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부에 나가 파괴행위를 하는 데 아주 익숙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면 전투보다는 건설에 더 시간을 쏟을 겁니다.


                                                    ㅡ 피터 시아렐리 전 미 육군 기갑부대 사령관, 《쇼크 독트린》에서 재인용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와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돌풍을 일이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두 편의 영화에서 무너진 유일제국의 뒤틀려진 피해의식과 일그러진 애국심을,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에 의해 세상의 주변부로 밀린 백인남성의 입장에서 다루었는데, 트럼프 돌풍의 상당부가 이런 백인들의 정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스트우드는 <그랜 토리노>에서 소위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국 정계와 재계, 군부, 종교, 허리우드, 언론 등을 독식하고 있는 슈퍼엘리트(라이트 밀스가 정의한 ‘파워엘리트’의 21세기 버전)의 정반대에 서있는 저학력‧중하위층 산업노동자이며, 계속해서 시대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백인남성의 피해의식을 다루었다. 



교묘하게 포장했지만 이들은 청교도적 가치에 따라 가족과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자식들은 모두 떠났고, 얼마 안 되는 자신의 재산만 노리는 등 남은 것이란 미국식 산업자본주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차 한 대(그랜 토리노)와 집 한 채 뿐이다. 제국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그들은 더 이상 물러날 때가 없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모든 것과 단절한 채 지내면서도, 미국적 정신과 가치의 부활에 한 줌의 희망을 남겨둔다.



뿌리 깊은 인종적 편견은 새로운 이웃으로 자리한 베트남 이주자 가족에 대한 구원의식으로 대체된다. 주인공의 비극적 죽음(종말론적 영웅의 죽음은 희생과 구원이란 명분으로 포장될 때 가장 울림이 크다)은 극도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은퇴한 백인노동자가 가족도 아닌 인종적 타자에게 희망을 두는 것으로 그려진다. 퇴락한 아메리칸 드림의 21세기 버전이 존재할 수 있다면 이런 식으로라도 되살아나기를 희망한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맞춰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순간, 주인공은 가장 폭력적인 방식을 유도하는 비폭력적 저항의 희생자로 대치된다. 그를 죽인 폭력배들(이들은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이라크 스나이퍼로 대체된다)은 가해자이기 전에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피해자임에도 그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백인남성 산업노동자의 피해의식을 극대화한다.





이런 극단적인 폭력의 대물림과 비극의 패러독스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을 통해 일그러진 애국심으로 한 단계 올라선다. 한층 젊어진 주인공은 (제국의 허상과 치부를 폭로한 카트니라 피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국의 종말을 표상했던 9.11사태와 이라크 전쟁으로 ‘back to the future'를 감행한다. 제국의 범죄는 완전히 배제한 채 일방적인 시각으로만 영화를 이끌어가면서도 전통적인 가족애를 강조하는 이율배반적 관점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이라크의 젊은 어머니와 어린 아이의 저격도 서슴지 않는 주인공은 뒤틀려진 피해의식이 애국적 저격으로 포장된다. 주인공의 가족애와 대비되는 저격수로써의 잔인함은 애국이라는 절대교리에 의해 추호의 죄의식도 부가하지 않는다. 이스트우드는 9.11테러의 근원에 자리한 ‘정치적 자본주의’와 제국적 탐욕을 위한 대량학살과 일방적인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미국의 피해와 분열만 부각시킨다.



존 웨인(미국 건국의 주역을 대표한다)의 변종이자 뒤틀린 대변인을 자처하는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이란 나라가 백인의 이주와 정착, 건국과 제국에 이르는 전 과정이 절대적 약자(원주민, 흑인노예, 백인 하인, 여성, 이주민 등)에 대한 일방적 폭력이었음에도 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는 단 한 컷도 할애하지 않는다. 이스트우드에게는 제국의 몰락과 부활만 중요할 뿐,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배제된다. 



<황야의 무법자>와 <더티 해리>의 주인공이었던 이스트우드와 <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달러 베이비>,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감독으로서의 이스트우드는 미국의 역사 전체에서 줄기차게 이어져온 폭력과 정복의 악순환에 갇혀 있을 뿐, 어떤 반성적 고찰도 보여주지 않는다. 폭력에 대한 그의 강박적인 영상의 수사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에만 집중돼 있어서 제국의 범죄와 몰락의 본질에는 천착하지 않는다. 




이스트우드는 두 편의 영화에서 저학력‧중하위층 산업노동자이자 제국의 숨은 주역이었던 두 명의 백인을 통해 뒤틀어진 피해의식과 일그러진 애국심을 종말론적으로 연결시킨다. 두 명의 주인공이 미국적 정신과 가치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는 점에서 제국의 범죄는 면죄부를 받는다. 



사회적 불의에 대한 분노는 정의를 갈구하고 실현하는 출발선이지만, 그것이 분명한 적이 있는 피해의식을 매개로 하면 극단적인 폭력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미국의 대표적인 히어로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 극단을 왔다갔다 하는 ‘배트맨’과 ‘람보’가 가장 대표적인 예로, 이것이 정치적 영상으로 표출될 때 극우적 민족주의(히틀러가 대표적)가 힘을 얻기 마련이다.



뒤틀려진 피해의식과 일그러진 애국심이 교차하는 곳에 폭발 직전의 분노가 자리하는데, 이것을 노골적으로 파고든 극우 정치인이 부동산재벌 트럼프다. 그는 배트맨의 부와 람보의 폭력성을 소유하고 있어 제국의 주역이자 시대의 피해자인 저학력‧중하위층 백인남성과 노동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기존의 후보에게 직설적으로 공격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열광한다. 현실정치에서 총으로 대표되는 미국 백인남성의 전통을 사용할 수 없지만, 트럼프가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 기존 정치인의 신물나는 거짓말을 박살내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의 전통을 중시하는 백인남성의 총과 같다. 





이들에게 거침없고 폭력적이며 정제되지 않은 트럼프의 발언들은 상위 1%의 슈퍼엘리트와 제국의 적들을 향하기에 즉각적인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극도의 불평등과 구조적 차별이 난무하는 현실의 부정의를 통쾌하게 까발리는 그의 언행은 위선과 거짓으로 점철된 슈퍼엘리트의 정치경제적 담합에 치명적인 카운터펀치처럼 다가온다.



트럼프의 돌풍은 허리우드와 거대언론들이 포장해온 미국의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병들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레이건을 지도자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티파티(미국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보스턴 차사건에서 따온 이름)가 이들의 카타르시스에 동참하면 트럼프 돌풍은 오바마 다음의 백악관 주인이 극우‧인종차별의자의 몫이 될 수도 있다.  



극우 언론제국을 건설한 루퍼트 머독이 트럼프 돌풍을 폭스TV를 통해 확대재상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극우세력의 입장을 주도하고 있는 3개의 종편이 한국판 트럼프를 만들어 박근혜 다음의 청와대 주인으로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남북한의 극한 대립을 부추긴 것이 3개의 종편이었다는 점에서도 드럼프 돌풍의 한국판이 다음 대선에서 재현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8.24 08:39 신고

    트럼프의 돌풍이 어디까지,언제까지 이어 질런지
    두고 봐야겠네요
    JTBC 사주의 움직임 주시 해 봐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8.24 16:03 신고

      트럼프와 홍석현이 관계가 있나요?
      아니면 손석희를 자를 것이라는 것인가요?

      트럼프의 돌풍은 미국이란 나라의 특수성을 넘어 전 세계로 극우세력에게 퍼져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2. 불루이글 2015.08.24 20:45 신고

    정말 예리 하신 분석 감탄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중대한 판결이었음에도 1973년 낙태(를 개인의 권리로 인정한 것)에 대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의 연합’에게는 연달아 일어나는 터무니없는 일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ㅡ 미클레스웨이트와 울드리지의 《더 라이트 네이션, 미국 보수주의의 파워》에서 인용




당신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의사를 표현하는 일은 오래 전에 그만두었다.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원칙 때문에 인종주의자나 고집불통, 동성애 혐오자로 불리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람들을 공평하고 또 정직하게 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옳은 일과 그른 일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다.



위의 인용문은 미국 우파의 풀뿌리 조직인 ‘티파티’의 지도자 중 한 명인 글렌 벡의 《글렌 벡의 상식》에 나오는 내용으로, 공화당의 주류로 떠오른 기독교-신보수주의의 배타적인 신념이 고스란히 묻어나옵니다. 그들은 ‘인종차별과 원리주의, 동성애 불허’가 하나님의 뜻이자, 악에 대한 성전이라고 주장합니다.





궁극적으로 연방정부를 폐쇄시키는 것이 목표인 기독교-신보수주의 교합의 특징 중 하나가 좌파의 전략과 전술을 차용해 기독교의 복음주의 문화운동으로 대체한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낙태와 동성애 반대 운동’입니다. 그들은, 매케인의 러닝메이트였던 사라 페일린이 주장한 것처럼, 강간(근친상간과 집단성폭행까지 포함)으로 인한 낙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종파인 청교도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은 동성애를 낙태와 함께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악한 일’이자 헌법에 반하는 ‘그른 일’이라고 주장하며, 폭력과 테러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은 미국에 상륙한 청교도들이 신의 이름으로 5,000만 명의 원주민(인디언)을 죽음으로 몰고 갔듯이, 낙태와 동성애도 멸종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이런 논리가 극단에 이르면 애를 낳지 않는 여성들도 멸종의 대상이 된다).



이들의 막가파식 성경 해석이 얼마나 궤변에 해당하는지는, 창조주가 모세에게 내린 십계명에 반하는 고의적인 총기사고를 옹호하는 논리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들은 '살인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반하는 고의적인 총기사고를 옹호하기 위해ㅡ살인을 계속하기 위해 총을 쏜 자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총기에 있다는 궤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통진당 해산과 아청법 합헌 판정을 내린 (정신 나간) 한국의 헌법재판소처럼, 보수 편향적인 미 연방대법원이 식민지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뿌리 깊고 극단적인 낙태와 동성애 혐오와 반대를 무릅쓰고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내린 것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에 준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1》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헌법과 종교의 나라인 미국에서, 그것도 두 개의 가치를 지탱해온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 합헌 판정’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보수 성향의 이중개념자 엔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선택이 결정적이었습니다(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에서 나왔다). 



올 4월에는 천년 이상 지속해온 이성 간의 결혼에 무게를 두는 듯했던 그는 ‘결혼이 사랑과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최고 이상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동성커플이 이러한 결혼의 이상을 경시한다고 볼 수 없으며, 그들도 결혼의 최고 이상을 존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라며 동성결혼 합법화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예수의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의 과학적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의미에서의 사회주의)를 동일시하며, 진화론마저 ‘타락한 진보주의 과학자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기독교 우파는 ‘다름을 틀림’으로 보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신의 섭리마저 거부하는 타락한 진보주의 대법관들이 저지른 ‘그른 일’로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선악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는 진보의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이번 판결의 인류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란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이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었던 이중개념자 케네디 대법관을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도록 설득한 것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은, 어떤 사안에는 보수적이고 다른 사안에는 진보적인 이중개념자를 향해 우측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가치의 정당성으로 그들을 설득해 좌측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진보가 정치적이고 법적인 승리를 위해 우측으로 옮기면, 바로 그만큼 진보적 가치는 보수화되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은 그렇게 기울어지고, 경사는 심해지는 법입니다. '종교가 정치와 만나면 사회에서 피바람이 분다'는 인류의 경험적 성찰도 운동장이 기울질수록, 그래서 사랑과 관용, 자비와 포용이 자리할 수 없는 극단의 세상만 번성하게 됩니다. 종교의 최전선에서 신의 창조는 진화의 법칙을 만든 것이며, 미세조정만 자리하는 진화의 법칙에 따라 지금도 창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모조리 무시합니다.     



종교의 보수화가 정치의 보수화보다 더욱 무서운 이유는 세상의 모든 것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재단하는 아전인수격 마녀사냥에 있습니다. 이들의 외눈박이적 행태는 '사람의 아들'로 이땅에 와서, 차별받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공적생활 3년의 가르침마저 훼손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2015.06.29 08:13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19:17 신고

      사실 동성애는 인류의 시작부터 있었습니다.
      신이 창조한 인간에게는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이 다 있어서 동성애자도 나올 수 있습니다.
      진화론적으로 봐도, 분자생물학과 뇌과학을 보더라도, 기타 첨단 과학들에서 밝혀진 것은 동성애적 기질을 지닌 것이 천부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의 인권과 행복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누구에게 넌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선악이 구별될 수 있는 것에 한정됩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그 진화의 과정은 자유의지에 맡겨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그런 신의 넓은 선택을 믿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6.29 08:55 신고

    인간은 만인이 평등하다는걸 확인시켜 주는 법안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19:19 신고

      종교는 개별적 신앙의 세계입니다.
      다양한 종교가 있듯이 결혼도 다양한 선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천부적으로 동성에 끌리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인권이고 자유이고 권리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평등한 것이지요.

  3. 김성순주임 2015.06.29 11:13

    늙은도령님 화이팅!

  4. 2015.06.29 11:15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19:21 신고

      참고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점에서는 매우 게을러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도 벅차기 때문에 해야지 하면서 마냥 미룹니다.
      감사합니다.

  5. 참교육 2015.06.29 12:35 신고

    역사는 수구보수의 반동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살아 있다는 뜻은 역사가 반동이 아니라 진보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느리기는 하지만 천천히... 그게 역사 발전이지요. 동성애법도 만찬가지고요.

    • 늙은도령 2015.06.29 19:23 신고

      교육이 할 일이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평등하고, 자아를 속이지 않고 숨길 필요가 없는 인권과 자유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고, 다름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런 다름에서 창조적인 에너지가 나옴을 배울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사랑과 행복을 찾아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가치라고 믿고 있습니다.

  6. 개독인 2015.06.29 13:55

    저는 합법화에 반대합니다. 기독교인이 철저하게 못되먹었고 이기적인 것은 사실이고 그들이 선한 일을 악한 행동으로 막으려니 욕을 먹고..어떤 일이든 정당하지 못한 일이 되어버립니다.그러기에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지금의 한국 기독교는 권력에 편승하고 아부하고 돈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선한 일이라 해도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나 또한 개독인으로서 깊이 반성하고 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진국이 합법화를 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은 아직 어느 곳도 알리려 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한 번쯤 다른 방향도 봐야하지 않을까요? 어린 자녀에게 동성끼리의 성교육도 시켜야하며 그에따른 각종 질병도 감내하고 종교에서 그들을 죄라고 명하기 힘듭니다.. 종교는 말 할 권리가 없습니다. 종교는 그렇다치더라도 부작용이 무엇인지 알아보셨는지요? 해외 사이트에 정당하게 알리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을 간섭하려는게 아닙니다.. 제발 다른 부분도 있는지 먼저 살펴 주십시오..

    • 늙은도령 2015.06.29 19:34 신고

      동성애를 권장하는 합법화가 아닙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을 골고루 나눠줬습니다.
      그러다 보니 태어났을 때부터 생리학적 성과 다른 기호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신의 선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결혼하고자 하는 것인 인간으로서의 욕구이며 그것이 비록 소수라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부터 동성애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동성애는 그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것을 사회나 특정 종교적 계율만으로 이단시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신이 창조한 인간이고 스스로의 삶과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소유자입니다.
      그들은 사랑과 결혼의 가치를 정직하게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선택을 법이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박해받는 것을 막자는 것입니다.
      이성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동성애는 언제나 소수입니다.
      그런 소수도 동등한 권리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입니다.

  7. 앨리스 2015.06.29 20:58

    도령님 멋지세요^^
    사랑과 평등의 품격있는 정신세계의 향이 퍼져나옵니다^^

    • 늙은도령 2015.06.29 22:06 신고

      감사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했을 뿐인데요...

  8. 사랑맘 2015.06.29 23:29

    저는 늙은도령님의 글을통해 신지식(?)을 많이 접하며 존경하고 감사하고있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아래 댓글을 보고 짧은 제생각을 나누고 싶어서요.
    신의 넓은 선택이라고 하셨는데 그 보이지않는 신이 인간에게 지킬것을 명하신 율법에는 동성간의 사랑을 금하신 것을 아시지 않나요..?
    그 법에 따르지 않았을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유튜브에 소개되어 있는 동영상을 통해 본적이 있습니다..
    동성간 사랑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할 때 사회와 가정에 미치게될 수많은 파장과 소수인권보호를 이유로 또다른 이들이 받게되는 역차별..
    말로 다할수없는 이런 폐해를 신이 아시기에 미리 법으로 금하신것은 아닌가..이 또한 신의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늙은도령 2015.06.30 02:09 신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수많은 성경의 내용들은 천주교가 유럽을 지배하는 천 년 가까운 동안 많이 변했고 수정됐습니다.
      성경에 나온 수많은 주장들이 과학적으로 틀린 것으로 밝혀졌을 때마다 성경도 그 해석이 변해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과학을 연구하는 신학자의 연구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현대과학이 성경과 충돌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천주교와 기독교, 불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의 추세는 신의 창조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과학적 성과들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최소 개입론이라고도 하는데 신의 창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최전선에서는 이렇게 과학과 변하는 세계와의 접점을 찾아 종교의 존재와 가치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견해는 일반 신도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열려 있으며 과학적 발견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식 싸구려 기독교 복음주의는 대한민국에서만 기승을 부릴 뿐이지 다른 나라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또한 전 세계의 종교과학자들은 유튜브 영상에 나온 것 정도의 낮은 수준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기독교는 특정 국가의 특정 지역에서 번성하는 종교로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예수의 가르침을 상당히 바꾼 바울의 진실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유태인이었던 그가 예수가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 부활하기까지 공적 생활 3년 동안 설파한 내용을 유태적 색채로 많이 바꿔놓았으니까요.
      종교사와 종교과학을 깊이 공부하다 보면 한국의 기독교 우파는 기독교를 죽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가 역차별을 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네요.
      어떤 부분에서 역차별을 만드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이 이성결혼을 폄하합니까?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부추깁니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적 정체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어떤 사회적 사안을 보고 받아들이는 자세와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고, 그것이 타인에게 억압적이고 무력적인 공격이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종교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있는 것이지 신을 찬양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그 자체로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경험한다고 해도 제대로 이해조차 못할 것입니다.
      죽어서 갑자기 인간의 영혼이 신의 영역에 이른다면 인류의 역사가 이렇게까지 흘러오지는 않았겠지요.
      또한 지구라는 행성도 수명이 있습니다.
      수십억 년 이후에는 지구라는 행성이 사라집니다.
      모든 행성은 그렇게 수명이 있습니다.
      신의 창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그런 끝이 있는 세속적인 것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한 번 뿐인 삶에서 대체 어떤 것까지 간섭하고 제한해야 신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것일까요?
      어쩌면 인류는 21세기 내에 모든 생명체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 그리 대단한 것 아닙니다.
      서로 간에 평등한 존재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인간이 명백한 악이 아닌 이상 다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대체 무슨 권리로 지구 전체를 멸망의 길로 이끌어간답니까?

      종교나 신앙을 가장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맹신입니다.
      맹신은 절대자 신을 따른다는 점에서 단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렇게 맹신으로 만들 것이라면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유의지부터 수없이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이토록 집요하게 선택의 폭을 줄이는 것이라면 그런 신을 믿을 생각은 없습니다.
      최소한 제가 믿는 신은 그 이상입니다.
      제 생각이 잘못됐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그것 가지고 현실의 삶을 맹신의 자세로 살 생각은 없습니다.
      최소한 인간으로 사는 동안에는 절대적 존재에 대해 분명한 믿을 가지되, 그것 때문에 나와 다른 인간들의 선택과 행복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인간적이지 못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봅니다.
      영생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순간을 사는 것인데 왜 이렇게 가르고 나누고 죄인을 만들어야 합니까?
      예수는 하늘에 부를 쌓으라 했는데 오로지 외형 경쟁만 하는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에 질릴 만큼 질렸습니다.
      정말로 인간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살펴보십시오.
      그들을 비판하고 살기에도 힘겹습니다.
      신은 개개인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믿음이 제 신앙의 핵심입니다.

  9. 가난한여행자 2015.06.30 02:16 신고

    한사회 소수자에 배려가 한사회 민주화 수준을 말하는것같네요
    한국사회 동성은 10%정도라고ㅍ합니다

    나도 한부문에 있어서 소수자 있을수있습니다

    이들을 비난하기전 기득권 ,,특히 새누리당이 우리사회를 망치는 집단이 아닐까?

    새누리당 성사건 ..권력이용한 70세 박희태가 손녀같은 캐디에 성희롱 사건 눈감아주는 것이 더문제입니다

    나는 새누리당을 거대악으로 보고있습니다 ,거기에 몸을담고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주머니을 터는 도둑이지도 모르고 무조건 지지하는 국민들 ,,

    이집단은 모든 나쁜것에 관련안돼는게 없네요
    역사적으로볼때 이런 쓰레기 집단은 찿기 힘듭니다


    찰스다원을 이용한 사회진화론은 이제 폐기되어야합니다
    이것에 가장큰피해자는 우리입니다 ,,일본의 한국통치수단,,,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글이네요

    • 늙은도령 2015.06.30 02:15 신고

      베야민의 글을 읽어보면 사회진화론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 명쾌하게 밝힌 내용이 나옵니다.
      적자가 생존한다는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원시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못한 지옥으로 몰고 가는 폭력의 정수입니다.
      적자가 생존할 가치가 있다는 것은 신은 언제나 강자와 함께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만들어내고, 어떤 침략행위도 정당화합니다.
      적자란 모든 상황에서 살아남을 힘과 지혜를 가진 자로 치환될 수 있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해집니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최악의 수준까지 떨어뜨렸습니다.
      다윈보다 한 달 먼저 진화론을 완성한 윌리스가 귀족계급이이서 각광받을 수 있다면 진화론의 핵심이 공존의 협력과 적응에 있다는 것이 됐을 것입니다.
      윌리스의 진화론은 자연과 환경에 적응하고 그에 맞춰 갈 때 생존하고 대를 이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협력과 공존이 진화의 핵심이라는 것이고 이는 인간이 만들어지는 세포와 각종 장기들의 작용과 동일합니다.

  10. 머무는바람 2015.06.30 14:36 신고

    간만에 들어 왔어요 ^^

  11. 마르투스 2015.07.02 19:50

    동성애자 세계에서 나와 치료받은 사람이 들려주는 동성애의 실상을 제대로 아시면 생각이 많이 바뀌실텐데요.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것이 어떤것인지 한번 연구해보십시요 우리의 현실이 종말의 끝에 있다는걸 깨달으실 겁니다

    • 늙은도령 2015.07.02 20:29 신고

      몇 명의 예로 수백 만 명의 사랑을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성애를 하다가 삶이 추잡해 동성애를 한 사람도 있으니 그런 식으로 일부의 사례를 전체에 대입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사랑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세상을 종말로 이끌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이성애가 압도적으로 많고, 종말이 온다면 동성애자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배제, 독선과 아집 때문입니다.

  12. 멜카 2015.07.23 12:06

    흠... 주인장님은 성당 다니시는 것으로 알았는데요. 가톨릭은 동성애를 금지하지 않나요?

    그리고... 진정한 문제는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현행 유지가 가장 좋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상대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하든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죠. 한국은 동성애를 합법으로, 불법으로 규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행유지가 좋은 것이고요.

    지난번에 동성애자들이 서울시청을 점거하고 인권헌장 통과시켜달라고 했을 때 유시민씨가 한국은 동성애를 금지한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동성애 자체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동성결혼 합법화나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오히려 역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이 반대한다고 언급하는것만으로도 차별이 될 수 있으니까요. 미국이나 구라파에는 그런 사례가 많다지 않습니까.

    일례로 크리스트교 계열의 종교에서는 많은 교파들이 동성애를 죄라고 지적합니다. 근본주의적 해석이든 무엇이든 성서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을 수는 있어도 성서에 나온 문자가 후기에 맞게 수정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해놓고 신에 대한 죄라고 언급되는 부분을 뒤집기가 어려운 것이겠죠. 그렇다면 그들은 신앙과 양심에 따라 그것이 죄라고 믿는데 그런 자들이 자녀들이나 종교 내 지인들을 향해(혹은 그들을 위해) 그것이 문제가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불법이 된다면 그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시끄럽더라도 이 상태가 가장 좋은 것이지 뭔가를 매듭지어서 해결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6.02.29 07:39 신고

      카톨릭도 낙태를 금지하지만, 제2차 바티간공의회를 통해 예외조항이 생겼고,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르러서는 동성애에도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가 성전과 성서의 해석을 정치와 사회에까지 적용하면 피바람이 멈춘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2016년입니다.
      종교도 4000년 전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예수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왔지 서로를 갈라놓고 배척하고 차별하라고 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경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면 될수록 주민들은 점점 더 냉소적이 되고 훨씬 더 보수적으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보수 반동은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20세기에 이룬 진보적 성과를 전부 사라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ㅡ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인용




이 모든 것은 계급을 바라보는 사고방식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캔자스 사람들은‧‧‧계급적 적개심은 불타오르지만 그 불만의 원인을 제공하는 경제적 기반은 부인한다. 보수주의자들은 계급이란 돈이나 타고난 출신성분, 심지어 직업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가장 귀중한 문화상품인 진실성의 문제다. 계급은 무슨 차를 몰고 어디서 물건을 사며 어떻게 기도하느냐의 문제이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를 버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미국 전역의 생산자들은 실업이나 막다른 삶, 그들이 버는 것보다 500배나 많은 봉급을 받는 사장과 같은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문제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캔자스 주는 사회주의(좌파)와 자유주의(진보)가 주정부와 의회를 지배했다. 이런 캔자스 주가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를 거치면서 중도우파를 거쳐 아들 부시와 지금에 이르러서는 극우에 가까운 기독교 근본주의자 우파(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티파티가 핵심, 미국 독립운동의 발화점이었던 보스턴 차사건에서 따옴)의 본산이 됐다.





그 출발은 《불경한 삼위일체》를 보면 뉴딜체제와 케인즈 경제학을 뒤집기 위해 신고전파 경제학자를 양성해 미 재무부의 하위공직에 진출시키고, 주요 대학의 경제학과를 점령해가며, 대공황의 기억을 가진 월가의 세대교체를 진행한 60년대의 물밑작업(미국의 우파는 ‘기나긴 10년’이라고 한다)입니다.



푸코에서 시작돼 딜뢰즈와 데리다를 거쳐, 네그리와 지젝으로 이어진 유럽의 신좌파(필자는 이들보다 벤야민과 푸코에서 벡과 바우만으로 이어진 신좌파를 선호한다)는 이것에서 시작해 전 지구적 지배엘리트를 구축한 신자유주의적 제국에 초점을 맞춰 보수우파의 세계 지배(부정적 세계화)를 비판한다. 이런 시각은 서구의 패권이 유럽의 제국주의에서 미국의 제국으로 넘어간 역사적 변천에 주목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가장 미국적인 나라인 대한민국의 보수 반동(이명박근혜 정부를 탄생시켰고,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승하고 있다)을 이해하려면 유럽적 시각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 이유는 한국의 보수 반동을 이끈 주축이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아들인 친일파(정치적 정통성이 없었던 이승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의 후예와 미국 유학파가 포진한 조중동과 뉴라이트, 기독교 근본주의자 우파 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처럼 신자유주의체제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된 상태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경제적 이슈(이것은 보수정당과 재계 및 경제연구소의 몫이었다)보다 저소득‧저임금노동자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없는 이중개념자(중도층), 보수 성향의 여성들을 상대로 정치‧사회‧문화‧교육‧역사적 계급운동을 진행했다.





이것은 ‘엄격한 아버지 모델(미국 우파의 모델로,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 모델과 비슷하다)’에 따른 도덕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적 가치(건국의 아버지인 청교도의 나라)’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들고 나와 미국의 우경화에 성공한 미국의 보수 반동을 한국적 특수성에 녹여낸 것이다.



좌파의 전유물이었던 계급운동을 보수 반동에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은 경제를 들어낸 자리에 미국적 가치를 집어넣는데 성공한 미국의 신보수주의자(특히 존 그레이의 《추악한 동맹》을 보라)가 좌파에서 전향한 자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인데, 한국의 뉴라이트에도 좌파(이명박 정부에 많았다. 박근혜 정부에는 변절한 동교동계가 있다)에서 전향한 자들이 많았다.



정치적 기회주의자인 이들은 저학력‧저임금 노동자와 이중개념자 중 진보 성향이 약한 남성과 보수 성향이 강한 여성들을 공략하는 언어 선정과 프레임 설정에 정통한 자들이어서, 진보좌파가 기업과 고학력 엘리트(이른바 강남좌파)에게 접근하는 동안 전통의 진보좌파 지지자들을 잃어버렸다. 



집권경험이 있는 제1야당을 제외한 전통의 진보정당들이 이들의 공격을 막아낼 여력도 없었고, 이석기의 내란음모에서 통진당의 해산까지 이어지는 과정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처럼 한국의 보수 운동은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데 성공했고, 오세훈 덕분에 진보적 가치인 의무급식이 쟁점이 된 지방선거를 제외하면 모든 선거에서 승리하는 역전을 이루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5.22 08:10 신고

    2016년과 17년은 대한민국 100년은 아니지만 한 세대 운명을 결정할 것입니다.
    진보개혁세력이 의회권력와 행정권력을 잡지 못하면 30년 이상은 집권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유시민 말처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보개혁세력은 불리한 선거환경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보수는 하나만 같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진보는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싸운다고 합니다.
    깊이 새겨야 합니다. 싸워야 할 대상은 수구기득권인데, 진보개혁세력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수구기득권이 견고합니다. 이를 깨지 않고는 희망은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22 14:36 신고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와 프레임 전쟁, 도덕의 정치 등의 레이코프의 책을 보면 진보가 무엇을 실패했고 보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물론 그의 책이 절대는 아니지만 비슷한 연구들이 최근에 들어 봇물터지듯나오는 것을 보면 진보도 정신 차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북한 변수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 진보세력이 무능력한 것도 있지만,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박지원, 김한길, 안철수, 조경태, 박영선 같은 자들이 당을 보수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답이 없습니다.

  2. 뉴론♥ 2015.05.22 08:14 신고

    언젠가는 많이 변화되는 세상이 올거 같지는 않네여 일본의 뒤를 겉게 되겠지여
    나이든 사람만 많고

    • 늙은도령 2015.05.22 14:38 신고

      일본만큼 잘 갖춰진 상태에서의 잃어버린 20년이면 대환형입니다.
      일본은 내적 튼실함이 어마어마한 나라입니다.
      전 세계에서 정치가 가장 형편없음에도 선진국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도 그들이 기본에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5.22 08:42 신고

    첫구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경제상황이 악화될수록 주민들은 보수적으로 바뀐다는 말..

    일견 지금 우리 상황과도 틀리지 않네요
    겉으로는 민생경제를 외치고
    공안총리를 앉혀 다음 총선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22 14:39 신고

      최근에 와서 확정된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경험이 보다 정교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신자유주의 50년이 세상을 완전히 보수화시켰습니다.
      그 핵심에 보수 반동의 역사가 있는데 이를 이해할 때만 반격이 가능합니다.

  4. 박군.. 2015.05.22 10:13 신고

    제가 보기에는 일본 따라잡을 것 같네요 안좋은 것만요

    • 늙은도령 2015.05.22 14:40 신고

      일본 근처에도 못갑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 30년으로 이어져도 선진국에서 탈락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공적 투자가 완벽히 이루어진 나라라 한국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아베가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저력 때문입니다.

  5. 머무는바람 2015.05.22 12:59 신고

    아 진짜 한국 모습 참나
    한숨만 나오네요

    • 늙은도령 2015.05.22 14:42 신고

      어차피 한 번은 거쳐할 과정입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전쟁입니다.
      여기서 이겨야 합니다.

  6. 하늘이 2015.05.22 16:01

    진보안에 보수화된 기득권과의 전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그들의 저항이 너무 강하다는게 지금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ᆞ그래도 지금 이 문제가 드러나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과연 깰수 있을까 염려됩니다 ᆞ

    노무현과 같은 강한 투지가 필요한데~♡

    • 늙은도령 2015.05.22 18:00 신고

      돌파해야지요.
      반드시 돌파해야 합니다.
      기득권세력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야당이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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