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역 사고에 이어 강릉선 KTX 사고가 뒤를 잇자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혹시라도 승객의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아닌지 철저하게 살펴보라'며 공공기관마저 정복해버린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폐해를 정확히 짚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안전권을 국민의 새로운 기본권으로 천명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참으로 국민께 송구하고 부끄러운 사고"라며 '국민들이 우리의 일상이 과연 안전한가'라는 근본적인 불신을 표할 정도로 '위험사회'가 일상화된 것은 아닌지 철처히 살펴보고, 재발방지책을 세우라고 강력하게 주문했다.

 

 

임기 내내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맹폭을 당하면서도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묵묵히 구축해나갔던 국가위기관리시스템과 청와대에 설치한 컨트롤타워, 중앙정부와 지자체 단위로 만들어놓은 위기대처메뉴얼 등이 이명박근혜 9년 동안 모조리 해체되고 무력해진 상황에서 백석역 사고와 강릉선 KTX 사고가 일어났기에 문프의 경고는 시의적절했다. KT의 사고와 함께, 두 개의 사고는 '나라다운 나라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지난 1년 반 동안 부단하게 노력했지만 완전하게 복구하지 못한 노무현 참여정부의 안정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말해준다.  

 

 

백석역 사고와 강릉선 KTX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 공기업의 민영화와 핵심 부분 민영화, 안전관리업무의 외주화와 정원 축소, 공무원 조직의 무사안일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이런 것들조차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내세운 여러 가지 논리에 따른 것이다. '공기업은 민간기업에 비해 효율성과 서비스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민영화해야 한다. 민영화를 할 수 없다면 조직을 슬림화하고 민간전문가를 특채해 민간의 관리기법을 적용해야 한다. 그들에게 핵심 부분을 맞기고 나머지를 민영화나 외주화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일련의 합리화 논리 세트에 정부와 국회는 물론 상당수 국민까지 동의하도록 세뇌당했기 때문이다. 문프가 확실한 점검과 대책을 강하게 요구한 것은 이런 것들을 바로잡으라는 뜻이다. 

          

 

 

 

유대인 학살에 사용된 독가스의 연료였고 베트남을 파괴한 대량살상 폭탄에도 탑재된 DDT가 지구생태계와 환경을 얼마나 많이 망가뜨렸는지를 다룬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천지사방에서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잠식하고 있는 각종 위험요소들로 인해 현대사회의 특징을 '위험을 지고 사는 삶'으로 압축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모든 분야에서 진행된 개발의 정도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늘어나는 이유를 사례별로 풀어낸 필립 맥마이클의 《거대한 역설》 등을 보면, '혹시라도 승객의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백석역 사고와 강릉선 KTX 사고의 본질'이 아니냐는 문프의 지적은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폐해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념과는 정반대에 위치했으니 이런 경고가 가능했던 것이다. 

 

 

미셀 푸코가 처음으로 명명한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막스 베버가 관료제의 핵심으로 파악한 합리성(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 등으로 대표되는 형식적 합리성으로 인간의 노동을 초 단위까지 분류·분석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과정에서 인간을 배제하고 기계와 로봇으로 대체하는 완전자동화를 목표로 한다)을 프레드릭 테일러가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한 '과학적 관리'의 최종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푸코가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궁극의 통치술이라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나왔다.

 

 

(푸코가 제시한 신자유주의 권력과의 저항점을 다변화하자는 제안을 네그리는 《다중》에서 이합집산이 신속하고 자유롭게 일어나는 벌떼 같은 네트워크의 다중으로 재편성했지만, 필자는 그의 노력을 발전으로 보지 않고 후퇴로 본다. 한국에서는 《폭력의 세기》라는 제목으로 변역됐고, 《공화국의 위기》에서는 〈시민불복종〉으로 번역된 비폭력 시민저항이 한국의 촛불혁명으로 발현된 시민행동주의로 보는 것이 푸코의 성찰을 발전적으로 재편성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판단하고 있다). 

 

 

공기와 물처럼 자연이 선사한 물질들은 물론, 민주주의와 종교, 도덕과 윤리, 자유와 평등, 사랑과 우정, 헌법과 법률 같은 인류문명의 합의물과 정신적 산물까지 포함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거래 가능하도록 만들어버린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정보통신술과 유전공학, 나노공학, 뇌과학 등의 발달에 따라 우주까지 식민화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까지 확대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시장민주주의로 대체된 것도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생산해낸 최고의 상품이다. 

 

 

조지 리치가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의 '뉴 센추리판'에서 잡다하게 다룬 경영과 인사, 생산과 판매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형식적 합리성이 프랜차이즈 업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는 과정도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폭주가 세상을 점령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맥도날드 지점들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는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종업원만이 아니라 손님마저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맥도날드화에 내재되어 있는 합리성의 비합리성'으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  

 

 

20세기의 중후반을 지배한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민간기업과 공기업을 넘어 NGO, 시민단체, 비영리단체, 선거, 복지, 사회안전망, 교육, 종교, 결혼, 데이트까지 '요람에서 무덤'으로 대표되는 삶의 전 과정을 점령했고 점령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과 유전공학, 나노공학, 뇌과학의 발전으로 생전(정자와 난자공장, 유전자 조작, 냉동수면 등)에서 사후(디지털 유언장, 사이버 세상에 남겨진 온갖 흔적들)까지 관리하고 통제해서 최대한의 데이터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인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인간을 넘어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다품종 대량생산'이 모토인 포드자동차의 생산방식(just in case,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본사는 물론 협력업체의 제고까지 충분해야 한다)과 '소품종 맞춤생산'이 모토인 토요다의 생산방식(just in time, 주문에 맞춰 생산하기 때문에 본사의 재고는 최소화하지만, 본사의 납품요청시점와 요구량을 예측할 수 없는 협력업체는 납품시점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재고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이중삼중으로 죽어난다)도 동일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전성시대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보다는 베버의 합리성에 더욱 많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비인간화의 초석을 다진 기간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후쿠시마산 제품과 라돈침대 등에서 발견된 방사능과 (KBS의 <저널리즘 토크쇼 J>와 <손석희의 뉴스룸>이 발생진원지를 두고 논쟁하고 있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일상화도 '인간보다는 이익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만들어낸 역설이다. 최근에는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에서 호언장담한 초인공지능의 특이점 돌파, 즉 전지전능한 신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베버와 테일러, 포드 등에서 출발해 토요타와 소니, 삼성전자를 거쳐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에서 만개한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극소수의 인간과 함께) 지구와 우주까지 식민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푸코를 초청해 진행된 '꼴레드 주 프랑스'의 강의를 책으로 묶어낸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를 보면,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시장에서의 경쟁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인 최초의 신자유주의 모델)를 연구한 후에 '자유주의 통치술'이라고 명명한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영국의 브랙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으로 대표되는 '표퓰리즘 세계화'의 배후에 자리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케이블TV(한국의 종편)과 팟캐스트, 인터넷 언론, 소셜미디어와 포털에 적용된 '빅데이터 알고리즘'과 무차별적 규제 완화(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랜들리, 박근혜의 줄푸세),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거대자본이라는 '탐욕의 삼각편대'가 없었다면 '표퓰리즘의 세계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위험사회의 일상화'도 그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중간 과정으로 보면 충분할 것 같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이구동성으로 경고하고 있는 '민주주의 종말론'과 '인류의 종말론'도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만들어낸 '위험사회'에 디지털기술의 총화인 '감시사회'가 통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공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기술적 이해가 높은 학자나 전문가일수록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할 시기로 2050년을 거론하고 있다(필자는 물리법칙의 한계 때문에 집적도의 향상이 한계점에 근접하고 있거나 실리콘을 대체할 신소재의 안정성과 대량생산을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로 볼 때 2050년보다 더 미뤄질 것으로 본다. 그렇다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으며 몇십 년 정도의 시간차에 불고할 뿐이다). 

 

 

그들이 2050년을 골든크로스가 일어나는 시점으로 제시하는 근거는,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한정됐지만 초지능으로 가는 최초의 범용인공지능인 구글제로의 발전 속도에 따른 것이다(페이스북과 바이두가 만들고 있는 인공지능도 범용인공지능의 초기 버전인데 셋 중에 누가 최종승자가 될지 알 수 없다. 범용인공지능이란 직관이나 의식, 감정 등처럼 수학적 계산과 확률만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특성들ㅡ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의 생화학적 작용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의 종류와 양에 의해 결정된다ㅡ을 모조리 따라잡을 수 있는 초지능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장기적 불평등을 초래한 사유재산권에서 출발해 인류의 멸종이란 종말론적 미래로 귀결되고 있는 이 모든 과정은 단 하나의 합리성에서 출발했고 인류의 진화 역사 전체와 비교했을 때 한 시간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프가 '백석역 사고와 강릉선 KTX 사고'에 대해 '혹시라도 승객의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아니냐'며 의문을 표한 것에 정확히 응축되어 있는 탈이념과 탈인간화의 합리성,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푸코처럼 베버의 합리성에 주목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보면, 농업생산성을 극적으로 높여준 DDT는 히틀러의 나치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 독일의 생물·화학자들이 개발하고, 관련 엔지니어들이 제품화했으며, 교통학자들이 설계하고 토목·건축학자들이 구축한 현대적 교통망인 철도와 도로를 이용해 철강·기계 관련 공학자들이 독가스를 담을 특수탱크를 제조해 자동차·철도업체가 만든 자동차와 기차를 이용해 지리학자들 지정하고 조경·건축·건설업체가 만든 유럽의 곳곳에 흩어진 유대인 수용소까지 보낼 수 있었다. 

 

 

정치·외교학자들이 제공한 논리와 역사학자들과 군사전문가들이 세운 전략을 바탕으로 유럽국가들을 위협해 유대인을 방출시켜 집단수용소로 보내게 만들고, 최고의 디자이너와 의류업체들이 만든 값싼 의류를 입히고, 식품업체가 제공한 최소의 음식만 먹이고, 행정학자와 심리학자의 조언에 따라 명망있는 유대인을 끌어들여 유대인 모집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민·종교·교육·여성·청년단체를 동원해 유대인 색출의 임무를 부여하고, 정신분석학자와 정신병 전문의, 괴벨스 같은 언론·방송·광고전문가와 문인, 방송사와 언론사를 총동원해 악성 루머와 유대인 음모론을 만들고 유포해 유대인의 악마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행정학자와 아이히만 같은 행정공무원들을 동원해 학살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최고의 경제성을 도출해낸 것이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본질이자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변종 중 하나다. 

 

 

스탈린의 소련연방에서 자행된 대규모 학살의 집행지이자 정치범 강제수용소인 '굴락'도 히틀러의 나치가 운영한 유대인 집단수용소와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됐다.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있었던 나치의 유대인 집단수용소와는 달리 '굴락'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또는 공개되지 않아)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둘은 작금의 표퓰리즘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극우와 극좌의 폭력성과 잔인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말해주는 인류역사의 잔혹함이다. 

 

 

인간이란 종으로 살아가는 모든 날들에 감사하자. 70억 인류 중에서 노통에 이어 문프까지 경험할 수 있었고, 경험하고 있는 행운에도 감사하자. 자유와 평등, 인권을 보장하는 민주공화국에 살고있는 것에 감사하자. 죽기 전에 남북한의 자유로운 왕래와 공동 번영이 시작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것에 감사하자. 북한이란 존재를 팔아먹으며 호가호식했던 수구꼴통이 표퓰리즘의 득세로 부활하는 것에도 감사………………………하지 말고(제기랄, 어떻게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인데 그렇게 빨리 돌아설 수 있단 말인가!) 슬퍼하고 분노하고 저항하자(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종편의 활약(?)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김어준과 주진우, 김제동, 이동형 등에 열광하고 휘둘리는 것이!).  

  1. 뉴페이스 2018.12.11 05:20

    일딴 srt부터 없애야죠.
    정규직화에 대한 논란이 상당히 많은 건 맞지만(아버지가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무하셔서 압니다.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불만이 굉장히 높다고 하네요...),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 방향으로 가는게 맞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코레일이 손해를 입고 뒤에서 철도시설공단이 이득을 먹는 이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엎는거, 그게 우선이라 봅니다. 탈선의 근본적인 책임은 철도시설공단에 있는데 모두 코레일만 보죠...

    • 늙은도령 2018.12.11 06:06 신고

      문프가 공무원을 대폭 늘리려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위험의 외주화에서 벗어나려면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철도시설공단이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는 워낙 오래된 것이어서 그것까지 건드리려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정치적 역학관계가 보통 아닙니다.
      저의 삼촌이 교통개발원을 만든 분이고 저도 그곳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 잘 알고 있지만 수십 년의 노력으로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기존의 정규직이 반발하는 것은 모든 세대와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보면 인정하기 힘듭니다.
      그런 반발은 민간기업에서도 엄청나게 나오고 있지만 기득권의 주장이라 동의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합리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 분야를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18 동안 그것만 파고들었는데 최근에야 전체적인 윤곽을 잡았습니다.
      다양한 학파와 주의의 신봉자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모두를 섭렵해야 비판의 지점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 어느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고요.


뉴스룸에 출연해 '선한 의지'에 관해 손석희와 열띤 설전을 벌인 안희정을 보면 철학적으로 설익은 언어를 쓰는 정치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안희정은 나름대로 자신의 정치철학을 키워왔다고 하지만, 그것을 적절한 언어로 풀어내기에는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분해, 검증, 비판'이라는 20세기의 지성과 대비되는 21세기의 지성을 '통섭'으로 들었지만, '선한 의지'를 풀어내기에는 '통섭'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정반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안희정이 '선한 의지'를 말한 이유는, 반드시 상대가 있기 마련인 정치에서 대화와 협치를 통해 최적의 합의에 도달하려면 상대에 대해 열린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그럴 때만이 정치의 본질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상당히 일반론적 얘기입니다. 정치던 무엇이던 상대를 의심하는 상태에서 대화가 진행되면 거기에 어떤 진정성이 있으며,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이명박이 '4대강공사'를 제안했을 때도 그것을 통해 (광범위한) 사익을 챙기고, 자신과 같은 종족이라 할 수 있는 토건족에게 엄청난 이익을 챙겨주려고 했다 해도, '4대강공사'를 무력화시키려면 그의 제안이 '선한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4대강공사'에 대해 이명박과 대화를 할 수 있고, 그럴 때만이 어떤 방법으로 목표한 바를 이루려는지 알 수 있고, 그것의 적절성을 따져 '4대강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도 마찬가지고요. 안희정이 말한 '통섭'도 이런 것입니다. 어떤 정책과 주장도 다 '선한 의지'에서 시작됐다고 인정할 때 그것들을 '토론과 합의'라는 정치적 과정에 끌여들일 수 있으며, 그럴 때만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최상의 합의(민주적 협치)'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그것이 곧 '정치적 차원의 통섭'이라는 것입니다. 20세기적 지성으로 출발하면 딴죽만 걸지 아무런 대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안희정의 주장으로 보입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포함돼 있고요. 그가 말한 '통섭'이라는 것은 어떤 상대라도, 그가 제시한 어떤 정책과 주장이라도 일단은 '선한 의지'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토론과 합의의 테이블'로 올려놓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나 자신의 논리나 진영논리에 빠져 극단적 대결만 난무할 뿐 '대화와 합의'라는 민주적 협치를 이끌어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 도지사를 해본 그의 경험인 것 같습니다. 





이명박의 녹색성장, 박근혜의 창조경제도 이어가겠다는 것도 이런 선한 의지, 즉 통섭의 발로입니다. 민주주의를 성선설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희정의 통섭은 최상의 정치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선한 의지'로 접근한다면 대화하지 못할 것도 없고, 상호간에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보다 완벽한 민주적 정치란 없을 것일진데, 필자가 걱정하는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극도로 세분화된 전문가들의 시대에는 모든 것들이 편협한 관점에서만 다뤄지고 반론이 허용되지 않는 바람에, 그만큼 세분화할 수 없는 사회적 차원에서는 리스크(위험사회)가 일반화된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 통섭입니다. 유대인 학살이 히틀러의 편집증적 광기에서 시작됐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총동원된 국가적 차원의 집단학살(현대성)이었다는 것을 밝힌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봐도 통섭적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줍니다. 



헌데 유대인 학살도 안희정의 관점에서 보면 '선한 의지'로 읽히는 점이 있습니다. 게르만 민족의 영광과 천년제국이라는 독일의 꿈을 실현하려면 유대인이 없어야 한다는 히틀러의 광기도 당시 독일과 프랑스, 폴란드 등의 유럽국가들 사이에서는 '선한 의지'로 포장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부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유대인 때문에 각국의 불만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던 것이 당시의 유럽이며, 이는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에서도 자세히 다루어졌습니다.  



심지어 유럽의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것도 히틀러의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지식인(플라톤에서 연원한다)이라 보편적 동의는 얻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유대인 학살에서도 나름의 '선한 의지'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안희정이 '4대강공사'와 '미르·K스포츠재단'에서도 '선한 의지'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정확히는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박근혜의 창조경제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안희정의 통섭이 오류에 빠져있는 것은 부분적 사실을 가지고 보편적 진실을 도출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통섭이란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시간이 지나 증폭돼 미국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를 이해하는 것이지, 텍사스의 토네이도에서 어떤 나라의 어떤 나비의 날갯짓이 대기에 영향을 줘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특정화(극단적 세분화)해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명박의 '4대강공사'에서 녹색성장의 '선한 의지'를 찾거나 박근혜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서 창조경제의 '선한 의지'를 찾아내는 것이 (정치적) 통섭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정치적 통섭의 일반론이지만, 온갖 궤변으로 포장한 이명박의 '4대강공사'가 '선한 의지'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그래서 '악한 의지'에서 출발했기에 모든 보들을 철거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적 통섭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4대강공사'는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토건족의 이익(악한 의지)을 지구온난화를 완화시키는 녹색성장(선한 의지)으로 포장해낸 나쁜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거기에서 '선한 의지'를 찾을 필요도 없고, 찾아서도 안 됩니다. 안희정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것에 최소한이라고 해도 일종의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이기에 책임정치의 실종으로 귀결될 수 있으며, 마키아벨리적 통치술의 일종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은 결과로 말한다는 것이 가장 마키아벨리적인 것이며, '악한 의지'로 출발해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결과만 놓고 모든 것을 평가하면 민주주의는 필요없습니다. 대화와 토론, 협상과 타협, 합의와 협치도 필요없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그만인데 무엇 때문에 피곤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까? 안희정의 주장은 무조건 여소야대로 출발해야 하는 다음 정부의 고충(대연정을 제안했던 노무현의 고충이기도 하지만, 노무현은 그런 상황에서도 성공했다)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논리적 오류에 빠졌거나, 설익은 정치철학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안희정의 '선한 의지론'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그 자체의 추론만 놓고보면 어떤 모순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추론을 위한 전제를 구축하는데 너무 많은 오류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제대로 된 비판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정책과 주장도 부분적으로 보면 '선한 의지'로 포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안희정은 주장도 같은 식으로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통섭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것임에도. 





문재인이 안희정의 '선한 의지론'에 분노가 없기 때문에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그래서 적절했습니다. 부분적 사실로 정당성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것에도 책임을 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대강공사'로 이익을 본 사람들도 있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으로 재미를 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선한 의지'는 최상의 면죄부입니다. 박정희에게 '공칠과삼'을 준 것도 '선한 의지'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럴 경우 '5.16군사쿠데카'가 박근혜와 수구꼴통들이 그렇게도 주장하는 '구국의 결단'으로 승화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결과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면 '선한 의지'로 출발한 '나쁜 결과'와 '악한 의지'로 출발한 '좋은 결과' 중 책임져야 할 것은 전자(마키아벨리가 군주의 자질이라고 한 것)입니다. 좋은 정치는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청산대상과의 대연정을 '선한 의지'와 (정치적) 통섭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정의와 과정을 중시하는 민주주의는 어디에 위치해야 합니까? 이것이 제가 안희정 지사에게 묻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악한 의지'와 '선한 의지'의 경계는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판정합니까? 이것이 제가 안희정 지사에게 묻는 두 번째 질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잉어 2017.02.21 02:42

    안희정도 알면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20분간을 자기 홍보도 아닌 장황하고 무의미한 철학적 논쟁을 가지고 설득력 없는 눌변으로 때우고 들어가는 대통령 후보가 있을까요?
    정작 대통령 되는 것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준비도 안한것 같고요

    어차피 한정된 진보표를 두고 선명성 경쟁으로 같은 당의 신뢰하고 사랑하는 동지와는 제로섬 게임은 하고 싶지 않았을 테고
    외부표라도 붙잡아서 인지도는 올려야겠고 그런 스탠스 같네요.
    야당 지지자들 혀차는 소리만 골라서 하는 의도가 노골적입니다.
    본인의 본심과는 다른 주장을 계속하다보니 앞뒤가 안맞고 두리뭉실해지고 그런 것 같아요.

    안철수나 바른당이 가져갔을지도 모르는 표를 안희정이 선점한 덕분에 민주당 중심의(문재인) 정권 교체는 보다 확실해졌는데
    안희정 개인으로서는 차차기에 이 실망한 지지자들을 어떻게 포섭하느냐가 관건이겠네요.

    뉴스룸 후 라이브 인터뷰에서 안희정의 관점을 선해하면 이런 것 같습니다.

    (꼴통과 악인도 똑같이 1표를 행사하는)민주주의에서 현실적으로 너무 큰것을 바라지 말자. 실망할 뿐이다.
    유권자의 수준만큼(전체 유권자)의 정치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맥시멈이다.
    (노무현처럼)뛰어난 지도자가 나와도 영혼없는 공무원, 타락한 언론과 정치인들을 데리고 더구나 과반에도 못 미치는 의석수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GH처럼 민주주의를 무시한다면 가능하겠지만)
    나는 기존과는 다르게 유권자의 수준이 정해주는 국회의석수에 따라 목표를 달리 정하고 조금씩 성과를 내보겠다.
    여러분이 연정에 치를 떨고 적폐청산을 원하고 새누리당을 박살내고 싶으면 3년뒤 총선에서 반드시 압도적으로 저들을 박살내 주셔야합니다
    그래야 문재인 대통령이 임무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21 03:00 신고

      그렇다면 안희정은 더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프레임전쟁>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다룬 인지심리학적 정치에 대한 공부가 특히 필요하고요.
      안희정은 자신이 담을 수 없는 부분까지 얘기하려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노무현 같은 정치인은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다시 나오기 힘든데 안희정은 노무현을 뛰어넘겠다고 했으니 초조했겠지요.
      노무현을 뛰어넘을 필요가 없습니다.
      노무현 만큼만 하겠다고 해도 충분합니다.
      제가 안희정의 측근이라면 <시민정치론>을 읽어보라고 할 것입니다.
      그는 이재명처럼 촛불집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재인은 촛불집회를 따라가려고 하는데 안희정과 이재명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이용을 목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의 워딩은 그런 식으로 결론납니다.
      정확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는데 피상적 이해에 머물러 있습니다.

      3년 후의 일을 지금 고민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의 변화를 3년이나 내다보는 것은 미친짓입니다.
      안희정은 차차기를 노리고 나왔다가 너무 지지율이 높아지자 길을 잃었습니다.
      빨리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지금은 대연정 같은 것으로 중도보수에 어필할 시기가 아닙니다.

    • mangrove 2017.02.21 09:37

      안희정이라 두둔하시는 건가요?

      팩트는 팩트 아닌가요?

      누구에는 선해로 바라보고 누구에게는 포퓰리즘으로 바라 보는 근거는 요?

  2. 푸른소나무 2017.02.21 07:34

    도령님 글 잘 읽었습니다
    어제 jtbc 뉴스룸 방송을 보면서 안지사도 (이재명 시장처럼) 상승하던 지지율에 고무되었다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의 발언 의도는 모르는건 아닙니다만, 현재의 상황을 만든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안지사의 생각을 선뜻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저는 어제의 방송에서 손석희 앵커가 안 지사의 발언에 말꼬리를 계속 잡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안지사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질문한 것일 수도 있지만) 흡사 문대표가 작년말(11월)에 뉴스룸에 나왔을 때 조기대선에 관해 반복적으로 질문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같은 질문의 반복으로 인해 안지사의 발언도 점점 꼬인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안지사의 답변을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다른 주제를 다뤄보지 못한 점이 아쉬웠네요

    • 늙은도령 2017.02.21 10:57 신고

      문재인에게 물었을 때의 손석희는 문재인의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재인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역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안희정에게 물었을 때의 손석희는 안희정의 발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희정이 벅벅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안희정은 준비한 것에 비해 너무나 많은 지지가 나오자 한껏 고무됐는데, 그렇다 보니 님의 지적처럼 이재명의 실수를 되풀이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검증을 받았고,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안다면 문재인의 지지율은 너무 낮은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무현 죽이기의 복사판인 문재인 죽이기의 위력은 그렇게 나타납니다.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 문재인의 지지율은 급격히 오를 가능성이 높지만, 그때까지 마음을 조금이라도 졸여함은 제 건강에 너무 해롭네요.

      에고... 제가 자초한 것이니....
      그리고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것의 대가이기도 하니.....



  3. 耽讀 2017.02.21 08:06 신고

    안희정. 참 아쉽습니다.
    너무 단정하는 것 같지만, 지웁니다.
    다시 마음을 열기는 너무 가버렸습니다.
    이 정도면 설득과 토론이 힘듭니다.
    때론 함께 가는 것보다 빨리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유익할 때도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21 11:03 신고

      안희정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 직전입니다.
      몇 발작만 더 나가면 끝입니다.

  4. mangrove 2017.02.21 09:35

    우리 사회가 개인적 관념적 개똥철학을 수용할 만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물어 뜯기고 죽임을 당하고 나라는 제구실을 못하는 이 시점에 해야할 개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상호가 발언했던 국회안의 언어라는 것의 존재에 대해서 점점 심증이 굳어 갑니다. 노통을 계승한다고 하면서 그런 망발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지, 얼마나 국민이 우습게 보이면, 말도 안되는 논리를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지 이미 또 한 놈 제껴져서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소통은 기본적으로 보편적 진리와 가치관에 의해서 출발합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독단과 독선에 빠져 있다면, 이미 소통은 불가합니다. 우리는 그 실체를 지난 10년간 보고 겪어 왔습니다. 자칭 민주주의 인사라는 작자가 하는 액션이 보편적 진리와 가치관을 무시한채 가르치려고 든다면 그건 충분히 위험한 발상 입니다. 독재의 싹수가 보이는 겁니다.

    안희정에게 묻고 싶습니다. 집안에 강도가 칼을 들고 들어와도 일단 선의로 봐야 하는지.....

    역겨운 변절자 어서 치워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21 11:05 신고

      문재인 죽이기의 반작용이 안희정에게 플러스로 작용했는데, 그것에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안희정은 부산팀이 아닌 금강팀으로 노무현이 정치적 동지였지만, 세월이 둘간의 거리를 너무 벌렸나 봅니다.
      아니면 안희정이 지지율 상승에 너무 취한 것일 수도 있고요.

  5. 필리버스터 2017.02.21 09:54

    우와....솔직히 다 이해하는건 아니지만, 이 주제에 대해 이보다 멋진 글이 있을까 생각이 들정도로 읽으면서 감탄했습니다.

    안희정은 21세기 철학으로 두리뭉실 넘어가려고 했지만, 어제 손석희에 이어 이 글에 담긴 논리로 뭔가 스스로 감추고싶었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낸 느낌이군요.

    • 늙은도령 2017.02.21 11:06 신고

      안희정은 선한 의지와 통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손석희의 질문에 횡성수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자신의 그릇보다 너무 나가면 반드시 실족하게 돼있습니다.
      지지율 상승이 대통령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한편으로는 독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7.02.21 10:47 신고

    저도 어제 이 부분을 잠깐 보았는데 논리가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득하는 지식도 부족해 보이더군요

    • 늙은도령 2017.02.21 11:11 신고

      자신의 그릇을 정확히 알 때 뛰어난 정치인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는데, 안희정은 그릇의 크기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합니다.
      준비도 많이 부족하고요.
      지지율 폭등이 불러온 부작용입니다.

  7. merryjanet 2017.02.21 12:11

    어제 뉴스 시간이 참 아깝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저 뿐이 아니었을거예요.
    '선의'니 '통섭'이니 하는 말로 안희정은 뭘 얻으려했을까요?
    안희정 지지자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결코 현명하지 못한 단점만을 드러낸 어제 인터뷰였고,
    대선후보 검증을 위한 것이라서 손석희 인터뷰어를 비난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안희정은 좌측을 더 확보할 능력은 안되니까 우로우로만 가다가 지지율이 오르니까 분별력을 잃었다 할까...
    아무튼 경선은 염두에 두지 못한 참으로 어리석은 후보란 점만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심하게 욕하자면, 안희정은 자신의 개똥철학으로 자신보다 어리석지 않은 국민들을, 특히나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국민들을 더 화나게 만들었어요.
    어대문!!! ABM!!! 이게 정답입니다 ^^

    • 늙은도령 2017.02.21 12:22 신고

      촛불시민을 가르치려 하지 말아야 하는데 안희정은 정반대로 나갔습니다.
      안희정의 즉문즉답은 안철수의 즉문즉답을 떠올립니다.

      글에서도 밝혔듯이 안희정은 대연정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는 생각에 선의와 통섭을 들고나온 것인데, 그것이 장고 끝에 악수였던 것이지요.
      김대중과 노무현을 뛰어넘겠다는 것을 대연정으로 풀어냈는데, 그 자체가 판단착오이고요.
      안희정이 촛불집회 초반에 일정 거리를 두었던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검증이란 회고적이어야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과정이 검증 수단 중 으뜸이며, 그런 면에서 인터넷은 최고의 보고이지요.

  8. 과유불급 2017.02.21 12:28

    어제 뉴스룸의 안지사는 준비된 대권 도전자의 자세가 아닌 그냥 철학자로서의 질의답변을 준비해온 분으로 보였습니다. 실망이 큽니다.
    좀 더 정치적 수양을 쌓은 후 다음을 봤으면 했는데 참으로 아쉽네요. 결국 내공이 쌓이지 않은 자기수양은 바로 밑천이 들어나 보이는 법입니다.
    안지사가 느낀 지지율 폭등? 별것 아닙니다. 그런 숫자놀음에 고무되었다면 진짜 자기수양이 더 필요하겠죠. 이번 부산강의도 단순히 자기 정치소견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멀리 갔습니다. 안지사 정치생명에 영향을 줄만큼 상당한 내상을 입은것은 말할것도 없구요.
    적폐대상과의 대연정도 모자라 선의를 가지고 나라를 같이 이끌어 가자?
    피의자와 피해자를 선악 구분하지 말고 서로 대화후 화해해서 합의보자?
    대화 이전 갑과 을을 따지게 되면 너무 소모적이니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된다?
    그러니 이명박그네의 4대강과 미르재단도 선의로 했을테니 순수하게 받아드리면 된다?
    촛불민심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건 저혼자만의 생각인가요. 안지사 개인적 가치관도 문제이지만 국민을 대하는 진솔함은 더더욱 멀게만 느껴졌던
    뉴스룸 시청소감입니다.

    • 늙은도령 2017.02.21 12:53 신고

      안희정이 말한 선한 의지는 악한 의지와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것을 빨리 이해해야 할 텐데,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너무 멀리 가버렸네요.

      분노가 없으면 정의도 없고, 정의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지도자의 분노가 시민의 분노와 달라야 한다면 그때부터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구별하는 선으로 작용합니다.
      촛불집회는 분노에서 시작됐지만 어떤 정치인도 보여주지 못한 성숙함으로 가득합니다.

      안희정의 가장 큰 문제는 촛불집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재명도 마찬가지였는데, 최근에 들어 이재명이 제자리를 찾아가나 싶더니 안희정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려 하네요.
      준비된 지도자라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인데, 안희정은 인권변호사 노무현이 준비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 결정적 순간을 보지 못했고, 그에 반해 문재인은 곁에서 지켜봤다는 차이가 이렇게 커져버렸습니다.

  9. ㅅㅌㅂ 2017.02.21 13:13 신고

    정치학과 철학적인면을 제대로 공부한 뒤에 안지사 발언과 도령의 글을 다시봐야지 싶습니다. 하지만 안희정에 대한 실망감이 지금은 아픕니다.

    • 늙은도령 2017.02.21 14:14 신고

      그렇게 여물어지는 것이지요.
      안희정에게도 이런 혹독한 검증이 나쁠 것은 없습니다.
      안희정이 노무현에 버금가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면 이번 검증에서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부디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안희정이 사과를 했다는 것은 나쁜 징조는 아니고요.

  10. 선달후손 2017.02.21 15:26

    정치가가 철학을 얘기하는건 정치판에사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노력중 하나인것 같습니다. 일종의 행동에 기반한 철학이고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입장에허서 보면 설익은건 당연합니다. 가장 중여한건 이세상 모든사람들도 잠시 철학적 사유를 할때를 제외하곤 오류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철학자도 가정에서 와이프와 자식들에게 매순간 모순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지요?
    그렇다면 정치인으로서 안희정은 다른 정치인들 보다 한발 더 진일보한 것일까요, 아닐까요?
    행동의 진실성이 답을 보여주겠죠..
    진실한 지도자와 거대한 사기군은 서로 등지고 맏닿아 있네요..

    • 늙은도령 2017.02.21 21:12 신고

      정치철학이라는 것은 그가 말하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에 관한 철학적 사고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정치철학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말하는 신념과 가치 지향과 비슷한 것입니다.

      안희정의 문제는 선한 의지를 적용할 수 없는 것에 적용했다는 것이 문제로 작용했습니다.
      안희정 식으로 가면 누구와도, 모든 것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것은 임기 5년의 지도자로서 소화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다뤄야 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선한 의지가 아니라 직관이나 분석, 검증 등을 먼저 실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하고, 모든 것을 선의로 받아들이면 어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4대강공사 등에 면죄부를 발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완전히 개판이 됩니다.

  11. 참교육 2017.02.22 08:35 신고

    말장난이 심하네요. 언어란 의사의 소통입니다. ㅅ통되지 않은 언어는 말이 아니지요.
    먹물근성 아니랄까봐 말장난질이이나 하다니... 내 말 못알아듯는 무식한 놈은 그냥 날 존경스러워 하라는 뜻 아닌기요?
    사람됩됨이조차 틀려먹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22 09:14 신고

      그런 면이 강합니다.
      자꾸 가르치려 듭니다.
      그건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12. mangrove 2017.02.22 09:51

    안희정은 오직 권력에 대한 욕심 밖에 없습니다. 안철수, 반기문, 손학규, 정동영 이런 부류와 다르지 않습니다.

    http://news1.kr/articles/?2916998

    썩을 대로 썩어 있었군요.

  13. 글쓴이 2017.02.24 03:48

    글 잘 읽었습니다. 통섭이 생각보다복잡한 개념이군요.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안희정 지사가 뉴스룸에서도 해명했지만 '선한 의지'란 말 자체에 집중해서 보지 말아달라며 중요한 건 상대의 '생각' 자체에는 선악의 구분을 두지 말자고 제안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생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자유니까요. 그런데 미리 선을 그어서 너는 나쁜 놈 착한놈 편가르기 식 사고에 대한 경계를 제시한 것 아닐까요? 참고로 강연한 곳이 부산지역이였고 박근혜대통령에 한표를 행사한 사람들이 꽤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박근혜 대통령도 '생각'자체는 본인 기준에서 선의일지 모른다. 그래서 잘 해보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법을 지키지않은 점이 문제가 되어 법적처벌을 받는다는 요지로 말했습니다 . 이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혹여나 자신들이 박근혜 세력이 나쁜일을 하게 만든 원인제공의 동조자가 된 것은 아닐까하는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안지사가 주장하는 의사소통의 원리로는 박근혜대통령이 생각 자체는 선의라고 주장하니 일단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행동에 있어서 법적절차를 어기고 국가재산을 개인 사유화한 행태가 드러나기에 그건 국민을 선의로 포장하여 속인 것입니다. 결국 본인이 선의라는 말로 국민을 속인 것이니 박근혜를 뽑은 유권자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이 범죄 행위를 하지 않을 지도자, 정직하고 신뢰가는 지도자를 선출하면 되는 겁니다. 안지사는 기존에 편가르기식, 이븐법적 사고로 세력을 불리는 정치가를 고발하고 국민의 전체이익에 부합하도록 진실을 말하고 행동하는 인물로서 자신의 지지를 호소해왔습니다. 보수진영이 가득한 충청남도에서 사랑받는 도지사 1위를 다년 간 차지한 것은 그가 민주주의 지도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전 오히려 이 '선의'발언 사건이 미디어와 여론의 자극적인 짜집기식 생태에 기인한 하나의 형태로 보입니다. 마치 부분으로 전체를 다 안다고 믿게끔 국민에게 진실을 호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제대로된 후보검증은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알아봐야합니다. 대중미디어에 본 단편적인 모습을 전부로 믿는 태도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2.24 16:19 신고

      제가 좀더 냉정하게 썼다면 안희정의 발언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밝힐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선한 의지로 포장된 것에 의해 거대한 피해를 입어왔습니다.
      핵무기를 만들 때도 선한 의지가 작용했고, 핵발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도 선한 부분을 찾고자 하면 찾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철학적인 토론이라면 모를까, 정치는 국민 전체가 포함된 것입니다.
      모두가 선의라면 정치가 필요없지요.
      선거도 필요없고, 민주주의도 필요없지요.
      선의라는 것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말하는 것에는 선의란 없습니다.
      그것은 교언영색이지요.
      안희정은 정치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말하면서 어떻게든 합리화하려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바구지 못합니다.
      법과 제도에 문제가 되지 않게 한 것이 4대강공사입니다.
      법을 바꾸었고 제도를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했지요.
      안희정 식이면 이것에 대해 어떤 단죄가 가능하지요?
      선한 의지로 포장하면 모든 게 용납됩니다.
      그래서 철학에서나 가능한 얘기를 안희정은 하고 있는 것이고, 통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통합은 자연과학, 공학 등의 전문적 세분화가 인류를 멸종의 위기로 내모는 것을 막고자 인문학과 함께 묶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정치에서의 통섭이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것이겠지만ㅡ정치에서의 통섭이 가능한 것인지 따져야 하겠지만ㅡ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것은 적절한 타협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면 통섭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희정은 어설픈 것이고요.
      애당초 통섭이 안 되는 것을 통섭으로 접근하니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지요.

    • 오잉??? 2017.03.13 14:53

      오 역시 이번에도 마지막 덧글이 훨씬 더 좋군요. 도령님 ㅋㅋ
      선한의지문제는 문재인 한마디로 정의되죠. 분노가 없으므로, 정의를 실현할수 없다./ 부처님이면 몰라도 인간세계는 불가능 합니다...
      선한의지란 성선설과 같은 주관적인 환상과 같은것입니다. / 굳이 이상론을 펴고 싶으면 선한의지말고 다름이라고 해야 합니다...박정희가 선한게 아니라 우리와 다른관점이다로.../ 그리고 우린 선에도 다름에도 악이 분명히 있음을 압니다. / 우병우도 악한사람이 아닙니다... 학창시절 정직한 검사를 3년내내 꿈꾸던 사람이 마누라와 처가를 잘못만난 인연때문에 우리와 많이 달라졌을뿐이지요......



필자가 최근에 읽은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보면 저자가 거듭해서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 '권력의 작용'이다. 라이시는 "시장 규칙이 형성되고 이에 따른 경제적 이익과 손실이 '비인격적인 시장 지배력'이 작용한 '자연적인' 결과로 포장되는 과정에는 권력의 영향력이 숨어있다"고 말하면서, "경제 게임의 승자와 패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독특하고 감지할 수 없는 정부의 시장 '침입'이 아니라 정부가 시장을 조정하는 방식"임을 강조한다. 





요즘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성과연봉제는 '경제적 이익과 손실'을 배분하는 '시장 규칙'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 규칙이 권력의 작용에 따라 제멋대로 재단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권력이 강한 쪽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는 것이 성과연봉제라는 뜻인데, 박근혜 정부는 권력의 작용으로 결정되는 성과연봉제를 통해 시장을 조정해서 사측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주 지진 때문에 생산공장이 파괴된 기업의 경우 노동자와 영업사원의 낮은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지하철 인명사고가 많아지더라도 많은 승객만 운송하는데 성공했다면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연장근무에 연장근무를 더하는 식으로 실적은 높였는데 직원의 건강이 망가졌다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과잉진료로 병원의 실적을 올렸지만 건강보험재정에 부담을 떠넘겼다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사업본부장이나 팀장이 성과가 나올 수 없는 일을 밀어붙였거나 강제로 배당받았다면, 그 본부나 팀 소속 직원들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사장이 잘못된 계약을 했다면 직원들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부사장이나 고위임원이 중간에서 배임횡령을 했다면 그 피해를 감수해야 할 직원들의 성과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직원 차원에서는 성적이 좋았지만 팀 단위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어느 것을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할 것인가? 



특정 시기에 나온 제품만 불량이어서 실적이 저조했다면, 건축 중에 폭우가 집중되서 공기가 지연돼 적자가 났다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성적이 저조한 직원이 동료의 성과를 비밀리에 가로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당장은 이익을 냈지만 장기적으로 손해가 나는 경우에는 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성과를 측정하는데 객관적으로 수량화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성과연봉제는 기업의 크기와 상관없이 권력이 강한 쪽에서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는 여지들로 넘쳐난다. 평가자와 평가받는자의 견해가 다를 경우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줄 기관도 없다. 당사자들보다 해당 업무에 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제3의 기관이란 권력의 영향력에 따라 객관적 사실과 다른 결과를 내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평가가 내려진 다음에 그것을 뒤집는 것이란 하늘에서 별따기보다 힘들다.  



형편없는 노조가입률도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극소수를 빼면 국민 모두가 노동자이지만, 성과의 평가를 놓고 사측과 다툴 때는 언제나 개인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성과연봉제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잔인무도한 독극물이다. 노사 양측이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을 정하지 않는 한, 수시로 변화된 환경을 반영하지 않는 한 성과연봉제는 노동자의 무덤이자, 이익에 대한 사측의 일방통행이자 독점이다. 



따라서 정부는 빠져야 한다. 압도적인 영향력으로 게임의 룰(시장 규칙)을 사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바꾸려는 불의한 권력의 작용을 멈춰야 한다. 개관적인 수량화가 불가능한 성과연봉제를 핑계로 저성과자를 지정하고, 기업의 이익에 반한다며 사회적 살인을 손쉽게 저지르게 만드는 반노동적이고 친재벌적인 폭력 행위를 멈춰야 한다. 성과가 문제라면 최악의 대통령인 당신부터 물러나야 한다.  



세상이 갈수록 1대 99사회로 재편되는 마당에, 무한경쟁과 승자독식만 부추길 뿐,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약자들인 노동자를 실직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내모는 성과연봉제는 철회돼야 한다. 국가와 사회복지가 형편없는 현실에서, 쉬운 해고와 공공기관의 민영화를 위한 사전작업인 성과연봉제는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치적 홀로코스트며, 하위 99%의 부를 상위 1%로 이전하는 신자유주의적 반동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어류겐 2016.10.02 05:21

    북한의 잠수함 탄도미사일 개발 성공은 "게임 체인져"가 됬습니다. 이미 정치학자들도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이 무조건적인 강경책을 버리고 북한과 협상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카드를 북한이 손에 쥐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 미사일 기술로도 워싱턴까지는 무리이지만, 괌기지나 오키나와 정도는 쉽게 도달 가능합니다. 물론 미국 캘리포니아도 마찬가지이죠.

    미국이 북을 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가져올 손해는 너무 막대합니다.

    결국 미대선도 있지만, 트럼프가 되던 힐러리가 되던 미국은 북한과 협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이미 온 것이며, 박근혜&이명박을 비롯한 수구 세력들은 이전의 기득권을 잃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야당조차도 새누리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른바 '안보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죠. 김종인 이 양반은 대놓고 천안함이 북의 격침이라고 하는가 하면, 사드 배치는 미국과 안보 약속이라며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다 알듯이 표를 의식해서이죠. 이것이 민주주의의 한계 같습니다.

    비관적인 현실이지만 다음 대선에서도 문재인씨가 당선되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해요.

    결국 다음 정권이 되더라도 남북 화해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러모로 비관적인 현실이네요.

    • 늙은도령 2016.10.03 00:19 신고

      내년 대선은 승리합니다.
      이것에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
      다만 박근혜가 깨놓고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입니다.
      이것을 막으려면 결국 김병기가 국정원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대선 정국이 되면 문재인이 본격적으로 필요한 발언들과 공약을 내놓을 것입니다.

      승리는 확신하지만 문제는 부정과 불법... 이것을 막을 방법을 강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참교육 2016.10.02 14:11 신고

    자본의 자본의 의한 자본을 위한 정부.
    이명박근혜는 이렇게 노동자를 한계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노예제 사회 계급사회가 영원할 것같았지만 무너졌습니다. 역사발전은 수구 세력 몇몇이 막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응징을 받을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6.10.03 00:23 신고

      네,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인공지능이 본격화되기 전에 세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본격화되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3. 어류겐 2016.10.03 02:06

    문재인이 되면 좋지만, 더민주가 당선하려면 수도권, 영남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대구경북을 붙잡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대구경북이 야권으로 돌아선다는 명백한 징후가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야권 내에서도 안철수에다가
    김부겸까지 가세해서 내가 대통령감이라며 대선주자 경쟁에 나선 모습이라 ;;

    • 늙은도령 2016.10.03 06:19 신고

      대구경북에서 30%만 받아도 됩니다.
      이번의 대구경북은 표가 분산될 것이고 투표율도 예전보다 높지 않을 것입니다.
      내년에 가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문제가 더욱 많이 부각될 것이기에 승산은 충분합니다.
      경주 지진은 사드와 함께 경북지역을 뒤흔들 것입니다.
      젊은세대들과 여성들이 보다 더 투표에 참여할 것이고요.
      저는 승리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지역선거보다 세대선거가 더욱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으니까요.

  4. 공수래공수거 2016.10.03 08:00 신고

    전 20년전에 성과연봉제를 경험했는대 득보다 실이 훨씬 많더군요
    평가하기도 애매하고 조작의 팀웍을 해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할려면 상위만 더 주도록 해야 합니다
    하위를 깎아 내리면 안됩니다

    • 늙은도령 2016.10.03 18:30 신고

      연봉은 기본입니다.
      성과급은 연봉과 별도로 운영돼야 하는 것이지 연봉이 되면 안됩니다.
      이럴 경우 회사는 정말 전쟁터가 됩니다.
      원하는 자를 자를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성과평가입니다.

  5. 맹그로브 2016.10.04 12:47

    대한민국이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거나 성과를 낼만한 나라 라면 백번양보해서 할수도 있겠지만, 결국 평가는 사람이 하기에, 줄서기 만들고, 올바른 소리도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노예를 만드는 제도 입니다. 지금도 과도한 경쟁으로 나라가 골로가고 있는데 저런거 만들어서 경쟁을 부추키면 결국 나라 망합니다.

    일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으로 하는 겁니다. 10명이 할 일은 혼자했다고 칭찬하는 대한민국이므로... 그렇다고 그사람이 모든 일을 10명 몫을 할 것도 아니고.... 멍청한 나라에 멍청한 오너에 멍청한 국민입니다.

    • 늙은도령 2016.10.04 20:20 신고

      성과연봉제는 노동권을 말살시킵니다.
      성과란 혼자만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습니다.
      성과를 매기는 자들의 주관이 관여됩니다.
      결국 쉬운 해고를 위한 것이 성과연봉제입니다.
      그 다음은 민영화이지요.



전 세계적으로 슈퍼 엘리뇨에 의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보통 10~20년 간격으로 발생해 2년 정도 지속되는 슈퍼 엘리뇨는 기상관측이 이루어진 이래 세 번(1972-73년, 1982~83년, 1997~98년) 일어났습니다. 이중에서 세 번째 슈퍼 엘리뇨(해수면의 온도가 2도 이상 3~6개월 정도 이어질 때 발생하는데, 19997~98년에는 최대 4도 이상 해수면 온도가 높아진 곳도 있었다)가 가장 큰 피해를 초래했습니다.  





지구의 자전과 해류의 변화 등에 따라 바다에 엄청난 열에너지가 축적돼 일어나는 엘리뇨는 적도 주위의 태평양에서 무역풍(동풍)이 약해짐에 따라 적도를 기준으로 동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할 때 발생합니다. 엘니뇨에는 적도 중앙 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는 태평양 엘니뇨와 적도 동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는 동태평양 엘니뇨로 나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을 속출시키고 있는 슈퍼 엘리뇨는 동태평양 엘니뇨에 속하는데, 이 때문에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 남미 등에서 발생한 폭설과 폭우, 가뭄과 폭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국의 빙하가 녹으며 형성된 거대한 냉기류가 슈퍼 엘리뇨와 정반대로 적도를 향해 밀려나는 것과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기상이변과 감당하기 힘든 재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남미에 위치한 페루와 미국이 샌프란스시코를 거쳐 동아시아로 이어진 환태평양대에 속한 한국에서 세 계절에 걸친 혹독한 가뭄과 겨울에 들어와 이상고온과 갑작스런 한파가 교차하는 것도 슈퍼 엘리뇨 때문입니다. 이런 기상이변과 재해에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내년 봄까지는 슈퍼 엘리뇨와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지구적 차원의 각종 기상이변과 거대한 재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문제는 슈퍼 엘리뇨의 발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구온난화가 급진성을 띠기 시작하면 현재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록적인 가뭄과 폭설, 폭우와 태풍이 상시적인 것으로 변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도 수십 배 이상의 강도와 규모로. 20년만에 발생한 슈퍼 엘리뇨의 피해로 전 세계가 비상사태에 빠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 대기의 평균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는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피해는 가늠하기도 힘듭니다.  



만약 인류가 무차별적인 개발과 성장, 그에 따른 변화한 인류의 삶의 방식 때문에 발생한 지구온난화를 2도 상승에서 잡아내지 못하거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세우기 전까지 온도 상승을 최대한 미루지 못한다면 비대칭적 종말(특히 위험한 지역의 중하위층에 집중될 종말)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온도 상승이 4도에 이른다면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생명체가 거의 다 종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과 기상학자들, 양심적인 석학들이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외치고 있지만, 박근혜처럼 대규모 개발을 피할 수 없는 성장을 외치며, 지구온난화를 늦추는데 도움이 되는 필수규제를 마구잡이로 풀고,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세우고 있을 상위 1%를 위해 노동개악과 경제 관련 법안들을 추진하는 것은 하위 99%를 죽음으로 내모는 최악의 홀로코스트에 다름 아닙니다.





이반 일리치로 대표되는 탈성장론자들의 주장이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닙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소비를 줄이고ㅡ특히 에너지와 육식ㅡ취업과 교육을 위한 이동거리를 줄여야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정부 차원의 대규모 성장정책이 추진된다면 모든 것이 말장 도루묵입니다. 미래세대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모든 성장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고, 부의 재분배를 통해 복지를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20년만의 슈퍼 엘리뇨처럼, 지구온난화는 피할 수 없지만 최소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도록 늦출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구온난화를 피할 수 없도록 만든 성장지상주의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자유)시장근본주의에서 벗어나 공존과 상생의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오직 정치만이 체제를 바꿀 수 있다면, 그런 정치를 선택하는 우리 모두의 선택이 현명해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경제위기와 민생을 내세워 성장지상주의를 외치며 지구온난화를 주도한 정당과 정치인부터 퇴출시켜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우파로 대표되는 이들이 더 이상 인류를 상대로 거대한 지적사기를 벌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많은 시민과 청춘, 학생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박근혜의 잔인함은 슈퍼 엘리뇨와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한파보다 더욱 치명적입니다. 부디, 건강 잘 유지해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1.25 08:56 신고

    대한민국이 꽁꽁 얼어 붙었고
    폭설로 많은 시민들이 발이 묶여 있습니다

    제주 공항 사태는 미리 조처 못한 정부의 부실 행정 결과입니다

    한파에 건강 잘 돌보시기 바라겠습니다

  2. ZERO 2016.02.25 20:24

    1999년과 2012년은 끝났지만 1999와 2012는...

    • 늙은도령 2016.02.25 22:38 신고

      지구온난화와 슈퍼엘리뇨는 다른 현상입니다.
      이번의 슈퍼엘리뇨도 자체적 현상이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에 더욱 종잡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슈퍼엘리뇨가 입힌 피해는 어마어마했습니다.
      물론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피해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이 두가지 합쳐진 결과는 내년부터 본격화됩니다.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한 이스라엘 군대의 가자기구 맹폭으로 팔레스타인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무려 10,000명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지상군도 투입됐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상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상자의 대부분이 하마스 무장대원이 아닌 민간인이어서 이스라엘 군대의 일방적 살육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범죄다.

 

 

영국의 총리였던 처칠은 "사랑과 전쟁에선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 군대의 일방적인 살육행위는 히틀러의 나치가 유대인의 절멸을 목표로 자행됐던 홀로코스트와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의 목표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몰아내거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어서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동일하다. 

 

 

헌데 이스라엘 군대가 국제사회의 비난과 아랍국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런 살육행위를 강행할 수 있는 뻔뻔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미국을 제외하면 최고의 군사력을 지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높은 벽으로 둘러싸은 것도 모자라 하마스 무장대원의 땅굴을 핑계로 일방적인 살육행위를 자행할 수 있는 것은 크게 4가지 요인에서 나온다.


 

                                                                                         연합뉴스에서 인용

 

 

첫 번째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집권 여당의 극우적 호전성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스라엘을 국가가 군대를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가 국가를 지휘하는 나라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아랍 전체와 싸워도 승리할 수 있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항시적인 전쟁을 유도한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북한의 호전성을 연일 떠들어대는 것과 동일한 메커니즘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정계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들의 정치경제학적 이해득실이다. 압도적인 정치자금으로 최강의 군사대국인 미국의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이 없다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살육행위는 계속될 수 없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가시화되자 24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변함없는 지지를 표명한 블름버그 전 뉴욕시장 같은 정치인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이 아랍 국가들과 국제사회의 비난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내는 이유는 전 세계로부터 돈을 빨아들이는 고리대금업의 추악함을 무마하기 위함이자, 월가를 지배하고 있는 악마의 고리대금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자신의 뿌리인 이스라엘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지 못하면 미국의 정계를 지배할 수 있는 정당성이 사라지며, 전체 인류의 피(돈)를 빨아먹고도 미국이란 제국 뒤에 숨어 영원한 돈놀이를 이어갈 수도 없다.

 

 

이스라엘이 항시적인 전쟁상태를 유지해야 최소한의 돈으로 미국의 정계를 지배할 수 있으며, 악마의 고리대금업을 계속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에 극히 미미한 자금만 투자하고도 이스라엘 건국의 든든한 후원자인 것처럼 행동한 로스차일드 가문처럼. 유대인이 대학살을 당했다고 해서 대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를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져들게 만든 것도 사실은 이들이다.  


 

                                              세계금융자본의 반을 가지고 있다는 로스차일드 가문


 

세 번째는 무한한 진보를 역설하며 밀어붙인 개발과 성장의 담론이 한계에 이르자, 유대인 고림대금업자의 새로운 먹거리로 등장한 전 세계적인 폭력시장의 확장이다. 2차세계대전과 냉전시대가 끝난 이후 인류는 크고 작은 전쟁에서 한시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전쟁이란 곧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는 폭력시장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개발한 첨단무기들과 재래식 무기들이 창고에 처박혀 있는 이상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게다가 개발과 성장담론의 후유증이 2008년 금융 대붕괴로 최정점에 이른 이후, 세계 경제 차원에서 새로운 먹거리가 등장하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2차세계대전처럼 전 세계의 흥망성쇄가 걸려 있는 대규모전쟁을 일으킬 수도 없는 일이다. 소련과 동독 및 동유럽의 붕괴로 냉전시대도 끝났다. 무기의 발전은 비약적이어서 대륙 단위의 전면전은 공멸의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부정적 세계화 덕분에 대륙과 국가 차원의 부의 불평등, 지구온난화와 대지의 사막화, 환경오염과 생태계파괴 등이 발생함으로서 인류가 살 수 있는 대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선진국을 제외한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국지적 분쟁들과 내전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와 남미를 중심으로 거대한 규모의 폭력시장이 형성됐다.

 


 


갈수록 확장되고 있는 폭력시장이 인류 전체의 성장을 견인하지 못할망정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를 중심으로 한 거대 금융자본들의 배는 충분히 만족시킬 만했다. 애당초 이스라엘의 상대가 안 되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무장대원을 상대로 한 일방적인 살육전은 베냐민 네타나휴로 대표되는 극우 정당이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통치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자, 폭력시장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나토를 빼면 유일한 군사 동맹이고 중동에 있는 항공모함이라고 하지 않던가. 미국 군산복합체의 최대 먹거리가 이스라엘과 일본임은 수십 년 전부터 확인된 것이니, 양국의 군사행위는 미국을 먹여살리고 있는 최강의 축인 군산복합체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미국이란 제국의 먹거리는 몇 개밖에 남지 않은 것도 고려해야 한다.

 

 

아랍국가들의 반발과 국제적인 비난은 미국 정부가 막아줄 것이기에, 목표한 것을 달성하고 나면 일방적인 살육을 멈추면 된다. 이럴 경우 패자인 하마스 무장대원들은 복수를 다짐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크고 작은 테러들이 양산된다. 그것이 끝에는 국가 차원의 무력충돌로 이어지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부수적 피해로 취급되며 살해당한다. 또 다른 테러가 일어나고, 이렇게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폭력시장이여 영원하라, 그로 인해 우리의 번영도 영원할지니!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할 요인이 하나 남았다. 이는 예수 이전의 유대인의 종교이자 폭력적인 기독교의 기원으로 작용하고 있는 구약성서에서의 야훼 하느님이 유대민족에게 약속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과 얽혀 있다. 이는 별도의 글로 다루겠지만, 종교가 정치와 사회와 만나는 곳에서는 언제나 피바람이 불기 마련이다. 정교분리가 헌법에 명시되는 이유도 이것을 막기 위해서다.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라는 책이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를 중세유럽의 기사도로 격상시키기 위해 서구의 문화에 정통한 일본인이 쓴 책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정치적 정당성으로 차용된 《무사도》는 아주 작은 것에 연연해 살인과 복수를 일삼았던 사무라이들의 폭력성을 서구의 입맛에 맞게 미화하는데 성공한 책으로, 탐 크루즈가 제작·주연한 <라스트 사무라이> 같은 상업영화까지 만들어냈다.

 

 

“무사도는 일본의 상징인 벚꽃과 함께 같은 일본의 토양에 뿌리를 내려 꽃피운 고유의 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무사된 자의 규범(기사계급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것”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이를 통해 ‘전투를 업으로 삼는 거칠고 천한 신분 출신’인 사무라이가 ‘천일을 하고 만일을 한’, 그래서 단련된 정신과 육체를 지닌 지행합일의 무인으로 승격된다.



 

 

이 과정에서 득도의 순간을 위해선 부처의 목이라도 배라는 선불교의 왜곡과 충과 효라는 유교의 가치를 끌어들인 저자는 중세시대 특유의 특권그룹이자 폭력집단이었던 사무라이들에게 서양의 정의 개념까지 끌어온다. 원래는 패거리 집단이 결속을 다지고,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사소하고 우연한 그러나 수치심과 치욕을 불러일으키는 조롱이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소한 일의 실패를 복수의 근거로 만드는데 의리라는 개념을 동원했다. 

 

 

중세유럽의 기사도와 동급으로 《무사도》의 저자 정립시킨 의리의 메커니즘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발생하는 소인배의 수치심에서 출발한다. 일본인들은 수치를 불러일으키는 모욕에 처하면 극단적인 비약으로 치달아 치명적인 복수의 다짐으로 증폭되기 일쑤다. 그래서 ‘살인자는 사정에 따라서 용서할 수도 있지만, 조소를 안긴 자에 대해서는 용서가 아니라 복수만이 유일한 대응’이라는 사무라이 특유의 관념이 정형화된다.

 

 

일본인, 특히 사무라이에게는 살인보다 치욕이 더 큰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지극히 사소한 조소에도 살인으로 복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복수이 대상은 어린아이이건, 여자이건, 장애인이건, 노인이건 가리지 않는다. 만약 자신의 능력으로 상대에게 복수를 행하지 못할 것 같으면 패거리를 모을 수 있는 의리의 메커니즘이 동원된다. 복수라는 폭력에 익숙한 자들이 의리라고 하면 만사를 제처두고 복수에 참여한다. 


 

                                  

                          

문제는 집단적 폭력까지 동원하는 의리가 정의인양 포장되는 데 있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라는 것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중세시대에나 가능할 법한 의리 메커니즘은 집단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그들만이 인정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 한 그들의 정의는 폭력에 불과하다. 그것도 다수의 힘을 빌려 기습적인 공격이 주를 이루니 파렴치까지 하다. 

 

 

사무라이식 의리는 람보식 폭력으로 확대재생산되는 것도 똑같은 경우에 해당된다. 이는 개인의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기업이나 국가의 차원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상대자 강자가 상대적 약자에게 복수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폭력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자연의 본성이라며, 무한경쟁을 통해 적자만 생존하는 강자(승자)의 논리가 신자유주의 통치술로 전원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자의 거두인 하이에크와 친하다는 이유와 마르크스의 역사결정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진보진영(정말로 낡은 진보가 있다면 이들이다)에서 배척되는 칼 포퍼가 인류의 역사는 강자들이 자행한 집단학살의 역사라고 한 것도, 한나 아렌트가 신은 승자와 함께 한다는 인식이 전체주의를 불러왔다는 것도 정의와 의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결과였다. 



박근혜가 유승민과 채동욱을 찍어낼 때와 진실한 사람을 외치는 것도 이런 패거리집단 특유의 의리와 배신의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다. 박근혜와 정치생명을 같이 하겠다는 서청원의 마케팅 전략이 의리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고, 핫바지가 다 된 김무성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의 댓글사건이 3.15부정선거보다 더 큰 범죄라고 했던 윤석열과 수사팀이 계속해서 좌처되는 것도 배신에 대한 비열한 보복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전멸시켜야 한다는 망상에 빠진 것도 게르만 민족과 유럽의 정의를 실현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집단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는데, 이 또한 패거리주의의 본질이다(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참조). 자신의 품안에 들어오는 자들은 의리를 지키고 진실한 사람이자 동지이지만, 그 밖에서 저항하는 사람은 반드시 응징해야 할 적이자 원수가 된다. 



《무사도》와는 달리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가장 잘 파헤친 책으로 유명한 《국화와 칼》을 보면 “의리를 위해 정의를 행할 수 없었다”는 말을 일본인이 자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들도 의리와 정의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복수를 위한 의리와 분노에서 출발하는 정의는 같지 않다. 오직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곳에서 의리가 정의로 포장되고, 미국과 이라크 간의 일방적 전쟁도 자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의리가 정의로 포장되는 곳에서는 폭력적 복수를 통해 개인의 수치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언정, 반대의 경우에는 잔인한 폭력이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무라이가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방법이 없을 때 최후의 방법으로 할복(실제는 사무라이 뒤에 서있던 자가 고통 때문에 할복이 계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목을 친다)을 택하는데, 이것이 자신을 향한 폭력의 최대치가 된다.

 

 

일본에서 유난히 자살률이 높고, 일제 강제합병 36년의 병폐들을 제거하지 못한 한국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노인과 청년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도 이 땅에서 친일의 잔재를 거둬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웅변해주고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추종하는 자들과 전쟁마저 신의 뜻이라 들먹이며 폭력을 미화하는 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 상륙한 청교도들이 신의 뜻을 들어 500만~2000만 명에 이르는 원주민을 학살할 수 있었던 것도 강자와 힘의 논리로 정의를 재단했기 때문이다. 폭력은 타인은 물론 자기에게도 행해질 수 있으며, 이는 회복불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남긴다. 우리의 학교에서 만연되고 있는 따돌림과 왕따도 폭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의리의 메커니즘으로 설명이 가능하다(최초의 세균전도 청교도가 저질렀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를 참조). 

 

 

따라서 의리 마케팅이 만연한 사회는 그 자체로 병든 사회이며, 신자유주의가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의 전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박근혜의 ‘줄푸세’가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에 가장 적합한 수단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의는 무엇도 매개되지 않은 순정한 분노에서 나오는 것이지,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남의가' 라며 의리를 들먹였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말과 박근혜의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라는 것에는 아무런 정의도 없다. 

 




합일합병의 1급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맥아더에 의해 풀려나 일본의 총리에 오른 기시 노부스케(박정희의 스승으로 만주국을 통치했다. 안중근 의사가 암살한 이토 히로부미와 동급에 속하는 자다)의 손자인 아베가 미국의 노골적 지지 하에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일본의 동의가 없으면 주일미군이 일본에서 나갈 수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했고, 며칠 전에는 박정희의 사무라이 정신을 이어받은 박근혜의 무지와 무능을 이용해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위안부협상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일제 군국주의의 기원인인 사무라이의 패거리 행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의리 마케팅이 참으로 불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리 마케팅의 문제는 더 좋은 제품이 나왔어도,더 싸면서도 품질이 좋은 제품이 나와도 의리 때문에 자신과 관련이 있거나 그 전에 써오던 회사의 제품을 또 사게 만드는 것도 의리마케팅의 본질이다. 결국 의리마케팅은 소비자와 시민의 피해를 가져올 있으며 소비자와 시민의 선택의 자유에 제한을 가한다.



박근혜가 배신의 정치와 진실한 사람을 매일같이 외쳤던 것의 기원에는 박정희가 그토록 동경했던 메이지유신 시대의 사무라이와 그들의 패거리정서인 의리와 천박하기 그지없는 복수가 자리하고 있다. 정치는 가치와 신념,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지 패거리집단의 의리와 배제, 복수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1. 여강여호 2014.07.18 07:53 신고

    유행처럼 의리가 남발되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인사실패도 이 의리 때문이 아닐까요?
    의리가 정의와 양립할 수 없다면 분명코 결단을 내려할 할 판인데...
    사실은 의리의 마력이 그런 데 있는 것 같습니다.

  2. 앨리스 2016.01.06 09:24

    인식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보이지 않고 지나간 없어져버린 시간을 꿰뚫을 듯한 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01.06 19:28 신고

      감사합니다.
      기본적인 인식이 자리잡으면 쉽게 속지 않지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조금만 살펴보면 진실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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