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지도자로서의 노무현과 박근혜의 차이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의 인용문은 2005년 경찰이 농민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농민이 사망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사과문의 일부이다.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던 간에 공인된 폭력인 공권력은 법이 허용한 압도적인 무력이기에 모든 지도자는 공권력의 동원과 그 결과에 대해 철저한 사후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에게 고개 숙이는 것이 창피함은 아니다  


 

이런 위험을 피하고자 지도자가 사설업체의 용역을 동원하고 그들의 불법적인 폭력을 방치하는 것은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함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지난 대선이 바로 그러했다. 공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정부의 권력기관들이 사이버용역까지 동원해 민주주의의 존립근거인 선거를 온갖 불법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느티나무'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제2의 미네르바'처럼 개표조작의 가능성을 수학과 확률 등의 지식을 동원해 정확히 51.6%로 당선된, 즉 박정희 5.16군사쿠데타와 완벽히 일치하는 득표율로 당선된 것이 사전에 입력된 프로그램에 의해 나온 결과라는 주장을 내놓았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온갖 증거영상들이 우후죽순으로 추가되면서 진실일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선거법에 의하면 6개월 안으로 판결을 내려야 함에도 지난 대선의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이 2년 5개월째 대법원에서 푹 삭혀지고 있다. 박근혜의 임기가 끝나도 이 소송은 진행되지 않은 채 묻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중요한 것은 4월 총선에서 개표조작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 단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은 그럴 경우 지난 대선의 불법성만이 아니라 이원집정부제를 고리로 새누리당(정확히 이명박계)과 국민의당이 어떤 형태로든 선거연합을 하면서 장기집권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안철수에게서 중도라는 가면을 벗기면 이명박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가 정통성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인데, 이런 논란의 핵심에 자리한 것은 이명박이 그의 졸개들을 동원해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을 장악한 뒤, 대규모의 선거개입으로 박근혜를 당선시킨 정치적 보험이다. 이것 때문에 박근혜와 그녀의 환관들은 안철수를 치지 못하며, 쓰레기 언론들을 동원해 안철수현상의 부활을 끈질기게 시도하고 있다.





부정선거로 이명박의 도움으로 집권했기 때문에 그의 아바타인 안철수를 매장시키지 않는 것도, 쓰레기 언론들을 동원해 이미 시효가 다한 안철수현상을 부활시키려는 몸부림을 하는 것도 박근혜의 정치적 정통성이 박정희 만큼 형편없기 때문이다. 정치검찰과 대법원, 헌재만 장악해두면 어떤 증거들이 쏟아져 나와도 끄덕없으니까. 



바로 이것, 박근혜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법치주의가 정권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로 작동하고 있다. 법률로 허용됐기에 일방적이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망하지 않는 공권력까지 수중에 넣었으니 모든 집회를 정치집회로 규정하고, 폭력성을 띨 것이란 일어나지 않은 일로 폭력적인 진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박정희의 유신독재처럼. 



박정희와 박근혜의 공통점은 정치적 정통성이 없는 것이며, 이 때문에 국정원을 포함해 행정부 수장에 집중된 모든 권력과 권한을 총동원해 민주주의와 헌법과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것만이 정권을 유지하는 길이다. 이는 전 정권과 현 정권을 넘어 국민과 법률로부터 공권력 동원과 사용을 위임받은 모든 정권에 동일하게 적용되며, 친일수구세력의 온상인 새누리당이 국회를 장악함으로써 최후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이것이 한국 현대사의 시작과 끝이다).

 

 

바로 이런 것들로 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농민시위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농민 사망에 대해 비통한 심정으로 대국민사과를 했던 것도 국민의 세금으로 돌아가며, 국민을 위해서 일할 때만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권력이, 그들의 고용주인 국민을 사지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이는 삼권분립 운운하며 법적 판단을 가리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로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치의 본령이다. 



정치학에서 국가의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에게 무한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도 이런 과정 속에서 정립된 것이며, 현대의 민주주의가 행정부 위주로 돌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은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국민사과에 나선 것이며, 당시의 경찰총장으로 하극상까지 벌인 허준영이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회피하고자 해도 회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집권 여당도 공권력 동원과 사용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정청회의라는 말은 거저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가 정리해 일반화한 삼권분립이 현대에 와서는 당청정회의로 대체된 이후에는 여당에게도 대통령에 준하는 책임이 있다. 지난 대선의 불법과 개표조작의 책임이 이명박근혜와 그의 졸개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에게도 있음도 이 때문이다. 

 

 

정치적 정통성이 없는 박근혜의 야만공권력이 집회의 자유마저 짓밟아버리고, 백남기씨가 명백한 살인대포에 쓰러져 두 달이 넘도록 깨어나지 못함에도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런 배경 하에서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회피하고자 해도 회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지난 대선의 불법들과 개표조작이 오직 두 사람의 수혜자(외적 수혜자는 박근혜, 내적 수혜자는 이명박)를 위해 저질러진 것인데,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란 지도자와 여당으로서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결과가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니 당정청회의는 무한책임의 최종적인 당사자들이다.

 

 

이상이 거칠게라도 다루어 본 현대국가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문을 한 자 한 자 읽고 또 읽어 볼 수밖에 없다. 합법적 폭력인 공권력의 집행에 의해 죽음에 이른 두 명의 농민에게 (법관들의 성향이 반영되기 일쑤인 법적 해석을 넘어)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지도자로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공권력의 정의를 언급한 것이며 그 집행의 결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인정했던 것이다.  



우리가 박정희와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친일수구세력과 모든 기득권 언론들의 융단폭격에서 바보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 이명박근혜 8년 동안이며, 노무현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문재인 전 대표가 가까스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놓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노무현은 그런 지도자였고, 우리는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