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기간이 쌓이면 조금씩 발전하던 기술이 폭발적(기하급수적)으로 한계점을 돌파한다는 기술 낙관론자들은 다음과 같은 리처드 스몰리의 발언을 인용하곤 한다. "무엇인가가 가능하다고 어떤 과학자들이 말한다면, 그들은 아마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그들은 아마 틀렸을 것이다." 어떤 기술이던 시간이 문제이지 이르지 못할 단계는 없다는 뜻이다. 





이런 기술적 낙관론은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그는 특이점을 넘은 인공지능(비생물학적 지능)이 플라톤의 '이데아'를 넘어 영생을 이루고, 우주적 차원의 지능까지도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리처드 도킨스를 떠올리는 기술적 낙관주의자(특이점주의자)들은, 완전시장이 이루어지면 모든 인류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시장근본주의자들처럼, 현실을 너무 만만하게 보거나 인간에 대한 이해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인공지능의 겨울'에 갇혀 생명을 다할 뻔했던 기계 학습(머신 러닝, 신경망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이 스스로 지능의 패턴을 찾아내는 '딥러닝'으로 넘어간 지금에는 인간보다 뛰어난 초지능의 출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지능은 인간의 뇌인데, 광속에 이른 컴퓨터의 연산능력(하드웨어, 연산용량이 10의 19승이면 충분)과 인터넷이란 무한대의 정보(빅데이터를 말하며 포탈, 웹, 블로그, 커뮤너티, SNS 포함), 무작위한 정보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는 인지능력(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아키텍처) 등이 발전하면서 초지능의 출현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기술 발전에 따라 현대의 세 가지 고민ㅡ지속적인 임금 하락, 일자리 감소, 불평등 증가ㅡ이 더욱 심해진다는 사실에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등)에 따라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져 임금이 상승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며, 그 결과 불평등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지만 지난 수백 년의 역사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기술 발전은 인간을 해방시키지 않고 퇴출시키는 것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현실을 호도하는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경제학자에 속았고, 민주주의와 법을 이용해 특권층을 형성한 정치가에게 속았고, 연구비가 필요한 과학·기술자들의 낙관적인 전망에 속았고, 이들이 추동하는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린 언론과 방송 종사자에게 속았고, 이들에게 자금을 대주는 극소수의 부자들에게 속았고, 그들에 기생해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각자의 이기주의와 자기기만적 탐욕에 속았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기술 발전의 여정이 마지막 특이점에 접어든 지금, 가까운 장래에 인류의 멸종을 걱정할 정도에 이르렀다. 특이점을 넘은 초지능과 자기복제적이고 학습하는 로봇의 등장은 지구온난화와 핵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론적 문제다. 지구온난화와 핵전쟁이 겹치는 '퍼펙트 스톰'까지 발생해 인류가 일거에 멸종하는 것이라면 억울한 것도 없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은 서서히, 하지만 인간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점점 빨라지고 대규모로 이루어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부와 권력, 기회 등은 상위 1%를 넘어 초지능과 로봇을 독점하는 0.0…01%에 집중될 것이며(승자독식의 초집중화), 공존과 상생은 꿈도 꾸지 못하는 세상이 펼쳐진다. 초지능과 로봇만 있으면 무한대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가능한데, 기업(자본)가가 결점투성이의 인간에게 생산과 서비스를 맡길 이유가 없다. 결코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같은 세상은 오지 않는다. 인간은 초지능과 로봇에 밀려 초라하게 퇴장을 할 뿐이며, 창조론이건 진화론이건 결론은 동일하다.  



일부에서는 기술 발전에 따라 인류의 의식, 지능, 능력 등도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특이점주의자와 낙관론자들의 주장처럼 언젠가는 신에 근접한 초지능이 출현하면 그들이 인간과 공생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나노공학, 뇌과학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발전들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면ㅡ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수천 년이 걸릴 수도 있다ㅡ인류는 멸종하던지, 그들의 노예로 살던지 둘 중 하나만이 가능하다.



특히 세월호참사가 지겹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진상규명이 무한정 늘어지고, 새롭게 밝혀진 사실(강정해군기지용 400톤의 철근)에도 불구하고 특위는 활동시한이 종료될 위기에 처했으며, 정부와 기업, 자본이 모조리 얽혀있는 옥시참극 수사는 축소되는 것도 모자라 주변부만 맴돌고, 모든 세대를 위협하는 초미세먼지는 국민의 먹거리(고등어와 삼겹살) 탓이 되고, 여성에 대한 혐오범죄와 폭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기득권의 반칙과 특권에는 침묵하면서 전쟁위협만 고조시키는 쓰레기들이 판을 치고… 이 모든 것들의 정점에는 대통령과 청와대, 국정원, 정치검찰이 자리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면 더더욱 암울하다. 



여기에 경제란 대기업과 자본, 특권층의 이익을 챙겨주는 것으로 변질됐고,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를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으로 변형시킨 박근혜의 무지함과 비정상적 인식까지 더해지면, 대한민국은 디스토피아의 전형(헬조선)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모든 규제를 물에 빠뜨린 후 꼭 살려야 할 것만 꺼내고, 김밥 한 줄에만원을 받는 것만 비판할 뿐, 왜 만원을 받아야 했는지 알려하지 않는 박근혜의 천박한 인식은 자본을 위한 모든 국민을 희생시키겠다는 것과 동일하다.                    





초지능과 로봇의 세상이란 노동자에게 주어질 일자리가 없는 자본의 천국이다. 이것 때문에 인공지능 전문가인 마틴 포드는 《로봇의 부상》에서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위대한 사회는 자신이 태어난 사회의 특정 집단에 대해 개인이 스스로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이것저것 요구할 필요가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을 잃어도 일정 선 이하로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모든 사람에게 일정 수준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하이에크(프리드먼의 경우 '음의 소득' 개념)의 말을 인용한 뒤,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우리 경제의 노동집약도가 떨어지리라는 주장에 찬성한다면 조세제도도 노동 중심에서 자본 중심으로 옮겨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따라서) 조세부담이 노동집약적 산업과 업체에 불균형할 정도로 많이 부과되면 이는 인간의 노동을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로 대체하려는 인센티브로 작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경제 전체가 지속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다. 그러므로 이렇게 할게 아니라 기술에 크게 의존하면서 인력은 적게 고용하는 업체들이 더 많은 짐을 지도록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근로자들이 은퇴자를 부양하고 복지사업비를 부담한다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 경제 전체가 이를 떠맡아야 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초지능과 로봇의 시대에도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공존과 상생, 정의와 양심, 원칙과 상식이다. 낙관론자건 비관론자건 간에 인공지능과 로봇 전문가들은 이점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여준다. 일부의 전문가는 기본소득(사회보장소득)에 들어가는 재원 마련을 위해 세계적 차원의 부유세 도입(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주장)에도 찬성한다, 피케티가 불평등을 초래한 요인 중에 기술 발전을 철저하게 외면했음에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6.27 08:39 신고

    불평등 해소를 위한 배려
    이게 밀씀하신대로 현대에서 살아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 늙은도령 2016.06.27 14:25 신고

      이제는 공존과 상생이 필수입니다.
      기술 발전에 대응하려면 방법이 없습니다.

  2. 쇠북울음 2016.06.27 19:51

    오늘 처음 '늙은 도령'님의 빼어난 견해를 접하고 퇴근을 미루면서 4건의 포스트를 꼼꼼히 새김질 하듯이 읽었습니다.
    좋은 글에 공감하면서 감사를 표합니다. 부디 오래 오래 건필하소서!!!

    • 늙은도령 2016.06.27 23:50 신고

      감사합니다.
      저도 인공지능과 특이점에 관한 것들을 공부하면서 한 동안 혼돈에 빠졌습니다.
      처음에 읽은 책이 지독할 정도로 기술적 낙관론을 펼치는 바람에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수십 권의 책을 추가로 구입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3. 시골잔차 2016.06.27 22:46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을 보면서
    놀라움을 넘어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하루하루 발전해가는 기술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생각하니
    오싹합니다.
    훌륭한 통찰에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6.06.27 23:53 신고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류가 집단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멸종을 피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나노공학, 생명공학, 뇌과학 등에 대한 공부가 늘어나면 새로운 길이 보일지... 고민이 많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로 그냥 넘기기에는 지금의 10대부터 그 이후의 세대가 너무 불쌍합니다.
      지금까지는 암울합니다.

  4. 현주씨 2016.06.29 08:45 신고

    잘읽었습니다.

  5. 쌈둥아빠 2016.06.29 10:37

    오늘도 감사히 글을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술에 크게 의존하면서 인력은 적게 고용하는 업체들이 더 많은 짐을 지도록 제도를 전환... 궁극적으로 우리는 근로자들이 은퇴자를 부양하고 복지사업비를 부담한다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 경제 전체가 이를 떠맡아야 한다"
    미래는 이런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6.29 17:03 신고

      그렇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KBS에서 러던의 슈퍼리치를 다룬 다큐를 방영했는데 오늘 후편이 방송됩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변화가 생기면 그 다음은 쉬워집니다.
      기술 발전 때문에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데, 그 이전에 변화가 있으면 좋겠지요.
      브렉시트로 부자들이 크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세월호참사를 통섭적 시각에서 접근한 글입니다. 세월호참사에 다양한 정치철학과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얽혀있는지 거칠게라도 보여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저는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2권의 책이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이란 부제를 가진 레이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와 '데이터를 이해하는 알고리즘의 예술과 과학'이란 부제를 택한 피터 플래치의 《머신 러닝》이었는데, 썰전에서 유시민이 칼 포퍼와 하이에크를 인용하자 생각이 확장이 이루어진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두 권의 책 중에서 《특이점이 온다》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의 '수확 가속의 법칙'을 다룬 입문서인데, (책에 나오는 내용이 실현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볼 때) 지금까지 제가 공부해온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놀라운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인공지능이 기술특이점을 넘으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것은 정경관 유착의 참혹한 결과라고 해도,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란 현 집권세력 전체가 하나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온갖 거짓말과 탄압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린 과정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진화처럼 기술 발전이 선형적(가우스적 수학에서 많이 나오는 일정한 기울기가 유지되는 직선에 근접한 곡선)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특정 시점(일종의 임계점으로 '곡선의 무릎'이라고 한다)을 넘어서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부패와 비리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되는 동안 노무현 정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정부들이 재난대책에 관한 메뉴얼조차 갖추지 않았고, 이명박근혜 정부는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마련해둔 재난대책 메뉴얼마저 파기해버려서, 구조와 진상규명, 인양 등이 과거의 해상참사 때보다 더욱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세월호참사의 구조와 후속대책을 두고 유시민이 박근혜와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면 칼 포퍼와 하이에크를 인용한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노예로의 길》과 《자유에의 헌정》의 저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자본주의와 자유》와 《화폐경제학》의 저자인 밀턴 프리디먼과 함께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양대 거두였습니다. 《과학적 발견의 논리》와 《열린사회와 그 적들Ⅰ, Ⅱ》, 《추측과 논박Ⅰ, 》의 저자인 칼 포퍼는 패러다임 이론을 통해 정상과학이란 개념을 정립한 《과학혁명의 구조》의 저자 토마스 쿤과 쌍벽을 이루는 과학철학자로 신자유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미식 신자유주의가 하이에크에서 시작된 것을 유시민은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한 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1, 2》와 《역사법칙주의의 빈곤1, 2》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치철학을 정립한 것도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칼 포퍼는 영미의 신보주의자들에게 레오 스트라우스에 버금가는 영향을 미쳤다). 그는 두 권의 책(총 4권으로 변역된)에서 전체주의의 철학적 기원인 플라톤과 역사결정론(뉴턴 역학과 다윈 진화론에 영향받은)을 정립한 헤겔(변증법)과 마르크스(변증법적 유물론)를 비판하면서 정치(역사)철학을 정립했습니다.





썰전에서 유시민이 말했듯이, 현재의 체제를 인정하는(변증법의 正에 해당한다)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는 부분적이고 점진적인 개혁(反)을 통해 열린사회(合)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끈임없는 개선에 집중합니다(공학적 세계관). 현재의 체제(기득권의 다른 표현)가 최상은 아니더라도 차상은 된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합리적 보수와 개혁적 보수라는 형용모순이 이와 비슷한 개념)는 최상에 이르지 못한 부분들을 차근차근 고쳐(보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자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진보적 자유주의(노무현과 문재인의 이념)는 현재의 체제가 최악(세월호참사 이후의 기득권의 행태)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차악(세월호 침몰)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시민이 말했던 것처럼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시민이 불평등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국가의 역할)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인식이 다르다고 한 것도 이런 차이에 근거합니다. 



유시민이 세월호참사의 책임을 부정하는 박근혜를 비판하며 '도덕과 원칙의 부재'를 언급하자, 전원책이 '도덕과 원칙'은 보수의 개념이라고 주장한 것에 강하게 반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나옵니다. 유시민이 급진적 개혁을 부정하며 부분적인 수리(보수라는 단어의 뜻)를 통해 현재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수에게 '무슨 도덕과 원칙이 있느냐'며 신자유주의적 폐해의 정치경제적 원조인 칼 포퍼와 하이에크를 인용한 것은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두 석학의 잘못된 성찰에서 기원하는, 민주주의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정치철학의 차이가 세월호참사와 만나는 지점입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등이 정치적인 사안인 이유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철학과 국가(정부)는 물론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서 '도덕과 원칙(과 정의)'를 삭제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번성한 나라일수록 극단의 불평등과 끝을 알 수 없는 타락과 부패가 만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보수를 표방한 현 집권세력과 쓰레기들이 세월호참사를 '해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치부하며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책임을 부정하고, 세월호유족에게 '자식의 목숨을 팔아 거액을 챙는 자들'이라고 벨레보다 못한 발언이나 내뱉고, 세월호특위와 유족들의 진상규명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그들에게 폭력과 종북이란 낙인까지 찍는 반인륜적 짓거리도 서슴지 않고, 세월호인양과 세월호특위의 운영에 들어가는 돈을 '세금 도둑'으로 몰아가는 파렴치함까지 보여주며 시간만 끌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에 '도덕과 원칙'을 삭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최악의 불평등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자 정부가 도덕과 원칙(과 정의)도 없는 통치술을 남발할 수 있는 것도 정치철학의 부재에서 나옵니다. 대한민국이 유럽의 복지선진국가처럼 민주주의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높은 나라였다면 세월호참사 이후에 보여준 박근혜의 행태는 탄핵을 넘어 법정 최고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새누리당은 해체를 면할 수 없으며, 쓰레기들(특히 KBS, MBC, 연합뉴스TV)은 폐간과 폐방을 면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참사는 도덕과 원칙도 없는 국가 전체를 개조하겠다는 급진적인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신자유주의적 참사의 전형입니다. 세월호특별법 개정을 최우선으로 처리하겠다던 김종인 체제의 더민주와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민생과 부실기업 구조조정(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에도 똑같은 것들 들고나왔다)을 내세워 뒤로 미루는 행태는 민주주의와 국가의 역할을 부정하는 최악의 정치공학입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가 대한민국을 개조하고 민생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처방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행태이자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마저 거역하는 정치적 범죄에 해당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4.22 08:25 신고

    역사에 독불장군으로 남기전에 세월호 참사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를 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 최악의 군주로 남을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6.04.22 14:10 신고

      이미 최악의 군주입니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2. 耽讀 2016.04.22 08:45 신고

    유시민이 세월호 2주기 추모에 가지 않은 김종인(개인 자격갔다지만 사실상 안 갔습니다)과 안철수에게 '정치 왜 하세요'라는 말이 정곡을 찔렀습니다. 정치란 도덕과 원칙 바탕 위에 출발해야 하는 데 그들을 정치공학을 들이댔습니다. 안철수는 세월호보다 민생이 우선이라고 했지요. 세월호보다 더 중요한 민생이 어디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썰전과 노유진을 보고 들을 때마다 유시민 참 아쉽습니다. 그가 정치에 다시 발을 내딛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바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6.04.22 14:12 신고

      유시민은 썰전 이외에는 일체의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유럽도시기행으로 1년을 보내겠다고 합니다.
      문재인 옆에 유시민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3. 단두대 2016.04.22 13:18

    언론을 왜곡하고 진실을 숨기고 거기다 설상가상
    책임추궁에는 적반하장으로 유가족들에게 뒤집어씌우고...
    그런 놈들은 소위 공인 혹은 공인기관이란 것들이
    베충이가 오뎅인증샷 올린것과 똑같은 짓을 한 겁니다.
    물론 개인자격이 아니라 공인 혹은 공인기관이기 때문에
    전부 단두대로 보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6.04.22 14:14 신고

      단두대로 보내야 할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윗층의 비리와 반칙의 형태를 하도 많이 봐서 전경련과 어버이연합의 탈선은 놀랍지도 않습니다.
      저들의 리그는 지독할 정도로 얽혀있어서....

      전경련은 무조건 해체해야 합니다.
      전세계에 이런 조직은 없습니다, 일본만 빼면.

  4. cvate 2016.05.01 16:36

    cvate 비밀번호 어떤거 모르기도하내요 내용댓글이다양하기도하지만요글제목이랑내용도 길지만요 이어서 그리고 댓글달때에 영어만 쓰면은 어떤 댓글이안달리고 그리고이름영어만써두안달리는것같고요글요 fce

  5. 하이 2016.06.09 00:35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필자가 주류경제학자와 경제사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현실과 현장상황과 너무 유리된 그들의 지적 놀음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들이 있었는데, 상당 부분 필자의 불만을 해소해준 책을 읽게 됐다. 모타니 고스케의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이 바로 그 책이다. 초이노믹스가 아베노믹스의 복사판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지금까지 읽은 일본의 책들은 주류경제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한국의 주류경제학들의 진단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미-일-한으로 이어지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담합된 분석은 거시경제학적 접근을 기반으로 한 미시경제학적 분석(그 반대로 해도 마찬가지)이라는 고정되고 고루한 것들의 연속이었다. 그들의 연구와 저서는 하위 99%의 지갑을 털어서 상위 1%의 금고를 채우는 반동적인 계급혁명을 비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도 아니면 모'식의 해결책 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그 이유는 주류경제학이 좌우를 막론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결성해, 그들에게 후원을 해주는 거대양당의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정치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정치경제적 지배엘리트들이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지만 그들의 전쟁터에는 국민의 삶이 반영될 틈도 없었다. 그들의 전쟁에 동원된 경제학의 논리들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지적 놀음이고, 거대한 스케치에 불과해서 세계경제는 끝을 모르는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처지로 굳어졌다. 



그들은 자신의 조상(특히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부터 시작된 자기기만적 지적사기에서 이탈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현실경제의 핵심이자 거의 전부인 '생산연령의 파도'를 무시한 채 , "아무리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더라도 노동생산성만 올릴 수 있으면 GDP는 떨어지지 않는다"가 "(사회적 비용과 위험의 전가를 반영하지 않아서 기업과 정권에게만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GDP가 성장하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구석구석으로 파급되어 모두가 행복해진다(낙수효과)"라는 착각에 빠져 정치인은 물론 국민마저 기만했다.   



그 결과 주류경제학들은 노동과 기업의 생산성이 아무리 높아져도 30년째 이어져온 저출산의 영향 때문에 소비가 가장 왕성한 나이대의 숫자가 줄어들거나, 그에 따라 생산활동인구(15~65세)도 줄어들고,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비생산활동인구마저 늘어날 경우 어떤 경제체제도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외면해 왔다. 그들은 어떤 화려한 포장 속에 경제적 분석과 처방을 내놓아도 현재의 경제체제를 해체해서 재조립하기 전에는 해결책이 없음을 커밍아웃할 수 없었다.





모타니 고스케의 분석이 옳다면(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본다), 자본주의 전성시대의 본질은 유효소비인구와 생산활동인구의 증가에 따른 자연적인 확장의 결과였지, 과학기술(그나마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과 경제학·경영학·사회학·인문학 등이 총망라된 나머지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갤브레이스의 말처럼 '경제학은 경제학자들이 돈 벌어 먹기에 딱 좋아!'라는 것이 새삼 피부로 와닿을 정도로 고스케의 분석은 현장의 고민을 가장 쉽게 풀어냈다. 



그럼 현재의 장기대불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인가? 지구온난화까지 더하면 인류는 석기시대로 돌아가는 것인가? 2차세계대전에 준하는 3차세계대전이 벌어져도 대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인가? 그래도 잘 나가는 업종은 있는 것이 아닌가? 장기대불황의 파고에 잘 버티는 국가들도 있지 않은가? 등등 온갖 질문이 나올 듯하다. 필자도 똑같은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었고, 아직까지 어떤 답도 도출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이런 질문들을 버무려 추론해보니,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은 복지확대를 기반으로 경제체제를 재편하고, 그에 따른 인력의 충원과 생활임금 이상의 소득을 연동시켜 내수경제를 살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가능인구로 편입된 청춘이 힘겨운 노동에 숙달될 수 있는 기간을 보장해주고,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인센티브 형식의 청년배당을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소수의 무임승차는 무시해도 된다).



필자 역시 초위험사회이자 초감시사회로 접어든 현실과, 지구온난화와 초장기불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슈퍼리치와 재벌에 대한 고율의 누진증세와 법인세 인상으로 대표되는 조세정의(피케티가 제시한 것이 정답)를 통해 청년배당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래서 유효소비(소매판매의 증가)가 늘어나 내수경제라도 살려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경제적 여유와 희망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청춘들이, 출산가능인구의 증가로 이어질 신생아 출산(출산율이 출산수)을 늘릴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장기대불황에서 탈피할 수 있다. 



운이 좋게도 한국경제의 펀더맨탈은 제조업 중심이어서 이것이 가능하다. 제조업에서는 완벽한 '고용없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타 부문으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언제나 제조업(생산품목별로 차이는 나지만)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주류경제학이 배제했던 것에서 답을 찾아서ㅡ그런 답은 이미 나와있기에ㅡ정치사회적 합의만 도출해낼 수 있다면 이 지랄맞은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필자가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선거연합에 힘을 보태고,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선거연합에 맹공을 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의당과 노동당은 청춘을 대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내교섭단체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며, 지구온난화를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녹색당의 원내진출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은 재벌의 해체나 분산, 독식을 끊은 것보다 더욱 중요하고 시급하다. 어떤 기업도 국민과 맞싸울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최종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이재명과 박원순 시장의 청년배당이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명료해졌다. 두 시장의 실험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야권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문재인의 지원 하에 기본소득제(죽은 프리드먼과 살아있는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도 동의하는)의 실시까지 갈 수 있다면 장기대불황에서 탈출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버니 샌더스와 가장 닮은 이재명), 시장경제가 만나는 삼각지점의 교집합에 대한민국 미래세대의 희망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당신은최고 2016.02.09 22:25 신고

    잘보고갑니다.새해복많이받으세요

  2. 새노래 2016.02.10 03:52

    명절 휴일에도 쉬지 않고 글을 올리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혹시나 하고 들어와 봤드니 또 님의 글이 올라와 반갑게 읽어 봅니다,
    새해는 정말 대한민국을 덮고 있는 저주의 세력, 어둠의 세력, 을 걷어 내는데 시작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 합니다, 그 시발점이 이번 총선이 되겠지요.... 정말 궁금 합니다, 저는 주위에 국민의당은 어차피 개누리당 2중대고 원내교섭단체가 안되면 개누리 들어간다, 그러니 야당 지지자들은은 햇갈리지 말고 개누리하고 국민의당은 아예 제외하고 찍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야권연대가 안되면 정말 힘들것 같습니다, 이번에 개누리당을 없애지는 못할지언정 100석이하고 내려 앉혀야 된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모든 악의 생산지가 개누리당 아닙니까,
    저들의 후안무치와 안하무인의 방자함을 더이상 본다는 것은 제명에 다 살지 못할것만 같네요.... 그건 그렇고 야당에서는 부정선거, 특히 개표부정과 무효표에 대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대책을 있는지 철저하게 감시를 하에 선거가 치뤄지기만 한다면 야권이 가능성이 더 높게 봅니다, 악의 생산지에서 이렇게 악을 저지러는데 소경과 귀머거리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걸 모른다면 사람이 아니죠.... 정말 한심한 인간들 보면 앞이 캄캄 하지만 어짜피 세상은 산자들의 세상이니 산자들이 힘을 합쳐 뭉치고 난세를 헤쳐 나가는 수 밖에 없겠죠.... 정말 가슴이 메이고 답답 합니다, 우리 선생님도 역시 저보다 얼마나 더 답답한 마음이 터질것 같다는 심정일것을 글을 읽어면서 느낌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냥 이렇게 가만 두지는 않을겁니다, 올해는 폭풍전야와 같은 이나라에 뭔가 터질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 글이 두서없이 길어 져 버렸네요.... 선생님도 새해는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6.02.10 04:08 신고

      네, 혁명의 조짐이 보입니다.
      청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미친 짓거리가 극에 달했습니다.
      재벌들도 요즘은 고민이 많습니다.
      당장의 이익 때문에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는 재벌을 위한다 하면서 기업과 국민을 싸움 붙이고, 그래서 보수층의 집결을 노리고 있습니다.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그 동안의 나쁜 짓들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에 대한 공부가 적은 분들은 그런 단순한 상징조작에도 넘어갑니다.
      의외로 인간은 많이 생각하지 않고, 생각한다고 해도 깊이 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에 새누리당의 전략이 파고드는 지점이 발생합니다.
      그것을 방송들이 파고들고요.
      이들의 조합보다 반대의 조합이 다수가 돼야 합니다.
      이놈의 지랄 같은 민주주의는 너무나 많은 노력이 필요해서 적정선에 타협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그렇다보니 기득권이 승리를 구가합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답이 나옵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02.10 08:51 신고

    위에 언급하신 세분의 조합이 정말 환상적입니다
    바람직한 조합입니다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동결했다. 미국식 통화정책의 마지노선인 물가상승률이 2%를 넘지 않아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미국은 다른 국가에게 냉혹한 신자유주의를 강요해 경제위기를 조장하면서도 자신들은 케인즈 정책을 펼쳐 경제위기를 극복해왔는데, 이번에는 중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의 반발에 한 발 물러선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미 연준은 부자들을 갑부로 만들기 위해 금리를 20%대까지 올린 1970년대의 ‘볼커쇼크’를 거쳐, 레이건의 집권과 함께 단행된 천지개벽의 감세(소득세를 78%에서 28%로 내렸다), 워싱턴컨센서스로 이어지며 뉴딜과 케인즈의 잔재를 미국에서 걷어냈다. 이때부터 미국의 갑부들은 국내외로부터 돈을 긁어모았고, 연준은 이들의 돈놀이를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해서 내렸다.



미국에서도 하위 99%의 부가 상위 1%의 수중으로 이전되기 시작했고, 높은 금리로 전 세계의 돈을 빨아들여 천문학적인 실탄을 마련했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오일쇼크’를 주도했던 사우디를 협박해 수백 조(1980년의 경우)에 달하는 석유대금까지 굴리게 된 월가가 전 세계를 상대로 본격적인 돈놀이에 돌입했다.



밀턴 프리드먼과 그의 제자들인 시카고보이즈와 제프리 삭스와 립턴으로 대표되는 버클리마피아를 앞세운 미 연준과 재무부, 월가, IMF의 연합은 남미와 동유럽, 러시아, 중국을 털고(천안문 사태의 이면은 중국에 신자유주가 상륙한 것이고, 그 시작은 등소평이 경제교사로 프리드먼을 초청한 것이었다), 태국에서 한국으로 이어진 1997~8년의 외환위기를 일으키며 태양계 차원의 돈을 긁어모았다(이때 스웨덴처럼 유럽의 선진복지국가들도 털렸다).





이런 과정에서 슈퍼리치와 월가(와 군산복합체)의 부를 무한대로 늘려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구적 차원의 착취구조를 완성했다. 전 세계적으로 슈퍼클래스를 구축한 0.1~1%의 수중으로 하위 99%의 돈이 이전됐고, 중국은 미국의 채권을 사주는 대가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할 수 있었다(노동의 종말, 고용없는 성장, 차이메리카는 이렇게 구축됐다).



태양계를 사고도 남을 돈이 슈퍼리치의 수중으로 흘러들어갔고, 이 돈이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벤처거품의 조성과 붕괴를 일으켰다. 그 다음에는 부동산 광풍을 비롯한 파생상품의 우주적 차원의 남발로 2008년의 신용(금융) 대붕괴로 전 세계를 끝을 알 수 없는 경제대불황으로 몰고 갔다.



이상이 전 세계는 물론 미국마저 몰락의 길로 내몬 신자유주의 40년의 가장 압축적인 묘사다. 문제는 이다음에 오바마가 정부가 행한 조치다. 월가의 돈으로 대통령에 오른 오마바 정부는 경제대불황의 주범들에 대한 우주적 차원의 사면복권(구제금융과 무제한 양적완화를 위한 기준금리 인하)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개의 조치로 인해 금융업체들은 손실처리를 넘어 역사상 최고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됐고, 탐욕의 잔치를 벌였던 슈퍼리치들은 2008년 이전보다 더욱 부유해졌다. 전 세계 부의 30%가 상위 0.1%의 수중으로 넘어갔고, 상위 1%에 수중에 50%, 상위 10%의 수중에 90%가 넘어갔다.



그 대신 전 세계 하위 90%는 적선인양 남겨둔 10%의 부를 가지고 피 터지는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적자생존의 지옥으로 내몰렸다(신자유주의가 가장 잘 작동하는 조건). 실물경제는 완전히 무너져 역사상 최장기의 대불황 속으로 빠져들었고, 유럽의 경제위기와 중국의 경착륙, 신흥국들의 저성장과 금융불안은 전 세계적 차원의 환율전쟁을 촉발시켰다.





전 세계적으로 돈이 넘쳐난다. 실물경제(테러와의 전쟁으로 대박을 터뜨린 군산복합체와 감시‧영상‧용역산업처럼 재난과 위기를 조장하고 재건을 담당하는 산업은 대호황)와 하위 90%와는 상관없이 금융과 슈퍼리치의 수중에서만 도는 돈이 넘쳐난다.



헌데 정말로 교묘한 것이 실물경제의 몰락은 저유가 체제를 구축했고, 사실상의 제로금리와 마이너스금리는 하위 90%에게 저축보다는 소비를 늘리도록 만들었음에도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막아주는 효자노릇을 하게 됐다. 미국경제가 조금 살아났지만 그것은 하위 90%의 혁명을 막는 정도에 불과하다.



선진국처럼 내수시장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각국 정부가 경제침체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국민혈세로 확대재정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이 돈들이 슈퍼리치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것도, 하위 90%의 임금인상에 나서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박근혜 정부처럼 임금을 깎는 것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의 상태는 상위 1%에 의한, 상위 1%를 위한, 상위 1%의 신자유주의가 가장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게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전 세계경제가 동시에 망하지 않는 한, 상위 1%도 피해갈 수 없는 대몰락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전복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현재의 상태를 바꿀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미 연준이 당장은 기준금리를 인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올해 안에만 올려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10월도 있고, 12월도 있으니 중국과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와 대척점에 설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국 정부가 금리 인상의 파장에 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먹을 것도 더 많아진다.  



게다가 각국에는 국민 전체의 것인 공공재들이 넘쳐난다. 민영화를 시키면 수백 년은 먹고 살 수 있는 국영기업과 공기업, 공공서비스(국민연금, 사회복지, 건강보험, 교육제도 등)가 넘쳐나고, 정부 자체를 민영화하면 하위 90%의 소비와 세금만으로도 영원한 부의 제국을 구축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를 상위 0,1%의 슈퍼리치와 상위 1%의 슈퍼클래스들이 하위 99%에 대한 역(逆)계급혁명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세상을 모두에게 돌려주었던 위대한 대혁명의 전통이 완전히 뒤집혀 상위 1%의 수중으로 넘어갔고, 미 연준-미 재무부-월가-IMF가 추동하고, 미 국방부와 군산복합체가 강제하고, 각국 정부가 협조하는 글로벌 노예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구축됐다.



미 금리 동결과 헬조선이 상관없는 것도 이 때문이며, 더한 지옥이 조금 미뤄졌을 뿐이며, 최상으로 쳐도 지금과 같은 지옥이 계속된다는 것만 말해줄 뿐이다. 명심하라, 당신이 하위 90%에 속한다면 신자유주의 체제(글로벌 노예제도)를 거둬내지 않는 한 어느 나라로 이민을 간다 해도 그곳이 바로 헬조선이라는 사실을.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9.18 12:16 신고

    박그네정권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경제 파국은 막을 것입니다.
    다음 정권에 핵폭탄을 물려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명박처럼 아무 책임 안집니다. 정말 나쁜정권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18 13:16 신고

      문제는 국민들이 어떻게 이 난관을 넘기느냐 입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언론은 이런 실상을 얘기하지 않으니....

  2. 우니에몽 2015.09.18 15:36 신고

    뀨 저왔씁니당!!

  3. 바람 언덕 2015.09.19 10:32 신고

    언젠가는 터질일...
    빨랑 올리고 터져버리던지...
    매도 빨리 맞는 게 낳다고 했는데...
    요즘은 정말 욕지거리 밖에는 안나옵니다.

    ^^;;;

    • 늙은도령 2015.09.19 17:22 신고

      네,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혁명에 준하는 변화가 있겠지요.
      이런 상태로는 더는 불가능하니까.....

  4. 공수래공수거 2015.09.19 11:15 신고

    재벌들의 금고에도 돈이 철철 넘쳐 나고 있습니다
    제 주머니는 언제나 먼지만 훌훌....

  5. base 2015.09.19 12:36

    위 내용에서 미 갑부들은 국내외에서 돈을 긁어 모았고 연준은 이를위해 금리를 내려주었다는 의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5.09.19 15:37 신고

      원래 연준은 미국의 공식적인 정부기구가 아닙니다.
      원래 민간기구입니다.
      미국 각주의 중앙은행과 다른 은행들의 대표기구입니다.
      볼커부터 옐런까지 모조리 유대인이 의장을 했고요.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는 완전고용을 위해 금리가 어느 정도 높아도 됩니다.
      저축과 고율의 조세로 경제를 성장시켜 임금을 올려주면 되니까요.
      물론 안정적인 물가상승을 관리하면서요.

      헌데 이런 상황에서는 부자들이 재산을 늘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볼커 의장 때 금리를 21%까지 올렸습니다.
      레이건은 세율을 78%에서 28%까지 내렸고요.
      미국의 중산층은 돈을 벌어 집을 살 때 대출을 낍니다.
      헌데 금리가 올랐으니 여러 중산층이 무너지고,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며 케인즈 체제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것을 볼커쇼크라 하는데 이때 부자들이 이자 덕분에 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금리를 내렸습니다.
      파산하거나 가난해진 중산층들이 대출을 늘렸고, 이 돈은 부자들의 돈에서 나왔으니 국내에서 돈놀이를 할 수 있게 됐고요.
      그렇게 금리가 내려가면 대출이 늘어납니다.
      정부의 각종 복지제도도 없앴기 때문에 더욱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부자들의 금고는 늘어났습니다.

      그 다음은 외국에 금융위기를 일으켜 IMF 구제금융을 받게 하고 이자를 대폭 올립니다.
      대출받은 사람들은 망하고, 그들은 어마어마한 이자를 챙기고, 값싼 가격에 주요 기업들을 인수하고, 다시 되팔아 목돈을 챙기고, 그 다음부터는 대출 증가에 따른 이자로 돈을 또 벌고....

      이런 식이지요.
      신자유주의는 그렇게 국내외에서 상위 1%가 하위 90%의 돈을 긁어갑니다.
      정부가 할 일을 줄이는 것도 이 때문이고, 규제를 푸는 것도,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더 있는데 그것은 지적공동체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 base 2015.09.19 16:05

      원문에서 중간과정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답변에 감사드리고 그날 뵙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9 17:20 신고

      네, 그때 뵙겠습니다.

  6. 불루이글 2015.09.19 18:01 신고

    0.1%슈퍼리치들 이 전세계 부의 30% 더 늘려서 상위10%가 90%의 부를 차지하고 나머지 10%로 90%의 하위층들이 피터지게 싸워 가며 싸우고 있다는 말씀 이군요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수 없네요

    빈민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현상이

    바로 우리 나라 처럼 목소리를 낼수 없도록 귀족노조로 낙인을 찍어 노노 갈등과 국민 불신을 조장하고 그기에 놀아난 저능한 국민들 때문에 노예들 끼리 피터지게 다투는 형국과 다를바가 없는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 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5.09.19 18:43 신고

      네, 정말로 이렇게까지 심각한 부의 불평등이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최악의 시기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7. 브이포벤데타 2015.09.20 00:04

    ...어디를 가더라도 헬조선이란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나은 곳이 있지 않을까요? 북유럽 국가나 스위스라던가 ^^ ...요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민 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좋은 글들 감사합니다.

  8. 덕산 2015.09.20 08:04

    우리 자녀들을 이땅에서 어떻게 키워야 될지 많은 고민을 하면 살고 있습니다.

  9. 소피스트 지니 2015.10.04 23:10 신고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야근에 지친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 우리를 또 털어먹는 족속들에게 주먹이라고 한번 날려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10. 타임슬리퍼 2015.11.03 22:56

    안녕하세요! 미국 금리 동결 관련해서 검색해 보다 이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아고라에서 늙은도령님이 올려주시는글 잘 봐오다가 이렇게 개별 사이트가 있는걸 알고서 내용 살펴보다가 궁금중에 글을 남깁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02/0200000000AKR20151102209500071.HTML?input=1179m

    위의 사이트 내용 대로라면 미국 부채가 오바마 임기내 2배 가까이 상승해서 지금 2경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려버리면 부채가 더욱 증가되고 결국 미국이 더 힘들어 지는것 아닐까요?

    미국이 금리를 올릴수는 있을까요?

    무식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몰라서 그럽니다.

    이점에 대해서 제가 어떤점을 간과하고 있는지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르켈 리더십의 본질을 가장 냉정하게 파고든 책 중에 하나가 올해 1월1일에 작고한 울리히 벡(김제동의 톡투유에서 최진기 강사가 위대한 사회학자라고 언급했던 석학으로 《위험사회》의 저자)의 《경제위기의 정치학》이다. 이제는 정치를 전공한 사람들도 읽지 않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보면 메르켈의 리더십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추론할 수 있는데, 벡은 이것을 정확히 짚어냈다.





메르켈의 리더십을 ‘엄마 리더십’이라고 하지만,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다’는 것과 동일하다. 메르켈은 지독히 마키아벨리적이어서 그때그때의 여론의 흐름에 따라 정책을 결정한다. 원전건설을 강행하던 중에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났고, 여론이 나빠지자 원전제로로 돌아선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메르켈이 시리아 난민 수용을 결정한 것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독일 우파의 주장에 따라 난민 수용 불가를 천명하다, 국가 전체의 여론이 나빠지자 이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메르켈은 TV로 생중계된 학생과의 토론에서 불법난민인 자신의 부모가 강제추방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여학생의 애원을 단호히 거절했었다.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의 여론이 악화되고, 불법난민과 이주자에 대한 극우주의자의 폭력이 확산되고, 그리스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적인 비판에 처하고 국내여론도 나빠지자 전격적으로 난민 수용을 결정했다. 여론에 따라 정치적 결정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것이 메르켈 리더십의 실체다.





독일이란 나라가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유일한 국가여서 이런 결정이 가능했지만, 문제는 난민이 독일에 정착한 다음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보면(역사의 재구성이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방불케 한다), 이스라엘이 재난자본주의로 돌아선 것이 대규모 난민수용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소련연방이 여러 가지 이유(너무 많은 책에서 너무나 많은 주장을 제시해 하나로 압축할 수 없지만, 정치 실패가 가장 큰 요인이다)로 붕괴된 지 얼마 안 된 1993년에, 러시아 정부는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쇼크요법(국영기업 민영화, 공무원의 대규모 구조조정, 가격통제 해제에 따른 생활필수품에 대한 정부보조금 폐지, 전면적 시장경제 도입, 외국자본의 러시아 기업의 인수‧합병 허용, 이익의 해외반출 허용 등)을 실시했다.



이때 거의 1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추방됐는데, 이들을 받아들일 나라는 전 세계에 이스라엘밖에 없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잦은 전쟁 때문에 장기적인 경제침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맺은 것도 국제적 압력보다는 경제적 탈출구를 찾기 위함이 더욱 강했다.





헌데 러시아에서 유입된 어마어마한 값싼 노동력(박사 학위 소지자와 첨단기술 전문가도 많았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이어갈 정치경제적 필요성을 없애버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생존을 위해 팔레스타인에 정착했고, 위험도 불사하지 않았기에 평화협정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 경제부흥을 일으켰고, 거기서 얻은 노하우와 기술을 살려 폭력시장과 안보‧재난시장, 디지털 감시사회, 경제적 차별을 축으로 하는 재난자본주의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 유대계 난민들이 정착한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리틀 러시아’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르켈의 결정은 최대 30만 명에 이르는 값싼 노동력의 확보와 동일해서 오씨라고 놀림받고 있는 동독의 노동자나 실업자들과 격렬한 일자리 충돌을 불러올지 모른다. 이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독일행을 선택한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들이 겪었던 힘겨운 생존을 되풀이해야 한다.





통일독일이 대규모로 유입될 난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저임금‧비정규직으로 돌려버리면 독일사회의 잠재적 불안요소로 자리할 수도 있다. 이들이 만들어낼 시장은 기득권의 수중에 집중될 것이고, 메르켈이 동독노동자와 경쟁시키면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한 난민들이 신빈곤층을 형성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며 그리스 부채탕감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 있다. 유로존의 돈을 싹쓸이하는 것에 대한 각국의 비난도 이번 결정 때문에 쏙 들어갈 수 있다. 프랑스 정부가 받을 압력도 클 것이며,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나머지 유럽국가에도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메르켈 입장에선 한 번만 더 총리를 연임하면 정치인으로서의 경력도 완성되기 때문에 묘수를 둔 것만은 확실하다. 독일이 저지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감안하면 이 정도 희생은 당연한 것이고, 유럽의 제국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 등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결정은 환영해마지 않을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모델처럼 한다면 메르켈의 결정은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일 될 것이다. 부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5.09.04 08:44 신고

    함께 사는 세상..그것이 정답입니다



선거가 정치적 갈등에 한계를 설정한 것처럼 전국노동관계자위원회는 경제적 갈등에 한계를 설정했다.


                                                                           ㅡ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 2》에서 인용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어떤 나라건 최초의 도입기준은 노동자의 최저시급이 생활이 가능한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도입기준은 10세 전후의 어린이까지 노동착취의 대상으로 삼은 자본의 탐욕이 노동자 폭동의 주요원인으로 작용하자 체제의 안전(자본에게 중장기적으로 유리하다)을 지켜야 하는 정치권의 중재로 제시된 것이다.





사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우리 모두는 케인즈 학파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경제가 안정됐었던 1945~73년에는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경쟁과 독식보다는 협동과 공존을 중시했던 그 시기에는 부자와 기업에 대한 세금이 높아서 노동자의 대부분이 중위소득(국민을 소득순으로 늘어놓을 때 정확히 중간에 위치한 소득) 근처에 몰려 있었다.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때맞춰 유동성 함정에 빠진 케인즈 체제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슈퍼리치와 금융 산업은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를 전면에 내세웠고, 대처와 레이건의 당선으로 이어짐에 따라 케인즈 체제는 종지부를 찍었다.



이때부터 부자와 기업에 대한 대규모 감세가 단행됐고, 그에 따라 복지체제의 축소와 노동자임금의 하락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협동과 공존을 위한 평등에 빨간색을 칠한 채, 경쟁과 독식을 위한 자유(방임)를 효율성 증대와 경제성장의 지고지순한 가치로 끌어올렸다.





규제완화의 핵심인 노동유연화가 대세가 됨에 따라 노동자의 복지만이 아니라 임금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법과 공권력, 용역을 동원한 노조의 파괴와 맞물린 비정규직의 확대는 노동자 임금을 하락시킨 것을 넘어, 열악한 일자리를 놓고 저임금노동자들 간의 피 터지는 싸움을 초래했다.



이런 과정에서 노동자의 계급의식은 종적을 감추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거대사업장의 노조는 각자도생으로 돌아섰고, 비정규직을 위한 노조의 결성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다.



특히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가장 완벽하게 시행하고 있는 이명박근혜 정부 7년6개월 동안 최저임금은 사실상 후퇴를 거듭했다. 최저임금의 절대액수와 인상률은 이 땅의 비정규직을 노예로의 삶으로 이끌어갔다. 그들은 생존의 긴급함 앞에서 어떤 저항의 연대도 할 수 없었다.





국가의 경제규모는 커지고, 수출기업의 흑자액은 늘어났지만, 주요 업무를 제외한 상당수의 업무를 아웃소싱과 파견 및 해외로 돌려버림에 따라 비정규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최저임금의 생활임금으로의 회복을 위한 투쟁도 먼 나라 얘기처럼 돼 버렸다.



서울과 순천시 등 일부 지자체는 조례를 개정해 최저임금의 생활임금화를 실시하고 있지만, 정부의 조세 정책 때문에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차체로서는 실시하기 힘든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복지와 연금의 부족으로 영세자영업자가 난립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최저임금의 생활임금화는 여기저기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시장자유주의 우파의 최대 성공사례). 



이처럼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은커녕 생존임금 선에서 머물며, 노동자의 기본적인 삶도 불가능하게 만든 출발점에는 신자유주의적 감세가 자리하고 있다.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과 미국의 두 지도자가 18~19세기의 경제학(자본의 노동착취가 가장 심했던 시기)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으니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신화에서도 삭제됐다.





한국에서는 IMF 외환위기와 이명박근혜 정부의 등장으로 최저임금의 생활임금화는 무산됐다. 심지어 법정월급의 하한선보다 더 적은 것이 최저임금의 현실이 됐다. OECD가입국 중 사회복지지출이 꼴지인 것까지 더하면 비정규직의 삶은 생존선 이하에서 결정되기 일쑤였다.



내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6천원 초반에서 결정될 것 같다고 한다. 최저임금의 월급 적시를 제외하면 어떤 소득도 거두지 못한 상태에서 투표로 결정난다고 하니, 자본친화적인 공익위원들이 6천원을 넘길 공산은 거의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이 6천원 수준에서 결정되면, 증세 없는 복지와 줄푸세만 밀어붙이는 박근혜의 승리가 또 하나 더해진다. 국회법 개정안 폐기와 61개 법안의 통과로도 모자라, 최저임금의 인상을 최소화하고 유승민도 쫓아낼 수 있게 됐으니, 7월 8일은 박근혜가 정치적 승리를 확고히 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복지 없는 증세가 허구라고 말한 유승민이 원내대표에서 쫓겨난 날, 최저임금이 6천원 초중반에서 결정되니 우연치고는 참 얄궂기 만하다.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나라에서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면 노동자의 가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이 또 한 번 입증됐다.    



복지가 형편없는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최저임금이라도 생활임금을 보장해야 하는데, 자본과 재계를 위한 가짜 민생만 중시하는 박근혜 정부 내에 양대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힘으로 최저임금을 생활임금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교조는 법외노조로 추방됐고, 공무원노조는 정치적 중립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제1야당까지 무력하니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내수경제를 살리려면 복지를 늘리던지 최저임금이나 근로자임금을 올리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줄푸세의 여왕, 박근혜가 그것에 동의할 가능성은 제로다. 유권자로서의 현명한 선택을 넘어,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연대해서 행동하지 않으면 서민을 위한 나라도 없을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7.08 05:15

    근로자는 있어도 노동자는 없습니다.
    자본이 만든 세상. 친일 후예들이 지배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는 노동자가 아닌 노예만 있을 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08 15:58 신고

      그렇지요, 이제는 노예의 삶만 남았습니다.
      싸워야죠.
      소리치고 떠들고 저항하고 거부해야 합니다.
      민중의 역사란 늘 아래로부터의 저항이었습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7.08 09:05 신고

    최저 임금을 현실화해야 하는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수 많은 중소기업들의 영향을 정부가 대기업들이 흡수해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불법을 저지를판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입국할때 최저 임금 교육을 받고 들어옵니다
    최저 임금을 못 받으면 바로 노동부에 고발하라고 합니다

    이 불합리한 구조를 위에서부터 바꿔야만 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8 15:58 신고

      개혁은 절대 아래서부터 해야지 위에서 하면 말짱도루묵이 됩니다.
      민주주의는 개혁이나 권력, 권한, 권위가 밑에서부터 올라가야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제 자리를 찾습니다.

  3. 목요일. 2015.07.08 11:19 신고

    우리모두 자본주의의 노예라고 할수도 있겠네요

  4. 『방쌤』 2015.07.08 11:24 신고

    정치,,,별개의 것이 절대 아닌데 말이죠
    무슨 거창하고 어마어마한 것들을 바라는게 아니라
    밥은 제대로 먹고 살수있게 해달라는 것인데
    그 마저도 저버리는 정부가,,,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일까요,,,
    남은 시간이 너무 길어 마음이 더 답답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8 15:56 신고

      싸워야 합니다.
      떠들고 불평하고 저항하고 소리쳐야 합니다.
      그래야 저들이 움직입니다.

  5. 가난한여행자 2015.07.09 02:28 신고

    이명박 ,박근혜 7년.... 아직도3년 지옥같네요

    이명박은 나라를 수익모델로 해 나라를 금전적으로 거덜나게하고,, 박근혜는 전제 군주 여왕 코스프레하다 나라 정신을 추락시키고

    국민들은 각자도생을믿고 ,자기만 피하면 된다고 조금 가진것 유지하려고하니...이것 순시간에 도둑놈변해 대낮에 !!

    이상태로 가다가 , 전국민 90%가 하위층으로 떨어질것 같네요


    김대중, 노무현때 나라,국민이 상승하는 기운이였다가 ,, 국민들이 악마들한테 속아서 찍고보고. 정신까지 잃은것 같네요

    이.박은 지도자가아닙니다 ,,,,장사꾼, 연극배우입니다


    우리나라 복도없지 ,,, 모든것이 발전하려고 할때 저런것들이 나타나 , 태클을 걸어 넘어 뜨리는지?

    저세력에 저항레 앞장 설 지도자들이 ..야당 .재야학자 들이 저들과 동업자인지 의심이드네요
    이엄중한시기,,민주주의사망, 국민들 노예화 에 중간적인 말만하네요...


    제가 젊은 시절 ,유명한 재야 학자 .정치인 들을 교류한적 있는데, 이들의 학벌의식 ,엘리트의식을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지금 4.19. 386민주세력들이 지지멸멸한 이유도 대중과 멀어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는 철학과 문학이 부재하고 권력,신분상승으로만 이용한것 같네요


    지금은 야당에서 회색분자들을 축출하고 , 집토끼를 단속하고 , 대여투쟁을 해야 할때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박근혜& 새누리당 무능 ,아집,을 알려야합니다


    이러다가 다음에 총선 , 대선 ..저악마들이 집권하면 우리나라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자원이없고 인구많은 나라에서 중산층이 무너지면 ,,,상상할수없는 빈국으로 떨어집니다

    2%가 모든부를 갖는 나라,,그리고 나머지는 ,,


    ....자다가 일어나 두서없이 써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9 02:34 신고

      힘내십시오.
      일단 정권부터 탈환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라도 되지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포기만 하지 마시지요.

  6. 꿈나라논리 2015.07.09 13:24

    최저임금 만원으로 올리고 비정규직 정규직만들고... 노조가 하자는대로 하면 삼성이나 현대도 10년 못가서 망하고 한국경제는 붕괴될겁니다
    최저임금 만원이 한국경제 현실에서 맞는 이야기 인지... 도대체 현실을 알고 말하는 것인지 ...온라인이니까 아무렇게나 무책임하게 떠들어도 되는 것인지...
    경영이나 경제 회계를 좀 안다면 당신처럼 무책임하게 떠들지 않을거요
    알바생을 고용하고 있는 편의점이라도 운영해보시요 최저임금이 만원으로 현실화되면 편의점은 100% 망할겁니다 지금도 개고생하는 편의점주들은 전부 한강으로 갈겁니다
    당신같은 사람들을 원망하면서 ...
    현실을 깨닫고 삽시다 !!! ㅉㅉ

    • 늙은도령 2015.07.09 20:43 신고

      왜 편의점 주인을 위해서 알바생들이 희생해야 합니까?
      그들에게만 권리가 있습니까?
      편의점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면 정리해야죠.
      아니면 정부에게 요구해야지요, 편의점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라고.
      님처럼 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살자고요?
      누구를 희생시켜가며 자신은 살고자 하는 것만큼 악한 것이 없습니다.
      왜 편의점주는 알바생만 희생시키려 합니까?
      그리니 맨날 당하고만 사는 것입니다.



저는 아웃사이더적 기질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제가 소아마비 장애인이라는 것에서 나온 것 같고, 상대적이고 때로는 절대적인 약자를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불의한 강자에게 지극히 도전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아웃사이더적 기질과 풍부한 상상력,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등이 무모할 정도로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얄팍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본 사람은 저와 비슷한 성향과 기질에 빠지기 쉽고, 이는 『아웃사이더』의 저자 콜린 윌슨이 설파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란 '평생을 치통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자기보존의 본능과 끝없이 싸우면서도, 지독한 자아의 방황에 끔찍한 열병을 앓는 사람이고, 그 중에 일부는 성자의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고 했는데, 저야말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삐걱거리면 걷는 양철로봇과 같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가 저로 하여금 사업에 실패한 이후 처음으로 세상의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바라보게 한 최초의 순간이었고, 저는 그 후로도 한참이 흘러야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승의 주인에게 제출할 삶의 대차대조표에 기록할 삶의 변명들을 찾던 것에서부터 처음으로 해방될 수 있는 단초를 찾은 것이었지만, 그때는 제게 찾아온 놀라운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더 많은 책과 더 많은 영역에 대한 지적 탐구를 계속했고, 그것이 제 육체의 병들로부터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그때는 제 몸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변화의 조짐들을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어쨌든 저는 딜리트 키를 한 번 누르면 완전히 삭제되는 최후의 선택을 뒤로 미룰 수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아주 자그마한 여유가 생긴 저는, 저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주목하지 못한 채 주류 경제학(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과 거기서 인용된 책들을 네트워크 타듯이 넘다들며 지적 탐구의 분야를 넓혀갔습니다.

 

 

특히 밀턴 프리드먼을 필두로 한 시카고학파들의 저작들과 하이에크의 《노예로의 길》과 《자유에의 헌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헌데 작은 지식이 쌓인 것 때문일까, 아니면 현장과 너무 다른 그들의 주장과 뻔뻔함 때문인가, 저는 그들의 형편없으면서도 탁월한 그래서 80년대 후반부터는 누구나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지적 사기(그들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를 끝까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시카고학파와 그들의 현실 참여와 각종 기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파고들수록 정치는 물론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이 떠올랐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실체에 대해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계급적 의식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같은 그런 계급의식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공통의 정서적 유대 같은 것이었습니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저의 분노는 커가기만 했습니다.

 

 

경제학 지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안내자도 없는 완벽한 독학이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의 해석을 바탕으로 편향된 지식만 섭취하던 저는, 저의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볼 때도 그들의 이론은 지구와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화폐주의와 자유방임적 무한경쟁을 통해 무정부적 자유주의를 최종 목표로 하는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빚도 자산이라는 허구의 논리가 인류를 종멸로 이끌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거대 자본과 금융산업이 대다수의 국가와 인류의 발전을 견인했던 실물경제를 담보로 다단계적 사기를 얼마든지 칠 수 있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고 주장이었습니다, 제가 L통신사를 상대로 일종의 허무맹랑한 사기(정확히 사기는 아니었다. 과대망상에 가까웠다)를 쳤던 것처럼. 그들은 거대한 지적사기군단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주류 경제학(신고전주의자)은 경제학자들이 먹고살기에 딱 알맞는 학문이었습니다. 



오히려 J.S. 밀과 칼 마르크스에서 시작해, 칼 폴라니와 허버트 민스키,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장하준 및 센 등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주류 경제학자들의 책에서 더 많은 지혜와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훨씬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실물 경제와 금융 산업의 폭주에 적합했고 살아 있는 통찰이자 지식이었습니다, 『블랙스완』의 저자 탈래브가 시니컬하게 비판했던 것처럼. 

 



                                                

그러다 문득 저는 한 가지 공통점 비슷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 동안 방향을 못 잡던 중에 문득 떠오른 것인데, 그것은 현대로 접어들수록 주류 경제학자들이 갖추지 못한 것들의 공통분모였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했는데, 그것은 위대한 현인들의 특징인 철학적 사고와 과학적 지식의 부족이었습니다. 또한 미국 중심의 편향적인 가치관과 기회주의적 속성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지적 탐구는 다방면으로 확대됐습니다. 주류 경제학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때부터 주객이 완전히 전도됐습니다. 저승에 제출할 삶의 대차대조표에서 엄청난 마이너스를 만회하기 위해 시작한 생의 마지막 여정이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었고, 그 내용도 처음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제가 읽은 책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저자들이 인용하고 추천한 책들을 중심으로 끝없는 지적 여정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지식은 쌓여갔고, 몇 번인가 두뇌 이곳저곳에서 각자 따로 있던 각각의 분야들의 지식들이 조금씩 합쳐지거나, 일부라도 연결되는 그런 생각하지도 못했던 경험들을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제가 알게 된 것들을, 사업 실패의 경험과 함께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과 미래세대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신 나간 생각이라며 야단맞기에 딱 알맞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죽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 것이지요. 물론 그 당시에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더욱 확실한 증거들을 찾아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방향을 틀었는데, 지금에서 돌아보면 제 건강도 그때부터 끝없이 이어지던 추락에서 상승 쪽으로 돌아선 첫 번째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끝에는 더 큰 추락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젊었을 때 읽었던 천여 권에 이르는 문학서적들과 각종 교양서적에서 접할 수 없었던 실질적이면서도 저에게는 미지의 영역에 있었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읽은 것들을 모두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종 지식들을 꾸역꾸역 뇌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앞에서 경험한 것, 이렇게 무식하게 정독한 것들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하나의 종합으로 귀결되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중중의 병들을 달고 사는 환자가 어설프게라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면 최소한의 건강이 뒷받침돼야 했는데, 제 몸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은 제게는 분명 커다란 기적이었습니다. 뇌의 기능이 살아나자 육체의 건강도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정말로 문은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리는 것이었고,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에 찾아온 무모한 생각 하나가 저를 다시 살게 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하루에 몇 십 분씩이라도 운동을 다시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조금씩 쌓여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운동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10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저는 분명 마지막 선택을 생각했던 시기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해져 있었습니다. 공황장애는 완벽히 극복할 수 없었지만, 육체적 고통은 많이 줄어들었고 망가진 간과 허리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저는 닥치는 대로 물리학과 화학(이것은 제 형님과 동생의 전공이라 공부하기가 수월했습니다)에 대한 교양과학 서적들을 사서 읽었고 생물학과 유전공학, 뇌과학과 정보통신과 언론방송 분야까지 닥치는 대로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몇 번을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많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작정 읽고 또 읽었습니다. 모든 책을 정독했고,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이해하는 부분도 늘어났지만, 하루하루 속도는 빨라졌습니다.

                                                           

 

동시에 자연철학과 정치학으로 범위를 넓혔고,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쓴 책들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터지라고, 두뇌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일고 또 읽었습니다. 막무가내 식 독서가 300여 권을 넘어설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속살을 볼 수 있는 통섭적 지식을 찾고야 말겠다는 미친 짓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소설 같은 책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고, 철학적 사고와 과학적 추상을 요구하는 것들은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야 했습니다.



전반적인 이해도 딸렸지만, 하나의 책에서 인용된 다른 책들로 옮겨가며 지적 탐구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정말로 무모했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결과들이 하나 둘씩 모양을 갖추면서 저는 일정 수준 이상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고, 제가 직접 책을 사서 읽기 전까지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쯤에는 읽은 책들이 500여 권을 넘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지적 탐구를 향한 주먹구구식 독서의 양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아니 어쩌면 건강이 좋아지는 것 이상으로 경이로운 일일지도 몰랐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머리 여러 곳에 따로 따로 저장돼 있던 500여 권에 이르는 책의 내용들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 연결되고 합쳐지더니 하나의 개념과 이해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밝힌 것처럼 뇌의 가소성 원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뇌의 여러 부위에 따로 존재했던 책의 내용들이 새롭게 살아난 뉴런과 시냅스에 의해 연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철학·방송·교육·역사 등의 온갖 서적에 나왔던 내용들이 서로 몸을 섞더니 명료한 형태로 융합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은 동안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도 두껍게 가렸던 속살들을 드러내더니 이내 합쳐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어서, 제가 가장 싫어하게 된 플라톤의 경이로운 체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후로 책을 읽는 속도와 이해도가 높아졌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책들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헌데 진정으로 경이로운 일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뇌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에 의해 세상의 이면과 진실이 보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온갖 병으로 망가진 몸에서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처음에는 그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보다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 맞을수도 있을 것 같겠지만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간의 기능이 극도로 저하되는 간경화가, 수시로 일어나는 공황증상과 깨어 있는 모든 순간마다 통증을 전해오는 디스크 증세와 만날 때마다 저는 2~3개 월 간격으로 죽을듯한 고통에 시달리다가도, 체력이 되살아나며 다시 살아갈 만큼의 회복이 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회복된 체력이 제 나이 또래의 평균적인 것에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할 만큼 미약한 것이었습니다. 저로서는 통증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통증의 업&다운이란 현세와 지옥을 오가는 느린 마차처럼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갈아먹는 것은 변함없었지만, 이런 기간이 지나가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는 있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한 번 건강이 악화되면 최소 2주는 사경을 헤맬 정도로 고통에 시달립니다. 피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내적 각성의 고열은 극도의 피로를 가져다줍니다. 신문의 기사 하나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TV 시청을 2분 이상 지속할 수 없을 만큼의 극한의 피로감에 빠져듭니다.


                                        

                                                     로댕의 지옥의 문



그렇게 1분1초가 단테의 불길처럼 짓밟고 가면, 저는 조금씩 극도의 무력함과 피로에서 패잔병처럼 풀려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뇌의 변화에 이어 일어난 육체의 변화를 건강 자체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될 극한 고통과 견딜 만한 고통의 사이클 중의 하나라고 평가 절하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업다운이라도 생긴 것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1%의 희망 때문에 산다고 하지만 그 망할 놈의 1% 때문에 현실적 두려움인 99%의 절망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작은 몇 평의 방에서 빛과 어둠의 경계에 갇혀 있던 육체에, 하루하루의 힘겨운 삶에 작은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인정하기가 어려웠고, 다시 찾아올 통증에 대한 예단이 제 영혼을 좀먹곤 했습니다. 정신에 이은 육체의 변화는 분명히 예전의 싸이클과는 달랐고 저는 업다운의 폭이 줄어들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그런 변화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그것은 마치 작열하던 태양이 어둠으로 넘어가기 전에 휴식의 공간처럼 황혼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었습니다. 수면제가 들어간 다량의 신경정신약의 힘을 빌어 잠이 든 후, 느지막이 깨어나면 약 1~2분간 주어지던 무고통의 평화로운 순간들이 조금씩 길어지더니, 정신과 영혼까지 갉아먹던 육체적 통증이 완연하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그런 변화, 육체적 통증에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게 된 체력의 회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죽는 순간까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건강의 호전이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절대 제 것일 수 없으리라 포기했던 희망이 비로소 그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저 알고나 죽자고 했던 그 자포자기식 저항이, 한 가닥 미련이 저를 끈질긴 고통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심연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빌어먹을 1%의 희망이 절대적인 확률로 저를 짓눌렀던 99%의 두려움과 현실적인 한계와 압도적인 절망을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의 여명이 너무나 무겁게 자리하고 있어 절대 물러설 것 같지 않았던 칠흑 같은 어둠을 조금씩 밀어내면서(내가 다시 살게 된 이유 ㅡ4).  




P.S. 이 글을 쓴 3년 후인 어제, 마침내 서울까지 운전을 하고 갈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너무 지쳐서 세월호광장과 소녀상에 갈 수 없었지만, 서울까지 운전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갈 생각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덕산 2014.08.17 00:37

    늙음도령님 그런 큰 사건을 통해 얻게된 지식과 경험을 나눠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4.08.17 00:49 신고

      아직도 공부할 것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 동안 공부한 것을 한 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2. 늦은봄 2014.08.19 20:05

    건투를 빕니다~~^^

  3. 백순주 2015.08.18 11:59 신고

    V자를 그리며 웃고 있는 모습에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글입니다.
    이제 좀 편안해 지셨나요?
    저는 단 1%도 공감해 드릴 수 없는 인생입니다.
    남편이 제게 했던 말을 늘 반박하곤 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겠습니다.
    "암튼 즐거운 인생이야! 대체 어려움이 없었으니 어떻게 이해를 하겠어?"

    학문의 넘나듦을 할 수 있는 님의 능력이 부러우면서도 그 댓가를 치르라면 손사래를 치며 달아날 수밖에 없겠습니다.
    희망을 보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늙은 도령'이라는 필명이 왠지 꺼려져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제 학문의 깊이가 앝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끝에 닿도록 제 자리에서 힘 써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 윤승현 2016.05.12 10:17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처음 "썰전"에 출연하는 유시민,전원책님을 검색하다 이곳과 인연을 맺게되었습니다. 어제 처음 썰전에 유시민작가님이 출연한다는 것을 알고 몰아서 다시보기를 하다보니 아침이 되었구요. ^^;;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곳과 인연을 맺게 되다니....
    좋은 글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란의 글은 더욱 공감하면서 읽었구요.
    자주 자주 들러 좋은 글로 감사한 마음으로 머리와 가슴을 채워갈게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윤승현 배상


물론 포퍼가 말한 것처럼 "국가의 과업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개인의 자유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허용될 수 있는 자유의 정도를 정확하게 결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발전을 퇴행시키고 있는 국가와 거대 자본의 폭력과 사적독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국가의 이익이란 미명 하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야만공권력의 부활을 용납한다면 영원히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하는 자유방임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국가에 의한 공적독점이 사적독점보다 위험하다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 시장경제를 통치의 영역까지 확대재생산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어떤 상황으로 몰고갔는지를 조금만 돌아봐도 이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1940년대 중후반에 푸라이부르크 학파가 정립한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가 미제스와 하이에크를 통해 밀턴 프리드먼으로 이어지면서 무정부적 자유주의로 치달았던 것도 규제 없는 자유방임이 무한경쟁을 유도해서 공적독점을 사적독점으로 대체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란 제도가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래서 사방이 벽으로 막힌 제한된 개념이다. 무제한적인 자유, 즉 책임에 대한 면책을 당연시 여기는 자유방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란 정글을 재현하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삶과 사회의 조건으로 정착시킨다. 이런 자유방임을 내세워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한 불량배의 항변에 어떤 재판관이 "당신 주먹을 마음대로 놀릴 자유는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의 코가 어디 있는가에 따라 제한된다"고 말한 것이 자유의 한계를 말해준다. 




칼 슈미트가 국법이 정지하는 곳인 예외상태를 제외하면, 국가의 공권력 사용도 기본적으로 이것에서 출발하며 여기서 멀리 나갈 수 없다. 경찰이 쌀개방에 항의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던 농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농민이 죽자,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진심어린 사과를 하며 했던 말도 여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플라톤에 뿌리를 두고 있는 권위주의적 통치자에게서는 절대 들을 수 없었고, 지금도 듣지 못하고 있는 그런 진심어린 사과 말이다. 


저의 이 사과에 대해서는 시위대가 일상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힘들게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의 사기와 안전을 걱정하는 분들의 불만과 우려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자식을 전경으로 보내 놓고 있는 부모님들 중에 그런 분이 많을 것입니다. 또 공권력도 사람이 행사하는 일이라 자칫 감정이나 혼란에 빠지면 이성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인데, 폭력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원인된 상황을 스스로 조성한 것임에도 경찰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공직사회 모두에게 다시 한번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이 땅의 보수세력들이 매일같이 빨갱이라 욕하며 부관참시도 수없이 당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최대한도로 실천한 지도자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공권력의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그 필요성을 인식했으며, 따라서 공권력을 사용할 때 어떤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줬다. 플라톤보다 반세기 정도 앞서 살았던 페리클래스의 연설(다음 글로 올리겠다)을 인용하며, 칼 포퍼가 "민주주의란 '국민이 지배해야 한다'는 무의미한 원리에 의해서는 철저히 규명될 수 없고, 이성과 인도주의적 신념에 기초한다"고 말한 것도 노 대통령의 사과문과 일맥상통한다.



칼 포퍼가 우파 전체주의의 기원을 플라톤에서 찾은 것은, 국가를 절대적인 주권을 소유한 유일한 자로 정의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나치의 공법학자이자 모든 전체주의적 독재자의 교본인 《정치신학》의 저자 칼 슈미트, 인류 문명의 종착점이 완벽한 폐허라며 허무주의를 주장해 나치의 등장에 일조한 《존재와 무》의 하이데거 등이 플라톤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의 기원이 플라톤에 있다는 비판은 한나 아렌트만이 아니라 위대한 석학인 벤야민과 아도르노와 바우만 등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또한 마르크스가 경제 발전의 유일한 법칙으로 계급투쟁론을 들고 나온 것도 플라톤의 《국가(론)》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아무리 작은 나라라 하더라도 둘로 갈라진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의 나라이고, 또 하나는 부자의 나라이다. 그리고 이 두 나라는 서로 전쟁을 벌인다"라고 말했다. 계급투쟁론의 기원도 플라톤에서 시작된다. 그의 이분법적 삼단논법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권위적이며, 종종 일방적인 결론을 유도해낸다. 



이데아의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일체의 변화를 허락하지 않는 플라톤의 '억제된 국가'는 전체주의의 원형으로 이어지고, 개인에 대해 사회나 체제, 국가의 우위를 명백히 한다. 언제나 정에서 출발해 반이 나타나고, 정이 반을 반영해 합으로 가는, 그리고 그 합이 다시 정이 되면서 언제나 현존하는 체제가 선한 것이 되는 헤겔의 변증법도 플라톤의 사상에 기원하고 있다. 이렇게 보수(정확히는 기득권)의 철학을 가장 완벽하게 정립한 헤겔은 물론, 마르크스도, 크라우스도, 레닌도, 히틀러도 플라톤에 사상적 기원을 두고 있다.        



이런 플라톤의 사상과 정치철학은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에서 볼 수 있고, 특히 묵자의 사상에 이르면 동양의 플라톤이 떠오를 정도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가》와 《국가》, 《법률》 이전의 플라톤의 저서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을 보면 일부일처제를 중심으로 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공자의 사상과 '맹모삼천지교'로 유멸한 맹자의 사상이 수없이 나온다는 사실이다(특히 미셀 푸코의 《성의 역사》 시리즈인 《앎의 의지》, 《쾌락의 활용》, 《자기배려》를 참조할 것). 


인류의 철학과 역사를 지금부터 기원까지 거꾸로 찾아가다 보면 서양과 동양의 사상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푸코에서 많이 배웠다는 네그리는 《제국》에서 지배세력에 대해 언제나 대항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에 전체주의란 존재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전체주의는 일정 시점에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닌 영원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지금도 실존하는 국가(제왕적 권력을 허용하는)의 형태 중 하나이다. 


좌우가 지향하는 유토피아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단 하나의 지점인 자유의 왕국으로 귀결되는 것도 플라톤이 정립한 최선의 국가, 즉 억제된 국가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의 주장을 극대화하거나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좌우의 유토피아는 동전의 양면처렴 연결돼 있다. 벤야민이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과 푸코가 국가란 본질적으로 개인화하는 경향과 전체화하는 경향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철학자가 지닌 이성의 힘을 과신했던 플라톤에서 출발해 칸트와 헤겔을 거치는 과정에서 완성된 근대이성이 현대성을 이루었고, 그것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스탈린의 굴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밝힌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도 좌우의 전체주의가 일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즉, 완벽한 평등과 완벽한 자유방임은 단 하나의 가치만 인정하기 때문에 전체주의체제에서만 실현이 가능하다. 


마르크스의 자유의 왕국과 하이에크의 무정부적 자유주의는 과정과 수단만 다를 뿐 결과에서 있어서는 동일하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보다 깊은 성찰을 원하는 분들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죠지프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보라)로 다루겠지만,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국가에 의한 공적독점이 신자유주의의 번성으로 사적독점으로 대체되는 현실에서 우파 전체주의를 비판한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울림은 현재진형행이라 할 수 있다.    


조금은 길지만,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마지막 부분을 옮기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시간이 되는 대로 좌파 전체주의(이른바 역사주의)를 비판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요약한 뒤, 철학자이기 전에 과학자였던 칼 포퍼의 한계에 대해서도 다루어 볼 것이다. 플라톤에 대한 비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에는 몇 가지 오류와 편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플라톤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그것은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플라톤의 사회학적 진단이 우수했을지라도, 그 자신의 발전은 그가 대항해서 싸우고자 했던 악보다도 그가 추천했던 치료법이 더 나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다. 그것은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소위 닫힌사회의 순진함과 아름다움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천국에서의 꿈은 지상에서의 실현될 수 없다일단 우리의 이성에 의존하기 시작하고 우리의 비판력을 활용하기 시작한 이상, 개인적인 책임의 요구와 더불어 지식의 증진을 위해 조력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 이상, 우리는 부족적 마술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국가로 되돌아갈 수 없다. 지식의 열매를 먹은 자는 천국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부족주의의 영웅적 시대로 돌아가려 하면 할수록, 우리는 종교재판에, 비밀경찰에, 낭만화된 깡패행위에로 가는 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이성과 진리를 억압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적인 모든 것을 가장 야만적이고 포악한 파괴로 끝내고 말 것이 확실하다. 

자연의 조화된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되돌아간다면, 우리는 길 전체를 다 가야만 한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정면으로 부딪쳐야 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꿈꾼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행복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일, 인간다움과 이성과 책임의 십자가를 지는 일에 위축되어 버린다면, 용기를 잃어버리고 긴장에 찌들어버린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은 단수한 결정을 분명하게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강화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하여 안전과 자유를 위해 계획하면서ㅡ이 계획은 우리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야만 한다ㅡ미지의 세계,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1. 참교육 2014.07.31 19:04

    우리는 어쩌더 박근혜 같는 대통령을 만나 유시시대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시대 유신대통령... 불행한 국민입니다.

  2. 진흙속의연꽃 2014.08.01 08:08

    벤야민의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이런 논리가 물론 정치에도적용되겠지요. 세월호참사와 관련하여 꿈쩍도 않는 보수세력과 약자에의 편에 서서 바꾸어 보려는 진보세력이 극과 극이긴 하지만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득권’입니다. 권력을 쟁취한다는 것은 결국 기득권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국민의 정부5년과 참여정부 5넌 합쳐서 10년간 기득권을 누려본 사람들은 보수기득권과 다름 없는 ‘진보기득권세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3자의 입장에서 멀리서 내려다 보듯이 보면 다만 정권이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듯이 그 얼굴에 그 얼굴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야당이 참패하였는데 통쾌하다”는 타이틀의 기사를 보았습니다.일부 진보세력 중에는 같은 편에 총질하는 듯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정권만 잡으면 된다라는 것입니다. 허동준의 난동이나 일부 진보기자 또는 블로거 들, 그리고 일부 진보네티즌들의 글을 보면 진보의 가치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보수층에 노불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진짜 보수가 보이지 않듯이 진보세력 역시 마찬가지라 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정권이 바뀌어도 새로운 기득권 세력의 탄생 그 의미 이상이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물론 현재의 보수기득권세력 보다는 약간 좋아지겠지요. 앞으로 총선과 대선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보수층의 산업화 세력, 그리고 짱돌 던지던 진보세력의 시대가 아닌 제3의 세력을 고대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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