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그래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된 마이클 센델 하버드대 교수ㅡ미쓰이와 함께 일본 전범기업의 쌍두마차인 미쓰비시의 조건부 장학금으로 교수 생활을 이어가는 램지어와 완벽히 대비되는ㅡ의 최근작, <공정하다는 착각 ㅡ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의 관점을 통해 이승윤과 이무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주장 설명

첫 번째, 코로나19 펜데믹의 도덕적 이율배반에 대해

두 번째,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라는 두 가지 관점에 대해

세 번째, 능력주의의 전제인 공정하게 제공된 교육이라는 환상에 대해

네 번째, 태어날 때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

다섯 번째,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한 채 능력주의의 담론에 따라 패배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에 대해

여섯 번째, <싱어게인>이라는 기회 또는 패자부활전의 필요성에 대해

 

 

훗날 코로나19세대로 회자될 이땅의 청춘들에게 능력주의로 중무장한 세계화 시대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사회가 아무리 절망적이고 버거워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이승윤과 이무진처럼 나 여기있다고 외치면 누군가는 반드시 화답한다는 것을 믿어주길 희망해본다. 기성세대 모두가 사악하지 않음을, 최악의 세상을 물려준 것에 미안하고 있음을, 꼰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반박하지 못하는 죄의식과 어리석음을, 우리가 너희를 응원하듯이, 너희도 우리를 믿어주기를.    

  

 

 

https://youtu.be/Rk5Fom4yN1I

 

 

아직도 어젯밤에서 새벽으로 이어졌던 떨림과 흥분과 감동이 온몸의 세포에 여진의 진동처럼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자 절체절명의 위기를 불러온 코로나19 펜데믹의 장기화로 모든 사람들이 지칠대로 지치고 감당하기 힘든 우울과 해소할 수 없는 분노로 힘들어 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떠났고, 남아있는 모두가 힘겨웠으며,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엔데믹이 될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지난 1년 여는 일상의 소중함.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로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가고, 많은 분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렸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우익 자유주의자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개인정보 제공을 프라이버시를 침해해 전체주의 국가로 가는 인권과 자유의 억압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인류 공통의 방역대책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과학적으로 0.00001%의 진실도 들어있지 않은 백신음모론으로 지구 차원의 집단면역 형성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간이 죽음을 대면하는 인간심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의 단계부터, '뭔라도 해야 한다'는 '협상'의 단계를 거쳐 '사태의 책임을 특정 집단이나 국가에 쏟아붙는 '분노'의 단계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우을'의 단계를 지나면,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수용'의 단계는 지금까지 인류는 모든 도전을 극복했기에, 그랬듯이 이번의 위기도 이겨내리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붙들고 하나씩, 그렇게 점진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가자는 사회, 국가, 지구 단위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헌데 전염력이 2배 이상으로 올라갔고 치료기간도 훨씬 길어졌으며 그에 따라 자연히 치사율도 높아진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펜데믹 종식이 아닌 코로나19와의 동행이라는 엔데믹을 걱정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이 미증유의 위기에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만능의 백신 같은 뜻밖의 선물을 들고나온 '방구석 음악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웃사이더 무명 특유의 언더 가수였고, 대중성과 독창성 사이의 경계에 갇혀 성공한 가수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배아픈 무명의 천재 아티스트였습니다. 그의 재능은 하나의 장르에 가둬놓기에는 너무나 다양했고, 특정 장르로 묶기에는 너무나 뛰어나고 자유로웠습니다.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였고, 그 이상의 생태계였으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재야의 고수였고, 그럼에도 완성된 천재의 전형이었습니다.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맹폭한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능력주의 예찬은 대대로 세습되는 특정 집안이나 이익집단을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온갖 경우의 불평등한 탄생 때문에 능력을 키우고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배제와 차별의 장벽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칸트가 불평등과 양극화가 공고해진 작금의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이승윤의 무명시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결과의 평등은 고사하고, 기회의 평등마저 주어지지 않는데 무슨 수로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배제와 차별의 높은 벽을 돌파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진입의 첫 걸음부터 갈 수 있는 길이 모두 다 막혀있는 청춘들에게는 더욱더 잔인한 배제와 차별의 거대한 벽입니다. 능력주의라는 거대담론에 최소한의 진실이라도 있다면 도전의 기회라도 주어져야 하는데, 성공으로 가는 모든 길에는 갖가지 바리케이트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우리의 미래인, 그래서 평균수명이 늘어난 장년과 노년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커녕 앞선 세대들이 남기 온갖 이름모를 빚들까지 떠앉아야 했을 뿐입니다. 희망이 절망스러운 상태에 빠진, 그래서 희망조차 가지지 않으려는 수많은 청춘에게 이승윤이라는 방구석 음악인은 뜻밖의 위로이자 선물이었으며, 세대간 갈등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준 치유와 해방의 아이콘이자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청춘은, 그리고 저 같은 꼰대들까지 이승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고, 빠져들었으며, 따라불렀고, 전율했으며, 주체할 수 없이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가 웃으면 같이 웃었고, 그가 울먹이면 같이 울먹였습니다. 그의 노래는 배제와 차별의 해소였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공정한 기회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만들었습니다. 패자부활전 의미가 강한 싱어게인을 통해 그가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링은 갈수록 커지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불평등과 한낱 감기 바이러스에 무너져내리던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선사해주었습니다.

 

 

그의 상위 라운드 진출과 탈락, 재진입을 거쳐 최종 우승으로 막을 내린 파이널 무대가 우리에게 제공된 무대이자 우승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승윤처럼 성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도전과 성공 스토리는 우리 모두에게 '내가 했듯이 너도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우리 함께 가자, 명왕성으로! 그곳이 사막인들 우리가 함께 하면 그곳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승윤의 노래와 우승이 이 시대의 모든 문제점들을 바로잡을 수 없으며, 끊어지고 고립된 관계의 복원이자 일상으로의 돌아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승윤과 싱어게인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도전과 아름다운 경쟁, 멋진 연극 같은 피날레는 우리로 하여금 '이 고난과 위기에 맞서 이길 수 있다'는 용기와 치유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중문화적인 것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현상으로써의 이승윤 현상이 탄생하게 이르렀습니다.

 

 

현상으로써의 이승윤과 싱어게인 참가자 모두로 해서 우리는 치유받았고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희망을 다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좌절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기에 현상으로써의 이승윤은 우리에게 손을 내민 것이고, 우리는 그의 손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잡은 것이지요. 그렇게 이승윤과 우리의 동행이 시작됐습니다. 우리 모두를 리프레쉬 시켜준 이승윤은 말할 것도 없이 싱어게인 참가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승윤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말했듯이 싱어게인 스태프 모두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수많은 청춘에게, 아니 모든 무명인과 패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준 기획력에도 칭찬을 아낄 수 없습니다. 긴 장마 뒤의 첫 햇살 같았던 지난 몇 개월은 이승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싱어게인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이야기들로 해서 한여름밤의 꿈처럼 달콤했습니다. 첫 시즌이 끝났다는 아쉬움은 두 번째 시즌의 기다림으로 변할 것이며, 공연현장에서 이승윤을 비롯해 모든 참가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g7wMFk_RTfw     

 

  1. 장선영 2021.05.10 16:12

    저도 생전 처음 가져보는 연예인?에 대한 이 폭발적인 감정이입이 당황스럽고, 심지어 힘들기까지해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의 내용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나와 내 인생에 대한 위로,격려,희망 그런 것?
    간만에 끓어오르는 이 에너지를 어찌 다시 내게 돌릴지 고민이 됩니다.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이승윤의 우승으로 끝난 JTBC 싱어게인 파이널, 그 대장정의 마지막 경연을 저만의 편파적인, 저만의 방구석에서, 저만의 마음대로 감상평을 펼쳐보았습니다. 패자 또는 무명에 머물러있던 가수들을 대상으로 패자부활전이자 대국민 쇼케이스였던 싱어게인은 이땅의 모든 패자와 약자들에 대한 위로와 치유의 장이자, 새롭고 예상하지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같이 다가왔던 멋진 기획이었습니다.

 

 

파이널에 진출한 6인의 마지막 경연을 보며, 그들이 저에게, 무엇보다도 이승윤이 저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하나하나 되돌아봤습니다. 이승윤의 최종우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참가자 모두가, 탑10에 들었고, 탑6에 든 모두가 다 승자였고 주인공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달콤했고,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있어 코로나19펜데믹에 의한 코로나블루에서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물 같았던 지난 몇 개월의 잔영들이 정말로 진부하게 말하자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거듭거듭 말하지만 수고하셨고,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이승윤을 비롯한 여러분 모두에게 무한대의 비약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누구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지극한 행복의 원천이기에, 지난 몇 개월은 저와 많은 분들에게 소중하고도 한동안, 아니 어쩌면 오랫동안 파릇한 미소로 되풀이되고 되풀이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고,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이승윤 만세!!!   

 

 

P.S. 재미있는 사실 하나, 파이널 무대를 장식한 6인 중 무려 4명이 '이씨'였다는 것은 생물학적 연구가 필요한 것이 아닌지, 그들의 DNA를 분석할 필요가....................................................................네, 그냥 자라고요? 네, 그리 하겠습니다. 이승윤이 우승했는데 살아생전 처음으로 꿈속에서 남자가 나타나도 좋을 이틀에 걸친 파이널 무대! 하지만...... 저 여성을 무척무척 좋아하는 굶주린 남자랍니다. 그래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이지만.... 에고, ㅠㅠ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jtbc의 싱어게인'의 참가자 중 최종결승에 오를 것 같은 세 명의 뮤지션에 대해 다루어봤습니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그 가능성을 정초한 미학의 관점을 차용해 세 가수의 능력과 가능성, 미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싱어게인' 자체가 패자부활전이기에 작금의 청춘들에게도 이런 기회들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무명가수에서 유명가수로, 대중성에서 실패한 가수에서 대중성을 다시 획득해가는 가수로, 아웃사이더적인 기질에서 대중적 감성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가수로, 마이너에서 메이저 무대로 옮겨가서도 여전히 성공할 수 있는 가수로 이 세 명의 참가자는 이땅의 청춘들의 또다른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K-pop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새로운 가수들이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미래가 밝기를 바랍니다.

 

'싱어게인'처럼 젊은 시절의 패배가 삶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저처럼 나이가 들면 알 수 있는 삶의 지혜이지만,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많은 청춘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로 이 세 사람이 다가갔으면 합니다. 실패를 거듭하고 건강상으로 최악까지 갔던 저조차도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었으면 합니다. 소확행보다는 도전하는 삶이기를 바랍니다. 

 

희망이라는 것이 청춘의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으로써 '싱어게인'이 만들어낼 패자부활전의 신화를 고대하고 고대합니다. 연대를 나온 저는 고대보다는 기대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지만, 간절함의 크기와 질이 다른 것 같아 '고대한다'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온갖 불평등에 마주친 이땅의 청춘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희망과 패자부활전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을 살게 하는 것은 그 빌어먹을 놈의 희망 아니겠습니까?

 

좌절하고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납니다. 정치논평마저 접은 유시민 이사장에게도 다른 삶의 모습들을 기대할 수 있듯이, 평균적으로 60~7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청춘들이라면 어떤 기대인들 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을 듯합니다. 역사상 최고의 철학자인 칸드도 57세에 이르러서야 <순수이성 비판>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가장 빠른 것이라면, 희망이나 재도전 또한 같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RjwJeWWpS54

 



저에게는 '특이점'이라는 개념이 지닌 충격이 너무나 커서 몇 개월 째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뇌 역분석 등에서 헤매고 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강남역 살인사건'과 그에 대해 수많은 여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개별사건으로 축소시키는 한국 정부와 사회의 비정상적이고 비열한 행태에 극도로 분노하고 절망했었습니다. 여기에 '구의역 참사'까지 더하면 이땅의 체제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며 반인륜적인지 알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토론이 원천봉쇄되는 것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류의 반이 여성임에도, 그들(특히 대한민국의 미래인 1020세대)이 공유하는 참담함과 문제의식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주류사회의 행태는 상대적 약자를 향한 극단의 혐오를 불러일으킴에도 이에 대해 침묵하고 특권의 원천인 현재의 체제(극단적 신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것에 전복적 혁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존과 상생의 지혜, 상대에 대한 배려, 인간에 대한 예의, 보편적인 양심과 정의 등이 모조리 사라진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란 단어가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여성이 대통령인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는 데이트폭력이 늘어나고, 일베 현상으로 대변되는 폭력적인 여성혐오 현상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불공정한 경쟁에서 밀려난 사회적 약자들을 잉여를 넘어 쓰레기로 치부하는 반인륜적 행태가 만연함에도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시장경제(사적 독점)만 외쳐되는 특권층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이 헬조선인 것은 이보다 정확한 표현이 없을 듯합니다.     



승자독식을 허용하는 무한경쟁은 경기장에 참여하지도 못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경쟁에서 패한 자들까지 상대적 약자를 찾아 그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아예 경쟁에서 배제된 자거나 경쟁의 패자로써 승자의 동질감에 묻어가려면(평균수명이 늘어났음에도 패자부활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악착같이 승자와 동일시하려 한다) 상대적 약자에게 가혹해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승자의 체제와 맞설 용기가 없기 때문에 패배에서 오는 분노를 해소시킬 대상으로서의 희생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테이트폭력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노골적인 혐오범죄와 언어 폭력 등이 급증한 것에서 이런 희생양 찾기는 남녀 간의 극단적 대립과 신뢰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몇 걸음만 더 들어가면 지독할 정도로 가부장적이며 남성우월적인 체제인 신자유주의의 득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설사 그것이 폭력과 범죄에 해당할지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라는 신자유주의의 모토는 강자(승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만듭니다.





컴퓨터(인공지능 알고리즘)로 집약되는 각종 기술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은 극소수의 인간만 필요할 뿐이어서 극단의 불평등(1대 99사회는 장난에 불과할 정도)을 초래할 것이고, 갈수록 늘어나는 99.99…9%의 패자와 탈락자들은 더 많은 희생양을 찾아 폭력과 범죄를 남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 발전이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달콤한 꿈은 정반대의 결과만 양산해왔고, 인간의 일을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와 로봇(나노봇)이 대체하는 지점에 이르면 인류 멸종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인간중심적 사고가 아니더라도, 특이점을 넘은 기술 발전에 따라 인류의 각성과 성찰도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인류는 정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낙관론자나 긍정론자의 논리에 고개를 끄떡일 어떤 경험적 증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 1020세대에게는 일상이 된 '팬픽(2차 창작)' 신드롬처럼, 최근에 들어 동성애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의 역습과 무한경쟁을 장려하는 신자유주의가 시너지효과를 이룬 결과 중 하나입니다.



여성을 존중하지 않으며, 상대적 약자에게 폭력을 서슴지 않는 짐승만도 못한 남성과 사귈 바에야 위험부담이 거의 없는 동성들과 서로를 이해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인 대안이 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탈출구 중 하나입니다. N포세대라는 말처럼 포기하는 것을 수없이 늘리기보다는 그들 나름의 생존법에 적응하는 것이 동성애의 확장(또는 열린 접근)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경력 단절과 육아 등도 중요한 상수로 작용합니다. 



멋지고 예쁜 남성과 아름다우면서도 독립적인 여성은 아이돌과 스포츠 선수들에게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 현실의 남자에게 매달릴 이유도 없습니다. 1020세대의 남자들도 할 말이 있겠지만, 승자의 체제에 맞서지 않은 채 상대적 약자(여성, 장애인, 노약자 등)를 향해 폭력을 자행하는 한, 어떤 변명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상대적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가장 파렴치한 범죄이자 자신이 짐승에 불과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더구나 대한민국이 최악인 것은 이처럼 국가나 체제, 사회가 몰락하는 말기적 징후들을 부추기는 자들이 대통령을 비롯해 이땅의 주류지배층이라는 점에서 절망적입니다.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남성들에 의한 여성 혐오와 폭력이 일상화되는 것에 철저하게 침묵하고 외면하는 박근혜의 행태는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수사부터 법원의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솜사탕 처벌, 지상파3사의 막장드라마, 종편의 폭력방송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타락을 부추기는 결과만 강화시킵니다. 





인류의 반이 여성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핵심은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표출했던 피해의식과 자발적 추모와 집단적 분노입니다. 남녀평등이나 인권 증진, 취업율 등과 상관없이 국민의 반인 여성들 중 상당수가, 특히 한국의 미래인 1020세대일수록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여성혐오와 여성 상대 폭력과 범죄를 보았다면, 그것에 관해 국가 차원의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그런 의식을 공유하게 됐는지,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차원의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조현병 환자에 의한 우발적 살인으로 결론 지어버린 것은 대다수 여성에게 대한민국은 국가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린 전쟁터이자 지옥에 불과합니다. 강남역에서 죽은 여성은 내 어머니며, 누이며, 동생이며, 아내이며, 연인이며, 친구이자 동시대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동반자입니다.



세월호참사나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모든 사건과 참사를 줄일 수 있겠지만,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참사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하고 대비책을 세워서 충분하게 변화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물며 참사와 사건의 피해자가 청소년이고 여성이라면 더욱더 그러합니다. 상시적인 위험에 놓출 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란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헬조선이라면, 이땅의 여성들에게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명박근혜 8년 6개월 동안 대한민국은 그 이상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고, 망가졌습니다. 이명박근혜와 새누리당에 표를 주신 분들, 현재의 대한민국에 만족하십니까? 당신들이 원하는 세상이 남성중심적 폭력과 차별, 혐오가 난무하는 세상이라면 대단히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극우주의자나 종편, 국정원, 정치검찰, 어버이연합, 일베충들처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6.06.23 07:49 신고

    여성만 아니라 많은 남성들도 비슷한 위치입니다. 구의역 김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주류기득권들은 자신들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은 해충에 불과하죠.
    물론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조금 낫겠지만.

    • 외국에서 박근혜 정부의 한국이 얼마나 많은 욕을 먹고 있는지 안다면 분통이 터질 것입니다.
      최근에 들어 대한민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이 최악입니다.
      이런 형편없는 나라가 된 것은 여전히 박정희 신화에 갇혀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표를 주는 분들의 책임입니다.
      물론 언론이 가장 나쁜 놈들이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2. 空空(공공) 2016.06.23 08:01 신고

    이명박근혜에게 표를 준 사람들은 지금이 예전보다 살기
    좋아졋다고 믿고 있을것입니다
    가진자들이 많대부분이며 또 예전 헐벗고 굶주림을 겪어봤던 세대들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눈쌀이 지푸려지고 토가 나올정도로 극단적인 미치광이 (일베충)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약자들을 무시하는 그들의 시선이 고와지지 않는 이상 영원한 평행선을
    달릴것입니다..
    결론은 약자들의 힘을 보여주는수 밖에 없습니다..선거로

    • 제발 정신차리고 세상을 제대로 봤으면 합니다.
      향후 이루어질 인공지능과 로봇들의 침공이 궤도에 오르면 거의 모든 일자리가 사라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감정이니, 남녀차별이니, 산업화의 기적이니 하는 것은 나머지 국민마저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행위입니다.
      자신만 죽으면 이해하겠지만 남들까지 함께 죽자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 우주미아 2016.06.24 13:18

      전기 신자유주의(남성우월주의)의 종착점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가 아마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은 음의 시대로 접어든 상황이고 그와 더불어 개봉된 영화이기도... 이 작품만큼 전기 신자유주의를 잘 풍자한 영화가 없을 정도입니다

    • 여성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신자유주의적 폐해에서 벗어날 때만이 인류는 그나마 희망적 단서를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습니다.

  3. 쌈둥아빠 2016.06.23 09:36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4. 솔의눈 2016.06.23 12:01

    강남역 추모를 주도한 단체 '메갈리아' 를 한번만 검색해보고 글을 쓰시지요

    • 저는 그런 극단적인 사이트는 관심없습니다.
      이번 글은 수많은 1020세대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고, 신자유주의부터 시작해 대한민국의 현 상황까지 모든 것을 고려해 쓴 글입니다.
      당신이나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댓글을 다시지요.
      자본주의의 최악의 버전인 신자유주의는 극단적인 권위주의적 남성우월심리를 강화시키는 체제로 첫 번째 피해자는 여성입니다.
      무한경쟁을 넘어 승자독식의 집중화까지 이루어지는 현상은 인간을 공존과 상생의 존재가 아닌 상대적 약자를 죽음까지 내몰고 갑니다.
      한국은 그런 신자유주의가 최악의 단계까지 이른 나라이고요.
      외국에서는 한국의 멸망까지 얘기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한국은 극단적인 국가됐습니다.
      지금은 여성이 피해대상이지만 곧 대부분의 남자들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가 될 것입니다.
      제발 세상을 바로 보세요.

  5. 견마질박정희 2016.09.09 20:02

    헬조선을 극복하려년 친일 친일 동조자들을 사형이상 중형을 내려 피의혁명을 하지않는 이상 답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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