적대적 동거를 피할 수 없는 무거운 경제에서, 핵심인력만 정규직으로 둔 채 나머지 부문의 인력들은 노동유연화에 따라 비정규직이나 아웃소싱으로 대체한 채 가벼운 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반대로 민주주의에 익숙하나, 유례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자유의 종류 때문에 민주주의가 빠른 속도로 퇴행 중이라는 사실을 직감하지 못하는 1030세대는, 계몽된 시민이었으나 지배자와 타협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에 적극 협력한 사람들의 착취의 대상이었던 노동자와 구별되는 압축성장의 주역들과, 시민정신의 계승자였으나 마르크스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민주주의의 경험이 너무나 적었던 민주화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 모두는 노동 개념과 자연 지배라는 성장의 낙관론이 사회와 문화의 퇴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영원한 진보라는 계몽의 피해자라는 데는 동일하지만, 살아온 시대적 경험이 틀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할 여력도 없다. 



인류문화학적으로 1030세대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압축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할 생각이지만 지금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경제적 발전이 최종 단계에 이르면 자유의 주체로서의 자아와 평등의 주체로서의 타자가 서로 공존하고 갈등하는 관계라는 사실이다. 헌데 삶의 고단함에 짓눌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 때문에, 그들은 극소수의 승자에 대해 절대다수의 약자와 패자의 위치로 내몰리고 있는 기술-경제적 발전의 피해자임은 분명하다. 평화와 공존의 종교인 이슬람 사회의 속담처럼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닮기 마련이다.’ 민주화세대는 물론 그보다 앞선 세대인 압축성장의 주역들에 대한 이해를 1030세대에게 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세 세대가 살아온 시대의 조건과 지배의 방식, 산업화와 민주화의 단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특히 여러 가지 면에서 경험의 부족과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 삶의 방식과 각자가 처한 환경 등에서 채울 수 없는 거리를 짧은 글로써 풀어낼 수는 없다. 



보릿고개라는 생존의 고민을 걱정했던 세대이자 국가와 사회와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받칠 수 있었던 세대들을 기술-경제적 발전 때문에 이기적일 정도로 개인주의화된 1030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산업화의 주역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성장과 발전을 목격했기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의 마음이 아직까지도 유효한 상태다. 그들은 자유가 억압받는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고,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한 지적 사기이자 농촌 해체 과정인 '새마을운동'의 희생양이어서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군사부일체와 국민교육현장, 국기에 대한 경레가 이상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박정희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그의 딸인 박근혜에 대한 사랑을 1030세대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1030세대에게 권위주의적 독재에 저항해 감옥을 들락거리며, 미군이 아부라이브 교도소에서 자행했던 고문보다 더욱 심한 고문에 시달렸고, 때로는 사형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민주화세대의 치열한 투쟁을 이해시키기 힘든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은 국가의 전방위적 압박에 운동의 동력이 약해질 것을 두려워해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교조적일 만큼 밀어붙였으며, 운동의 길이 너무나 힘겨웠기에 민주주의나 정의와 평화에 대한 개념에서 거의 권위주의적인 엄격함(민주화 주역에 대한 1030세대의 피로감이 여기서 나왔고 그 극단에 일간베스트가 있다)을 유지해야만 했다. 지난 60년 동안의 경제성장은 무수히 많은 부작용들을 후세대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으며, 그 결과 1030세대들을 압축성장의 신화에 짓눌려 존엄한 삶과 진정한 자유도 누리기 힘들어졌다. 



이들 모두가 계몽적 진보(국민을 착취의 대상으로 만드는 유신(維新)도 이에 속한다)를 앞세운 기술-경제적 발전의 지배세력의 희생양이었지만, 절대 다수의 패자들 사이에서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 남아 있어 자신의 입장을 철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세 세대 간의 화해란 갈수록 벌어지며 서로를 향해 폭력적 적의와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들이 난무하며 교차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기술-경제적 진보의 방향이 바뀌어 세상을 다시 한 번 뒤집어야 하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수없이 많은 갈등을 유발하는 세대 간의 전쟁(별도로 다룰 것이다)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가족의 복원과 세대 간 화해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익 추구를 위한 위장된 행태여서 세대 간 갈등과 가족의 해체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압축성장의 혜택을 최소한만 받았던 세대들과 그 피해를 감당하고 있는 1030세대가 부의 불평등과 위험의 불평등이 교차하는 하는 최악의 지점에 위치한 사회적 계급(파편화된 개인이라 연대의 능력도 없고 운동으로 승화할 동력도 없는 넓게 산재해 있는 계급)부터 비대칭적 종말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현재의 세상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1%와 다음 번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만 그들의 배에 승선한 사람들이라고 비대칭적 종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기술-경제적 발전의 수혜자로서 초국적기업의 위치에 오른 삼성전자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구축된 ‘네트워크의 효과’를 누리면서, 이제는 1등을 유지하기 위한 ‘마하경영’을 화두로 들고 나왔다. 이런 삼성전자그룹의 끊임없는 변신은 정보통신 기술이 어느 산업에나 적용되는 지적 능력의 특징 때문에 전통의 제조업에서 무거운 부분을 떼어내는 작업에 들어서는 단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속도가 핵심인 가벼운 경제에 승선하려면 전통의 제조업도 제 살을 깎는 살벌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고, 이는 대규모 실업의 양산과 공장의 폐쇄나 해외이전을 의미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초국적기업에 오른 대기업집단은 기술-경제적 발전의 궤도에 적응해야지 그에 저항하면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최근에는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는 환율전쟁에 갇혀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이 땅의 기만적인 기득권들은 참여정부 시절이 삼성공화국이었다고 하면서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거짓을 확대재생산했지만 당시에는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가 망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을 만큼 부의 독점이 임계점을 넘은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실에 가깝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지금의 새누리당 출신들이 일으킨 IMF 외환위기 때문에 삼성전자그룹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2008년의 월가 발 경제위기는 MB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현대기아차그룹이 약진할 수 있었다(물론 기술-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도움을 별로 받지 않았지만). 국민의 지갑은 털렸지만, 이 두 초국적기업의 매출과 자산규모는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에 이르렀다. 



전 세계 차원의 청사진을 그려가며 현재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초국적기업들의 탄생과 독과범적 시장 지배는 ‘탐욕의 삼위일체’가 만들어낸 계몽적 진보의 필연이었다. 이런 변화는 부정적 세계화에 뛰어든 모든 나라에서 공히 보여주는 공통의 현상이며, 모두가 알면서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지배적 추세로 자리 잡았다. 모두에게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자유가 주어졌고, 손만 뻗치면 움켜질 수 있는 무한한 상품들이 주어졌지만, 그 자유를 만끽하고 상품들을 구매하려면 저임금 노동이라도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즐기고 지불은 뒤로 미루거나, 아예 뒤는 생각하지 않는 카드의 사용도 한계가 있으며, 대학을 졸업했을 때부터 이미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을 가지고 출발하는 20대들은 노동예비군을 뜻하는 잉여가 아니라 폐기처분되기 직전의 잉여라는 뜻에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의 위협에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졌다.





부정적 세계화의 핵심인 이런 기술-경제적 관점(계몽의 변증법)이 보편적 진리로 자리 잡게 되면서 ‘탐욕의 삼위일체’의 실재적 지배자들은 절대적 권력을 형성하면서 세계적 특권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그런 압도적 힘을 동원해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하기로 합의한 국가들의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와 언론을 기술-경제적 원리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재편하는데 성공했다. 동시에 이들은 힘겹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체제를 내부로부터 야금야금 침식해 들어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인식의 전환(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를 인정하는 것)을 이루어내는데 성공했다. 정치와 문화의 대부분이 그 하부구조인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만들어내는 빈약한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발견을 철저히 벤치마킹해, 견고한 체제의 적대적 동반자였던 노동은 물론 정치와 문화의 힘도 약화시키고 변화시켰던 과정이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에 자세히 나와 있다. 



세계화를 다룬 책들과 연구논문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공통되는 내용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이 그 앞에 ‘부정적’이라는 단어를 숨긴 기술-경제적 승자들의 일방통행이고 폭력적인 약탈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2008년의 신용붕괴로 모두의 눈앞에 펼쳐진 부정적 세계화는 세계경제의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그린스펀과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잭 웰치가 참회의 고백을 하게 만들었고, 막강한 시카고학파의 퇴장을 불러왔지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거기까지 만이었다. 그밖에 달라진 것이란 1%의 부가 더욱 늘었다는 사실과 지구온난화의 죄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무거운 경제를 털어낼 기회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에 몰린 거대한 부도 최종적으로는 1: 9로 재편되고 있다(미국은 미국혁명과 남북전쟁 전후에도 1대 9 사회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직면한 현재, ‘탐욕의 삼위일체’는 가벼운 경제에 맞는 체제로 세상을 다시 한 번 뒤집기 위해 거대한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의 몰락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한 현상임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와 사회의 변화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반영할 수 없는 개인들이 인터넷과 SNS로 몰려다니며 정치의 과잉을 초래함으로써 세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 세계적 시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정치와 비정치의 중간에 위치’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국가 체제를 기술-경제적 관점에 맞게 재편하면서, 생활정치의 영역으로 뛰어들은 그들은 일체의 권위를 해체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을 따르며 좀처럼 뚫고 들어가기 힘든 현실공간마저 하나씩 점령해나갔던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펼치고 있다. 거의 모든 공적 공간마저도 그들의 로고와 브랜드로 도배해 버렸다(특히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보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장자유주의 우파정부의 허상이 밝혀지면서 온갖 정책적 실족들이 속출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술-경제적 관점에 의해 새롭게 재편된 국가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도 계몽적 진보의 암묵적 지지자였음을 밝힌(마르크스가 고전경제학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진실이지만 그 반대로 여전히 진실이다) 울리히 벡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필적하는 《위험사회》에서 “심지어 외적으로는 국민국가의 사법권은 국제적으로 상호결합한 시장과 자본의 집중이라는 역사적 발전뿐만 아니라, 오염물질과 유독물질의 지구적 교환 및 그에 따른 보편적 건강위협과 자연파괴에 의해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이런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이런 국가행위의 결과가 지니는 불투명성 때문에 정치적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찬 유권자들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그네타기 유권자’로 변해가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한 채 비판하는 사람들로 인터넷과 현실공간을 떠돌아다녔다.



문제는 이런 투표 불참자가 늘어나면서 최소한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면서 그 민주적 대표성이 흔들리게 됐다는 점이다. 즉 각 정당과 후보들은 조직과 돈을 동원해 ‘투표에 참여하는 열성적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필사적인 전투를 벌어야 했고, 그 부작용은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침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중매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고, 의제 선정과 패널 선정에 따라 여론 조작과 왜곡의 가능성이 심각한 문제도 떠올랐다(앤서니 기든스가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언급한 정치학에서의 ‘의제 설정 이론’을 참조하라. 그 단계는 유권자들이 중요시 여기는 ‘대중적 의제’, 의회와 주변 기관들의 논쟁 단계인 ‘정부 의제’, 입법화 단계인 ‘경정 의제’의 3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보도하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정치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민적 정서’의 대부분을 대중매체가 선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대중매체는 고가의 광고와 협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하자). 



이는 모든 나라에서 공통된 현상이며, 정치 과잉과 투표 불참이라는 이중적 분화가 정형화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국가기관을 동원한 선거 개입이 가능한 세상이 됐고, 민주주의의 후퇴는 뚜렷한 추세로 자리 잡으며 과거의 망령인 권위주의 독재와 파시즘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정치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근대이성의 총아인 과학에서 출발해 지배적 교리로 자리매김한 기술-경제적 진보가 왜 민주주의의 퇴행과 맞물려 돌아가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성장이 정체돼 새로운 빈곤층이 늘어나고, 중산층의 두께가 얇아지고, 사회는 물론 가정 내부에서조차 혼란과 불화, 적대가 늘어나고, 사회의 분열이 회복가능한 상황에 이르면 과학과 기술-경제적 진보의 본질인 잠재된 폭력성이 현실공간은 물론 사이버 세상이라는 하위정치의 영역에서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일베 현상’이 대표적인데, 이런 추세에 대한 울리히 벡의 설명에 따르면



한편에서 하위정치 행동의 영역은 민주적 규칙의 적용에서 면제된다. 다른 한편에서 심지어 내적으로도 정치는 체계적으로 고무된 외적 요구들에 따라 군주적 특성을 여전히 보인다. ‘정치적 지도력’은 행정부와 이해집단에 맞서 강력하고 독재적인 실행력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시민과 관련하여 그것은 평등한 것들 중의 평등한 것이 되어야만 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처리해 주며 진지하게 고민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은 질문을 없애고 자문을 줄이기 위한 모든 행동에 가해지는 제약을 단지 반영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또한 민주적 정치체계의 구조에 내재해 있는 긴장과 모순을 표현한다. 즉 의회의 토론과 공동영역을 한편으로 하고, 의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신의 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권력을 통해 자신의 ‘성공’을 평가받는 행정기관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관계. 특히 선거운동체계는 준민주의의적인 ‘임기직 군주’의 실제적 허구를 항상적으로 조장하고 재생하는 의사결정 당국들이 서로에 대해 이바지하도록 강제한다. 이전의 정책들이 거둔 성공을 공언하건 비난하건 상관없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7.05 10:22 신고

    인간의 욕망이 만든 세상 막장까지 왔다는 느낌입니다.
    살기위해서 먹는 게 아닌 먹고 입고 즐기기 위해서 사는 동물적인 욕구가 결국의 파멸을 불러올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05 15:24 신고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공멸로 몰고 갑니다.
      지금까지의 성장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지 않는 한 공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업들의 폭주를 정치로 막아야 하는데 이놈의 정치인들이 정반대로만 달려가니....
      정치 실패가 패인이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민주주의의 나쁜 점만 부각되는 시대로 진입한 것 같습니다.

  2. 耽讀 2015.07.05 16:52 신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그리고 언론권력은 자신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진실을 왜곡합니다. 서민들이 수구기득권정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이유도 이들 권력삼위일체가 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죠. 그리스를 보도하는 국내언론들은 이 지경이 된 이유를 복지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부패때문입니다.
    갈수록 전세계는 이들 권력삼위일체가 만든 왜곡된 질서로 빠져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이겨낼 수 있느냐입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힘도 세고, 자신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잘 합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분열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6 14:58 신고

      국민들이 제대로 된 정치와 민주주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치와 민주주의가 최고에 이를 때 서민들이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워낙 책을 읽지 않으니 TV에서 해부어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지금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특권엘리트들의 독점물입니다.
      국민은 자포자기 상태이고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7.06 08:55 신고

    오늘 쓰신글이 다른때보다 약간 길어 한번 읽고 이해하기란
    제 수준에서 어렵습니다
    두세번 정독해야 할듯 싶어 댓글 이정도로 마무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6 14:59 신고

      좀 어렵지요?
      원래 퇴고를 해야 할 초본이라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4. 바람 언덕 2015.07.06 10:05 신고

    지난 주말 아고2 오프모임 잘 가졌습니다.
    도령님 이야기 많이 했어요.뵙지 못해 정말 아쉽네요.
    이런 저런 정치 이야기도 많이 하고 앞날도 모색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 늙은도령 2015.07.06 15:02 신고

      제가 후기를 읽어보겠습니다.
      약의 내성 때문에 조금 힘든 상황이라....
      좋은 시간됐다니 다행입니다.^^

  5. 『방쌤』 2015.07.06 11:54 신고

    모두들 제대로 투표를 해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지도자를 뽑아야지요,,,
    계속 이렇게 살수는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 늙은도령 2015.07.06 15:05 신고

      확실한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데, 그들이 국회나 청와대로 들어가면 또 로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지라...
      정말 어렵네요.
      민주주의가 너무 무너진 상태라 이것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고민이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6. base 2015.07.06 18:07

    세 세대간은 갈등은 그 어느 시대보다 심화된 것은 사실인거 같습니다. 지난 60여년동안 이 세대들이 경험한 삶이 너무도 다르니 그러지 않겠나 싶네요. 그리고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더욱 더 잠식해가는 현실에서 격게되는 수 많은 현실적 모순에 우리가 갇혀있는게 아닌가요. 그래도 이번 그리스의 국민투표 결과는 굉장한 의미를 시사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늙은도령 2015.07.06 18:22 신고

      네,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것을 하나로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어차피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역사에 맡겨질 일이니 그것 때문에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젊은이들이 제대로 역사를 알고 제대로 된 참여와 선거,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네요.
      요즘은 뭐든지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 힘겨운 세상이라....



‘탐욕의 삼위일체’가 주도한 문명의 재구축은 홉스가 바랐던 최고주권의 《리바이어던》에 근접하면서도,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와 ‘환상의 짝꿍’을 이룬 자유주의(푸코가 말한 통치술로의 자유주의)를 지배적 이념으로 끌어올렸다. 부분적 진리에 불과한 진보에 대한 대책 없는 낙관론이 보편적 진리가 됐고, 성장의 독점으로 발생한 불평등과 위험의 확대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에서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졌다. 



이런 방식으로 ‘진보의 낙관론’에 절대적 권리를 부여한 ‘탐욕의 삼위일체’는 산업혁명의 발생지 영국을 거쳐 천혜의 조건을 갖춘 미국에 정착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을 건국이념으로 정립하면서 유일제국의 탄생을 알렸다. 풍요만 생각하면 되는 천혜의 땅에서 미국의 지배엘리트(WASP, 앵글로색슨계 미국인 프로테스탄트)은 국가를 기업화 했고, 기업과 개인의 이윤 추구 행위를 신의 영역에 올려놓음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했다.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에서 다룬 1929년의 경제대공황은 ‘탐욕의 삼위일체’가 해체될 최대의 위기였지만 뉴딜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고비를 넘긴 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같은 국지적 전쟁들과 세계적 차원의 파시즘적 개발을 통해 거뜬히 재기에 성공했다. 계산이 불가능한 천문학적인 비용과 수천만 명에 달하는 죽음, 회복불가능한 환경파괴의 대가로 부활한 ‘탐욕의 삼위일체’는 제조업의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린 노동 분업(포드자동차의 노동 분업이 분기점)을 전 세계적 차원으로 분산배치한 포스트포디즘을 단행하면서 전 지구적 시장구축을 위한 성장과 개발의 엔진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전성시대를 만들어낸 포스트포더니즘의 본질은 저임금 노동력을 착취하고 산업의 위해요소를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이전한 것으로, 식민지 팽창(제1차 세계화)에 이은 제2차 세계화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이 환경오염을 동반한 저임금노동의 천국으로 등장했지만, 매년 중국을 뒤덮고 있는 스모그가 한반도를 거쳐 미국까지 공습함으로써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성장의 대가는 위험의 확산이었고 노동착취에 따른 부의 불평등이었다.



1, 2차 오일쇼크와 미국의 강 달러 전략 때문에 국가부도 직전에 이른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무너지자, 자유시장 자본주의 진영에서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어리석은 선언들이 속출했다. 속빈강정이자 속물들의 경연장이었던 ‘제3의 길’은 무차별적인 성장 엔진의 출력 향상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뿐, 인류를 위한 제의 길은 찾지 못했다. 



석탄을 대체한 석유의 에너지혁명과 석유의 정제기술의 발전 및 플라스틱의 탄생으로 자본주의 전성시대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지만, 전 세계적인 성장이 가속화됨에 따라 인류와 자연은 각종 위험에 노출되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다(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와 《글로벌 위험사회》를 보라). 핵발전의 급속한 확대도 위험의 확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켜 인류의 공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내몰렸다.  



인류를 부흥시킨 석유의 역사(에너지전쟁의 역사)는 자본주의 전성시대의 역사이자, 제국주의와 유일 제국이 전 세계를 착취하는 탐욕의 역사였다. 인류(특히 미국, 최근에는 중국이 가세)가 석유를 사용함에 있어 미래세대의 사용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염두에 두면서 속도 조절에 성공했다면, 지금 같은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에너지 혁명과 대규모 채굴은 언제나 파괴를 동반했고, 그 핵심에 '물보다 싼 석유'가 자리하고 있으며, 높은 이율로 개발비용을 제공한 거대 자본(특히 영미의 거대 금융업체)과 석유 확보를 위해 전쟁을 일삼은 군산복합체의 탐욕으로 얼룩졌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산업의 내부에서는 숙련된 남성 노동자의 퇴출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 빈자리들이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과 어린 청소년들로 대체되고 있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장려하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인류 역사상 비정규직 알바로 평생을 전전하는 세대가 탄생했다. 이는 뒤늦게 서구의 모델을 좇아가는 신흥국과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까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노예의 등장과 세습자본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지배적 산업의 형태도 중후장대한 제조업 중심의 무거운 경제에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가벼운 경제와 서비스 산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 



고용의 질과 조건을 열악하게 만든 노동유연화와 직장을 구하기 위한 이동의 거리가 넓어지면서 가족과 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국민국가의 독점적인 주권도 전 세계적인 시장권력으로 넘어가고 있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두가 아는 이 추악한 비밀을 최고 지도자가 공식적으로 발설했다는 이유로 ‘탐욕의 삼위일체’에 빌붙어 사는 집단들의 융단폭격에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는 후반에 다루겠다). 



성장과 개발이 전 세계적인 규모와 파시즘적 속도로 이루어질수록 자원은 고갈되기 시작됐고, 자연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이에 따라 대기의 질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화학비료의 대량사용에 따라 토지의 오염과 물의 산성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이 모든 부정적 결과들이 치명적인 지구온난화와 광범위한 사막화, 대규모 개발이 초래한 환경오염에 따른 수질 악화(물 부족 사태의 핵심)로 집결되고 있다. 기상이변의 속출은 국가적 차원에서 대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부정적 세계화에 따라 기업과 국가간 경쟁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저임금의 고착화와 노동유연화에 따른 상시적 구조조정과 대량실업이 보편화됐다. 이 때문에 새로운 빈곤과 결핍에 시달리는 사회계급이 탄생했고, 부와 위험의 불평등한 분배가 기회의 불평등과 합쳐져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이익의 독점을 위해서는 단 한 발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직전까지 지구라는 행성과 말하지 못하는 자연과 그저 죽어갈 뿐인 동식물과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간의 조건까지 최악으로 내몰고 있다. 





가족과 사회의 몰락은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고, 성 평등이란 미명 하에 경제적 불평등과 취업의 불안정을 동반하는 이혼이 증가일로에 있다. 대중매체와 손잡은 성산업의 발달은 상업적으로 포장되고 고무된 인스턴트 sex를 성해방으로 대체했고, 상시적이고 일방적인 피임만 번창시키는 부작용을 속출시켰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결혼이라는 개념처럼 거추장스럽고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것이 됐다. 



인류라는 추상적이고 공간적인 개념을 동시대의 정치·경제·문화적 개념으로 바꾸는데 성공한 매스미디어의 화려한 비상은 자신의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선정적인 타국의 사건들과,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차이를 반영하지 않은 경험들을 실시간으로 안방과 거실로 전달함으로써 스크린 상에 보이는 것과 자신의 현실 간의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양산해냈다. 인류를 소비지상주의에 매몰되고 순간적인 쾌락에 함몰되도록 만든 것은 매스미디어가 만든 최대의 업적이다.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의 등장은 과학기술 발전의 필연적 결과였지만, 국가와 사회, 가족의 몰락과 해체에 가속도를 붙였다. ‘탐욕의 삼위일체’는 마이다스의 손이어서 그들의 손이 스쳐간 곳들은 모든 부를 뺏긴 채 하나같이 폐허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공격 일변도의 남근과 근육질로 대표되던 남성의 권력은 임금이 줄어들고, 실업의 기간과 횟수가 늘어나면서 초라하게 찌들어졌고, 그만큼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금고는 가득 채워졌다. 자궁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권력은 경력단절과 양육권이라는 빈곤의 위험성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그만큼 자본의 금고는 더욱더 채워졌다





이 모든 것이 서로의 성에 대한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진행됐는데, 남성은 노년에 대한 두려움과 sex파트너에 대한 비용증가와 근육질의 연성화로 말년의 외로움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어둠의 심연으로 떨어졌다. 여성은 성적 자기결정권이 강화되고, sex파트너의 숫자는 늘었지만 항시적인 피임과 낙태의 증가, 건강의 악화와 만성적인 스트레스(정반대도 있다)에 시달리게 됐다. 



남성 위주의 경제구조가 여전하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과 경력 단절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고, 확실하게 유전자의 반을 전달했다는 생물학적 판타지(자녀에게 투사된 슈퍼맨콤플렉스와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대표적)에 사로잡힌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과잉투자라는, 그래서 자본의 금고만 채워주는 집착과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사회는 대중매체와 인터넷에 의해 공적인 기능이 해체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드라마와 영화, 예능과 토크쇼, 리얼리티쇼, 스포츠경기 결과와 돈이 되는 모든 분야에서 성공한 대중화된 스타들의 자질구레한 일상과 스캔들에 빠져들었다. 각종 오락 프로와 리얼리티쇼의 득세는 연예인과 스타를 넘어 소시민의 사적인 일상까지 대화의 주제로 끌어들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치적이고 사회경제적인 공적 공간이 사적인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함으로써 지배엘리트와 피지배층의 분리(정치혐오와 무관심의 폭증)가 본격화됐다. 공적인 것들이 사적인 것들에 점령됨에 따라 공적 공간으로서의 정치적인 것들과 서민의 안정망으로서의 사회는 존재의 근거를 상실했다. 시민정신이란 존재할 수 없고 시민단체마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어 민주주의마저 작동 불능의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전 지구적 시스템을 구축한 시장권력에 맞설 수 없는 국가(정부)는 주권의 행사를 국내로만 돌려 ‘탐욕의 삼위일체’가 남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만 전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자유와 진보(성장과 개발)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사회민주주의의 퇴조와 함께 복지의 축소가 뒤를 따랐다. 사회와 국가의 쇠퇴로 사회경제적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반이 해체되고 자유의 공간마저 파고들어 기본적 권리마저 침식시켰다.



거의 모든 장벽들을 제거한 ‘탐욕의 삼위일체’의 폭주는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두려워했던 것들(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커지면서 정치적 자유마저 박탈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전체주의적 성향과, 이기적인 성향의 강화에 따른 공적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을 현실화시켰으며, 유일제국 미국의 몰락과 유럽의 경제위기, 식민지 경험이 있거나 ‘자원의 저주’를 겪고 있는 나라에서 항시적 내전상태가 고착되고 있다. 



이밖에도 어제까지 이웃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인종청소를 동반하는 항시적인 국지전과 ‘탐욕의 삼위일체’를 비난하면서도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테러리즘의 무한 확장(미국이 주도하고 있다)이 거대한 폭력시장을 양산하고 있다. 집단과 집단,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어디서도 안심할 수 없는 공포가 유동하는 세상이 도래했고, 부의 불평등과 위험의 불평등은 교차하거나 중첩됐고, 그에 따른 비대칭적 종말(빈국과 빈곤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이 전 지구적 경향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세상은 구글 회장 슈미트가 ‘수없이 많은 인공위성이 하늘을 날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광기 어린 선언처럼, 개인의 사생활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절대 권력자 빅브라더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으며(특히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유리감옥》을 보라),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예언한 쇼비즈니스 세상도 보편적인 현상으로 일상화됐다(특히 닐 포스트만의 《죽도록 즐기기》를 보라). 



모든 파국의 징후들과 상시적인 내전상태, 무차별적인 자살 테러들이 ‘오늘의 뉴스’를 점령하고, 모든 것을 오락화하는 공적 공간의 사적화가 강화됨에 따라 정치의 실종과 사회의 몰락이 동시에 일어났다. 저임금 비정규·파견·임시직과 장기 실업이 일반화되고, 승자독식과 성공지상주의가 당연시되고, 실패의 책임에 이어 위험과 공포의 재분배가 개인화된 세상에서 ‘탐욕의 삼위일체’는 1%에 의한 99%의 배제와 소외를 만연시키고 있다. 



슈퍼클래스로 불리는 1% 내에서도 하위 0.9%는 ‘다음번 별도의 통고가 있을 때까지’만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 수 있다. 이 상태로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계속된다면 인류의 부는 0.1%의 수중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나머지 99.99%는 소득과 자산의 차이에 따른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류의 삶은 퇴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2.18 07:29 신고

    대처와 레이건... 무슨 이즘인가를 붙여 세상을 뒤집어 놨지요.
    참 사악한 친구들입니다. 기득권자들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추악한 자본주의의 생얼입니다.

    • 늙은도령 2015.02.18 16:33 신고

      60년대부터 준비해 70년대에 미 재무부와 양국의 금융업체를 지배하게 되면서 80년대에 이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상위 1%를 위한 세상이 됐습니다.

  2. 아유 정말 ~~ 힘든 분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잘보고갑니다

    • 늙은도령 2015.02.18 16:34 신고

      갈수록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으면 폭동도 가능한 시점으로 가고 있습니다.

  3. 꼬장닷컴 2015.02.18 09:32 신고

    도령님..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리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십시요.
    이제 구정 지나고 뵙도록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18 16:34 신고

      네, 님도 건강하시고 설 연휴 잘 보내십시오.
      좋은 세상을 기대해 보면서요.

  4. 2015.02.18 10:47

    비밀댓글입니다

  5. *저녁노을* 2015.02.19 04:44 신고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 늙은도령 2015.02.19 21:40 신고

      님도 즐거운 명절 되십시오.
      저는 3월 초에 이사가는 것 때문에 준비를 하느라...

  6. 바람 언덕 2015.02.19 11:42 신고

    본문의 내용과는 다른 댓글입니다만...
    새해 인사드리러 왔어요.
    건강하시고, 더욱 빛나는 글들로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더두말고 덜두말고 딱 지금처럼만...
    건강과 글...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시는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 늙은도령 2015.02.19 21:49 신고

      노력해야죠.
      잘 되겠지요.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가끔은 뜻대로 되지 않아서.
      즐겁게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다 보면 건강도 좋아지니까.

  7. 공수래공수거 2015.02.20 14:14 신고

    설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아무쪼록 건강하신 한해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2.21 00:04 신고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바로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아무튼 조심하면서 설 연휴, 체력을 비축 중입니다.
      3월 초에 이사 가야 하기 때문에....

  8. 2015.02.21 03:25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2.21 00:12 신고

      아, 그게 영문 중에 님의 아이디와 비슷한 일베들이 있어 차단했는데 디스토리가 비슷한 아이디는 동시에 차단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들이 보통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해당 아이디와 비슷한 아이디를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디스토리의 차단 프로그램도 그런 것 같습니다.

      헌데 다음 메인페이지가 무엇을 말하는지 저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못 찾았습니다.

  9. 2015.02.21 04:03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2.21 04:28 신고

      답장 보냈습니다.
      늘 관심과 격려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글 중 일부를 여러 매체(미디어오늘 등)에서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인터넷매체의 편집장은 제 글을 자신의 글인양 여러 편 올려 잘렸답니다.
      이러다가 정말 유명해질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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