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넹은 《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 다선의원이란 자연귀족이나 정치엘리트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는 선거제도의 문제를 비판하며, 대의민주주의가 귀족정치와 과두정치로 변질되는 '민주주의의 역설'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한국처럼 다양한 민심이 반영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가 최소화되고, 지역주의에 기반한 승자독식 소선구제 때문에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인격, 자질, 업적, 반응성(소통을 통해 주민의 뜻을 따르는 것)을 보지 않고 중앙정치에 영향력을 가진 다선의원들에게 표를 주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지역구 유권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신인보다는 이미 검증을 마친 현역의원에게 표를 줄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선거는 다선의원이라는 (능력도 없는) 선거귀족을 만들어냅니다. 추첨제도가 배제(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선거 때만 정치에 동원되고 평상시에는 복종을 하는 유권자를 원했기 때문에 배제시켰다)되고 시민의 정치참여 통로가 적어질수록 선거제도는 다선의원과 지배엘리트를 양산해 대의민주주의를 소수의 영향력 있는 의원들의 과두정치(관료제화)로 변질시키는 위험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이렇게 해서 '조직이 아무리 민주적이라도 소수의 사람들이 조직 전체 의사를 좌지우지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미젤스의 '과두제의 철칙'이 작동하게 됩니다. 의회와 정당이 다선의원, 소수의 고위당직자, 정치엘리트에 의해 관료화되고 당원과 지지자, 시민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토크빌이 건국 초기의 미국을 살펴본 다음, 《미국의 민주주의》를 통해 자유의 과잉에 의한 '다수의 독재(민주주의는 소수의 이해를 보호하는 다수의 통제를 추구한다)'를 경계했는데, 이것의 출발점도 다선의원과 정치엘리트가 다수의 뜻을 위임받았다며, 민심과 괴리된 독재(박근혜 게이트)를 하는 경향을 경계한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공화국의 위기》에서 '시민의 정치참여를 최소화하는 제도적 장치의 상실, 정당과 의회의 관료화, 다양한 시민의 욕구를 대리하지 못하는 정당 등' 때문에 민주주의와 헌정주의(공화국, 법의 지배)라는 민주공화국의 근간이 뿌리부터 흔들린다고 경고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말고도 수없이 많은 정치학자들이 이에 대해 다루었고, 자연귀족화하고 관료화하는 선출직 위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온갖 방안을 제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앵글로 색슨계)의 경우는 이념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은 보수화된 거대양당 시스템이 너무나 공고해 (예비선거와 양원제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갈수록 과두정치화하는 다선의원과 정치엘리트 위주의 주류정치에 반발해, 시민이 직접 정치적 이해를 처리하고 이슈에 따라 정치적 참여를 늘리는 시민주권 행동주의(시민정치)로 나갔습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포괄적으로 인정되고 유럽에 비해 선거주기가 짧기 때문에,여론(단체활동, 캠패인, 항의, 집회, 플래시몹, 정치인에게 문자나 메일 보내기, 소액후원금 등)을 주도하는 시민주권 행동주의가 '민주주의의 역설'을 일정 부분 바로잡고 있습니다.     





계급적 이해와 새롭게 등장한 이슈들 중심으로 다양한 정당이 경쟁을 벌이고 연정을 하는 다당제 연립정부(의원내각제)가 일반적인 유럽의 경우, 유권자의 뜻과 시대적 이슈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상당 부분 반영되기 때문에 미국에 비해 시민주권 행동주의가 활성화되지는 않았습니다. 68혁명 때 반짝했던 시민주권 행동주의는 인터넷, SNS, 팟캐스트 등의 사용능력이 뛰어난 1020세대들에 의해서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에 유럽도 엘리트 위주의 정치에서 시민정치적 정당정치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습니다.



유럽은 또한 다선의원과 정치엘리트에 의한 귀족·과두정치화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모든 정당에게 청년할당과 여성할당을 강제화함으로써 젊은피(35세 이하, 최근에는 39세 이하)와 여성의 국회와 내각 진출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은 당내 토론에 있어 일정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청춘과 여성처럼 상대적 약자나 정치적 소수자를 배려함으로써 고령화사회의 늙은정치를 제도적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스웨덴의 경우는 35세 이하의 청춘에게 25%, 여성에게는 50%를 제도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민간영역도 반강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고, 정보 접근과 처리의 능력이 뛰어난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거연령을 낮추자는 시도가 늘어나는 것도 정당정치 내에서 다양한 이해를 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표창원이 선출직의 정년을 65세로 하자는 과격한 발언(?)을 한 것도 이런 세계적 추세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처럼 선출직 모두의 정년을 65세로 한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머지 선출직의 대부분을 이렇게 할 경우 박정희 시대부터 지금까지 지배엘리트를 장악하고 있는 구태정치인들을 물갈이할 수 있는 효과도 있습니다.  



계급적 이해에 기반한 대중정당(조직으로서의 정당, 관료적 조직과 엘리트 위주의 권위적 의사결정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르크스주의적 공산당과 사회주의적 진보정당, 관료화된 거대노조 등이 다양한 욕구와 정치참여,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구조와 열린 소통을 원하는 유권자와 시민의 외면을 받았던 이유)의 보수주의적이고 관료화되는 특성 때문에 정책과 소통 이슈 중심의 참여·직접민주주의(시민정치)와 정당정치의 공조가 불가능합니다. 1020세대들이 운동권세대의 보수적 행태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도 이에서 나온 것으로, 선진 산업자본주의 국가를 휩쓸었던 68혁명의 주역들(청소년과 청춘)도 우파는 물론 구좌파까지도 비판했었습니다.   



표창원이 '선출직에 상한선이 없지만 하한선은 있다'며, 청소년·청춘·여성·장애인 등이 과소대표되는 '대의민주주의의 역설'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정년을 둬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도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민주주의적 발언이었습니다. 최근에 선출직의 '연임 제한(그리스의 경우 스트레이트 연임이 불가능했다. 최대 2번까지 선출직을 할 수 있지만 반드시 중간에 쉬어야 한다)'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다선의원과 정치엘리트 위주의 과두정치를 해소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테면 정당정치의 시민정치화라고 보면 됩니다(심의민주주의와 거리·광장 민주주의가 변증법적으로 융합하는 과정). 





표창원의 발언은 잘못된 것이 없으며, 표현상에서 미숙했을 뿐입니다. 위헌적 요소 때문에 선출직의 상한을 정할 순 없어도 하한선을 늘려야 하며, 제도적으로 청소년·청춘·여성·장애인 등처럼 과소대표되는 시민들의 선출직 진출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고령화시대로 접어든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며, 촛불집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참여·직접민주주의의에 대한 유권자와 시민의 폭발적 요구, 권위적인 노조보다 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요구를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이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추첨은 대표성의 수준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고, 선거는 반민주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질높은 공교육을 받았고, 정보 접근과 처리가 뛰어나고, 전통의 물질주의적 욕구보다 탈물질주의적 욕구(자아 실현, 자기 노출, 사회적 평등, 인권, 남녀평등, 소수자 권리, 반핵, 환경 및 생태민주주의, 동물권 인정 등)가 분출하는 현대시민의 특성을 고려할 때 표창원의 주장은, 이런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변화를 적절한 언어로 풀어내지 못했지만, 장기적으로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발언입니다.



이럴 때만이 완전국민경선제의 취지도 살리고 역선택을 줄일 수 있으며, 정당정치도 이념적 기반에 근거한 조직으로서의 대중정당과 참여·이슈·소통을 통한 시민정치 중심의 네트워크정당 및 원내정당의 조화(노무현의 꿈)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시민정치적 요소를 강화해 네트워크정당화한 더민주를 중심으로 대선을 치르겠다고 한 것도 (당의 지원을 받지 제대로 못한) 지난 대선과는 달리 이번 대선을 민주주의의 축제와 시민정치적 향연처럼 치르겠다는 것으로, 대단히 미래지향적 결정입니다. 



역사적 변화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표창원의 주장은 자세히 다루지 않고, 과두정치화하고 관료화하는 대의민주주의에 불만족한 민주주의자들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표창원의 단어 선택만 물고늘어지는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과 쓰레기 언론들의 저열하고 반민주적 행태는 촛불집회의 열망을 무력화시킬 것입니다. 고령화시대에서 과소대표되는 청소년·청춘·여성·장애인 등의 지분을 늘려야 한다며 표창원은 달을 가리켰는데 그를 비난하는 자들은 손가락(선출직 정년이라는 단어 선택의 세련되지 못함)만 물어뜯고 있습니다. 





신정치 관점은 현재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한 가지 이미지를 제시한다. 정치적 불만은 가난한 사람들과 정치의 변두리에 위치한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혹은 정치가 너무 많은 요구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만은 젊은이들과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제일 많이 증가했다. 불균등하게 시정치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선진 산업사회의 사회적 현대화과정에서 가장 혜택을 본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러한 개인들은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훨씬 더 높다. 그들은 정치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과정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훨씬 비판적이다. 그들은 정치를 따라잡고 있으며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과거에 시민들이 했던 것보다 높은 기준을 정부에 요구한다. 


치과정의 개방은 정부가 더욱더 폭넓은 정치적 요구의 스펙트럼에 반응하도록 보증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정치적 요구ㅡ환경, 여성, 소비자, 다른 집단들의 필요가 존재한다ㅡ의 양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요구들이 정부로부터 합당한 관심을 받게 되고 그 결과로 모든 사회적 필요를 다루는 정부의 능력을 개선하게 될 것임을 보증한다. 더 큰 정치적 관여 또한 민주주의 정치과정 속에서 시민들을 교육한다…더 많은 시민투입은 궁극적으로 정부의 결정수립의 질을 보증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정치가 정부의 효율을 극대화한다거나 정치엘리트의 자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으로 추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사실 좀더 중요한 목표ㅡ즉 인민의 엘리트 지배ㅡ를 보증하기 위해서 효율의 부분적인 희생이 불가피하다. 참여의 확대는 문제가 아니라, 선진 산업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이상에 부합하는 상태에 좀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기회다(러셀 J. 달톤의 《시민정치론》에서 인용)  



#새누리당이박근혜다

#박근혜는하야하라

#바른정당도박근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낭중지추 2017.01.20 22:04

    너무 오랜 기간동안, 너무 지나치게 우측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지내오다 보니 어지간히해서는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정도까지 가능할까? 이만큼 가도 괜찮을까 싶을 만큼 급격한 시도를 해도 그 효과가 얼마나 나타날지, 균형이 맞는 원점까지 되돌리기에도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촛불로 힘과 소망을 다시 모아보도록 날씨부터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도령님은 어쨌거나 건강하십시오

    • 늙은도령 2017.01.20 23:31 신고

      개혁을 할 때는 한 번에 해야 할 것이 있고, 오랜 기간에 걸쳐 해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운동장은 빠른 속도로 평평해지고 있습니다.
      정권교체는 그래서 거의 100%에 가깝습니다.
      최종 관문은 사법부인데, 내일 날씨가 좋아 많은 분들이 광장과 전국에 모인다면 정말 바람이 없겠습니다.


아래의 글박스에 들어있는 인용문들은 러셀 J. 달톤의 《시민정치론》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달톤은 이 책에서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선진 산업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여론(공중의 가치 변화)과 정당(시민의 정치 참여)의 변화를 다루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이끄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친 시대적 변화의 결과이지만, 글박스에 담은 것은 의무교육의 형태로 제공되는 양질의 공교육과 질높은 대학교육의 영향력입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한 주입식이고, 부모와 조부모의 재산과 직위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는 차별의 현장이자 선행학습의 경연장이며, 대학의 입학생에게 요구하는 살인적인 스펙들의 바다이자, 기업의 몫이었던 신입사원 교육까지 개인과 가족에게 넘겨 신용불량자 양산과 중하위층 파산의 주범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교조와 깨어있는 교사들, 혁신학교, 대안학교들이 이런 교육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공교육의 후진성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땅의 1020세대들은 이대생의 투쟁과 소녀상지킴이,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청소년행동주의, 박근혜 퇴진과 부역자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등에서 보듯이 1020세대들은 교육적 환경의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팟캐스트, SNS, 정당과 정치인과의 직접 교류 등을 통해 무한퇴행 중인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바로잡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정당을 압박하고 정부를 비판합니다.



대한민국은 광복과 함께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번성하기 쉬운)가 강제로 이식됐으며, 이승만부터 박정희를 거쳐 노태우까지 독재정부가 집권을 독식했기 때문에 기성세대들의 민주주의 경험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부마항쟁과 4.19혁명, 5.18민주화항쟁과 6.10민주항쟁 등으로 독재정부의 반민주성에 제동을 걸었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지금의 1020세대들이 태어나고 자란 노무현 참여정부에 들어서야 실질적 민주주의를 필요성을 인식했습니다. 선진 산업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반화된 시민주권에 눈을 뜬 것입니다. 





빠른 반응성, 자아 실현, 자기 노출, 유연한 가치, 진보적 성향, 자유주의적 감수성(개인주의), 이슈지향적 정치참여, 일상에서의 민주주의, 플래시몹과 다양한 방식의 집회와 항의 같은 축제로서의 혁명(재미 이데올로기), 성공지상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탈물질주의,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동물의 권리를 중시하는 생태민주주의, 사회적 평등, 성적 평등, 젠더 정치, 소수자의 인권 보장, 핵에너지 반대 등을 표방하는 이들은 경제성장과 안정된 경제, 국가안보, 질서유지, 범죄와의 전쟁 등을 중시하는 물질주의적 기성세대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60년대 민주주의를 확대했던 '위대한 세대'와는 달리 그 이후의 세대들은 전통의 공동체 참여와 정치결사체 활동의 약화, 지속적인 투표율 하락 등을 이유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퍼트남과 프랭클린, 데이몬 등도 있지만, 더 많고 더 좋은 교육을 받은 1020세대들에게서 '비선거적'인 정치참여 행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게이트'와 촛불집회를 통해 드러나고 있듯이 1020세대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해 왔고, 그 빈도와 적극성에서는 기성세대를 뛰어넘습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행복한 가족'이라는 성공의 보편적 공식에 따라 살기만 해도 고도성장의 일원으로 부를 늘려갈 수 있었던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그런 것들이 모조리 무너진 상황에서 태어난 1020세대들은 그들 스스로 삶을 개척해가야 했습니다. 성공의 보편적 공식이 무너졌으니 각자의 선택과 행위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미래가 불투명하다 해도 물질적 풍요를 일정 수준 이상 누리고 있는 1020세대들은, 장시간노동과 가족 부양을 위한 자발적 복종, 자아 실현의 포기 등을 물질적 이득과 바꾸었던 기성세대보다, 삶의 관습적 가치들을 포기(N포세대)하더라도 자아 실현과 행복 추구, 적극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정치 참여를 선택한 것입니다. 시대가 달라졌듯이 세대도 달라졌습니다. 



필자가 '시민정치론'을 접하기 전까지는,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세월호유족과 함께 416세대들을 지켜보기 전까지는, 소녀상 지키기와 국정교과서 반대에 나선 청소년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대생의 투쟁과 승리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성주군민과 김포시민의 대정부 투쟁에 감동하기 전까지는,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 목격하기 전까지는 1020세대들의 탈정치화 현상과 민주주의의 축소를 걱정했습니다. 공통점을 찾기 힘들어, 또는 기업의 마케팅전략의 일환으로 정의된 X세대라 했던 3040세대에 비해서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걱정과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고, 시대에 뒤떨어진 먹물들의 비관적 전망인지 알게 됐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지표와 통계, 연구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생각과 경험의 눈높이를 1020세대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니, 그곳에서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전혀 다른 증거와 현상들이 넘칠만큼 많았습니다. 빛과 어둠 중에서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민주주의는 위기일 수도 있고, 기성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늘 아래 멈춰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이런 상반된 현상을 목도한 학자와 세대들은 각자의 증거와 목소리를 높이겠지만, 최소한 필자에 한해서는 희망의 일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386세대인 필자는 상상도 못했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시민주권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이재용 게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배엘리트들과 정당정치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지만, 이대생의 투쟁과 촛불집회 등은 민주주의의 부활을 말합니다. 





어느 세대나 경제적 안정은 무시할 수 없는 중대한 가치이지만,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경제성장에 목매지 않는 시민주권 행동주의자들의 등장은 반갑기만 합니다. 현재의 이념분포에 따르면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가 많다고 해도, 매년 진보적 성향이 강한 몇십 만 명의 청소년들이 유권자로 진입하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구시대의 악습과 폐해들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진보적이지만 이념의 포로는 아니며, 자유주의적(개인주의)이어서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젊은 유권자의 증가는 무한경쟁의 물질주의에 매몰된 대한민국의 천민자본주의를 가치 지향의 탈물질적인 직접민주주의로 탈바꿈시킬 것입니다. 



우리의 공교육이 모든 과목에서 서열을 매기고 차별을 조장하고 개성을 죽이고 기업의 부속품을 배출하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지옥에서 벗어나 각자의 개성과 자질을 찾아내 다양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서구의 교육(대표적인 것이 핀란드)처럼 변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헬조선과 정반대에 위치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글박스는 창의적 교육이 시행되고 있는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심층적으로 풀어낸 달톤의 《시민정치론》에서 발췌한 것이니, 1020세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육은 학습하는 내용으로 인해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 서구의 교육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참여, 자기표현, 지적인 이해와 같은 가치들, 그리고 다른 탈물질적 목표들을 강조한다. 현대적 대학 교육의 자유주의적 지향은 사회적 관점들의 확장을 장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끝으로 교육의 효과는 세대 효과와 중첩된다. 젊은이들이 나이 든 세대보다 교육을 더 잘 받았다젊고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사람들 사이에 탈물질적 가치들이 집중된다는 점은 이러한 경향에 추가적인 중요성을 부여한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탈물질주의자의 퍼센티지가 증가할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좀더 젊고 더 탈물질적 세대들이 나이 든 물질주의자 세대들을 교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총체적인 교육수준이 계속 증대되면 탈물질적 가치들에 대한 지지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이 점은 탈물질주의자들이 물질주의자들도보다 정치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또한 탈물질주의 정치적 영향력이 그들의 숫자가 의미하는 것 이상으로 클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중요하다. 실제로 미래의 엘리트 집단ㅡ대학교육을 받은 젊은이들ㅡ사이에서 탈물질적 가치들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개인들이 성공적으로 경제, 사회, 정치적 지도자의 위치에 진입하면 변화하는 가치들의 효과는 당연히 강화될 것이다.



1999년의 유럽가치서베이는 물질주의자들이 좋은 임금수준과 일의 안전성을 직업에서 중요한 성격적 요소로 꼽은 반면에 탈물질주의자들은 창의력 사용의 기회를 얻는 것, 유용한 직업을 갖는 것, 편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과 같은 목표들을 꼽았다고 알려주었다. 많은 비즈니스 분석가들이 직업윤리의 쇠퇴를 한탄하지만 사실 직업윤리가 새로운 목표세트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탈물질적 신조에 따르면 개인은 자신의 지위에 부여된 권위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권위를 확인해야 한다. 오늘날의 부모들 특히 탈물질주의적인 보모들은 자식을 교육할 때 훨씬 더 독립성을 강조한다. 사회적 삶과 정치적 삶의 여러 측면들에서 공중의 행태는 점점 더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늘어나는 독립심은 소비자들 사이에 브랜드 이름에 대한 충선심의 감소와 투표자들 사이에 정당에 대한 충성심의 쇠퇴 현상으로 반영되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은 더 큰 자유와 개별성에 대한 요구를 반영한다. 이것은 패션, 소비자 취향, 사회적 행태, 대인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가치변화의 과정은 종교적 가치와 성적 관습을 포함하고 있다. 물질주의자들은 경제적 안전에 대한 관심에 덧붙여 혼외정사, 낙태, 동성애와 같은 성 관련 이슈들에 대해 구속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탈물질주의자들은 기득권 정치가 종종 간과했던 새로운 정치적 이슈 세트ㅡ환경의 질, 반핵 에너지, 젠더 평등, 제한된 소지자중심주의ㅡ를 옹호한다. 



위싱턴에서 열리는 지구온난화, 원전의 안전, 젠더 평등에 관한 토론들은 유럽 국가들의 수도에서 열리는 것들과 밀접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슈들의 주창자들은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교육을 잘 받았으면 탈물질주의자다. 가치변화는 정치적 참여에도 영향을 미친다. 탈물질적 가치들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에 직접 참여하도록 자극한다. 그 장소가 학교든, 일터든, 정치과정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탈물질주의들은 물질주의자들보다 정치에 더 관심이 있으며, 그러한 관심을 정치적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더 크다.  



일부 국가에서 탈물질주의자들의 투표 참가율은 종종 낮게 나타났다. 한 가지 이유는 기성 정당들이 탈물질적 이슈들을 포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탈물질주의자들은 선거와 대부분의 정당들처럼 공식적인 위계적 절차와 조직들에 회의적이다. 그 대신 탈물질적 가치들은 시민의 솔선, 항의, 그리고 다른 형태의 직접행동에 대한 참여를 자극한다…이러한 비당파적 참여기회들은 탈물질주의자들에게 정치에 그들의 가치 정향과 들어맞는 좀더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한다. 대부분의 탈물질주의자들은 좀더 요구수준이 높은 형태의 정치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도 갖추고 있다.



물질적 가치들의 영속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되지만, 공중의 가치들이 변하고 있다…전통적인 물질적 패턴의 영속성을 보여주는 거의 모든 사례의 경우에도 탈물질적 가치를 반영하는 반대 사례가 나타난다. 거의 모든 시민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지역적 관청을 상대로 로비하는 가운데도 다른 쪽에서는 성장이 녹지의 상실 또는 삶의 질 악화를 의미한다고 걱정을 한다. 가치의 다양성은 시민정치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정치토론은 단순한 합의적 목표들에 도달하는 수단뿐만 아니라 목표를 정의하는 일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 가치변화의 이슈들이 바뀌고 있다. 환경보호, 개인의 자유, 사회적 평등, 참여, 삶의 질에 대한 관심들이 경제와 안보 이슈들로 채워진 전통적인 정치 아젠다에 추가되었다…탈물질주의자들은 대의민주주의의 구조화된 선거정치를 덜 포응할 가능성이 있다. 대신 그들은 직접참여와 새로운 직접민주주의 형태들의 주창자다. 이는 다양한 공익집단들을 포함하고 있는 적극적인 시민사회에 추가로 더해지는 역할이다.   




#새누리가박근혜다
#박근혜하야하라

#바른정당도박근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7.01.15 01:11 신고

    학생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적극적으로 응원합니다~
    당연히 표현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엄연한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시민의 목소리이고 인격체입니다~

    • 늙은도령 2017.01.15 06:43 신고

      지금의 청소년들은 예전의 청소년과 다릅니다.
      그것 때문에라도 선거연령은 낮춰야 하며, 자신을 대표하는 시민으로서 대접해줘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고령화시대의 보수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2. jeremy 2017.01.15 18:38

    탈물질화에 대한 가치가 그 중심인 것 같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삶의 질이 보장된다는 조건이 필연적으로 제기될 듯 싶습니다. 현재를 사는 젊은 세대들이 가치관과 사회 또는 기성세대가 주입했던 성공의 잣대가 서로 급격하게 충돌하면서 해결점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의 대화에서, 반기문의 말처럼, N포세대라 불리우는 젊은 세대에게 닥쳐온 문제들이 그저 '노오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단정짓는다면 끝없는 평행선을 달릴 것입니다. 따라서 기성세대는 이러한 세대간 단절을 해결해주고 세대간 화합을 이뤄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젊은이들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줄 때, 건강한 시민의식들은 더욱 더 꽃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성세대의 현재 누리고 있는 몫을 미래세대인 젊은이들에게 일정부분 나눠주고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7.01.15 19:52 신고

      노오오력을 강조하는 것은 기성세대, 특히 성공한 자들의 주장입니다.
      시대와 상황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옛날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지요.
      지금의 청춘은 노오오력을 안해서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 노오오력을 너무 많이 해도 다음이 없어서 힘든 것이지요.
      이것 때문에 청춘은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탈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삶의 행로를 바꾼 것입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행복한 삶이라도 꾸며가겠다는 것입니다.
      소비를 최소화하되, 비경제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정치를 택한 것이지요.
      그들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7.01.16 08:38 신고

    무엇보다도 기성정치인의 장에 젊은 세대들이 들어 가야 합니다
    20대 30대 국회의원이 나와야 하고 전문 위원으로의 참여도 필요합니다
    다음 국회에는 반드시 그랬으면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1.16 14:51 신고

      네, 그들은 과소대표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필자는 틈이 나는 대로 산본의 1020세대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 (그들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정치철학적으로 말하면 진보적 자유주의가 체득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만난 1020세대가 너무나 적어 보편성이 전혀 없지만, 이대생의 투쟁에서 볼 수 있었던 개인주의(자유주의적 성향)와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토론과 합의(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일단을 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만난 1020세대들은 저와의 대화에서 예의를 지켰지만 대등한 입장에서 얘기했으며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장장 50년에 걸친 독재에 익숙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경험이 부족하며, 불평등성장보다는 빈곤에서의 탈출이 시급했던 60대 이상의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의 시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8혁명의 1020세대가 그랬듯이 이들도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 탈권위주의, 생태·환경·먹거리 같은 삶의 질에 관심이 많은 탈물질주의적 성향(N포세대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불평등과 차별을 양산하는 반칙과 특권의 신자유주의를 뒤엎는 체제혁명의 기본조건)을 드러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에 반대해 10대의 소녀들이 촛불집회를 기획한 것도 이런 성향이 작용한 결과라는 주장(조기숙과 정태호 외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를 참조)도 있듯이, 민주정부 10년을 경험한 이들은 탈물질주의의 원천인 진보적 자유주의와 상당 부분이 겹쳤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민주주의를 경험한 이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의 불평등과 취업대란, 환경오염, 권위주의로의 회귀, 위계서열 강조 같은 헬조선에 직면하면서 진보적 성향이 강해진 것 같았습니다. 





헬조선을 탈출하는 모토 중 하나가 '죽창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인 것도 이들의 절망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 평등을 중시하는 진보적 성향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 보수주의의 핵심인 소극적 자유(천부인권이 대표적, 국가와 정부의 개입 최소화)보다는 인권, 평등한 자유, 헌법적 권리, 환경과 생태 보존, 보편적 복지의 실현, 소수자 권리 인정, 노동시간 단축, 축제처럼 즐기는 집회, 수평적 네트워크, 시민주권 같은 적극적 자유(사회적 합의와 헌법이 보장)에 친화적인 성향을 공통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화여대와 성신여대 등에서 독재적 행정을 남발하는 대학측에 맞선 투쟁과 1020세대가 많이 참여하는 촛불집회 등에서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즐거운 이데올로기와 탈물질주의적 성향에서 나온 1020세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40년의 결과라 할 수 있는 이런 특징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것으로, 20대의 눈으로 1020대를 얘기한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과 68혁명과 관련된 책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구조'는, 거품경제가 붕괴한 1991년을 기점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은 일본 사회다. 거품경제의 붕괴로 인해 1970년대 이후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인생 모델'(일본형 업적주의)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이제 대기업은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이라는 '일본형 경영'을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제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중산층의 꿈'이 붕괴되어 가던 시대에,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태어났다(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인용).





노무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거품과 벤처거품, 카드대란을 물려받았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임계점에 다다른 시점에 임기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진보적 자유주의를 일관되게 추구했기 때문에 (지지층이 소수였고 국민의 의식에 성장에 대한 환상이 여전했음에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업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조중동과 사이비 지식인의 왜곡과 조작으로 당시에는 부정됐지만, 현재의 20대는 피부로 와닿았기 때문에 대통령 선호도에서 노무현이 박정희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이고, 이명박근혜 9년을 경험한 지금에는 50대까지 이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노 대통령이 양극화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고 복지를 쟁점화함으로써 오히려 지지기반을 축소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사회경제적 개혁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개혁을 적극적으로 시도함으로써 중산층의 지지기반을 잃게 된 것이다. 그 결과 2007년 대선에서 복지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중심으로 좌우균열이 역사상 최초로 등장하게 되었다. 노 대통령이 지지자를 잃으면서까지 비전 2030을 내놓고 복지정책을 추진했던 이유는 발전주의와 복지주의라는 경제적 균열이 단기적으로는 진보진영을 소수로 만들겠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결과) 노무현 정부 5년간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복지주의의 등장으로 발전주의와 대립하면서 약한 균열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전근대적인 지역균열을 근대적 의미의 좌우균열로의 이동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두 번째 변화는 탈근대적 현상의 출현이다. 근대적 시장과 국가를 둘러싼 경제균열 외에 탈물질주의 대 물질주의의 균열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다(조기숙과 정태외 외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에서 인용).



위의 인용문을 고도성장이 박정희의 신화적 능력 덕분이라고 믿는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세력과 상당수의 기성세대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신분이동성이 협소해진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1020세대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1020세대 중에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탈물질주의적 성향은 N포세대의 등장(경제 후퇴와 저성장시대의 진화심리학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과 그에 따른 삶의 모습에서 1020세대의 지배적 특징임이 입증됩니다. 



노무현의 추구했고, 문재인과 유시민 등이 발전적으로 계승했으며, 1020세대는 체험적으로 습득한 진보적 자유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만족한 87민주항쟁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는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개념이다. 시민주권의 단계가 참정권에서 복지권을 거쳐 자치권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정부와 자본, 시장의 간섭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자치권이다. 잘살고 성공하는 것보다는 자유와 행복이 중시된다).  





특히 선거연령이 16세까지 내려간다면 87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더욱 빨라질 것이며, 헬조선의 탈출도 빨라질 것이 확실합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이지만, 동시에 기성세대인 필자가 복지권이 실현된 '사회적 권리'에 집착하는 것에 비해서, 1020세대가 탈물질주의적 자치권에 보다 집중하는 것도 경험(공기처럼 주어진 민주주의)과 환경(불평등과 환경오염이 심각하며,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차이입니다. 



필자가 촛불혁명의 목표로 조세정의(복지권 실현의 거의 모든 것)와 세대교체를 울부짖는 것도 진보적 자유주의자가 많은 1020세대들에게 희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임금 일자리만 양산해 불평등과 차별을 극대화시킬 4차 산업혁명의 폐해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지배적 체제를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 전환시키려면 1020세대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져야 합니다. 촛불혁명은 이를 앞당길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미국과 일본을 빼면 거의 모든 국가들이 비판하는 반기문이 대선에 나서려고 하는 것처럼, 기성세대와 늙은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추호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개 같은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려면 촛불혁명의 기저에 깔려있는 노무현과 1020세대의 진보적 자유주의와 탈물질주의에 천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시장 참여와 상관없이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삶의 질을 누리면서도, 네트워크적 연대(느슨하지만 상호 인정이 핵심)를 통해 자치권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에 이르려면 1020세대에게 보다 많은 발언권을 주어야 합니다.



각 당마다 25% 정도의 젊은이들을 무조건 할당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비례일 경우 순번도 당선안정권에 두어야 합니다. 이럴 때만이 1030세대가 정치권 영향력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럴 때만이 기성정치인 위주의 대의민주주의와 균형과 견제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연령을 16세까지 낮춰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토마토 2016.12.28 05:18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어느나라보다 현명하며, 현실에 눈이 떠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나라 같았으면 진작에 망했을 조건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이유가 현명한 국민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 낭중지추 2016.12.28 08:43

    투표, 선거는 현재로부터 4년까지의 미래입니다 그것이 16세가 투표해야하는 근거입니다 16세에서 20세까지와 80세에서 84세까지를 비교해야 합니다 노인들에게 그 기간은 의미가 크지않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래란 미래의 주역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이기에 투표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90세 이상의, 과거가 더 중요한, 어르신들의 미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6.12.28 20:39 신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직도 현역에서 노욕을 풀어내는 어르신들이 미래세대에게 자리를 내줘야 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12.28 10:32 신고

    선거연령을 낮춰야 하는데 동감입니다

  4. merryjanet 2016.12.28 10:58

    선거연령을 16세~17세로 낮추는 것에 전적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10대의 사고가 진보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요인으로는 인터넷과 댓글 문화일 거라
    생각되는데 아직 토론문화는 정착되었다 말하기 힘든 정도입니다.
    토론이야 말로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첨예하게 전쟁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힘이잖아요
    우리의 중 노년층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10대 20대들에게도 그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아 아직은 토론이
    자유롭거나 낯익지 않은 편이지만, 학교나 방송 혹은 다른 매체에서 젊은이들의 토론에 더 많은 참여를 보장하게 되면
    우리 청소년들의 사고는 더욱더 바람직하게 민주적이고 진보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광화문처럼 큰 광장이 아니어도 유럽 도시 어느 곳에서도 흔히 보이는 광장에서 큰 정치적 사안이 아니어도,
    어떤 이슈에 관해 자신의 소견을 표출하고 토론도 하며 대립하다가도 끝나고 나면 손잡고 웃으며 함께 일하는
    문화, 바로 민주주의의 힘을 우리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는 세상에서는 일상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5. 둘리토비 2016.12.28 22:06 신고

    전 특히 1020세대의 탈물질주의,
    그리고 특히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던 입장으로서 이들에게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조화로움,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결, 연대, 기초를 다지는 작업과 가치를 세움으로
    지금 촛불의 향연 너머에 있는 희망의 실제적 끈, 그리고 성취를 너무나 갈급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저들을 격려하고 경청하는 자로 있고 싶네요~^^

  6. 생명마루 신림점 2016.12.28 22:11 신고

    포스팅 구경 잘하고 갑니다~

  7. STEP 1 2016.12.28 23:21

    선거연령을 낮춰야 하는데 동감입니다.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 같은 표를 인용하시는 경우 출처와
    통계자료는 여론조사 날짜 등 기타 통계관련 필요한 정보를 같이 계시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딴지를 걸려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세요.

  8. 따뜻한 연말되세요

  9. 참교육 2016.12.29 05:14 신고

    수구세력과 자본이 깨어나지 못하게 온갖수단을 동원해 마취시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그런 역할을 학하고있습니다.

  10. mangrove 2017.01.02 10:48

    글을 읽는 데 오래 걸리네요.. 생소한 단어, 탈물질주의 등등도 그렇고 내공이 깊으셔서 쿨럭...

    좀더 많은 1020 아이들과 소통을 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전 어두운 단면을 먼저 보는 성격이라...

    가끔 일본이나, 중국이나, 특히 이스라엘 같은 나라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문화도 많이 변화되고 훼손되고 가치를 잃어가지만 우리 만큼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이루는 핵심은 어디까지나 그 사회의 철학과 사상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무너지게 되면 사회는 휘둘리게 되고 인간의 가치는 무너지게 되겠죠. 우리는 일제 36년을 겪으면서 개화를 했고, 우리의 것들이 철저하게 밟히고 왜곡 되어 왔습니다. 거기에 한국전쟁에 이 땅은 초토화되고 모두들 살기 위해 살았습니다. 말씀대로 경제적 논리에 모든 것이 갖히고 훼손되어 왔으며, 지난 날 우리의 삶의 근간이었던 유교적 사상과 관습도 낡고 불편한 것으로 부정되었고 버려졌습니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운영 논리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과 사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은 폐전국이었지만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 냈으며, 중국도 경제 논리에 부상하고 있지만, 그 기반의 철학적 가치는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돈에, 아니 생계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어쩌면 정말 소중 했을 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그냥" 버렸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안타깝게 생각이 됩니다.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든 지 근본적인 사상에 충실하면 문제가 없으나,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가치는 훼손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땅에서는 기독교가 대표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뭐 햄버거 좋아 하는 아이들에게 서당을 가르칠 생각은 없기에... ^^

    • 늙은도령 2017.01.06 06:45 신고

      세상은 변했습니다.
      우리도 변해야 하겠지요.
      미래는 미래세대의 것이니까요.

      현재의 체제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65~70세 정도를 기반으로 구축됐습니다.
      헌데 현재는 평균수명이 80~90세 정도로 올라갔습니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청춘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첫 번째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TV세대를 넘어 인터넷과 SNS세대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TV세대와 거의 모든 면에서 다릅니다.
      이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문화인류학과 진화심리학적 개념이라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아예 다른 세상을 살아온 세대들이 용광로 안에 모여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답을 찾기란 정말 힙듭니다.
      제가 다방면의 공부를 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래야 변화를 알 수 있을 것 같고, 세대들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는 유교적 가치의 일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유교적 가치는 신자유주의와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에 상당 부분을 폐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대간 갈등은 무한대로 늘어날 것입니다.

      아무튼 어려운 얘기인데,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윗사람이 낮추는 것입니다.
      청춘은 경험이 없는 상황이기에 올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만 기억하면 해결책이 나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필자는 분노한 촛불혁명이 4단계로 나누어진다고 본다. 1단계는 박근혜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 2단계는 정권교체과 언론 개혁을 위한 미래청사진 수립, 3단계는 과거사 청산과 세대교체를 통한 정치혁명, 4단계는 체제혁명의 진행과 완수다. 1단계는 촛불시민이 주도하고, 2단계는 촛불시민과 유권자, 정치권이 주도한다. 3단계는 촛불시민과 새정부, 시민사회가 주도한다. 4단계는 촛불시민과 새로운 정치세대, 새정부와 시민사회가 주도한다. 





촛불시민의 목표가 박근헤 퇴진과 정권교체, 과거사 청산을 넘어 체제혁명까지 이루려면 촛불시민이 모든 단계마다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모든 혁명들이 타도 대상(체제, 정부, 인물 등)을 무너뜨린 이후에 세대교체와 체제혁명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한 것은 혁명의 주역들이 체제를 바꾸는 과정에 주역은커녕 조연으로도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토크빌의 《프랑스혁명과 앙시앙레짐》보다는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을 참조하는 것이 낫다).



'촛불시민의 11월혁명'이 이전의 시민혁명들과 다른 것은 SNS와 팟캐스트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활용함으로써 동시다발적 참여가 가능한 '네크워크 혁명'이었다는 것이다(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을 참조할 것). 이대생이 물꼬를 터듯이 촛불혁명의 주역이 1020세대였던 것도, 원자단위로 분산돼 있지만 빛의 속도로 의견을 교환하고 그것에 따라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합의에 이르고, 네그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합집산이 자유로운 벌떼처럼 동시다발적 참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질식(유신독재)시킨 대가로 약간의 부를 국민(50대 후반~70대에 집중됐고 세습중산층이 형성됐다)에게 나눠준 박정희의 불평등성장은, 현재의 선진국들이 모두 다 그랬던 것처럼, 고도성장에는 성공했지만 그 열매를 나누는 데는 실패했다. 아니,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박정희 사후, 유신독재를 청산하기도 전에 전두환이 집권하는 등 반칙과 특권의 정경언관 유착을 주도한 유신의 후예들이 시장우파로 변신해 대한민국을 통치했기 때문이다(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이해하고 싶다면 토마스 프랑크의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을 보라). 



시장 우파(인간노동의 상품화에 반대했던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사탄의 변종)로 변신한 유신의 후예들이 관행이니 뭐니 하면서 부정과 부패, 비리와 반칙에 지독할 정도로 관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재벌과 정부 주도의 성장 후 분배(낙수효과)를 주장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성장하고 재벌들이 얼마나 부를 축적해야 95%의 국민들에게 분배가 이루어지는지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는다.  



피케티의 도움을 받으면, 관련 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마르크스가 자본가의 자본축적(부의 축적)이 끝나는 시기를 특정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들도 모든 국민이 중위소득에 몰려있는 분배의 시기에 대해서는 특정하지 않는다. 프라이부르크학파가 주도한 '질서자유주의'(최초의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서독이 마샬의 '사회적 권리'를 수용한 '사회적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후, 최고의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민주주의적 분배를 강화(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들의 공통점이었던 분수효과의 출발점)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독일과 선진국에 진입하는데 성공한 나라들에 비해, 고도성장은 이루었지만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사회적 권리'(보편적 복지)를 최소한만 실현한 대한민국은 불평등과 차별만 극대화시킨 채 선진국 문턱에서 중진국의 늪에 빠진 것이다. 이명박근혜 9년에 이르러서는 중진국의 늪을 넘어 무한대의 퇴행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의 공습을 포함한 그 모든 피해는 N포세대와 미래세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폭력적으로 전가됐다. 



남녀노소가 참여한 혁명으로 커졌지만, 11월의 촛불혁명이 1020세대들의 네트워크적 저항과 분노, 상상력에서 시작된 것도 불평등성장의 최대 피해자가 이들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이 축제와 비슷한 형태를 띠는 것도, 이들에게는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집회 자체가 배운 대로의 민주주의이고, 부패한 기득권과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이기에 즐거운 것이다(프랑스 68혁명 때의 '놀이를 통한 억압적 사회질서의 전복'과 상통). 이들에게 평균수명이 늘어났지만,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란 포기의 대상일지라도, 현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촛불혁명의 주역들이다. 



이들을 핵심으로 하는 '촛불시민 혁명협의체'가 구성돼야 할 필요가 여기에서 나온다. 혁명을 다룬 모든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 듯,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며 혁명을 이루면 방관하던 늙은이들이 기어나와 가로채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촛불시민 혁명협의체'가 반드시 구성돼야 한다(이대생의 경험이 필요하다). 체제혁명에 찬성하는 촛불시민 모두가 후보며, 기존의 정치권 경험이 있는 자들과 사이비 지식인 및 학자들은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 



각종 커뮤너티와 지역별 토론을 네트워크화 한 다음에 다양한 후보자들을 추천받고(여성과 1020세대가 2/3), 그들의 의사를 확인한 후 메인 사이트와 연결된 투표를 진행해 1000명 정도를 선발한 다음에 최종적으로 100명을 추첨으로 뽑는다. 이들이 '촛불시민 혁명협의체'를 구성하고, 떨어진 900명은 '지역별 협의체'를 구성한다. 이렇게 구성된 '촛불시민 혁명협의체'가 기존의 시민단체와 혁명과제를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토론을 통해 혁명과제를 도출한 다음, 최종적으로 촛불시민의 승인을 받는다. 승인된 혁명과제들은 정치권에 전달한다. 





보다 구체적인 계획은 필자의 몫이 아니다. 촛불시민 모두의 것이며 몫이다. 필자가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체체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문화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혁명의 바탕이 되는 정치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체제혁명에 성공할 수 없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가 고착화된 현실에서 또 한 번의 고도성장 같은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은 극단의 불평등과 차별, 최악의 경우 인류의 멸종만 불러올 뿐이지, 유토피아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답은 민주주의의 발전단계에 있으며, 노무현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저는 사상의 완결성을 인정하지 않는 쪽입니다. 모든 사상은 소중하지만, 모든 사상은 완결성을 인정할 때 절대주의가 되고 사람에 대한 지배와 속박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상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존중할만한 사상이 있다면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민주주의 사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자기 이론적 근거, 자기 가치의 근거에 대해서 스스로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위대합니다. 그리고 그저 관념의 세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현실로서 업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위대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jeremy 2016.12.11 11:53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현실의 해법은 아마도 "점증적"과 "단계적"인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점증적"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확고하다는 뜻이고, 아마도 시스템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고, "단계적"이란 위 글에서 밝혀주신 내용에 따라 체제 변혁적으로 나아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주위의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기 때문에, 아마도 "점증적"인 개혁에 동의하는 기류가 많은 것 같긴 합니다. 일단 민주주의와 정의, 그리고 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에 대한 물꼬는 텃으나 그 물길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현재로선 명확하게 생각을 정이하지는 못했었는데, 도령님의 생각과 방향에 대한 명쾌함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을 읽고 엊그제 추미애 대표가 제안한 "국회 정부 정책협의체"에 이은 "국회 정부 시민단체 정책협의체"의 출현도 기대해 보게 됩니다. 이제 불의의 권력과 자본에 맡겨놓았던 "대의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일정부분 거둬들이고, 일정부분 "직접민주의의" 에 부합하는 체제로 가야하고 체제 개편을 이뤄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노무현 대통령의 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대통령이기전에 "사상가" 였고, 어느 석학들과 대담을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란 생각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노무현님의 사상이란, 관념 속에서만 살아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란 장에서 가감없이 표현되고 사용되고 무엇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놓고 있는 사상이기에 멋있고 품위를 느끼게 해줍니다. 마치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을 추구함에 있어서, 여유로움과 여백을 발견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는 점이랄까요.

    • 늙은도령 2016.12.11 21:37 신고

      보통의 해법은 두 가지입니다.
      헌데 시기가 다르면 해법도 달라집니다.
      지금은 혁명의 시기이고, 체제혁명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솔직히 점진적으로는 답이 없습니다.
      저는 이것에 찬성했었는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공부가 어느 수준에 이른 후부터는 인류의 노예화와 멸종을 막기 위해 혁명적 차원의 전복이 없으면 안 되는 수준입니다.
      30안에 인류는 노예화될 것이며, 21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멸종할 가능성이 너무 높아졌습니다.
      과학기술이 진화론의 지원을 받아 인류를 인공지능의 하등동물로 만들거나 멸종에 이르게 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정치적 담론이 저에게는 한가해 보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까 얼마나 무서운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릅니다.
      이에 대한 글을 향후 다룰 것인데, 어떤 울림이라도 있을지,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제 블로그에 하루 100만 명 이상이 몰려들어야 조금의 울림이라도 있을 테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2. 진흙속의연꽃 2016.12.11 12:10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듯이, 역사는 참여하는 자의 것입니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추위가 닥쳐도 궂은 날씨에 매주 참가한 촛불들이 만들어낸 역사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날을 기려 명예혁명, 촛불혁명, 11월 혁명 등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이런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까 사람들은 인증샷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모두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들입니다."

    오늘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어제 7차 촛불에 참가했습니다. 승리의 축제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그래도 국민이 승리한 날입니다.

    http://blog.daum.net/bolee591/16157468


    • 늙은도령 2016.12.11 21:43 신고

      네, 승리했습니다.
      1단계의 전반부를 넘었습니다.
      아직 3.5단계가 남아있습니다.
      그때까지 지치지 말고 즐겁게 투쟁했으면 합니다.

  3. mangrove 2016.12.12 10:24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는 분명 괴리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우상호 원내대표는 "국회안의 언어"라는 것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괴리감이 어디부터 출발하느냐를 생각해 보면 제 생각에는 "권력의 오염"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자리가 사람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의 오염과 철저하게 싸웠던 서민의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의 구성원으로서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큰 요소입니다만, 한편으로는 거대정당의 일원으로서 그 권력은 결코 무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리타분한 소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므로 국회의원, 정치가는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 볼 줄 알아야 하고, 늘 권력의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국회의원은 명예직이 되어서도 않되고, 학벌이나, 명성에 , 인기에 영합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늘 서민이라는 원칙에 충실해야 하며, 언제든지 자기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신을 언제든지 무너뜨리고 새로 출발할 수 있는 원점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늘 부족한 자신을 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기대해 봅니다.

    정치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기다려 봅니다.

    • 늙은도령 2016.12.12 10:46 신고

      네, 노무현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국정치를 망치는 최대요인이라고 생각해 이것에 철저하게 저항했습니다.
      언어도 서민의 언어를 썼고(그래서 누구보다도 위대한 발언들이 쏫아졌고), 권력의 남용도 철저하게 제한했습니다.
      자신이 그래야 나머지 권력조직들도 국민 곁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의 장차관 고위관료들이 일부라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지요.

      데만크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국회의원이 귀족처럼 되지 않게 하려면 선거제도를 고쳐야 합니다.
      또한 각종 특권 중에서 의정활동에 필요한 필수적인 것만 빼고 모조리 없애야 합니다.

      선거는 필연적으로 의원권력을 만듭니다.
      이를 제어하려면 국민들의 끊임없는 감시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정경관유착을 박살내야 합니다.
      언론의 감시도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고요.
      시민사회도 이런 부분에서 활약해야 합니다.


자살만 꿈꾸다 알고나 죽자에서 여기까지 왔지만, 공부를 다시 시작한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단 한가지는 '미래의 권리가 현재의 욕망에 우선한다'와 '지식은 나눌수록 커진다' 입니다. 지난 13년 간의 공부가 불평등과 차별에 관한 통섭적 이해와 해결책으로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의 공부가 성장·개발담론과 신자유주의 및 박정희 신화를 완전히 분해하는 작업에 상당 부분 투자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아직 1020세대와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최대 약점이라 같은 세대인 제 조카들 이외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N포세대와 의도적으로 만남을 늘리고 있습니다. 건강의 굴곡이 많이 완화됐기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있게 됐고, 많이 부족하지만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다시 나오기 힘든 지도자인 노무현(참여정부)의 성과와 미래전략을 모조리 부정하고 폐기하는 바람에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추락했지만, 이대생(성신여대 등에서의 투쟁도 이어지고 있다)의 승리에서 보듯이 N포세대(안타깝지만 포기만큼 적극적인 저항도 없다!)의 연대와 저항이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체제담론이기보다는 통치술이라고 해야 하는 신자유주의가 불평등과 차별이 가장 심했던 19세기의 벨 에포크 시대(상위 1%가 전체 부의 80~90%를 차지했다)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면, 박정희 신화의 핵심이 반칙과 특권의 차별을 구축하는 불평등성장이었기 때문에 양자는 상당 부분 일치합니다. 시카고학파와 보수연구소(영미의 슈퍼리치와 금융자본, 미 재무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에 맞서 신자유주의를 가장 잘 파악한 석학인 푸코, 네그리, 하비, 클라인, 스티글리츠, 보크만, 슈마허, 바우만, 벡, 에스핑, 라이시, 피트, 지젝, 피케티 등의 연구를 종합하면 박정희 성장모델과 통치술은 신자유주의의 원형으로 불러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필자가 줄기차게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국가가 대한민국이라고 했던 이유도 박정희의 신화(불평등 성장모델)과 신자유주의는 90%에 가까운 싱크로율(최소 민주주의, 권위주의적 통치, 강한 정부, 시장경제, 위계적 질서를 강조하는 재벌 위주의 성장, 통제에 가까운 언론 협조 등)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공공분야의 민영화가 핵심 중 하나인 대처의 신공공정책을 차용했고, IMF의 가혹한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김대중 정부도 신자유주의에 속한다고 할 때,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유일한 정부는 노무현의 참여정부 뿐이었는데(노무현은 공공혁신에 클린턴의 뉴거버넌스 모델을, 개헌에는 프랑스 헌법을, 선거제도에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당정분리에 프랑스와 독일의 연정을, 정당에는 네트워크 정당모델을, 경제에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불평등과 복지 확대에는 자본과 소득에 대한 증세를 추구했다. 이중에서 목표한 만큼 이루지 못한 것들은 한나라당에 있어야 할, 지금은 국민의당에 모여 있는 호남의 기득권세력이었다. 노무현을 이용하거나 비판하려면 제대로 알고나 해라, 이 무식하고 비루한 자들아!),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이마저 무력화됐습니다.



필자가 노무현의 정치혁신과 정책, 미래비전 등을 난도질했던 진보매체들도 비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학자적 양심에서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여러 가지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추상(초인공지능의 시대 이후에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다만 특이점주의자들이 꿈꾸는 그런 시대는 오지 않는다)을 21세기에도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일부의 좌파들을 고리타분하다고 비판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제발 공부 좀 해라! 명문대 출신과 미국유학파처럼 발전하지 않는 사이비들로 살지 말고! 물론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것 같지만 발전이라고는 코딱지만큼도 없는 최장집 사단과 끝없이 퇴보하는 강준만 류보다는 낫지만).



박정희 신화의 핵심이 반칙과 특권의 정경관유착에 있다면,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자본과 소득에 대한 누진과세를 19세기에 근접하도록 줄이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완벽하게 합쳐지면 이명박근혜 9년의 결과인 헬조선(브렉시트의 영국, 트럼프의 미국이 그럴 가능성이 높아졌다)에 이릅니다. 이명박 정부가 자본과 소득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누진과세(법인세 인하는 세계적 추세였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부터 무력화시킨 것도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박정희 신화와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자본과 소득에 대한 누진과세(최고세율 70~80%, 불로소득의 경우 90% 이상)와 복지 확대가 핵심이자 거의 모든 것입니다. 필자가 기본소득(좌우의 학자들은 각각의 기본소독이 다르다고 하지만 고율의 누진과세를 얘기하지 않는 한 도진 개진이다. 단 청년수당은 무조건·즉각적으로 실시해야 한다!)을 주장하는 자들과 인공지능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일자리 말살에 따른 무한대의 불평등 초래와 자본권력에 대한 인간의 완전한 노예화)을 떠드는 자들의 위선적 행태를 비판하는 것도 고율의 누진과세를 피해가기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세계적 차원의 부유세 신설을 주장한 토마 피케티의 위대함이란!).  



칼 폴라니의 성찰에서 출발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필자가, 최근에 들어 희망을 갖게 된 것은 1020세대는 박정희 신화에서 완전히 자유롭고 신자유주의의 최대피해자라는 점이었는데, N포세대의 역설(이들은 지역주의에 매몰되지 않는다!)과 이대생의 저항에서 비롯된 '박근혜 게이트'의 폭로와 그에 따른 위대한 촛불혁명은 가장 신자유주의적 국가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필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촛불혁명이 체제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래서 자본과 소득에 대한 누진과세가 실현된다면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 것입니다. 



동학혁명의 21세기 버전이자, 프랑스혁명과 68혁명, 헝가리혁명이 모두 포함된 촛불혁명이, 그들은 부분적으로만 성공한 체제혁명으로 이어지고, 미국혁명처럼 시대교체가 더해지고, 지금까지는 어떤 혁명도 성공하지 못한 세대교체(특히 정치)까지 성공할 수 있다면 필자는 모든 공부를 끝내고 나머지 생을 즐기며 살 것입니다. 연령 대비 몸의 상태가 너무나 불균형적이라 아주 늦은 연예까지는 못하겠지만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생각입니다.





새누리당과 야당 내의 개헌론자들 때문에 9일의 탄핵은 실패할 가능성이 조금 높지만, 그 다음의 표결에서는 가결될 것을 확실합니다. 9일에 탄핵이 부결되면 이번 주말에 전국적으로 300만 명 이상이 모일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도 새누리당과 개헌론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면 400만 명, 500만 명이 모일 것이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는 탄핵이 가결될 것입니다. 이는 체제혁명을 이루기 위한 필수요소라는 점에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시대의 명령입니다.



촛불시민들은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승리의 가능성이 이렇게 높은 혁명도 없었습니다. 노무현의 업적과 비전을 이명박근혜가 모조리 무력화시킨 것이 역설적으로 위대한 시민혁명을 촉발했습니다. 우리는 15년 정도의 격차를 두고 일본의 전철을 밟아왔는데, 노무현의 당선 이후 두 번째로 일본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시민혁명을 이루고 있고, 386세대와 넥타이부대는 해내지 못한 체제혁명도 이룰 것 같습니다. 



촛불의 하루하루가 역사입니다. 인류사에 기록된 모든 혁명보다 뛰어난 비폭력·평화혁명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첫 장을 열었고, 반은 왔으며, 무서울 정도로 힘을 축적하고 있고 거대한 전환의 목전에 이르렀습니다. 아니, 이미 들어섰는지 모릅니다. 6차에 걸친 촛불집회가 이를 증명합니다. 이번 글을 끝내며 노무현 대통령이 '6.10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와 『참여정부 국정운영백서』제2권에 나오는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국민은 수많은 좌절을 통하여 가슴에 민주주의의 가치와 신념을 키우고, 그리고 역량을 축적하여 왔습니다. 의미 있는 조좌절은 단지 좌절이 아니라 더 큰 진보를 위한 소중한 축적이 되는 것입니다(2007년 6월 10일, 6.10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특권층이 반칙을 해도 용납이 됐고 반칙을 해서 얻은 승리가 용인됐다. 그러나 반칙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구성원 간의 자발적인 상호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 반칙과 불신이 성행하는 사회는 도덕적 자신의 부족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국정홍보처, 『참여정부 국정운영백서』제2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12.06 09:08 신고

    9일에는 무조건 탄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됩니다..기다립니다

  2. 진흙속의연꽃 2016.12.06 09:39

    위대한 촛불, 위대한 국민입니다!

  3. 슈나우저 2016.12.06 10:56

    결국 국민의당과 더민주 일부의 이탈표가
    있다는 말씅인가요..

    또한번의 좌절을 횃불로 태워 버리리라...

    • 늙은도령 2016.12.06 13:10 신고

      한 번에 표결이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박근혜와 친박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데, 이것을 예상해 의외의 곳에서 반란표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지요.

  4. 대구류 2016.12.06 19:29

    노무현의 업적과 비전을 모두 폐기시킨 이명박근혜의 폭정이 역설적이게도 위대한 시민혁명을 촉발시킨것은... 정말 서글프네요 노무현을 죽인자들 적분에 노무현의 재평가가 훨씬 빨라졌으니...박정희라는 보수의 지표는 무너졌고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지표로서 '노무현'이 얼마나 빛이 날지... 제가 낙관적인건지 몰라도 저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기대됩니다.(똥을 치우는 인고의 세월이 있어야겠지만...)

    • 늙은도령 2016.12.06 21:24 신고

      네, 그런 시간이 왔고 그래서 노무현의 대통령선호도가 박정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지요.
      노무현은 그런 식으로라도 정치의 발전, 국가의 발전, 국민의 행복에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5. mangrove 2016.12.07 13:0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신자유주의와 독재의 연관성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되었군요. 박정희가 신자유주의의 원형이고 이명박근혜는 그걸 이용해서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이군요.

    많은 책을 섭렵하신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느껴집니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도령님같이 핵심을 집어주시는 분들은 단비와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고 수명이 유한 하기에 많은 석학들은 자신의 생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집필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진보쪽의 훌륭하신 분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학문적인 내용의 책들은 제법 많이 출간 되었던 것 같았으나, 제가 책을 가까이 하지 않기에 모를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대하여 자신들이 겪었고 그 속에서 벌어졌던 팩트들에 대해서 언제 누가 보더라도 명백할만한 내용들을 포함한 책을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그 분들의 후학이라고 해야할 분들도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 군요. 훌륭한 선생 밑에 선생보다 더 훌륭한 후학은 필수라고 생각이 듭니다.

    N포 세대와 교감을 시작하셨다는 말이 참 반갑게 느껴집니다. 그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늙은도령 2016.12.07 15:40 신고

      솔직히 한국에는 학위를 받을 때의 저술이 대표작입니다.
      그 다음은 학벌의 일원이 돼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대가가 나오지 않은 것이며, 훌륭한 후학들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덕일 소장이 이번에 무죄를 받은 것처럼 학벌에 기댄 놈들을 하나씩 박살내야 우리나라의 학문 수준이 발전합니다.
      지금은 나이가 먹을수록 바보가 되는 지식인들만 학벌의 울타리 내에서 비루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정당정치 대가라는 최장집도 갈수록 본질에서 멀어진 과거의 얘기만 되풀이 할 뿐입니다.
      그이 저서와 칼럼 등을 보면 80년대에나 통할 것들에 함몰돼 있음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니 그 밑에서 학문활동을 하는 제자나 후학들의 수준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요.
      우리나라 박사 학위의 표절을 전수조사하면 최소 60~70%는 학위가 취소될 것입니다.
      정말 형편없는 교수들이 즐비합니다.
      이러니 청춘들이 기성세대의 학자들을 인정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도대체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똑같은 것을 무한대로 우려먹을 뿐이고요.
      저는 지금도 한 달에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인데 이들은 구굴에서 인용만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제자들의 연구를 가로채는지 제대로 된 저서나 연구성과를 보기가 힘듭니다.
      공대는 그나마 낫지만, 인문과 사회계열은, 특히 정치와 경제는 최악입니다.
      철학도 형편없고요.
      역사는 말할 거도 없습니다.

      제가 한국 학자들의 책을 인용하지 않는 것은 인용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한국 학자들은 제자리에 머물러 학벌의 갑질만 하고 있습니다.



무려 21개 중대 1,600여 명의 경찰을 투입해 농성 중인 이대생을 끌어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황교안 총리와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성주를 방문해 성난 군민들로부터 셀프감금을 유도했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언론에는 이대생이 교수들을 감금한 것으로 나오지만, 경찰력이 투입된 이후에 SNS 등에 공개된 학생들의 증언과 녹취록(학생을 자극하는 교수의 폭언 등)을 보면 교수들이 감금을 자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대생들이 본관에서 집단농성에 들어간 이유는 국민을 ·돼지로 보는 교육부의 꼼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교육부는 고졸 출신 직장인들에게 학위를 제공한다며 정원 내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을 추진했는데, 그럴 경우 교육부가 제공하는 지원금액(35억, 세금으로 마련) 외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자 대학들의 참여가 지지부진했다. 이에 교육부는 정원 외로 규정을 바꿨고, 대놓고 학위를 팔 수 있게 된 이대가 참여를 결정했다. 



얼핏 보면 이대생들이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교육부의 지원사업에 반대하는 것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행태로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의 반대 이유만 살펴봐도 교육부의 지원사업이 대학으로 하여금 대놓고 학위장사를 할 수 있는 또하나의 통로를 열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대에는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를 목적으로 1984년에 개원한 평생교육원이 있기 때문에, 재학생(이대에 진학하기 위해 투자한 것들을 논외로 한다 해도)에게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단과대학을 신설할 이유가 없다. 



단과대학을 설립해 '정원 외'로 학생을 뽑는 것은 비정상적인 정원 확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2018년부터 본격화될 인구절벽으로 정원 축소가 불가피한 마당에, 기득권 집단인 교육부가 특정 대학들을 선정해 국민의 세금으로 손실분을 만회해주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장기 중 하나가 부자감세를 숨기기 위해 서민증세를 늘리는 역주행이라면,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도 대학의 배만 불려주는 역주행이다. 



특히 신설되는 단과대학의 전공들(미디어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뉴미디어산업 전공, 건강·영양·패션을 다루는 웰니스산업 전공 등)이 기존학부와의 겹침을 넘어, 철저하게 기업의 필요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대학을 단순 취업훈련소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이란 점에서 역주행이다. 대학이 산업의 변화에 대처할 필요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기업의 필요에 따라 학과와 정원이 결정되면 대학이 존재할 이유와 목적이 사라진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기존의 일자리 대부분을 대체할 20~30년 후에는 이런 대립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교육부와 대학이 앞장서서 인간의 가치를 바닥까지 끌어내리려 한다면 헬조선만으로도 부족하지 않겠는가? 이대의 단과대학 신설은 졸업생들도 정규직 취업이 힘겨운 마당에 이미 취업된 고졸 직장인에게 '학벌의식만 조장하는 학위'를 팔겠다는 것이어서 역주행도 이런 역주행이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억울한 세대로 기록될 1020세대들을 조금이라도 위한다면,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국민을 개·돼지로 보고 신분제를 옹호하는 교육부(와 이대)의 역주행은 박근혜 정부의 대한민국이 헬조선의 마지노선마저 넘고 있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총체적인 타락'을 빼면 2016년의 대한민국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참담한 마음 뿐이다. 



역사에 '만약에(if)'를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도 마다하지 않은 기득권의 융단폭격을 뚫고 사립학교법을 개혁했다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다수의 국민까지 이에 놀아났으니 방법이 없었겠지만, 최소한 이해당사자의 한 축인 학생들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일방통행과 야만공권력을 동원한 무력진압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백남기씨에게 가해진 직사 물대포와 우장장창에 대한 리쌍의 강제집행(용산참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에서 보듯, 상대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우월적 강자의 반민주적인 일방통행과 정부의 폭력이 대한민국을 짐승들의 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오늘은 이대에서 합법을 가장한 폭력이 자행됐다면, 내일은 연대와 고대, 한양대와 중앙대 등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대화와 소통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종말을 고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왜누리안티 2016.07.31 01:24

    이러다 한국판 나치 독일이 도래하는 건 아닐런지...

    • 늙은도령 2016.07.31 02:20 신고

      박근혜 임기 동안은 이러 방식의 폭력적인 이익챙기기가 자행될 것입니다.
      다음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갈수록 쌓여갑니다.

  2. *저녁노을* 2016.07.31 05:15 신고

    씁쓸하군요. ㅠ.ㅠ

  3. 참교육 2016.07.31 10:53 신고

    대한민국 어느 분야에도 정상적으로 국러 가는 곳이 없습니다. 멘붕이니 헬조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완전히 미쳐 돌아갑니다.

    • 늙은도령 2016.08.01 15:16 신고

      막바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는 임기 동안 저지를 수 있는 것은 다 저지를 모양입니다.

  4. 존사장 2016.07.31 11:52 신고

    정부에서 먼저 대학에 개입하고 말안들으면 돈안주겠다 협박하고.. 비단 이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구조조정으로 많은 대학들이 교육부의 말도 안되는 강압행정을 받아들여야 해요.

    • 늙은도령 2016.08.01 15:18 신고

      네, 심각한 지경이지요.
      모든 국립대를 무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립대도 이런 짓거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만이 대학진학률도 줄어듭니다.
      물론 취업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뒤따라야 하지만 그것은 기술발전과 자동화에 따라 수시로 정해져야 합니다.

  5. 생명마루한의원 2016.07.31 17:11 신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ㅎㅎ

  6. 맹그로브 2016.08.01 10:08

    김활란의 학교 답군요.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보다 상아탑이 되어야 할 학교가 취업교육기관으로 전락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수십년간 대학생들을 산업전선으로 내몰아서 이 사회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당연히 있어야할 학문적 깊이와 다양성이 경제논리로 매몰되고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역대 교육부 장관이나, 공무원들은 그들의 업적(?)을 위해서 한 일이겠지만, 결국 국민들이게는 익명 싸논 똥으로 다가 오는 군요. 학문적 철학적 깊이를 가진 자만이 이 사회를 올바르게 볼수 있고 비판할 수 있으며 이끌어 나갈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지난 수십년간 취업전선에 내몰려 재벌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온 결과가 참담할 따름입니다. 결국 지금은 철지난 생산기지로 대한민국은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와서 아무리 인공지능을 부르짖어 봐야.... 다양성과 깊이를 추구해온 미국등 선진국을 따라 잡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경제논리가 아닌 학문적 다양성의 논리와 철학에서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요즘 대학에서 안드로이드 가르치고 있다는데.... 정말 한심한 짓거리 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해서 받아들였던 경제가... 지금은 우리의 목을 누르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8.01 15:20 신고

      모두가 기술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아니 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미친짓이지요.
      모두가 기업의 필요에 따라, 정부의 지원금을 따기 위해 미친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합니다.
      세상의 변화가 어떠한지도 모릅니다.

  7. 하하하 2016.08.01 20:53

    불통이다 뭐다해도 결국 이 사단의 근본적인 원인은 망국적 학벌주의죠.
    학위장사라는 님의 주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대학생들이 자신들의 학벌에 대한 기득권의식이 전혀 없이 저렇게 반대하는 걸까요?
    우리나라도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모든 대학을 국공립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 늙은도령 2016.08.01 21:29 신고

      그러면 좋지요.
      대학은 정말로 공부할 사람만 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충분한 소득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학벌주의도 저절로 사라집니다.

  8. 공수래공수거 2016.08.02 06:46 신고

    좋은 취지로 잘 운영될수 있는것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었군요
    매관매직하는 탐관오리나 다를바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6.08.02 16:14 신고

      단과대학을 설립하려면 정원 내에서 해야 합니다.
      학생수의 절대수가 줄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말도 안됩니다.
      이대는 오로지 돈 때문에 이런 미친짓을 하는 것이지요.
      역주행도 이런 역주행이 없습니다.

  9. 하하 2016.08.02 20:58

    자신의 주장에 대한 비판은 무조건 잘사버리고 불통하는 늙은도령의 작태가 마치 박근혜 같구료 ㅋㅋ

    • 늙은도령 2016.08.02 22:02 신고

      내 주장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이면 안 그러지요.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형편없어 길게 끌고갈 생각이 없으니 그렇게 합니다.
      댓글에서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은 본문에 즉시 반영합니다.
      당신처럼 삐딱하게 보니 그렇게만 보이는 것이지요.



외국의 언론들을 살펴보면 한국의 부도가능성을 다룬 보도와 칼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등골이 서늘해지게 만드는 것들도 있습니다. 선진국 중에 한국(외국에서는 한국을 선진국에 포함시키지만 부의 재분배 요구가 폭발할 것을 두려워하는 한국의 기득권들은 선진국에 들지 못했다고 우긴다)의 부도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은 상식의 수준에 이를 정도입니다. 





무엇보다도 2018년부터 본격화될 인구절벽이 거론됩니다(주류경제학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구구조를 철저히 외면하는 것에 있다. 인구절벽의 피해는 4~5년 후부터 본격화된다). 한국의 인구구조는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이 기간 동안 일본의 평균성장률은 1%였는데, 이는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평균성장률이 0.4%에 불과한 미국보다 높다. 천혜의 조건을 가진 미국의 상황이 얼마나 나쁘고, 연방정부가 얼마나 개판으로 나라를 운영했는지 말해주는 하나의 지표다. 미국이 국방비의 상당 부분을 대납해주고 있는 아베 내각에 절절매는 것도 이 때문이다)보다 더욱 나쁘다는 것에 주목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최악의 인구절벽에 놓인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현대의 경제는 생산자가 곧 소비자인 구조인데, 생산가능연령대(15~65세)의 급감은 전방위적 소비 위축으로 이어집니다. 소비 위축은 생산 감소로 이어지며 실업자 양산(기술발전과 자동화에 따른 실업은 뺏다)이 뒤를 따릅니다. 그 결과 가계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중산층 붕괴가 대규모로 일어나며, 이는 정부재정 악화와 기업의 투자 감소로 귀착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이 과정에서 하위 95%의 실질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부가 늘어난 상위 5%가 전체 소비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국가 차원의 경제 위축은 피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생산활동보다 소비행위가 압도적으로 많은 1020세대의 빈곤은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일본의 단카이세대는 한국의 베이비붐세대보다 조금이라도 여유로웠다는 것까지 더하면 한국의 부도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여기에 파시즘적 속도의 압축성장에만 매몰돼 국가 차원의 복지(부의 재분배로 소비를 늘리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더해지면서 붕괴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집니다. 저출산·고령화와 급격한 도시화(아파트 단지의 범람과 도시빈민의 폭발적 증가)의 결과, 작게는 가족과 마을공동체 크게는 사회적 차원의 보호망까지 해체된 것을 더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일본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극성도 빠지지 않고 거론됩니다. 한국의 중산층을 붕괴시킨 것 중에 사교육비 부담이 상위에 위치한다는 것은 상당수 국가가 인지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의 붕괴는 '개천에서 용난다'는 사회이동성(희망의 근거)을 극도로 좁게 만들어 부의 불평등과 차별의 공고화로 이어지며, 극단적인 재벌공화국이라는 것과 함께 부정적 효과를 강화시키며 한국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노조 파괴와 시민단체의 무력화와 함께 언론자유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한국의 부도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언론과 시민단체의 감시와 비판이 사라지고, 자본에 대한 노조의 견제가 약화되면 기득권의 부패지수는 무조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조세도피처로 빼돌려진 금액에서 한국이 3위를 차지하는 것도 이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급증하고 있는 정부, 기업(천문학적인 내부유보금만 쌓고 있는 상위 5위 안에 드는 재벌은 제외), 가계의 부채도 중요하게 거론됩니다. 이는 전적으로 이명박근혜 정부에 책임이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과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잡쉐어링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며, 법인과 부자를 대상으로 세율까지 올리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음에도 이명박근혜 정부는 정반대로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허공에 날려버린 비용이 189조에 이른다는 것과 박근혜 정부 3년만에 100조 이상의 부채가 늘어났다는 것, 경제활성화와 부동산활성화를 명목으로 각종 규제를 무차별적으로 완화되고 철폐했다는 것, 이것도 모자라 노골적으로 대출을 장려하는 저금리 정책과 각종 유인책을 퍼부었다는 것,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 단기적이고 즉흥적으로 난발한 정책들이 거대한 후폭풍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부도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 때문에 내수경제가 취약하다는 것도 빠지지 않습니다. 특히 전통의 제조업이 중국에 밀리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노력이 대단히 부진했다는 것과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대중국 수출의존도를 줄이지 못했다는 것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갈수록 치열해짐에 따라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단골메뉴이고요.  



미국 연방정부를 빼면, 북한과의 극한대립도 빠지지 않고 거론됩니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으로 남북 간의 극한대립에 전환점을 마련했고, 노무현 정부가 10.4선언으로 경제협력을 넓힐 수 있는 기반을 다졌음에도 이명박근혜 정부가 이를 완벽하게 무력화시킨 것도 중요하게 거론됩니다. 남북한이 천문학적인 군비경쟁에서 벗어나 국방비의 상당 부분을 경제나 복지에 투입했다면 상황은 지금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기습적으로 결정했으니 한국의 부도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습니다(당장 다음주 주식시장은 물론 외평채나 CDS금리 등에 상당한 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원화약세와 외한보유고의 변동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이번 결정이 전반적인 여론에 반하는 것이어서 국론 분열이 더욱 심각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영국을 두 쪽으로 갈라놓은 브렉시트 후폭풍이 영국경제를 극도의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에서 보듯, 사드 배치 결정은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에 부의 불평등을 극한으로까지 몰고갈 인공지능과 특이점 혁명의 폭풍까지 몰아치면…… 그 피해는 지금의 1020세대(어릴수록 불리하다)부터 그 이후의 미래세대에게 가장 가혹하게 작용합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독일(과 스웨덴, 캐나다 등)에 정착하려는 한국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도 탈조선만이 1020세대의 유일한 탈출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최악을 피하고 싶다면 전복적 혁명이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KBS, MBC, SBS의 직원들이 전면적인 동시파업에 들어가고 김종인의 더민주가 정신을 차리거나 노무현의 친구이자 동반자로서 문재인이 전면에 나설 수 있다면, 그래서 대권까지 탈환해 이명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습니다. 내년에 있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이 압승하면 차악의 상황도 면할 수 있습니다. 최상의 길은 모든 국민이 사회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복지국가를 실현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최고의 단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마셜의 성찰처럼, 80년대 이전의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로 방향을 트는 것이지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7.09 08:22 신고

    점점 진흙탕,,늪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습니다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7.09 19:05 신고

      한국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몰고올 대규모 실업까지 고려하면 지금부터 단단히 준비해야 하는데, 이놈의 정부는 정반대로만 가니...

      제가 유럽의 언론과 학자, 현장의 소리를 주로 듣는데 한국을 보는 시선이 역사상 최악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2. 캡틴앤디 2016.07.09 14:01 신고

    탄핵해야 합니다. 국민의 뜻에 반하는 대통령은 필요가 없습니다

  3. 마늘왕자 2016.07.09 15:52

    외신 보도와 분석 출처를 알수있을까요?

    • 늙은도령 2016.07.09 19:11 신고

      예를 들면 이코노미스트나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나오는 보고서, BBC, 가디언, 르몽드 등에서 간간히 찾을 수 있습니다.
      BBC나 독일 방송 같은 곳에서는 한국의 부도가능성만이 아니라 세월호참사 등을 프라임타임에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책들도 많고, 유럽의 은행이나 신용평가사 등에서 언론에 기고하는 칼럼 등에서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사나 보도가 나온 것은 상당히 오래됐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어디서 어떤 기사를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기사나 칼럼, 보고서, 인구절벽을 다룬 책, 선진국의 부도위험을 다룬 서적들을 읽은 것들을 종합해본 것입니다.

      이밖에도 국가부도지수를 나타내는 보도들을 살펴보면 한국은 반드시 포함됩니다.
      인터넷에서 검색만 잘하면 다양한 보도와 글, 보고서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저는 현장에서 듣는 것도 있습니다.

  4. 마늘왕자 2016.07.09 15:52

    외신 보도와 분석 출처를 알수있을까요?

  5. 일기일회 2016.07.10 12:28

    좋은 글들 많이 올려줘서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블로그가 있었다니.... 종종 방문해서 구독하겠습니다.

    예전 글 읽었더니 반기문총장을 안 좋게 생각하시는거 같던데... 그와 관련해서 글을 한 번 써주실 수 있을까요?
    나중에 투표할때 대선후보자들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고 해야는데 제가 그런거에 무지해서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6.07.10 18:17 신고

      감사합니다.
      블로그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기문에 관해서는 필요한 시점이 되면 글로 올리겠습니다.

  6. 소피스트 지니 2016.07.10 15:03 신고

    이런 얘기가 나온지는 제 기억으로도 7~8년된듯 합니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 우리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렸습니다.
    정치권과 지식인들은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인구절벽이 시작되면서 발생되는 어마어마한 사회, 경제문제들은 아마도 해결되지 못할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6.07.10 18:23 신고

      인구절벽은 너무 심각해서 미리미리 준비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단기적인 처방만 남발했기 때문에 더욱 악화됐고요.
      청춘에 관한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도 인구절벽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여기에 기술 발전에 따른 대규모 실업이 20~30년 안에 도래할 것이기에 부의 재분배와 복지에 관한 근본적인 혁명이 있어야 합니다.
      잘못하면 한국은 후진국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7. 김재완 2016.07.11 17:03

    훌륭한 견해 잘 봤습니다
    배가 침몰한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조타실에서
    나몰라라하는 형국인데
    어서 구명조끼라도 찾아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6.07.11 19:27 신고

      이 정부가 나라를 아예 말아먹을 모양입니다.
      하는 일마다 개판이니....

  8. 고등학생 2016.07.16 11:14

    수능을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앞으로 다가 올 미래에 어떻게 대비해야할까요ㅠㅠ..?
    저도 이민을 가야하는 걸까요 ㅠㅠ
    막막하네요ㅠ

    • 늙은도령 2016.07.27 16:18 신고

      저도 막막합니다.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려면 전복적 차원의 혁명이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고부담 고복지라는 복지국가로의 전환만이 유일한 답입니다.
      자신이 상위 10%에 들지 않는다면 복지국가로 가면 무조건 이익입니다.

      물론 복지국가로 전환하면 경제가 상당히 힘들어질 것입니다.
      최소 10년 정도는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위 10%에 해당하는 것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인류의 삶은 과소비에 빠져있기에 충분히 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이민이 제일 좋은 방법인데, 그것도 거기에서 정착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외국에서 사는 것이 만만치 않거든요.
      이것을 극복할 자신이 있다면 이민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저도 살기 싫을 정도이니까요.

      다른 방법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물질적 삶이 조금은 떨어지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입니다.
      물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싸움은 피하지 말고요.

      솔직히 10대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입니다.
      기성세대는 이미 사고가 굳어 지금의 10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조언도 힘듭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미래의 세상은 지금보다 악화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인 후 삶의 전략을 짜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너무 성공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내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집중하십시오.
      최악을 상정한 채 미래를 내다보면 최소한 최악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너무 악재가 많은 터라....


  9. 3년 휴학 대학생 남자 2016.08.06 11:18

    글 잘 보았습니다.
    글쓴이 님은 글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하셨습니다.

    한문단 한문단 사실을 근거로 작성하셔서 제가 알아본 정보보다 더 자세하고 신뢰도가 매우 높아보입니다.

    저한테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 다행이 먹고 살 방법은 준비했지만
    이마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길을 해매고 있습니다.

    많이 안타깝습니다.

    더 좋은 글들 많이 써주세요.

    • 늙은도령 2016.08.06 14:50 신고

      네,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신의 기술적 발전들을 고려하면 지금의 10대와 그 이후의 세대들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낼 것입니다.
      정치가 기술의 성과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이 결정됩니다.
      극단의 불평등이 늘어날 것이기에 기본소득 같은 전복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일자리는 절대 늘어나지 않을 것이며, 인구감소와 평균수명 증가로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변화에 처할 것이기에 정말로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10. 잘보십시요 2016.08.30 10:02

    속지 마십시요 마치 중국 아니면 한국이 부도 될것처럼 거짓말을 퍼드리고 있는나라가 중국입니다 어떻게든 사드를 설치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인터넷에 중국 보복에 따른 조사 해놓은게 있읍니다 중국은 인권비가 많이 올라서 다른 신흥국가 투자하고 많은나라가 떠나자 중국당국이 잡으려고 했던 사실을 본적 있을겁니다 우리가중국 떠나면 중국이야 말로 손해고 우리나라는 베트남이나 다른신흥국가 많기 때문에 인권비 싼나라에 투자하는게 낳읍니다 그리고 중국은 공산국가라서 다른나라사람이 땅을못삽니다 빌려줄 뿐이지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이 모르고 같다가 공장이고 그나라사람이른으로 했다가 자기가 주인이라고 네쫒기는 어처구니 없는일 당하고 빈털털이로 오도가도 못하는상항 기자에 취재로 알려 좋던것처럼 중국은 절대 다른나라 사람이 땅못삽니다 이제 세계는 넓읍니다 다른나라 투자할때입니다

    • 늙은도령 2016.08.30 16:04 신고

      뭔소리를 하는 것인지?
      한국은 이미 부도상태에 진입했습니다.
      사드가 그 속도를 빨리할 것이란 뜻입니다.
      수많은 기업들도 중국에서 사업할 때 땅을 빌리지 사지 않습니다.
      뭘 모르면 제대로 공부하세요.
      애플도 팍스콘을 통해 생산하고, 델도, MS도 다 그래요.
      무식하면 가만히나 있던지...

  11. 중국을 잘보십시요 2016.08.30 10:10

    중국은 다른 나라를 힘과 무기로 위협하고 인권를 무시하는 나라는 무기 강대국은 될지 몰라도 문화강국은 될수없읍니다 왜 우리나라가 세계 주변강대국이 많은대 문화강국이겠읍니가 대한민국은 총 이나 칼이 아닌 문화로 세계를 제페하십시다 우리대한민국 화이팅 그리고 중국은 세계는 넓고 신흥국가가 많은대 중국 아니면 뭐가 될것처럼 인터넷를 떠들석하게 하고 있는대 북한과 같은 독재는 더희상 발전도 절대로 문화강국이 될수없읍니다 힘과 무기로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대 어느나라 가 좋아 하겠읍니가 중국은 독재자가 권력에 욕심 때문에 그것이 눈에 안보인가봅니다

    • 늙은도령 2016.08.30 16:05 신고

      별 시덥지 못한 소리나 지껄이고.
      하여간에 일베충 같은 놈들이 나라를 망친다니까!!!

    • 동우 2016.08.31 13:38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된다"는 번역기가 필요하신 "아몰랑" 그(?) 분과 말씀하시는 폼이 비슷하시네요.

    • 늙은도령 2016.08.31 15:36 신고

      십알단이 가끔 가다 옵니다.
      그 중 한명입니다.

  12. 찰그지 2016.09.08 10:49

    정독하고 있습니다. 힘내주세요

  13. 네티즌 2017.03.06 17:14

    캐... 구구절절 맞는 말이네요.
    하다가 마지막 발언에서 시간낭비했다는 생각을 하고 갑니다.
    정의당....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그 정당 말인가요?
    이럴때 쓰는말이 "어이가없네"

    • 늙은도령 2017.03.06 19:48 신고

      메갈리아는 또라이 집단입니다.
      여성 중에서 또라이는 있습니다.
      정의당이 메갈리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한 말 가지고 너무 물어뜯지 마시지요.

    • 중중 2017.05.21 19:18

      정의당이 메갈을 제대로 이해못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페미니즘을 의식해서 무모한 도박을 한 것은 아닌가 싶어요.

  14. 중중 2017.05.21 19:18

    문제는 박근혜가 탄핵됐다 해서 쉽사리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생활수준에 걸맞게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이제 인공지능(과 특이점)에 대한 공부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읽어야 할 책들은 계속해서 생기겠지만 지금까지 공부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기존의 지식과 연동시켜 통합된 성찰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각 분야의 기술들도 충분히 숙지했습니다. 노빅과 이니시모프 등의 전문서적까지 읽었기에 획기적인 이론이 나오지 않은 이상 지금까지의 공부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거의 공상과학소설에 가까운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를 맨 처음 읽는 바람에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지만, 그래서 그의 탁월한 짜집기에서 벗어나는데 한참 걸렸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성찰들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제 자신만 놓고 보면 (질과 양 모두에서) 분명한 발전인데, 그것을 미래세대에 적용하면 더없는 절망이어서 글로 풀어내는 것이 잔인한 짓이 아닌지 두렵기만 합니다. 



특히 이명박근혜 8년 7개월 동안의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하면, 1020세대에게 탈조선만이 그나마 나은 답이라는 말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한살이라도 어릴 때 이땅을 떠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인공지능과 특이점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될지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욕망의 투표에 익숙해져 천하의 사기꾼과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은 4050세대 이상은 신경쓰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이땅을 벗어나라고 말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릅니다. 



기술 발전을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는 그들에 휘둘린 채 국민의 삶을 외면하는 것이 점점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의 불평등과 차별은 아주 소소한 것에 불과합니다.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과 특이점 혁명이라도 모든 노동과 서비스의 자동화(인공지능과 로봇·나노공학의 발전에 따라 결정될 것)로 집결되기 때문에 극소수에게 인류 전체의 부가 집중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인류 차원의 합의(기본소득을 넘어서는 부의 강제적 재분배)가 없다면 나이가 어릴수록 노예보다 못한 삶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물론 비정규직과 알바 외에는 선택할 것이 없는 지금의 삶도 사실상의 노예 상태이지만,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가 일상화되는 30~40년 후에는 지금의 기계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처럼 분배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없이 돈만 된다면 대통령이 맨앞에 서고 특권층이 호응하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나라에서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할 것이기에 미래세대(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불리하다)에게는 최악 중의 최악의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특이점 혁명은 모든 경우에 인류의 멸종으로 귀결된다는 닉 보스트롬의 《슈퍼 인텔리전스》까지는 아닐지라도 취업 자체가 불가능해진 10대에게는 지금의 20대도 부럽게 다가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수많은 책에서 언급된 자동화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여서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논하는 것이 사치일 따름입니다. 국가와 기업(자본), 개개인이 최고의 효율(이익)과 편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술 발전과 자동화를 늦출 방법도 없습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허용되는 한에서는 미래세대에게 어떤 선택지도 없습니다. 지금의 40대 이상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즉 그 이전에 죽을 것이기에 최악의 세상을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에 나설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세상의 출현이기에 합의를 위한 이해(기득권의 포기가 핵심)를 바란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사후의 삶을 강조하거나 영적 각성을 촉구하겠지만 그러기에는 기술 발전과 자동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피부로 와닿기에는 인식의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필자의 이런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무인자동차가 불러올 파장만 놓고 봐도 분명해집니다. 인공지능을 다룬 거의 모든 책에서 언급되는 무인자동차는 그것이 가져올 미래의 가치보다 당장의 피해가 파국적인데도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토론조차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의 수준에 따라 보급 속도가 느려질수도 빨라질수도 있지만, 무인자동차가 유인자동차를 퇴출(레이싱처럼 특정 지역에서만 유인자동차가 허용될 것)시키는 시기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석유업체와 자동차업체에 의해 수십 년 미뤄질 수 있지만, 영원히 미룰 수는 없습니다. 



이럴 경우 2~3개의 인공지능 플랫폼업체와 1~2개의 완성차업체, 소수의 부품업체를 제외하면 모든 자동차업체가 사라집니다. 즉 자동차업계에서 수천만 명이 실직하고, 가족과 연관 산업(택시·버스·대리기사 포함)까지 더하면 수억 명의 삶이 위협받게 됩니다. 이에 비해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 것입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이런 현상이 모든 업종에서 예외없이 일어납니다. 수십억 명이 일자리를 잃고 극단적인 빈곤층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인공지능은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발전들을 하나로 합칠 수 있기 때문에 그 파급력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 아닙니다. 뇌에 대한 분석과 이해와 재현, 즉 모델링 작업이 특이점을 넘고 나노기술이 인간에 근접한 로봇(사이보그 포함)을 양산할 수 있는 시점에 이르면, 여기에 정치권이 침묵하고 언론이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으면 그 다음이란 없습니다. 인간은 기계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그들의 반려동물 정도로 전락합니다.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지구온난화, 초고령사회, 대형 원전 사고, 초미세먼지, 각종 전염병 등은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더욱 지랄 맞은 것은 평균수명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40대 이상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존감이라도 누릴 수 있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이것마저 누릴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듭니다. 인류 모두가 공멸하면 최악의 공평이라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아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무엇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당장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오래도록 의미있게 만드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일부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를 강제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지만, 이는 낙관론에 기반한 뜬구름 잡는 얘기(웬델 월러치와 콜린 알렌의 《왜 로봇의 도덕인가》를 참조)에 가까워서 상당히 바람직하지만 목적한 바를 이룰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인공지능이 의식과 자유의지 등을 가질 정도까지 발전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약한 인공지능 수준의 자동화만으로도 최악의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것은 분명합니다. 최고의 효율과 이익, 편리만을 추구하는 이상 인류의 미래는 정해져 있습니다. 



빌 게이츠의 말처럼, 인류가 인공지능을 제어할 어떤 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인류의 멸종은 필연이며, 최소한 지금의 헬조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곳곳에서 붕괴 가능성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기습적으로 내린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도박 때문에 미중의 전쟁터로 빠져들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더하면 어느 정도 비슷할 것입니다. 박근혜 탄핵까지 포함해 헬조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7.08 08:23 신고

    점점 영화속의 일,상상의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간 100년에 걸쳐 발전해 왔던 일들이 10년 아니 1년만에 이루어집니다

    이 변화의 시대에서 철학적 성찰만이 파멸과 정신의 타락에서
    구할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 늙은도령 2016.07.08 15:22 신고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인공지능의 끝은 암담한데, 특이점을 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빼면 걱정이 앞섭니다.
      인간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데, 보다 많은 이익과 편리를 추구하는 것 때문에 멸종에 이르렀습니다.

  2. 맹그로브 2016.07.08 09:34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서비스와 노동의 차이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비스에 댓가나 경제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면 그순간 서비스는 노동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serve의 단어에는 봉사하다라는 해석이 존재하는 데, 봉사라는 것이 말그대로 공익적인 측면이 강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 군요. 여기에 돈을 붙여 놓으면 사람이 죽더라도 돈 없으면 봉사도 안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뜻으로 탈바꿈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공짜를 좋아 합니다. 좀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결국 serve에 돈을 붙여서는 안되지 않나 싶군요. 저의 짧은 단상입니다.. ^^

    • 늙은도령 2016.07.08 15:26 신고

      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승자독식이 허용되는 현 체제가 문제입니다.
      이것을 무너뜨려야 인간이 기계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거나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술주의자들의 공통점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지능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대표적인 학자였는데 이제는 특이점주의자들이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들어가면 너무 길어지지만 조금씩 글로 남겨 책으로 출판할 생각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공지능과 특이점 혁명 논쟁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논리를 펴볼 생각입니다.

  3. 하하하 2016.07.08 19:00

    걱정마세요.
    우리에겐 사라 코너가 있습니다.
    그녀의 아들 존 코너가 로봇에게 대항하는 방법을 알려줄겁니다. 껄껄껄!

    • 늙은도령 2016.07.08 20:45 신고

      ㅋㅋㅋ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은 없지만 인간이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집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인공지능을 독점할 극소수의 특권층에 의해.....

      솔직히 전복적 혁명이 없으면 이런 시기를 늦출 방법도 없습니다.
      박근혜 같은 지도자가 또 나오면 더 빨리 망할 것이고요.



결국 그들은 자신이 이룬 것들로 인해 자신의 후손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지독한 모순에 갇혀 미래세대 못지않은 피해자로 뒤집혀지고 있다. 그들은 압축성장의 표상에 갇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변한 것도 모자라, 현실을 끝까지 부정하면서 과거만 움켜쥔 채 자신의 자손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영화 '국제시장'이 그분들에 대한 현실도피적 헌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ㅡ'국제시장'에 대한 자세한 사회학적 비평은 별도의 글로 다룰 생각이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정수이기 때문에 '국제시장'에 대한 사회학적 비평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탐욕의 삼위일체’가 극소수의 승자에게만 미래로 가는 지독하게 좁은 풍요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절대다수의 패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궁핍과 위험으로 가득한 어디에나 자리하고 있는 미래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한, 그들의 전 생애에 걸친 삶의 모순은 죽어서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부의 불평등이 기회와 교육의 불평등으로 고착되고, 성장의 각종 부작용들이 개인의 어깨를 짓누르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위험사회의 비대칭적 피해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패자부활전을 인정하지 않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견고한 고체로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우만의 성찰처럼 고체의 밀도를 지닌 채 액체처럼 유동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들이 펼쳐놓은 물샐틈없는 그물망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산업발전의 단계에 따라 중후장대하며 자본과 노동이 적대적 동거를 피할 수 없는 무거운 경제에서, 핵심인력만 정규직으로 둔 채 나머지 부문의 인력들은 노동유연화에 따라 비정규직이나 아웃소싱으로 대체한 채 가벼운 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는 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반대로 민주주의에 익숙하나, 유례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자유의 종류 때문에 민주주의가 빠른 속도로 퇴행 중이라는 사실을 직감하지 못하는 1030세대는, 계몽된 시민이었으나 지배자와 타협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에 적극 협력한 사람들의 착취의 대상이었던 노동자와 구별되는 압축성장의 주역들과, 시민정신의 계승자였으나 마르크스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민주주의의 경험이 너무나 적었던 민주화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 모두는 노동 개념과 자연 지배라는 성장의 낙관론이 사회와 문화의 퇴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영원한 진보라는 계몽의 피해자라는 데는 동일하지만, 살아온 시대적 경험이 틀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할 여력도 없다. 



인류문화학적으로 1030세대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압축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할 생각이지만 지금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경제적 발전이 최종 단계에 이르면 자유의 주체로서의 자아와 평등의 주체로서의 타자가 서로 공존하고 갈등하는 관계라는 사실이다. 헌데 삶의 고단함에 짓눌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 때문에, 그들은 극소수의 승자에 대해 절대다수의 약자와 패자의 위치로 내몰리고 있는 기술-경제적 발전의 피해자임은 분명하다. 평화와 공존의 종교인 이슬람 사회의 속담처럼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닮기 마련이다.’ 민주화세대는 물론 그보다 앞선 세대인 압축성장의 주역들에 대한 이해를 1030세대에게 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세 세대가 살아온 시대의 조건과 지배의 방식, 산업화와 민주화의 단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특히 여러 가지 면에서 경험의 부족과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 삶의 방식과 각자가 처한 환경 등에서 채울 수 없는 거리를 짧은 글로써 풀어낼 수는 없다. 



보릿고개라는 생존의 고민을 걱정했던 세대이자 국가와 사회와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받칠 수 있었던 세대들을 기술-경제적 발전 때문에 이기적일 정도로 개인주의화된 1030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산업화의 주역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성장과 발전을 목격했기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의 마음이 아직까지도 유효한 상태다. 그들은 자유가 억압받는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고,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한 지적 사기이자 농촌 해체 과정인 '새마을운동'의 희생양이어서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군사부일체와 국민교육현장, 국기에 대한 경레가 이상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박정희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그의 딸인 박근혜에 대한 사랑을 1030세대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1030세대에게 권위주의적 독재에 저항해 감옥을 들락거리며, 미군이 아부라이브 교도소에서 자행했던 고문보다 더욱 심한 고문에 시달렸고, 때로는 사형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민주화세대의 치열한 투쟁을 이해시키기 힘든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은 국가의 전방위적 압박에 운동의 동력이 약해질 것을 두려워해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교조적일 만큼 밀어붙였으며, 운동의 길이 너무나 힘겨웠기에 민주주의나 정의와 평화에 대한 개념에서 거의 권위주의적인 엄격함(민주화 주역에 대한 1030세대의 피로감이 여기서 나왔고 그 극단에 일간베스트가 있다)을 유지해야만 했다. 지난 60년 동안의 경제성장은 무수히 많은 부작용들을 후세대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으며, 그 결과 1030세대들을 압축성장의 신화에 짓눌려 존엄한 삶과 진정한 자유도 누리기 힘들어졌다. 



이들 모두가 계몽적 진보(국민을 착취의 대상으로 만드는 유신(維新)도 이에 속한다)를 앞세운 기술-경제적 발전의 지배세력의 희생양이었지만, 절대 다수의 패자들 사이에서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 남아 있어 자신의 입장을 철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세 세대 간의 화해란 갈수록 벌어지며 서로를 향해 폭력적 적의와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들이 난무하며 교차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 기술-경제적 진보의 방향이 바뀌어 세상을 다시 한 번 뒤집어야 하는 ‘탐욕의 삼위일체’는 수없이 많은 갈등을 유발하는 세대 간의 전쟁(별도로 다룰 것이다)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가족의 복원과 세대 간 화해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익 추구를 위한 위장된 행태여서 세대 간 갈등과 가족의 해체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압축성장의 혜택을 최소한만 받았던 세대들과 그 피해를 감당하고 있는 1030세대가 부의 불평등과 위험의 불평등이 교차하는 하는 최악의 지점에 위치한 사회적 계급(파편화된 개인이라 연대의 능력도 없고 운동으로 승화할 동력도 없는 넓게 산재해 있는 계급)부터 비대칭적 종말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현재의 세상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1%와 다음 번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만 그들의 배에 승선한 사람들이라고 비대칭적 종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기술-경제적 발전의 수혜자로서 초국적기업의 위치에 오른 삼성전자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구축된 ‘네트워크의 효과’를 누리면서, 이제는 1등을 유지하기 위한 ‘마하경영’을 화두로 들고 나왔다. 이런 삼성전자그룹의 끊임없는 변신은 정보통신 기술이 어느 산업에나 적용되는 지적 능력의 특징 때문에 전통의 제조업에서 무거운 부분을 떼어내는 작업에 들어서는 단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속도가 핵심인 가벼운 경제에 승선하려면 전통의 제조업도 제 살을 깎는 살벌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고, 이는 대규모 실업의 양산과 공장의 폐쇄나 해외이전을 의미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기아차 그룹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초국적기업에 오른 대기업집단은 기술-경제적 발전의 궤도에 적응해야지 그에 저항하면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최근에는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는 환율전쟁에 갇혀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이 땅의 기만적인 기득권들은 참여정부 시절이 삼성공화국이었다고 하면서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거짓을 확대재생산했지만 당시에는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가 망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을 만큼 부의 독점이 임계점을 넘은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실에 가깝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지금의 새누리당 출신들이 일으킨 IMF 외환위기 때문에 삼성전자그룹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2008년의 월가 발 경제위기는 MB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현대기아차그룹이 약진할 수 있었다(물론 기술-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도움을 별로 받지 않았지만). 국민의 지갑은 털렸지만, 이 두 초국적기업의 매출과 자산규모는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에 이르렀다. 



전 세계 차원의 청사진을 그려가며 현재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초국적기업들의 탄생과 독과범적 시장 지배는 ‘탐욕의 삼위일체’가 만들어낸 계몽적 진보의 필연이었다. 이런 변화는 부정적 세계화에 뛰어든 모든 나라에서 공히 보여주는 공통의 현상이며, 모두가 알면서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지배적 추세로 자리 잡았다. 모두에게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자유가 주어졌고, 손만 뻗치면 움켜질 수 있는 무한한 상품들이 주어졌지만, 그 자유를 만끽하고 상품들을 구매하려면 저임금 노동이라도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즐기고 지불은 뒤로 미루거나, 아예 뒤는 생각하지 않는 카드의 사용도 한계가 있으며, 대학을 졸업했을 때부터 이미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을 가지고 출발하는 20대들은 노동예비군을 뜻하는 잉여가 아니라 폐기처분되기 직전의 잉여라는 뜻에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의 위협에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졌다.





부정적 세계화의 핵심인 이런 기술-경제적 관점(계몽의 변증법)이 보편적 진리로 자리 잡게 되면서 ‘탐욕의 삼위일체’의 실재적 지배자들은 절대적 권력을 형성하면서 세계적 특권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그런 압도적 힘을 동원해 전 지구적 시장을 구축하기로 합의한 국가들의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와 언론을 기술-경제적 원리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재편하는데 성공했다. 동시에 이들은 힘겹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체제를 내부로부터 야금야금 침식해 들어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인식의 전환(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를 인정하는 것)을 이루어내는데 성공했다. 정치와 문화의 대부분이 그 하부구조인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만들어내는 빈약한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발견을 철저히 벤치마킹해, 견고한 체제의 적대적 동반자였던 노동은 물론 정치와 문화의 힘도 약화시키고 변화시켰던 과정이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에 자세히 나와 있다. 



세계화를 다룬 책들과 연구논문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공통되는 내용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이 그 앞에 ‘부정적’이라는 단어를 숨긴 기술-경제적 승자들의 일방통행이고 폭력적인 약탈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2008년의 신용붕괴로 모두의 눈앞에 펼쳐진 부정적 세계화는 세계경제의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그린스펀과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잭 웰치가 참회의 고백을 하게 만들었고, 막강한 시카고학파의 퇴장을 불러왔지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거기까지 만이었다. 그밖에 달라진 것이란 1%의 부가 더욱 늘었다는 사실과 지구온난화의 죄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무거운 경제를 털어낼 기회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에 몰린 거대한 부도 최종적으로는 1: 9로 재편되고 있다(미국은 미국혁명과 남북전쟁 전후에도 1대 9 사회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직면한 현재, ‘탐욕의 삼위일체’는 가벼운 경제에 맞는 체제로 세상을 다시 한 번 뒤집기 위해 거대한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의 몰락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한 현상임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와 사회의 변화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반영할 수 없는 개인들이 인터넷과 SNS로 몰려다니며 정치의 과잉을 초래함으로써 세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 세계적 시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정치와 비정치의 중간에 위치’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국가 체제를 기술-경제적 관점에 맞게 재편하면서, 생활정치의 영역으로 뛰어들은 그들은 일체의 권위를 해체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을 따르며 좀처럼 뚫고 들어가기 힘든 현실공간마저 하나씩 점령해나갔던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펼치고 있다. 거의 모든 공적 공간마저도 그들의 로고와 브랜드로 도배해 버렸다(특히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보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장자유주의 우파정부의 허상이 밝혀지면서 온갖 정책적 실족들이 속출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술-경제적 관점에 의해 새롭게 재편된 국가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도 계몽적 진보의 암묵적 지지자였음을 밝힌(마르크스가 고전경제학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진실이지만 그 반대로 여전히 진실이다) 울리히 벡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필적하는 《위험사회》에서 “심지어 외적으로는 국민국가의 사법권은 국제적으로 상호결합한 시장과 자본의 집중이라는 역사적 발전뿐만 아니라, 오염물질과 유독물질의 지구적 교환 및 그에 따른 보편적 건강위협과 자연파괴에 의해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이런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이런 국가행위의 결과가 지니는 불투명성 때문에 정치적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찬 유권자들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그네타기 유권자’로 변해가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한 채 비판하는 사람들로 인터넷과 현실공간을 떠돌아다녔다.



문제는 이런 투표 불참자가 늘어나면서 최소한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면서 그 민주적 대표성이 흔들리게 됐다는 점이다. 즉 각 정당과 후보들은 조직과 돈을 동원해 ‘투표에 참여하는 열성적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필사적인 전투를 벌어야 했고, 그 부작용은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침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중매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고, 의제 선정과 패널 선정에 따라 여론 조작과 왜곡의 가능성이 심각한 문제도 떠올랐다(앤서니 기든스가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언급한 정치학에서의 ‘의제 설정 이론’을 참조하라. 그 단계는 유권자들이 중요시 여기는 ‘대중적 의제’, 의회와 주변 기관들의 논쟁 단계인 ‘정부 의제’, 입법화 단계인 ‘경정 의제’의 3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보도하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정치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민적 정서’의 대부분을 대중매체가 선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대중매체는 고가의 광고와 협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하자). 



이는 모든 나라에서 공통된 현상이며, 정치 과잉과 투표 불참이라는 이중적 분화가 정형화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국가기관을 동원한 선거 개입이 가능한 세상이 됐고, 민주주의의 후퇴는 뚜렷한 추세로 자리 잡으며 과거의 망령인 권위주의 독재와 파시즘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정치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근대이성의 총아인 과학에서 출발해 지배적 교리로 자리매김한 기술-경제적 진보가 왜 민주주의의 퇴행과 맞물려 돌아가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성장이 정체돼 새로운 빈곤층이 늘어나고, 중산층의 두께가 얇아지고, 사회는 물론 가정 내부에서조차 혼란과 불화, 적대가 늘어나고, 사회의 분열이 회복가능한 상황에 이르면 과학과 기술-경제적 진보의 본질인 잠재된 폭력성이 현실공간은 물론 사이버 세상이라는 하위정치의 영역에서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일베 현상’이 대표적인데, 이런 추세에 대한 울리히 벡의 설명에 따르면



한편에서 하위정치 행동의 영역은 민주적 규칙의 적용에서 면제된다. 다른 한편에서 심지어 내적으로도 정치는 체계적으로 고무된 외적 요구들에 따라 군주적 특성을 여전히 보인다. ‘정치적 지도력’은 행정부와 이해집단에 맞서 강력하고 독재적인 실행력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시민과 관련하여 그것은 평등한 것들 중의 평등한 것이 되어야만 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처리해 주며 진지하게 고민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은 질문을 없애고 자문을 줄이기 위한 모든 행동에 가해지는 제약을 단지 반영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또한 민주적 정치체계의 구조에 내재해 있는 긴장과 모순을 표현한다. 즉 의회의 토론과 공동영역을 한편으로 하고, 의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신의 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권력을 통해 자신의 ‘성공’을 평가받는 행정기관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관계. 특히 선거운동체계는 준민주의의적인 ‘임기직 군주’의 실제적 허구를 항상적으로 조장하고 재생하는 의사결정 당국들이 서로에 대해 이바지하도록 강제한다. 이전의 정책들이 거둔 성공을 공언하건 비난하건 상관없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7.05 10:22 신고

    인간의 욕망이 만든 세상 막장까지 왔다는 느낌입니다.
    살기위해서 먹는 게 아닌 먹고 입고 즐기기 위해서 사는 동물적인 욕구가 결국의 파멸을 불러올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7.05 15:24 신고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공멸로 몰고 갑니다.
      지금까지의 성장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지 않는 한 공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업들의 폭주를 정치로 막아야 하는데 이놈의 정치인들이 정반대로만 달려가니....
      정치 실패가 패인이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민주주의의 나쁜 점만 부각되는 시대로 진입한 것 같습니다.

  2. 耽讀 2015.07.05 16:52 신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그리고 언론권력은 자신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진실을 왜곡합니다. 서민들이 수구기득권정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이유도 이들 권력삼위일체가 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죠. 그리스를 보도하는 국내언론들은 이 지경이 된 이유를 복지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부패때문입니다.
    갈수록 전세계는 이들 권력삼위일체가 만든 왜곡된 질서로 빠져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이겨낼 수 있느냐입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힘도 세고, 자신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잘 합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분열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6 14:58 신고

      국민들이 제대로 된 정치와 민주주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치와 민주주의가 최고에 이를 때 서민들이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워낙 책을 읽지 않으니 TV에서 해부어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지금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특권엘리트들의 독점물입니다.
      국민은 자포자기 상태이고요.

  3. 공수래공수거 2015.07.06 08:55 신고

    오늘 쓰신글이 다른때보다 약간 길어 한번 읽고 이해하기란
    제 수준에서 어렵습니다
    두세번 정독해야 할듯 싶어 댓글 이정도로 마무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7.06 14:59 신고

      좀 어렵지요?
      원래 퇴고를 해야 할 초본이라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4. 바람 언덕 2015.07.06 10:05 신고

    지난 주말 아고2 오프모임 잘 가졌습니다.
    도령님 이야기 많이 했어요.뵙지 못해 정말 아쉽네요.
    이런 저런 정치 이야기도 많이 하고 앞날도 모색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 늙은도령 2015.07.06 15:02 신고

      제가 후기를 읽어보겠습니다.
      약의 내성 때문에 조금 힘든 상황이라....
      좋은 시간됐다니 다행입니다.^^

  5. 『방쌤』 2015.07.06 11:54 신고

    모두들 제대로 투표를 해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지도자를 뽑아야지요,,,
    계속 이렇게 살수는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 늙은도령 2015.07.06 15:05 신고

      확실한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데, 그들이 국회나 청와대로 들어가면 또 로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지라...
      정말 어렵네요.
      민주주의가 너무 무너진 상태라 이것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고민이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6. base 2015.07.06 18:07

    세 세대간은 갈등은 그 어느 시대보다 심화된 것은 사실인거 같습니다. 지난 60여년동안 이 세대들이 경험한 삶이 너무도 다르니 그러지 않겠나 싶네요. 그리고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더욱 더 잠식해가는 현실에서 격게되는 수 많은 현실적 모순에 우리가 갇혀있는게 아닌가요. 그래도 이번 그리스의 국민투표 결과는 굉장한 의미를 시사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늙은도령 2015.07.06 18:22 신고

      네,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것을 하나로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어차피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역사에 맡겨질 일이니 그것 때문에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젊은이들이 제대로 역사를 알고 제대로 된 참여와 선거,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네요.
      요즘은 뭐든지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 힘겨운 세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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